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 시골 교회도 되네요!
지지난 주말에는 충남 보령의 다니고싶은교회(김철종 목사)에서 열린 평신도 세미나에서 강의를 나눠 맡아 했습니다. 처음 평세를 개최하는 교회에서는 가사원장이 세 축과 네 기둥을 강의하고, 담임목사님의 강의를 점검해 주는 것이 관례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같은 주일에 네 교회에서 평세가 동시에 열렸고, 다니고싶은교회는 시골 교회인데다 김철종 목사님도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터라 등록 인원이 미달될까 염려되었습니다. 그래서 가사원장의 허락을 받아 제가 강의를 나눠 맡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정원은 20명이었는데, 등록이 조기 마감되었고, 15개 교회에서 26명이 참석했습니다. 다니고 싶은 교회는 진정한 시골교회입니다. 교회 바로 옆에는 옥수수 밭이 있고, 주변에는 호박 넝쿨이 둘러 쌓여 있습니다. 매미 소리도 얼마나 요란한지 모릅니다. 김 목사 부부가 아들 둘과 함께 네 명으로 시작했는데, 비신자에게 전도해서 6년 만에 청장년 출석 100 명으로 성장하였습니다. 다니고싶은교회는 이름 때문에 손해도 많이 보았습니다. 이단 교회가 아니냐는 의심도 받았고, 지금도 “이단 교회니까 가지 말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 그러나 김 목사님은 진정으로 사람들이 다니고 싶은 교회를 세우기 원해서 이런 이름을 붙였고, 그 목표가 달성된 것으로 보입니다. 첫 세미나를 준비하는 교인들의 정성이 대단했습니다. 세 들어 살던 두 가정은 세미나 참석자에게 숙박을 제공하기 위하여 집을 새로 샀습니다. 한 가정은 참석자를 편하게 모시려고 화장실을 개조했는데, 세미나가 시작되는 금요일 아침에야 공사가 끝났다고 합니다. 참석자들을 정성껏 대접하려고 예쁜 도자기 그릇을 서울에 가서 구입하기도 했습니다. 김철종 목사님은 드물게 보는 목회 센스가 있는 목회자입니다. 오랫동안 사업을 해서 성공한 경험도 있고, 무엇보다도 성품이 신실한 데다가, 목회 아이디어가 끊임 없이 나옵니다. 예를 들면 외국에 한 번도 나가본 적이 없는 교인들과 휠체어를 타야 움직일 수 있는 지체 장애자들까지 설득해서, 교인 전체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이스라엘을 방문했습니다. 그 결과 교인들이 행복해하고 서로 하나가 되었다고 합니다. 처음 들으면 “그게 가능할까?” 싶은 아이디어가 샘솟는데, 대부분 좋은 결과를 가져오고 교인들에게 목사에 대한 신뢰를 쌓아줍니다. 그런데 정작 김 목사님은 자신에게 이런 목회 센스가 있다는 것을 잘 모릅니다. 그래서 강의할 때 자연스럽게 얘기하는 것이 남에게 자랑처럼 들릴 수 있고, 교인들이 목사님을 너무 좋아하다 보니 세미나 간증이 참석자들에게 자신의 담임 목사에게 불만을 품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일이 없도록 목사님과 간증자에게 신신당부했습니다. 마지막 헌신 시간에는 참석자 모두가 목자 목녀로 헌신하거나, 관리 목회에서 벗어나 교회 존재 목적을 이루는 목회를 하겠다고 헌신했습니다. 그런데 끝까지 일어나지 않는 한 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일 예배가 끝난 후 그분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헌신 초청을 받을 때 자신도 일어나고 싶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못했다고 하면서, 내 앞에서 앉았다가 일어나는 시늉을 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이렇게 헌신합니다.” 모두 웃었습니다. 보령과 같은 시골에서 가정교회가 성공할 수 있다면 어디에서든지 성공할 수 있습니다. 다니고싶은교회에 젊은이들이 많다면, 어떤 가정교회라도 젊은이들이 모이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다니고싶은교회가 다른 가정교회 목회자들에게 이런 소망을 심어주는 교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 마연소 캠프 잘 마쳤습니다.
