SERMONS
말씀
- 주님의 공동체사도행전 6:1-15어느 교회에 다니다가 교인들이 하는 행동이나 언어를 통해서 실망을 했다는 사람들을 가끔 만나게 됩니다. 일반인들은 그럴 수 있지만, 어떻게 교인들이 그럴 수 있느냐는 생각에서 그들은 상처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초대교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본문을 보면 초대교회 안에도 갈등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는 구원받은 자들로만 구성이 됩니다. 그러나 세상에 있는 지역교회는 구원받은 자뿐만 아니라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함께 공동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또한 구원받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아직 성화되어 가는 공사과정 중에 있기 때문에 흠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공동체를 잘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공동체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합니다. 1. 공동체에는 갈등이 반드시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모습을 사도행전 2:44-45은 “믿는 사람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그들은 재산과 소유물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대로 나누어주었다.”고 아름답게 묘사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도 그리스 말을 하는 유대 사람들이 자기네 과부들이 날마다 구호 음식을 나누어 받는 일에 소홀히 여김을 받는다고 하면서, 히브리 말을 하는 유대 사람들에게 불평을 터뜨렸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주님의 형상으로 온전히 영화될 때까지는 여전히 죄의 성품을 가지고 있는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반드시 갈등이 있기 마련입니다. 게다가 남녀의 성품이 다르고 각 사람의 기질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하나 되기를 힘쓰는 것이 필요합니다. 2. 공동체에는 책임분담이 있어야 합니다. 바람직한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바른 방향으로 이끌어갈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주님의 공동체를 이끌어갈 지도자는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본문에서와 같이 지도자들이 음식 베푸는 일에 힘쓰다보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을 제쳐놓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일과 말씀 섬기는 일에 헌신하기 위하여 집사들을 뽑기로 결정을 하였습니다. 공동체에는 같은 비전이나 목표가 있고,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서로 사랑하는 마음과 책임분담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공동체는 서로를 통하여 강해지고 개발되어 막강한 힘을 발휘하게 됩니다. 깊이 있는 경험과 은사와 재능을 가지고 있는 각 사람이 서로 보호하고 돕고 힘을 합하면, 1+1=2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힘과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3. 공동체에는 일꾼이 있어야 합니다. 공동체가 팀이 되기 위해서는 다섯 가지 요소를 반드시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인정된 지도자, 공동의 비전이나 목표, 공동 목표에 마음을 같이하는 멤버들, 일의 분담, 그리고 멤버들 상호간의 강한 사랑과 충성심입니다. 초대교회의 모습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일을 분담하기 위하여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을 받는 사람 일곱을 뽑아서 집사로 세웠습니다. 그 중에 스데반이 있었습니다. 그는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그가 지혜와 성령으로 말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당해낼 수 없었습니다. 우리 행복한제자교회 공동체도 그저 모인 무리가 아니라 팀이 되기 위해서는 위의 다섯 가지 요소를 늘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특히 교회의 일꾼으로 세움을 받는 기준은 나이, 학력, 재력, 교회출석연수가 아니라,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을 받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 다른 이름이 없습니다사도행전 4:1-12어느 때나 이단이 기승을 부리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어찌하든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라도 미혹하려는 것이 사탄의 전략이기 때문입니다. 신천지의 교주는 자기만이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계시를 받은 참목자이며, 추수해야 할 밭을 교회라고 거짓된 주장을 합니다. 성령론 특히 성령의 은사론과 관련한 신사도 운동에서는 방언 현상, 우울증 등의 치유 현상, 예언 현상, 이적과 기적 현상이 강력하게 나타나기도 합니다. 여기에는 괴이한 소리, 쓰러짐, 금이빨과 금가루 현상, 입신 현상, 심리학이나 최면술 등의 효과 현상 등이 포함되기도 합니다. 이를 분별하는 데에는 그들의 윤리성이나 가정생활 및 직장생활 등 일상생활을 정상적으로 하고 있는가를 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무엇보다 성경에 비추어 분별하는 것이 가장 정확한 방법입니다. 1. 잘못된 비유 가장 그럴 듯하게 들리는 비유 중의 하나는, “산봉우리는 하나이지만 그곳에 이르는 길은 다양하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한 분이지만, 하나님을 추구하는 종교는 여러 종류가 있는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산봉우리에 이르는 길은 물론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길은 예수님뿐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갈 사람이 없다.”(요 14:6)고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독선적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아닙니다. 예수님 밖에는 우리가 구원을 얻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말이 배타적으로 여겨지십니까? 진리는 비진리에 대해 배타적이어야 합니다. 아무리 친절한 사람이라 해도 아버지가 될 수는 없습니다. 아버지는 오직 한 분입니다. 