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S
말씀
- 목자의 마음사도행전 20:28-35저는 선교단체를 통해서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선교단체에서 제자훈련을 받았습니다. 후에 가정교회로 목회해오면서, 선교단체식 제자훈련과 가정교회식 제자훈련의 차이점이 정리되었습니다. 선교단체에서는 재생산할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하여 집중하는 데 비하여, 가정교회에서는 사역을 분담하기 때문에 꼭 가르치는 능력을 갖춘 사람만 리더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섬길 수 있는 사람이면 리더가 될 수 있습니다. 선교단체는 중앙에서 통제하는 상하 구조로 되어 있는 것에 비하여, 가정교회는 많은 역할을 위임해주는 수평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정교회 속에서 목장 식구들의 목사 역할을 하는 목자와 목녀가 가져야 할 마음에 대해 오늘은 함께 말씀을 나누어보겠습니다. 1. 하나님의 양떼라는 사실을 안다. 바울은 에베소의 목자인 영적 지도자들의 얼굴을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을 염두에 두고 당부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 중 첫 번째는, “자기 자신을 잘 살피고 양 떼를 잘 보살피십시오.”라는 말이었습니다. 이를 위하여 바울은 깨어 있어서, 삼 년 동안 밤낮 쉬지 않고 각 사람을 눈물로 훈계하였습니다. 우선 목자는 자기 자신도 하나님의 양이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잘 살펴야 합니다. 목자는 하나님을 첫 자리에 모시고 죄로부터 떠나 믿음에 견고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맡겨진 사람들을 하나님의 양 떼로 알고 성실하게 돌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의 피로 사신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나운 이리와 같은 자들이 양 떼를 마구 해하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2. 주와 및 은혜의 말씀 위에 세워준다. 예수님을 갓 믿고 영적으로 어린 사람은 ‘내 사람’이 되어야 제대로 가르칠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영적으로 성장하여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감에 따라 점점 독립하게 되고, 나중에는 ‘내 사람’을 벗어나 ‘나의 동역자’로서 함께 ‘주님의 일꾼’이 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어릴 때는 ‘내 사람’이 되지 아니하면 제대로 가르칠 수가 없고, 예수님의 제자로 성장시키기가 어렵습니다. 한편 영적으로 성숙했는데도 여전히 ‘내 사람’으로 붙들고 있으면, 권위주의에 빠지게 되거나 자신의 왕국을 이루게 됩니다. 영적으로 어릴 때는 ‘내 사람’이었다가, 영적으로 성숙해감에 따라 ‘주님의 일꾼’으로서 함께 ‘동역자’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성도들을 “하나님과 그의 은혜로운 말씀” 위에 세워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도들을 튼튼하게 세울 수 있고, 하나님의 유업을 차지하게 할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의 상급을 바라본다. 바울은 사역하는 과정에서 누구의 은이나 금이나 옷을 탐낸 일이 없고, 오히려 자신과 그의 일행에게 필요한 것을 직접 일하여 마련했습니다. 그는 영적인 필요를 도와줄 뿐만 아니라, 약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을 마땅히 해야 할 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친히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복이 있다.” 하신 말씀을 명심하였습니다. 그는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주실 의의 면류관을 사모하였습니다.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 목장 식구들이 변화되는 모습, VIP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는 놀라운 일들이 우리 목자들에게 감동이 되고 격려가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주실 상급, 하나님께서 주실 복, 하나님께서 주실 면류관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사역해야 합니다.
