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 중요한 대화(회의)를 진행하는 요령
코로나19 바이러스와 4월 총선을 인하여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이 예민한 상태 가운데 있습니다. 유튜브 방송에서도 자기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공격하기 바쁩니다. 심지어 한 집안에서도 의견이 달라서 가족 간에 긴장 가운데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할 때에 부드럽게 대화를 하거나, 또는 중요한 회의를 진행할 때에 참고가 될 내용을 정리해 드립니다. 그 동안 자주 얘기했던 내용인데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 가능한 대로 배가 고픈 상태에서 대화(회의)를 하지 않는다. 배가 고프면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마음의 여유가 없습니다. 심리학자들도 1차적인 욕구를 식욕이라고 얘기할 정도로, 배가 고픈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운동을 하다가도 배가 고프면 갑자기 짜증을 내는 사람들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회의 마치고 밥 먹으러 가자.” 하고 회의를 하면, 결론을 내리지도 못한 채 중단이 되고, 밥을 먹은 후에 다시 회의를 긴장 가운데 하거나 싸우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2. 시작종을 울리지 않는다.(중요한 회의일수록 일반 대화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안건을 처리한다.) 회사에서나 노회에서나 교회에서 중요한 안건을 처리하기 위해 회의를 시작할 때를 보십시오. 회의시간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공이 울리면, 갑자기 사람들의 얼굴이 긴장이 되고 전투태세를 갖추게 됩니다. 특히 노회에서 회의를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었음을 확인하고자 성찬식을 행합니다. 그리고 탁자 위에 있는 공을 세 번 치며 회의가 시작되었음을 알립니다. 거의 그때부터 싸움이 시작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회의일수록 일반 대화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안건을 처리하면 별 무리 없이 결정되는 수가 많습니다. 가정에서도 “8시부터 나랑 얘기 좀 하자.”고 하면, 기대감이 생기기보다는 긴장을 하며 창과 방패(?)를 준비하기 쉬운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3. 심각한 논제를 다룰수록 단정적으로 표현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한 사람이 심각한 논제에 대해 단정적으로 얘기를 하면, 다음 사람이 다른 의견을 꺼냈을 때 마치 앞에 말한 사람에게 반대를 하거나 싸우자는 이야기로 들리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심각한 논제에 대해 말을 할 때에는 단정적으로 얘기하지 말고 하나의 의견으로 말하는 것이 좋습니다. 한 사람이 의견으로 얘기하면 다음 사람이 다른 의견을 내놓더라도 그저 하나의 의견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대개 서열이 정해져 있는 가정에서 의사소통을 할 때에도 중요한 태도입니다. 더구나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신하는데…”와 같이 하나님의 뜻을 아무 때나 들먹거리면,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을 때 마치 하나님의 뜻에 위배되는 말을 하는 것과 같아서 다른 말을 할 수 없거나 시비가 붙기 쉽습니다. 4. 가능한 대로 긴장되지 않은 분위기에서 대화(회의)를 하면 건강한 결정을 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저는 국제가정교회사역원 이사 중의 한 사람으로서 인터넷 상으로 자주 회의에 참여할 때가 있었습니다. 이사들만의 사랑방에서는 중요한 회의뿐만 아니라, 친목을 도모하기 위하여 적어도 한 달에 두 번은 글을 올려야 합니다. 토의사항과 같이 중요한 안건을 올리기도 하지만, 서로 친해지기 위하여 저는 가끔 싱거운 이야기를 올리기도 합니다. 때로는 긴장된 회의 중에도 웃으면서 유머를 나눌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은 “지금이 웃을 때냐?”고 따지기도 합니다. “그러면 울면서 얘기할까요?” 하고 반문을 하면, “하기는…” 하면서 오히려 여유 있는 마음으로 중요한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Options
- 느헤미야의 심정을 가집시다
요즈음 코로나 19로 인하여 사회가 혼란스럽습니다. 확진자들은 늘어나고 그렇게 된 현실에 대해 책임을 물으며 서로 공격하는 일들이 더욱 우리의 마음을 우울하게 만듭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온갖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같은 사고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잘못을 되짚어보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 우리의 마음가짐도 바르게 해야 할 것입니다. 느헤미야 시대의 일입니다. 에스라의 지도 아래 이루어진 개혁운동의 하나는 예루살렘 성전 재건이었습니다. 반대 세력들은 이에 분노하여 아닥사스다 왕에게 성전 건축을 반대하는 고소장을 올리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무력으로 건축을 중지시키고 성벽을 파괴하며 성문을 불살라 버렸습니다. 이 재난의 소식을 듣고 느헤미야가 가졌던 심정을, 이 시점에 우리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는, 어려움을 당한 분들의 아픔을 함께 합시다. 