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S
말씀
- 하나님의 일꾼의 덕목로마서 15:14짧은 한 구절이지만, 로마서 15:14은 하나님의 일꾼이 갖추어야할 덕목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주님의 성품을 닮아서 마음에 선함이 가득한 사람입니다. 둘째는, 주님을 아는 지식이 넘치고,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지식이 넘치는 사람입니다. 셋째는, 다른 사람을 세워줄 수 있는 전달능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모세가 좋은 예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모세에 대해 민수기 12:3은 “모세로 말하자면,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겸손한 사람이다.”라고 표현했습니다. 또한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문제를 재판하고 이끌 수 있을 정도로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여호수아를 차세대 지도자로 세울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1. 마음에 선함이 가득한 사람 가장 선한 인격은 주님의 성품을 닮은 모습입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의 성품을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온유는 단순히 부드럽고 친절하며 화를 잘 내지 않는 성품을 말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죄에 대해서는 엄격하셨습니다. 그러나 죄인을 대해서는 용서하시고 용납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온유입니다. 겸손 역시 단순히 사람들 앞에 잘 나서지 않고 뒤에서 조용히 섬기는 성품을 말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열두 살의 어린 나이에도 성전에서 선생들과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또한 성전에 들어가시며, 성전 뜰에서 팔고 사고 하는 사람들을 다 내쫓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위선을 하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을 엄하게 꾸짖기도 하셨습니다. 겸손은 나의 필요보다 다른 사람의 필요를 먼저 생각하며, 다른 사람을 세워주고 성공시켜 주는 성품입니다. 2. 온갖 지식이 넘치는 사람 온갖 지식이 넘친다는 말은, 공부를 많이 했다거나 머리가 좋다는 말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님의 일꾼은 영혼을 구원하고 다른 사람들을 주님의 제자로 세워주는 사람입니다.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복음을 명확하게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제자는 주님의 성품과 주님의 사역을 본받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학문적으로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과 긴밀하게 동행하며 주님을 많이 경험한 사람이 주님을 많이 아는 사람입니다. 일터에서 다른 사람을 가르치고 세워주려면 첫째로,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합니다. 둘째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업무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셋째로, 함께 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을 수 있도록 대인관계를 잘 가질 수 있는 인격을 갖추어야 합니다. 넷째로, 하나님과 긴밀하게 동행함으로써 영적인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3. 서로 권면할 능력이 있는 사람 인격이 훌륭하고 온갖 능력을 갖추고 있어도 다른 사람들에게 그 인격과 능력을 전수시켜 줄 때에 일꾼의 역할을 다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선택하셔서 그들과 함께 하시면서, 말씀을 전파하는 사역, 귀신을 쫓아내는 권능을 가지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면서 “주이며 선생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겨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남의 발을 씻겨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며 섬김의 삶을 가르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지상사명을 주실 때에도,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고 자신이 하시던 사역을 전수해 주셨습니다. “그대가 많은 증인을 통하여 나에게서 들은 것을 믿음직한 사람들에게 전수하십시오. 그리하면 그들이 다른 사람들을 또한 가르칠 수 있을 것입니다.”는 바울의 권면처럼, 영적인 대를 이어가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 한 마음과 한 입으로로마서 15:1-13로마서 14장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하나 되기 위한 원칙 세 가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는 일치된 마음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그런데 비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하나 되기 위해 가져야 할 세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첫째는, ‘스스로의 확신(Conviction)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입니다. 둘째는, ‘아무리 나의 확신이 분명하다 할지라도,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장애물이나 걸림돌이 된다면 그 사람을 배려(Consideration)해서 행동하라.’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어찌하든 우리는 다른 사람을 세워주고자 하는 관심(Concern)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입니다. 15장에서는 그렇게 살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합니다. 1. 이웃에게 유익을 주고 덕을 세우십시오. 이를 위해서 먼저 이웃의 마음에 들게 행동하라고 바울은 권하고 있습니다. 자기 이웃의 마음에 들게 행동한다는 말은, 이웃의 비위를 맞추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웃에게 진정한 기쁨을 주는 행동을 하라는 것입니다. 