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 한국가정교회 사역원장을 연임하며 인사드립니다.(원장코너 원고)
한국가정교회 사역원장을 연임하면서 여러분에게 다시 인사를 드립니다. 2020년 9월 1일부터 시작된 저의 첫 임기 동안의 지난 3년 동안의 일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일들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한국가사원장으로서 가장 긴장했었던 일은 코로나로 인해 2020년 10월에 있을 목회자컨퍼런스를 온라인으로 주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야말로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일이었는데, 마침 제가 초원지기로 있던 서울북부초원에서 주최하였기 때문에, 다운교회 담임목사인 석정일 목사님이 팀을 이루어, 잘 치르게 되었습니다. 중간에 갑자기 순서를 바꾸는 비상사태도 있었지만, 워낙 섬김과 순종이 훈련되어 있었던 가정교회 목사님들의 협조로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본부에서 송출하고, 지역목자가 섬기는 85개 교회에 모여서 강의를 들었던 기억이 나실 것입니다. 제 임기 동안 총 여섯 차례 목회자컨퍼런스 중에 세 번은 온라인으로, 세 번은 현장에서 컨퍼런스를 할 수 있었습니다. 목자연합수련회도 본부에서 진행하고, 역시 지역목자가 섬기는 교회에 모여서 강의를 듣는 덕분에 한 번에 총목자연합수련회를 치르기도 했던 기억도 생생합니다. 국제가사원과 지역가사원의 역할분담이 이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동안은 국제가사원에서 대부분의 일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국제가사원장은 일이 많고, 지역가사원은 중간 역할만 했던 것이 여럿 있었습니다. 그런데 원장들의 회의를 통해서 국제가사원은 사법과 입법의 일을 하고, 지역가사원은 행정과 실무의 일을 하는 것으로 원칙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한국에서 이루어지는 목회자세미나 또는 평신도세미나의 주최신청을 받고 일정을 계획하는 일은 한국가사원에서 하고, 그 결과를 국제가사원에 보고하여 홈페이지에 세미나 일정이 올려지고 있습니다. 지역목자를 임명하는 일이나 목회자초원지기를 임명하는 일 역시 한국가사원에서 하고 국제가사원 홈페이지 공지사항에 올리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국제가사원과 지역가사원의 역할분담이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한국 목회자컨퍼런스에 등록하는 인원이 많은 까닭에 둘로 나누어 주최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내년부터 봄에는 모두 함께 모여서 컨퍼런스를 하고, 가을에는 둘로 나누어 주최하는 것으로 정하였습니다. 한편 그 동안에 많은 성도님들이 목회자컨퍼런스 간식을 섬기느라 수고가 많았는데, 기본적인 간식만 준비하는 것으로 바꾸는 것도 큰 변화였습니다. 앞으로 한국가사원의 사역은 크게 목회, 선교, 사회회복, 세 분야가 될 것이 기대됩니다. 목회 분야는 영혼 구원과 제자훈련에 초점을 두고, 목회자를 위한 계획과 평신도를 위한 계획으로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목회자를 위한 계획을 위하여 목회자 코칭간사, 평신도를 위한 계획으로 평신도 사역총무가 세워져서 개인의 회복과 가정의 회복과 교회의 발전을 힘쓸 것입니다. 또한 선교를 위하여 선교총무가 세워져 있어서 앞으로 선교지에 가정교회를 세워나갈 수 있는 동역선교사들을 적극적으로 도와나갈 것입니다. ‘빌레몬 사역’이라는 이름으로 작게 시작되었지만, 가정교회의 사역이 더욱 확대되어 사회회복에 대한 계획이 구체화되면 이를 섬기기 위한 분도 세워질 것입니다. 늘 그러했지만, 여러분의 기도와 협력이 더욱 필요한 때입니다.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해 주신 예수님, 그리고 예수님을 닮아서 순종과 섬김으로 다져진 여러분들이 곁에 계셔서 마음 든든합니다. 신실하게 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의미 있는 인생, 후회뿐인 인생
