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 집회를 은혜 가운데 마쳤습니다.
지난 목요일부터 토요일까지 3일 동안 진행된 집회를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잘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교회가 이런 집회를 감당할 수 있는 저력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먼저, 목요일과 금요일 저녁식사, 토요일 점심식사, 그리고 금·토 새벽식사를 위해 헌신해주신 목녀님들과 각 목장의 자매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따뜻한 식사로 섬겨주신 덕분에 많은 분들이 식사 후 바로 집회에 참여할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집회가 더욱 풍성해졌습니다. 3일간 찬양으로 수고한 찬양팀에게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집회를 위해 따로 모여 연습하고 준비한 정성이 찬양의 은혜로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특히 찬양팀 싱어로 섬겨준 자매님들, 드러머로 새롭게 섬긴 이동균 형제와 배경은 자매, 그리고 중고등부의 예겸이가 함께하여 더욱 은혜롭고 힘 있는 찬양이 되었습니다. 두마게티 목장 청년들은 교회 장식을 아름답게 꾸며주었고, 교회 화분과 꽃을 담당하시는 자매님이 단상 꽃을 정성껏 장식해주셔서 집회 내내 축제의 분위기가 가득했습니다. 드러나지 않게 뒤에서 수고하신 방송·음향·영상팀, 차량 봉사, 그리고 강사님 숙소를 제공해주신 분께도 감사드립니다. 이러한 헌신들이 모여 집회를 은혜롭게 마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번 집회의 가장 큰 은혜는 많은 성도님들의 적극적인 참여였습니다. 저녁과 새벽 식사가 동이 날 정도로 많은 분들이 집회에 동참하셨고, 그 열정이 은혜의 자리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습니다. 오래 앉아계시기 힘드신 어르신들께서도 첫날과 마지막 날 집회에 함께하셔서 큰 힘이 되었습니다. 이번 집회를 통해 앞으로 우리 교회가 어떤 집회든 감당할 수 있는 믿음의 공동체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3일간의 말씀은 우리 교회에 꼭 필요한 하나님의 메시지였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심영춘 목사님을 통해 직접 우리 교회에 말씀하신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 첫째 날 저녁 (살전 1:2-8) 데살로니가 교회를 본받아, 행복한제자교회가 위대한 교회, 위대한 성도가 되기를 소망하게 되었습니다. 1. 생각만 해도 감사가 나오는 교회, 2. 믿음의 역사·사랑의 수고·소망의 인내가 기억되는 교회, 3. 어려움 속에서도 주님을 본받는 교회, 4. 믿는 이들에게 본이 되는 교회, 5. 믿음의 소문이 각처로 퍼지는 교회 — 이 다섯 가지 모습이 우리 가운데 이루어지길 소망합니다. • 둘째 날 새벽 (삿 6:11-18)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사명을 주시며, 늘 함께하신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나는 지금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를 깊이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 둘째 날 저녁 (눅 1:5-13) 사가랴 부부의 삶을 통해, ‘내 삶의 변화를 설명하려면 이 사람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람이 되길 소망했습니다. 또한 하나님 앞에 의롭게 살아도 고난은 올 수 있으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기도의 중요함을 배웠습니다. • 셋째 날 새벽 (눅 23:50-53) 요셉을 통해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장례를 위해 한 사람을 미리 준비시키셨음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일을 이루기 위해 사람을 예비하신다는 사실이 큰 은혜로 다가왔습니다. 행복한제자교회도 창세전부터 하나님의 계획 속에 세워졌다는 말씀은 큰 위로와 확신이 되었습니다. • 셋째 날 저녁 (요 21:18-23) “너는 나를 따르라”는 말씀은 도전과 헌신에 관한 메시지였습니다. ‘가난한 머루송이’ 예화를 통해, 헌신은 강요가 아니라 비교하지 않고, 내게 주신 역량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자유로운 순종임을 배웠습니다. 이번 집회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모든 섬김과 참여, 그리고 말씀 위에 부어주신 은혜에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하나님의 뜻 안에서 더욱 성숙한 교회로 세워지길 소망합니다.
