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S
말씀
- 우리를 택하신 이유베드로전서 2:1-10하나님께서는 일방적인 사랑으로 우리를 택하여 주셨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5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가 아직 약할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제 때에, 경건하지 않은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실증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일 때에도 하나님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화해한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으로 구원을 얻으리라는 것은 더욱더 확실한 일입니다.” 베드로는 우리가 받은 은혜를 “택함을 받은 민족”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를 택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위하여 우리를 택하여 주셨을까요? 1. 왕의 제사장 구약시대의 제사장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 특별히 구별된 사람입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져온 희생제물을 제단에 드려서 백성들이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될 수 있도록 돕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제사장은 신분이자 사명이었습니다. 신약시대에는 제사, 제단, 제물이 필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제물로 드림으로써 단번에 영원히 제사를 드리셨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왕의 제사장으로 택하여 주셔서, 우리 자신을 산 제물로 드릴 뿐만 아니라, 아직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하는 일을 위하여 우리를 사용하십니다. 우리를 어둠에서 불러내어 주님의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하신 분의 업적을 선포하도록 출장자로 부르신 것입니다. 2. 거룩한 국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신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거룩한 삶을 살면 형통하고, 불순종하여 타락한 삶을 살면 고통을 받는 일을 통해서, 세상의 모든 사람이 하나님이 계셔서 다스린다는 사실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그들 가운데서 나오너라. 그들과 떨어져라.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아라.” 이 말씀은 우리가 이 세상 밖으로 나가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 속에 있으면서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증거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세상 속에 있되 그들과 구별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세상에 사는 동안에 거룩한 민족이 되는 훈련생들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불러주신 거룩하신 하나님을 본받아 모든 행실을 거룩하게 해야 합니다. 3.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어진 특권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 안에서 행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다윗은 그 행복을, “한평생 주님의 집에 살면서 주님의 자비로우신 모습을 보는 것과, 성전에서 주님과 의논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라고 노래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어라.” 찬양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를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더 넘치게 얻게 하려고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면 생명이 있고,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와 같이 우리도 포도나무가 되신 주님과 긴밀한 관계 가운데 있을 때에, 생명이 있을 뿐만 아니라, 열매를 풍성하게 맺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이 하나님 안에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이 바로 그러합니다. 왕의 제사장, 거룩한 국민,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이 되어서, 우리는 우리를 어둠에서 불러내어 주님의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하신 분의 업적을 선포해야 합니다.
- 성경은 사실인가 신화인가베드로후서 1:16성경책은 가장 많이 팔린 책입니다. 그러나 책을 읽고 꾸며낸 이야기인 ‘신화’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만약 성경이 사실이 아니라면 믿는 우리는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 됩니다.(고전 15:9) 영생과 부활을 믿고 고백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사실인지를 확인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성경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두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신약성경은 원본과 같은 것인가?” 두 번째 질문은 “신약성경 기록은 사실인가?”하는 것입니다. 1. 