마찬가지로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는 오직 한 분이십니다. 2. 오직 예수 베드로와 요한이 나면서부터 못 걷는 사람을 향하여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시오.” 하고, 그의 오른 손을 잡아 일으킨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일을 보고 모여든 사람들에게 사도들이 가르치며 부활을 증거하는 것을 보고 종교지도자들과 정치지도자들이 격분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자신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취향에 맞게 잘 다듬어진 죽은 돌을 원했습니다. 심지어 자신들을 구원할 메시야에 대해서도 그리했습니다. 그러나 오직 예수님만이 그들을 구원하실 수 있는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셨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구원의 근거가 되시고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길이 되십니다. 3. 다른 아무에게도 구원은 없습니다. 인류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을 들라면 보통 네 명을 듭니다. 부처, 예수, 공자, 소크라테스입니다. 이 분들의 가르침에 대해 세상 사람들은,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이며, 공자의 경우 “인의예지신”이고, 예수는 “죄를 대속한 것”이며, 부처는 “팔정도”를 그 핵심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의 가르침을 보면, 예수님 외에 어느 누구도 사람들의 죄 값을 치르기 위해서 대신 죽었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또한 어느 누구도 죽은 자 가운에서 다시 살아났다는 사람도 없습니다. 예수님 외에는 모두 이 세상을 바르게 살라는 도덕적인 가르침을 주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스스로 죄를 없애거나 죄가 전혀 없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방탕하게 살면서 모든 것을 탕진하고 돌아온 아들을 무조건 받아준 아버지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주셨습니다. 예수님 밖에는 다른 아무에게도 구원은 없습니다.
- 성령의 권능으로 증인이 되리라사도행전 1:1-11고린도전서 12장, 로마서 12장, 에베소서 4장에는 성령의 각종 은사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성령의 은사를 주시는 목적은 고린도전서 12:7에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유익을 주어야 할 사람은 크게 두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과 아직 믿지 아니하는 사람입니다. 믿는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일은 그들을 도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도록 하는 일 즉, 제자를 삼는 일입니다. 아직 믿지 아니하는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일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주어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도록 하는 일, 즉 영혼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시는 동안에 이 사역을 하셨고, 또한 성령을 보내주셔서 우리에게 동일한 사역을 하도록 하셨습니다. 1. 증인으로 사신 예수님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 고난을 받으시고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신 후에 사도들과 함께 40일을 보내셨습니다. 그 기간에 예수님은 사도들과 많은 사람들에게 부활하신 모습을 보여주시고 하나님 나라에 관한 일들을 말씀하시며 그들의 믿음을 굳게 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목적은 세상을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얻도록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으며 끝내는 세상 사람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죽음에서 부활하신 후에도 제자들과 함께 계시면서 하나님 나라 일을 말씀하셨고, 우리가 증인의 삶을 살도록 성령을 보내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2. 증인으로 살도록 도우러 오실 성령님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실 것을 염두에 두고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제자들을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세상 끝 날까지 함께 계실 것에 대한 약속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약속대로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일은 성령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들과 함께 계실 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려라.”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일은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단지 성령님께 쓰임을 받는 도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일하시는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고, 또한 우리를 통하여 역사하십니다. 3. 증인이 되도록 권능을 주시는 성령님 예수님의 제자들은 여전히 로마의 압제하에 있는 이스라엘에게 나라를 되찾아주실 때가 언제인가에 주된 관심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은 여전히 세상 나라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하나님 나라보다 세상 나라에 매여 있을 때가 많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묻는 그 ‘때’와 ‘시기’ 대신에 제자들이 해야 할 ‘사명’을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능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마침내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 사도행전은 바로 이 약속이 이루어진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성령의 권능을 주신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통해 땅 끝에까지 이르러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기를 원하십니다.
