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 열등감 극복 (최영기 목사님)
제가 40대 중반까지 열등의식과 싸워야했던 사실을 생명의 삶 클래스에서 말했더니 어느 분이 자신도 열등의식과 싸우고 있는데 어떻게 극복했는지 말해 달라고 이메일로 요청해 왔습니다. 이분에게 보낸 답신 일부를 여기에 옮깁니다. “열등의식은 비교의식에서 나옵니다. 열등의식을 극복하기 위하여서는 열등의식 자체를 공격해서는 소용이 없습니다. 비교의식이 사라지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눈으로 자신과 이웃을 보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온 우주에 하나밖에 없는 존재처럼 귀하게 여기십니다. 하나님께 이처럼 귀한 존재를 무슨 이유에서든지 비하하는 것은 하나님을 슬프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달으면 하나님께 죄송해서 자신을 비하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자신뿐만이 아니라 우리 이웃도, 온 우주에 하나밖에 없는 존재처럼 귀하게 여기십니다. 이웃을 질투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달으면서 하나님께 죄송하여 질투를 못 하게 됩니다.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 손에 맡기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세상에 보내신 목적을 이루는 최선의 삶을 살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그러나 이 삶이 어떤 삶인지는 개인마다 다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남의 인생을 어떻게 빚어 가시는지는 내가 상관할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께 순종하며, 자기 삶만 살아가면 됩니다. 누가 성공한 삶을 살았고 아름다운 삶을 살았는지는 세상이 판단할 일이 아닙니다. 우리를 만드시고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이 하실 일입니다. 세상이 성공했다고 박수쳐주는 사람의 삶을 하나님께서는 실패한 삶으로 간주하실 수도 있고, 세상이 복 받았다고 부러워하는 사람의 삶을 하나님께서는 저주받은 삶으로 판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사는 동안은 판단을 보류하고, 하나님께서 공정하게 심판하실 그 날을 바라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시각으로 자신, 이웃, 세상을 보는 습관이 들기까지 시간이 걸립니다. 조급해하지 말고, 언제인가 열등의식이 사라질 것이라는 소망을 갖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하루하루 감사하며 성실하게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내게 부러움을 느끼게 만들고 열등의식을 심어주는 사람은 의지적으로 칭찬해주기를 바랍니다. 축하의 말을 해주고, 축하의 글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할 때 신기하게도 그 사람이 정말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기고 열등의식이 사라져 감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 균형잡힌 신앙생활
사람의 마음 지정의(知情意) 세가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알고, 느끼고, 원하는 이 세 가지는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진정한 회심이나 영적 성장은 이 세 가지가 균형을 이룰 때 온전하게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이 세가지가 균형을 이루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선교 단체는 젊은이들에게 복음 증거와 제자훈련에 큰 역할을 감당하였습니다. 그러나 최근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봅니다. 이유는 지적인 면에 편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논리적으로 설득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는데, 감성 시대인 21세기에 이런 방법으로 전도하는 것은 점점 힘들어질 것입니다. 한때 부흥 집회를 통해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요즈음 부흥회를 통해 예수를 믿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부흥 집회는 감동을 주는 설교, 공감을 심어주는 간증을 통해 감정적인 면에서 접근하지만, 정보 시대에 사는 현대인들은 정보가 결여된 이런 방법이 더 이상 효과적이지 못합니다. 