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S
말씀
- 교회다운 교회에베소서 4:1-16우리가 ‘주기도문’으로 외우는 기도문은 엄밀하게 말하면 ‘이렇게 기도하라’고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문입니다. 주님께서 기도하신 ‘주기도문’은 요한복음 17장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님은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신 것입니다. 그 중에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신 내용에는 예수님께서 아버지와 하나가 되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가 되기를 간절히 원하신 예수님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지켜주셔서, 우리가 하나인 것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주님의 이 기도는 우리가 이루고 있는 교회 안에 응답된 모습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하나가 된 교회’가 바로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다운 교회입니다. 1. 하나가 되기를 힘쓰는 교회(Unity) 많은 경우에 하나가 되는 것을, 획일적으로 통일되는 것과 혼돈할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겸손과 온유를 본받아 서로 깍듯이 대하는 정신을 우리는 동일하게 가져야합니다. 주님을 닮아가는 과정 중에 있는 우리 모두는 작업 중인 작품이므로 서로에 대해 오래 참음으로써 사랑으로 서로 용납할 줄 알아야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를 평화의 띠로 묶어서 하나가 되게 해주신 것을 힘써 지켜야합니다.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요, 성령님도 하나, 부르심의 목표인 소망도 하나, 주님도 한 분, 믿음도 하나, 세례도 하나입니다. 이와 같이 교회가 하나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의 본질을 알아야 합니다. “영혼을 구원하여 예수님의 제자를 만드는 일”은 주님의 지상사명이며 교회의 본질이요 존재 목적입니다. 2. 다양성을 인정하는 교회(Diversity)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께서 나누어주시는 선물의 분량을 따라서 은혜를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예언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도자로, 또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성도를 준비시켜서, 성도들로 하여금 봉사의 일을 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려는 것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목회자는 성도들로 하여금 사역을 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사역을 할 수 있도록 훈련을 시키고, 적소에 임명을 하기도 합니다. 성도들은 목양을 하고 교회를 세웁니다. 그리하면 목회자들은 기도와 말씀을 전하고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성도들을 준비시키는 일은, 사역 현장에서 본을 보이는 일을 통하여 실습을 하고 능력을 배양하는 일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사역의 현장에서는 사역의 분담이 이루어집니다. 3. 서로 연결되고 결합된 교회(Interrelation) 우리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시고 있는 한 몸입니다. 한 몸에는 많은 지체가 있지만 그 지체들이 다 같은 일을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지체들은 서로 연결되고 결합이 되어 함께 일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고 살면서, 모든 면에서 자라나서,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에게까지 다다라야 합니다. 예수님은 섬기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시고,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치를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내주러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인 우리들의 인생 목적은 섬김에 있습니다. 진정한 리더십은 섬김에서 나옵니다. 섬긴다는 것은 공동체의 필요가 나 자신의 필요보다 우선한다는 뜻입니다. 교회의 존재 목적, 예수님의 제자 훈련 방식, 성경적인 사역 분담, 섬기는 리더십을 교회의 네 기둥으로 삼아 교회다운 교회를 이루는 축복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Options
- 성도의 신앙을 위한 중보기도에베소서 3:14-21기도와 관계된 어느 책에서 이런 글귀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기도를 받으려면 직장을 잃거나 병이 들어야 한다.” 물론 직장을 잃거나 병이 들면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추상적인 것보다 실제적인 내용으로 기도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말 속에는 우리의 기도가 얼마나 제한적이며 현세적인가를 말해주는 의미도 들어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비밀을 알았습니다. 그 비밀이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적 은혜를 주시고자 창세전부터 계획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 사함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습니다. 성령은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시기 위하여 인치셨습니다. 바울은 이와 같이 측량할 수 없는 크신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알고 큰 기도를 드렸습니다. 1. 속사람이 성령으로 강건하도록 그리스도인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로마서 12:2)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보혜사 성령님의 도우심 없이 이 세대를 본받지 않는 삶을 살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우리의 속사람이 성령으로 강건해져야 합니다. 속사람이 연약한 사람은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물결처럼 환경의 지배를 받는 사람입니다. 매사에 의심을 하여 두 마음을 품거나, 자기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날씨, 출생지, 부모, 과거의 실수나 상처 등)을 속상해 하거나 걱정하는 사람은 속사람이 연약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속사람이 성령으로 강건한 사람은 여간해서 환경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원하시는 일에 초점을 맞추고 사는 사람은 속사람이 강건한 사람입니다. 2. 사랑 가운데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지도록 물가에 심겨서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있는 나무는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합니다. 심지어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않습니다.(예레미야 17:8 참조) 믿는 자들은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구세주로 모셔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를 마음 가운데 주인으로 모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 뿌리를 그리스도의 사랑 가운데 내려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견고한 터 위에 세워야 합니다. 그 터는 하나님의 사랑이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내 말을 듣고 그대로 행하는 사람은, 반석 위에다 자기 집을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다.”(마태복음 7:2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와 같이 말씀을 알고 삶 가운데 순종하는 사람은 견고한 터 위에 믿음의 집을 짓는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3.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하나님의 충만하심으로 충만하도록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실증하셨습니다.”(로마서 5:8) 그리스도인이 되는 첫 단계는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는 것입니다. 어느 누가 죄인을 대신하여 자기의 목숨을 내놓겠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인을 위하여 베푸신 사랑은 우리의 지식으로는 이해하거나 설명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해하는 넓이, 길이, 높이, 깊이를 아는 만큼 우리는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게는 모든 것이 충만하게 있습니다. 저는 그 충만하신 것으로 여러분 모두를 충만하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여러분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드립니다.