이웃을 재미있게 해주는 것과 이웃을 기쁘게 해주는 것을 다릅니다.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고 덕을 세우는 것, 이것이 바로 섬김의 자세입니다. 섬김은 그저 다른 사람의 시중을 드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시중만 든다면 그것은 노예가 될 뿐입니다. 진정한 섬김은 나보다 공동체의 유익을 우선순위에 두는 것이며, 다른 사람을 성공시켜주는 것입니다. 나에게 좋을 대로, 즉 내 마음대로 한다면 어떤 사람들을 섬기는 것은 커녕 만나는 것조차도 하고 싶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사람들도 주님의 능력을 힘입어서 의지적으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2. 그리스도를 본받아 서로 받아들이십시오. 우리가 한 마음과 한 입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서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기질, 습관, 문화, 생각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나와 다른 도덕 기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그들을 우리는 서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본문에 좋은 방법을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가 다른 사람을 받아들일 때에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리스도께서 나를 받아들이신 것처럼, 나도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위해서 아들을 십자가에서 죽게 하시고, 내 안에 성령님께서 거하시면서 나를 변화시키시고, 지금은 나를 통해서 주님의 일에 동참하도록 하실 정도로 나를 받아들이신 주님을 기억하고,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3. 다른 사람에 대하여 기대하며 소망을 가지십시오. 그렇게 말을 듣지 않고 하나님과의 약속을 위반하였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끝까지 기다리시면서 유대인들을 구원하시고자 일방적으로 약속을 지키신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드러내시려고, 주님은 유대인의 종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과 계약관계로 일을 처리하려고 했지만, 하나님은 어떤 상황이나 조건에서도 변함이 없는 언약관계로 약속들을 지키셨습니다. 심지어 이방 사람들까지도 주님께 찬양을 드리며 주님의 이름을 찬미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덕분에 지금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며 찬양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은혜를 알 때에, 우리는 우리와 다른 사람들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마음을 우리에게 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또한 우리에게 주십니다.
- 부활신앙의 모습마태복음 28:1-20오늘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부활주일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기쁨과 흥분을 주는 사건은 주님의 부활입니다. 부활은 죽음에 대한 승리요 사탄에 대한 승리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죄와 율법과 사망으로부터 해방되었음을 선포하는 사건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어둠에서 불러내어 주님의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부활 신앙을 가진 사람은 자신을 위해 구원을 베푸신 주님을 경배하고 찬양합니다. 그의 안에 변화를 일으키시는 주님의 역사를 따라 주님을 닮아갑니다. 그리고 그를 통해 역사하시는 대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는 사역에 동참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이 어떠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1. 주님을 경배하는 신앙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여자들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였습니다. 열 한 제자도 갈릴리에 가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던 산에 이르러 예수님을 뵙고 경배하였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손에 있는 못자국과 옆구리에 있는 창자국을 보여주셨고, 제자들은 기뻐하며 믿음을 가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의심 많던 도마도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는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 하며 자기의 믿음을 고백하였습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살아계신 주님을 믿고 있다면, 우리 마음속에는 큰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예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고 감사하는 일입니다. 우리의 죄 값을 대신 치르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무엇보다도 먼저 경배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주님을 닮아가는 신앙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무덤이 비게 되자,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다시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간 것으로 음모를 꾸몄습니다. 아무도 훔쳐간 적이 없기 때문에 억지로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예수님의 부활이 역사적으로 사실이었다는 것에 대한 명확한 반증입니다. 당시에 예수님을 고의적으로 반대하는 무리들이 있었던 것처럼, 지금도 부정과 불의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정직하지 못하고 순결하지 못하게 흘러가는 세상 속에서 부활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우선 그들 가운데서 구별된 삶을 살면서 주님을 닮아가는 신앙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자녀로 삼아주신 이유는 우리로 예수님의 모습을 본받고,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삶을 살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3. 