신약 성경은 원본과 같은가? (고서 검증법, Bibliographical test) 1) 필사본의 수 신약성경은 원본이 없으므로 원본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손으로 베껴서 쓴 필사본으로 재구성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필사본의 수가 많을수록 원본의 정확성과 신뢰도는 올라가게 됩니다. 신약성경의 필사본의 수는 24,000개로서 어떤 다른 고문서보다 많습니다. 2) 원본과 필사본의 시간 차이 필사본은 손으로 베껴 쓰기 때문에 원본과 필사본의 시간 차이가 작을수록 필사본의 신뢰성은 올라가게 됩니다. 신약성경은 원본과의 차이가 불과 25~50년으로 어떤 다른 고문서보다 짧습니다. 2. 신약성경 기록은 사실인가? 1) 부활은 과학을 넘어서는 영역 과학은 같은 조건에서 반복되는 현상을 관찰하여 법칙을 발견하는 학문입니다. 부활 사건은 반복해서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므로, 과학의 대상이 되지 못하며, 법정에서 판결할 때 쓰는 방법으로 입증해야 합니다. 2) 베드로의 연설 장소와 대상 (사도행전 2:14, 24, 36) 베드로는 예수님이 돌아가신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을 죽인 당사자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고 있고, 그들은 회개합니다. 이것은 부활이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3) 부활은 목격자의 증언 (벧후 1:16, 요 19:35, 눅 1:2, 요일 1:1) 법정에서 목격자(증인)의 증언은 거짓이라고 판명되기 전까지 사실로 인정되고 증거로 채택됩니다. 목격자는 사건 가장 가까운 곳에서 눈으로 직접 목격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신약성경은 사건을 직접 목격한 증인의 기록입니다. 4) 제자들의 순교 (행 1:3, 고전 15:6) 11명의 제자 모두가 부활을 증언하다가 순교했습니다. 목숨을 버리는 행동이 부활이 사실이라는 것을 입증하지는 못하지만, 제자들은 부활을 사실로 믿었다는 것은 입증합니다. 따라서 부활이 사실이 아니라면, 예수님은 제자들을 속인 것이 됩니다. 예수님이 부활 후 40일 동안 오백 명이 넘는 사람들을 모두 속인다는 것은 부활이 사실이라는 것을 믿는 것보다 더 어렵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신약성경은 원본 그대로 전해졌으며,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기록한 책입니다. 3. 개인 적용
- 하나님의 가정 십계명시편 127:1-5여러분이 이루신 가정이 복 있는 가정,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는 가정, 그 행사가 다 형통하는 가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복 있는 가정이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원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초로 하여, 늘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가운데 세워지는 가정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십계명에 잘 요약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십계명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가정 십계명”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을 첫 자리에 모시는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 성도들은 복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여러분들은 주님을 개인의 구세주와 주인으로 마음에 모시고 주님을 자신의 삶의 첫자리에 모시는 삶을 연습해 왔기 때문입니다. 부부는 둘이 아니라 한 몸이 되는 것이며, 이것은 단순한 만남이 아니라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입니다. 서로를 세워주고 붙들어주어 주님을 첫 자리에 모시는 삶에 더욱 진보가 있기를 바랍니다. 가족들을 축복하는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는 일을 잊지 마십시오. 아침이면 늦게 일어나 등교하고 출근하느라 바쁘게 움직이기 쉽습니다. 조금만 일찍 일어나서 가족들을 축복하고 자녀들을 고운 말씨로 배웅하는 가정을 이루는 일에 노력을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2. 결혼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보다 상대방의 행복과 기쁨을 채워주십시오.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또한 서로 사랑하기 위하여 결혼을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부부간에도 살다보면 감정적으로 사랑스럽지 않을 때가 종종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기보다 상대방의 유익을 구합니다. 각자 자기의 필요를 채워줄 것을 요구하기보다는 배우자의 필요를 잘 채워주는 사람이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좋은 배우자를 만들 수 있을까?”를 연구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좋은 배우자가 될 수 있을까?”를 연구하십시오. 3. 가정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되게 하십시오. 우리의 말이나 행동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일이 많습니다. “에이, 믿는 것들은…”으로 시작되는 말을 듣는 경우가 바로 그러한 때입니다. 오히려 여러분의 가정을 보시는 분들마다 “믿는 사람들의 집이라 다르다!” 하는 치하를 할 수 있는 가정이 되기 바랍니다. 서로 사랑하여 다정하고 친밀할 뿐 아니라, 서로 성실하게 남편과 아내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가정, 나아가 두 분의 집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말씀 위에 굳게 서는 터전이 되도록 하십시오. 4. 가정을 편안한 쉼터, 안전을 느끼며 재충전하는 곳으로 삼으십시오. 정다운 인사와 미소로 귀가하는 남편을 맞이하십시오. 