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 자녀를 위한 기도문
주님께서 일찍이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복을 빌 때에 세 가지를 빌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당신들에게 복을 주시고 당신들을 지켜주시며, 주님께서 당신들을 밝은 얼굴로 대하시고 당신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님께서 당신들을 고이 보시어서 당신들에게 평화를 주시기를 빕니다.” 지켜주시고, 은혜를 베푸시며, 평화를 주시기를 비는 세 가지 기도제목은 오늘날 우리 자녀들에게도 꼭 필요한 세 가지 기도제목입니다. 삼손의 생애에 있었던 사건과 비교하며 하나씩 살펴보고 각 가정의 자녀를 위하여 다음의 세 가지 기도제목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자녀를 지켜주소서. 삼손은 모태에서부터 이미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었습니다. 그는 주님께서 내리시는 복을 받으면서 잘 자랐습니다. 주님의 영이 그에게 내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죄의 유혹으로부터 면제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딤나에 내려갔다가 어떤 블레셋 처녀를 보고 첫눈에 반해 버렸습니다. 삼손처럼 힘이 좋은 사람은 더욱 성적인 유혹에 약합니다. 세상은 우리 자신에게도 그렇거니와 우리 자녀들이 경건한 삶을 살기에 그리 녹록한 곳이 아닙니다. 유혹거리가 많아서 만만하거나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말입니다. 성적인 유혹, 문화와 문명생활을 누리고 싶은 유혹, 세상에서 인기와 명예를 얻고 싶은 유혹이 집 바깥뿐만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 집안에게까지 침투해 들어와 있습니다. 우리 자녀들에게 즐기고 싶은 것도 많고, 가지고 싶은 것도 많고,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도 많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자녀들을 지켜주시기를 위해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자녀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삼손이 부모와 함께 딤나로 내려갔을 때에 갑자기 어린 사자 한 마리가 으르렁거리며 그에게 달려들었습니다. 그 때에 주님의 영이 삼손에게 세차게 내리 덮쳐서 손에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이, 그 사자를 염소 새끼 찢듯이 찢어 죽였습니다. 지금도 우리 자녀들을 사로잡는 유혹거리가 주위에 가득합니다. 더불어 으르렁거리는 사자와 같은 위험요소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습니다. 교통의 위험, 왕따의 위험, 잘못된 영향을 미치는 친구들, 심지어 자녀들을 의기소침하게 만드는 부모와 선생님도 있습니다. 관계가 깨어질 것에 대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 두려움, 소유하지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두려움은 반드시 죄를 짓도록 자녀들을 이끌어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자녀들을 밝은 얼굴로 대하시고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자녀에게 평화를 주소서. 삼손은 블레셋 여자가 맘에 들자 부모님에게 아내로 맞이하게 해달라고 졸랐습니다. 부모가 아무리 타일러도 막무가내였습니다. 사자 한 마리를 찢어 죽인 일은 부모에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부모를 떠나 길을 벗어났을 때 있었던 일이 분명합니다. 자기가 죽인 사자의 주검에 고인 꿀을 떠먹고 부모에게도 가져다주었으나, 그 꿀을 어디에서 가지고 왔는지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 마음속에 양심에 가책이 되고 평안이 없어 숨기고 싶었던 것입니다. 양심에 가책이 되어 숨기고 싶은 일이 있으면, 관계가 깨어지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지고, 사람들과의 관계가 깨지며, 자기 자신과의 관계도 깨어집니다. 마음속에서 평강이 사라지고, 하나님과의 평화가 깨지고 사람들과의 평화가 깨지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배우지 못한 것이 문제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가진 것이 없어서 문제라고 말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자녀들을 고이 보시어서 자녀에게 평화를 주시기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 성경은 믿을만한 책인가? (최영기 목사님)
성경은 제 삶의 기초입니다. 제가 크리스천이 된 것도 성경 때문이었습니다. 대학원에서 공부할 때 전도 대원들이 길거리에서 나누어주는 성경을 받아 읽는 것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드리는 과정이 결코 쉽지는 않았습니다. 첫째 의문은, 병을 고친다든지, 귀신을 쫓는다든지, 풍랑을 잔잔케 하는 성경의 기록이 과연 사실이냐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초자연적인 현상이 실제로 일어났다면, 과학으로 측정할 수 없는 초자연 세계도 있을 수 있는 것이고, 초자연적인 세계가 있다면 초자연적인 존재, 즉 하나님의 존재도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무당과 점쟁이를 연구하였습니다. 