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S
말씀
- 성전 완공의 기쁨에스라 6:1-22에스라 1-6장은 유월절과 무교절을 지키는 내용으로 성전 재건축에 관한 이야기를 마치고 있습니다. 성전 재건축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시며 그 일을 통해 이스라엘의 과거와 다시 연속성을 갖게 되었다는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성전 재건을 완공하도록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즐거이 성전 봉헌식을 올리고 하나님께서는 저희로 즐겁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즐거움의 원천이십니다. 또한 많은 반대와 역경에도 불구하고 “왕의 마음을 저희에게로 돌이켜” 성전을 재건하게 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모든 성공의 원천이십니다. 1. 성전에 대한 하나님의 때 다리오 왕은 성전 재건을 반대하는 자들의 의견을 거절하였습니다. 14년이나 성전 재건을 중단하도록 만들었던 것과는 반대로, 그는 성전 재건을 “지체치 않게 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전 재건에 드는 비용과 번제에 드는 비용을 세금에서 지불하도록 명령하였습니다. 동시에 성전 재건에 대한 반대를 원천 봉쇄하며, 동시에 모든 사건들의 배후에 하나님의 뜻이 있었음을 강조했습니다.(12절) 성전이 완성되는 일(하나님의 일)은 사람보다 하나님께서 더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방 왕들이 마음을 결정하는 일에도 하나님은 간섭하십니다. 논두렁의 물줄기가 농부의 삽질에 따라 방향이 정해지듯이 왕의 마음은 하나님께서 움직이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성전 완공과 봉헌식의 기쁨 재건된 성전의 모습은 그리 큰 위용을 갖춘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솔로몬의 성전과 비교해볼 때 모든 면에서 규모가 훨씬 작았습니다. 그렇지만 귀환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즐거이 최선을 다해 하나님께 예물을 드렸습니다. 성전을 건축하는 일이 형통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의 권면이 있었고, 그 지역을 통치하던 바사 왕들의 재확인된 명령이 있었습니다. 성전에서 예배를 회복하게 된 것은 이제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거하시면서 예배를 받으시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예배를 받으시기 원하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것은 특권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 자체를 특권으로 알며 예배의 감격을 늘 체험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3. 성전에서 이루어져야 할 일 이스라엘의 귀환자들은 그들 주변에 거주하는 이방인들의 부정한 예식으로부터 자신들을 지켜서 그 몸을 정결케 한 모든 사람들을 초청했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더불어 유월절 식사를 하였습니다. 유월절과 7일 동안의 무교절은 이스라엘이 이제 포로 시대를 마감하고 다시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했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포로로 잡혔다가 귀환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스스로 구별하여 과거의 더러운 것을 버리고 새로 건축해 봉헌한 성전에서 다시 시작할 준비를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어린 양이 되심으로써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무교절의 의미는 옛 누룩을 버리고 자신들을 새롭게 준비하는 의미입니다. 1년 반이 지났지만, 우리도 새로운 건물에서 날마다 구원의 감격을 새롭게 하고 우리 자신을 새롭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 때로는 더딘 것 같아도에스라 5:1-17처음에 하나님의 일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고 시작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장애물을 만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일차 선교여행 중에도 가는 곳마다 핍박을 당하거나 심히 몸이 아픈 적도 있었습니다. 게다가 함께 동역을 했던 형제가 팀을 떠나는 아픔도 있었습니다. 때로는 일이 더디게 진행되거나 정체되어 있는 것처럼 보일 때,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확신이 더욱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은 조직적인 방해 공작으로 성전 재건축이 아무런 진전 없이 14년을 흘려보냈을 때의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선지자들을 통해 성전 건축이 다시 시작되는 것과 아울러 여전히 지방 관리들의 방해가 계속됩니다. 때로는 더딘 것 같아도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이루신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1. 선지자들을 통한 격려 재건된 성전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집결 장소로서의 역할뿐 아니라, 그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그런데 성전 재건은 아무런 진전 없이 십여 년의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이때에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성전 재건 사업에 대한 하나님의 적극적인 관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선지자들의 예언이 성전 재건을 가능하도록 하는 촉매역할을 한 것입니다. 