주님을 증거하는 신앙 예수님의 제자들은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갈릴리에서 뵙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중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의 땅의 모든 권세를 주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권세에 근거하여 제자들에게 “가라”고 명하셨습니다. 제자들의 사역지는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모든 족속에게 나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성령께서는 예루살렘뿐만 아니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능력을 부여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는 지상 명령과 함께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는 지상사명을 주셨습니다. 부활신앙을 가진 우리들이 이 명령을 순종하고 이 사명에 드려지는 일은 선택과목이 아니라 필수과목입니다. 부활주일을 맞아 더욱 주님을 경배하고 주님을 닮아가고 주님을 증거하는 삶에 헌신하기로 다짐하는 우리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Options
- 디딤돌인가 걸림돌인가?로마서 14:13-23고린도전서 8장은, 오늘 본문과 비슷하게, 우상에게 바쳐졌던 고기를 먹는 일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우상이란 아무것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 한 분 밖에는 신이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믿고 있는 사람에게는 그 고기를 먹는 것에 대해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우상을 섬겨왔던 어떤 사람들은 우상을 섬기던 관습에 젖어 있어서, 그들이 먹는 고기가 우상의 것인 줄로 여기면서 먹게 됩니다. 그리하면 그들의 양심이 더럽혀지게 되고 그들의 약한 양심을 상하게 되어 그리스도께 죄를 짓는 결과를 낳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음식이 내 형제를 걸어서 넘어지게 하는 것이라면, 그가 걸려서 넘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나는 평생 고기를 먹지 않겠습니다.”(고전 8:13)라고 단호하게 선언을 하였습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고 디딤돌이 될 수 있는 원칙은 무엇일까요? 1. 배려(Consideration) 한 사람에게는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로마서 14장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이방 우상에게 드려졌던 고기가 시장에서 싼값에 판매되고 있는 것을 사먹는 것이 한 사람에게는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방 우상에게 드려졌던 고기를 먹는 것은 그 제사 향연에 참여하는 것이라 생각하여 먹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 고기를 사먹는 모습이 마음에 걸릴 수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 먹는 사람이 먹지 않는 사람을 믿음이 연약한 사람이라고 심판해서는 안 되고, 먹지 않는 사람이 먹는 사람을 속되거나 부정하다고 심판을 해서도 안 됩니다. 아울러 내가 하는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장애물이나 걸림돌이 된다면 그것을 하지 말라고 성경은 명령하고 있습니다. 2. 관심(Concern) 15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우리가 어떤 문제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면, 그것은 이미 사랑을 따라 살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다른 사람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말입니다. 다른 사람을 세워주려는 의지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지체가 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을 지으실 때에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께서 그를 지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나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그 사람을 위해서도 죽으신 것입니다. 성령님은 내 안에만 거하시는 것이 아니라, 믿는 그 사람 안에도 거하십니다. 그러니 어찌 그 사람을 믿음에서 떠나게 하거나 실족하여 망하게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내가 아무리 좋다고 여기는 일이라도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비방거리가 된다면 금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화와 기쁨입니다. 3. 확신(Conviction) 이러한 배려와 관심을 가진 삶을 살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개인적인 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22절에서는 “그대가 지니고 있는 신념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간직하십시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진리 안에서 확신이 없으면 기준이 흔들리기 쉽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이 분명한 기준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에는 순종과 일치를 힘써야 합니다. 비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비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내가 하는 말이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장애물이나 걸림돌이 된다면 그들을 배려하고 그 사람을 세워주고자 하는 관심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의롭고, 사람들과 평화하며, 자신의 마음에 기쁨을 가질 수 있는 일에 스스로 확신을 가지고 힘쓰시기 바랍니다.