남편은 아내의 칭찬과 존경이 진정으로 필요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남편은 아내에게 기분 좋고 편안하고 보살핌을 받고 있어 안전하다는 느낌과 보호받고 있음을 느끼게 해 주십시오. 자녀들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옛말에도 “집에서 귀한 자식이 밖에서도 대접받는다.”고 했습니다. “네가 스스로 결정해 보렴.” 하며 믿어주는 말이 똑똑하고 책임감 있는 아이로 키울 수 있습니다. 5. 양가의 부모님을 공경하고 높여드리십시오. 어르신들이 무언가를 말씀하실 때, 성경적이지 않은 것을 요구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때에는 “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나 어느 때에라도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은 지켜야 합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부모효도를 가르치는 제일 좋은 방법, 즉 여러분이 자녀들에게 효도를 받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공경하는 것입니다. 특히 배우자의 부모님에게 잘 하셔야 합니다. 6.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말이나 행동을 삼가십시오. 가정은 가장 마음이 편안한 장소이기 때문에, 별 생각 없이 그릇된 말을 내뱉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가장 귀하게 여겨야할 사람이 바로 자신의 가족입니다. 빈정거리는 말투나 깎아내리는 말투로 자존심을 상하게 하거나 모욕감이나 분개를 느끼게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사람을 판단하면 그 사람을 수동적으로 만들지만, 좋게 보아주고 진심으로 하는 칭찬은 다른 사람을 활력 있게 하고 일에 재미와 열심을 갖게 합니다. 7. 마음뿐만 아니라 말과 행동으로 배우자에게 사랑을 끊임없이 나타내십시오. 사람은 자신을 인정해주는 사람에게 마음을 열게 되고, 그러한 사람과 같이 있기를 원합니다. 아내는 자신을 깊숙이 생각해 주고 보살펴 주는 사람과 함께 있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남편은 아내의 관심사에 흥미를 가지고 아내의 좋은 대화 파트너가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아내는 결혼 전에 남편이 보고 반하였던 매력과 맵시를 유지하도록 노력하여, 남편이 보고 반하였던 그 모습을 집 바깥에서뿐 아니라, 안에 있을 때에도 더 돋보이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8. 재물에 깨끗한 삶을 영위하십시오. 주님을 믿는 사람들은 시간과 금전을 사용하는 일에 있어서 정직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가정은 사회의 기본 요소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물질주의로 흘러가고 경제주의로 치달아간다 할지라도, 여러분의 가정은 이 사회에 정직의 모델을 제시할 수 있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물론 정직하게 바른 길을 가는 것은 많은 수고와 땀을 요구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돌아가더라도 바른 길을 가는 것이 지름길입니다. 9. 완전히 감정을 나누며 인격적으로 신뢰하는 대화를 개발하십시오. 주님을 믿는 사람이 거짓말을 하거나 거짓 증거를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아울러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일수록 더욱 그 사람과 대화를 할 수 있도록 힘을 쓸 줄 알아야 합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갈등이 자주 생기게 마련입니다. 부부관계, 가족들과의 관계, 교회생활, 사회생활에 있어서 솔직한 대화를 인격적으로 나누십시오. 10. 자신의 것에 만족할 줄 아는 성품을 기르십시오. 십계명 말씀대로 이웃의 것을 탐내지 않을 수 있는 비결은, 자신의 것에 만족할 줄 아는 성품을 기르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수입에 맞추어 지출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며 지출을 하면서 그에 맞는 수입이 있기를 원하여 불만족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행복한 부부는 자신들이 원하는 것보다,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가계를 운영해나가는 지혜로운 사람들입니다. 나아가 어려운 사람들을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 진정으로 부유한 사람들입니다.
- 참된 믿음이란 무엇인가?야고보서 2:14-26로마서는 사람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얻는 구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는 선고를 받을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구원 얻은 사람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십시오.”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삶에 변화가 있어야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예수님을 믿게 되면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개인생활, 가정생활, 직장생활, 교회생활, 사회생활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정상입니다. 야고보서는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부하는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을 참으로 믿는다면 그에 따른 변화가 일상생활 속에 나타나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본문을 통해서 참된 믿음이란 무엇인가 정리해 봅시다. 1. 공동체 의식을 가진 믿음 참된 믿음은 사랑으로 표현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 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하였으니, 이것이 가장 중요하고 으뜸가는 계명이다. 