사탄은 사람들에게 육체의 욕망(주로 즐거움과 쾌락)과 눈의 욕망(주로 소유욕)과 세상 살림에 대한 욕망(주로 인기와 명예와 권력)에 인생을 허비하도록 만듭니다. 사람들이 추구하는 그 모든 것을 해본 솔로몬은 마지막에“헛되고 헛되다. 모든 것이 헛되다.”라고 고백했습니다. 후회뿐인 인생을 산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와 대조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죽음이 가까웠다고 생각하며,“나는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마련되어 있습니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진정 행복한 사람입니다. 후회 없는 인생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삶을 보면서, 우리의 인생이 어떠해야 할 것인가 묵상하는 귀중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육체의 욕망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귀하기 때문에 자신에게 이로웠던 모든 것을 그리스도 때문에 해로운 것으로 여기고 살았습니다. 그는 즐겁게 낙을 누리는 삶이 아니라,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해야 하는 사명을 다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가 이러한 삶을 살 수 있었던 비결은, 주님을 만난 이후에 새로운 가치관이 생겼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 이전의 바울의 가치관도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주님을 만난 후에 그가 가치 있게 생각했던 것들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잠시 즐기는 메달이 아니라, 주님께서 나타나시기를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 주실 영원한 의의 면류관을 소망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눈의 욕망 바울은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오물로 여겼습니다. 그는 세상에서 일시적으로 얻는 메달이나 트로피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영원한 면류관을 사모하였습니다. 전도를 하여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드려진 사람에게는 자랑할 면류관(살전 2:19-20)이, 시련과 유혹을 이기는 자에게는 생명의 면류관(약 1:12)이 주어집니다. 모든 일에 절제하며 경건한 제자의 삶을 산 사람에게는 썩지 않을 면류관(고전 9:25)이 주어집니다. 하나님의 양을 먹인 자에게는 영광의 면류관(벧전 5:4)이, 예수님의 재림을 사모하는 자에게는 의의 면류관(딤후 4:8)이 주어집니다. 목자와 목녀를 하면, 적어도 자랑할 면류관, 영광의 면류관은 받을 수 있습니다. 바울과 함께 하나님 나라에서 받을 영원한 면류관을 사모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상 살림에 대한 자랑 이것은 명예욕과 권력욕을 뜻합니다. 요즈음은 인기에 대한 욕망도 큰 것 같습니다. 육체의 욕망, 눈의 욕망, 세상 살림에 대한 자랑, 이 모든 것을 추구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누렸던 솔로몬은“헛되고 헛되며, 모든 것이 헛되다.”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바울은 난 지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았고,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서도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 사람 가운데서도 히브리 사람, 율법으로는 바리새파 사람, 열성으로는 교회를 박해한 사람, 율법의 의로는 흠 잡힐 데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세상의 삶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있을 영원한 삶을 어디에서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대한 비전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있는 것조차도 내려놓고, 영원한 상급과 면류관을 바라보며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킨 바울의 고백은,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마련되어 있다.”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삶을 사시겠습니까? 후회 없는 인생입니까? 후회뿐인 인생입니까?