- 우리를 지으신 목적에베소서 2:1-10구원은 무엇으로부터 구출되어 무엇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받은 우리의 구원은, 죄로 말미암은 영원한 형벌로부터 구출되어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for me)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셨고, 우리의 죄 값을 치르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게 만드셨습니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in me) 거하시면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다운 모습으로 성화되도록 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through me) 일하기 원하십니다. 본문 10절에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미리 준비하신 것은, 우리가 선한 일을 하며 살아가게 하시려는 것입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1. 옛 생활에서 사람은 어머니의 태로부터 처음 태어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됩니다. 죄로 말미암아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과 단절이 되었던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죄 문제가 해결됨으로써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은 여전히 허물과 죄로 인해 생명의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죽은 상태에 있습니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은 이 세상의 풍조를 따라 살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기준이 없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사는 생활태도를 따르는 삶을 삽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반대하는 ‘공중의 권세를 잡은 통치자’의 지배를 받고 있으면서, 그와 함께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삶을 삽니다. 그리고 죄의 형벌인 사형선고를 받은 진노의 상태에서 살고 있습니다. 2. 오직 은혜로 오래 전 여러 나라에, 탄광에서 매몰되었다가 구출된 광부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무 값도 지불하지 않고 공짜로 구출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을 구출하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고생하며 많은 돈을 들여서 그들을 구출할 수 있는 통로를 뚫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값싸게 나온 것이 아니라,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위하여 엄청난 값을 치른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기 전에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 세상의 풍조를 따라 옛 생활을 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아무 조건 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영원한 진노로부터 구출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도덕적인 삶을 살았거나 성경대로 살았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즉 공짜로 얻은 것입니다. 3. 선한 일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선한 일을 하게 하시려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선한 일을 행하심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선한 일을 하며 살아가게 하십니다. 우리가 해야 할 선한 일은 무엇일까요? 우선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어둠에서 불러내어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하신 주님의 은혜가 얼마나 풍성한지를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지금도 어둠에 있는 영혼들이 구원을 받도록 도와야 합니다. 또한 우리 속에 여전히 남아있는 우상을 제거해야 합니다. 물질과 명예 등을 향한 잘못된 가치관을 바로잡고, 아직도 해결이 되지 않은 과거의 상처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나의 시선을 주님께로 향하고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헌신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Options
- 구원의 신비에베소서 2:1-10한때 구자억 목사 트로트라는 노래가 유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목사가 트레이닝복을 입고 춤을 추면서 트로트를 부르는 것에 대한 논란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 노래의 가사는 이렇습니다. 구원의 신비를 매우 쉽게 말해주는 가사입니다. “아따 참말이여 믿을 수 없겄는디, 하나님 인간이 되어 이 땅에 오셨다고. 아따 참말이여 믿을 수 없겄는디, 하나님 날 위해서 대신 죽으셨다고. 이리저리 사방팔방 둘러봐도, 어디가 이쁜 구석 있어서, 하나님이 친히 찾아오셔서, 그 목숨을 내준단 말이여.” 1. 구원의 동기=하나님의 자비가 넘치심 일찍이 솔로몬이 추구했던 인생이나 우리의 인생이나, 규모만 다를 뿐이지, 몸과 마음이 원하는 대로 행하는 모습이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전 2장) 그는 우선 마음껏 즐겨보려고 했습니다. 이것이 쓸데없는 것임을 안 그는, 술로 자신의 육신을 즐겁게 하고, 낙을 누려보려고 했습니다. 궁전도 지어보고 과수원을 만드는 등 큰일을 성취해 보았습니다. 목축업도 크게 해보았고, 온갖 보물도 가져보았고, 누리고 싶은 낙은 무엇이든 삼가지 않았습니다. 세상에 죄가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 가운데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더욱 없습니다. 깨닫는 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에게 일방적으로 자비를 넘치도록 베푸셔서, 성령님의 능력을 힘입어 “예수는 주님이시다.” 고백을 하고 구원을 받도록 해주셨습니다. 영원히 형벌 가운데 있을 수밖에 없는 진노로부터 특별사면을 받도록 해주신 것입니다. 2. 구원의 방법=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세상에서 행해지는 특별사면은, 어느 정도 조건을 갖추어야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특별사면은 전적인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은혜로’라는 말은 조건 없이 받는 사랑이라는 말입니다. ‘선물’이라는 말은 공짜로 받는다는 말입니다.