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S
말씀
- 복음을 전하는 자의 아름다운 발[그림 해설] 1. 성령으로 거듭난 자 사도행전 1:8, 로마서 8:9 2. 주님과의 개인적인 교제 시편 143:8, 마태복음 4:19 3.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과 기도 로마서 10:1, 4. 다른 사람과의 접촉 요한복음 1:41, 45, 고린도전서 9:19-22 4. 다른 사람과의 접촉 요한복음 1:41, 45, 고린도전서 9:19-22 5. 빛 된 삶 마태복음 5:16, 데살로니가전서 1:5 6. 하나님의 말씀 베드로전서 3:15, 요한복음 6:63 [성경본문 : 로마서 10:1-21]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갖추어야 할 것을 다음과 같이 여섯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성령으로 거듭난 자 사람을 낚는 일을 하려면, 즉 사람들이 주님 앞으로 나아가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하려면 우선 성령으로 거듭나서 영원한 생명을 얻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더구나 성령을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는 주님이시다.” 하고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성령을 힘입어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한 경험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2. 주님과의 개인적인 교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나는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로 삼겠다.” 우리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는 것은 주님께서 해주실 일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오직 주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주님을 따라가는 것은 어떤 삶을 사는 것일까요? 우선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주님과 긴밀한 교제를 나누는 삶입니다. 아침에 약간의 성경을 읽고 잠시 기도하는 삶이 아니라, 늘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3.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과 기도 누구에게 복음을 전하려면 관심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 여러분 옆에 있는 동료, 직장 선배, 후배들에 대하여 “저 사람들 나에게 복음 듣기 전에는 이 회사 그만두지 못한다.” 하는 정도의 관심과 그들이 구원을 받아야할 것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4. 다른 사람과의 접촉 자 이제는 다른 사람을 만날 기회를 가져야 합니다. 낚싯대를 들고 있다고 해서 점프를 해서 낚싯대를 무는 고기는 없습니다. 낚싯대에 줄을 매어 낚시 바늘을 물속으로 집어넣어야 하는 것처럼 이제 우리는 사람을 낚기 위하여 사람들에게 접근해야 합니다. 5. 선한 간증(빛과 소금이 되는 삶) 보통 소금의 역할을 말하라고 대개 세 가지를 이야기합니다. 첫째는 맛을 내는 것, 둘째는 부패를 방지하는 것, 그리고 셋째는 숨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소금의 역할에 대하여 새롭게 배운 것은, 갈증이 나게 한다는 것입니다. 피자가 짠 이유는 갈증이 일어나게 해서 탄산음료를 많이 마시게 하기 위한 작전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굳이 다른 예를 들지 않더라도, 짠 음식을 먹으면 물을 더 찾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소금은 갈증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은 주위 사람들에게 영적인 갈증을 일으키는 것이 옳습니다. 6. 복음(하나님의 말씀) 끝으로, 낚시의 결정적인 부분은 바로 낚시 바늘입니다. 우선 사람들에게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게 해주어야 합니다. 환자가 본인이 환자인 것을 알아야 의사를 찾듯이, 사람은 자신이 죄인인 것을 알아야 하나님을 찾을 수 있습니다. 둘째로 알려주어야 할 것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는 사실입니다, 또한 “그러나 그를 맞아들인 사람들, 곧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요 1:12)는 주님의 약속을 알려주어서, 주님을 마음속에 모셔 들이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 누가 구원을 받을 남은 사람인가?[성경본문 : 로마서 9:14-33] 많은 사람들이 예정론에 대해 나름대로 정의를 내리고,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예정설이라는 말을 들을 때, “구원받을 사람과 구원받지 못할 사람을 하나님께서 미리 정해 놓으셨다.”는 교리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예정이라는 말은 미리 정했다는 말인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정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얻고 진리를 알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을 모두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그를 믿는 사람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은 심판을 받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내용입니다. 1. 하나님의 선택 사람은 구원을 얻기에는 의지나 힘이 너무 연약합니다. 사람은 죄인이어서 아무리 스스로 노력을 하여도, 자신의 죄를 없애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는 나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자비를 베풀기로 작정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긍휼히 여기시고자 하는 사람을 긍휼히 여기시고, 완약하게 하시고자 하는 사람을 완악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을 긍휼히 여기시는지 분명한 기준을 주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근거도 없이 무조건 마음대로 긍휼히 여길 자와 완악하게 하시고자 하는 사람을 정해 놓지 않으셨습니다. 어떤 사람을 긍휼히 여기실 것인지 분명한 기준을 정해 놓으시고 그 기준을 모든 사람에게 알려주셨습니다. 2.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참으시고 여태까지 기다리신 것을 생각하면 더 이상 하나님께 시비를 걸 수가 없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이라고 가정을 해봅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고통을 받는 것을 보고,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내도록 모세를 보내려고 하는데 모세가 계속 거절을 합니다. 