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사랑을 회복하자.”(?)
교회 수련회를 하는 장소에 수련회 주제로 이 표어를 플래카드로 걸어놓은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또는 한 해를 시작하면서 교회 앞에 이 표어를 걸어놓은 모습을 보았을 수도 있습니다. 열심이 식어져가는 교회에 다시 열정을 회복하고 싶은 마음이 잘 나타나있는 표어입니다. 그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우리 교회에는 이 표어를 결코 걸어야 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이 표어는 요한계시록 2장 4절에 근거한 것으로서, 일곱 교회에 보내는 말씀 중 에베소교회에 보내는 말씀입니다. 에베소교회는 칭찬을 받을 만한 교회였습니다. 실제로 요한계시록 2장 2-3절에 에베소교회를 칭찬하는 글이 있습니다. “나는 네가 한 일과 네 수고와 인내를 알고 있다. 또 나는, 네가 악한 자들을 참고 내버려둘 수 없던 것과, 사도가 아니면서 사도라고 자칭하는 자들을 시험하여 그들이 거짓말쟁이임을 밝혀 낸 것도, 알고 있다. 너는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고난을 견디어 내고, 낙심한 적이 없다.” 에베소교회는 이러한 칭찬을 받을 정도로 인내하였고 거짓 사도들을 분별해내는 바른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도 두드러진 은사를 가지고 있거나 애쓰고 수고하며 신앙을 잘 지키는 교회들이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자신들의 높은 수준 때문에 영적 우월감에 빠지기 쉬우며 다른 교인들을 무시하거나 얕잡아보는 실수를 범하기 쉬운 점입니다. 신앙을 잘 지키는 만큼, 인격적으로도 성숙하여 주님의 성품을 닮아가고 성령의 열매를 그 인격 속에 맺어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영적 교만에 빠질 우려가 있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거짓 영들을 잘 분별하는 사람들이 주의하지 아니하면 거짓 영들을 분별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비판하는 습성이 인격이 되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에베소교회의 교인들 중에 그러한 사람이 많이 있었습니다. 거짓 영들을 잘 분별하던 사람들이 다른 성도들까지 비판을 하게 되었습니다. 거짓 영들을 잘 분별하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다른 성도들도 주님께 속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다른 성도들을 비판하다보니 그들에 대한 사랑이 사라지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주님에 대한 사랑까지도 식어지게 된 것입니다. 물론 그들이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때문에 4절에서 에베소교회를 꾸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너에게 나무랄 것이 있따. 그것은 네가 처음 사랑을 버린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처음(첫) 사랑을 회복하자.”는 표어를 걸어놓을 수 있지만, 사실 이 표어는 잘 생각해보면 가슴 아픈 표어입니다. 신앙햇수가 늘어갈수록 주님에 대한 사랑이 깊어가는 것이 바람직한 일입니다. “옛날에는 나도 뜨거웠었는데…” “나도 청년부 때는 회장 했었는데…” “나도 왕년에는 성가대였어.” 이런 말을 하면서 산다면, 이것은 자랑이 아니라 오히려 부끄러운 일입니다.
결혼생활을 생각해 보십시오. “신혼 때가 좋았는데…” 이 말이 신혼 때는 좋았다는 자랑이 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가장 바람직한 일은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갈수록 신혼이야.” “우리가 신혼 때도 지금과 같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공연히 싸움을 했지?”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처음 믿었을 때 지금과 같은 열정이 있었으면, 내가 뭐가 되어도 되었고 무얼 해도 하나는 했을 터인데.” 우리는 이런 믿음의 고백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부부생활이든 믿음생활이든, 우리는 겨우 처음 것을 회복하는 수준이 되어서는 아니 될 줄로 압니다. “처음 사랑을 회복하자!” 대신에, “지금과 같은 사랑이 그때에 있었더라면…”이라는 말을 하면서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