- 평생감사
(다운교회의 한 형제가 요약했던 글 하나를 소개합니다.) 인터넷에서 <가나다라 감사>라는 글을 보았습니다. “㉮ 가슴 아픈 일도 감사, 가면 쓰지 말고 감사, 가난해도 감사 / ㉯ 나쁜 일도 감사, 나라가 있어서 감사 / ㉰ 다시 감사, 다~ 감사, 다시 볼 수 있음에 감사 / ㉱ 라면 먹어도 감사… / ㉻ 하하하 웃으며 감사”라는 글입니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이 있다면, 가나다라에도 감사를 붙일 수 있습니다. ‘평생 감사’하며 살 수 있는 세 가지 비결을 살펴보겠습니다. 언제 감사하면, ‘평생 감사’하며 살 수 있을까요? 부족할 때 감사를 시작하면, ‘평생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넉넉해지면 감사해야지’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부족하지 않기 때문에 감사한다면, 감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우리 인생에 만족이란 없기 때문입니다. 대신 항상 불평하게 됩니다. 반면 부족할 때 감사를 시작하면, 항상 감사할 수 있습니다. 감사와 불평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습관적이고, 반복적이라는 점입니다. 차이점도 있는데, 감사는 선순환을 낳고 불평은 악순환을 낳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점은 감사를 미루면 어느새 감사가 사라지고, 불평이 찾아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감사하면, ‘평생 감사’하며 살 수 있을까요? 거절하신 기도까지 감사하면, ‘평생 감사’할 수 있습니다. 마더 테레사는 “응답되지 않은 기도보다 응답된 기도 때문에 흘린 눈물이 더 많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우리는 당장 아쉽기 때문에 조급하게 하소연하는 기도를 드릴 때가 많습니다. 또한 모르는 부분에 대해 지나치게 확신하며 기도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합니다. 이런 기도들을 하나님께서 다 응답해 주신다면, 우리 삶은 과연 어땠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좋은 부모가 그렇듯이, ‘우리가 원하는 것을 주시기보다는 필요한 것을 주는 분’이십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적절할 시기에 주시려고, 응답을 미루고 계신 문제에 대해 우리가 기다리지 못하고 다른 선택을 해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떻게 감사하면, ‘평생 감사’하며 살 수 있을까요? 과거를 감사하고, 미래를 감사하면 ‘평생 감사’할 수 있습니다. 미래를 감사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을 믿고, 주실 은혜에 대해 미리 감사한다는 뜻입니다. 요한복음 11:41을 보면, 예수님께서도 나사로를 살리시기 전에 “아버지, 내 말을 들어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라고 미리 감사하셨습니다. 염려 다 하고 걱정 다 한 후에 기도하지 말고, 미리 감사함으로 기도하십시오. 진정한 믿음이란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해주시리라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가장 필요한 것을 가장 적절한 때에 주시리라는 것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쉬운 것은 (머리로) 믿는 것입니다. 그 다음 쉬운 것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가장 어려운 것이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신뢰할 때, 기다릴 수 있고 미리 감사할 수 있습니다.
- 영향을 받을 것 같으면 가지 말고, 영향을 주어야 할 것 같으면 가라.
제게는 지금은 나이가 40살, 38살이 되어 제가 은퇴한 다운교회에서 각자 아내와 함께 싱글 목자 목녀로, 또한 조장으로 섬기고 있는 두 아들이 있습니다. 그중 큰아들이 고등학교를 갓 졸업했을 때의 일입니다. 하루는 아들이 저에게 뜬금없이 “가도 되어요?” 하고 물었습니다. “어디를?” 하고 되묻는 저에게 “호프집”(지금은 듣기 어려운 이름입니다.)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사연인즉 졸업한 친구들이 호프집에서 모이는데, 그리스도인으로서 술집 이미지의 호프집에 가는 것이 조금 마음에 걸렸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제가 가지고 있는 원칙대로 말해 주었습니다. “영향을 받을 것 같으면 가지 말고, 영향을 주어야 할 것 같으면 가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회비가 당시에 5,000원이라고 하길래 20,000원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구체적인 방법을 얘기해 주었습니다. 