-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로마서 14:1-12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신앙 기준을 정해 놓고, 자기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자기의 잣대를 가지고 측정을 하며 믿음이 없는 것으로 판단하기가 쉽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마치 믿음이 약한 사람처럼 여기며 시비거리로 삼지 말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특히 비본질적인 문제를 가지고 다툼을 하여,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하는 본질적인 문제를 깨뜨리는 일이 없도록 우리는 주의해야 합니다. 1. 믿음이 약한 이를 받아들이라. 로마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음식을 “깨끗한 음식”이라고 가려서 먹었고, 반면에 어떤 음식은 “깨끗하지 못한 음식”이라고 가려서 먹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교도의 제사상에 올렸던 고기를 전혀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서로 비판하거나 업신여길 일이 아니라, 서로 받아들여야 할 일입니다. 우리는 분명한 기준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첫째,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일치를! 비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다양성을! 모든 일에 사랑을”입니다. 둘째, “내가 동의할 수 없는 생각이나 문화나 습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판단하거나 믿음이 약하다고 단정을 내려서는 안 된다.”입니다. 어쩌면 그러한 사고의 틀에 매여 있거나 율법주의에 묶여 있는 내가 더 믿음이 약한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나와 생각이 다르고 문화가 다른 사람의 주인도 역시 주님이십니다. 내가 누구이기에 우리 주님의 종을 비판하겠습니까? 그가 서 있든지 넘어지든지, 그것은 그의 주인이신 주님께서 상관하실 일입니다. 2. 각각 자기 마음에 확신을 가지라. 이교도의 제사상에 올렸던 고기를 먹는 사람은, 주님께서 주신 돈을 한 푼이라도 절약하여 좋은 일에 사용하려는 마음으로 그렇게 하였을 것입니다. 그 고기를 먹는 사람은 고기를 조금 덜 먹더라도 이교도의 제사상에 올렸던 깨끗하지 못한 고기는 먹지 않겠다고 작정을 하였을 것입니다. 두 사람 모두 각각 자기 마음에 확신을 하되,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 대해 시비를 걸지 않아야 합니다. 주님에 대한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받아들이고 그들을 이해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당시 어느 날이 중요한가의 문제도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날로 특정한 날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다른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날이 하나님께 영적인 예배를 드리는 날이라고 주장을 합니다. 의견이 다른 것은 서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면 됩니다. 비본질적인 문제들은 가각 자기 마음에 확신을 가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3. 각각 자기 일을 하나님께 아뢸 것이다. 바울과 바나바가 1차 전도여행 후에 예루살렘 공회를 멋있게 마친 후에, 마가를 데리고 가는 문제를 가지고 심한 다툼이 있었습니다. 문제는 서로 다른 의견을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이 비본질적인 문제 때문에,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하는 본질적인 문제를 깨뜨려버린 것입니다. 두 사람 모두 “나는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습니다.”라는 믿음이 분명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동일한 확신을 가지고 상대방을 용납하지 못하고, 서로 비판을 하고 심하게 다툰 후에 갈라선 것입니다. 후에 바울 사도가 로마서를 기록하면서 이 14장을 기록할 때에는, 수년 전에 바나바와 심히 다툰 일을 회상하면서 멋쩍게 웃으며 이 편지를 썼을 것입니다. ‘얼마든지 서로 이해하고 좋은 말로 끝날 수 있었는데… 어차피 우리는 각각 자기 일을 하나님께 사실대로 아뢰어야 할 일인데… 공연히 별 일도 아닌 것을 가지고 싸웠어.’ 하고 말입니다.
- 이웃 사랑과 자기 사랑로마서 13:8-14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하고 으뜸가는 계명은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입니다. 둘째 계명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입니다. 우리말의 경천애인(敬天愛人)이라는 말이 바로 이에 해당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모호하게 하늘을 숭배한다는 말로 표현을 했지만, 그 하늘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을 분명히 알고 있는 우리는 숭배해야 할 대상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이 중에 둘째 계명인 이웃 사랑과 자기 사랑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자기 사랑’은 자기중심적인 태도나 이기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귀중하게 여기고 값있는 사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뜻합니다. 이웃 사랑 역시 이웃을 귀중하게 여기고 값있는 사람으로 여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웃 사랑 사람은 사회생활을 통해서 다른 사람의 사랑을 입고 살아갑니다. 최소 단위의 공동체인 가정에서부터 우리는 사랑을 힘입고 살아왔습니다. 한 마디로 우리는 이웃에게 사랑의 빚을 지지 않고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이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말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십계명 중의 1-4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5-10계명은 사람을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5계명은,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이웃인 “부모님을 공경하라”고 명령합니다. 