- 신약개요와 4복음서마 1:22-23, 막 10:45, 눅 19:10, 요 20:311. 신약의 열쇠는 성취이다. 마태는 시작부터 12번이나 이 열쇠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주께서 하신 말씀을 이루려고 하신 것이었다.” 우리 주님께서 그의 사역을 시작하실 때, 제일 먼저 사용하신 말씀은 “이렇게 하여 우리가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옳다.” 2. 신약은 구약을 완성시키고 성취시켰다. 구약의 제사 제도는 예수님에 의해서 성취되었습니다. 구약의 예언들은 은혜의 주님 안에서 성취를 찾게 된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그가 오실 것이라고 했으나, 복음서에서는 그가 오셨다고 했습니다. 서신서에서는 그가 성령으로 와계신다고 말하며, 요한계시록에는 다시 오실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초림의 성취는 구약의 예언이 신적인 것임을 증명해 주며, 아직 성취되지 않고 남아있는 것들도 반드시 성취될 것이라는 보증이 됩니다. 3. 4복음서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은 자연스럽게 예수님의 네 모습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각각 다른 강조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네 복음서가 모두 하나님이시자 사람이신 예수님의 완전한 초상을 그려주고 있습니다. 에스겔이 말하는 ‘네 생물’-사자, 소, 독수리, 사람의 얼굴과도 일치가 됩니다. 예수님은 주권자로서 다스리고 통치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종으로서 섬기고 고통을 받기 위해 오셨습니다. 인자로서 인간과 함께하며 함께 느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구속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4. 4복음서 저자들의 강조점 마태-사자는 다윗 왕족인 유대 지파의 상징입니다. 마태복음 1:1에서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는 이러하다.”라고 말한 것처럼,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마가-소는 낮은 위치에서 섬기는 것을 상징합니다. 마가복음에는 족보가 나와 있지 않으며, 낮은 종으로서의 특징인 행동에 강조점을 두고 있습니다. 누가-예수님의 왕권이나 신성에 대해서는 강조하지 않고, 주님의 부모에 관한 이야기와 주님의 탄생과 소년 시절의 성장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영원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다.”요한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몸으로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5. 4복음서의 대상 및 끝맺음 마태-히브리인들이 대상이며, 주님이 메시아로 인정된 증거로 부활로 끝나고 있습니다. 마가-로마인들이 대상이며, 낮아지셨던 주님께서 영광과 존귀의 위치로 승천하심으로 끝나고 있습니다. 누가-헬라인들이 대상이며, 이상적인 인간으로 나타나신 주님께서 위로자인 성령에 대한 약속으로 끝나고 있습니다. 요한-모든 세상 사람들이 대상이며, 재림에 대한 약속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
- 성경을 우리에게 주신 이유요한복음 5:39구약: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창조하셨다. 인류의 간악한 죄로 말미암아 타락한 세상을 홍수 심판을 통하여 정화시키셨다. 인류는 다시 바벨탑을 쌓음으로써 다시 하나님께 도전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언어를 혼잡케 하심으로써 사람들을 분산시키셨다.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은 계속되어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시고, 이삭, 야곱(이스라엘) 및 요셉을 히브리 민족의 지도자로 세우셨다. 그들은 큰 민족을 이루고 애굽에서 종살이를 한 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인도하에 애굽으로부터 해방되었다. 여호수아가 약속의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기까지 그들은 광야에서 교육되었으며, 시험받았고, 연단되었다. 그들은 14명의 사사들에 의해 다스림을 받다가 왕국이 된 후에 왕위를 사울, 다윗, 솔로몬이 계승했다. 솔로몬 왕 이후, 히브리 왕국은 남북으로 분할되었다. 열아홉 명의 악한 왕들이 통치한 후,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북쪽으로 사로잡혀가 분산되었다. 남 유다는 스무 명의 왕에 의해 통치되다가 바벨론 포로 생활을 하게 되었다.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유대인들을 유다 본토로 인도하는 동안, 에스더는 바사에서 구원의 왕후 역할을 했다. 그때 이후, 신약 시대가 시작될 때까지 사백 년간의 “침묵기”가 있었다. 신약: 사백 년간의 침묵기가 지난 후, 성경 기사는 세례 요한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다시 재개된다. 약 30년 후, 요한은 유대 민족을 회개의 세례로 불렀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약 30년 동안 하나님의 성품을 세상에 보이시고, 하나님의 완전한 길을 가르치셨다. 세상에서 자기의 사역을 계속하도록 열두 제자를 준비시킨 후,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기꺼이 죽으셨고,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셨고, 그리고 하늘로 올라가셨다. 