이들이 쓴 글도 읽고 직접 방문도 해본 결과 이들이 어떤 영적인 존재와 접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잡신이 존재한다면 하나님도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둘째 의문은, 성경이 역사적인 문서로서 얼마만큼 신빙성이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의문이 든 것은, 1970년대에는 ‘문서학’이라는 성서 비판 이론이 판을 쳤는데 이를 주창하는 사람들은 초자연적인 세계를 믿지 않았고, 성경에 기록된 기적들은 후대 크리스천들이 지어낸 것이라는 이론을 펼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약 성경은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25년-40년에 대부분 쓰였고, 예수님을 직접 보고 들었던 사람들이 대다수 생존해 있을 때에 기록되었기 때문에, 역사적인 문서로서 신빙성을 부인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셋째 의문은, 창세기에 기록된 내용이 과연 사실이냐는 것이었습니다. 에덴동산이라든가, 노아 홍수라든가, 인간들이 수백 살까지 살았다는 기록이 사실이냐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Arthur Custance라는 분이 저술한 “Doorway Papers”라는 시리즈가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분은 캐나다 분으로서 인류학과 고고학 두 분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는데, 창세기에 관하여 약 10권의 책을 시리즈로 썼습니다. 성경 밖의 방대한 고대 기록을 연구하여 창세기에 기록된 사건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데, 이 앞에서 손을 들고 말았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고, 성경에 순종하며 살 때 하나님의 약속이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체험하면서 성경에 대한 신뢰가 점점 깊어져 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성경적인 교회를 꿈꾸게까지 되었습니다.
- 여러분의 기도 가운데 미국을 잘 다녀왔습니다
할 수만 있으면 두 주 전 주일에도 여러분들 앞에서 설교를 하고 떠날 생각이었습니다만, 비행기 시간에 맞추려면 너무 여유가 없어서 부득이 주일 두 번을 교회를 비우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에는 신앙적으로나 인격적으로 성숙한 분들이 많이 계셔서 그 동안 여러분이 은혜 가운데 잘 지내셨으리라 생각이 됩니다. 무엇보다도 성령님께서 친히 우리 교회를 지켜주시고 은혜를 주시고 평강을 주셨으리라고 믿습니다. 이번 미주 목회자컨퍼런스는 둘째 날 가정교회 30주념 기념행사가 있었습니다. 최영기 목사님께서 휴스턴서울교회에서 가정교회를 1993년에 시작하셨으니까, 금년이 꼭 30년이 되는 해입니다. 최목사님께서 처음 가정교회 세미나를 하실 때, “제 1회 가정교회 세미나”라는 제목을 붙인 것을 보시고, “제 1회”라는 말을 뺐으면 하셨답니다. 왜냐하면 2회를 할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었답니다. 그렇게 작게 시작되었던 가정교회가 지금은 수십 개의 나라에서 하고 있으며, 한국에서만도 목회자 초원이 19개, 목회자 지역모임이 96개에 이르렀습니다. 기념행사 중에 설교순서가 저에게 맡겨졌었는데, 빌립보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1:6)하나님께서는 우리 가운데 가정교회를 하는 선한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2:13)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역사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을 염원하고, 실천하게 하셨습니다.(3:13) 우리는 여전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부르신 그 부르심의 상을 받으려고,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습니다. (4:19)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영광 가운데서, 그분의 풍성하심을 따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모두 채워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첫째로, 갖가지 짐과 얽매는 죄를 벗어버려야 합니다. 차선은 최선의 적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할 수 있는 많은 좋은 일들이 있지만, 교회의 존재 목적인 “영혼 구원하여 제자 삼는” 최선의 일에 방해가 된다면 그것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꼭 얽매는 죄가 아니더라도, 교회의 존재 목적을 이루는 일에 방해가 된다면 벗어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마치 잎사귀가 무성한 감나무에 열매가 잘 맺히지 않듯이, 많은 일들로 말미암아 교회의 존재 목적을 이루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양복과 같은 멋있는 복장은 달리기 선수에게 어울리지 않습니다. 최소한의 간편한 복장을 하고 있을 때에 달리기 선수는 가장 잘 달릴 수 있습니다. 둘째로, 우리 앞에 놓인 달음질을 참으면서 달려가야 합니다. 달리는 선수가 넥타이를 매고 양복을 입고 달리고 있다면 미련한 일입니다. 그런데 달리기 선수의 간편한 복장을 하고 길에 주저앉아 있거나 친구들과 게임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정신 나간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민족이요 왕의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국민이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어둠에서 불러내어 주님의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하신 분의 업적을 선포하여, 많은 사람을 주님 앞으로 인도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셋째로, 목표점을 향하여 달려야 합니다. 아무리 간편한 복장을 하고 열심히 달리더라도 목표점이 아닌 곳을 향하여 달려간다면 이보다 황당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마라톤을 할 때에는 골인 지점을 잘 알고 달려야 합니다. 