1. 30분 정도는 일찍 가라. 보통 그리스도인들은 일반인들의 모임에 갈 때에 일찍 가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가보아야 별로 알갱이가 없는 이야기, 때로는 지저분한 이야기가 오가는 데 참여하기가 싫어서입니다. 그래서 약간 늦게 가서 가운데 앉지 않고, 귀퉁이에 앉았다가 기회를 보아서 일찍 자리를 뜨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아들에게 30분 정도 일찍 가서 중간 자리에 앉아서 오는 친구들을 반갑게 맞이하며 이야기를 주도해 나가도록 했습니다. “요즈음 어떻게 지내느냐?” “무슨 전공을 한다고 그랬지?” “학교생활 재미있냐?” 조금만 생각하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건전한 주제를 가지고 거의 목장 수준으로 분위기를 이끌어갈 수 있습니다. 2. 일찍 자리를 떠야 할 때 신앙과 연관된 이유를 대지 말라. 아들의 친구들이 모이는 날은 토요일이었습니다. 토요일은 교회에서 대학부 모임, 반사 모임 등, 모임이 있는 날이 많습니다. 그래서 친구들 모임이 파하기 전에 미리 자리를 떠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미안해서인지 대개 자리를 먼저 뜨는 이유를 상세하게 이야기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 교회 대학부 모임이 있어서….” 그런데 이런 이유를 들으면 친구들이 이해하면서 양해를 해주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비아냥거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 이다음에 천국 갈 때 나도 한 자리 부탁한다.” 이런 식입니다. 저는 아들에게 너무 자세하게 이야기하지 말고, “오늘 내가 선약이 있어서 조금 먼저 간다.”라는 정도로 양해를 구하도록 했습니다. 대개 그러면 “어, 너, 바쁘구나.”로 끝나게 됩니다. 회사에서도 업무 중에 다른 책을 보고 있으면 말을 안 해도, 성경을 읽고 있으면, “야, 여기가 교회냐?”라며 핀잔을 주기 쉽습니다. 3. 자리를 먼저 뜰 때에는 회비 이상의 돈을 놓고 떠나라. 그리고 자리를 먼저 뜰 때 양해를 구할 뿐 아니라, “내가 먼저 가는 대신 벌금은 놓고 간다.” 하면서 20,000원을 놓고 일어나라고 했습니다. 회비가 5,000원인데 20,000원을 놓고 일어나면 괜찮은 사람으로 여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더구나 저녁도 먹지 않고 가는데 말이지요. 그리스도인에 대한 이미지를 크게 바꾸어줄 수 있는 기회입니다. 그랬더니 이 친구들이 목사가 아버지인, 제 아들의 집에 겁도 없이(?) 놀러오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제가 집에 들어오는데 거실에 아들과 친구들이 앉아있더군요. 이럴 때, “다들 교회 나가냐?” 또는 “여기 교회 나가는 사람이 몇 명이냐?”와 같은 종교적인 질문은 금물입니다. 저는 썰렁한 개그를 하나 하면서 재미있게 놀라고 말하고는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다음에 모였을 때도 그렇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세 번째 모였을 때는 자기들이 질문을 하더군요. “명철(제 아들의 이름) 아버님, 대학에서 기계를 전공하셨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목회의 길을 가시게 되었어요?” 이때다 싶어서 복음을 차근차근 전해서, 그날 제 아들과 교회 다니는 한 친구를 빼고 네 명이 모두 주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 목자 목녀님들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2023년이 꼭 반이 지났습니다. 금요일과 토요일에는 목자연합수련회가 있을 때가 많습니다. 지난 금요일과 토요일에도 인천 등대교회에서 주최하는 목자연합수련회에서 가정교회에 대한 강의를 하고 왔습니다. 금요일 아침 일찍부터 자리에 앉아 준비를 하고 있는 목자와 목녀님들을 보면서 우리 교회의 목자와 목녀들이 생각이 났습니다. 매주 한 번씩 목장식구들의 저녁식사를 준비하며 한 사람이라도 더 참석하기를 기다리는 심정을, 우리 부부도 목장모임을 해왔기 때문에 이해를 하게 됩니다. 특히 목장모임이 시작되기 직전에 목장식구들로부터 오는 전화는 가슴을 덜컥 내려앉게 만들 때가 많습니다. 대부분 목장모임에 참석하지 못한다는 통보를 해올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목장식구들이 전화를 해도 받지 않고, 문자나 카톡을 보내도 아무 연락이 없을 때의, 마음의 답답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전도를 할 때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주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부정적인 반응이라도 반응을 보여주면 그만큼 관심이 있다는 뜻인데,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얼굴 표정도 바뀌지 않으면 그때처럼 답답할 때가 없습니다. 