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 구원의 확신을 가지는 것은 중요합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나서 처음 겪는 혼란 중의 하나가 “내가 정말 구원받았는가?”하는 것입니다. 내가 천국을 갈 수 있는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가? 내 죄가 용서받았는가? 하는 질문은 모두 구원과 관련된 같은 질문입니다. 구원에 대한 의심은 건강한 그리스도인이면 누구가 가질 수 있는 질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영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확신하기를 원하십니다(요일 5:13). 왜냐하면 구원의 확신을 가질 때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가 시작되고 신앙이 성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경우에는 구원의 확신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첫째는 자신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생각으로 행동으로 말로 죄를 짓는 연약하고 부족한 내가 과연 천국에 갈 자격이 있을까? 성경도 잘 읽지 않고 기도도 잘 하지 않는데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자격이 있을까? 내 죄가 용서받았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자신을 보면 그럴만한 자격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구원의 확신이 흔들립니다. 자신이 아니라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과 말씀을 붙들 때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둘째는 감정에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주일예배에서 은혜를 받고, 목장 모임에서 새힘을 얻고 감정적으로 마음이 뜨거울 때, 은혜를 받았을 때는 구원을 받은 것 같지만 감정이 메마르고 냉랭할 때는 구원받지 못한 것처럼 느낄 때가 있습니다. 구원은 선물이며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라는 말씀을 붙들 때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셋째는 성경 말씀을 잘못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구원을 이루어가라.’, ‘구원에 자라가라.’ 또는 ‘구원이 가까웠느니라.’와 같은 구절을 보면서 구원을 아직 못 받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한 히브리서 말씀(히 6:4-6)에는 ~타락하면 그들을 새롭게 해서 회개에 이르게 할 수 없다는 구절을 보면서 구원을 잃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구절들을 해석할 때 기억해야 할 2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문맥 안에서 해석해야 하고,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대상을 확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한 구절만 가지고 결론을 내리지 말고 성경 다른 구절에서는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같이 생각해야 합니다. 만약 문맥 안에서 해석하지 않고 그 구절만 따로 떼어서 생각한다든지, 특정한 대상에게 하는 말을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하는 말로 해석한다든지, 다른 성경 본문에서 뭐라고 말하는지 같이 생각하지 않을 때는 잘못된 결론에 이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면 구원이 보장되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것은 구원파의 주장과 비슷합니다. ‘구원파’는 예수님을 영접하면 무슨 짓을 해도 천국에 간다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나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값없이 선물로 구원을 받은 사람은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롬 6:2). 구원은 개인적으로 나와 하나님만 알 수 있는 부분이 있지만, 구원의 증거가 나타나지 않으면 구원받은 것이 맞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을 수 있으므로 공동체의 관심이기도 합니다. 내가 구원받았는지 의심이 드는 분이 있으시면 매 월 4째주, 토요일 오후 3시에 있는 예수 영접 모임에 참석하시면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 살아있는 교회와 죽은 교회 (최영기 목사님)
