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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 2020.08.30

반대가 따르는 하나님의 일

에스라 4:1-24
오늘 본문의 말씀은 성전 재건 공사를 반대하는 일과 성벽 공사를 반대하는 일이 중복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연대기적으로 기록했는가 주제적인 흐름을 따라 썼는가도 궁금한 내용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문제들은 신학자들에게 맡기기로 하겠습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에 초점을 맞추기 원합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일에는 사단도 역시 반대 작업을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승리하시고 사단이 패한다는 사실입니다. 주님께서 기뻐하실 일을 행하는 동안에 어려움이 있더라도 실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홀로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1. 위장된 협조 작전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유다와 베냐민 사람들이 본토에 돌아와 하나님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는 일은 반대 세력들에게 불길한 느낌을 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예루살렘 성이 역동적인 예배 분위기가 감도는 거룩한 도시로 복구되려 하자 사마리아에 본거지를 둔 대적자들의 방해가 교묘하게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로 너희와 함께 건축하게 하라.” 함께 하겠다는 말이 마치 협조하겠다는 의도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숨은 의도는 성전재건을 가로막으려는 위장된 협조 작전임을 간파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도 사단은 교묘하게 접근해 옵니다. 마치 영적인 일에 도움이 될 것 같은 차선책을 제시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차선책은 반드시 값을 더 치르게 된다는 것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위장된 협상 작전 그들도 이주를 당한 이산민으로서 사마리아에 정착하는 날부터 하나님을 예배해 왔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자신들 스스로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이라고 여기지만 그들은 분명 우상숭배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신전에 있는 신들의 목록에 하나님을 추가할 정도의 예배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혼합주의적인 하나님 숭배자들이었습니다. 우리에게는 받아들일 것과 받아들여서는 안 될 것을 구분하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때로는 그리스도인들을 배타적이고 독선적이라고 일컫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진리는 원래 배타적입니다. 1+1=2라고 합니다. 그 외의 답에 대해서는 배타적입니다. 마치 나를 낳은 아버지가 한 분이듯이 창조주는 한 분이십니다. 하나님만 예배하는 일에 대해서는 실제로 기독교는 배타적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유일한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3. 노골적인 협박 작전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이스라엘 족장들은 “우리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는데 너희는 우리와 상관이 없느니라.” 하며 신앙의 순전을 지킬 것을 결단하였습니다. 그러자 대적들은 유다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여 건축을 방해하였습니다. 또한 왕에게 글을 올려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을 고소하였습니다. 왕권에 도전하여 정치적 안정을 흔들게 된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였습니다. 둘째는 세금 및 조공 수입에 손해가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적으로는 매우 합리적인 이유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것들도 능가하여 역사하시는 능력의 주님이십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세상 문화와 대립될 수밖에 없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되어서는 안 되지만, 세상과 구분되어야 할 때에 승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Op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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