우리 인생의 골인 지점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상급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모습을 닮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을 하는 것입니다. 열심히 했는데도 잘 되지 않을 때에는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심지어 죄인들의 반항을 참아내시고 오히려 그들을 위하여 대신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생각해 보십시오. 지혜롭지 못해 잘못 되었을 때는 주님의 징계를 기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각자 달려갈 길을 믿음으로 마쳤을 때에 모든 사람에게 주실 하나님의 면류관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 오늘은 올랜도비전교회 부흥회에서 말씀을 전합니다
지난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미주 목회자컨퍼런스에 참석했습니다. 컨퍼런스 이틀째 되는 날 저녁에는 가정교회 30주년 행사를 하였습니다. 1993년에 최영기 목사님께서 휴스턴서울교회에서 가정교회를 처음 시작하셨으니까, 금년이 꼭 30년이 되는 해입니다. 한국은 23년이 되는 해입니다. 제가 빌립보서 설교할 때 말씀드린 것처럼, 빌립보서 1:6 말씀을 다시 소개합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물론 본문의 “착한 일”이란, 빌립보 교인들 가운데 복음이 전파되고, 그날부터 빌립보서를 쓸 당시까지 복음에서 성도들이 교제하게 된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 “착한 일”을 시작하신 우리 주님께서 끝까지 인도해 주시고 완성시켜 주실 것을 확신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약속은 지금의 가정교회를 시작하게 하신 주님께서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것도 포함시킬 수 있다고 믿습니다. 물론 가정교회는 지금 시작된 것이 아니라, 이미 초대교회 때에도 가정교회가 있었습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의 집에서 모이는 교회도 있었고, 눔바와 그 부인의 집에서 모이는 교회도 있었습니다. “자매 압비아와 우리의 전우인 아킵보와 그대의 집에서 모이는 교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가 공인되고 커다란 건물에서 모이면서 “집에서 모이는 교회”가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성직자와 평신도를 구분하면서 목양의 일이 성직자의 전유물처럼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 모두가 역할을 분담하며 목양의 주체가 되는 것은 성경으로 다시 돌아가는 일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도 “날마다 한 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집집이 돌아가면서 빵을 떼며 순전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양하였다.”(사도행전 2:46-47)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가정교회는 잠정적인 형태의 교회가 아니라 주님께서 꿈꾸셨던 교회였습니다.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님을 만나러 왔을 때에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키고서 말씀하셨다. 보아라,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이 곧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다.”(마태복음 12:49-50)라고 하신 말씀에서 그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최영기 목사님이 휴스턴서울교회에 부임하면서 이 말씀대로 시작하신 것이 바로 가정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활동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가정교회를 염원하게 하시고, 또한 실천하게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분부하신 말씀(마태복음 28:18-20)대로 “영혼 구원하여 제자 삼는” 일을 교회의 존재 목적으로 삼고, 지금까지 달려오게 하셨습니다.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부르신 그 부르심의 상을 받으려고, 우리는 목표를 향하여 달려갈 것입니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나 더 필요한 것이 있을 때에는 우리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영광 가운데서, 그분의 풍성하심을 따라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을 모두 채워주실 것입니다.”(빌립보서 4:19)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처럼, 주님께서 기뻐하실 건강한 교회의 모습은, 첫째로 영혼 구원이 일어나는 교회입니다. 저는 우리 청장년 수의 10%가 매년 예수님을 영접하고 세례 받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서울다운교회에서도 이루어주셨고, 현재까지 행복한제자교회에서도 이 목표를 이루어 주셨습니다. 둘째로 기존교인들의 삶과 인격이 변화되어 주님의 제자가 되어가는 교회입니다. 여러분이 주위 형제자매들을 보아도 매년 변화되어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부부 사이도 좋아지고, 성도들 간의 관계도 더 친밀해지고 있습니다. 셋째로 교회생활이 즐겁고 행복한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의 얼굴은 대개 웃는 모습니다. 교회의 분위기를 보면 매우 밝습니다. 교회생활이이 즐겁고 행복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 그동안은 코로나 덕을 많이 보았습니다.