여행을 자주하던 작년 언젠가 한국에 갔을 때 꽤 잘 알려진 두 교회를 방문하여 주일예배를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두 교회 모두 담임목사님들의 인격이 훌륭하고 설교도 좋다고 알려진 교회였고, 두 교회가 다 어느 정도 부유한 곳에 있는, 사이즈가 어느 정도 되는, 바깥으로부터 좋은 교회라고 평가를 받는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그 중 한 교회는 같이 참여해 드려본 예배가 실망스러웠습니다. 뭔지 알 수는 없지만 예배가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고, 성도들의 예배드리는 태도 역시 다들 적극성이 없이 관심 없는 외인 같은 모습이어서 약간은 충격이었습니다. 그에 비해, 얼마 후에 방문한 또 하나의 교회는 뭔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예배당에 들어설 때부터 가벼운 긴장감이 있었고, 예배 시간에 거의 예외 없이 설교에 집중하고 반응하는 모습이 좋았습니다. 왜 그럴까? 두 분 목사님이 다 훌륭한 분들이고, 설교도 비슷하게 좋으시고. 교회의 사이즈도 둘 다 중형 이상인데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까 궁금했습니다. 그 차이는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것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큰 이유 중 하나는 편안함의 안주와 불편함에 따른 헌신의 차이였습니다. 첫 번째 교회는 잘 안정되어, 좋은 프로그램에, 잘 정돈된 교회 건물에서 예배를 드리는 불편함이 없는 교회인데 반해, 두 번째 교회는 많은 부분이 불편한 교회였습니다. 본당이 좁아서 체육관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몇 백 개의 의자를 성도님들이 놓아야 하고, 주차장도 없어서 멀리 학교 운동장까지 걸어가고, 차가 다 빠지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고, 교육관은 형편없이 좁은 등 여러 가지가 불편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불편을 감수하고 다니는 헌신 때문에 교인들이 살아있고, 예배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크리스천은 불편한 점이 사라지고 편안함에 안주하면 영성도 죽는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우리가 얼마나 작은 불편함을 못 견디는 문화 속에 살고 있습니까? 조금만 편리한 기기가 나오면 바꾸어 쓰고, 조금만 편리한 시설이 있으면 도입하고, 우리는 끝없이 우리 자신을 편하게 만들어 갑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작고 재정이 가난할 때는 이것저것 불편한 것이 한둘이 아닙니다. 그러다가 교회 규모가 커지고 재정이 좋아지면 화려한 건물을 짓고, 넓은 친교실을 만들고, 불편함이 없는 주차장을 만들고, 시스템도 더 편하게 고쳐나가고, 그래서 교회는 갈수록 정말 흠잡을 데 없는 곳이 되어가지만,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영성은 죽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교회(휴스턴 서울교회)는 아직은 불편한 부분이 많은 교회입니다. 친교실도 좁고, 주차장도 부족하고, 시설도 미비한 부분이 많습니다. 잉여 자산이 있으니 고쳐볼까 싶지만 그런 이유에서 망설여지기도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영성이 살아있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 분가식은 목장과 교회의 큰 경사입니다.
다카 목장 분가식은 행복한제자교회 첫 분가식으로 뜻깊은 행사일 뿐만 아니라 목장의 큰 경사이며 교회의 축제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분가는 교회 사명인 영혼구원하여 제자 삼는 사명이 이루어졌을 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영혼 구원하여 목원이 늘어나고, 제자로 자라서 새로운 목자 목녀가 세워져야 분가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동안 목장을 위해서 섬기고 수고한 다카목장 목자 목녀님과 목장 식구들 모두 하늘복 많이 받으세요! 오랜 시간 함께 목장 모임을 하다 보면, 서로의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알 정도로 가족처럼 가까워지고 끈끈한 정이 생기기에, 헤어지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는 아니지만, 어떤 목장은 사람들이 많아지면 분가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VIP를 초대하지 않는 일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다카 목장은 VIP를 데려오고 싶어도 앉을 자리가 부족할 정도로 인원이 많아졌고, 목장 식구들 사이에서도 ”이제 분가할 때가 되었다.“는 공감대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분가하게 되었습니다. 가족처럼 지내던 식구들이 헤어지는 일은 쉽지 않으며 누가 새 목장으로 갈지, 누구를 새 목자로 세울지도 정하기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카 목장의 경우에는 큰 어려움 없이 두 목장으로 나누어졌고, 목자로 섬길 것을 제안받은 김영화 자매님이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으로 받고 순종하면서 새 목자로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대행 목자와 정식 목자를 구분하는 교회에서는 생명의삶부터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까지 삶공부 과정을 모두 마친 경우에 정식 목자로 목자 안수식을 하지만, 우리 교회는 대행 목자와 정식 목자 구분없이 목자로 임명이 되면 안수식을 같이 합니다. 