- 성령 세례와 충만사도행전 19:1-12우리가 교회에서 사용하는 용어 중에는 그 정의를 분명히 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구원이라는 단어가 그렇습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칭의)을 우리는 구원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는 성화 과정 역시 성경에서는 구원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죄가 전혀 없는 온전한 몸으로 영화될 것에 대해서도 역시 구원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그러므로 각 경우에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지 구분하여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성령 세례와 충만이라는 용어에 대해서도 우리는 그 정의를 분명히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1. 성령의 세례 바울은 3차 선교여행 중 에베소에 이르러 몇 제자(단지 ‘따르는 자들’)를 만났지만, 그들은 성령이 있다는 말을 들어보지도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민족적인 죄를 회개하는 요한의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바울이 그들에게 손을 얹어 성령이 그들에게 내리셨으며 그들은 방언으로 말하고 예언하였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성령을 받기 위하여 안수받아야 하거나 성령을 받으면 방언을 말하거나 예언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초대교회에 일어난 사건 중의 하나입니다. 성령의 세례는 거듭난 이후에 뒤따라오는 축복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일반적인 축복입니다. 2. 성령의 충만 성령의 충만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갈수록 더 많이 충만해져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이 충만하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고 나아가서 성령의 열매가 맺히게 되는 것입니다. (1) 성령의 역사 바울은 회당에 들어가서 석 달 동안 하나님 나라의 일을 강론하고 권면하면서 담대하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의 손을 빌려서 비상한 기적들을 행하셨습니다. 심지어 바울이 몸에 지닌 손수건이나 두르고 있는 앞치마를, 앓는 사람 위에 얹기만 해도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성령으로 충만하거나 채우심을 받는 일은, 모든 헌신된 그리스도인에게 일어나야 하는 특징입니다. 따로 택함을 받은 일곱 집사들도 “칭찬 듣고, 지혜가 충만하고, 믿음이 충만할”뿐 아니라,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당면한 일을 책임 있게 감당하도록 성령께서는 능력을 더하여 주십니다. (2) 성령의 열매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하시는 일이 성령의 역사가 되기 위해서는 성령의 열매가 맺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 단지 자기 열심이 되기 쉽습니다. 반대로 열매만 있고 역사가 없으면 단지 좋은 사람이 되기 쉽습니다. 바울은 성령의 열매를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의 아홉 가지로 말하였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에 부어주시고, 하나님의 기쁨을 우리 영혼에, 그리고 하나님의 평화를 우리 생각에 부어주십니다. 다른 사람들을 향한 우리의 태도는,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으로 점점 더 발전해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자신과 맺는 관계에서는 확고한 충성심, 힘과 에너지를 자제할 줄 아는 온유, 그리고 혀와 생각, 식욕과 정욕을 다스리는 절제가 있어야 합니다.
- 복음을 전하는 자의 자세사도행전 17:16-23‘내가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간다면, 어떤 의사를 만나고 싶은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선 내가 아픈 사실에 대해 안타까워하고 속상해하는 의사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다음에는 내 병을 고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을 제시해줄 수 있어야겠지요. 그리고 성실한 마음과 실력을 갖추고 나를 치료해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교회는 병원과 같으므로 마찬가지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을 보면, 안타까워하고 속상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구원하실 수 있는 예수님을 소개해 주어야 합니다. 또한 친절하고 주의 깊게 구원받을 수 있도록 방법을 제시해 주어야 합니다. 바울이 바로 그렇게 하였습니다. 1. 통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은 아테네 온 도시가 우상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보고 격분했습니다. 아테네 안에 있는 사람들이 구원을 모르고 사는 것도 안타까웠거니와, 도시에 가득 찬 우상들이 사람들을 미혹할 것을 생각하며 격분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회당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더불어 토론을 벌였고, 광장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날마다 토론하였습니다. 영혼을 구원코자 복음을 전하는 우리의 마음이 바로 그러해야 합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아직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깝고 속상해야 합니다. 그들이 우상을 섬기고 있거나 굿을 하는 모습을 보면 통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더욱이 이단에 미혹을 받는 사람들을 보면, 어찌하든 그들을 바른길로 인도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2. 복음의 핵심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이 전하는 내용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바울을 말쟁이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혹은 외국 신들을 선전하는 사람인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전하고 부활을 전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 값을 대신 치르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또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세상의 어떤 사람도 우리 죄 때문에 대신 죽은 사람은 없습니다. 