복음을 들고 노동자들과 빈민들 틈에 뛰어 들어가 이들의 권익을 위하여 일하면서 복음을 전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의지적인 면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접근은 도덕적인 크리스천을 만들어낼지는 모르지만, 하나님과 깊은 관계 안으로 들어가는 크리스천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가정 교회는 지정의 세 가지를 골고루 만족시켜 주어 온전한 회심과 영적 성장을 가능케 해줍니다. VIP 회심의 예를 들면, 목장 모임은 감정적인 면을 만족시켜 줍니다. 감동을 주는 섬김에 의하여 교회에 대한 거부감과 예수 믿는 사람에 대한 반감이 사라지게 만들어 복음에 마음 문을 열게 만듭니다. 삶 공부는 지적인 면을 만족시켜 줍니다. 복음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주어서 신앙의 근거를 마련해 줍니다. 주일 목장 연합 예배는 의지적인 면을 만족시켜 줍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도록 하고 결단과 결심을 하게 만듭니다. 온전한 영적 성장도 지정의가 골고루 만족되어야 가능합니다. 전도가 효과적으로 이루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지정의를 터치해 주는 이 세 가지, 즉 목장 모임, 삶 공부, 연합 예배를 가정교회 3 축이라고 부릅니다. 믿음이 정상적으로 자라기 위해서는 지정의의 불균형을 경계해야 합니다. 균형을 놓치고 있지 않은가 점검하려면 다음 세 가지 질문이 자신의 균형잡힌 신앙생활에 도움이 됩니다. ▶나의 신앙생활은 감정적 기복이 심하지 않은가? (감정적인 면에 편중) ▶나의 신앙생활은 설교 듣는 것과 성경공부에 치중하고 있지 않은가? (지적인 면에 편중) ▶나의 신앙생활의 핵심은 교회 봉사가 아닌가? (의지적인 면에 편중)
- 행복한제자교회의 전도방향
최근 10년 이내 세례를 받고 신자가 된 이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가 있습니다. 교회를 처음 나온 계기가 무엇인가를 묻는 질문에 총 응답자 262명 중 139명이 ‘아는 사람의 권유’ 라고 응답했습니다. 반면, 길거리 노방전도를 통해 인도된 사람은 단 1명뿐이었습니다. 이는 관계에 의한 전도가 주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아는 사람’의 범위를 보면, 친구(20%), 부모(15%), 목회자(14%), 형제자매(11%), 친척(9%), 선후배(7%), 배우자(4%) 순이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는 예수님을 믿을 때 친구와 가족의 영향력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회심자들의 응답 중에는 교회에서 본격적 신앙을 갖는데 목회자의 설교가 중요한 작용을 했다고 말합니다. 어떠한 설교가 도움이 됐느냐는 질문에 성경을 풀어주는 설교(강해설교), 기독교의 본질을 쉽게 설명해주는 설교, 그리고 재미있고 실생활적인 설교를 꼽았습니다. 흥미롭게도 회심자들은 교회를 선택할 때 통념과는 달리 건물 시설이나 위치보다 교회의 분위기와 주일예배를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이 조사 결과는 우리가 영혼 구원 사역을 위해 어디에 집중해야 할지를 분명히 보여줍니다. 다음은 핵심 세가지입니다. 첫째, 관계 전도의 중요성입니다. 지금은 ‘아는 사람’이 아니면 전도하기 어려워진 시대입니다. 아직 부모의 인격적 신앙과 그 영향력이 자녀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형제 자매, 친구, 선후배와 같은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일상 속에서 자주 접촉하고 관계 맺고 있는 이들을 VIP로 품고 그들을 섬기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 신뢰 관계의 중요성입니다. 아는 사람이라고 해서 자동으로 전도가 되는 것이 아니닙니다. 정직하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만 효과적인 전도가 가능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사람들에게 호감을 얻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은 것처럼 오늘날에도 교회의 따뜻하고 친절한 분위기, 행복한 성도들의 모습이 회심의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따라서 목장이나 교회가 VIP에게 사랑의 공동체로 느껴져야 합니다. 셋째, 목장과 목회자의 협력입니다. 신앙을 갖게 되는 초기에는 아는 사람의 권유로 목장과 교회에 나오지만, 이후에는 목회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목회자가 VIP의 상황을 알고 목장과 함께 협력할 때, 신앙이 자라고 교회에 잘 정착한 사례가 많습니다. 실제로 VIP들이 교회를 계속 다니기로 결단한 주요 이유는 주일예배 설교였다는 점에서, 말씀을 통한 은혜가 중요함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설교는 기존 성도뿐 아니라, 신앙이 없는 VIP들에게도 ‘들리는 설교’가 되어야 합니다. 이 세 가지가 잘 어우러질 때, 목장과 교회를 통한 지속적인 영혼 구원이 가능해집니다. VIP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제자로 자라가는 과정은 한 개인의 일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협력과 팀워크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 매력적인 기독교인이 되려면 (최영기 목사님)