혹 주 안에서 순종하기 어려운 말씀을 하시더라도 우리는 마음으로부터 부모님을 공경해야 합니다. 6계명,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대로, 다른 사람의 생명을 귀중하게 여겨서 이웃의 생명에 지장을 주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7계명, “간음하지 말라”는 말씀대로, 우리는 성적 유혹을 불러일으키는 일조차도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8계명, “도둑질하지 말라”는 말씀은 남의 물건을 귀중하게 여기라는 말씀입니다. 9계명, “네 이웃에게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말씀대로 우리는 정직성과 투명성을 지켜야 합니다. 10계명, “네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는 말씀을 순종하려면, 우리는 자기 것에 만족할 줄 아는 인격을 키워야 합니다. 이 모든 말씀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하신 말씀으로 요약이 됩니다. 자기 사랑 자기 사랑은 앞에서 말한 대로, 이기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서 나를 보시는 것처럼, 값있는 사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을 닮도록 만드신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나를 대신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성령님께서 내 안에 거하십니다. 그만큼 나는 귀중한 사람입니다. 자기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늘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부정적으로 살아갑니다. 따라서 우월감과 열등감이 교차되는 불안정한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창조의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이런 사람은 다른 사람을 대할 때 자기가 어떻게 하면 저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합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삶에 책임을 지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경건한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입고 있는 옷은 우리의 마음과 삶을 표현합니다.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고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 국민으로서의 의무로마서 13:1-71.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하라. 사람은 ‘굴복’이나 ‘복종’이라는 단어보다는 ‘반항’이라든지 ‘저항’이라는 단어에 훨씬 더 호감을 가지기 마련입니다. 사람들은 복종이나 순종을 즐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타락한 인간의 특성 중의 하나가 ‘반항’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성경은 아주 예외적인 경우에는 저항이 마땅하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보편적인 삶의 자세로는 ‘복종’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정부에서 정한 법을 어기는 사람은 정부에서 정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정부에서 정한 세금을 내지 않는 사람도 강제로 징수를 당하거나 그에 상응하는 심판을 받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국방, 교육, 납세, 근로 등 국민의 사대의무라는 것으로 제한을 두어 국가라는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가장 기본적인 의무들을 정하고 있습니다. 2. 좋은 일을 하라. 치안관들은 질서를 유지하는 사람들입니다. 치안관들은 질서를 유지하고 안전을 도모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은 치안관들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히거나 자기의 유익만을 구하는 사람은 치안관을 두려워합니다. 신학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말할 때 두 가지의 종류로 구별합니다. 첫째는 본래 하나님이 원하시고 의도하셨던 하나님의 최선의 뜻을 말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하는 일이,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최선의 뜻이 아닐 경우라도, 하나님께서 그것을 허용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하나님의 허용적인 뜻, 혹은 허용적인 작정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4절에서 권세를 행사하는 사람을 ‘하나님의 일꾼’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직접 의도해서 세우셨든, 아니면 하나님이 허용해서 세우셨다는 말이 됩니다. 우리의 유익과 한 사회의 복리와 질서의 유지를 위해서 하나님이 그들을 세우셨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협력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3. 모든 사람에게 의무를 다하라. 사람들은 가능하면 하나라도 짐을 덜어버리고 손해를 덜 보려고 애를 씁니다. 그런데 본문의 마지막 절인 7절에서 결론을 내립니다. “모든 사람에게 의무를 다하라.”입니다. 기독교에는 국경이 없습니다. 복음은 국경을 초월합니다. 복음은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져야 합니다. 기독교에 국경은 없지만 기독교인에게는 조국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넓은 시야를 바라보면서, 주님의 나라를 위해서 살지만 동시에 우리들의 삶의 터전을 제공하고 우리의 생명의 젖줄인 조국의 발전에 기여를 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지상에 사는 동안에 한 국가를 통해서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놀라운 특권을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질서의 유지를 위해서 주께서 세우신 권세자들에게 복종합시다. 그리고 선한 국가가 되도록 힘쓰고 참여합시다. 또한 우리에게 주어진 축복의 일부를 정직과 기쁨으로 나누는 납세의 의무를 실천하는 우리 성도들이 되기 바랍니다. Options