저희 부부가 행복한제자교회에 온 지도 벌써 4년이 지났습니다. 2019년은 우리 성도들과 친숙해지는 기간이었기 때문에 주일에 교회를 비운 적이 거의 없었던 것으로 기억을 합니다. 2020년부터 3년 동안은 코로나 덕분에 자유롭게 대면모임을 하지 못하여 외부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제가 한국 가정교회사역원장으로 섬기게 되었고, 금년부터는 코로나도 잠잠해졌기 때문에 가끔 외부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간혹 주일에 다른 가정교회에서 말씀을 전하는 일을 위하여 교회에서 주일에 제가 보이지 않더라도 이해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우선 오늘(4월 16일) 미주 목회자컨퍼런스(17-20일) 참석을 위하여 여행을 떠납니다. 이번에는 특별히 가정교회 30주년 행사가 미국에서 있기 때문에 참석을 하며, 한국의 가정교회 상황설명과 설교를 하게 됩니다. 그 이후에는 올랜도비전교회 부흥회(21-23일)에서 말씀을 전하고, 국제 가정교회사역원 이사회(24-27일)에 참석한 후에 29일에 귀국을 하여 30일(주일)에 여러분을 교회에서 만나게 될 것입니다. 모든 일정을 위하여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귀국 후에 월 1회 정도는, 가정교회를 하고 있는 교회를 위하여 부흥회 인도를 하는 계획이 잡혀져 있습니다. 충남보령시에 있는 “다니고싶은교회”, 경기광주에 있는 “금광교회”, 전남목포에 있는 “주님의교회” 등이 부흥회를 하는 교회들입니다. 주일설교와 새벽기도회, 교회행정과 수요기도회 등, 우리 교회의 모든 사역들은 조흥래 목사님에게 부탁을 하겠습니다. 늘 기억하셔야 할 것은, 컴퓨터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있듯이, 하드웨어에 해당하는 세 축과 소프트웨어에 해당하는 네 기둥입니다. 세 축은 사람의 세 가지 필요, 즉 지성과 감정과 의지를 생각하면 쉽습니다. 삶공부를 통하여 지성의 필요를 채우고, 목장모임을 통하여 감정의 필요를 채웁니다. 또한 주일 연합예배를 통하여 의지적인 결단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삶공부와 목장모임과 주일 연합예배를 통하여 아직 믿지 아니하는 VIP들이 주님을 알게 되고 복음을 이해하게 됩니다. 이미 믿는 분들은 삶의 변화와 인격의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네 기둥은 첫째로, 교회의 존재목적을 아는 것입니다. 교회의 존재목적은 “영혼 구원하여 제자 삼는 것”에 있습니다, 마태복음 28:18-20은 예수님께서 세상을 떠나시기 직전에 우리에게 주신 지상사명입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는 말씀입니다. 방법은 “가서”, “세례를 주고”, “가르쳐 지키게 하라”입니다. 우리 교회가 매년 청장년 출석인원의 10% 이상의 인원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세례 받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둘째로, 교회의 존재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제자훈련을 하셨던 방법대로 제자를 훈련하는 것입니다. 단지 성경공부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강의장 대신에 현장교육을 통해, 지식 이상의 능력배양을 통해, 가르쳐서 배우도록 하는 것과 아울러 보고 배우도록 합니다. 셋째로, 우리는 모든 사역을 역할분담을 통해 이루고자 합니다. 목회자들은 성도를 준비시키고, 성도들 모두가 사역에 동참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일에 동참한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고 주님으로부터 칭찬과 상급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넷째로, 섬기는 지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섬김이란 다른 사람을 성공시켜 주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죄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도록 해 주신 것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을 우리 인생의 목표로 삼고 살아야 합니다.