오랫동안 반대에 부딪쳐 일이 진행되지 않으면 열정이 식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현실에 안주해 버리게 마련입니다. 그러한 때에 하나님의 약속에 서있는 지도자들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뜻임을 확신하며 말씀에 순종할 때에 하나님의 일은 다시 힘 있게 시작됩니다. 2. 하나님의 돌보심 하나님의 일이 시작되고 진행되는 곳에는 반대하는 자들의 저항이 동시에 시작됩니다. 성전 재건이 시작되자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함께 하여 도움과 동시에 지방 총독과 관리들이 현장을 조사하기 위해 나왔습니다. 그들은 “누가 너희를 명하여 이 전을 건축하고 이 성곽을 마치게 하였느냐?”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유다 장로들을 돌아보심으로써 그들은 능히 역사를 폐하지 못하고 다리오로부터 올 답신을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이 시작되는 곳에는 반드시 사단의 방해공작이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십시오. 그리하면 어려움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당황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가장 큰 관심을 가지시고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을 돌아보십니다. 3. 하나님의 일에 대한 확신 지방 총독과 관리들이 다리오 왕에게 올린 글에는 유다 장로들의 답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다 장로들의 답변을 보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강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는 천지의 하나님의 종이라.” “우리 열조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격노케 하였으므로” 저희를 사로잡혀 가게 하셨다고 그들은 증언했습니다. 그리고 바벨론 왕 고레스가 조서를 내려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게 한 일이라고 당당하게 주장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우리를 미워하고 대적할 수밖에 없습니다.(요 15:19) 그러나 천지를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감당하지 못할 시험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소원을 품고 행하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 반대가 따르는 하나님의 일에스라 4:1-24오늘 본문의 말씀은 성전 재건 공사를 반대하는 일과 성벽 공사를 반대하는 일이 중복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연대기적으로 기록했는가 주제적인 흐름을 따라 썼는가도 궁금한 내용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문제들은 신학자들에게 맡기기로 하겠습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에 초점을 맞추기 원합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일에는 사단도 역시 반대 작업을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승리하시고 사단이 패한다는 사실입니다. 주님께서 기뻐하실 일을 행하는 동안에 어려움이 있더라도 실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홀로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1. 위장된 협조 작전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유다와 베냐민 사람들이 본토에 돌아와 하나님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는 일은 반대 세력들에게 불길한 느낌을 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예루살렘 성이 역동적인 예배 분위기가 감도는 거룩한 도시로 복구되려 하자 사마리아에 본거지를 둔 대적자들의 방해가 교묘하게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로 너희와 함께 건축하게 하라.” 함께 하겠다는 말이 마치 협조하겠다는 의도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숨은 의도는 성전재건을 가로막으려는 위장된 협조 작전임을 간파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도 사단은 교묘하게 접근해 옵니다. 마치 영적인 일에 도움이 될 것 같은 차선책을 제시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차선책은 반드시 값을 더 치르게 된다는 것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위장된 협상 작전 그들도 이주를 당한 이산민으로서 사마리아에 정착하는 날부터 하나님을 예배해 왔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자신들 스스로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이라고 여기지만 그들은 분명 우상숭배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신전에 있는 신들의 목록에 하나님을 추가할 정도의 예배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혼합주의적인 하나님 숭배자들이었습니다. 