지난 3주 동안 전교인을 대상으로 진행된 마연소(마음 연결 소통) 캠프를 은혜 가운데 잘 마쳤습니다. 강의를 맡아 수고해주신 네 분의 강사님들(박소영, 이지현, 모경희, 안미영)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네 분 모두 현장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풍부한 상담 경험을 가진 분들이기에 실제 사례를 들을 수 있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물론 전문적인 일을 하는 것과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강의하는 것은 다른 영역입니다. 특히 이번처럼 청소년부터 어르신까지 전 연령대가 함께하는 자리에서는 강의의 초점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 분의 강사님들께서 열정적으로 최선을 다해 강의를 잘 해주셨습니다. 아마 성도님들 중에는 이번 캠프를 통해 “아, 저분이 이런 일을 하시는 분이구나!” 하고 처음 알게 된 분들도 계셨을 것입니다. 또한 강의 중에 들려주신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통해 강사님들을 더 깊이 이해하는 시간이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캠프를 총괄하여 기획하고 진행해주신 김영화 목자님과 스탭 분들께도 감사드리며,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신 중고등부 학생들과 성도님들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말할 때, 우리는 교회의 한 지체라고 고백합니다. 이는 몸의 장기처럼 교회를 떠나서는 생명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의미일 뿐 아니라, 지체 간에 서로를 돌아보고 필요를 채워주는 사랑의 소통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목장과 교회에서의 소통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며,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마연소 캠프는 매우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소통의 중요성을 알지만 실제로는 어려움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기질의 차이나 기술의 부족을 이유로 들지만, 더 근본적인 원인은 겸손, 긍휼, 사랑의 부족인 경우가 많습니다. 말이 서툴고 기술이 부족하더라도 겸손과 긍휼, 사랑의 마음이 있으면 소통은 잘 이루어집니다. 반대로 말을 잘하고 대화 기술이 뛰어나도 겸손과 긍휼, 사랑이 없다면 소통은 어려워집니다. 겸손과 긍휼, 사랑이 부족함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겸손하고 긍휼과 사랑이 풍성한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그러므로 이웃과의 소통을 잘하려면 먼저 하나님과의 소통이 바르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소통은 한 번의 강의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기도하며 힘써야 할 영역입니다. 그런 이유에서 이번 마연소 캠프가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내년이나 후내년에 다시 준비될 예정입니다.
- 공동체는 선물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어렴풋하게 ‘좋은 공동체’에 대한 그림을 품고 있습니다. 늘 따뜻하고, 갈등이 없고, 모두가 헌신적이며, 나의 필요를 알아서 채워주는 공동체의 그림입니다. 이 그림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이 그림과 실제 공동체가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순간부터 실망과 낙심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그림을 붙들고 있으면 공동체의 부족함이 자꾸 눈에 밟히고, 미지근한 온도를 못마땅해하고, ‘왜 우리는 저들처럼 되지 못할까?, ‘왜 저들은 우리처럼 되지 못할까?’ 하며 서로를 다그치게 됩니다. 현실의 모습을 늘 그 이상과 비교하다 보면 실망하고 낙심하다가, 마침내 공동체를 등지거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 누군가를 향해 판단하고 심판하는 자리에 서게도 됩니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그의 저서 “성도의 공동생활(Life Together)”에서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는 우리가 실현해야 할 이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실재이며 선물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본회퍼는 1930년대 나치 치하 독일에서 목회자 후보생들과 함께 공동생활을 하며, 공동체가 얼마나 쉽게 ‘이상’으로 변질되고 그 이상이 얼마나 쉽게 공동체 자체를 무너뜨리는지를 직접 목격합니다. 그 공동체는 이상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러나 본회퍼는 바로 그 부족함 속에서 공동체의 참된 본질을 발견해 갔습니다. 그가 발견한 것은,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선물로 받는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목회자들의 스트레스도 “어떻게 멋진 공동체를 만들어낼 것인가?” 