느헤미야는 수산궁에서 술맡은 관원으로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동족에 대한 지극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신은 편안한 곳에 머물고 있었지만, 거기에 안 주하지 않고 동족들의 형편을 살폈습니다. 예루살렘 성벽이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다 불 타버렸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주저앉아서 울며 슬픔에 잠긴 채로 며칠 동안 금식하며 하늘의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우리도 누구의 잘못을 탓하기 전에 먼저 어려움을 당한 분들을 위하여 아픔을 함께 할 줄 아는 마음을 가져야겠습니다. 둘째는, 우리 자신의 문제로 알고 회개의 기도를 드립시다. 느헤미야는 민족의 일을 자신의 문제로 삼고 슬퍼하였습니다. 그리고 금식하며 기도하였습니다. 그것은 일시적으로 느끼는 슬픔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 문제를 이스라엘 민족의 잘못으로 돌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자신의 집안까지도 죄를 지었다고 회개를 하였습니다. 과연 우리는 보도되는 민족의 아픔을 보면서 회개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셋째는, 이 민족의 회복을 위해 기도합시다.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을 되새기며, 다시 그 약속을 주장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일찍이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셨던 주의 종이요 백성임을 주장하였습니다. 주님을 진심으로 두려워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형통하게 해주실 것을 위하여 느헤미야는 기도했습니다. 70년대, 80년대에 이 땅에 영적 부흥을 일으켜 주시고, 선교하는 나라로 이끌어 주신 하나님께서 다시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이 민족을 사용해 주실 것을 위해서 기도합시다.
- 뱀과 같이 슬기롭고 비둘기와 같이 순결해져라
여러 가지 이유로 정서적으로 탈진이 된 외과 의사와 교제를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정서적으로 힘들어 하던 그는 자주 기도원을 다녀왔습니다. 기도원을 가있는 동안에는 세상일들을 잊어버리고 말씀을 읽거나 기도를 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면서 마음에 평안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와서 삶의 현장으로 들어오면 다시 정서적으로 힘들어 하곤 했습니다. 옆에서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저는 그분에게 질문을 하였습니다. “만일 팔이 부러졌으면 병원에 가시겠습니까, 기도원에 가시겠습니까?” 그분은 당연히 병원에 가야 한다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제가 다시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정서적으로 탈진을 해서 힘이 든다면, 정서적으로 치료를 해야 할까요, 기도원을 가야 할까요?” 그분은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잠시 머뭇거렸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영의 문제와 혼의 문제를 구별하지 못하는 것으로 인해 혼동을 하기 때문입니다. 학자들은 영혼과 육체로 이분설을 주장하기도 하고, 영과 혼과 육으로 삼분설을 주장하기도 합니다. 어느 것이 옳은가를 판단하기보다는 기능상 세 가지로 보면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23에서 바울은 “평화의 하나님께서 친히, 여러분을 완전히 거룩하게 해 주시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여러분의 영과 혼과 몸을 흠이 없이 완전하게 지켜 주시기를 빕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영과 혼과 육을 그릇으로 비유하면 더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육이라는 그릇은 음식과 공기 등을 담는 그릇입니다. 혼은 지식과 감정과 의지를 담는 그릇입니다. 영은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을 담는 그릇이라는 말이지요.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지 않은 상태에 있다면, 그것은 영적인 문제입니다. 그때에는 시간을 정해 놓고 말씀을 읽는다든지, 기도를 함으로써 영적으로 회복을 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문제 가운데 있다면, 영적으로 해결할 뿐만 아니라 감정적으로도 해결을 해야 합니다. 게으름이나 식욕 때문에 문제 가운데 있다면, 영적으로 회개할 뿐만 아니라 부지런함을 개발하고 식탐을 자제하는, 영과 혼과 육의 세 영역을 함께 힘써야 할 때도 있습니다. 학교에서 시험을 보는 학생이나 취직시험을 보는 사람들은 “여러분 가운데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아낌없이 주시고 나무라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그리하면 받을 것입니다.”(야고보서 1:5)라는 약속을 믿음으로 주장하면서,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합니다. 내 머리에 지식과 지혜가 쌓이도록 뱀과 같이 지혜롭게 노력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요즈음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는 코로나 19에 대해서도, 영과 혼과 육의 문제로 접근을 하면 우리가 대처하는 것에 대해 지혜롭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 19는 육체를 괴롭히는 육의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코로나 19에 감염되지 않도록 흐르는 물에 손을 자주 씻거나 마스크를 쓰거나 옷소매로 가리고 기침하는 등, 예방지침을 따르는 것이 필요합니다. 