다만 생명의삶과 평신도 세미나 참석은 필수입니다. 앞으로 분가하게 될 다른 목장들을 위해서 몇 가지를 말씀드립니다. 정기적으로 참석하는 목장 식구가 12명이 넘으면 분가를 준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두 목장으로 나눌 때, 어느 목장에 소속될지, 누가 새 목자 목녀가 될지 정하는 것이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때 도움 되는 방법은 비공개 기명 투표입니다. ‘누가 목자 목녀로 적합하다고 생각하는지’와 ‘나는 어느 목장에 소속되기를 원하는지를 각각 기입하도록 합니다. 예를 들면 “나는 새 목자의 목장에 소속되기를 원한다.”, “나는 기존 목자 목장에 소속되기를 원한다.”, “나는 어느 목장이든 목자가 지정해주는 곳으로 가겠다.” 이렇게 목장 선택권을 목원에게 주면, 자신이 목자를 선택했기 때문에 충성심이 커지고, 목자는 목원이 나를 선택했다는 사실 때문에 책임감이 커집니다. 가장 많은 목자 목녀 추천받은 부부에게 목원들의 뜻을 전하고 목자 직분을 제안하여 동의할 경우 분가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분가하는 두 목장 식구가 각각 3가정 이상, 4명 이상이 되도록 조정합니다. 새 목장을 배려할 때라도 현역 목자는 목자 목녀 외에 한 가정 이상이 되어야 합니다. 목자 목녀 둘이서 지속해서 목장 모임을 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 다음 주에 요한 계시록 강해를 마칩니다.
다음 주면 요한계시록 강해 설교를 마치게 됩니다. 처음 강해 설교로는 룻기를 선택해 약 두 달 동안 말씀을 나누었고, 이후 어떤 책을 전할지 고민하다가, 어렵게 느껴지지만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중요한 책인 요한계시록을 묵상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앞뒤 가릴 것 없이 ‘덜컥’ 시작했는데, 어느새 8개월이 흘렀습니다. 2024년 12월 8일에 시작했으니 꼭 8개월이 걸렸습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오래 걸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성도님들께서 주신 여러 피드백이 저에게 은혜와 도움이 되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어렵다고 생각하고 잘 읽지 않았는데 중요한 책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다른 성경에 비해 계시록은 마치 에스프레소처럼 농도가 짙은 책 입니다.” “초대교회 성도의 시선으로 계시록을 읽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계시록이 이렇게 큰 축복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144,000에 대한 해석을 들었을 때 충격을 받았습니다.” “계시록 설교가 끝난다니 아쉽습니다.” “전천년설, 후천년설, 무천년설이 무엇을 근거로 말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계시록은 묵시문학의 특성상 상징과 은유가 많아 이해하기 쉽지 않았지만, 끝까지 함께해 주신 성도님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설교를 준비하면서 제 영적인 부족함과 한계를 절감했고, 말씀을 전하는 능력 역시 여전히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럼에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아낌없이 격려해 주신 성도님들 덕분입니다. 그 격려가 제게는 큰 용기와 힘이 되었습니다. 특히, 고난 중에 있는 성도님들이 요한계시록을 통해 더욱 깊은 은혜를 받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전천년설, 후천년설, 무천년설과 같은 신학적 해석을 지식으로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사탄이 결박당했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묻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는 삶 속에서 사탄과의 영적 전투를 실제로 경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목마른 자에게 생명수와 같으며, 그 갈증을 해소해 주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제5복음서다”라는 말이 있듯이, 이 책은 정말 복음의 완성입니다. 4복음서가 예수님의 탄생과 십자가 죽음, 부활과 승천까지를 기록했다면, 요한계시록은 그 이후, 곧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신 뒤 천상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교회가 어떤 고난을 당하는지, 예수님의 재림과 최후의 승리,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의 영광까지 상세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말씀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다음 주 요한계시록 강해를 마치고 나면, 당분간 시편 말씀을 함께 묵상하려 합니다. 이후에는 길지 않은 구약 또는 신약 책 중 하나를 선택하여 설교하려 합니다. 우리 교회의 필요에 맞는 말씀을 잘 선택하고,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잘 전할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 신앙생활에 관심 없는 사람들 (최영기 목사님)