- 페이스 메이커(Pacemaker), 송영민 목사
영화 ‘페이스메이커’는 주인공이 자신의 성공이 아닌 남을 성공시키기 위해 달려야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눈물나는 일인지 잘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페이스메이커(Pacemaker)’는 심장이 규칙적인 맥박을 유지하도록 돕는 인공 심장박동기를 가리키기도 하고 마라톤에서 선수와 함께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며 함께 달려주는 보조 선수를 뜻하기도 합니다. ‘페이스메이커(Pacemaker)’의 이러한 역할은 가정교회 정신과 닮았습니다. 가정교회 정신 중 하나가 남을 성공시켜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승 후보의 바람막이가 되어주고, 다른 선수들의 방해를 막아야 합니다. 자신의 페이스를 조절하면서도, 후보의 속도를 끌어 올려주며 선수가 힘들어서 포기하지 않도록 계속 격려하면서 함께 달려주어야 합니다. 자신의 자존심도 죽여야 하고 마지막 결승선 지점을 앞두고는 사라져야 합니다. 자신의 성공과 행복을 위해 살아가는 세상에서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이 결승선까지 완주하는 것은 쉽지 않은 여정입니다. 그렇지만 목회는 영혼을 구원하고 하나님 앞에서 성공시켜 준다는 의미에서 영광스러운 자리입니다. 우리에게 맡겨 주신 영혼들이 주님 앞에 설 때, 박수 받는 성도로 성공시켜 주는 영광을 바라보는 꿈을 꾸기 때문입니다. 목자들의 목양 사역도 장거리 마라톤과 같습니다. 목장 식구들을 위해 매일 기도하고, 기쁨으로 섬기는 일은 보람으로 가득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영적 에너지가 소진되고 감정의 기복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기도는 형식이 되고, 섬김이 부담이 되고, 목장 모임은 어느새 의무감으로 다가올 때도 있습니다. 그 여정 속에는 기쁨도 있지만, 때로는 멈추고 싶은 유혹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바로 이때, 목회자들은 목자들이 이 귀한 사명을 끝까지 완주하도록 옆에서 함께 달려줄 ‘페이스메이커’가 되어주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 평신도를 위한 가정교회 세미나에서 가정교회와 셀교회가 무엇인 다른지 알고 싶어서 오신 분이 계셨습니다. 지침을 따라 “셀교회와 가정교회는 거의 비슷하지만 약 5%가 다른데 그 5%가 큰 차이를 냅니다. 셀교회는 교회가 효율적으로 전도하고 교회의 성장을 위해 관리 운영하지만, 가정교회는 평신도가 주도적으로 목양을 합니다. 그래서 가정교회는 평신도에게 목양을 위임하고 목양을 잘하도록 목회자가 돕습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분이 평신도 세미나 마지막 시간에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목사님은 셀과 가정교회가 90-95% 이상 비슷하다고 말씀하셨지만, 제가 보기에는 셀과 가정교회는 100% 다릅니다.” 이분은 가정교회 목회자는 평신도들이 목양을 할 수 있도록 위임하며 성공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부분을 확실하게 깨달은 것이 분명합니다. 가정교회를 하면서 이 부분을 놓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합니다. 내가 지금 달려가는 목회와 목양 현장은 “나의 성취나 성공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목자나 목장 식구를 주님의 제자로 성공시켜 주기 위한 페이스 메이커인가?” 자신에게 이 질문을 해보면 좋겠습니다.