- 부활의 증거들
하루살이가 메뚜기하고 놀다가 저녁이 되었습니다. 메뚜기가 하루살이에게 “하루살이야, 저녁이 되었으니 그만 놀고 내일 만나자.”고 했습니다. 그러자 하루살이가 물었습니다. “내일이 뭔데?” 하루살이는 “내일”을 모릅니다. 하루살이가 죽고 나니 메뚜기가 외로워 만난 것이 개구리였습니다. 개구리와 놀다가 가을이 왔습니다. 그러자 개구리가 “메뚜기야, 겨울이 지나고 내년에 만나서 놀자”고 했습니다. 그러자 메뚜기가 “내년이 뭐야?”라고 물었습니다. 메뚜기는 1년만 살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도 똑 같습니다. 아는 것만 알다가 가게 마련입니다. 부활을 알지 못하고,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은 이 세상이 다인 것처럼 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부활하신 주님을 전하고, 어디에서 영원을 보내게 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부활을 모르는 사람은 이 말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예수님이 다른 종교의 창시자들과 극명하게 다른 점이 있습니다. 예수님 외에 어떤 사람도 인간들의 죄 문제를 해결해주기 위하여 인간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또한 예수님 외에 어떤 사람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고 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오직 예수님만 인간들의 죄 문제를 해결해주기 위하여 인간들을 대신하여 돌아가셨고, 오직 예수님만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부활절은 기독교에만 있는 역사적 날입니다. 성인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모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윤리에 대해서 이야기했을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사실에 대해서는 많은 증거들이 있습니다. 그 증거들과 아울러 중요한 것은, 부활에 대한 우리들 자신의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첫째는, 부활에 대한 실제적 증거입니다. 예수님의 몸에 향료를 넣기 위하여 무덤으로 갔던 여인들은, 무덤을 가로막고 있었던 커다란 돌이 무덤에서 굴려져나간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이 무덤에 들어가 보았을 때에 예수님의 시신이 없었습니다. 둘째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제자들의 변화입니다. 여인들이 무덤에서 돌아와서 열한 제자와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그들이 본 사실을 알렸지만, 사도들은 이 말을 듣고 어처구니없는 말로 여기고 여자들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무덤으로 달려가 들여다본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회상하며 믿은 것이 아니라, 이상히 여기면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밤에 그 뒤를 따라가다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있고 예수님의 시신을 감았던 삼베만 놓여있는 것을 보고도 이상히 여겼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성령의 강림을 경험한 그는 수많은 사람 앞에서 주님의 부활을 담대하게 증거하였고, 순교를 당하기까지 했습니다. 셋째는, 부활에 대한 자신의 확신입니다. 사도 바울도 부활 후의 예수님을 만난 후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그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가장 고상하게 여기고, 그 밖의 모든 것을 해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오직 복음을 위하여 자신의 생애를 불태웠습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신앙의 능력입니다. 부활신앙이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모든 소망을 걸고 살지 않습니다. 아무리 부활의 역사적 증거를 많이 알고, 부활신앙을 가지고 변화된 많은 사람을 알아도 자기 나름대로의 확신이 없으면, 능력 있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부활에 대해 여러분의 확신을 가지고 부활신앙의 능력 있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 기적이 상식이 되는 삶(최영기 목사님의 설교 요약)
저는 합리적이거나 상식적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추구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전에 최영기 목사님의 “기적이 상식이 되는 삶”이라는 설교가 매우 마음에 감동이 되었습니다. 설교를 들으면서 제가 정리한 내용을 다시 한 번 목회서신에 소개합니다. 기적이 상식이 되는 삶(마태복음 14장 22-33절) 마가복음 16:17-18에는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표징들이 따를 터인데…” 하시며,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손으로 뱀을 집어 들며…의 기적이 일어나게 하신다는 약속의 말씀이 나온다. 그런데 이러한 기적들은 “온 세상에 나가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여라”(15절)는 명령 뒤에 나온 약속으로서, 복음을 전할 때 일어날 기적을 말씀하신 것이다. 마태복음 14:22-33을 통하여, 기적이 상식이 되는 삶을 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을 알아본다. 1. 기적의 삶을 살기 원해야 한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바다 위로 걸어오시는 모습을 보며, “주님, 주님이시면, 나더러 물 위로 걸어서, 주님께 오라고 명령하십시오.”라고 말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유령인가?’ 했을 터인데, ‘예수님이 하시면, 나도 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다. 