이적도 보여주고 하나님께서 돕겠다고 하시는데도, “주님, 죄송합니다. 제발 보낼 만한 사람을 보내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이라면 이럴 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바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몇 번씩이나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의 이적을 보여주었는데 끝까지 고집을 부립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이라면 몇 번이나 참겠습니까? 어찌 보면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에 대해 참으시고 자비를 베푸시는 역사를 기록한 책입니다. 3. 하나님의 은혜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자신을 온 세상에 알리시려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하신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약속의 자손으로 택하셨을지라도, 그들 모두가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을 택하신 것은 하나님을 증거하도록 택하신 것이지, 무조건 그들이 구원을 얻도록 선택하신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다의 모래와 같이 많을지라도, 남은 사람만이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구원을 받을 남은 사람일까요? 한 마디로, “믿음에 근거하여 의에 이르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유대인이나 모태신앙인이라고 해서, 즉 혈통에서 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율법을 지키거나 말씀대로 도덕적으로 살려는 노력에 의해서, 즉 육정에서 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세례나 영세나 할례와 같이 누가 시켜주는 것, 즉 사람의 뜻에서 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 중보 기도하는 사람의 자세[성경본문 : 로마서 9:1-13]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그 앞에서 제사를 드리며 타락하였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없애버리려고 하시자 모세는 그들을 위하여 중보 기도를 드렸습니다. 예루살렘 성벽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다 불에 탔을 때에, 느헤미야는 그들을 위해 중보 기도를 드렸습니다. 오늘 본문에 있는 대로,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고 하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서 구세주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있는 것을 보면서 바울은 그들을 위해 중보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 안에 다른 사람을 위하여 중보 기도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공통적으로 갖추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기도 대상들에 대해 슬퍼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고, 그들에 대한 책임을 느끼며, 그들의 회복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1. 슬퍼하는 마음 사도 바울은 자신의 동족인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큰 슬픔이 있었습니다. 마음에는 끊임없는 고통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입으로만 하는 말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참말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내 양심이 성령을 힘입어서 이것을 증언하여 줍니다.”라고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였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으로 신상을 만듦으로써 큰 죄를 지은 것을 슬퍼하면서 주님께로 나아가 아뢰었습니다. 느헤미야는 그의 형제 가운데 하나인 하나니에게서 예루살렘의 비참한 형편에 대해 듣고는 주저앉아서 울고 슬픔에 잠긴 채로 며칠 동안 금식하면서, 하늘의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2. 책임감을 가짐 사도 바울은 동족에 대해 큰 슬픔이 있었을 뿐 아니라, 자기 동족을 위하는 일이면, 자신이 저주를 받아서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달게 받겠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구원을 얻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을 가볍게 여겨서가 아니라, 동족에 대한 깊은 사랑과 책임을 느끼는 마음에서 나오는 말이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면서, “그렇게 하지 않으시려면 주님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저의 이름을 지워주십시오.” 하면서 책임을 느끼며 기도하였습니다. 느헤미야는 유다 사람들이 망한 것에 대해, 이스라엘 자손이 주님이 거역하는 죄를 지은 것을 자복함과 아울러 “저와 저의 집안까지도 죄를 지었습니다.” 하며 그것을 자신의 잘못으로 알고 회개를 하였습니다. 3. 회복을 기대함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많은 특권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이 있고, 하나님을 모시는 영광이 있고, 하나님과 맺은 언약들이 있고, 율법이 있고, 예배가 있고, 하나님의 약속들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족장들은 그들의 조상이요, 그리스도도 육신으로는 그들에게서 태어나셨습니다. 물론 육신의 자녀가 아니라 약속의 자녀가 참 자손이 되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을 하나님께서 회복하실 것을 바울은 믿었습니다. 모세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에게, “내가 너희의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내가 약속한 이 모든 땅을 너희 자손에게 주어서.”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주장하였습니다. 느헤미야는 주님의 종 이스라엘 자손에 대해 “주님께서 크신 힘과 강한 팔로 건져내신 주님의 종이며, 주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주장하면서, 그들을 구원해주실 것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하여 중보 기도하는 우리의 자세를 다시 한 번 점검해 봅시다.