목장식구들에게서 아무 반응이 없을 때의 심정이 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 모든 일들을 경험하면서도 목자와 목녀를 하는 이유는 한 가지일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해주신 것,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게 해주신 것, 천국시민이 되게 해주신 것만 해도 감사한데, 우리를 충성되게 여겨주셔서 목자와 목녀의 직분을 주시고 사람들을 우리에게 맡겨주셨다는 감사의 마음 때문입니다. 사람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하여 예수님을 영접하고 세례를 받도록 돕는 일, 그리고 그들이 영적으로 성장하여 예수님을 닮아가는 제자가 되도록 하는 일처럼 보람있는 일이 있을까요? 우리 목자와 목녀들을 위하여 저는 매번 세 가지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첫째는, 건강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우리 목자와 목녀들의 건강을 지켜주셔서, 목장식구들을 섬길 때 몸이 연약하여 부담되는 일이 없도록 하여 주십시오.” 둘째는, 경제적인 필요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매주 식사를 준비할 때에 조금 정성껏 준비하려면 제법 비용이 들어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우리 목자와 목녀들에게 재정적인 필요를 넉넉하게 채워주셔서, 목장 식구들을 섬길 때 물질적으로 부담되는 일이 없도록 하여 주십시오.” 셋째로, 목자 목녀의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사는 모습이 가정의 큰 기쁨과 즐거움이 되기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우리 목자와 목녀 가정의 자녀들의 영혼이 평안함과 같이 그들에게 모든 일이 잘 되고 그들이 건강하도록 도와주십시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선교단체에서 헌신적으로 사역을 했던 분들의 자녀들이, 그들이 성장하는 기간에 그들에게 관심을 제대로 기울여 주지 못한 결과로 부모님의 신앙을 이어받지 못하는 경우가 간혹 있습니다. 지나간 일을 후회하거나 다른 사람을 탓할 일은 아닙니다. 스스로 자책하고 있을 일도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우리 자녀들에게 더욱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임재를 더욱 경험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저도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며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 나누고 싶은 좋은 글
제게는 종종 좋은 글을 보내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글을 통해서 일상생활에 필요한 지혜를 얻을 때가 많이 있고, 상식이 제법 늘어나기도 합니다. 며칠 전에 제가 받은 글은, 의학적으로 전문지식이 없어도 쉽게 수긍이 가는 글이었습니다. 글도 빽빽하게 쓰지 아니하고 보내온 글 그대로 띄엄띄엄 쓴 채로 옮겨 써서 쉽게 읽을 수 있는 목회서신이 되게 하였습니다. 보내온 글을 아래에 소개합니다. --------------------------- 돈으로 살 수 없는 신비의 약은 마음에 있다. 몸에 좋은 10대 건강식품은 토마토, 브로콜리, 귀리, 연어, 시금치, 견과류, 마늘, 머루, 적포도주, 녹차다. 10대 건강식품보다 훨씬 효능이 좋지만 팔지도 않고 돈으로 살 수도 없는 신비의 약이 있다. 첫째, 웃으면 나오는 “엔도르핀”은 스트레스를 해소해 준다. 둘째, 감사하면 나오는 “세로토닌”은 우울함을 없애준다. 셋째, 운동하면 나오는 “멜라토닌”은 불면증을 없애준다. 넷째, 사랑하면 나오는 “도파민”은 혈액순환에 좋다. 다섯째, 감동하면 나오는 “다이돌핀”은 만병통치약이다. 웃고, 감사하고, 운동하고, 사랑하며 감동을 주고받는 하루가 되길 바라며 건강을 위한 신비의 약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게 아니라 당신의 마음속에 있다. 오늘도 기쁨, 사랑, 행복, 건강이 함께하는 미소 짓는 하루 되시고, 작은 것에서도 의미를 찾아 지루함을 모르는 기쁨의 날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 금년 전반기 마지막 부흥회로 목포에 와 있습니다.