하나님은 알고(지) 느끼며(정) 원하시는(의) 분이시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도록 지어졌기 때문에, 사람에게도 그러한 지정의가 있다. 실제로 목자와 목녀들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사역을 시작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주님의 일을 하고 싶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역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성공=능력x의지>라는 공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 2. 하나님의 뜻과 일치되어야 한다. 다음과 같은 공식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기적=하나님의 뜻x인간의 의지>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하여 가지는 담대함은 이것이니, 곧 무엇이든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구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청을 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요일 5:14)라는 말씀이 바로 이것을 말해주고 있다. 3. 과감하게 뛰어든다.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정탐꾼들이 약속의 땅을 정탐하고 온 후에 주저앉았다. 그들은 소원이 있었고, 하나님의 약속도 있었지만, 자기들의 상식을 벗어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두려움이 따랐다.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는 데는 오랜 시간을 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그 후에는 과감하게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것이 따라야 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와는 반대로 행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떻게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100% 알 수 있겠는가?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풀무불에서 하나님이 자기들을 건져주시는 것이 100%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들은 “비록 그렇게 하지 않으실지라도…”의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70-80%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신하면 뛰어들어야 할 때가 많다. 4. 시선을 예수님께 고정시킨다. 상황을 보면 나의 의지가 흔들리기 쉽다. 베드로의 실수가 바로 그것이었다. 상황을 보지 말고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시켜야 한다. 아침 QT나 기도시간을 매일 최소 20분 이상 가지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다. TV 시청, 친구들의 얘기를 들으면 세상의 가치관을 자꾸 듣게 된다. 최소 20분을 매일 하나님께 집중해야 한다. 하나님을 찬양하며 집중할 수도 있고, 사도신경이나 주기도문을 고백할 수도 있다. 성경본문을 고백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 중고등부 학생들은 우리 교회의 미래입니다
지금은 우리 행복한제자교회의 중고등부가 시작단계입니다. 우리 학생들이 꼭 읽었으면 하는 책이 하나 있습니다. “성공하는 십대들의 7가지 습관”이라는 책입니다. 여러분은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라는 제목으로 스티븐 코비가 쓴 책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의 아들 숀 코비는 자신의 십대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때 나의 감정은 롤러코스터처럼 불안하고 기복이 심했다. 되돌아보면, 그 시절을 견뎌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셈이다.” 그는 아버지의 강의를 자기 것으로 소화하여, 십대들이 읽기 쉽게 “성공하는 십대들의 7가지 습관”을 삽화까지 넣어가며 재미있게 저술하였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십대들을 위한 숀 코비의 책을 읽고 내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이 책을 권합니다. 성공하는 십대들의 7가지 습관 개인의 승리 01. 주인의식(자신의 삶을 주도하라) – 남에 의해 살지 말고, 스스로 결정하고 살아라. 우리는 환경 자극에 대해 주도적인 선택권을 갖고 있다. 02. 목적중심(끝을 생각하며 시작하라) – 우리가 죽었을 때를 생각해 보자. 누가 나를 위해 울 것인가? 어떤 것이 아쉽고, 어떤 것이 만족스러운가? 모든 일을 인생의 최종목표에 맞춰 계획하고 실행하라. [자기사명서]를 작성하고, 인생의 기준을 세워라. 03. 우선순위(소중한 것을 먼저 하라) – 중요하지만 급하지 않은 일은 무엇인가? [건강, 미래를 위한 공부]등 장기적으로 중요한 일을 위해 노력하라. 공동의 승리 04. 지체의식(승-승을 생각하라) – 인간관계의 패러다임. 승-승의 사고를 통해 서로 이익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라. 05. 타인중심(먼저 이해하고 다음에 이해시켜라) – 이해시키기 전에 상대를 이해하라. 나의 이야기를 하기 전에,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같이 공감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06. 시너지(시너지를 내라) – 서로 간에 함께 일하는 것은 1+1=3 이상을 만드는 것이다. 개인 간의 협력과 기업 간의 인수합병은 단순한 합산보다 많은 것을 요구한다. 서로 간의 시너지를 위해서는 서로 간의 이해와 공감이 필요하다. 07. 자기개발(끊임없이 쇄신하라) –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항상 몸과 마음을 단련시켜야 한다. 나무를 베기 위해서는 톱날을 갈아야 한다. 나무만 베다보면 나중에는 톱날이 무뎌져 더 이상 일을 할 수도 없는 지경이 될 수 있다.