- 승리가 보장되어 있는 싸움[1월 26일] 성경본문 : 로마서 8:31-39 축구 시합이든 어떤 경기를 관람할 때에, 이미 선발이 결정된 상태에서 하고 있는 경기를 볼 때가 있습니다. 그때에는 새로운 전술을 사용해 보기도 하고 새로운 선수를 기용해 보기도 합니다. 이미 선발이 되었기 때문에 여유가 있는 것입니다. 이럴 때에 상대방 선수들은 더욱 초조하여 조급하게 게임을 이끌어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다 이루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결정적 승리를 얻은 사람들입니다. 이제 주님께서 재림하셔서 완전한 승리를 성취하실 그날을 소망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기고 지는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긴 싸움인데 평정하는 싸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1. 우리 편이신 하나님 성령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십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기도를 응답해 주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알지 못할 때에 기도하는 법도 알려주시고 기도할 내용도 알려주십니다. 우리를 대신하여 탄식하며 기도해 주기도 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해주십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이 우리 편이라는 사실입니다. 천지를 만드시고, 인간이 태어나고 죽는 것을 관장하시고 화와 복을 주관하시는 전지전능의 하나님께서 우리 편이시면 누가 우리와 맞서 싸울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무조건 우리 편을 들어주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편이시다.”라고 주장함과 동시에 우리가 하나님 편이 되어야 합니다. 2. 아들까지 아끼지 않고 내주신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가장 귀한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주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귀중하게 보아주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아들까지 내주실 정도라면, 그 아들과 함께 무엇을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우리는 이미 엄청난 사랑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아들을 선물로 주실 때에, 영원한 생명, 기도할 수 있는 특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특권 등, 모든 것을 그 안에 선물로 넣어서 거저 주셨습니다. 더구나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인치신(도장을 찍으신) 사람들을 누가 감히 고발할 수 있겠습니까? 3. 무엇도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때에, 예수님은 우리에게 놀라운 약속을 주셨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영생을 준다. 그들은 영원토록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그들을 나에게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도 더 크시다. 아무도 아버지의 손에서 그들을 빼앗아 가지 못한다.(요 10:28-29) 이러한 관계를 계약관계가 아니라 언약관계라고 부릅니다. 계약관계는 어떤 상황이나 조건이 달라지면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관계입니다. 그러나 언약관계는 어떤 상황 어떤 조건에서도 절대로 바꾸지 않는 관계를 말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붙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붙들고 계시기 때문에 이것이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죽음이나 삶, 천사들이나 권세자들, 현재 일이나 장래 일,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 그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까지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날마다 승리하는 간증이 넘치는 우리 성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D-Day와 V-Day 사이에서[1월 19일] 제 2차 세계대전이 마무리되는 과정에서 연합군에게는 매우 의미 있고 중요한 두 날이 있었습니다. 한 날은 1944년 6월 6일, 연합군이 독일군을 패배시키기 위해 노르망디 해안에 상륙하던 날입니다. 이날 연합군은 결정적 승리를 확보하게 되었는데, 이날을 가리켜서 연합군은 D-Day(Decision Day:결정의 날)라고 불렀습니다. 그 베를린을 함락시키던 1945년 5월 8일, 그날이 바로 결정적 승리가 성취되는 날이었는데, 그날을 가리켜 연합군은 제 2차 세계 대전의 전승 기념일로 V-Day(Victory Day:승리의 날)라고 불렀습니다. 신학자들은 흔히 이 두 개의 중요한 날 즉, 노르망디 상륙의 날인 D-Day 와 베를린 함락의 날인 V-Day를 예수님의 초림과 예수님의 재림이란 두 개의 중요한 사건에 비유했습니다. 1. 흰 개와 검은 개 예수님을 구주와 주인으로 마음에 모시고 사는 사람은, 그의 영은 이미 구원을 받았지만 몸은 아직 구원받을 것을 소망하고 있습니다. 그 사이 기간에 우리의 마음도 두 마음을 가지고 싸울 때가 많이 있습니다. 내 마음속에 검은 개와 흰 개가 싸우고 있는 셈입니다. 흰 개는 늘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 하나님께서 선하게 보시는 일을 추구하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내 마음속에 있는 검은 개는 육신과 마음이 원하는 대로 행하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이 두 마리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요? 대답은 먹이를 잘 먹은 개입니다. 여러분이 먹이를 많이 준 개가 이긴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검은 개와 흰 개는 먹이가 다릅니다. 검은 개의 먹이는 육체의 욕망과 눈의 욕망과 세상 살림에 대한 자랑입니다. 흰 개의 먹이는 말씀, 기도, 교제, 전도의 삶 등 거룩한 삶을 추구하는, 성령 충만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2. 성령님의 도우심 때로는 우리의 죄성과 연약함 때문에 유혹을 받아 검은 개에게 음식을 주어 흰 개가 검은 개에게 눌리게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V-day에 검은 개의 존재가 우리 속에서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때까지는 성령님께서 우리의 약함을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무엇이 우리에게 약한 부분인지, 우리가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를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무엇을 도와달라고 기도해야 할지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한 우리의 약함을 도와주시기 위하여 성령님께서 친히 이루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하여 주십니다.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해 주시는 성령님은 하나님의 뜻을 모두 아십니다. 하나님께서도 성령님의 생각이 어떠한지를 모두 아십니다. 삼위가 일체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3. 협력해서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어려운 일이나 고통스러운 일을 당할 때, 우리 마음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런 일을 내게 허락하실까?’입니다. 그런데 그런 일조차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협력해서 선을 이루도록 해주십니다. 제가 좋아하는 글이 있습니다. “사람이 실수하여 귀한 도자기를 깨뜨렸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도자기 조각들을 가지고 더 귀한 모자이크를 만드신다.” 우리를 구원하셔서 자녀로 삼으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해 주실 뿐만 아니라, D-day와 V-day 사이에서 우리로 예수님을 닮도록 성숙하게 하시고, V-day에 우리를 영화롭게 하실 것입니다. 이 소망을 가지고 그 날이 오기까지 승리의 삶을 사는 성도들이 되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