세상의 어떤 사람도 죽었다가 살아난 경우는 없습니다. 고린도에 보내는 편지에서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과 무덤에 묻히셨다는 것과 성경대로 사흗날에 살아나셨다는 것”(고전 15:3-4)을 명확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는데, 이 생명이 예수님 안에 있으므로 예수님을 마음에 모신 사람은 생명이 있고,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지 않은 사람은 생명이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3. 온유함과 두려운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바울은 우선 아테네 시민에게 모든 면에서 종교심이 많은 것에 대해 칭찬하였습니다. 그들은 많은 대상들을 놓고 예배하였는데, 그중에는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제단도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이 알지 못하고 예배하는 그 대상을 알려 주겠다는 말로 부드럽게 접근하였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을 들라면 보통 네 명을 듭니다. 소크라테스, 공자, 부처, 예수입니다. 그런데 “너 자신을 알라.”고 한 소크라테스, “인의예지신”을 강조한 공자, “팔정도”를 그 핵심으로 가르친 석가, 모두가 윤리를 가르치는 것이지 구원을 말하는 대목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가 다른 종교를 무작정 반박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온유한 마음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유일한 구원의 소식을 전하고 있다는 두려운 마음으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 협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사도행전 16:1-15성경의 역사를 보면, 문제는 사람들이 욕심 때문에 만들어 놓고,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다시 선으로 바꾸시는 역사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은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의 문제를 해결해 주신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급기야는 인간의 죄 때문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그 역사가 계속되었습니다. 그 역사는 지금도 우리의 삶 가운데 계속되고 있다고 하여도 결코 지나친 말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죄의 성품(주로 욕심) 때문에 문제를 만들고,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셔서 협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우리의 삶 가운데서 계속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사도행전에서 그 역사를 살펴보겠습니다. 1. 사람의 분쟁까지도 선으로 만드시는 하나님 선교를 위하여 따로 세움을 받았던 바나바와 사울은, 언제부터인가 바울로 이름이 바뀐 사울이 주도권을 쥐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일차 선교여행을 마치고 다시 이차 선교여행을 계획하며 마가를 동반하는 문제를 놓고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섰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의 일꾼들이 심히 다투고 피차 갈라선 것조차도 선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바나바와 갈라서서 실라를 택하여 팀을 이룬 바울에게, 하나님께서는 형제들로부터 칭찬받는 디모데를 만나 사역을 계속 진행해 나가도록 하셨습니다. 바울 일행은 여러 도시를 두루 다니면서,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장로들이 정한 규정들을 사람들에게 전해 주어서 지키게 하였습니다. 일차 선교여행 때에 말씀을 전한 각 성에 있는 교회들은 그 믿음이 점점 더 튼튼해지고 그 수가 나날이 늘어갔습니다. 2. 때로는 길을 막으시는 하나님 바울 일행은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고자 하였으나 성령께서 막으셨습니다. “그들은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지방을 거쳐 가서, 무시아 가까이 이르러서 비두니아로 들어가려고 하였으나, 예수의 영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고 성경은 기록되어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의 생각에 잘못된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데, 하나님께서 그 길을 막으시고 다른 길로 인도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빌립의 사역으로 인하여 사마리아 성에 큰 기쁨이 넘칠 때에, 주님의 천사가 빌립에게 광야 길로 가라고 하신 경우가 그 좋은 예입니다. 그러나 빌립이 순종했을 때 그는 에디오피아 내시를 만나 복음을 전할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길을 막으시는 것처럼 보일 때, 스스로 질문해 보십시오. ‘내게 가장 유익한 길을 하나님이 더 잘 아실까, 내가 더 잘 알고 있을까?’ 3. 그러나 더 좋은 길을 열어주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밤에 바울에게 환상을 보게 하셨습니다. 마케도니아 사람 하나가 바울 앞에 서서 “마케도니아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간청한 것입니다. 바울은 그 환상을 본 뒤에 하나님께서 부르신 것이라고 확신하였습니다. 그들은 도중에 마케도니아 지방에서 으뜸가는 도시요 로마 식민지였던 빌립보에 이르러, 루디아라는 여자를 만났고 그 여자는 집안 식구와 함께 세례를 받았습니다. 내 뜻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우리는 먼저 답답해하는 좋지 않은 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길이 막히는 것처럼 보일 때는 하나님께서 열어놓으신 다른 길이 있는지 찾아보십시오. 형들이 요셉을 미워하며 흙구덩이 속에 던져놓았을 때, 요셉은 사방이 막힌 구덩이 속에서 위로 뚫린 하늘을 보며 하나님을 찾았을 것입니다.