성령의 능력으로써 제자들은 주로 유대인들 가운데서 예수님의 구원에 대한 기쁜 소식을 전파했다. 사도 바울은 보다 확장된 전도여행을 통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고, 최소한 열세 권의 신약서신을 기록했다. 사도 요한은 이 세상 종말에 대한 하나님의 프로그램을 전망한 요한계시록을 기록했다. 구약의 역사서(단어로 요약) 창세기: 창조-타락-홍수-바벨탑, 아브라함-이삭-야곱-요셉 출애굽기: 출애굽-율법-성막 레위기: 5제사 7절기 중에 유월절-오순절-초막절 민수기: 옛세대-방황세대-새세대 신명기: 과거-현재-미래에 신실하신 하나님 여호수아: 중부전쟁-남부전쟁-북부전쟁 사사: “또” 룻: (기업을 무를 자의 자격) 친족-능력-자원하는 마음 삼상: 사무엘-사울-다윗 삼하: 다윗의 승리–타락-말년 왕상하: 통일왕국-분열왕국-포로 대상하: 전심-반심-무심(한 왕들) 에스라, 느헤미야: 성전수축-율법회복-성벽재건 에스더: 모르드개, 에스더, 하만
- 사람은 변합니다.유다서 1:1-7세상에는 일명 ‘짝퉁’이라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귀하고 유명한 것일수록 짝퉁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짝퉁 하나님(?)’이 많습니다. 영원하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광을 바꾸어서 썩어질 사람의 모양으로 만들었거나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어 놓은 것들이 바로 그것들입니다. 때로는 사람의 탐욕이 하나님이 계셔야 할 자리를 대신 차지하여 짝퉁 하나님 노릇을 할 때도 있습니다. “왜 기독교에는 이단이 그렇게 많은가?”라는 질문을 받을 때가 가끔 있습니다. 기독교는 영원하시고 살아계신 참 하나님을 예배하기 때문에 이단(짝퉁)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속이려 하는 잘못된 철학과 교리들을 주의해야 합니다. 1. 사람은 변화됩니다. 본문을 기록한 유다는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사도행전 15:13)였던 야고보의 형제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예수님이 출생하신 후 마리아와 요셉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들로서, 예수님의 형제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요한복음 7:5) 심지어 예수님이 미쳤다는 말을 듣고 예수님의 친속들이 예수님을 붙들러 나온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기록하며 유다는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칭하며, 믿음의 도를 위해 싸울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 놀라운 변화는 예수님의 부활을 보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유다는 예수님의 형제로 태어났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 비로소 주님을 바로 알고 바른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바로 알고 거듭난 사람은 변화됩니다. 2. 그러나 변질될 수도 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으십시오. 여러분의 원수인 악마가, 우는 사자같이, 삼킬 자를 찾아 두루 다닙니다.(베드로전서 5:8)“ 이 경고는 어느 때나 적용되어야 할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마귀는 사람들이 주님께로 돌아오고 주님의 은혜 안에 굳게 서는 것을 가장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도 교회 안에 가만히 들어온 배교자들이 성도들 가운데 있으면서 가능한 대로 성도들이 서 있는 믿음의 기초를 흔들어 놓으려 했습니다. 경건치 못한 사람들을 주의하십시오. 그들은 자기의 부도덕한 것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다른 사람의 경건한 수준을 끌어내리려 합니다. 자기의 욕심을 채우려하는 자들을 주의하십시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자기 목적을 이루는 수단으로 사용하려 합니다. 특히 성도들 사이를 이간하거나 마음의 쓴 뿌리 때문에 많은 사람이 더럽게 되는 일을 주의하십시오. 3. 그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따릅니다. 배교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따를 뿐입니다. 애굽에서 나온 많은 백성들, 그 가운데에는 믿음이 없이 늘 불평불만을 털어놓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습니다. 자기 위치에 만족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자리까지 높아지려는 욕망 때문에 타락한 천사들은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쾌락을 추구하던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이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은 것도 우리에게는 귀중한 교훈이 됩니다. 