둘째 계명도 이것과 같은데,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한 것이다. 이 두 계명에 온 율법과 예언서의 본뜻이 달려 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몸을 사랑하는 것과 같이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이웃을 돌아볼 줄 아는 믿음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사람은 그의 삶 가운데 변화된 모습이 사랑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참된 믿음은 사랑으로 같은 감정을 느끼는 가운데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행동을 보이는 믿음입니다. 2. 행함이 따르는 믿음 참된 믿음은 믿음만을 고집하지 않습니다. 참된 믿음은 사랑과 합하여진 믿음입니다. 사랑에는 수고와 희생이 따릅니다. 수고와 희생이 따르지 않는 사랑은 껍데기일 뿐입니다. 참된 믿음은 감추어진 것이 아닙니다. 참된 믿음은 행함으로 입증이 됩니다. 우리가 법적으로 의롭다함을 얻는 것은 우리의 행위와는 관계가 없는 일입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의롭다함을 얻습니다. 우리의 행위에 의해 의롭다함을 얻는다면 어느 누구도 의롭다함을 얻을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행함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그것이 참된 믿음일 수 있겠습니까?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후 5:17)고 성경은 선포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피조물이란 새로운 생명체라는 말입니다. 생명체는 움직이고 변화되고 자라게 마련입니다. 믿음은 성령의 역사로 인하여 실제생활에서 나타나고 증명되어야 합니다. 3.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믿음 참된 믿음은 지식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한분이신 것을 귀신들은 더 잘 알고 있습니다. 귀신들도 삼위일체 하나님을 분명히 믿기 때문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떨기까지 합니다. 이 땅 위의 어떤 신학자들보다 귀신들은 하나님에 대해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믿음을 분별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귀신들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가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가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압니다. 그러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행합니다. 하나님을 닮으려고 노력합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믿음은 삶의 모습의 형태로 나타나야 진정 참된 믿음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무의미하고 쓸모없는 것이 됩니다. 우리 모두 참된 믿음, 살아있는 믿음의 소유자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탈진하지 않으려면사무엘상 23:1-15다윗이 도피하는 과정을 보면, 충분히 탈진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가 탈진하지 않을 수 있었는지를 그가 도피한 경로를 따라가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1. 아둘람에서 모압으로 (삼상 22:3) 아둘람굴로 피할 때, 부모와 형제들이 합류하고 압제를 받는 사람, 빚에 시달리는 사람, 원통하고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도 함께 하면서 아둘람 공동체가 형성이 됩니다. 그 수는 남자 장정만 600명이며, 가족모두를 합하면 2000명이 넘는 큰 공동체입니다. 2. 모압에서 헤렛 숲으로 (삼상 22:5) 1) 선수는 경기장에 있어야 합니다. (삼상 22:5) 다윗이 부모를 모압 왕에게 맡기고 그곳에 있을 때(삼상 22:3), 갓 선지자가 다윗에게 유다 땅으로 돌아가라고 재촉하자 순종하여 유다 땅 헤렛 숲으로 옮겨갑니다. (삼상 22:5) 이것은 경기 선수가 경기장에 있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다윗처럼 머물러 있기를 원하시는 곳이 있습니다. 내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하는 것과 무슨 일을 해야 하는가 하는 것은 내가 누구인가가 분명해 지면 저절로 결정이 됩니다. 2) 내가 있어야 할 곳은 내가 누구인가에 따라 정해집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1) 첫번째로 그가 군사라고 말합니다. (딤후 2:4) 군사가 있어야 할 곳은 군대이고, 해야할 일은 전쟁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군사이면, 교회는 군대가 되고, 해야 할 일은 전쟁입니다. 2) 두번째로 경기장에서 달리는 선수라고 말합니다. (딤후 2:5) 우리가 선수이면, 교회는 경기장이 되고, 경주를 해야 합니다. 3) 세번째로 그를 농부라고 말합니다. (딤후 2:6) 우리가 농부이면, 교회는 포도원이 되고, 해야 할 일은 포도나무를 돌보는 것 즉 목장을 돌보는 것을 해야 합니다. 3. 헤렛 숲에서 그일라로 다윗은 그일라를 돕기 위해 사울에게 자신들의 위치가 발각될 위험을 무릎쓰고, 출전을 하여 전쟁에서 이깁니다. 그러나 결과는 오히려 그일라 사람들의 배신과 사울의 포위공격을 피해서 십 광야로 도망가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일라 사건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였을 때, 언제나 우리가 기대한 좋은 결과가 나타나지는 않는 다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4. 그일라에서 십광야로 (삼상 23:13-15) 1) 개인간증 (통영 미륵산) 2) 다윗이 탈진하지 않은 이유 *하나님이 있으라고 한 곳에 있었기 때문이며, *하나님이 하라고 한 일을 비록 예상되는 결과가 나쁠지라도 순종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도 탈진하지 않기 위해서는 다윗처럼, 하나님이 있으라고 한 곳에서 하나님이 하라고 한 일을 할 때, 끝까지 충성되게 감당할 수 있습니다. 5. 개인 적용