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라’는 말은, 우리의 도덕적인 행위나 성경대로 살려는 노력에 의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 중에 어느 누구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로마서 5:7-8은 명확하게 이 사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의인을 위해서라도 죽을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더욱이 선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감히 죽을 사람은 드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실증하셨습니다.” 3. 구원의 목적=선한 일을 하도록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선한 일을 하게 하시려고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하나님께서 만드신 작품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우리는 건강한 자아상을 가져야 합니다. 결혼과 가정을 위하여 남자와 여자로 만드신 것을 알고, 건전한 가정관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만물을 다스리라는 말씀을 기억하며, 건실한 직업관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죄로 말미암아 타락한 자아상, 가정관, 직업관을 회복해 주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듭나게 해주시고, 선한 일을 하며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가장 선한 일은 영혼을 구원하고 주님의 제자를 삼는 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쓰임을 받으며, 또한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에 쓰임을 받도록 도와주는 일입니다.
-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신령한 복에베소서 1:1-14에베소서는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이 온 우주에 가득 차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서신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이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셨으므로, 그 사랑을 입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모두 하나가 되기를 힘써야 할 것을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1장은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신령한 복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 창조 전에,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도록 우리를 택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죄 용서를 받게 해주셨고, 성령님은 그 담보로 우리에게 약속의 날인을 해주셨습니다. 1.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택하심 바울은 에베소에 사는,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신 하늘에 속한 온갖 신령한 복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었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사람이 되도록,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의 죄 값을 치르도록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몸값으로 우리를 구속(救贖)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도록 택하여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 전에는, 우리의 생각대로 살았습니다. 육신의 정욕대로 살면서, 내 몸과 마음이 원하는 대로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죄인 중의 하나였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영원히 죄의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우리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값을 치르고 우리를 구해주셨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찬양합시다. 2. 그리스도의 피로 죄 용서받음 구약시대에 모든 제사장은 날마다 제단에 서서 직무를 수행하면서 똑같은 제사를 거듭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 제사로는 죄를 없애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성자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고, 단 한 번의 영원히 유효한 제사를 드리신 뒤에 하나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단 한 번의 희생제사로, 믿는 우리들을 영원히 완전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죄와 불법이 용서되었으니, 죄를 사하는 제사가 더 이상 필요 없다고 선언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제한된 머리로는 이 놀라운 사실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지혜와 총명을 넘치게 주셔서, 하나님의 신비한 뜻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또한 성령님의 능력을 힘입어서, “예수는 주님이시다.” 하고 고백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3. 성령의 날인을 받음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인으로 마음에 맞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죄의 형벌로부터 해방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는 여전히 죄의 속성이 남아있어서 죄의 권세로부터 계속 벗어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언젠가 주님의 나라가 임하게 되면, 그때에는 죄의 존재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약속을, 우리는 소망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성부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 삼아주시고, 성자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 값을 치러주신 것에 대한 보증으로, 성령 하나님께서는 날인을 해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순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에 대한 보장으로 성령의 날인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완전히 구원받을 때까지 우리가 상속받을 것을 또한 보장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합시다.