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나 이미 내가 목회하는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이다” 라는 마음을 가질 때, 부족하고 서투른 모습조차 감당해야 할 스트레스나 짐이 아니라 감사히 누려야 할 은혜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공동체가 선물이라는 것은, 그 공동체를 지탱하는 힘이 우리 자신의 성품이나 인내심에 있지 않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맡겨 주신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인격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이미 그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사람들을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품는 것입니다. 목장을 섬기는 목자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장이 선물이라는 생각을 하면 목장 식구들이 목자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에도, VIP가 몇 번이고 넘어질 때에도 실망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를 붙드시는 분은 결국 우리가 아니라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목자, 목녀의 어깨에 지워진 무게가 가벼워지는 지점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목장 식구들에게도 목장이 선물이라는 생각을 하면 목장을 대하는 자세가 변할 것입니다. 선물로 받아들이는 사람의 반응은 요구가 아니라 감사이기 때문입니다. “이 목장이 내게 무엇을 줄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리 풍성한 목장 안에 있어도 늘 부족함을 느낍니다. 반대로 “나는 이미 얼마나 좋은 목장을 선물로 받았는가”를 아는 사람은, 부족하고 삐걱거리는 목장 안에서도 감사를 발견합니다. 작은 목장이든, 갈등이 많은 목장이든, 형식적인 모임처럼 느껴지는 목장이든, 그 목장이 지금 이 자리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미 은혜입니다. 이제까지 우리는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만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그 구원을 이루어 가시기 위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교회와 목장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 생각의 변화에서부터 보이지 않는 변화가 시작될 것입니다. 그 놀라운 선물을 감사함으로 받는 모두에게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이 충만해질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 어르신들에게는 복음을 바로 전하려고 합니다.
다리 골절로 인해 성도님들께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한 마음입니다. 사고는 가족 모임 숙소에서 일어났습니다. 어두운 방에서 복도로 나오며 바닥 높낮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발을 내딛다 넘어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오른쪽 다리 보조기가 순간적으로 접히며 무릎에 충격이 가해졌고, 경골 상단부가 골절되었습니다. 당장 응급 상황은 아니라고 판단하여 식사를 마친 뒤 응급실을 찾아 X-ray 촬영 후 석고 붕대 처치를 받았습니다. 담당 의사는 '안정 골절(stable fracture)', 즉 뼈가 제자리에 잘 유지된 상태라고 하였습니다. 나중에 들으니 1mm만 더 골절이 되었어도 수술을 해야 했을 상황이었다고 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넘어지는 순간, 심한 통증으로 골절임을 직감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당장 다음 날 주일 설교였습니다. 그리고 주일 예배 마치고 요양병원에 입원해 계신 진형수 형제 부친 방문, 목요일부터 예정된 목자 컨퍼런스, 다음 주 세례식, 9월 말 미국 휴스턴 평신도 세미나까지 여러 일정들이 생각났습니다. 다행히 주일 설교와 세례식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목자 컨퍼런스는 아내만 참석했지만, 김영화 목자, 강동현 목부에게 격려가 되었습니다. 또한 9월 14일에 석고 붕대를 풀 예정이라 2주 후인 휴스턴 서울교회 평신도 세미나 참석에도 큰 차질이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마음에 안타까움으로 남은 일은 진형수 형제의 부친께서 갑작스럽게 천국으로 떠나신 것입니다. 건강이 악화되어 고향인 합천에서 아들 부부가 있는 부산의 요양병원으로 모셨고, 제가 방문하여 예수님 영접을 확인하고 세례를 베풀려고 했지만, 갑작스런 다리 골절로 방문을 미루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입원하신 지 2주도 되지 않아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셨고 이틀 만에 별세하셨습니다. 그럼에도 감사한 것은, 돌아가시기 몇 달 전 차재석 형제가 합천을 방문했을 때 진형수 형제 부모님을 찾아뵙고 복음을 전하였고, 영접 기도를 따라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이후로 아들 부부의 신앙생활을 기꺼이 인정해 주시고 교회도 다니시려는 마음을 가지셨다고 들었습니다. 얼마 전 정은화 자매 부모님께서 방문하셨을 때도 부모님 마음의 준비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해서 오늘은 예배드리시고, 낮목장에서 소개도하시고, 복음은 다음 주에 전하자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음 주에 건강이 악화되어 교회에 오지 못하셨고, 결국 지난주 요양병원에 입원하셨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목발을 짚고 병원을 찾아가 복음을 전하였고, 감사하게도 부친께서 예수님을 영접하셨습니다. 이번 일들을 겪으며 여든 넘으신 어르신들께는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미루지 않고 복음을 전하려고 합니다.
- 모든 종교가 똑같은가?