- 주는 나의 피난처사무엘상 21:10-22:11. 다윗을 암살하려는 사울 1) 암살하려는 이유 (삼상 18:8-9) 2) 암살 계획 (삼상 19:11) 2. 살해당할 위기 속에서 다윗이 보인 반응 시편 59편 3. 다윗의 도피 1) 라마 (삼상 19:18) 간증 (사 43:1-2) 시 118:8-9, 시편 50:15, 91:14-15 2) 블레셋 (삼상 21:10) 블레셋으로 간 이유 다윗의 결정인가 하나님의 뜻인가? 시편 56편 3) 블레셋에서 아둘람으로 4. 주는 나의 피난처 히 13:5 5. 개인 적용
- 부활신앙이 있으십니까?누가복음 24:1-12여러분의 일상생활을 잠시 생각해 보십시오. 마트에서 새로운 물건을 사려면 포장지에 적힌 설명서를 읽어보고 그것이 믿어지면 물건을 구매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사용하면서 좋다는 느낌이 들면 그 물건을 믿고 지속적으로 같은 물건을 사용하게 됩니다. 부활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사건도 역사적인 사실을 듣거나 읽어보아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들어도 믿지 아니하면 부활신앙은 여러분의 것이 될 수 없습니다. 부활에 대해 듣거나 읽어보고 믿은 후에는 성령님께서 여러분의 마음과 삶 속에 변화를 가져오십니다. 여러분이 그 변화를 느끼게 되면 부활신앙은 확실하게 여러분의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부활소식을 전하기까지 하면 더할 나위 없겠지요. 1. 들어야(보아야) 합니다. 안식일이 지난 후 첫날 새벽에 여자들이 예수님의 시신에 넣기 위해 준비한 향료를 가지고 무덤으로 갔습니다. 무덤을 막은 돌을 어떻게 옮길까 염려하던 그들은 놀라운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무덤을 막고 있던 그 큰 돌이 옮겨진 것입니다. 무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예수님의 시신이 없었습니다. “어찌하여 너희들은 살아 계신 분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찾고 있느냐?”는 천사의 말을 듣고서야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회상하였습니다. 성경은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부활신앙을 가지려면 먼저 부활의 소식을 들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무덤이 비었으며, 예수님의 시신을 감았던 삼베만 놓여 있었다는 사실을 들어야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던 제자들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2.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던 여인들이나 그들의 말을 듣고 무덤으로 달려온 제자들이나 모두 평범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무덤이 빈 것을 보고, “예수님께서 살아나셨다.”는 말을 천사로부터 들었던 여인들도 처음에는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말을 전해들은 제자들은 처음에는 무덤이 비었다는 것도 믿지 않았습니다. 무덤으로 뛰어가 빈 무덤을 본 그들은 여전히 부활은 믿지 아니하고, 여인들의 말대로 무덤이 비었다는 사실만 믿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소식을 듣거나 보아서 알아도, 믿지 아니하면 나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기록을 보았으면, 하나님께서 창조주이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다는 사실을 들었으면, 예수님이 구세주이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십니다. 3. 느껴야 합니다. 부활신앙이 참으로 나의 신앙이 되기 위해서는 듣고 믿을 뿐 아니라, 삶 속에서 경험하고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엠마오로 가던 두 사람에게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해 주시고 성경을 풀어주실 때에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예수님을 마음속에 영접할 때에 성령님께서 내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로 하여금 깨닫고 믿음의 결단을 내리며, 변화를 느끼도록 도와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for me)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믿으며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는 사람은 성령께서 그의 안에(in me) 거하시며 변화시켜 주십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통하여(through me) 역사하십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며 하나님을 찾는 사람에게 상을 주시는 분이심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 삶이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히브리서 13:15-17하루는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하여 질문을 하였습니다. “선생님, 율법 가운데 어느 계명이 중요합니까?” 예수님은 이 질문에 대하여 명쾌하게 대답을 해주셨습니다. 첫째는,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둘째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하시며, 이 두 계명에 온 율법과 예언서의 본뜻이 달려 있다고 하셨습니다. 