- 선한 일을 시작하시고 이루시는 하나님사도행전 13:1-12“그러나 성령이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 서, 그리고 마침내 땅끝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행 1:8) 하신 말씀대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 복음이 전파되는 일이 사도행전 12장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제 드디어 활발하게 땅끝까지 복음이 전파되는 일이 사도행전 13장부터 기록되고 있습니다. 12장까지는 예루살렘으로부터 베드로 중심의 사역이 전개되었다면, 13장부터는 안디옥교회로부터 바울 중심의 사역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13-15장은 바울의 1차 선교여행, 16-18장은 2차 선교여행, 19-21장은 3차 선교여행을 기록하고 있고, 22-28장은 1차 로마투옥에 대한 기록입니다. 1. 선한 일을 시작하고 이루시는 하나님 복음을 각지에 전하도록 하시기 위하여 핍박과 환란을 허락하신 하나님께서, 이제는 복음이 더욱 왕성하게 퍼지게 하려고 사람들을 따로 세우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한 일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안디옥 교회에 예언자들과 교사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주님께 예배하며 금식하고 있을 때 그중에 바나바와 사울이 따로 세움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한 일을 시작하실 때는 감사하게도 사람을 동역자(고전 3:9)로 삼으실 때가 많습니다. 그때에는 언제나 하나님과 동행하며 주님의 일과 자신의 일에 충성된 사람들을 부르십니다. 기드온을 부르실 때는 포도주 틀에서 밀 이삭을 타작하고 있을 때 부르셨습니다. 다윗을 부르실 때는 양의 우리에서 일하고 암양을 돌보는 그를 데려다가, 주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2. 하나님의 일에 협력하는 사람들 바나바와 사울은 성령이 가라고 보내시는 대로 곳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들이 온 섬을 가로질러 바보에 이르렀을 때에 그곳에 있는 총독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어서 바나바와 사울을 청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였습니다. 어느 곳에서나 깨끗한 마음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마음을 열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려고 합니다. 그들은 착하고 좋은 마음 밭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길가와 같은 마음 밭을 가진 사람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립니다. 돌밭 같은 마음 밭을 가진 사람은 작은 시험만 있어도 교회에 나오지 않습니다. 가시덤불 같은 마음 밭을 가진 사람은 “언제인가 내가 잘 믿어야지.” 하는 부담만 가지고 일생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곳곳에 말씀을 듣고 성령의 열매와 사역의 열매를 맺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3.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사람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곳에는 반드시 사단의 역사가 따릅니다. 특별히 한 영혼이 구원받는 것은 사단이 자기의 종을 빼앗기는 것이기 때문에 사단이 가장 싫어하는 일입니다. 서기오 바울이라는 총독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할 때에도 그 곁에서 늘 모시고 있던 거짓 예언자 마술사가 그들을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래서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으로 충만하여 마술사를 노려보고 말했습니다. “너는 주님의 바른 길을 굽게 하는 짓을 그치지 못하겠느냐? 보아라, 이제 주님의 손이 너를 내리칠 것이니, 눈이 멀어서 얼마 동안 햇빛을 보지 못할 것이다.” 그 말대로 안개와 어둠이 그를 내리덮어서 그는 앞을 더듬게 되었고, 총독은 그 일어난 일을 보고 주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방해를 두려워하지 말고 주님을 믿는 자의 권세를 힘 있게 사용하십시오.