우리에게는 받아들일 것과 받아들여서는 안 될 것을 구분하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때로는 그리스도인들을 배타적이고 독선적이라고 일컫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진리는 원래 배타적입니다. 1+1=2라고 합니다. 그 외의 답에 대해서는 배타적입니다. 마치 나를 낳은 아버지가 한 분이듯이 창조주는 한 분이십니다. 하나님만 예배하는 일에 대해서는 실제로 기독교는 배타적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유일한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3. 노골적인 협박 작전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이스라엘 족장들은 “우리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는데 너희는 우리와 상관이 없느니라.” 하며 신앙의 순전을 지킬 것을 결단하였습니다. 그러자 대적들은 유다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여 건축을 방해하였습니다. 또한 왕에게 글을 올려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을 고소하였습니다. 왕권에 도전하여 정치적 안정을 흔들게 된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였습니다. 둘째는 세금 및 조공 수입에 손해가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적으로는 매우 합리적인 이유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것들도 능가하여 역사하시는 능력의 주님이십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세상 문화와 대립될 수밖에 없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되어서는 안 되지만, 세상과 구분되어야 할 때에 승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Options
- 감격스러운 기공식에스라 3:1-13바사 왕 고레스의 칙령으로 바벨론에 있는 유대 포로들은 몇 차례에 걸쳐 본토로 귀환했습니다. 이사야 40-55장은 대개 그 당시의 흥분과 기대를 노래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시랑과 및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들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나의 택한 자로 마시게 할 것임이라.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 43:19-21) 포로가 본토로 돌아가 성전을 재건하고 성벽을 쌓는다는 것은 광야에 길이 나고 사막에 강이 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감격스러운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1. 마음의 성실함으로 시작 무슨 일을 하든지 그러해야 하지만, 특별히 하나님의 일은 마음의 성실함으로 시작되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때가 되어 일제히 예루살렘에 모였습니다. 아직 성전의 지대는 놓이지 아니하고 주변 국가의 백성들이 두렵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단을 만들고 율법에 기록한 대로 번제를 그 위에 드리고자 하였습니다. 아침과 저녁으로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고 규례대로 초막절을 지켜 번제를 매일 드리고 모든 거룩한 절기의 번제와 예물을 드렸습니다. 성전을 재건하기 이전에 그들은 먼저 하나님께 자신을 드렸습니다. 마게도냐 성도들도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 뜻을 좇아” 헌금하였습니다. 우리도 먼저 자신을 성실한 마음으로 주님께 드리는 것(예배와 헌신)으로 교회를 세워나가야 합니다. 2. 손의 공교함으로 진행 이제 석수와 목수에게 돈을 주고, 솔로몬 성전 건축 때 동원되었던 시돈과 두로의 고급 기술자들이 실질적인 공사를 주도하게 하였습니다. 레바논 백향목도 다시 성전 재건에 사용되었습니다. 좋은 노동력, 기술자, 좋은 자재 확보 등은 성전의 위엄과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데 필수적인 것들입니다. 그리고 전문 일꾼들을 고용하고 책임을 맡은 공사 감독자들이 임명되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은 좋은데 대책이 없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골 3:23)는 말씀은 성실한 마음과 아울러 훌륭한 설계도와 좋은 재료와 높은 기술이 함께 있어야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을 찬양함으로 마무리 포로 생활을 하던 자들이 본토로 돌아가 자신들의 성전을 재건하도록 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신 분도 하나님이시요, 백성의 마음을 감동케 하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필요한 모든 재물과 예물을 준비시켜 주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건축자가 하나님의 전 지대를 놓을 때에 규례대로 하나님을 찬송하는 일은 마땅한 일입니다. 자기들의 기대에 못 미쳐 우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주신 사명대로 영혼 구원하여 제자 삼는 사역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가르쳐서보다는 보여주어서, 교실보다는 현장실습으로, 강의보다는 능력배양으로 제자훈련을 합니다. 사역은 모든 성도들이 분담하여, 그리고 섬기는 리더십을 개발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에 하나님을 찬양함으로 교회가 온전히 세워져 나갈 것을 기대합니다.