두 번째 계명은 ‘네 몸’을 사랑하듯이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이 예배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 이웃, 나 자신과 바른 관계를 갖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1. 하나님과의 삶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신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백성은, 나를 위하라고 내가 지은 백성이다. 그들이 나를 찬양할 것이다.”(사 43:21) 영적 이스라엘인 그리스도인들도 주님을 위하라고 주님께서 구원하신 백성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찬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끊임없이 하나님께 찬미의 제사를 드립시다. 이것은 곧 그의 이름을 고백하는 입술의 열매입니다.”라고 권면합니다. ‘찬양을 한다.’ ‘찬미를 한다.’는 말은 쉽게 말해서 ‘칭찬을 한다.’는 말입니다. 칭찬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아랫사람도 얼마든지 윗사람을 칭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신실하시고 거룩하신 성품을 자랑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놀라운 일들을 칭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배하는 삶입니다. 2. 이웃과의 삶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게 지내고, 거룩하게 살기를 힘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게 지내려면, 거룩하게 사는 것을 조금 양보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거룩하게 살려면 사람들과 화평하게 지내는 일을 조금 포기해야 하는 것으로 착각을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죄 하나 없이 완벽하게 거룩하셨지만, 어린 아이들도 예수님께 다가오고 싶을 정도로 모든 사람과 화평하게 지내셨습니다. 선을 행하는 일은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끼치는 것입니다. 착한 일이란, 공의를 실천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것을 어려운 사람들을 위하여 나눠주기를 소홀히 하지 않아야 합니다. 내가 살 수 있는 수준보다 낮추어 검소하게 살면서, 없는 사람들에게 베푸는 삶을 힘써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입니다. 3. 나 자신과의 삶 나를 인도하는 지도자들의 말을 곧이듣고, 그들에게 복종하는 삶은 나 자신을 위한 삶입니다. 영적 지도자들은 자기에게 맡겨준 사람들의 영혼을 지키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 일을 얼마나 잘했는지 언젠가 하나님 앞에서 보고 드리고 계산을 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지도자들이 기쁜 마음으로 그 일을 하게 하고, 한숨을 내쉬며 답답한 가슴으로 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 자신에게도 유익이 되지 못합니다. 영국의 수상이었던 처칠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나는 배우기를 원한다. 그러나 가르침을 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겸손하기 어려운 마음은, 처칠뿐만 아니라, 아마 우리 모두의 마음이 그러할 것입니다. 우리는 배우기를 사모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나를 사랑하는 길입니다. 이러한 삶이 바로 자연스러운 영성, 생활 속의 헌신입니다.
- 종으로부터 사랑받는 형제로빌레몬서 1:8-16바울이 빌레몬서를 기록한 것은 감옥에 있을 때였습니다. 그는 로마에서 가택연금을 당하고 있었고, 그곳에서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아주 담대하게 하나님 나라를 전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일들을 가르쳤습니다. 오네시모는 그때에 예수님을 믿게 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집에서 노예로 지내는 동안에 무엇인가를 훔쳐서 도망을 친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오네시모에게 진정한 회개를 가르쳤습니다. 회개는 자신이 죄를 지었음을 지적으로 인정함과 아울러 죄를 지은 사실을 슬퍼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으려는 의지가 있어야 하고, 피해를 입힌 사람에게는 보상을 해야 합니다. 1. 바울의 예의바른 간청 빌레몬 역시 바울의 전도에 의해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빌레몬 역시 바울에게 영적인 빚을 진 사람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빌레몬에게 강압적으로 명령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의바르게 빌레몬에게 간청을 하였습니다. 다른 서신에서는 자신을 ‘사도’라고 부르거나 ‘그리스도의 종’으로 소개했지만, 빌레몬에게는 ‘그리스도 예수 때문에 감옥에 갇힌 나 바울’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사도로서의 권위를 가지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형제로서 사랑으로 말미암은 부탁을 한 것입니다.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에 오네시모가 시중을 드는 것이 필요했지만, 원래의 주인이었던 빌레몬에게 승낙을 얻는 것이 예의상 옳은 일이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 형제자매가 된 교회 안에서도 이와 같은 예의가 필요합니다. 영적 지도자는 다른 사람을 섬기는 종이어야 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2. 그리스도 안의 질서 오네시모는 원래 빌레몬의 집에 있던 노예였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탐이 났는지, 주인의 집에서 도망을 나온 후의 필요를 위해서였는지, 주인의 것을 훔쳐가지고 도망을 나왔습니다. 