-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게로마서 12:9-21기본원칙: 사랑과 선함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 사람을 속이거나 그에게 해를 끼치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의지적인 사랑을 가식과 혼동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자기의 마음에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감정이 느끼는 대로 말하거나 행동했을 때에 그것이 상대방을 마음 아프게 하고 상처를 입힌다면 그것이 오히려 악한 것이 됩니다. 사랑은 감정적인 사랑과 지성적인 사랑과 의지적인 사랑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좋아하고 함께 있으며 대화를 나누고 좋은 것을 나누고 싶은 심정이 생기는 것은 감정적인 사랑입니다.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가 이해하는 것은 지성적인 사랑입니다. 내 생각과는 다르더라도 그를 위하여 맞추어준다면 그것은 의지적인 사랑입니다. 사랑은 눈을 멀게 하고, 팔을 안으로 굽게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것은 인간의연약함에서 나오는 결과입니다. 온전한 사랑은 악한 것을 미워합니다. 그리고 선한 것을 추구합니다. 믿는 형제들을 대하는 방법 로마서 12장은 특히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된 형제자매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형제의 사랑으로”라는 말은 서로 지체가 된 것처럼 하라는 의미입니다. 물론 쉽지는 않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성공을 하려면 열심을 내어서 부지런히 일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열심을 낼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분명한 목적과 계획을 가지고 나를 만드셨다는 사실을 안다면 우리는 대강 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지체의식을 가지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성도들은 모두가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시고 있는 한 몸이요, 그 안에서 서로 지체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지체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아울러 손님 대접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특히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손님에게는 더욱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이 그 손님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중에 하나님의 천사를 대접했던 것처럼. 믿지 않는 사람들을 대하는 방법 때로는 우리를 괴롭히고 어렵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축복하라고 성경은 명령하고 있습니다. 물론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할 때에 그 축복이 나에게 돌아온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좀 더 수월해집니다. 단, 나를 어렵게 만든 사람을 축복한 후에 뒤돌아서서 저주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에 대해서조차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이 선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려고 애쓰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할 수 있는 대로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게 지내기를 힘쓰라고 생활지침을 주셨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원수를 갚아주시는 일은 주님께서 하실 일이라 여기고 주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을 것을 주고, 그가 목말라 하거든 마실 것을 주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 결과는 그의 머리 위에다가 숯불을 쌓는 셈이 될 것입니다. 원수의 머리가 수치심과 미안함으로 뜨끈뜨끈할 것입니다. 결론은 간단합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십시오.”
- 자연스러운 영성, 생활 속의 헌신[로마서 12:1-8] 로마서 12장 1절은 실제로는 로마서 8장에 이어지는 것입니다. 로마서 1-3장에서, 의로우신 성부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보았습니다. 4-5장에서, 죄가 하나도 없으신 성자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써 우리가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고 심판받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6-8장에서,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성령의 법이 우리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하여 주신 것을 알았습니다. 이 은혜를 알기 때문에, 로마서 12:1에서 “형제자매 여러분, 그러므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일에 헌신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힘입는 것입니다. 자연스러운 영성 이 은혜를 안다면, 우리가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합당한 예배입니다. 진정한 예배는 정해진 시간에 교회에 와서 앉아있는 것만이 아니라, 헌신하는 삶을 사는 것이 진정한 예배입니다. 주일예배를 통해서 감격을 느끼고 은혜를 받을 수 있는 비결은 한 주일 동안 주님의 뜻대로 살려고 애를 쓰다 교회에 오는 것입니다. 운동을 열심히 한 사람이 밥맛도 좋듯이, 일주일 동안 주님의 뜻대로 살려고 애쓰며 노력하고, 그래서 기쁨도 맛보고, 때로는 실수도 하고 예배에 임하면 예배가 은혜가 됩니다. 그리고 목장모임에 모여서 서로 실패도 나누고 기쁨도 나눈 후에 예배를 드리면 은혜가 넘치고 감격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자연스러운 영성입니다. 생활 속의 헌신 헌신은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용하시도록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헌신입니다. 우리의 가정에서, 우리의 직장에서, 우리의 교회에서 하나님은 내게 어떠한 삶을 살기 원하시는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삶을 사는 것이 헌신입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헌신을 하는 것입니다. 