VIP들 중에는 오래 기도해도 꼼짝 않는 VIP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세상 사는데 별 문제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세계 이곳 저곳 여행 다니고, 맛집 찾아가 음식 사먹고, 골프 치고 등산 다니며, 재미있게 살아갑니다. 세상 사는 것이 재미있기 때문에 죽음이나 사후 세계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후 세계는 과학적으로 증명될 수 없는 상상의 세계이고, 천국은 이 세상에서 별 소망 없는 사람들이 위로 받기 위하여 만들어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부인해도, 사후 세계가 있고, 심판이 있고, 천국과 지옥이 있습니다. 죽었다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증언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숨이 끊어지는 순간 현세보다 더 생생한 세계가 열리고, 심판과 지옥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때 얼마나 놀라겠습니까? 그러므로 목장 VIP 명단을 만들 때는 하나님과 목장이 필요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삼아야 하지만,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들도 제외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은 영적인 일에 무관심하지만 언제 무슨 일이 생겨서 예수님이 필요하게 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실 염려와 걱정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도 깊숙이 들여다보면 그 마음속에는 죽음, 노화, 등의 여러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외로움이 있습니다. 친구도 많고 친지도 많지만, 진정으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대상이 없다는 생각이 가끔 머리를 스칩니다. 배우자가 옆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에서 혼자라는 생각도 가끔 해봅니다. 가진 것을 다 잃었을 때 과연 아내가 옆에 남아 있고 친구들이 남아 줄까? 의문이 떠오를 때도 있지만, 인생은 어차피 혼자 살다 가는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서둘러 생각을 지웁니다. 무력감이 있습니다. 젊을 때는 세상의 변화를 도전으로 생각하고 잘 극복해 냈지만, 나이가 들면서 변화에 대한 적응력이 점점 떨어지는 것을 느낍니다. 경쟁에서 패배하고 인생에서 낙오자가 되지 않을까는 두려움이 종종 엄습합니다. 이러한 실존적인 두려움을 잊기 위하여 사람들은 직장생활에, 사업에, 취미생활에, 여행에, 게임에, SNS에 몰두합니다. 그러나 이런 원초적인 두려움은 잠시 잊을 수는 있지만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외로움, 무력감은 예수님을 만나면 사라집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생을 소유했기 때문에, 죽음이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닙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고, 그의 몸인 교회 공동체 속에 있기 때문에 외롭지 않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이 나의 인생을 책임져 주시기 때문에 무력감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 하나님의 필요를 느끼지 않는 사람도 기다리며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없는 삶은 반드시 문제가 있기 마련인데, 문제가 생겼을 때 예수님을 만나게 해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삶 속에 재미도 있고, 쾌락도 있지만, 진정한 행복과 소망은 없습니다. 어린이가 온종일 게임 하는 것이 행복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것이 진정한 행복이 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크리스천들은 이들에게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보여줄 책임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살고, 하나님의 백성들과 더불어 사는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럴 때 그들의 마음속에 잠재된 진정한 행복에 대한 갈망이 깨어나 예수님을 찾게 되고 지옥에 떨어져 영원한 형벌을 맛보는 운명에서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 시인 한 분을 소개합니다.