위조지폐를 식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진짜 지폐에 익숙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리에 익숙해지는 것이 잘못된 교리를 식별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긍휼과 평강과 사랑 안에 풍성히 거하는 사람은 온갖 유혹을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 하나님의 본심예레미야 애가 3:18-24, 31-33구약을 읽으면 죄에 대해서 엄하게 징계하시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하나님에 대한 이런 이미지는 우리에게 안 좋은 일이 생겼을 때, 하나님이 나를 벌하신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남유다의 멸망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은 왜 죄를 엄하게 벌하시는지, 하나님의 본심이 뭔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1. 남유다의 멸망 1) 예언자 예레미야의 역할 예레미야는 남유다의 예언자로 바벨론에 의해 망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이것이 ‘예레미야서’이고 ‘예레미야 애가’는 남유다에 대한 예레미야의 슬픔을 기록한 책입니다. 2) 당시의 세계정세 솔로몬이 죽은 뒤, BC 930년에 이스라엘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두 개의 나라로 분열됩니다. 중동의 패권을 차지하고 있던 앗시리아 제국이 BC 722년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킵니다. 앗시리아는 신흥강자인 바벨론에 의해서 BC 609년 무너지고, 중동의 패권은 바벨론 제국으로 넘어갑니다. 바벨론은 BC 586년 세 번째 공격 때 예루살렘 성과 성전을 파괴하고 남유다는 망하게 됩니다. 3) 남유다가 멸망한 이유 남유다가 망한 것은 바벨론의 군사력 때문이라고 보이지만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멸망시키셨다고 전합니다(렘 25:9). 하나님이 남유다를 멸망시키신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겼기 때문입니다(렘 3:13). 4)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신부(렘 2:2)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이스라엘과 결혼과 같은 언약 관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아버지와 자녀 관계로 비유하십니다(렘 3:14). 그런데도 남유다는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김으로 언약 관계를 깨트립니다. 관계를 회복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수많은 예언자를 보내시고, 돌아오라고 호소하였지만, 남유다는 끝내 거절합니다(렘 5:3). 5) 예레미야의 절망 예레미야는 자신이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한 장본인이지만 멸망한 현장을 목격하고 절망하며(애 3:18) 충격적인 일(애 2:20)을 목격하면서 하나님이 유다를 내버리셨다고 생각했습니다. 2. 하나님의 본심. 1) 이스라엘의 회복 절망 가운데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본심이 재앙이 아니라 번영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렘 29:11). 하나님은 70년 후에 유다가 다시 회복될 것이라는 약속을 하십니다(렘 25:11). 2) 약속의 성취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70년 후에 유대인들은 3차례에 걸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예루살렘 성과 성전을 재건하고 나라가 회복됩니다(라 1:1-4). 3. 개인적용
- 거듭난 사람의 증거요한일서 5:11-15요한일서에는 “알게”, “알고”, “알지”, “압니다” 등의 말로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사람들이 알아야할 것들을 40회 이상 열거하고 있습니다. 이 내용들은 거듭난 사람에게 나타나야할 증거들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이러한 조건을 만족시켜야 거듭나는 것이 아니라, 거듭났을 때에 그 열매로 이러한 현상들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1.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안다. 요한이 이 편지를 쓴 이유를 “여러분이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라고 명시하였습니다.(5:13) 2. 하나님은 우리의 청을 들어주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구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청을 들어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에 대하여 담대함을 가질 수 있습니다.(5:14-15) 3. 주님의 계명을 지킨다. 우리가 주님을 알고 사랑한다고 하면서,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며 진리가 우리 속에 없습니다.(2:4) 4. 주님께서 행하신 대로 행한다. 주님 안에 있는 사람은 주님의 말씀을 지키려 하고, 주님께 대한 사랑 때문에 주님께서 사신 것과 같이 살려고 합니다.(2:5-6) 5. 형제를 미워하지 않고 사랑한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자녀인 형제자매를 계속해서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자매도 사랑해야 합니다.(2:9, 3:14, 4:7-8, 20-21) 6.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욕망, 육체의 욕망과 눈의 욕망과 세상 살림에 대한 자랑은 모두 하늘 아버지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온 것이기 때문에, 거듭난 사람은 세상에 있는 것을 사랑하지 않습니다.