- 교회다운 교회사도행전 11:19-30교회는 모든 교파와 인종과 국가에 관계없이 하나님의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눈에 보이는 건물과 내부 장식, 그리고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행사나 프로그램으로 교회를 인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회다운 교회는 전통적인 경계를 넘어서는 울타리 없는 교회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잃어버린 자들(VIP)에게 가서 그들 가운데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일에 ‘모이는 교회’가 되었다면,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흩어지는 교회’가 되어 일터에서 사도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끊임없이 성령 안에서 하나 되는 일에 힘써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서로 돕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초대교회에서 그 모델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1. 흩어지는 교회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려라.” 하신 명령은 오순절에 성령께서 임하실 때까지 순종해야 할 말씀이었습니다. 성령께서 임하신 이후에는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마침내 땅 끝에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약속이 주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모여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흩으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큰 박해와 핍박을 허락하셨습니다.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말씀대로 두루 돌아다니면서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스데반에게 가해진 박해 때문에 흩어진 사람들은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다가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였습니다. 말씀을 연구하고 기도하며 교제할 때에는 우리는 ‘모이는 교회’가 됩니다. 또한 우리는 ‘흩어지는 교회’가 되어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2. 하나 되는 교회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에게 주님의 손이 함께 하셔서 수많은 사람이 믿고 주님께로 돌아왔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예루살렘 교회는 바나바를 안디옥으로 보내고, 바나바는 하나님의 은혜가 그들에게 내린 것을 보고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굳센 마음으로 주님을 의지하도록 권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다소에 가 사울을 찾아 함께 안디옥으로 가서 일 년 동안 줄곧 그곳에 머물며 교회에서 모임을 가지고 많은 사람을 가르쳤습니다. 제자들은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렸습니다. 어느 곳에서나 복음이 전파되고 사람들이 주님께로 돌아오는 소식은 우리의 큰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복음으로 거듭난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자녀로서 한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서로 인정하고 말씀으로 은혜 가운데 세워주어 하나 되는 교회는 교회다운 교회입니다. 3. 서로 돕는 교회 그 무렵에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내려온 예언자 중에 아가보라 하는 사람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온 세계에 큰 기근이 들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바로 그 기근이 글라우디오 황제 때에 들었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각자 자기 형편에 따라 몫을 정하여 유대에 사는 신도들에게 구제금을 보내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을 때에, 예루살렘에서 파송을 받은 베드로와 요한이 그들에게 손을 얹어 성령을 받도록 하셨습니다. 로마 군대의 백부장 고넬료에게 은혜를 베푸실 때에도, 이방인 만나기를 꺼려하는 베드로를 통해 말씀을 듣게 하셨습니다. 이제 기근을 허락하셔서 예루살렘의 신도들이 이방인 신도들의 도움을 받게 하신 이 모든 일들은 신도들이 하나 되고 서로 돕는 교회가 되게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 인생은 항해입니다.사도행전 27:14-261. 로마로 가는 배를 탄 바울 바울은 10년에 걸친 3차례의 전도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을 방문하였다가, 소요 사태에 휘말리게 되고(행 21:27-40), 대제사장에 의해서 성전 모독죄로 고소당합니다(행 24:1). 이 재판은 판결 없이 2년 넘게 끌다가(행 24:27) 바울이 로마 황제에게 상소하면서,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로 압송됩니다(행 27:1). 바울은 가이사랴에서 아시아 연안으로 가는 배를 타고 무라에 도착하여서 로마로 가는 배로 갈아탑니다. 이 배에는 선원들, 군인들, 죄수들, 승객들 모두 합해서 276명의 사람을 태운 큰 배였습니다. 돛으로 항해하는 범선이어서, 맞바람 때문에 서쪽으로 가지 못하고 남쪽으로 내려가서 크레타섬의 미항에 도착합니다. 2. 태풍 만난 배 바울은 미항에서 겨울을 보내자고 백부장에게 제안합니다. 출항하면 배를 잃고, 사람의 생명도 잃을 수 있다고 말하지만, 선장과 백부장은 출항을 강행합니다. 