- 공동체다운 공동체에스라 2:1-70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의 70년 포로생활을 청산하고 본토로 귀환하도록 상황을 이끌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셨고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는 데 필요한 물질도 공급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 감동을 받은 자들은 다 일어나 유다 도로 돌아와 본성에 이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을 진실로 믿는 자는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소원을 두고 행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그 뜻이 이루어지도록 의욕을 가지고 즐거이 최선을 다하는 이스라엘 공동체의 아름다운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 1. 소명감 넘치는 공동체 바사 왕 고레스는 하나님의 감동을 받고 포로로 잡혀있는 유대 백성들을 본토로 돌아가도록 허락하고, 그들이 성전을 재건하고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예물을 즐거이 드리도록 격려하였습니다. 사실 유다로 돌아가면 폐허가 된 땅에서 생존문제와 싸우며 성전재건을 위하여 고생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바벨론 생활에 안주하여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동을 받고, 하나님의 전을 수축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재건하는 일을 소명으로 아는 5만여 명의 백성들은 다 일어나 예루살렘과 유다 도로 돌아왔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단지 이 땅위에 안주하며 사는 것을 목적으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명을 위해 지음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일하기를 원하십니다. 2. 포용성 있는 공동체 예루살렘에 도착한 사람들 목록은, 족속의 대표 이름과 사람 수, 마을 이름과 그 출신 사람 수, 제사장 이름과 사람 수, 레위 지파와 찬양대 아삽 자손의 수 등 성전 재건에 필요한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에게 주어진 직무를 소중히 여기며 그 책임을 다하였습니다. 그러나 귀환자 중에는 순수 유대인 혈통이 아닌 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여러 사정이 있었겠지만 그들의 이름이 귀환자의 명단에 편견 없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소명감이 넘치고 목표의식이 투철하게 되면 자칫 배타적인 공동체가 되기 쉽습니다. 우리들도 본래 하나님을 모르던 이방인이요 그리스도 밖에 있었던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소명감은 넘치고 목표의식은 분명하되 포용성 있는 공동체가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3. 역량대로 즐거이 드리는 공동체 64-67절을 보면, 귀환한 온 회중의 수가 42,360명, 노비가 7,337명, 노래하는 남녀가 200명, 말이 736, 노새가 245, 약대가 435, 나귀가 6,720이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이 엄청난 무리가 약 4개월간 1,400km 이상을 여행하여 마침내 유다지방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성전을 재건하여 예배를 회복코자 하는 귀환목적을 잊지 않고 하나님의 전 건축을 위하여 예물을 역량대로 즐거이 드렸습니다. 일찍이 사도 바울이 마게도냐 교회를 칭찬한 일이 있었습니다. “저희가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 뜻을 좇아 우리에게 주었도다.”(고후 8:3-5) 여러분들도 예배, 삶공부, 목장모임, 식당봉사, 헌금 등, 자신을 주께 드리며, 힘에 지나도록 드리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고 있음을 감사드립니다.
- 성전, 율법, 성벽에스라 1:1-4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백성들이 오랜 유랑생활 끝에 고국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중 에스라서의 앞부분(1-6장)에서는 스룹바벨의 인도 하에 본국으로 돌아가는 이야기와 성전이 재건되는 장면을, 뒷부분(7-10장)에서는 에스라의 인도 하에 본국으로 돌아가는 이야기와 개혁을 하는 역사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는 백성들이 하나님의 율법으로 돌아오도록 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고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7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택함을 받은 백성들에게 회복시켜 주신 것은 성전, 율법, 성벽, 세 가지였습니다. 지금도 우리 공동체가 힘써야 할 일은, 하나님 중심의 예배, 말씀 중심의 제자훈련, 성도들을 섬김입니다. 1. 스룹바벨을 통한 성전 재건 하나님의 선택함을 입은 백성들이 바빌로니아 포로 후에 고국으로 돌아오는 일은 유다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주제입니다. 이것은 고레스 왕이 태어나기 200여 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에 의해 예언된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서 하신 말씀을 성실하게 이루시려고,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셨습니다. “유다에 있는 예루살렘에 그의 성전을 지으라고 명하셨다.”고 하면서, 고레스는 온 나라에 명령을 내렸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사람은 유다에 있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성전을 짓고, 그 이웃에 사는 사람이 도와주고 재물과 성전에 바칠 자원예물도 들려서 보내도록 하여라.” 하나님의 백성들은 성전에서 제단을 쌓고, 주님께 번제들 드리고, 절기를 지켜야 할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도록 지으신 공동체입니다. 2. 에스라를 통한 율법 회복 에스라가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때, 그는 그곳의 모든 상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악화된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이방 사람들과 서로 결혼하며 그들로부터 배운 악습을 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러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떠는 자는 에스라에게로 모여들었고, 에스라는 너무 마음이 아파서 머리를 뜯고 옷을 찢으며 몹시 슬퍼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애절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에스라는 말씀을 연구하고 준행할 뿐만 아니라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가르치기로 결심을 하였습니다.