한국 청소년 중에서 3%만이 자신이 기독교인이라고 말했다는 충격적인 설문 조사 결과를 얼마 전에 읽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의 약 30%가 기독교인이라는데(개신교, 천주교, 사이비 기독교인을 다 합친 통계) 3%의 청소년만이 자신이 기독교인이라면 대부분의 청소년이 실제로는 예수를 믿고 있지 않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청소년들이 신앙을 저버리는 가장 큰 이유는 부모 신앙의 이중성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보이는 부모들의 모습과 가정에서 보이는 모습 사이의 괴리를 보면서 청소년들이 실망감에 빠져서 부모들의 신앙까지도 저버리게 됩니다. 크리스천들 삶의 이중성에 실망하는 것은 비신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에 대해 잘 몰라도 사랑하라고 가르쳤다는 정도는 아는데, 막상 돈이나 이익이 걸리면 똑같이 이기심을 발휘하고, 권리를 주장하니까, 예수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의 차이를 볼 수 없고 예수를 믿어야 할 이유를 발견하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착한 행실을 보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5:13-16). 예수님이 말씀하신 착한 행실이란 인간이 할 수 있는 정도를 뛰어넘는 행실을 의미합니다. 세상 사람들도 착한 일을 합니다. 그러나 희생이 요구되거나 손해를 보게 되면, 거부합니다. 같은 상황에서 희생과 손해를 감수할 때 세상 사람들은 ‘크리스천은 다르구나!’ 느끼게 되고, 이런 삶을 가능케 하는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고, 기독교 신앙이 궁금해집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입니다. 비신자 전도가 되기 위해서는 세상 사람들과 다른 삶을 살아야 합니다. 다르다는 것은, 밥 먹기 전에 기도한다든가, 회식 자리에서 술잔을 거절하는 것만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행위만으로는 매력적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비신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키워드는 희생과 손해입니다. 얼마 전 대한민국 성직자들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법안이 논의되었을 때 기독교를 대표하는 단체에서 반대 성명을 발표하였습니다. 반대하는 이유에 타당한 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모습이 기독교인들을 얼마나 자신의 이익만 챙기는 이기적인 집단으로 보이도록 만드는지 교회 지도자들이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직장 생활을 하는 크리스천이 예배나 교회 사역 때문에 야근이나 주말 근무를 부득이 빠져야 한다면, 남들이 일하기를 원치 않는 휴일이나 주말에 일할 것을 자원하여, 희생하고 손해 보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직장 생활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인생을 악착같이 살아도 될까 말까 한데, 희생과 손해를 감수한다는 것은 두려운 일입니다. 그런 삶의 결과가 자신에게 뿐만이 아니라 자녀와 가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면 더 두렵습니다. 그런데도 크리스천들이 이런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서 살면, 먹고 마시고 입는 문제를 해결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마 6:33). 이 약속 때문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희생과 손해를 선택할지라도 망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고, 희생과 손해를 감수할 수 있습니다.
-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 잘 마쳤습니다.