(2:15-16) 7. 습관적으로 죄를 짓지 않는다. 거듭났으면 완전해지거나 전혀 죄를 짓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죄를 계속해서(keep on sinning) 짓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에게서 난 자는 습관적으로 죄를 짓지 않습니다.(3:6, 9-10) 8. 성령을 마음에 모시고 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셔서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고, 또한 주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3:24, 4:13) 9. 말씀의 가르침을 순종하는 자세로 듣는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들의 말을 순종하는 자세로 듣습니다.(4:6) 10. 세상을 이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은 세상을 이기는 힘을 얻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믿는 사람은 세상을 이기게 됩니다.(5:4-5)
- 주님의 날을 기다리는 지혜베드로후서 3: 8~18떠나야할 때를 아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런데 더 지혜로운 사람은 떠나야할 때를 알뿐만 아니라 떠나야할 때를 대비하는 사람입니다. 군복무를 마치고 세상에 나오는 사람, 외국생활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오는 사람 등 무슨 일을 하든지 마지막을 대비하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이 세상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언젠가는 주님의 날이 임하여 세상의 모든 것이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사람의 몸으로 세상에 오신 때부터, 다시 오셔서 주님의 나라를 이루실 때(말세: the last day)까지를 우리는 말세(last days)라고 부릅니다. 본문은 말세(last days)를 살고 있는 우리가 지혜롭게 살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주님의 날이 임하기를 사모하는 가운데, 우리가 어떠한 사람이 되기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지 살펴보기 원합니다. 1. 하나님의 마음(뜻)을 알아야 한다.(8-10절) 우리는 보통 ‘예언’이라고 하면,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에만 초점을 맞추어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예언은 우리가 생각하는 예언과는 다릅니다. 성경의 예언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추측하여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실제로 이루실 일을 미리 알려주고 있습니다. 한 가지 세상의 예언과 다른 것은 그 예언으로 인하여 우왕좌왕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이루어질 사실을 아는 우리가 현재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교훈해 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말세를 사는 우리가 지혜로운 삶을 살 수 있는 좋은 방법은 주의 날이 반드시 온다는 것과 그때에는 모든 것이 사라져버린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한 것을 위해 우리의 일생을 투자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하나님의 소원대로 한 사람이라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도록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2.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을 연습한다.(11-14절)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 기도하실 때에, 우리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거룩하게 되기를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다시 오실 마지막 때를 사모하는 사람은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을 연습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 가장 힘써야 할 일은 우리가 먼저 주님과 교제하고 동행하며,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을 힘쓰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느냐?’보다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느냐?’에 초점을 맞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주일에 성도들이 함께 드리는 예배를 마치면, 우리 각 사람이 드리는 예배를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한 주일 동안 세상에서 지은 죄를 씻음 받기 위해 주일에 교회를 오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서 재충전을 받고 힘 있게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거룩한 행실이나 경건함은 기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긴밀한 관계에서 비롯됩니다. 