- 목장모임은 이렇게(최영기 목사님의 원장코너에서 발췌)
목장 모임 중 성경 공부(설교 나눔)를 먼저 하고 광고 시간을 갖습니다. 교회 광고는 가정교회가 더 큰 연합 공동체의 일부라는 것을 인식시키기 위하여 필요합니다. 특히 목장 모임만 참석하고 주일 연합 예배에 참석하지 않는 VIP들에게 이런 인식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광고 시간에 더해진 활동이 있습니다. 지난주일 주보에 실린 목회서신을 읽어주는 것입니다. 주보에 실린 담임목사 칼럼을 여러 가지 이유로 읽지 않는 교인들이 있는데, 목장 모임에서 목자나 지정된 한 목원이 이를 읽어 줄 때 목장 식구들이 담임목사를 더 잘 알게 되고, 교회가 앞으로 가게 될 방향을 더 잘 이해하게 되어 신약교회 회복의 진정한 동역자가 됩니다. 과일이라든가 후식도 식사 직후가 아니라 이때 내놓습니다. 생일 축하를 비롯한 특별 순서도 이때 갖습니다. 이렇게 부드러워진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눔 순서로 넘어 갑니다. 나눔 시간에는 지난 주 감사했던 것 한 가지씩 나누기 전에, 지난 목장 모임에서 드렸던 중보기도 응답 받은 것을 간증 하도록 합니다. VIP들은 논리적으로 설득되어 예수 믿지 않습니다. 목장 식구들의 섬김에 감동받고, 구체적인 기도 응답을 통해 하나님이 혹시 계신가 싶어 예수 영접 모임에 참석하기를 결심합니다. 기도 응답은 믿음이 수반할 때 확실하게 옵니다. 여기서 믿음이란 기대를 의미합니다. 드려진 기도를 하나님 아버지께서 절대 무시하지 않으시고 어떤 형태로든지 응답하시리라는 기대입니다. 이런 기대감은 기도 응답이 쌓이면서 점점 더 커집니다. 기대감이 커지면 응답이 더 많아집니다. 선순환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장 모임에서는 기도 응답 결과를 간증하도록 해서 목장 식구들에게 기도 응답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 주어야 합니다. 교회 성장은 어린이가 자라는 것과 비슷합니다. 어린이 발육에는 성장기와 충실기가 반복됩니다. 성장기에는 대나무 자라듯이 키가 부쩍 크고, 충실기에는 뼈가 굵어지고 몸무게가 늡니다. 교회 성장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교회 전환 직후는 충실기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담임 목사의 목회관이 성경적으로 바뀌고, 교회의 체질이 바뀌는 시기입니다. 이때 성장을 추구하면 안 됩니다. 그러나 계속 충실기에만 머물면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교회가 기신자들만을 위한 컨트리 클럽처럼 됩니다. 교회 성장은 부드러운 곡선이 아니라 여러 개의 계단으로 이루진 층계와 같습니다. 충실기라는 계단과 성장기라는 폭 넓은 계단이 반복되는 층계입니다. 한 계단에서 다음 계단으로 올라가야 할 지점에 다다르면 교회가 침체되었거나 벽에 부딪힌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니라 ‘성장 포인트’에 도달한 것입니다. 이때 다음 단계로 도약할 수 있도록 적절한 조처를 취해 주어야 합니다. 적절한 조처란, 담임 목사가 목자 목녀를 개인적으로 만나 그들의 어려움과 아픔을 들어주는 기본적인 것부터 시작하여, 전에 제공하지 않던 삶 공부의 제공, 목자 목녀를 위한 수련회, 부흥집회, 목자 컨퍼런스, 목자/목녀 기초 다지기 참석, VIP 초청 특별 잔치 등이 있습니다. 사이즈가 어느 정도 되는 교회에게는, 평신도를 위한 세미나를 개최하거나 목회자를 위한 컨퍼런스를 주최하는 것도 도약의 발판을 마련해 줄 수 있는 좋은 수단입니다. 그러나 성장기만 지속되면 키만 크고 몸이 허약한 어린이처럼 됩니다. 충실기가 필요합니다. 충실기에 도달하면 교회 성장이 멈춥니다. 이때 위기감을 느끼지 말고 가정교회 3축과 4기둥에 비추어 자신의 목회와 교회의 활동을 점검하여 취약점을 발견하여 보강하시기 바랍니다. 내실이 다져지면 다시 성장기에 접어들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장년 주일 출석 인원을 성장 지수로 삼지 말고, 구원받은 사람 숫자를 성장 지수로 삼기 바랍니다.