- 가정교회의 제자 훈련 방법 (최영기 목사님)
전통적인 제자 훈련과 가정교회 제자 훈련의 차이는 전자는 성경 공부를 통해서 가르쳐 제자를 만들려 하고, 후자는 삶을 나눔으로 제자를 만들려 하는 것입니다. 대부분 목회자가 전자에 의존합니다. 제자를 만들기 위하여 설교와 성경 공부에 전폭적으로 의존합니다. 사람이 알면 변하고, 깨달으면 바뀐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런 믿음은 17세기에 서구에서 시작된 계몽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계몽주의자들은 인간의 근본 문제를 무지로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계몽과 교육을 통하여 무지가 사라질 때 이상적인 사회가 이루어진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허망한 꿈이라는 것이 2차 대전으로 인해 처절하게 입증되었습니다. 철학의 꽃을 피웠고 민도가 높다는 독일 사람들이 유대인 학살이라는 엄청난 악행을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지식과 지성이 인간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음에도 많은 목회자가 성도의 삶을 바꾸는 도구로 성경 공부에만 의존합니다. 사실 성경 공부가 예수 믿은 후 2-3년 동안은 삶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이후에는 소위 머리만 커지는 신앙인을 만들어 냅니다. 오래 된 크리스천 삶이 변하지 않는 것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몰라서라기보다 옛 습관과의 싸움에서 실패하고 있어서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해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다고 할지라도, 잘못된 사고를 하고, 잘못된 감정 반응을 보이고, 잘못된 선택을 하는 습관에서 즉시 벗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삶이 변하기 위하여서는 이러한 악습이 주님이 원하시는 삶에 합당한 습관으로 대치되어야 합니다. 습관은 한 번의 결심과 헌신으로 바뀌지 않습니다. 말씀을 통한 깨달음이나 뜨거운 성령 체험은 삶의 변화에 대한 동기부여는 해주지만 삶을 실제로 변화시키지는 못합니다. 삶이 변하기 위해서는 연습해야 합니다. 연습하되 반복적으로 해야 합니다. 순종을 연습하고, 용서를 연습하고, 경건을 연습해야 합니다. 옛 습관이 새 습관으로 대치되도록 만들어 주는 연습의 장이 목장입니다. 목장 식구들과 부대끼는 가운데 자신이 변하는 것밖에 해결책이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갈등 가운데 자신이 깨어지면서 변화를 체험합니다. 목자 목녀가 되면 삶이 극적으로 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싫은 사람 안 만날 권리, 싫은 모임 참석하지 않을 권리, 이웃에게 섬김받을 권리는 다 포기하고, 참고, 이해하고, 용납할 수밖에 없는 처지로 자신을 스스로 몰아넣었기 때문에 변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 다음세대를 위한 교육목자(교사)가 되려면
요즘 제가 청소년부 사역을 나눌 때면 꼭 하는 이야기가 아이들을 위해 ‘부모교사’도 있어야 하지만 부모가 아닌 순수한 교사로서 다음세대를 향한 뜨거운 열정을 가진 선생님(이것을 청소년 가정교회에서는 ‘교육목자’로 부릅니다.)이 몇 분 더 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몇 번 했더니 청소년부 교육목자가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그래서 가정교회에서 다음세대 사역을 한 경험을 바탕으로 교육목자(선생님)가 무엇을 하는 분인지 몇가지 정리해 보았습니다. 꼭 교육목자가 아니어도 목장의 목자(목녀/목부)님들도 함께 나누면 좋을 것 같아 공유해 봅니다. 1. 교육목자는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고 해도 진심은 여전히 통합니다. 아이들을 향한 사랑과 진심을 기도로 표현하십시오. 아이들을 생각하고 기도하다 보면 마음으로 품어지고 문제의 본질이 보이고 진심으로 아이들을 대할 수 있게 됩니다. 아이들의 문제를 교육목자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극히 적습니다. 그래서 기도하지 않고 사역할 수 없습니다. 2. 교육목자는 ‘섬기는’ 사람입니다. 예수님도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택하신 방법이 (십자가)섬김입니다. “섬김안에 구원(변화)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목장에서 자라는 원리도 다른 이를 섬길 때 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를 교육목자가 보여주면 됩니다. 작은 손편지로 위로 격려, 생일 챙기기, 시험때 찾아가서 기도해주기 등 입니다. 3. 교육목자는 ‘본을 보이는’ 사람입니다. 예배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교육목자가 예배하는 모습을 지켜봅니다. 예배때 섬기느라 자리를 비우거나 바쁘게 돌아다니지 마십시오. 또한 목장 나눔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완벽한 나눔? 