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라야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다고 예수님은 교훈해 주셨습니다. 말씀을 연구하여 알 뿐만 아니라 그 말씀대로 준행하기로 결심한 에스라의 결심이 바로 여러분의 결심이 되기 바랍니다. 3. 느헤미야를 통한 성벽 재건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도착하자마자 황폐된 것을 비밀리에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성을 재건하도록 힘을 북돋았습니다. 외적으로는 비웃음, 압력, 그리고 음모가 있었고, 내적으로는 쌓인 흙무더기, 두려움, 그리고 욕심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벽은 재건되었고 성문까지 달아졌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기 위한 섬김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 처음부터 마지막까지빌립보서 4:19신명기 11:12 말씀을 읽으면서 신이 났던 적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차지할 약속의 땅을 앞에 두고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몸소 돌보시는 땅이고, 주 당신들의 하나님의 눈길이 해마다 정초부터 섣달 그믐날까지 늘 보살펴 주시는 땅입니다.”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주신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도 주신 약속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보아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라고 이 약속을 확인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서, 주님의 나라에 이를 때까지, 아니 주님의 나라에서도 영원토록 우리를 몸소 돌보시고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우리를 보살펴 주시는 분이십니다. 1. 우리 가운데 선한 일을 시작하신 분(1:6) 빌립보 교회는 드로아에서 하나님이 바울에게 보여주신 환상으로부터 생겨난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케도니아 사람 하나가 바울 앞에 서서 “마케도니아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하는 환상을 본 대로 바울이 건너가서 복음을 전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두아디라 성에서 온 자주 장사인 루디아가 회심을 하였고, 빌립보 감옥의 간수가 회심을 하였습니다. 이 모든 선한 일을 빌립보 사람들 가운데 행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가운데에도 찾아오셔서 주님을 알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2.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는 분(2:13) 하나님께서는 빌립보 성도들 안에서 역사하셔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을 주시고 그것을 또한 실천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시인하고 예수님을 구주와 주인으로 마음속에 모실 때에, 예수님의 십자가 피로 말미암아 우리는 죄사함을 받습니다. 죄의 형벌을 받지 않게 되는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성이 남아있는 연약한 우리에게 여전히 유혹이 다가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시련만 허락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 수 있도록 우리를 붙들어 주십니다. 3. 목표점을 바라보고 달려가게 하시는 분(3:14) 세상 사람들은 더 알고, 더 가지고, 더 잘나고, 더 있기 위하여 아침 일찍 일어나고 저녁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습니다. 그들과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수고했던 바울은, 주님을 만난 후에, 주님이 가장 귀한 분임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닮아가고 하나님께서 위에서 부르신 그 부르심의 상을 받으려고 목표점을 바라보고 달려가는 것으로 삶이 변화되었습니다. 가장 값지고 영원한 것을 위하여 일생을 투자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고 복음을 깨달은 사람은 인생관과 가치관과 성공관이 변화하게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목표가 생기고 삶의 우선순위가 바뀌는 것입니다. 4.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모두 채워주시는 분(4:19) 빌립보 교회 안에는 사도 바울과 복음을 전하는 일에 함께 애썼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 두 여인이 함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다툼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시고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지만, 여전히 연약함과 죄성으로 말미암아 온전치 못한 삶을 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영광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모두 채워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친백성인 이스라엘에게 그러셨던 것처럼,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돌봐주실 것을 믿습니다. Options
- 마음을 넓히십시오빌립보서 4:1-9우리 속담을 보면, 옛 사람들의 개그는 참 깊이가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제 코가 석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자로는 오비체수삼척(吾鼻涕垂三尺)인데, ‘오’는 ‘나’라는 말이고, ‘비체’는 ‘콧물’이라는 말이며, ‘수’는 ‘흘러내린다’는 말이고, ‘삼척’은 ‘석 자’라는 말입니다. 이 말을 합하면, 콧물이 흘러내려 90cm나 되니까, “내 사정이 다급하고 궁해서 다른 사람을 돌볼 겨를이 없다”는 말이 됩니다. 많은 사람들을 대하며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마음을 넓혀야 할 때가 많습니다. 특히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마음을 넓힐 수 있는 비결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1. 주님 안에서 기뻐야 합니다 빌립보 교회의 문제 중의 하나는 분열이 있었던 것인데, 그 중심에 유오디아와 순두게라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전하는 일을 위하여 바울과 함께 애쓴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교회에 분란을 일으킨 것을 생각하면 사랑하기가 어렵지만, 그들의 이름이나 내 이름이나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면 마음을 넓혀서 그들을 도울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관용을 베풀 수 있는 첫 번째 비결은, 주님 안에서 기뻐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기쁨이 없으면 만사가 귀찮거나 짜증스럽고, 다른 사람을 너그럽게 받아들이거나 용서하기가 어렵습니다. 