그가 떠돌아다니던 중에 바울에게서 복음을 들었고, 바울이 “갇혀 있는 동안에 얻은 아들”이 되었습니다. 그 후에 바울에게 복음을 들은 빌레몬의 집에서 도망친 노예라는 사실을 바울이 알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위하여 갇혀 있는 동안에, 오네시모가 시중을 들기에 요긴한 사람이었지만 바울은 빌레몬의 승낙을 먼저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도 사도로서의 권위 때문에 바울에게 마지못해 하는 것이 아니라, 빌레몬이 자진해서 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오네시모가 잘못한 것이 있거나 빚진 것이 있다면 바울이 책임을 질 것을 약속하였습니다. 바울의 이러한 모습 속에서, 오네시모는 진정한 회개가 무엇인지 알았을 것입니다. 3. 종으로부터 사랑받는 형제로 다른 사람이 처한 곳의 문화를 모르면 오해하기 쉽습니다. 당시의 문화를 모르는 사람들이 “종으로 있는 이 여러분, 모든 일에 육신의 주인에게 복종하십시오.”(골 3:22)라는 말씀을 보고, 바울이 노예제도를 인정했다고 오해할 수 있습니다. “배우고 싶은 것이 있으면,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으십시오.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자기에게 부끄러운 일입니다.”(고전 14:35)라는 말씀을 보고, 바울을 남성우월주의자라고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문화에서 자신의 종을 “종 이상으로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받아들이라는 것은 궁극적으로 노예제도의 폐지를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물론 사랑 받는 형제로 대우를 받는 종은, 종 이상으로 두려움과 떨림과 성실한 마음으로 주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분명한 것은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와 여자가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입니다.”(갈 3:28)라는 선언이 당시에는 파격적인 선언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 네 부류의 사람이 힘써야 할 삶디도서 2:1-8바울이 디도에게 쓴 편지는, 디모데에게 쓴 편지와 마찬가지로 교회들을 조직하고 돌보는 일에 대한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교회를 조직하려면 리더들을 세워야 하고, 교회를 돌보려면 각계각층의 사람들에게 복음에 합당한 삶이 무엇인가를 지도해주어야 합니다. 바울은 사람들을, 나이 많은 남자, 나이 많은 여자, 젊은 여자, 젊은 남자로 나누어서 그들이 갖추어야 할 덕목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1. 나이 많은 남자 나이가 많은 남자들은 경험과 재력과 위치에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힘을 통제할 수 있는 절제력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그에 걸맞은 위엄을 갖추고 있어야 존경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더라도, 신중하지 않으면 실수하기 쉽습니다. 늘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는 일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특히 그리스도인으로서 행위가 따르는 믿음, 수고가 따르는 사랑,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둔 소망을 굳게 지키는 인내가 흔들리지 않는 일에 본을 보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2. 나이 많은 여자 예나 지금이나 남녀를 막론하고 나이가 많아지면 도덕개념이 흐려지는 모양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에 근거한 바른 교훈에 적합하도록 거룩한 행실을 유지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편견이나 선입견으로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다른 사람을 헐뜯지 않아야 합니다. 힘이 없는 사람들은 억눌린 감정을 가지기 쉽기 때문에 술로 자신의 감정을 푸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 결과로 과도한 술의 노예가 되는 수가 있습니다. 나이 많은 여자가 주의해야 할 일입니다. 대신에 젊은 여자들과 자손들에게 좋은 것을 가르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3. 젊은 여자 젊은 여자들이 가장 힘써야 할 일은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나에게 도움이 될 남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남편에게 도움이 될 아내가 되어야 합니다. 나의 꿈을 이루는 자녀가 아니라, 자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돕는 엄마이어야 합니다. 분위기에 휩쓸리지 아니하고 신중하며, 마음을 정결케 하는 일에 힘써야 할 때입니다. 무엇보다 가정적이어서 집안 살림을 잘하고, 다른 사람에게 베풀 줄 아는 어진 삶을 연습해야 합니다. 남편에게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서, 불신자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이 훼방을 받지 않아야 합니다. 4. 젊은 남자 젊은 남자는 가장 혈기가 왕성할 때입니다. 그러므로 신중한 가운데 모든 일에 선한 행실의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선한 행실이란, 공의를 지키고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젊은 남자인 디도가 힘써야 할 것을 덧붙였습니다. “가르치는 일에 순수하고 위엄 있는 태도를 보이고, 책잡힐 데가 없는 건전한 말을 하십시오.” 그리스도를 전하고 바른 진리를 가르치는 곳에는 늘 반대자가 있게 마련입니다. 그들이 시비를 걸어 나쁘게 말할 것이 없어서 스스로 부끄러움을 당하도록 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