지난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이어진 6일간의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에 많은 분들이 함께 동참해 주셔서, 은혜롭고 뜻깊은 새벽기도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마지막 날인 토요일에는 초등부, 중고등부, 청년부까지 함께하여 총 35명의 성도님들이 참석해 주셨습니다. 주님의 고난을 기억하며 깨어 기도한 이 시간이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이번 특별새벽기도회에서는 세겹줄 기도조를 이루어 서로의 기도제목을 나누고 근황을 듣고, 합심하여 함께 기도할 수 있었던 점이 큰 은혜였습니다. 기도제목을 들으며, 많은 분들이 VIP(전도 대상자)를 위해 기도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마음에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또한, 기도를 마치고 바로 일터로 향하시는 분들이 교회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드시고 출근하는 열심을 보면서 감동을 받았습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게 되면 생활 리듬이 바뀌게 되고 하루 종일 피곤할 수 있는데, 이제 적응되기 시작할 무렵 기도회가 마무리되어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이른 아침, 대가를 기꺼이 지불하며 기도의 자리를 지켜주신 성도님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하늘 복 많이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6일 동안 제가 말씀을 나누었는데 “말씀은 어떻게 준비하셨나요?”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아마 제가 근무하는 중에 말씀을 준비한 것을 아시고 격려의 마음으로 물으신 것 같았습니다. 이경준 목사님으로부터 ‘미리 준비하는 것’을 배운 것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한 달 전부터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 본문을 틈틈이 묵상하며 조금씩 준비했고, 하루 전날에는 말씀을 가다듬었습니다. 잘 감당할 수 있을지 염려도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감당할 힘을 주셨고, 은혜 가운데 마칠 수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제가 매일 새벽 알람이 울려도 힘들지 않았던 이유는 저에게는 ‘참석이 선택이 아닌 필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오히려 선택의 여지가 있었다면 더 힘들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년에 참석하기를 원하시는 분들도 “상황을 보고 갈 수도 있고 안 갈 수도 있다”는 마음보다는, “참석 한다”는 마음으로 임하신다면 더 힘들지 않고 은혜롭게 참여하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마지막 토요일에는 간단한 아침 식사와 교제의 시간도 함께 나눌 수 있어 참 좋았습니다. 내년에도 마지막 날에는 함께 식사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할 계획입니다. 건강상의 이유나 직장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하신 분들도, 내년에는 건강이 회복되고 직장 상황이 나아져서 함께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년 고난주간에도, 많은 분들이 함께 하셔서 올해처럼 은혜가 넘치고 기쁨이 충만한 특별새벽기도회와 부활절을 맞이하게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 예수님을 믿는 두 가지 이유
“왜 예수님을 믿습니까?” 누군가 저에게 이렇게 묻는다면, 저는 두 가지 이유를 말씀드릴 것입니다. 첫째는 예수님의 부활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허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는 과학의 정의를 오해한 것입니다. 과학은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하고, 그로부터 원리나 법칙을 발견하는 학문입니다. 부활은 반복 가능한 현상이 아니기에 과학적 방법으로 증명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부활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아서 믿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과학의 본질을 잘 모르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예를 들어, 이순신 장군이 탁월한 전술과 거북선을 이용해 왜적 함대를 물리쳤다는 사실을 우리는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지만, 당시 사람들의 기록을 통해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부활도 부활을 목격한 이들의 증언에 근거해 믿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법정에서 판사가 증인의 증언과 증거를 바탕으로 판결을 내리는 것과 같습니다. 하버드 법대를 세계적인 교육기관으로 성장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 시몬 그린리프(Simon Greenleaf) 교수에게 그의 수업을 듣던 한 기독교인 학생이 흥미로운 제안을 했습니다. 교수님께서 강의하신 ‘법정 증거 우선주의’, 즉 판결 시 가장 중요한 것은 증언과 증거라는 원칙에 따라 예수님의 부활이 실제로 일어난 일인지 조사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린리프 교수는 이 제안을 받아들이고, 신약성경에 나오는 부활의 증인들의 증언과 그들의 삶을 조사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부활이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의 결정적인 근거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이후 도망쳤던 제자들이 이후 생명을 걸고 부활을 증언했으며, 실제로 순교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부활을 직접 보지 않았다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변화였습니다. 이 조사 결과로 인해 그린리프 교수 자신도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둘째는 지금 우리가 가진 성경이 원본 그대로 전해졌다는 확신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성경이 예수님의 죽음 이후 수백 년이 지나 기록되었고, 그 사이 신화적인 이야기들이 덧붙여지거나 불리한 내용이 빠졌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신약성경은 약 2000년 전에 기록된 고문서이며, 원본은 없지만 수많은 필사본이 존재합니다. 전문가들은 이 필사본들이 언제 작성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사용된 잉크, 종이의 재질, 글자체, 문단의 구성 등을 분석하여 기록 시기를 추정합니다. 이때 원본과 필사본 간의 시간 차가 짧을수록, 그 필사본은 신뢰할 수 있습니다. 신약성경은 원본과 필사본 사이의 간격이 30~50년으로, 모든 고대 문서들 중 가장 짧습니다. 또한 원본을 정확히 재구성하려면 가능한 한 많은 필사본이 있어야 합니다. 신약성경은 현재 2만 개 이상의 필사본이 발견되어, 어떤 고대 문서보다도 많은 수를 자랑합니다. 이 두 가지 이유, 즉 ▶ 원본과의 시간 간격이 가장 짧고 ▶ 필사본의 수가 가장 많은 책이라는 점에서, 신약성경은 역사상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고문서입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읽는 성경은 처음 기록된 원본에서 더해지거나 빠진 것이 없이 정확히 전달되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 4월 14일부터 고난주간 세겹줄 특별새벽기도를 시작합니다.