식사 후에 거실에 앉아 책을 보고 있노라면, 주방에서 제 아내의 웃음소리가 들릴 때가 자주 있습니다. “호호!” 더 크게 웃을 때는”크크!” 제 아내가 좋아하는 일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중의 하나는 (고)조용기 목사님의 설교를 유튜브로 듣는 일입니다. 조용기 목사님은 일상생활 속에서 자신에게 일어났던 부끄러운 일을 예로 드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라면서 형제간에 싸웠던 일로 아버지에게 꾸중을 들은 이야기부터, 초등학교 때 예뻤던 친구를 생각하며 동창회에 갔다가 그 여인을 보고 실망한 이야기까지. 그러면 당시에 조 목사님의 설교를 듣던 교인들과 함께, “호호” “크크” 웃는 것입니다. 때로는 자주 듣던 목소리의 설교를 들을 때도 있습니다. 바로 지난 주일에 했던 제 설교를 아내가 듣고 있는 것입니다. 제 아내가 설교를 듣고 있는 모습을 보면, 좀 쑥스러워서 “그걸 뭘 또 듣느냐?”고 핀잔하는 말을 합니다. 그러면 제 아내가 늘 하는 대답이 있습니다. “좋잖아요!”입니다. 저는 피식하고 웃으면서도 기분이 좋습니다. 덕분에 여러 사람 앞에서 설교할 때, 그 가운데 제 아내가 앉아 있으면 신이 납니다. 제 설교에 대해서는 이래라 저래라 한 마디도 잔소리(옳은 말을 듣기 싫게 하는 말)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 설교에 대해서 하는 유일한 잔소리는 아내의 이야기와 우리 애들 얘기 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 사모님이, 남편이 설교를 잘하도록 돕기 위하여 조언해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글쎄요 도움이 좀 될지는 모르지만, 목사님들을 주눅 들게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히려 남편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감동도 받고, 웃기도 하고, 남편에게 엄지척해주는 것이 더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사모님들이 읽어야 하는데, 이사방에 글을 올려서 죄송합니다. 사모님들은 다 잘하고 계시겠지만, “웃긴다. 이경준 목사가 이런 글을 다 올렸더라.” 하면서 아내에게 보여주시는 것은 어떨까요? 이 글을 올린 줄은 알면, 또 자기 이야기를 했다고 제 아내에게 한마디 듣겠네요. 여기까지가 며칠 전에 가정교회 이사방에 올린 저의 글입니다. 저희 부부가 여러분과 행복한제자교회에서 같이 보낸 지도 벌써 4년 반이 되었습니다. 그 사이에 대강 짐작하셨겠지만, 제 아내의 모습은 위의 글과 같습니다. 제가 여러분과 나누는 예화를 여러 번 들어도 마치 처음 듣는 사람처럼 반응합니다. 제가 다른 사람에 대해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면 눈치를 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저에 대해서 거의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열등감도 크고, 다른 사람들 눈치도 많이 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결혼 이후 아내의 칭찬을 먹고 살면서 지금만큼 자신감이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아내가 제 앞에 있으면 신나게 합니다. 적어도 한 사람은 제게 좋은 반응을 할 것이 분명하니까. 마침 이번 주일에는 제 아내가 저와 함께 목포 주님의교회 부흥회에 와있어서 그사이에 이런 글을 썼습니다.