결국 유라굴로 태풍을 만나고 배는 큰 풍랑에 떠밀려 표류하기 시작합니다. 승객들이 죽음의 공포 속에 있을 때, 바울은 하나님께 받은 메시지를 전합니다. 자신은 살아서 로마 황제 앞에 설 것이고, 승객들도 머리카락 하나 잃지 않고 모두 무사할 것이며, 배는 섬으로 떠밀려 갈 것이라고 말합니다(행 27:24-26). 태풍 14일째 되던 날, 바울이 말한 대로 배는 섬 모래톱에 걸리고, 배에 탄 276명은 모두 살아남습니다. 3. 태풍 만난 배와 우리 인생 우리 인생은 태풍에 떠밀려가는 배처럼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습니다. 바울도 자기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았습니다. 선장과 백부장은 말을 듣지 않고 출항했고, 태풍을 만나서 배는 파선되어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그러나 태풍도, 배의 파선도 바울이 로마로 가는 것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로마로 가는 것은 바울의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태풍 만난 배가 떠밀려가듯이 내 인생이 마음대로 안 되고 떠밀려가더라도, 하나님의 계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바울이 태풍을 만난 것은 사서 하는 고생입니다. 그는 예루살렘에 가면 묶임을 당하고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예루살렘으로 갔고, 로마로 가는 배를 타는 바람에 태풍을 만난 겁니다. 그런 가운데 하나님은 바울을 지켜 주셨습니다. 바울은 마지막 말년에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내가 믿어 온 분을 잘 알고 있고, 또 내가 맡은 것을 그분이 그날까지 지켜 주실 수 있음을 확신합니다(딤후 1:12).” 우리도 이 말씀을 붙들면 용기를 낼 수 있습니다. 끝으로 생각해 봐야 할 질문은 “선장이 누구인가?”입니다. 태풍 만난 배의 선장은 떠밀려가는 배를 구할 수 없었고, 파선하는 것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이 배의 진짜 선장은 276명을 살린 바울입니다. 정확하게는 바울이 믿은 하나님입니다. 결론적으로 인생은 항해입니다. 내가 어떤 배를 탔든지, 하나님이 선장이 되실 때 태풍 속에서도 소원의 항구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이심을 고백하고 순종할 때 바울처럼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4. 개인적용
- 본질을 놓치지 맙시다사도행전 11:1-18사람들은 스스로 모순을 행할 때가 많습니다. 이방인들을 만날 수 있도록 환상을 보여 주셨을 때, 베드로의 반응은 “주님,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나는 속되고 부정한 것은 한 번도 먹은 일이 없습니다.”였습니다. “주님”이라고 부르는 것과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서로 모순입니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속되다고 한 것도 잘못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본성과 고정관념 때문에, 비본질적인 것을 지키려다가 본질을 놓치는 일이 없어야겠습니다. 1. 깨져야 고할 고정관념 “성령이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능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마침내 땅 끝에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신 다음에, 예수님은 하늘로 들려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땅 끝에 있는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소식을 들었으면, 기쁨이 넘쳐야 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마음속에 이방인에 대해 우월감을 가지고,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들의 집에 들어갔다고 베드로를 나무랐습니다. 할례를 받은 백성이라는 우월감의 고정관념 때문에,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거나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은 것을 탓한다면, 땅 끝에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이 될 수가 없습니다. 자신들이 정한 정결법을 지켜야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주님을 전하는 본질을 놓칠 수는 없습니다. 자신들의 고정관념을 깨고 본질을 지키는 것이 마땅합니다. 2. 깨뜨리지 말아야 할 본질 베드로는 자기를 비난하고 나무라는 사람을 대하여 노를 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사이에 일어난 일을 차례대로 그들에게 설명하였습니다. 베드로가 기도하고 있을 때 주님께서 환상을 보여주셨고, 동시에 고넬료에게도 환상을 보여주셔서, 서로 만나게 하셨습니다. 이방인 고넬료를 만나는 일은 베드로에게 불법으로 여겨지는 일이었습니다. 유대인 베드로를 만나는 일도 고넬료에게 그리 반가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의 음성에 순종을 하였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유대인들이 받은 선물인 성령을 이방인들에게도 주셨습니다. 베드로는 비난을 받을 때에 얼마든지 인간적으로 맞받아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감정 때문에 본질을 깨뜨리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주셨던 것과 동일한 선물로 이방인에게 성령을 주실 때 하나님을 거역하지 않았습니다. 3. 놓쳐서는 안 될 본질 베드로가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아니하고, 자기들에게 일어난 일을 차례대로 설명을 하자, 베드로를 나무라던 사람들이 잠잠해졌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께서 이방 사람들에게도 회개하여 생명에 이르는 길을 열어주셨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베드로를 나무라던 그 위기가 오히려 본질을 되찾을 수 있는 기회가 된 것입니다. 