다카 목장의 모경희 자매님이 부산문화재단에서 주최한 응모전에 당선되어서 재단의 지원을 받아 ‘심장이 먼저 아는 엄마의 안부’ (이바구 출판사) 시조집이 출판되었습니다. 시조집에 수록된 시 중에서 두 편을 골랐습니다. 시 속에 스며있는 시인의 마음과 감성을 함께 느껴보시기를 바랍니다. <엄마의 필사 노트> 고요한 밤 책상 조명 아래 눈물 섞인 글씨 줄이 희미해져 가는 얼굴선 윤곽을 드러낸다. 노트의 빈칸 채우면 떠난 남편 보내게 하소서 노트에 번진 자국 이별 그림자 묻어 있어 잊겠다 한 다짐에도 글자마다 뒤척인다. 눌러쓴 사랑했노라 볼펜심 압력만큼 진하다. 안방 빛으로 머문 당신 주방 바람으로 스친 당신 주님 품에 안긴 당신 빛과 바람으로 닿을 곳 글 한 획 넘길 때마다 천국의 호흡 내려온다. <싸리나무 울타리> 가난한 집주인을 떠나보낸 자리 진흙땅 부여잡고 서 있는 고집 듬성듬성 틈새로 들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며 울타리에 기대어 피어난 들꽃 무리 벽돌과 시멘트로 쌓아 올린 견고한 담은 보여주지 않는 녹슨 주전자에 배인 사연마저 노랗게 채색하는 봄 햇살 온기가 동그랗게 피어오른 한 뼘 마당 얼기설기 모여 주인 몫의 땅을 지키는 마른 용병 싸리나무 울타리 서로를 은근히 바라볼 수 있어도 침범할 수 없는 현명한 지혜자의 표식 같아 틈새로 보이는 앞집 안방 불빛이 춤을 추면 가깝지도 않고 멀지도 않게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는 눈물과 웃음의 순환 을사년 적벽돌 담장 허물고 세운 틈새 바람 길
- 죽을 때 후회하는 다섯 가지
브로니 웨어(Bronnie Ware)는 호주 출신 간호사로, 임종을 앞둔 환자들의 수많은 죽음을 지켜보고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는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사람들이 인생을 마감하기 직전에 공통적으로 후회하는 다섯 가지를 발견하였고, 이것을 바탕으로 쓴 책이 ‘ ‘죽을 때 후회하는 다섯 가지(The Top Five Regrets of the Dying)’입니다. 1.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살지 못했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말한 후회입니다. 타인의 기대, 사회적 기준, 가족의 바람에 맞추느라 자신이 원하던 삶을 살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입니다. 2. “그렇게 일만 하지 말 걸” 특히 남자들의 경우에 일에 몰두한 나머지 자녀의 성장 과정, 배우자와의 관계, 일상의 소중한 순간들을 놓친 것을 후회하였습니다. 3. “내 감정을 표현하며 살았어야 했다” 감정을 억누르며 살았던 사람들이 가장 많이 후회하는 부분 중 하나입니다. ‘좋은 사람’, ‘갈등을 피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자신의 진짜 감정을 숨기고 살았지만, 마음의 병과 후회로 이어졌습니다. 4. “친구들과 연락을 끊지 말았어야 했다” 삶을 마감하기 전에 옛 친구가 그리워 이들을 만나보려고 하지만 자신의 수중에 연락처조차 없다는 것을 깨닫고 후회하였습니다. 5. “더 행복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행복은 조건이나 환경이 아니라 ‘선택’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 타인의 시선, 사회적 규범 등에 얽매여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며 살았다고 후회하였습니다. 마지막 임종 때 후회하는 5가지 항목 중에는 좀 더 많은 돈을 못 번 것에 대한 후회나 더 좋은 집과 차를 사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는 없습니다. 오히려 이것을 가지려고 다른 것을 소홀히 한 것에 대한 후회입니다. 이걸 보면서 예수님을 믿고, 목장에서 함께 삶을 나눌 때, 위의 다섯 가지로 후회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목장에서 속마음과 감정을 나누고, 부부와 자녀 문제를 나누고, 목장 식구들의 나눔에 함께 기뻐하고 슬퍼할 때 자연스럽게 위의 5가지가 해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하루 하루를 사시기 바랍니다.