부활절과 성탄절은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명절입니다. 올해 부활절은 4월 20일로, 2주 후에 다가옵니다. 전통적으로 부활절 전 40일 동안 ‘사순절’ 기간을 두고 기도와 금식을 하지만, 우리 교회는 별도로 사순절을 지키지는 않습니다. 대신, 매년 고난 주간이 시작되는 한 주 동안 특별 새벽기도 모임을 갖습니다. 올해는 4월 14일(월)부터 19일(토)까지 진행되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마지막 한 주간 동안 걸어가신 길을 묵상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새벽기도 시간에 관련된 성경 말씀을 읽으며 나누는 시간을 통해서 예수님의 고난을 깊이 되새기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이 기간에 ‘세겹줄 기도’를 진행합니다. 이는 전도서 4장 12절 말씀, “혼자 싸우면 지지만, 둘이 힘을 합하면 적에게 맞설 수 있다. 세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를 바탕으로 합니다. 혼자서 한 주 동안 기도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세 명이 한 조를 이루어 함께 기도하면 끝까지 완주할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각자 응답받기를 원하는 기도 제목 세 가지를 정하고, 한 주 동안 함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기도 응답의 경험뿐만 아니라 기도의 삶에 대한 동기부여도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같은 목장 식구들과 기도 조를 이루어 함께 기도함으로써 교제의 폭을 넓히고, 서로를 위해 중보하는 은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세 명 중 한 분은 조장을 맡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조장은 조원들이 끝까지 새벽기도에 꾸준히 참여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역할을 합니다. 세겹줄 기도 조는 미리 정할 수도 있고, 첫날인 4월 14일(월) 새벽기도 모임에서 편성할 수도 있습니다. 새벽기도 마지막 날인 4월 19일(토)에는 한 주간 함께 기도한 조원들과 아침 식사를 나누는 시간이 마련되며, 식사비는 1인당 1만 원이 지원됩니다. 새벽기도 동안 함께 묵상할 성경 본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미리 읽고 묵상하며 기도에 임하시면 더욱 깊은 은혜와 말씀의 축복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 특별 새벽기도 말씀 본문 🔹 4월 14일(월) 마가복음 12:1-12, 포도원 비유를 통한 교훈 🔹 4월 15일(화) 마가복음 14:12-26, 유다에게 주신 마지막 기회 🔹 4월 16일(수) 마가복음 14:32-42, 겟세마네의 기도 🔹 4월 17일(목) 마가복음 15:1-15, 정치범으로 몰린 예수님의 침묵 🔹 4월 18일(금) 마가복음 15:25-39, 하나님께 버림받으신 예수님 🔹 4월 19일(토) 마가복음 15:40-47, 예수님을 끝까지 사랑한 사람들 🔹 4월 20일(일, 부활절) 요한복음 20:1-10, 부활을 처음 목격한 여인 세겹줄 새벽기도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셔서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묵상하고, 부활의 감동과 기쁨이 더욱 풍성해지는 시간이 되시고, 다른 성도님들과 함께 기도하면서 기도 응답의 기쁨도 누리시는 부활절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 재송동 주민, 학생들이 찾아오는 교회
봄이 왔습니다. 비록 현 시국을 바라볼 때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마음의 봄은 아직 오지 않았지만 어쨌던 자연의 봄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우리를 찾아왔습니다. 특히나 교회당 앞 푸른숲공원에는 아직 만개하지 않은 벚꽃들이 생명의 기운을 뽐내며 피어나고 있고, 공원에는 지역 주민들과 동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크게 들려옵니다. 아마도 이번 주나 다음 주면 활짝 핀 벚꽃들로 장관을 이룰 것 같고, 공원을 비롯한 교회당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로 붐빌 듯합니다. 정말 멋진 동네에 우리 행복한제자 교회당이 자리를 잡고 있구나 하고 감탄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우리 교회당에 주일 뿐만 아니라 평일에도 지역 주민들과 지역 학생들이 편하게 찾아오고,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 되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이미 매주 목요일이면 오전 11시 30분부터 오후 1시까지 지역의 어르신들을 모시고 정성스레 준비된 점심식사와 이어지는 건강체조, 그리고 이준홍목사님의 어르신들을 위한 복음의 메시지까지 ‘목요 낮목장’ 이라는 이름으로 지역분들을 잘 섬기고 있습니다. 