보다 부족하지만 진솔하게 자신의 약함을 드러내고, 신앙으로 극복해보려 애쓰는 모습을 나눠주세요. 마지막으로 영혼구원의 본이 되십시오. 목장 나눔때 교육목자가 얼마나 전도에 열심을 가지고 있는지, 어떻게 VIP를 섬기고 있는지를 나누면 아이들도 영혼구원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4. 교육목자는 ‘계속 배우는’ 사람입니다. 83세에 전국주일학교대회에 참석하신 할머니선생님.. “82세때보다 더 좋은 교사가 되기 위해” 라떼의 사고방식이 아닌 끊임없이 10대 청소년들에 대해 배우려는 마음과 자세가 필요합니다. 청소년의 관심사를 배우기 위해 기독서점을 들러보는것도 좋습니다. 전문가들을 통해 아이들의 관심사, 크리스쳔의 연애, 중독 등 필요한 정보들이나 최신 트렌드를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삶공부를 통해 자신의 부족함을 배우고 무엇보다 가정교회 세축, 네기둥의 정신으로 무장된 교육목자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5. 교육목자는 ‘소통하고 공유하는’ 사람입니다. 먼저는 아이들의 부모님과 자주 소통함으로 그들과 좋은 동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학생의 문제나 어려움에 대해 부모님과 함께 고민하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또한 담당 사역자(목회자)와 가깝게 소통하고 목회적 방향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목장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해 함께 나누고 기도해야 합니다.
- 우리 교회에는 ‘심방’이 없습니다.
어느 성도님께서 “우리 교회는 심방을 하지 않나요?”라고 물으신 적이 있습니다. 전통 교회에서는 봄이 되면 ‘대심방’을 하기도 하지만, 저희 교회는 심방을 따로 진행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각 목장의 목자가 곧 그 목장의 목사 역할을 감당하기 때문입니다. 목자의 사명은 목원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살피며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할지,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를 함께 고민하는 것입니다. 목자들이 이미 이런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기에, 저는 가정을 직접 심방하기보다 목장 탐방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금요일에는 키토 목장을 방문해 은혜로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모임을 함께하며 “이 목장이라면 어떤 VIP(전도 대상자)가 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하나님도 같은 마음으로 기뻐하시리라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특히 놀라웠던 것은 멕시코에 있는 강동현 목부가 영상으로 모임 마칠 때까지 함께 참여하며 삶을 나누었다는 점이었습니다. 멕시코 시간으로 아침 6시에 일어나 목장을 시작하고, 모임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출근하는 그의 모습을 통해 목장을 향한 사랑과 열정을 깊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열정은 옆 사람에게도 전염됩니다. 목자 부부가 목장을 사랑하고 열정으로 섬길 때, 그 열정은 자연스럽게 목장 식구들에게 흘러가 목장을 더욱 소중히 여기고 함께 세워가게 됩니다. 목장 탐방은 목장에서 초대가 있을 때 방문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별한 일이 없더라도 앞으로는 1년에 한 번씩은 모든 목장을 방문하려고 합니다. 현재 우리 교회는 총 10개 목장이 있고, 12월과 8월을 제외하면 대략 한 달에 한 번 정도 방문이 가능합니다. 탐방을 원하시는 달이 있으시면 저에게 신청해 주시면 일정을 함께 조율하겠습니다. 목장 탐방의 가장 큰 목적은 수고하는 목자·목녀님과 목장 식구들을 격려하기 위함입니다. 매주 가정을 열고 식사와 교제를 준비하는 목장 식구들과 목자·목녀님이 차린 밥상에 함께 앉아 목장을 축복하는 자리, 이것이 바로 목장 탐방의 핵심입니다. 또한 주일 점심 식사 자리에서는 저와 개인적으로 대화할 기회가 많지 않지만, 목장 탐방을 통해서는 함께 식사하며 교회와 신앙에 관해 자유롭게 이야기 나눌 수 있습니다. 저에게는 목장 탐방이 목장의 실제 분위기와 상황을 몸으로 느끼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직접 경험한 내용은 목장을 위해 기도할 때 더욱 구체적인 기도로 이어지게 됩니다. 목장 탐방은 10개 목장이 한 몸을 이루어 행복한제자교회가 영혼 구원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 꼭 필요한 사역입니다. 마지막으로 부탁드립니다. 저희 부부가 목장을 방문할 때는 평소처럼 준비해 주시면 됩니다. 식사 메뉴나 진행 순서, 나눔 방식 모두 평소와 동일하게 진행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가 더욱 자연스럽게 흘러가기를 기대합니다.