물론 위험으로부터 보호해 주시도록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드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울러 육체적인 건강을 위해서 뱀과 같이 지혜롭게 힘써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우선 손 세정제를 1층과 2층 입구에 비치하여, 교회에 들어올 때에 손 소독을 하도록 했습니다. 가능하면 마스크를 쓰는 것을 권장합니다. 예배 중에도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무방합니다. 인사를 할 때에는 서로 손을 잡고 악수를 하기보다는 접촉을 하지 않고 인사를 하면 좋겠습니다. 목장 모임은 각 목장의 상황과 목장식구들의 의견에 따라 당분간 모임을 가지지 않아도 됩니다. 물론 상황에 따라 변동이 있을 것입니다. 아무튼 서로의 건강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고 건강을 지킬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 자녀들을 위한 기도
세 주 전에 기분 좋은 일이 있었습니다. 3월에 결혼할 계획인 한 쌍의 젊은이가 결혼식 주례를 부탁하려고 저에게 인사를 하러 왔습니다. 남편이 될 형제는 순천의 한 가정교회를 담임하시는 목사님의 아들입니다. 아내가 될 자매는 전주의 한 가정교회를 담임하시는 목사님의 딸입니다. 두 사람 모두 서울에서 직장을 구하여 서울에 거주하면서 다운교회에 출석하고 있습니다. 교역자의 자녀들인 그들을 감정적으로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저의 큰 아들이 목자인 목장으로 안내를 해주었습니다. 그들이 한 목장에서 지내는 중에 마음이 맞은 것입니다. 그들이 저의 아들의 목장에서 생활을 하면서, 저희 집 사정을 제법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신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었던 43살에 교회를 개척한 것,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두 아들의 이야기(첫 예배를 드릴 때 어린 아이들을 포함하여 모두 23명이었는데, 교회에 나오는 분들의 어린 자녀들을 돌보는 일을 주로 했습니다.), 최근에는 두 아들의 가정이 부모인 저희와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는 모습, 교회에서는 목자로서 목장을 이끌어갈 뿐만 아니라 5~6개의 목장의 인도하는 조장으로서 섬기는 모습 등, 그 상황을 하나하나 귀로 듣고 눈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많은 자녀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부모의 곁을 떠나 자유로운 삶을 사는 것을 꿈꾸고 있습니다. 가능하면 부모님의 잔소리를 듣기 싫은 것입니다. 저는 종종 잔소리를 “옳은 이야기를 듣기 싫게 하는 것”이라고 정의를 내립니다. 꼭 이야기를 듣기 싫게 해서가 아니라, 자녀들은 부모님의 이야기를 아무리 옳은 말이라 할지라도 듣기 싫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서부에서 자란 자녀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부모 곁을 멀리 떠나 동부로 대학을 가는 것이 꿈이라는 말을 여러 차례 들었습니다. 아마 저에게 결혼 주례를 부탁하기 위해 온 형제자매도 비슷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우리 아들들 가족이 저희와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면서 자주 우리 집을 드나드는 이야기, 우리와 휴가를 같이 보내는 이야기, 같은 교회에서 목자와 조장으로 섬기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조금씩 감동이 되었던가 봅니다. 저와 결혼식 순서를 짜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던 끝에 형제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저도 할 수만 있으면 순천에 직장을 구해서 부모님 댁 근처에 살면서, 아버지가 담임을 하시는 교회에서 목자로 섬기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제가 재미있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면 좋지. 아마 시어머니가 되실 분이 착하고 명랑하셔서 가능할 거야.” 지난 목요일 대전에서 가정교회를 하시는 목사님들의 모임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형제의 부모님을 만났습니다. 아드님이 나에게 위와 같이 마음을 나누었는데 그 이야기를 부모님에게도 했느냐고 물었습니다. 나에게 말한 것과 똑같이 부모님에게도 자기의 마음을 나누었다고 하더군요. 그러니까 그 고백이 진심에서 나온 고백인 것이 분명합니다. 저는 지금도 그 형제의 고백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습니다. 먼저 저희 아들들이 저와 같은 교회(지금은 제가 행복한제자교회의 담임목사가 되어 있지만)에서 ‘영혼 구원하여 제자 삼는 사역을 함께 하고 있어서’ 기분이 좋습니다. 또한 근처에 살면서 친밀하게 지낼 수 있어서 기분이 좋습니다. 지금도 저희가 서울에 있는 동안에는 일정 시간을 손주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아이들과 놀아준다고 말하는데, 손주들은 자기들이 할아버지와 놀아준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울러 많은 젊은이들의 생각이 바뀌어서 저희 가정의 모습을 닮으려고 하는 일이 있어서 기분이 좋습니다. 우리 행복한제자교회의 자녀들도 저희의 모습을 닮으려고 애쓸 수 있는 가정들이 많이 생겨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기도합니다.
