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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 2020.10.11

바람직한 공동체의 모습

에스라 9:1-15
교회를 시작하기 전에 스위스에 있는 라브리 공동체, 프랑스에 있는 떼제 공동체 등을 가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이전에 선교단체의 형제들과 공동체 생활을 해오면서 공동체 생활을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터라 더 관심 있게 공동체를 가보았습니다. ‘바람직한 공동체란 어떤 모습일까?’ 목회를 하면서 늘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질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람직한 공동체의 이상적인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물론 주님의 나라가 이 땅에 온전히 임할 때까지 어느 누구도 완전한 공동체를 이루지는 못할 것입니다. 우리 안에는 여전히 연약함과 죄성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주님 나라에서 온전하게 이루어질 공동체를 꿈꾸며 우리가 추구해야 할 완전한 공동체의 모습은 무엇일까요? 1. 함께 아파할 수 있는 공동체 지난주까지 우리가 에스라서를 통해 살펴본 바와 같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놀랍게 복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8장에서는 하나님의 복은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이와 반대로 9, 10장은 포로기 이후에 이스라엘이 범한 심각한 죄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본국에 귀환한 이유는 그들의 선조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돌아온 백성들은 이방 족속과 통혼을 하는 죄를 범하였습니다. 그것도 방백들과 두목들이 이 죄에 더욱 으뜸이 되었습니다. 에스라는 이 일을 듣고 말할 수 없는 슬픔으로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 앉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의 탓으로 돌리지 아니하고 함께 아파할 수 있는 공동체가 참 공동체입니다. 2. 공동체의 문제를 나의 죄로 고백할 수 있는 공동체 에스라는 근심 중에 일어나 속옷과 겉옷을 찢은 대로 무릎을 꿇고 하나님을 향하여 손을 들고 죄를 자백하였습니다. “이 백성들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라는 기도 대신에, 그는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라고 고백을 시작했습니다. 우상숭배 금지 계명을 무시한 죄, 이방인과 결혼하지 말라는 명령을 어긴 죄를, 그는 “우리”죄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종종 교회의 문제나 나라의 문제를 접하게 될 때에, 우리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문제로 여기고 그들을 탓하고 그들에게 손가락질을 할 때가 많습니다. 나도 그들과 함께 이 나라의 백성입니다. 나도 그들과 함께 교회의 일원입니다. 공동체의 문제를 나의 죄와 우리의 죄로 고백하는 공동체가 참 공동체입니다. 3.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 변화를 기대할 줄 아는 공동체 에스라의 기도는 단순히 과거에 대한 회상이나 현재 상황에 대한 파악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에스라는 주님의 백성들에게 회개와 함께 결단한 것을 행동으로 옮길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과거의 죄를 말할 때에는, 그 죄를 다시 반복하지 말자는 뜻에서 말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과거에 대한 회상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원동력이 되어야 합니다. 에스라는 또한 자비로우신 하나님을 신뢰하였습니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백성들을 용서하시고, 귀향민을 통해 끊어진 역사의 맥을 잇도록 하는 특권을 주신 하나님을 그는 기억하였습니다. 그리고 조상의 죄를 반복하는 백성들을 용서하시고 복을 주시며 생명을 주신 사실을 되새기면서,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에 대한 기대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 공동체의 변화를 기대할 줄 아는 공동체가 참 공동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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