일상생활에서도 비본질적인 문제로 본질을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녀교육을 잘 시키려고 말다툼을 하는 부모는, 그 다툼 때문에 자녀교육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칩니다. 자신들의 정서를 위해서 애완동물을 기르거나 화분을 키우는 가족이 의견 차이로 크게 싸우기도 합니다. 교회는 성령론으로 인해 성령께서 하나가 되게 하신 것을 지키지 못하고 분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비본질적인 것을 지키려다가 어리석게도 본질을 놓치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나 회개하여 생명에 이르게 하는” 본질을 놓치지 않는 우리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 주님, 누구십니까?사도행전 9:1-9우리는 어떤 사람을 만나면 가장 먼저 알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누구일까?” 또한 “이 사람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누구이며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를 아는 순간 그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결정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처음 예수님에 대한 성경공부 할 때에도 가장 먼저 “예수님은 누구이신가?”를 공부하며, 주님에게 신성과 인성이 있음을 배웁니다. 그다음에는 “예수님은 무엇을 하셨는가?”를 공부하며, 주님께서 우리와 같은 죄인을 위하여 대신 죽으시고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죽음에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셨다는 사실을 배웁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마음에 믿고 예수님을 마음에 구세주와 주인으로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1.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바울 예수님을 만나 변화되기 전의 바울의 이름은 사울이었습니다. 그는 주님의 제자들에 대해 여전히 적개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마스쿠스에 있는 여러 회당으로 보내는 편지를 써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남자나 여자나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묶어서 예루살렘으로 끌고 오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 특별하였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박해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라고 확신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의 인생에 대한 목적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기도 합니다. “그럭저럭”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 “죽지 못해” 산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주님을 알기 전에 여러분은 무엇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고 살아왔습니까? 2. 예수님을 만난 바울 다마스쿠스로 가던 사울은 갑자기 하늘에서 환한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그가 땅에 엎어져서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놀란 사울은 “주님, 누구십니까?” 하는 질문을 하였고,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하는 대답을 주님으로부터 들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다시 “주님, 제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때부터 사울은 변화된 삶을 살기 시작하였습니다. 주님이 누구이신가를 아는 것에 따라 사람은 그에 합당한 삶을 살기 시작합니다. 사람은 주님을 경험하는 만큼 변화하게 됩니다. 매일 아침 “주님, 누구십니까?” 하는 질문을 통하여 주님이 누구이신가를 확인하십시오. 그리고 “주님, 오늘은 제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십니까?”를 질문하십시오. 이 두 질문을 매일 아침 경건의 시간(QT)의 핵심으로 삼으십시오. 3. 예수님을 만난 후의 바울 사울은 땅에서 일어나서 눈을 떴지만,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손에 이끌리어 다마스쿠스로 들어갔습니다. 그는 사흘 동안 앞을 보지 못하는 상태에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았습니다. 사울은 주님 앞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님 앞에 온전히 굴복한 사울을, 주님께서는 주님의 일꾼으로 사용할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사울이 변하여 바울이 되게 하셨고, 그를 이방 사람들에게 보내셨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눈을 열어주어서 어둠에서 빛으로 돌아서고, 사탄의 세력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시려는 주님의 계획이었습니다. 또 그들이 죄사함을 받아서 주님에 대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을 경험하십시오. 주님을 경험한 만큼 우리는 변화되고, 주님께 쓰임을 받을 수 있습니다.