헌신은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 헌신은 특권입니다. 생활 속의 헌신이 우리에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첫째로,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삶에 드려지고자 하는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둘째로, 내가 하나님께 어떻게 드려지는 것이 좋은지를 알아야 합니다. 내게 있는 영적 은사와 재능을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셋째로, 이제 그 열정과 은사를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내 스타일을 알아야 합니다. 내게 주신 은사는 무엇인가? 은사는 여러 가지지만 그것을 주시는 분은 같은 성령이십니다. 이 모든 일은 한 분이신 성령이 하시며, 그가 원하시는 대로 각 사람에게 은사를 나누어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은사에 대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은사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으십시오. 우선 여러 가지 일을 해보십시오. 그 일만 하면 정말 기쁜, 그런 일을 발견하기 바랍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가 찾으십시오. 2. 잘 할 수 있고 남에게 유익이 되는 일을 찾으십시오. 그 일에 대한 평가를 해보십시오. 내가 잘 하는 일, 그리고 남에게 유익이 되는 일을 찾으십시오. 3. 평생 헌신하고, 꾸준히 개발하십시오. 자신의 은사라는 확신이 들면, 이 일을 평생 하겠다고 결심하기 바랍니다. 은사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지만 우리의 책임도 있습니다. 은사를 개발하는 방법은 은사를 땅에 파묻지 말고 계속해서 성실하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Options
-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성경본문 : 로마서 11:1-12] 두 형제를 키우는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큰 아이가 조금 약해 보여서 보약을 준비했는데 도무지 먹을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지혜를 내었습니다. 둘째가 집에 들어올 때 그 보약을 먹으라고 했습니다. 둘째가 신나게 먹고 있는 모습을 본 첫째는 시기심이 생겨서 그것을 빼앗아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둘째를 더 사랑한다고 오해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후에 첫째가 어른이 되었을 때, 그것이 어머니의 지혜였음을 깨달았습니다. 그 어머니의 지혜를 깨달은 것처럼,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의 깊이에 대하여 로마서 9-11장의 바울의 결론은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은 어찌 그리 깊고 깊으십니까? 그 어느 누가 하나님의 판단을 헤아려 알 수 있으며.”(11:33)였습니다. 1. 성실하신 하나님의 약속 바울은 우선 하나님께서 완전히 이스라엘을 버리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설명했습니다. 적어도 이스라엘 사람인 자기가 버림을 받지 않았다면, 이스라엘이 완전히 버림받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실한 자들을 남겨두심으로써 언제나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시며 그의 약속을 성취시켜 나가십니다. 엘리야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송사하면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버렸고 자기만 남았다고 주장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신 말씀 속에서도 우리는 또한 그 증거를 찾을 수 있습니다. 바알에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을 하나님은 남겨두셨습니다. 약속을 이루시는 일에 성실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완전히 버리지 않으셨다는 분명한 증거입니다. 2. 남은 자들을 두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완전히 버리지 않으셨다는 더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의 성품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엎드러질지라도 일어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미가 7:8) 사람들이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하도록 손으로 붙드시는 하나님이십니다.(시편 37:24)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여덟 번 일어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잠언 24:16) 엘리야는 바알 선지자들을 모두 잡아 기손 시내로 데려가 죽이게 했습니다. 영적 전투에서 승리한 엘리야는 아합의 아내 이세벨을 인하여 다시 허탈감에 빠졌습니다. 그는 크고 강한 바람 속에서 하나님을 기대했습니다. 바람 후에 지진 속에서도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지진 후에 불 속에도 하나님은 계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세미한 소리 가운데 남은 자가 있음을 알려주셨습니다. 3. 이스라엘의 넘어짐과 실패의 결과 본문 11절은, 이스라엘이 넘어지고 실패한 결과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이 걸려 넘어져서 완전히 쓰러져 망하게끔 되었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그들의 허물 대문에 구원이 이방 사람에게 이르렀는데, 이것을 이스라엘에게 질투하는 마음이 일어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거절했기 때문에 지금은 축복이 이방인에게 넘어가버린 것처럼 되었지만, 언젠가는 하나님의 은혜를 빼앗긴 이스라엘이 시기가 나서 다시 그것을 되찾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서 하루 속히 자기의 동족이 시기가 나서 하나님께 돌아올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불신앙을 회개하고 속히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누리는 대열 속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