2024년 6월 2일, 담임목사로서 첫 설교를 시작하였으니, 꼭 1년이 되었습니다. 언제 1년이 지났나 싶을 정도로 시간이 빠르게 흘렀습니다. 담임목사가 되고 나서 가장 부담되었던 것은 매주 설교하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셨다면 감당할 수 있는 힘도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지만,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제 성격과 ‘설교의 밑천이 금방 바닥나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가 있었습니다. 매주 토요일 저녁마다 “내일 설교는 실패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돌아보면, 매주 하나님의 도우심이 함께 하셨기에 지금까지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부족한 점도 많았지만, 성도님들의 격려 덕분에 1년을 지나올 수 있었습니다. 설교 준비는 여전히 쉽지 않지만, 습관이 되면서 처음보다 수월해지고 있습니다. 수요일까지는 본문 관련 주석을 읽고 묵상하고, 목요일부터 본격적으로 설교를 준비하여 토요일 저녁이면 마무리하는 것이 이제는 제 삶의 리듬이 되었습니다. 주일 설교를 마치고 월요일이 되면 다시 다음 주 설교에 대한 부담이 찾아옵니다. 하지만 매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감당해왔던 것을 기억하며, 염려하기보다 하루하루를 살아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생명의 삶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하루하루 산다는 것은 “주신 사명을 오늘 감당하고, 주신 축복을 오늘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일의 염려는 내일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장래에 대해 계획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염려하지 않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신뢰하겠다는 결단입니다. 우리는 종종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많은 에너지를 낭비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하루하루에 집중하면 과거와 미래의 무게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저도 하루하루 살기로 그리고 내일 염려는 내일 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지난 1년을 돌아보며 감사한 것은, 목회 방향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는 점입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목회의 방향을 찾기 위해 애쓰지만, 저는 처음부터 ‘영혼을 구원하고 제자 삼는 것’이 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사명이라는 확신이 분명했습니다. 어떻게 이 사명을 감당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분명했기에, 다른 고민 없이 이 사역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이 참 감사한 일입니다. 목회를 하다 보면 열매나 성공에 초점을 맞추기 쉬운데,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가 사람마다 다르고, 제게 주신 사명이 무엇인지에 충실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주어진 일에 충성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충성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을 기다릴 수 있었습니다. 최근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일수록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염려에 매이기 쉽습니다. 하루하루를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6장 33절의 약속 말씀처럼,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
-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요한계시록 19:11-16)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은 많지만, 죽음 이후의 영원한 삶까지 바꾸는 존재는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누구로 알고, 어떻게 믿느냐에 따라 이 땅에서의 삶뿐 아니라 죽음 이후의 영원한 삶까지 달라집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1.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던진 질문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가이사랴 빌립보를 찾으셨을 때, 제자들에게 질문하신 적이 있습니다(마 16:13-14).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고 하느냐?”, 그리고 이어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이 질문은 단순하지만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가이사랴 빌립보는 로마 문명의 영향을 받은 도시로, 이방 신들을 숭배하는 중심지였습니다. 판 신전, 아우구스투스 황제 신전, 제우스 신전이 있었고, 그 안에서는 우상 숭배와 음란한 행위가 만연했습니다. 그런 배경 속에서 예수님은 현장 속에서 제자들에게 질문하심으로써, 그들이 몸으로 느끼고 깨닫게 하셨습니다. 이 세상은 가이사랴 빌립보와 닮았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는 질문은 당시 제자들뿐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중요한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우리의 대답은 이 땅에서의 삶뿐 아니라 영원한 삶을 결정짓기 때문입니다. 2. 신실(Faithful)하고 참되신(True) 분 본문 요한계시록 19장에는 예수님의 이름이 네 가지로 등장합니다. 첫 번째는 11절에 나오는 ‘신실하신 분’과 ‘참되신 분’입니다. ‘신실하다’는 말에는 약속을 반드시 지키신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히브리서 13장 5절에서도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참되다’는 말은 예수님이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요 14:6)의 그 ‘진리’와 같은 단어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는 절대 진리를 인정하지 않고, 모든 것이 상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각자의 기준에 따라 진리도, 윤리도 바뀐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변하지 않는 참된 진리이시며, 하나님 본체의 모습(히 1:3)을 나타내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이 진리라는 사실은, 우리 삶의 모든 판단 기준이 그분으로부터 나와야 함을 의미합니다. 3. 왕들의 왕 군주들의 군주 본문 16절에서는 예수님을 ‘왕들의 왕’, ‘주들의 주’라고 소개합니다. 초대교회 당시 로마 황제 도미티안은 자신을 ‘주 하나님’으로 부르게 했고, 황제의 신상에 절하도록 강요했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이를 거부하고 믿음을 지키다가 고난과 순교를 당했습니다. 고난이 힘든 이유는 끝이 언제인지, 누가 주도권을 쥐고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왕 중의 왕’이시며 ‘모든 주권을 가지신 분’이라는 사실은 고난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됩니다. 그분은 모든 역사의 주인이시며, 결국 모든 악을 심판하시고 승리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으셨을 때, 베드로는 “주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훌륭한 고백이지만, 계시록에 나타난 예수님의 모습은 그보다 더욱 온전한 이해를 제공합니다. 계시록에 나타난 예수님은 고난받는 종이 아니라 심판자이시며, 어린 양이 아니라 유다의 사자이십니다. 사탄과 모든 악을 무너뜨리시는 최종 승리자이십니다. 이 예수님을 아는 것과 믿는 것이 변화의 시작입니다. 4. 개인 적용
- ‘가족목장’을 소개합니다.