안타깝게도 요즈음 현대를 지배하는 것이 다원주의입니다. 기독교든, 회교든, 불교든, 유교든,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같으며 단지 목표에 도달하고자 하는 방법에 차이가 있을 뿐이라는 이론입니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종교를 피상적으로 알고 있지, 진실로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진정으로 종교를 이해했다면 이런 말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종교를 창시한 장본인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호메트가 기독교와 회교가 같다고 말했을까요? 기독교는 예언자에 지나지 않은 인간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잘못된 신앙이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석가모니가 회교와 불교가 같다고 말했을까요? 신은 자신 안에 있고 자신이 신인데, 유일신을 믿어야만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하는 회교는 잘못 되었다고 말했을 것입니다. 공자님은 불교와 유교가 같다고 말했을까요? 눈에 보이는 세상을 바로 살려하지 않고, 이 세상에서 해탈하려는 불교는 문제가 있다고 평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갈 사람이 없다 (요 14:6).” 이렇게 천명하신 분이 모든 종교가 같다고 말씀하셨을까요? 당연히 아닙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아니고 후대 제자들이 조작해 낸 것이라는 반론을 펴기도 하지만, 근거 없는 이론에 지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당신만이 유일한 구세주라는 것을 가르치셨고, 이런 가르침이 성경 곳곳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종교 창시자 본인들은 아니라고 하는데, 제 삼자가 똑같다고 말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특히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그런 말을 하면 안 됩니다. 자신을 예수님보다 더 우월한 위치에 놓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원주의를 신봉하는 사람은 자신들이 특정 종교만이 옳다고 하는 편협함에서 벗어났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예수님, 마호메트, 석가모니, 공자는 부분적으로 보았지만, 자신은 포괄적인 더 큰 그림을 본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교만한 자세인지 모릅니다. 젊은이들 가운데 어르신네가 무슨 말을 하면 늙어서 시대를 모른다고 무시하는 수가 있는데, 이것과 비슷합니다. 이런 교만에 빠진 사람들은 회개할 수도,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실 수도, 구원받을 수도 없습니다.
- 내년에 이런 계획이 있습니다.
첫째, 내년 연말 VIP를 위한 송년잔치 계획입니다. 지난 성탄절 발표를 보며, 우리 교회도 충분히 송년 잔치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행사는 우리가 즐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기도해 오던 VIP들을 교회로 초청해 함께 잔치를 나누기 위한 자리입니다. 아직 시간적인 여유가 있으므로 12월 24일(목)이 좋을지, 아니면 12월 31일(목)이 좋을지에 대해 사역팀에서 추가로 논의한 후 최종 결정할 예정입니다. 둘째, 단기 선교 여행입니다. 필리핀 두마게티 지역을 방문할 예정이며, 추석 전(9월 24–26일)인 9월 초–중순으로 계획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일정은 선교사역팀에서 논의 후 확정되는 대로 다시 안내드리겠습니다. 단기 선교는 중·고등학생을 포함한 청년들에게도 매우 유익한 시간이 됩니다. 대한민국이 얼마나 풍족한 나라임을 깨닫게 되고, 시야를 넓혀 세상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그곳에서도 일하고 계심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행기 표를 미리 예약해야 하므로 조만간 날짜를 확정할 예정입니다. 많은 분들이 단기 선교에 관심을 가지고 지원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휴스턴 서울교회 평신도 세미나 참석입니다. 휴스턴 서울교회 평신도 세미나는 매년 10월 둘째 주에 열리며, 올해는 10월 9일(금)부터 11일(일)까지 3일간 진행됩니다. 일정은 10월 4일(일) 또는 5일(월)에 출국하여 약 3일간 이동과 여행을 한 뒤 시차 적응을 마치고, 목요일에 휴스턴에 도착하여 금요일부터 2박 3일간 세미나에 참석하는 계획입니다. 함께 이동하기 위해서는 비행기 표를 미리 구매해야 하므로, 1월 중으로 신청을 마감하고 항공권을 구입할 예정입니다. 이 세미나는 일주일 이상 휴가가 필요하고 항공권 비용 부담도 있어 참석이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올해 여의치 않은 분들은 2027년에도 방문 계획이 있으니 미리 준비하셔서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휴스턴 서울교회 평신도 세미나는 가정교회의 원조답게, 참석 후기를 보면 가정교회에 대한 새로운 힘을 얻고 새 마음으로 목장을 섬기게 되었다는 간증이 많습니다. 