- VIP(구원 받으셔야 할 매우 중요한 분)들을 위해
다운교회 초원지기 한 분이, 목자가 쓴 목장일기에 코멘트를 했던 내용인데, 매우 감동적이어서 이곳에 옮겨놓았습니다. “친구인 VIP들을 위해 애쓰고 기도하는 것이, 조지 뮐러의 기도처럼, 마침내 결실을 맺을 날이 있을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그는 자신과 매우 친한 친구 다섯 명의 구원을 위해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5년 후에 한 명이 주님을 영접하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10년 후에 두 명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는 나머지 두 명을 위해 25년을 기도했습니다. 25년째 되던 해, 네 번째 친구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또 한 명의 친구를 위해 뮐러는 12년을 기도했습니다. 12년째 되던 해 뮐러는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그는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친구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뮐러가 죽은 뒤 나머지 한 친구도 마침내 주님 앞으로 돌아왔습니다. 친구 다섯 명이 주님 앞으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 뮐러는 평생 기도한 것입니다. 나도 한 친구를 위해 대학 다닐 때 무척 애를 쓴 기억이 있습니다. 주일마다 찾아갔고 평일에도 자주 그의 하숙집을 방문했습니다. 내가 전하는 복음에 늘 코웃음치고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다 우린 졸업하고 헤어졌습니다. 그 후 10년이 지난 어느 날, 그가 나를 수소문한 끝에 찾아서 전화를 했더군요. 나에게 고맙다고… 어쩌다 예수 믿는 아내 만나서 신앙생활 잘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복음 전하는 것은 시급성을 요하는 일이지만 때론 지루한 승패를 알 수 없는 전쟁과도 같습니다. 전쟁에서 끝까지 버텼더니 이겼다는 말도 있습니다. 인내의 결과지요.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않으면 때가 이르면 거두리라.’(갈 6:9)는 말씀처럼 포기하지 말고 인내하며 구원의 시간을 더 길게 잡고 끝까지 기도하면 마침내 거둘 것입니다.” 저에게도 이런 경험이 여럿 있습니다. 사실 제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도, 친구인 방선기 목사가 제가 믿을 때까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7년간이나 같이 해준 열매였습니다. 더구나 저는 예수 믿는 사람을 극도로 싫어했고, 방선기 목사에게 선교회에 가지 말고 저와 함께 있기를 여러 차례 요구하기도 했었습니다. 끝내는 제가 과외공부 시킬 학생들을 교회 벤치에서 소개해주는 바람에 저는 교회에 첫발을 내딛게 되었고 결국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저는 같은 전공 친구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친구는 얼마나 입이 거칠고 욕을 잘하는지 다른 친구들은 그에게 “똥자루”라는 별명을 붙여주기까지 했습니다. 그가 복음을 받아들일 것은 기대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그가 독일로 출장을 가있는 동안에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그와 헤어진 지가 20년쯤 되었을 때에 그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독일에 있는 동안에 주님을 믿게 되었다는 말과 아울러, “믿고 나니 네 놈부터 생각이 나더라.”며 여전히 거친 말투로 인사를 했습니다. 지금은 지방에 있는 연구소에서 일하면서 교회의 장로가 되어 열심히 성도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가끔 서울에 올 때이면 저에게 꼭 저녁 대접을 하고 내려갑니다. 꾸준히 목장모임을 가지면서 VIP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목장에 VIP들을 보내주시며, 그들이 구원받는 역사를 통해 목장에 큰 활력을 주실 것입니다.