-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소박한 비결
치매증세 1단계는 계단을 올라가다 넘어졌는데, 일어나면서 ‘내가 올라가다 넘어졌는지, 내려가다 넘어졌는지?’를 모른 것이라고 하는 농담이 있습니다. 2단계는 아침에 우산을 가지고 나왔는데, 날씨가 맑아서 우산을 손에 들고 다니면서, 팔이 뒤로 가면 “어? 우산이 어디로 갔지?”하고, 다시 팔이 앞으로 오면 “어! 여기 있었구나.” 하는 상태랍니다. 3단계는 차를 탈 때 뒷 문을 열고 뒷 자리에 앉아서 핸들이 없어졌다고 찾는 사람이랍니다. 물론 우스개 소리로 하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사람이 보내온 글입니다. 💛 파티장에서 한 부인이 잠깐 넘어졌다. “구급차를 부를까요?”라고 했지만… 그 부인은 괜찮다며 구두가 새것이라서 잠깐 휘청거렸을 뿐이라고 했다. 여럿이 그 부인 옷에서 흙을 털어주었고 음식도 새것으로 다시 가져다주었다. 그날 저녁 부인은 파티를 즐기고 귀가했다. 다음날 그 부인의 남편이 전화를 했는데, 오후 6시에 그 부인은 사망했다고 했다. 파티에서 부인은 뇌졸중을 당한 것이다. 만일 그때 누가 뇌졸중을 확인하는 방법을 알기만 했어도 부인은 지금 살아 있을 것이다. 신경과 의사의 말입니다. 뇌졸중 환자를 3시간 이내에 치료하면 뇌졸중에서 오는 결과를 완전히 역전시킬 수 있답니다. 문제는 뇌졸중이 발병하면 즉시 증세를 인지하고 진단해서 3시간 이내에 환자를 치료하는 일이지요. 좀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 뇌졸중을 영어로 STROKE라 합니다. 처음 석자 STR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뇌졸중의 징후를 찾아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걸 알지 못하면 비참한 재앙이 발생합니다. 주변에 있는 사람이 뇌졸중의 징후를 알지 못하면 환자는 영구적인 뇌 손상을 당하게 됩니다. 의사들의 말로는 옆에 있는 사람이 다음과 같은 간단한 질문을 함으로써 뇌졸중을 알아낼 수 있다고 합니다. 1. S – Smile 웃어보세요 2. T – Talk 말을 해 보세요.(제대로 완전한 문장으로 답하는지 주목해야 합니다.) 3. R – Raise 두 팔을 올려 보세요. 위의 세 가지 가운데 한 가지라도 하지 못하면 즉시 구급차를 부르세요. 그리고 구급요원에게 상황을 설명하세요. 뇌졸중의 새로운 징조 네 번 째, 혀를 내밀어 보세요. 혀를 내밀었는데 혀가 꼬부라졌다든가 이쪽 또는 저쪽으로 굽었다든가 하면 이것이 뇌졸중의 또 다른 징조입니다. 심장내과 의사가 말하기를, 이 카톡을 받는 사람이 다시 10명에게 보내면 그 중의 한 사람은 반드시 살릴 수 있을 거라고 합니다. 저는 제 몫을 했습니다. 💛
- 부흥회와 한국가사원 이사회를 위해 기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동안에 한국가정교회사역원(이후 한국가사원이라고 약칭합니다.) 목회자 컨퍼런스, 광주금광교회 부흥회, 한국가사원 이사회의, 국제풀뿌리선교회에서 강의를 전하는 일들을 잘 마쳤습니다. 특히 무리가 되었는지, 목회자 컨퍼런스 마지막 시간에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서 염려를 했는데, 금광교회 부흥회를 잘 마칠 수 있어서 매우 감사했습니다. 여러분의 기도를 느끼는 순간순간이었습니다. 여러분에게 죄송스러운 것은 주일예배나 목요 낮목장을 함께 섬기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조흥래 목사님과 여러분이 계셔서 늘 든든한 마음입니다. 앞으로 6월에 한 번, 9월에 한 번 부흥회가 잡혀 있는 상황입니다. 그 동안 코로나 덕분에 다른 일정을 잡지 않아도 되었는데, 한국가사원장을 맡고 있는 관계로 가끔 주일예배에 함께 하지 못하는 것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생명의 삶”을 공부하는 동안에는 휴강을 하지 않아야 하는데, 부득이 휴강을 하게 되어 죄송합니다. 넉넉하게 공부를 준비하고 성경말씀을 요약하는 기회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그 동안 자주 “회의를 부드럽게 진행하려면”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는데, 한국가사원 이사회의에 적용한 이야기를 해드리겠습니다. 첫째, 늘 배가 부른 상태에서 회의를 진행하였습니다. 사람은 배가 고프면 일반적으로 예민해집니다. 그래서 “결정을 짓고 식사를 하러 가자.”고 하면 식사를 하러 가기 전에 결정도 짓지 못하고, 식사를 하고 와서도 다시 논쟁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둘째, 회의 시작종을 울리지 않고 회의를 하였습니다. 예를 들어서 그냥 이야기를 하면 되는데, “나랑 이야기 좀 하자.”고 한다든지, “이따가 8시에 이야기 좀 하자.”고 하면, 대개 사람들은 긴장을 하게 됩니다. 