지금은 매주 열두 분 정도의 어르신들이 참여 중인데, 점점 더 많은 어르신들이 함께하게 될 것을 기대합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쉬운 건 지역의 젊은 세대들이나 근처 초중고 학생들이 우리 교회당을 찾아오긴 쉽지 않아 보입니다. 매주 수요기도회 때마다 지역주민들과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되기를 기도하고 있는데, 우선은 그들을 위한 교회당의 문을 활짝 열어 놓으면 어떨까요? 물론 아직 손님을 맞이할 준비가 충분하지 않아 앞으로 이 부분은 계속 고민하면서 준비해 보려고 합니다. 일단은 점심 이후 오후 시간대에 제가 1층 카페에서 업무를 보면서 지역주민들이 언제든 화장실도 자유롭게 이용하고, 편히 쉬어갈 수 있는 공간으로 열어 놓으려 합니다. 학교를 마치고 학원을 가는 학생들도 잠깐 머물러 라면도 먹고, 게임도 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이미 부산에 몇몇 교회들이 뭔가 대단한 것을 하진 않더라도 지역주민들과 학생들을 섬길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들을 가지고 잘 섬기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시간 나는 대로 그런 교회들 탐방도 다니면서 앞으로 우리 교회가 할 수 있는, 우리 행복한제자교회다운 섬김과 배려가 있는 공간을 준비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함께 같은 마음으로 응원과 기도 부탁드리고, 향후 방향성이 정해지는 대로 물품의 후원도 부탁드립니다~^^ 무엇보다 평소에도 교회당 1층 카페가 사람들로 북적이면 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 혹 우리 성도님들 중에 평일에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들은 친구나 지인들과 교회당 카페에 오셔서 대화도 나누시고, 그러다가 지역 주민이나 학생들이 오면 반갑게 맞아 주시고, 화장실 안내나 간단한 음료를 제공할 수도 있겠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섬기기 위해 오셨던 것처럼, 우리 공동체가 지역을 더 잘 섬기고, 이로 인해 자연스럽게 복음을 흘려보내는 아름다운 지역교회로 잘 세워져 가기를 기대하고 기도합니다.
- 목회자 일일 특강에 다녀왔습니다.
지난 화요일 부산대연중앙교회에서 열린 가정교회 일일 특강에 참석하였습니다. 부산지역에 가정교회에 대해서 관심이 있는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가정교회 원조이신 최영기 목사님이 직접 가정교회가 무엇인지 소개하였습니다. 저는 기장에서 외국인근로자를 대상으로 목회를 하고 있는 신학교 동기를 초대하였기 때문에 저희 부부도 참석하였습니다. 가정교회에 관심이 있는 목회자 140명, 이미 가정교회를 하고 있는 목사 사모 약 80명이 참석하여 모두 220명이 참석하였습니다. 부산에서도 가정교회에 대한 목회자들의 관심이 뜨거운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강의 마지막 질의응답 시간에 한 목사님의 질문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 분은 1999년도에 휴스턴 서울교회 세미나에 참석하였던 분이며 그때 느끼고 경험한 것을 두고 질문하였습니다. “목자 목녀들이 서로 경쟁하듯이 목장 현황판에 숫자를 기록하는 것이 불편했습니다. 한 목자는 매우 미성숙하고 교만한 목자였습니다. 가정교회로 전환하려면 중직자들과 성도들을 힘들게 할 텐데 힘들게 하면서까지 가정교회로 전환해야 할까요?” 하는 것이 질문이었습니다. 조금 의아했던 것이 최 목사님이 특강에서 가정교회를 해야 하는 성경적인 근거와 가정교회로 전환했을 때 교회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열매를 맺게 되는지를 열심히 강의하였는데, 여기에 대한 언급은 없이 30년도 전에 경험한 부정적인 경험을 근거로 질문하는 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때, 자신이 듣고 싶은 것만 듣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기존의 부정적인 생각으로 인해 가정교회에 대한 소개에 대해서 마음이 닫혀있었던 것 같습니다. 점심식사 후에 카페에서 용호남교회 권사님 한 분과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가정교회 전환을 앞두고 담임목사님과 함께 참석하였는데, 자신이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하였습니다. 이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행복한제자교회가 지나온 과정이 생각나면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처럼 시작하기 쉽지 않은 가정교회가 우리 교회에서 뿌리를 잘 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가 추구하는 목표와 방향은 가정교회라는 사역 방법이 아닙니다. 신약교회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목장과 교회에서 신약교회가 회복되는지를 알 수 있는 것은 3가지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영혼구원이 일어나는지 ▶삶의 변화가 일어나고 제자로 자라가는지 ▶신앙생활이 행복하다는 고백이 나오는지를 보면 우리 교회에서 신약교회가 회복되는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신약교회 회복이 일어난다고 생각하십니까?