- 가정 교회는 방법보다 정신이 먼저입니다.
가정교회에 관심을 가지는 많은 분들이 가정교회를 목회의 또 다른 한 형태로 이해합니다. 그래서 “가정교회는 어떻게 하는 것인가?”라는 방법론에 주로 관심을 두곤 합니다. 제가 목자로 섬기던 시절에도 선교회 형제, 신학교 동기, 선교사, 다른 교회 목회자 등 많은 분들이 가정교회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보기 위해 목장을 탐방하러 오셨습니다. 탐방을 마친 분들의 반응은 다양했습니다. 어떤 분들은 시큰둥한 태도를 보였고, 또 어떤 분들은 좋다는 반응을 하기도 했습니다. “잡담하다가 끝나는 거 아닌가?”, “밥 먹고 이야기하다가 돌아가는 게 다네.”, “나도 이미 하는 건데, 특별한 게 없네.”라는 반응도 있었습니다. 사실 이들의 말도 이해가 됩니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새로운 방법을 배우려고 왔는데, 실제로 와서 보니 특별해 보이는 형식이나 방법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찬양하고, 밥을 먹고, 삶을 나누고, 기도하는 모습은 그들이 이미 경험하고 있던 모임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런 반응은 곧 그들이 가정교회의 방법만 보려고 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가정교회를 하려면 방법을 붙드는 것이 아니라 정신을 붙들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성경대로’입니다. 신약교회가 집에서 모였기에 우리도 집에서 모이고, 남녀가 함께 모였기에 우리도 부부가 함께 모입니다. 또한 목장을 단순한 소그룹 기도 모임이나 성경 공부 모임으로 운영하지 않는 이유는, 목장을 교회의 하부조직이 아니라 목회의 최일선에서 영혼 구원 사역을 담당하는 교회로 보기 때문입니다. 이런 정신은 단순한 한 번의 방문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오랜 시간 함께하며, 목장에서 실제로 믿지 않는 영혼이 예수님을 믿고 삶이 변화되는 과정을 지켜보아야만 알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4장 11-12절 말씀처럼, 가정교회는 성경적인 역할 분담을 합니다. 교회의 몸을 세우는 일은 성도들의 몫이기에 목자 목녀가 목장을 책임지고 이끌어 갑니다. 목회자는 목자·목녀가 그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돕고, 교회의 방향을 제시하며 말씀과 기도로 섬기는 역할을 합니다. 이것이 바로 가정교회의 정신이며, 단순한 사역의 방법이 아닙니다. 이러한 정신이 뒷받침되지 않은 채, 형태와 명칭만 도입한다고 해서 신약교회가 회복될 수는 없습니다. 제가 선교회에서 사역할 때 대부분의 사람이 공통적으로 하던 고민은 “믿지 않는 사람을 모임으로 초대하기 어렵다.”라는 것이었습니다. 모임의 성경공부 내용과 나눔이 믿지 않는 사람들과는 너무나 차이가 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누구도 이 문제에 대해 속 시원한 답을 주지 못했습니다. 저는 가정교회를 통해서 답을 찾았습니다. 목장은 누구든지 올 수 있는 자리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도 와서 자연스럽게 가족처럼 어울릴 수 있는 모임입니다. 제자 삼는 사역의 돌파구를 찾지 못해 방황하던 저를 가정교회로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천국 상급에 대한 오해