심지어 이야기를 하기 전에 ‘창과 방패’를 준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국회에서도 서로 사이좋은 듯 대화를 하다가도, 회의 시작을 알리는 의사봉을 두드리면 그때부터 거의 싸우는 듯하는 모습을 우리는 자주 보아왔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차로 이동하는 중에 말을 시작하기도 하고, 식사를 하는 중에도 회의를 하는 등 자연스럽게 많은 것들을 결정하였습니다. 셋째, 의견을 내놓을 때에는 단정적으로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이렇게 해야 합니다.”라고 말을 하면, 다른 의견을 내놓는 사람은 이전의 의견에 대해서 반대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라고 말을 하면, 다른 의견을 내놓아도, 반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의견을 말하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에 저항감을 덜 느끼게 됩니다. “그건 말이 안 되고요.” 하면 싸움을 하기 쉽습니다. 부산에서 많이 쓰는 말이 있습니다. “언제에?” “어데에?” 하는 말은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거의 반대하는 말처럼 들립니다. 그보다는 “제 생각에는…” 하고 말을 시작하면 훨씬 분위기를 부드럽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언제에?” “어데에?”가 애교 넘치게 겸손을 나타낼 때도 있습니다. 넷째, 중요하고 심각한 논제일수록 웃는 얼굴로 말도 부드럽게 하는 것입니다. 저는 심각한 토의를 할 때에 조크를 던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 웃게 되었느냐?”고 질문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는 “그러면 울면서 이야기할까요?”로 반문하곤 합니다. 심각한 이야기일수록 웃으면서 부드럽게 하는 것이, 강한 말투로 주장하는 것보다 훨씬 빠른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많은 결정을 내리고 이사회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토’ 달지 맙시다! (다운교회 김태정 장로의 글)
어떤 말끝에 그 말에 대하여 덧붙여 말하는 것을 ‘토를 단다’고 한다. 사람들이 ‘말끝마다 토를 다네.’라고 말할 때는 거의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는 것이다. 물론 토를 다는 의도가 모두 부정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 좋게 해석하면 대화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한다든지, 중요한 부분을 한 번 더 강조한다든지 아니면 나의 의견을 피력하기 위해 얼마든지 말을 덧붙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이런 좋은 의도가 있다 하더라도 마치 대화의 마무리는 꼭 내가 해야 한다는 역사적 사명을 갖고 태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습관적으로 말을 덧붙이게 되면 그야말로 ‘말끝마다 토를 다네. ㅇㅇ없어’가 되는 것이다. 야고보서 1장 6~8절에 이런 말씀이 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질문을 갖는 것과 의심을 품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세례 요한은 예수가 자신이 광야에서 외쳤던 오실 그 분인지 아닌지 확인하기를 원했고, 예수님의 제자인 도마는 내가 직접 주를 보고 만져보지 않고서는 믿지 못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주님으로부터 확증을 얻었다. (예수님의 질책성 발언이 있었지만 그들의 믿음을 격려하시는 부드러운 음성이었을 것이다.) 반면에 의심한다는 것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토를 다는 것과 같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으면 그 말씀에 내 마음을 고정시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런데…” 하면서 마음을 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토’ 달기의 끝판 왕을 알고 있는가? 눈치 채셨겠지만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다. 이 자가 흔히 쓰는 술수가 바로 ‘토 달기’이다.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창 3:1) ‘토’ 달지 맙시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토’ 달지 맙시다.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특히 배우자, 자녀와의 대화에서 ‘습관성 대화 마무리 증후군’이 작용하고 있는지 잘 살펴보고 ‘토’ 달지 맙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