또한 장시간 함께 이동하며 깊은 교제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평신도 세미나에 아직 참석하지 않으신 분들뿐 아니라, 이미 참석하신 분들과 목자·목녀님들께도 적극 추천드립니다. 항공권 예약과 여행 일정을 계획해 주실 반장이 필요하니, 평신도 세미나 참석을 원하시는 분 중에 자원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지난 한해 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 교회가 평안한 가운데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며, 많은 분들의 기도와 성도님들께서 각자 맡은 자리에서 교회를 충성스럽게 섬겨주신 덕분입니다. • 10개 목장을 이끌어 주신 목자·목녀·목부님 • 매주 유초등부와 중고등부를 섬겨주신 교역자와 선생님들 • 매주 낮목장을 인도하고 섬겨주신 분들 • 예배, 가정교회, 교육, 새교우, 선교, 관리, 재정 사역팀의 팀장과 팀원들 • 삶공부를 인도하신 분들과 배움의 자리에 나온 분들 • 매주 수요기도회를 인도하고 함께 기도에 동참해 주신 분들 • 주일 1·2부 예배 찬양팀과 반주자, 방송팀 • 주보 및 예배 PPT를 만들고 준비해 주신 분들 • 일인일 사역과 주일 예배당 청소로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으신 분들 • 매 주일 풍성한 점심 식탁을 위해 수고해 주신 목장 식구들 •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헌금해 주신 분들 이렇게 하나하나 적어놓고 보니, 많은 분들의 땀방울과 섬김이 모여 행복한제자교회가 올 해도 ‘영혼 구원하여 제자 삼는’ 예수님의 몸된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음을 새삼 깨닫습니다. 부족함 많은 저를 믿고 따라와 주시며, 사랑으로 인내해 주시고 격려해 주신 성도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 사랑과 격려에 힘입어, 내년에도 하나님께서 저에게 맡기신 역할을 잘 감당하고 싶습니다. 지난주 김성수 목자의 간증처럼 제가 설교와 생명의 삶 공부에 감히 ‘목숨을 건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내년에도 최선을 다해 섬기려고 합니다. 필요한 체력과 지혜, 사랑, 그리고 영적인 능력을 더하여 주시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다가오는 2026년에도 많은 VIP들이 예수영접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새로운 목자와 목녀가 세워져 분가가 계속 되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2026년 새해 하늘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 목장 나눔
목장에서 나눔은 치유와 회복이 일어나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짐을 나눔으로 지체로서 하나가 되는 매우 중요한 시간입니다. 도움이 되기 위한 몇 가지 가이드라인을 소개합니다. 1.목자와 목원들 모두가 우선 진솔한 나눔과 진지한 경청이 있어야합니다. 목장에서 나눔을 중요시 하는 데는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1) 나눔은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고 돌아보고, 필요를 발견하여 어떻게 섬길지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진솔한 나눔은 내적 치유에 탁월한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목원들 중에는 의외로 상처를 안고 사는 분들이 많고 자신의 고통과 심정을 터놓을 때가 없어 외로워하고 답답해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마음의 상처와 상황을 진심으로 알아주고 자신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는 분위기가 되면 속 시원히 이야기를 함으로 마음의 상처가 치유됨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타인에게 피해를 주거나 교회에 덕이 되지 않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있는 그대로 자신을 노출’ 시키는 것이 좋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표현의 욕구가 있고 자기를 알아주기를 원하기 때문에 관심과 사랑의 눈으로 진지하게 경청해주면 말하는 사람은 마음을 더 크게 열게 됩니다. 자기 말만 하려고 하고 남의 말은 건성으로 듣고 빨리 끝내기를 바라는 것과 지도자나 남을 비방하고 원망하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2.‘인격적인 작용’을 나누는데 중점을 둬야 재미와 감동이 있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생활이나 사건을 나누려고 하면, “오늘은 또 뭘 나눠야 되나?” 별로 할 말이 없고, 듣는 목원들도 흥미를 잃기 쉽습니다. 삶을 나눌 때는 ‘일상의 삶이나 사건 속에서 자신이 무엇을 깨달았고, 무엇을 느꼈고, 무엇이 부족했고,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 자신의 ‘인격의 작용들’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좋습니다. 일상은 매일 같이 반복되는 경우가 많지만 마음과 인격의 작용, 그리고 느낌과 깨달음은 매일 사건마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신앙적 가치관이 정립이 되어있고 인격적으로 성숙한 성도들의 깨달음과 경험들은 다른 목원들에게 많은 도움을 줍니다. 