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확신을 가지는 것은 중요합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나서 처음 겪는 혼란 중의 하나가 “내가 정말 구원받았는가?”하는 것입니다. 내가 천국을 갈 수 있는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가? 내 죄가 용서받았는가? 하는 질문은 모두 구원과 관련된 같은 질문입니다. 구원에 대한 의심은 건강한 그리스도인이면 누구가 가질 수 있는 질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영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확신하기를 원하십니다(요일 5:13). 왜냐하면 구원의 확신을 가질 때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가 시작되고 신앙이 성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경우에는 구원의 확신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첫째는 자신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생각으로 행동으로 말로 죄를 짓는 연약하고 부족한 내가 과연 천국에 갈 자격이 있을까? 성경도 잘 읽지 않고 기도도 잘 하지 않는데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자격이 있을까? 내 죄가 용서받았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자신을 보면 그럴만한 자격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구원의 확신이 흔들립니다. 자신이 아니라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과 말씀을 붙들 때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둘째는 감정에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주일예배에서 은혜를 받고, 목장 모임에서 새힘을 얻고 감정적으로 마음이 뜨거울 때, 은혜를 받았을 때는 구원을 받은 것 같지만 감정이 메마르고 냉랭할 때는 구원받지 못한 것처럼 느낄 때가 있습니다. 구원은 선물이며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라는 말씀을 붙들 때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셋째는 성경 말씀을 잘못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구원을 이루어가라.’, ‘구원에 자라가라.’ 또는 ‘구원이 가까웠느니라.’와 같은 구절을 보면서 구원을 아직 못 받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한 히브리서 말씀(히 6:4-6)에는 ~타락하면 그들을 새롭게 해서 회개에 이르게 할 수 없다는 구절을 보면서 구원을 잃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구절들을 해석할 때 기억해야 할 2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문맥 안에서 해석해야 하고,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대상을 확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한 구절만 가지고 결론을 내리지 말고 성경 다른 구절에서는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같이 생각해야 합니다. 만약 문맥 안에서 해석하지 않고 그 구절만 따로 떼어서 생각한다든지, 특정한 대상에게 하는 말을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하는 말로 해석한다든지, 다른 성경 본문에서 뭐라고 말하는지 같이 생각하지 않을 때는 잘못된 결론에 이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면 구원이 보장되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것은 구원파의 주장과 비슷합니다. ‘구원파’는 예수님을 영접하면 무슨 짓을 해도 천국에 간다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나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값없이 선물로 구원을 받은 사람은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롬 6:2). 구원은 개인적으로 나와 하나님만 알 수 있는 부분이 있지만, 구원의 증거가 나타나지 않으면 구원받은 것이 맞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을 수 있으므로 공동체의 관심이기도 합니다. 내가 구원받았는지 의심이 드는 분이 있으시면 매 월 4째주, 토요일 오후 3시에 있는 예수 영접 모임에 참석하시면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