- 예수영접과 성령세례는 다른 것인가?
오순절 교단에서는 성령세례는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과 구별된 특별한 경험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도 다시 성령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오순절에서 말하는 성령님께 사로잡히는 특별한 경험은 사실이지만 이것을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과 구별하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신약 성경에 ‘성령 세례’라는 표현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세례를 준다는 동사가 성령과 관련되어 사용되는 사례는 일곱 번 나오며, ‘~으로 세례를 주다.’ 또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다.’라는 표현은 신약에서 여덟 번 나오는데, 복음서에 다섯 번, 사도행전에 두 번, 그리고 고린도전서에 한 번 나옵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성령으로 세례를 주다’라는 네 경우는 모두 앞으로 오순절에 성령이 부어짐질 것이라는 미래의 사건을 묘사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두 구절 중, 첫번째인 1장 5절도 “너희는 여러 날이 되지 않아서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다.”는 앞으로 일어날 사건, 오순절 성령 세례를 말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구절인 사도행전 11장 16절, “그 때에 나는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다’ 하신 주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라는 구절은 베드로가 가이사랴에 있는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에게 성령이 임한 일을 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말한 ‘성령 세례’는 예수님 영접한 이후에 일어나는 체험이 아니라 예수님을 영접할 때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이 사건을 경험하고 나서 18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이방 사람들에게도 회개하여 생명에 이르는 길을 열어 주셨다” 이방인이었던 고넬료와 고넬료의 가족이 성령 세례를 받고 영원한 생명, 영생을 얻게 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말하는 ‘성령 세례’는 예수님을 영접한 이후 겪어야 하는 또 다른 특별한 체험이 아니라 오순절에 발생한 역사적 사건, 즉 성령이 교회(믿는 사람들) 위에 충만히 임한 일이며 그리스도의 부활처럼 반복될 수 없는 사건을 뜻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성경적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 13절에서 누구든지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수 있고, 성령 세례를 받으면 그리스도의 한 몸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유대 사람이든지 그리스 사람이든지, 종이든지 자유인이든지, 모두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서 한 몸이 되었고, 또 모두 한 성령을 마시게 되었습니다.” 이 구절이 뜻하는 것은 유대인이든지 이방인든지, 어떤 신분의 사람이든지 관계없이 누구든지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고, 그때 모두 같은 성령으로 세례를 받기 때문에 하나가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예수님을 영접하고 거듭나면 한 몸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성령 세례는 특별한 사람에게 따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예수님을 영접할 때 받는 것이 성령 세례이므로 성령 세례를 따로 추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우리는 이미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거듭난 이후에 성령 세례를 다시 받아야 한다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과는 다릅니다. 생명의삶 시간에 성령체험 시간을 가지는데 이것은 내 안에 계시는 성령님이 나를 사로잡을 때 경험하는 것이며 성령 세례와는 다른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