가정교회 안에 작은 운동으로 최근 가족목장모임이 뜨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 하고 있던 ‘목장모임’이 이렇게 좋은데, 이 좋은걸 왜 가족들하고는 하지 않을까? 이미 많은 교회들이 가족목장을 통한 유익이 큼을 간증하고 있습니다. 가족목장의 유익 중 몇가지를 나누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자녀와 부모의 소통입니다. 자녀들은 부모가 직장생활을 하는 것은 알고 있지만 직장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아는 아이들은 적습니다. 가족목장을 통해 자연스러운 소통이 되고 부모와 자녀의 마음의 간격이 좁혀질 수 있습니다. 2) 부부의 소통입니다. 부부가 한 이불을 덥고 자도 속마음을 내놓지 못하고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족목장을 통해 평소 얘기하기 힘든 어려움이나 섭섭함을 건강하게 나누고 풀어갈 수 있습니다. 3) 말씀으로 소통을 가능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정이라 하더라도 말씀을 가지고 나누는 가정은 의외로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가족목장이라는 장(場)만 만들어 주면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이로인해 생활속에서 자연스런 신앙의 전수(승계)가 이루어집니다. <가족목장 모임 순서> 1. 가족 식사 – 온 가족이 함께 식사합니다. 자녀를 위해 특별한(!) 메뉴를 준비하면 더 좋습니다. – 식사를 마친 후에 함께 정리를 한 후에 가족 목장을 위한 자리를 만듭니다. 2. 찬양하기 : 가족들이 다 함께 부를 수 있는 찬양을 준비하여 부릅니다. 3. 게임 : 자녀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간단한 게임을 합니다. 자녀 나이에 맞는 게임을 준비합니다. (가족 구성원에 따라 생략할 수 있습니다.) 4. 나눔(꾸나꾸나 시간) ➀ 삶 나눔: 한 주간 있었던 일들 중 감사한 일, 기분 좋았던 일을 나눕니다. ➁ 말씀 나눔: 주일에 들은 말씀 중 “새롭게 배운 것, 깨닫거나 느낀 것, 삶의 적용할 것” 을 나눕니다. ➂ 기도제목 나눔: 한 주간 있었던 힘들었던 일과 개인적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록합니다. ➃ VIP 나눔: 나의 VIP, 가족 VIP(할머니,할아버지 등)를 위해 일주일간 어떻게 섬겼는지를 나눕니다. 5. 기도 – 나눴던 기도제목과 교회를 위한 기도제목, VIP를 위한 기도제목을 가지고 함께 기도합니다. – 가족 중 한명이 마무리 기도를 합니다. 6. 정리 : 설거지와 정리를 함께 합니다. # 주의 사항 1. 가족목장은 함께 하는 시간입니다. 어린 자녀라도 작은 역할을 주어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면 좋습니다. 2. 역할(전체 진행, 찬양, 게임)을 미리 알려주고 준비하게 합니다. 3. 나눔을 할 때는 부모가 먼저 나눔을 하면 좋습니다. 나눔시간은 “공감”하는 시간입니다. 절대로 가르치지 맙시다! *공감하는 방법? (꾸나꾸나: 그랬구나, 힘들었겠구나..) 4. 기도제목은 각 가정의 기도제목 노트를 준비해서, 기록을 하고, 기도의 응답을 확인하면 좋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