우리가 천국의 상급에 대해 오해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첫째, 직분에 따라 상급이 달라진다는 생각입니다. 흔히 목사, 목자, 목녀, 목원 순으로 상급이 정해지고, 담임목사가 제일 큰 상급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직분은 공동체 안에서 맡은 역할일 뿐, 상급을 결정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직분에 따라 더 많은 희생과 섬김의 기회가 주어지기에, 상급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질 수는 있습니다. 둘째, 열매가 많을수록 상급이 크다는 오해입니다. 열매가 많고, 큰 일을 감당했으니, 상급도 클 것이라고 여기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달란트 비유에서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받은 종은 똑같은 칭찬과 상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열매의 크기보다, 주신 달란트와 기회에 얼마나 충성했는지를 보십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열매와 사람들의 인정에 더 관심을 두지만, 때로는 열심히 해도 열매가 없거나 인정받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탈진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으려면, 나는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하고 있다는 믿음과 확신을 붙들어야 합니다. 그럴 때만 하나님의 인정과 상급에 초점을 맞추며 끝까지 충성할 수 있습니다. 셋째, 신앙 연수나 사역 기간이 길수록 상급이 크다는 오해입니다. “나는 신앙생활 한 지 오래되지 않아서, 사역을 맡은 지 얼마 안 되어서 상급이 적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포도원 품꾼 비유에서 새벽에 온 사람과 오후 다섯 시에 온 사람이 동일한 보상을 받은 것을 보면, 하나님의 상급은 일한 시간이나 양에 따라 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오해들은 모두 세상의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세상은 직분, 성과, 경력에 따라 상을 주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상급은 직분, 열매의 많고 적음, 사역 기간에 비례하지 않습니다. 여행 중 한적한 농촌 길을 운전하다가 작은 예배당 하나를 보게 되었습니다. “누가 이 외딴 곳에서 섬길까?”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곳 마당을 청소하시는 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마도 목사님이신 것 같았습니다. 그 때 “비록 이 외딴 곳에서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고 열매가 많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은 이분의 충성을 보시고 상 주실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은 높아지고, 성과를 내고,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려 하지만, 믿는 우리는 다릅니다. 우리는 낮아지는 자리, 섬기는 자리에서 사람의 인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정과 상급을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로마서 경건의 시간 중에 마지막 구절 “이런 사람이 참 유대인이며, 이런 사람은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칭찬을 받습니다(롬 2:29).”라는 구절이 마음에 와 닿아 글을 적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충성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고, 열매 또한 덤으로 더해주실 것을 믿습니다.