- 목장에 꼭 참석하시기 바랍니다
가정교회를 설명할 때에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 중의 하나는 “세 축, 네 기둥”입니다. “세 축”은 가정교회의 하드웨어에 해당하고, “네 기둥”은 가정교회의 소프트웨어에 해당합니다. 오늘은 “세 축”에 대하여 말씀을 드립니다. 첫째는, 가족공동체를 경험하는 목장입니다. 목장을 통해서 인간의 감성적인 부분을 만져줍니다. 목장을 통해서 아직 믿지 아니하는 분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면서 예수님을 믿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목장에 아직 믿지 아니하는 분들이 오면, 다른 목장식구들이 반겨주고 섬기는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또한 지난 모임에서 같이 기도했던 기도제목들이 응답된 간증을 들으면서 하나님의 임재를 서서히 느끼게 됩니다. 이미 믿고 계신 분들은 목장을 통해서 삶과 인격이 변화되는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둘째는, 체계적인 삶 공부를 통해서 인간의 지적인 부분을 만져주게 됩니다. “확신의 삶”은 목자의 인도 하에 목장식구들과 공부를 합니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은 새롭게 목자로 준비되는 분을 위하여 목자가 공부를 인도합니다. 그 외에 “생명의 삶”은 담임목사와 공부를 하고, “새로운 삶” “경건의 삶” “말씀의 삶” “부부의 삶” 등 여러 다른 삶 공부는 교회에서 정해진 강사들의 인도 하에 공부를 하게 됩니다. 삶 공부를 통해서 아직 믿지 아니하는 분들이 복음을 깨닫게 되고, 이미 믿은 분들은 말씀에 의하여 삶과 인격이 변화하게 됩니다. 셋째는, 은혜로운 주일 예배를 통해서 인간의 의지적인 부분을 만져줍니다. 주일에 담임목사로부터 듣는 설교를 통해서 아직 믿지 않고 있던 분들이 예수님을 믿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이미 믿고 있는 분들은, 주일에 들은 바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다짐을 하고 헌신을 결심하게 됩니다. 새로 믿기로 작정하는 분들이나, 말씀대로 살기로 다짐하는 분들은 예배 후에 제일 앞 줄에 있는 헌신대에 나와 기록을 하고 담임목사와 함께 기도를 하게 됩니다. 물론 이때에 기도제목이 있는 분들도 함께 헌신대에 나와 기도제목을 기록하고 함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행복한제자교회 성도들에게 권면의 말씀을 드립니다. 위의 “세 축”은 우리 성도들이 힘써야 할 세 영역입니다. 그동안 코로나 기간을 3년가량 거치는 동안에 많이 풀어지게 된 것이 현실입니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자연스럽게 흘러 내려가는 것처럼, 우리의 본성도 조금만 방심하면 높은 수준에서 낮은 수준으로 내려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마음의 법은 하나님의 법을 따르든지 죄의 법을 따르는데, 사도 바울이 “나는 내가 원하는 선한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원하지 않는 악한 일을 합니다.”(로마서 7:19)라고 말한 것처럼, 나도 모르게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을 때가 많습니다. 오죽하면 사도 바울도 “아,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 주겠습니까?”라고 말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도 사도 바울과 같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건져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라고 고배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정죄를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여러분은 사람이 흔히 겪는 시련밖에 다른 시련을 당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여러분이 감당할 수 있는 능력 이상으로 시련을 겪는 것을 하나님은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련과 함께 그것을 벗어날 길도 마련해주셔서, 여러분이 그 시련을 견디어 낼 수 있게 해주십니다.”(고린도전서 10:13)는 약속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