- 구원사역에 함께 하려면사도행전 8:26-40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빠지지 않고 생기는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비교의식”입니다. 심지어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도 “누가 크냐?”의 문제로 서로 다투었습니다. 초대교회에도 그리스 말을 하는 사람들이 히브리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불평을 터뜨렸습니다. 자기네 과부들이 구호 음식을 나누어 받는 일에 소홀히 여김을 받는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본질적인 일을 하지 못할 것을 우려하여, 사도들은 일곱 집사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일곱 집사라고 하여 말씀을 전하는 일에서 열외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것을 입증이라도 하는 듯, 스데반과 빌립이 말씀을 전하는 일이 연이어서 기록되었습니다. 빌립이 에티오피아 고관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묵상하며, 구원 사역에 함께 하는 모든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1.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빌립은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서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했습니다. 무리들은 빌립이 행하는 표징을 듣고 보면서, 한마음으로 귀를 기울였습니다. 많은 사람에게서 악한 귀신들이 큰 소리를 지르면서 나갔고, 많은 환자들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 성에 큰 기쁨이 넘쳤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천사가 광야 길로 가라고 말하였습니다. 빌립은 순종하였습니다. 빌립은 얼마든지 다른 의견을 말할 수 있었습니다. 사마리아에서 사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데, 사람들이 별로 없는 광야로 가도록 하시는 것은 일반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내 생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을 요구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나에게 가장 유익한 길은 하나님께서 더 잘 아십니다. 사람들이 구원받는 일에 대해 하나님께서 더 큰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2. 반항/핑계/지체 없이 빌립이 주님의 천사의 말대로 순종하여 일어나서 가다가 마침 에티오피아 여왕의 고관을 만났습니다. 그는 마차를 타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그는 예언자 이사야의 글을 읽고 있었습니다. 인간적으로는 빌립이 주눅이 들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한 나라의 고관이, 마차를 타고 있었고, 이사야의 글을 읽고 있는 상황이 빌립에게는 부담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부모들은 자녀들이 반항하지 않고, 핑계 대지 않고, 지체 없이 순종하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하나님에게 반항하지 않고, 핑계 대지 않고, 지체 없이 순종해야 하지 않을까요? 야고보는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과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약 2:26)라고 말했습니다. 믿음의 갈등에 부딪혔을 때 어떻게 하느냐가 우리의 믿음을 표현합니다. 진정한 믿음은 행동을 요구합니다. 3.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에티오피아 고관은 겸손하게 “나를 지도하여 주는 사람이 없으니, 내가 어떻게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라며, 빌립에게 마차로 올라와서 자기 곁에 앉기를 청하였습니다. 빌립은 입을 열어서, 그가 읽고 있던 말씀에서부터 시작하여 예수님에 관한 기쁜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믿고 기꺼이 세례를 받고 기쁨에 차서 가던 길을 갔습니다. 우리가 전해야 할 기쁜 소식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병원에 간 환자가 치료받으려면, 먼저 자신이 환자인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의사가 나를 고칠 수 있다는 것을 믿고 수술대 위에 올라가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구원받으려면 먼저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가 나의 죄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고, 예수님의 구세주와 주인으로 내 마음속에 모셔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