귀신들이 굴복하는 것도 경험한 제자들이 신이 나서 사역보고를 했을 때에도, 귀신들이 굴복한다고 기뻐하지 말고 “너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 기쁨이 있어야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관용할 수 있습니다. 2. 염려 대신에 기도해야 합니다 내 안에 기쁨이 없어도 그렇지만, 내 안에 염려가 가득하면 관용을 베풀기가 어렵습니다.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되지 않을 것 같으면, 사람은 염려를 하기 시작합니다. 돈을 버는 일이든, 취업을 하는 일이든, 학업을 하는 일이든, 사업이나 정치를 하는 일이든, 심지어 주님의 일까지도 내 생각대로 되지 않을까봐 염려를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무엇이든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을 오직 기도와 간구로 하고, 바라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주신 분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일이라면 무엇을 선물로 거저 주시지 않겠습니까? 다만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는 조급함이, 부정적인 방법까지도 사용하고 싶은 마음이,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만족하지 못하는 우리의 욕심이 문제이겠지요. 3. 참된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분명한 생각의 기준이 없으면 관용하기가 어렵습니다. 요새는 너 나 할 것 없이 기준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바른 인생관이나 가치관, 그리고 성공관이 없으니까, 옆 사람이 잘 되어 보이면 그저 소외될까봐 유행이라는 미명하에 따라합니다. 아파트의 인테리어, 자동차의 디자인, 교복치마 길이, 스타킹과 구분하기도 힘든 바지 등. 한 마디로 정직, 도덕, 양심 등에 대한 윤리의식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바른 기준을 가질 것을 제시했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참되며, 경건하며, 옳으며, 순결하며, 사랑스러우며, 명예로우며, 덕이 되고, 칭찬할 만한 일인지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 안에서 바른 기준을 가지고 생활을 하면 흔들림이 없어서 다른 사람에게 관용할 수 있는 여유가 생깁니다. 바울처럼 우리 모두가, “여러분은 나에게서 배운 것과 받은 것과 듣고 본 것들을 실천하십시오.”라고 담대하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이렇게 세계관을 가지십시오빌립보서 3:17-21계속해서 유행이 바뀌고 문화가 급변하는 세상 속에 살다보면,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당황할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신앙과 양심이 흔들리는 경우도 생깁니다. 특히 성경에서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지 않은 분야를 접하게 되면 그리스도인들끼리도 의견이 엇갈리고 갈등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하여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을 대하여 가져야 할 태도는 무엇인지 본문 말씀을 묵상해 보십시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며, 세상을 대하여 어떤 자세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 그 기초를 세우시기 바랍니다. 1. 세상에서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바울은 먼저 예수님을 본받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형제들에게 “나를 본받으라.” 하였고, 또한 다른 사람에게 본이 되는 삶을 살 것을 권면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속에 사시면서, 심지어 죄인과 세리들과도 식사를 함께 하시는 삶을 살았지만, 그들에게 영향을 받지 아니하고 영향을 주는 삶을 사셨습니다. 바리새인이나 서기관과 같이 권세 있는 자들 앞에서도 진리를 선포하고 진리에서 벗어난 일들을 꾸짖기도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경건한 삶을 지키기 위하여 세상에서 어떻게 구별되어야 할지 기준을 세워놓는 것이 필요합니다. 옷의 노출 정도, 삼가야 할 음식의 범위, 주택의 호화스러운 수준, 성형수술의 범위, 그리고 레저 스포츠의 한계 등에 대해서 무조건 금기시하는 것도 잘못이지만 사람들에게 비방거리를 제공해서도 안 됩니다. 2. 세상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바울 당시에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를 대적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기보다는 자기 배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며, 수치스러운 일을 하고서도 도리어 자랑으로 여겼습니다. 그들은 오직 세상일에만 관심을 두었습니다. 바울은 이런 현상에 대하여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형제들에게 여러 차례 이야기하였고 다시 주의를 주기 위하여 눈물을 흘리며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중심적인 사고, 자살률 급증, 이혼율과 결손가정의 증가, 어렵게 홀로 사시는 노인들이 많아지는 현실에 대해 그리스도인들은 마음이 안타까워야 정상입니다. 돈과 기타 욕심 때문에 일어나는 잔인한 사건들, 이러한 일들에 대하여 올바른 비판 뿐 아니라 안타까운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3. 주님을 향한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과 분리되지 아니하고 그 안에서 살고 있지만, 그래도 그 안에서 구별된 삶을 살 수 있는 비결은 하늘에 있는 우리의 시민권을 소망하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그곳에서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이며, 그 이후로는 만물을 다스리시는 능력으로 완전한 나라를 이루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천한 몸을 변화시켜 주님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언젠가 주님의 날에 이루어질 완전한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지금 주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성품이 변하고 가정에서 가족에 대한 태도에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직장에서 업무와 직장동료를 대하는 태도가 바뀌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서로 지체가 된 성도들을 섬기는 모습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그리고 이 사회에 빵과 복음과 윤리를 전하는 일에 책임을 느낄 줄 알아야 합니다.