발표하는 목원의 말에 반응할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이 그와 비슷한 문제를 경험한 적이 있을 때 자신의 간증을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발표한 분이 자신의 얘기를 좀 더 오픈할 수 있도록 질문으로 돕는 것입니다. “어떤 마음이 들었나요?” “그때 무슨 생각이 들었습니까?” “그런 결심을 하게 된 이유가 뭐였나요?” 등으로 발표하는 분의 감정 상태를 오픈할 수 있는 질문이 좋습니다. 3.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경험을 나누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은 기도 응답을 통해서입니다. 성도의 모든 기도에는 반드시 응답이 있습니다. 기도해도 응답이 없다고 하는 이유는 응답을 확인할 수 있는 구체적인 기도를 하지 않거나 기도를 하고 응답을 확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매일 아침 하루를 시작하면서 응답을 확인할 수 있는 구체적인 기도를 하고 저녁에 그 기도에 대한 응답을 확인하며 산다면 우리는 날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성도들이 목장모임을 하게 된다면 나눔의 시간은 더욱 풍성하게 될 것입니다. 4. 기타: 목장 모임에 있어서 주의사항 목자는 (1) 나눔 중간에 말을 끊지 말 것. (2) 정답을 가르쳐 주려고 하지 말 것 (3) 토론하지 말 것. 다음으로 목원 모두가 주의해야 할 점은 (1) 그 자리에 없는 목원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말 것. (2) 교회와 교회 지도자에 대한 비판을 하지 말 것.
- 목장에서 함께 하는 식사 (최영기 목사)
복음과 식탁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먹는 얘기를 빼면 책이 얇아질 정도로 성경에는 먹는 것과 상관된 내용이 많습니다. 구약의 예언자들은 메시아가 와서 세울 하나님 나라를 풍성한 잔치로 묘사하고 있습니다(사 55:1-2). 하나님께서 예언자들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부르실 때에도 풍성한 잔치에 초대하셨습니다(요엘 2:14-27). 천국은 이 세상에서 경험하는 모든 아름다운 것이 다 있는 곳입니다. 그곳에는 직장이 있고, 친구가 있고, 음악이 있고, 여행이 있습니다. 사랑했던 사람들이 같은 식탁에 둘러앉아 먹고, 마시고, 즐기는 잔치가 있습니다(헤븐, 알콘 저). 예수님의 첫 번째 이적을 베푼 자리가 혼인 잔치였습니다(요 2:1-11). 잔치를 좋아하셨던 예수님은 누가 초청했는지 가리지 않으셨기 때문에 대적하는 사람들로부터 세리와 죄인의 친구요, 술주정뱅이요, 식탐하는 사람이라는 비난까지 받았습니다(눅 7:34). 예수님에게 있어서 식탁은, 단순히 음식을 먹는 장소가 아니라 하늘나라를 가르치는 자리요,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는 자리요, 하나님의 가족 되었음을 선포하는 자리였습니다.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날 밤 제자들과 만찬을 나누실 때,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것도 천국 잔치였습니다(눅 22:16, 30).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갈릴리 호숫가에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도, 제자들에게 생선을 구워 먹이셨습니다(요 21:13).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식탁은 신앙생활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신약 교인들은 집집마다 다니며 음식을 먹고 떡을 떼었습니다(행 2:46). 이들은 공식 예배와 식탁 교제를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거짓 교사들을 배격하고 죄지은 사람들을 징계하는 방법은 식탁에 같이 앉기를 거부하는 것이었습니다(요삼 5-8절; 고전 5:11). 식탁 교제가 중요했기 때문에 교회 지도자들을 선출할 때에 손님 대접을 잘하는 사람을 뽑도록 했습니다(딤전 3:2). 성찬도 신약 교인들에게 단순한 예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상에 둘러앉아 먹고 마시는 잔치였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하여 돌아가신 것을 기억하고, 양식이 되시는 주님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음을 고백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이 되었음을 선포하며, 장차 누릴 천국의 기쁨을 미리 맛보는 잔치 자리였습니다. 진정한 가족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같이 밥을 먹어야 합니다. 무숙자들에게 음식을 장만하여 배부해 줄 때 시혜자와 수혜자라는 극복할 수 없는 관계의 벽이 존재하게 됩니다. 간식을 나누든지, 식당에서 요리를 대접해도 거리감은 여전합니다. 가정집에서 밥상에 둘러앉아 같이 음식을 먹을 때에 비로소 거리감이 사라지고, 진정한 사귐이 시작됩니다. 신약교회 성도들은 같은 식탁에서 음식을 같이 먹었기 때문에, 있는 자와 없는 자, 히브리인과 헬라인, 주인과 상전 사이에 있는 장벽을 허물어졌고, 주안에서 하나가 될 수 있었습니다(갈 3:28). 신약 교회 회복을 추구하는 가정교회 성도들에게 식탁은 단순히 끼니를 때우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가족 됨을 즐기는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목장 모임은 집에서 가지고, 함께 식사해야 합니다.