- 바람직한 공동체의 모습에스라 9:1-15교회를 시작하기 전에 스위스에 있는 라브리 공동체, 프랑스에 있는 떼제 공동체 등을 가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이전에 선교단체의 형제들과 공동체 생활을 해오면서 공동체 생활을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터라 더 관심 있게 공동체를 가보았습니다. ‘바람직한 공동체란 어떤 모습일까?’ 목회를 하면서 늘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질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람직한 공동체의 이상적인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물론 주님의 나라가 이 땅에 온전히 임할 때까지 어느 누구도 완전한 공동체를 이루지는 못할 것입니다. 우리 안에는 여전히 연약함과 죄성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주님 나라에서 온전하게 이루어질 공동체를 꿈꾸며 우리가 추구해야 할 완전한 공동체의 모습은 무엇일까요? 1. 함께 아파할 수 있는 공동체 지난주까지 우리가 에스라서를 통해 살펴본 바와 같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놀랍게 복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8장에서는 하나님의 복은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이와 반대로 9, 10장은 포로기 이후에 이스라엘이 범한 심각한 죄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본국에 귀환한 이유는 그들의 선조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돌아온 백성들은 이방 족속과 통혼을 하는 죄를 범하였습니다. 그것도 방백들과 두목들이 이 죄에 더욱 으뜸이 되었습니다. 에스라는 이 일을 듣고 말할 수 없는 슬픔으로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 앉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의 탓으로 돌리지 아니하고 함께 아파할 수 있는 공동체가 참 공동체입니다. 2. 공동체의 문제를 나의 죄로 고백할 수 있는 공동체 에스라는 근심 중에 일어나 속옷과 겉옷을 찢은 대로 무릎을 꿇고 하나님을 향하여 손을 들고 죄를 자백하였습니다. “이 백성들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라는 기도 대신에, 그는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라고 고백을 시작했습니다. 우상숭배 금지 계명을 무시한 죄, 이방인과 결혼하지 말라는 명령을 어긴 죄를, 그는 “우리”죄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종종 교회의 문제나 나라의 문제를 접하게 될 때에, 우리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문제로 여기고 그들을 탓하고 그들에게 손가락질을 할 때가 많습니다. 나도 그들과 함께 이 나라의 백성입니다. 나도 그들과 함께 교회의 일원입니다. 공동체의 문제를 나의 죄와 우리의 죄로 고백하는 공동체가 참 공동체입니다. 3.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 변화를 기대할 줄 아는 공동체 에스라의 기도는 단순히 과거에 대한 회상이나 현재 상황에 대한 파악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에스라는 주님의 백성들에게 회개와 함께 결단한 것을 행동으로 옮길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과거의 죄를 말할 때에는, 그 죄를 다시 반복하지 말자는 뜻에서 말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과거에 대한 회상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원동력이 되어야 합니다. 에스라는 또한 자비로우신 하나님을 신뢰하였습니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백성들을 용서하시고, 귀향민을 통해 끊어진 역사의 맥을 잇도록 하는 특권을 주신 하나님을 그는 기억하였습니다. 그리고 조상의 죄를 반복하는 백성들을 용서하시고 복을 주시며 생명을 주신 사실을 되새기면서,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에 대한 기대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 공동체의 변화를 기대할 줄 아는 공동체가 참 공동체입니다.
-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지려면에스라 8:21-36행복한제자교회가 이곳으로 이전을 앞두고 먼저 했던 일은, 기도로 준비하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새 건물에서 예배를 드리기 전에 우리 자신을 먼저 새롭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겠지요. 다음에 건물 매입과 리모델링 비용을 위하여 재정적으로 실제적인 준비를 하기 위하여 건축헌금을 드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 위에 하나님의 선한 손이 도우셔서 공사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에스라는 백성들에게 금식을 선포하고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여 그 응낙하심을 얻었다고 말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드린 은과 금과 기명들을 달아서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 위에 하나님의 선한 손이 그들을 도우셨다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1. 영적인 준비 에스라는 백성들과 함께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여행을 하기 전에 영적인 준비를 했습니다. 그는 “나는 모두에게 금식하라고 선언하였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와 우리 자식들 모두가 재산을 가지고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이 보살펴 주시기를 엎드려서 빌었다.”고 기록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손은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시고, 금식하며 간구하는 자들의 기도를 들어 응답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에 너무 바빠서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시간을 놓친다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시간을 갖지 못한다면 이것은 큰 실수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십니다. 우리의 최우선순위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2. 실제적인 준비 에스라는 백성들과 함께 영적인 준비를 한 후에 실제적인 준비를 했습니다. 에스라는 지도자들을 선택해서 성전에 필요한 물건들을 운반하는 임무를 주었고, 그 물건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하면 그 물건들의 무게를 달아보겠다고 말하면서 삼가 지키도록 지시했습니다. 이 물건들은 성전건축을 위한 것들로써, 바사 관리들과 귀환하지 않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준 것이었습니다. 