- 이렇게 성공관을 가지십시오빌립보서 3:12-16가정주부에게 가장 추구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아마 성공적인 자녀교육이라고 답하는 사람이 제일 많을 것입니다. 직장인에게 물으면 아마 직장에서 상사로부터 인정을 받고 자기 분야에서 성공을 이루는 것이라고 답할 것입니다. 성공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성공과 세상적인 관점에서의 성공입니다. 이 둘의 성공을 다 이룬 인물을 생각해 보십시오. 세상적으로 성공했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실패한 사람도 생각해 보십시오. 세상적인 면에서 실패했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성공한 사람도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둘 다 실패한 사람도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바른 성공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1. 성공하는 사람은 바른 비전과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열심히 살았고 또한 목표가 있었습니다. 그의 목표는 하나님에 대한 열심을 가지고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그가 예수님을 만난 후에 오히려 복음을 증거하는 사람으로 목표가 바뀌었습니다. 목표가 바뀐 후 그는 자신의 삶을 평가하면서 만족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만약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고 잘못된 목표를 가지고 끝까지 열심히만 살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비전이란 완전히 이룰 수 없어 계속 추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세계복음화, 일꾼 양성 등이 이에 해당됩니다. 목표란 사업가가 되는 것, 선교사가 되는 것 등입니다. 실천 사항이란 영어 향상, 컴퓨터 사용 숙달 등입니다. 바른 비전과 목표가 있는 사람이 성공할 수 있습니다. 2. 성공하는 사람은 계속 배우고 성장해야 합니다. 바울은 한 일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계속해서 배우고 성장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스스로 목표에 도달했다고 생각지 아니하고 여전히 배워야할 것이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단지 그리스도께서 왜 자기를 구원해 주셨는가를 깨달아서 그리스도께서 자기에게 바라는 사람이 될 그날을 향해서 계속 노력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있는 것에 만족할 줄 아는 자족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자족하는 삶은 안주하는 삶과는 다른 삶입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미래지향적이고 성실하며 신뢰할 만한 사람입니다. 그는 과거에 집착하지 않고 앞에 있는 것을 바라보며 목적지까지 달려서 상을 타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상을 주시려고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3. 성공하는 사람은 대인관계에서 성숙해야 합니다. 믿음이 성숙한 사람은 생각도 성숙하고 인격이 성숙하여 원만한 대인관계를 이룰 것을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동일하게 믿고 있고, 같은 진리를 추구하는 삶을 살고 있어도 개인 취향이나 성격, 그리고 자라온 배경과 교육을 받아온 배경에 따라 얼마든지 생각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성공한 인생을 업무달성(Fulfillment), 성실성(Faithfulness), 친구(Friends), 그리고 용서(Forgiveness)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여기에서도 친구나 용서의 부분은 좋은 대인관계와 연관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신앙 안에서 바르게 성숙한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차이를 인정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사람입니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성숙하지 못한 사람도 배려할 줄 알아야 합니다. 바른 비전, 지속적인 성장, 인격 성숙 중에서 가장 자신 있는 부분과 부족하여 개발해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나누어 보십시오. Option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