- 이어령 교수가 남긴 메시지
이어령 교수는 한국의 지성인을 대표하는 사람으로 인정받은 분입니다. 이분이 자신의 딸을 통해서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다음에 암으로 돌아가실 때까지 남긴 어록을 정리한 글입니다. <신앙에 관한 명언> 1. 믿음이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눈입니다 지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감각 그것이 신앙입니다. 2. 나는 이제 기도라는 사랑의 언어를 배웠습니다. 말년에 그는 기도를 하늘을 향한 대화로 받아들이며 가장 인간적인 행위라 말했습니다. 3. 하나님을 믿기 전에는 죽음이 공포였지만 지금은 안식이 되었습니다. 신앙은 그의 죽음을 편안한 귀향으로 바꾸었습니다. 4. 이제는 내가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게 글을 쓰게 하십니다. 창작도 하나님의 영감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고백했습니다. 5. 지성으로는 알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문이 신앙입니다. 평생 지식의 길을 걸은 그가 마지막에 발견한 건 수용의 믿음이었습니다. <가슴에 남는 명언> 1. 나이가 들고 세월이 흐르면 시간이 없으니 좋아하는 일부터 먼저 하세요 2. 누구나 마음속에 생각의 보석을 지니고 있어요. 다만 캐내지 않아 잠들어 있을 뿐입니다. 3. 지식은 머리에 쌓이지만 지혜는 가슴에서 자랍니다. 읽은 책은 많지만 남을 위로하는 문장은 몇 개나 되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4. 죽음은 끝이 아니라 질문입니다. 왜 살았는가를 묻는 질문 살아 있다는 건 아직 해야 할 일이 있다는 뜻입니다. 5. 사랑은 계산이 아니라 증여다. 죽어도 남는 것이 사랑입니다. 6. 말 한 마디가 사람을 살리고 침묵 한 번이 사람을 죽이기도 합니다. 7. 베스트원이 아니라 온리원으로 성장하세요. 당신은 이미 천재입니다. <하지말라> 1. 너무 잘하려 하지 마세요. 이미 살고 있음이 이긴 것입니다. 2.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삶은 슬픔도 아름다운 기억으로 돌려줍니다. 3. 너무 고집부리지 마세요. 사람의 마음과 생각은 늘 변하는 것입니다. 4. 너무 욕심부리지 마세요. 사람이 살아가는데 그다지 많은 것이 필요치 않습니다. 5. 너무 연연해 하지 마세요. 죽을 것 같던 사람이 간 자리에 또 소중한 사람이 옵니다. 6. 너무 미안해 하지 마세요. 우리 모두는 누구나 실수하는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7. 너무 뒤돌아보지 마세요. 지나간 날보다 앞으로 살날이 더 의미 있습니다. 8. 너무 받으려 하지 마세요. 살다보면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기쁩니다. 9. 너무 조급해 하지 마세요. 천천히 가도 얼마든지 먼저 도착할 수 있습니다. 10. 죽도록 온 존재로 사랑하세요. 우리가 세상에 온 이유는 사랑하기 위함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