3. 주의 은혜와 주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간다.(15-18절) 성령 충만한 삶이란 주님과 긴밀한 관계 가운데 동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부가 늘 사이가 좋다가 가끔 사이가 좋지 않을 때가 있듯이 성령 충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 충만은 가끔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늘 성령 충만하다가 가끔 충만하지 않을 때가 있는 것이 정상입니다. 부부는 서로 잘 아는 것보다 서로 사랑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을 아는 지식보다 주님의 은혜 안에서 자라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날이 가까울수록 미혹하는 일들이 많아질 것을 성경은 경고합니다. 그 동안 배워서 굳게 믿고 있는 진리 안에 거하시기 바랍니다. 신학적으로 의견이 많이 나뉘어 있거나 이단들이 접근해오는 교묘한 질문들에 억지로 답을 구하려고 힘쓸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을 억지로 풀다보면 미혹되기 쉽습니다. 주님의 은혜와 주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는 것이 제일입니다.
- 인생 여정을 책임지시는 하나님여호수아 24:1-13설교 개요 일이 원하는 대로 잘 풀리고 문제가 없을 때는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시는 것 같다가도,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어려움을 만나면, “하나님이 과연 나의 인생에 관심을 가지고 계시는가?”, “하나님은 나의 인생을 인도하시는 분이신가?”라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여호수아는 마지막 고별사에서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 여정을 책임지시는 분이심을 믿을 수 있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1)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유프라테스강 동쪽 우르에 살고 있던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처럼 우리도 창세 전에 택하시고(엡 1:4) 부르셨습니다(요 15:16). 2) 부르신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신 목적은 그를 통해서 큰 민족을 이루어서 세상 모든 사람이 복을 얻는 통로가 되는 것이었습니다(창 12:2). 우리도 부르신 목적이 있습니다.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삶(엡 1:4), *열매 맺는 삶(요15:16), 그리고 *하나님의 업적을 선포하는 삶(벧전 2:9)을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공통된 부르심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어떤 일을 이루시기 위해서 우리를 개인적으로 부르십니다. 이것을 알려면 먼저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고, 이루기를 원하시는 일이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만날 때,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신 목적에 따라 우리 안에서 일을 행하시고 완성하십니다(빌 1:6). 2.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일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1) 도움이 필요할 때 도와주십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이 만난 위기의 순간들을 언급합니다. 이집트 군대가 뒤좇아 와서 이스라엘 백성이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는 바닷가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7절). 하나님은 홍해 바다를 갈라서,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를 건너게 하시고, 이집트 군대는 바다에 수몰시킵니다. 가나안 땅에서 전쟁할 때도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2) 어떤 것도 하나님의 계획을 막을 수 없습니다. 400여 년 동안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던 200만 명의 사람들이 한 날에 모두 탈출합니다, 이집트 군대가 추격하는데, 더 이상 도망갈 수 없는 홍해 바닷가에 이르자, 바다에 길이 생겨서 모두 건너가지만, 추격하던 군대는 모두 바다에 잠겨 죽습니다, 물도 없고, 먹을 것과 입을 것도 없는 광야에서 40년 동안 지내다가, 가나안에 도착하여 수많은 족속과 전쟁하여 승리하고, 그 땅에 정착합니다. 이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은 어떤 장애물도 막을 수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부르시고, 계획하신 일들은 반드시 이루시며, 우리가 하나님을 의뢰할 때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책임져 주신다는 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 3. 개인 적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