- 나의 죄를 보는 훈련 (대양주 가사원장, 송영민 목사)
목회하다 보면 가장 안타까운 순간 중 하나는 갈등이나 문제가 생겼을 때 서로 자신의 잘못을 보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서로 탓하고, 상황을 원망하고, 상대를 비난하다 보면 공동체가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무엇보다 갈등과 문제 앞에서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돌리게 되면 본인 자신도 영적 성장이 멈춰버리고 맙니다. 그렇다고 갈등이 없는 교회나 목장은 없습니다. 어느 곳에나 갈등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갈등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직면하고 성장의 기회로 삼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 상황 속에서는 여전히 자신의 내면을 보지 못해서 공동체를 어렵게하거나 시험에 들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목회하면서 분명히 깨닫는 것은, 남의 죄를 보는 눈보다 내 죄를 보는 눈이 열릴 때 성숙한 신앙인이 되고, 공동체가 건강하게 세워진다는 것입니다. 모든 신앙의 성장은 내 죄를 보는 데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공동체 안에 문제가 생겼을 때 누군가의 잘못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교만, 욕심, 열등감, 치유되지 못한 나의 상처들을 인정하며 나갈 때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그때부터 회복은 시작됩니다. 어떻게 자신의 죄를 보는 훈련을 할 수 있는지 제가 적용하고 있는 것을 3가지만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매일 말씀 묵상을 통하여 자기 내면을 보도록 했습니다. 신실한 목자들은 매일 말씀 묵상 시간을 갖지만 어떻게 하면 많은 성도가 지속적으로 묵상하도록 할 것인가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새벽에 눈을 뜨면 묵상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도록 목회자가 그날 묵상한 말씀을 짧게 적고 자기 내면을 볼 수 있는 적용 질문과 함께 총목자 모임 단톡방에 올려줍니다. 그리고 목자들은 자신이 묵상한 내용과 질문을 목장 식구 단톡방에 올려주어 목장 식구들도 짧게라도 동참하도록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목장 단톡방은 자연스러운 말씀 묵상 나눔터가 되고 VIP들도 보고 배우며 조금씩 자기 내면을 보는 훈련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둘째, 연합예배 간증을 통하여 자신의 연약함을 드러내도록 했습니다. 보통 가정교회 간증은 구원 간증과 삶공부 간증 등 예수를 믿고 변화가 일어나는 내용이 예배 가운데 큰 은혜를 줍니다. 초신자들이 간증할 때는 예수를 믿기 이전의 삶과 예수를 믿은 후의 변화를 중심으로 간증을 준비하도록 했고 기존 성도들은 자신의 연약함과 실패를 드러내고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셨는지 간증하도록 했습니다. 그렇게 했더니 죄가 드러나는 것이 수치가 아니라 도리어 간증을 통해 성령님께서 예배 가운데 일하시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셋째, 목장에서 삶의 나눔 시간에 자신의 실패와 연약함을 자연스럽게 나누도록 했습니다. 목장에서 삶에 나눔이 감사로 시작되지만 나눔이 깊어지면서 영적인 나눔으로 이어져야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누군가 자신의 죄, 실패, 아픔, 연약함을 공동체 안에서 나누고 입술로 고백할 때, 성령님이 일하시는 순간이 됩니다. 이때 목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목자가 영적으로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으면 성령님께서 일하시는 순간을 놓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목자는 “혹시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거나 주신 마음이 있으면 함께 나누어 주시겠습니까?”라고 물으며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영적 흐름을 이어가야 합니다. 어느 교회나 목장에서 갈등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나의 죄를 보고 고백하는 훈련을 하다보면 도리어 문제와 갈등이 공동체를 성숙하게 할 것입니다.
- 다음 주부터 갈라디아서 설교를 합니다.