다시 무게를 달아보는 것은 사람을 의심해서라기보다는 유혹 받기 쉬운 사람들에게서 유혹거리를 없애주는 좋은 방법이 될 수도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실제적인 준비와 책임 분담 등도 성실하게 해야 합니다. 3. 하나님의 도우심 에스라와 함께 귀환하는 사람들이 바벨론을 출발해서 아하와 강을 지나 여행한 총 거리는 약 1,400km가 넘습니다. 그들은 전혀 군사적인 지원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여행을 하는 동안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에스라는 “가는 길에 매복한 자들의 습격을 받기도 하였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잘 보살펴 주셔서 그들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며 주님께서 귀환하는 사람들을 보호하셨음을 간증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집을 세우는 사람의 수고가 헛되며, 주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된 일이다.”(시 127:1) 하나님의 사람으로 준비되며 실제적인 준비를 함과 더불어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으로, 우리 성도들의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실 것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사람을 준비시키시는 하나님에스라 7:1-28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가장 유익한 길로 인도하시고 마땅히 행할 길로 인도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훈계하시기 위하여 구부러진 막대기와 같은 이방나라를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7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오게 하시면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공동체에 세 가지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교회 공동체의 뼈대를 이루는 것입니다. 첫째는, 우리가 지난 주까지 살펴본 대로 성전을 재건하는 일이었습니다. 성전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오늘 본문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게 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느헤미야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들을 보호할 수 있는 성벽을 쌓는 일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 이 셋은 세상에서 영원한 세 가지입니다. 영원한 이 세 가지를 위해 우리의 일생을 투자하는 것은 결코 어리석은 일이 아닙니다. 1. 말씀 사역자를 준비시키신 하나님 에스라가 드디어 바벨론에서 올라왔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 즉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사였습니다. 학사라는 말은 기록자, 서기관, 비서, 작가 등의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단어입니다. 즉 하나님의 율법을 읽고 그것을 가르칠 수 있는 학식이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아닥사스다 왕의 도움도 많이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성전을 재건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서있는 자들이 되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말씀 사역자를 세우셨습니다. 바로 에스라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들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준비시키기를 원하십니다. 2. 백성을 준비시키신 하나님 성전이 진정으로 회복되기 위해서는 그 안에 있을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삶 가운데 적용하는 일이 일어나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한 적임자는 제사장이요 학사인 에스라였습니다. 본문 첫 부분에 소개되어 있는 에스라의 족보는 에스라가 개혁을 추진할 합법적인 인물임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는 동시에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에스라를 세우신 것은 백성들을 준비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지금도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은사를 주시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여러분에게 주신 은사는 무엇이며 교회를 위하여 그 은사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3. 왕의 마음을 준비시키신 하나님 바사 왕 아닥사스다의 조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예루살렘 귀환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 조서는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을 철저하게 보장해 주었습니다. 성전 제사에 필요한 모든 물품을 지원해 주었으며 하나님의 율법으로 백성을 지도하고 재판하는 권한도 주었습니다. 에스라는 귀환의 모든 과정에서 하나님의 손이 그와 함께 하시는 것을 체험하였습니다. 많은 경우에 문제와 관련된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움직이셔서 그 뜻을 이루어 가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많은 일들이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시는 과정 하나하나에 섭리하시며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기대하십시오. Options
- 말씀을 대하는 바른 태도에스라 7:10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백성들이 오래 유랑생활 끝에 고국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중 에스라서의 앞부분(1-6장)에서는 스룹바벨의 인도 하에 본국으로 돌아가는 이야기와 성전이 재건되는 장면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뒷부분(7-10장)에서는 에스라의 인도 하에 본국으로 돌아가는 이야기와 개혁을 하는 역사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는 백성들이 하나님의 율법으로 돌아오도록 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혼탁한 세상에서 견고하게 믿음의 삶을 살기 위한 방법은 우리의 행보를 주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의 말씀을 대하는 바른 태도는 무엇일까요? 