지난 6주 동안 시편 23편을 살펴보았습니다. 한 편이었지만, 다윗이 지나온 삶을 살펴볼 수 있었고, 그의 삶과 관련된 다른 시편들도 살펴 볼 수 있었습니다. 이제 다음 주부터 갈라디아서 말씀을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갈라디아서는 사도 바울이 1세기 초, 소아시아 지방, 지금의 터키 지역에 세워진 교회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터키 소아시아 지역은 은퇴 이후에 성지순례로 가보고 싶은 지역 중 하나입니다. 갈라디아 지역의 교회들은 바울이 1차 전도여행 때 세운 교회였는데, 그 교회 안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들어와서 “예수님을 믿는 것만으로는 구원이 부족하다, 구원을 받으려면 할례를 받고 율법도 지켜야 한다”고 가르친 것입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복음은 우리에게 결코 자유를 주지 못합니다. 복음은 좋은 소식이란 뜻인데, 좋은 소식이 아니라 무거운 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단호하게 선포합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된다”고 말입니다. 이것이 갈라디아서 전체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갈라디아서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개인적인 부분(1–2장) – 바울은 자신의 사도권과 자신이 전한 복음이 사람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증거합니다. 2. 교리적인 부분(3–4장) –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설명합니다. 율법은 우리를 죄인임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역할을 할 뿐, 구원 자체가 될 수는 없습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으로 주어집니다. 3. 실천적인 부분(5–6장) –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자유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줍니다. 그 자유는 자기 욕심을 따르는 방종이 아니라 성령을 따라 행하며 사랑으로 서로 섬기는 자유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열매 맺는 삶으로 이어집니다. 갈라디아서는 두 가지 큰 주제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1. 복음의 순수성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복음에 무언가를 더하거나 빼면 그것은 더 이상 복음이 아닙니다. 우리도 신앙생활하면서 “믿음 + 무엇”을 더하려는 유혹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합니다. 2. 자유를 올바르게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신 자유는 자기 멋대로 살라는 자유가 아닙니다. 성령을 따라 행하고, 사랑으로 섬기는 자유입니다. 갈라디아서는 우리 신앙의 기초를 다시 세워주는 책입니다. “나는 무엇으로 구원받는가?” “복음은 내 삶에서 어떤 능력이 있는가?”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를 나는 어떻게 살아내고 있는가?” 이 질문을 붙들고 갈라디아서 말씀을 함께 나눌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 힘을 주시고, 복음 안에서 참된 자유와 성령의 열매 맺는 삶으로 이끌어 주실 줄 믿습니다.
- 노화와 질병, 그리고 소망
우리 몸의 노화는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과정입니다. 대개 20대 후반부터 시작하여 조금씩 진행되다가, 30~40대에는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나고, 60대 이후에는 그 속도가 빨라집니다. 하지만 노화의 속도는 사람마다 다르고, 생활습관과 유전적 요인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래서 노화는 정상적인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반면에 질병은 다릅니다. 질병은 감염이나 유전자 이상, 생활습관, 환경 등 특정 원인 때문에 몸의 기능이 손상된 상태를 말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반드시 생기는 것은 아니고, 치료와 관리가 가능한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주름이나 백발은 노화이지만, 고혈압이나 당뇨, 협심증 등은 질병입니다. 물론 노화와 질병의 경계가 모호할 때가 있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한때 노화를 질병으로 분류했다가 다시 제외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치료로 호전될 수 있으면 질병으로 보는 것이 의학적 관점입니다. 저는 이 글을 통해 정기적인 건강 검진의 필요성을 꼭 강조하고 싶습니다. 저 역시 왼쪽 눈의 안압이 높아지는 것을 모르고 지내다가 시야가 손상되고 난 뒤에야 안과를 찾아 녹내장 진단을 받았습니다. 다행히 치료 덕분에 더 이상 진행되지 않고 일상생활도 아무런 불편이 없습니다. 작은 글씨가 잘 안 보이는 것은 노화이지만, 시야가 손상되는 것은 질병이었고, 치료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의학은 심장, 폐, 혈관, 눈, 치아 등 다양한 질환을 조기에 발견하면 충분히 치료할 수 있는 수준으로 발전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님들께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매년 정기적인 건강 검진을 꼭 받으십시오. 무엇보다도, 성경은 나이 들어가는 것을 단순히 쇠퇴로 보지 않습니다. “의인은 늙어도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다”(시 92:14)고 말씀합니다. 또한 “백발은 영화로운 면류관”(잠 16:31)이라 하여, 나이 드는 것을 신앙적 성숙의 증거로 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 몸은 노화와 질병으로 점차 약해지지만,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고, 영원한 나라를 향한 소망은 더욱 커지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몸은 날마다 늙어가고 약해지지만, 주님 안에서 영혼은 날마다 새로워짐을 믿습니다. 건강을 지혜롭게 관리하게 하시고, 질병 가운데서도 주님의 도우심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무엇보다도 우리의 삶이 주님 안에서 영원한 소망을 바라보게 하시고, 나이 들어감이 믿음의 깊어짐으로 이어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