에스라는 우리에게 좋은 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 말씀을 연구할 것 에스라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어떻게 행하는 것이 옳은가를 교훈해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어디에서 벗어났는가를 책망해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어떻게 바른 길로 돌아갈 수 있는지 가르쳐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믿음을 견고하게 세워주어서 지속적으로 의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으므로, 우리는 말씀을 통하여 영생을 얻습니다.(요한복음 5:39) 청년들은 말씀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할 수 있습니다.(시편 119:9)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있을 때에 우리는 우리의 걸음에 실족함이 없을 것입니다.(시편 37:31) 2. 말씀을 준행할 것 에스라가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때 그는 그곳의 모든 상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악화된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이방 사람들과 서로 결혼하며 그들로부터 배운 악습을 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러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떠는 자는 에스라에게로 모여들었고, 에스라는 너무 마음이 아파서 머리를 뜯고 옷을 찢으며 몹시 슬퍼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애절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말씀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지만,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다고 예수님은 교훈해 주셨습니다. 말씀을 연구하여 알 뿐만 아니라 그 말씀대로 준행하기로 결심한 에스라의 결심이 바로 여러분의 결심이 되기 바랍니다. 3. 말씀을 가르칠 것 에스라는 말씀을 연구하고 준행할 뿐만 아니라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가르치기로 결심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합니다. 소성케 한다는 말은 “본래 상태로 회복시키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합니다. 우리가 혼돈 가운데 방황할 때 말씀은 확실한 삶의 목표와 방향을 제시해 주기 때문입니다. 말씀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합니다. 그리고 말씀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해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가르치기로 결심하는 일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분부하신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지상사명에 동참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말씀으로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여 별과 영원토록 비치는 삶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 성전 완공의 기쁨에스라 6:1-22에스라 1-6장은 유월절과 무교절을 지키는 내용으로 성전 재건축에 관한 이야기를 마치고 있습니다. 성전 재건축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시며 그 일을 통해 이스라엘의 과거와 다시 연속성을 갖게 되었다는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성전 재건을 완공하도록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즐거이 성전 봉헌식을 올리고 하나님께서는 저희로 즐겁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즐거움의 원천이십니다. 또한 많은 반대와 역경에도 불구하고 “왕의 마음을 저희에게로 돌이켜” 성전을 재건하게 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모든 성공의 원천이십니다. 1. 성전에 대한 하나님의 때 다리오 왕은 성전 재건을 반대하는 자들의 의견을 거절하였습니다. 14년이나 성전 재건을 중단하도록 만들었던 것과는 반대로, 그는 성전 재건을 “지체치 않게 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전 재건에 드는 비용과 번제에 드는 비용을 세금에서 지불하도록 명령하였습니다. 동시에 성전 재건에 대한 반대를 원천 봉쇄하며, 동시에 모든 사건들의 배후에 하나님의 뜻이 있었음을 강조했습니다.(12절) 성전이 완성되는 일(하나님의 일)은 사람보다 하나님께서 더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방 왕들이 마음을 결정하는 일에도 하나님은 간섭하십니다. 논두렁의 물줄기가 농부의 삽질에 따라 방향이 정해지듯이 왕의 마음은 하나님께서 움직이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성전 완공과 봉헌식의 기쁨 재건된 성전의 모습은 그리 큰 위용을 갖춘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솔로몬의 성전과 비교해볼 때 모든 면에서 규모가 훨씬 작았습니다. 그렇지만 귀환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즐거이 최선을 다해 하나님께 예물을 드렸습니다. 성전을 건축하는 일이 형통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의 권면이 있었고, 그 지역을 통치하던 바사 왕들의 재확인된 명령이 있었습니다. 성전에서 예배를 회복하게 된 것은 이제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거하시면서 예배를 받으시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예배를 받으시기 원하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것은 특권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 자체를 특권으로 알며 예배의 감격을 늘 체험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3. 성전에서 이루어져야 할 일 이스라엘의 귀환자들은 그들 주변에 거주하는 이방인들의 부정한 예식으로부터 자신들을 지켜서 그 몸을 정결케 한 모든 사람들을 초청했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더불어 유월절 식사를 하였습니다. 유월절과 7일 동안의 무교절은 이스라엘이 이제 포로 시대를 마감하고 다시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했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포로로 잡혔다가 귀환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스스로 구별하여 과거의 더러운 것을 버리고 새로 건축해 봉헌한 성전에서 다시 시작할 준비를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어린 양이 되심으로써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무교절의 의미는 옛 누룩을 버리고 자신들을 새롭게 준비하는 의미입니다. 1년 반이 지났지만, 우리도 새로운 건물에서 날마다 구원의 감격을 새롭게 하고 우리 자신을 새롭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