- 창조과학 탐사 후기
수년 전 국제가정교회 사역원의 이사회는 창조과학 탐사를 함께 하면서 이사회를 진행하였습니다. 많은 이사회들이 이름만 걸어놓는 경우가 많은데, 가사원의 이사들은 서로 잘 알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자 이사회와 창조과학 탐사를 병행하였습니다. 창조과학 탐사를 인도해준 창조과학선교회는 초교파선교단체로서, 창조과학 탐사는 하나님의 창조손길과 성경대로 행하신 사실을 눈으로 보고 배우기 위해 개발된 창조과학선교회 고유의 프로그램입니다. 저는 지질학이나 생물학 전공자가 아니기 때문에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진화론자들도 인정하지 않는 많은 내용들이 지금도 교과서에 그대로 실려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내용들이 아직까지 우리의 세계관에 진화론적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일차적으로 인간과 원숭이류 간에 공통 조상이 존재하는가의 문제는 우리가 늘 가지고 있던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사람들을 진화론자들은 동물 중의 하나로 전락을 시켜버렸습니다. 나체주의, 동성연애, 가정파괴, 인공낙태, 공산주의, 나치즘, 뉴에이지, 인간복제 등의 문제와 최근에는 학원폭력 사태도 이와 같은 사고에서 비롯된다고 생각이 됩니다. 이 모든 일들은,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귀한 인격체라는 사실을 안다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들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닮게 지어진 귀한 인격체이며, 피조물들은 인간의 다스림을 받는 대상들입니다. 창조자이신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때부터 사람들에게는 많은 문제들이 생기게 됩니다. 한 풀이, 육체적 학대, 허무함 등의 문제가 생기고 결국은 우상을 만들고 그것을 숭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창조과학 탐사를 하면서 한 가지 분명히 확신하게 된 것이 있습니다. 세상의 학문은 계속해서 변해가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변함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성경의 사실을 반박하는 학문은 변해가고, 하나님의 말씀은 점점 사실로 확인되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연과학자들이 풀지 못하는 문제들도 성경의 기록대로 창조와 홍수 심판을 믿으면 얼마든지 해결될 수 있는데, 세상의 과학자들은 굳이 스스로 문제를 풀어보려고 수고하고 있습니다. 화석을 하나의 예로 들면, 생물은 죽으면 얼마 되지 않아서 박테리아에 의해 분해되어 형체를 잃어버리지만, 화석들은 세밀한 모습까지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생물들이 살아있을 때 아주 빠른 속도로 매몰되어야만 그러한 화석으로 보존이 가능합니다. 이것은 성경에 있는 대로 노아의 홍수만 인정을 하면 금방 해결되는 문제입니다. 전에는 그랜드캐년이나 자이언캐년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만드신 작품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감탄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인간의 범죄로 말미암아 주어진 홍수 심판에 의해 생겨난 것들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심판을 받은 모습이 이렇게 아름답다면, 죄가 들어오기 전의 모습은 얼마나 더 아름다웠을까?”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홍수 심판을 받기 전에는 지금과는 달리 좋은 환경에서 공룡과 같은 큰 동물들도 살 수 있었으며, 사람의 평균 수명도 길었으리라는 것을 우리는 금방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들은 두란노서원에서 출판된 “창조과학 콘서트”, “노아홍수 콘서트”, “빙하시대 이야기”를 읽어보거나, 인터넷에서 ‘이재만선교사’의 강의를 들을 것을 권해드립니다.
- 끊임없이 쇄신하라. (성공하는 사람들의 좋은 습관 7)
숲길을 산책하고 있는데 열심히 나무를 베고 있는 사람을 만나 대화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뭐 하고 있어요?” “나무 베는 중이오.” 그가 퉁명스럽게 대답했습니다. “언제부터 베고 계시는데요?” “네 시간쯤 됐는데, 이제 다 돼 갑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그가 대답했습니다. “톱날이 무뎌 보이는데, 좀 쉬면서 톱날 좀 갈고 하시지 그래요?”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톱질하기도 바빠 죽겠는데 무슨 바보 같은 소리요?” 진짜 바보가 누구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15분 정도만 시간을 내서 톱을 갈았다면, 이 사나이는 세 배쯤 빨리 일을 끝마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연료(기름) 넣을 시간이 없다고 연료도 넣지 않은 채 고속도로에 들어서는 어리석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자신을 돌아볼 기회도 가지지 못할 정도로 바빠 본 적이 있지는 않으십니까? 습관 7은 더 나은 생활을 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연마하는 것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즉, 생활의 네 가지 중요한 활동을 신체, 지성과 감성, 사회성, 그리고 영성과 관련된 활동으로 나누어 이것을 정기적으로 쇄신하고 강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삶의 네 요소를 골고루 갖추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어떤 한 영역에 속하는 일은 다른 영역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균형을 이루는 것은 중요합니다. 몸이 피곤할 때는 친구도 귀찮아집니다. 다른 사람과 사이가 나빠지게 되면 하나님과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예수님의 성장 과정을 보면 균형 잡힌 성장을 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누가복음 2:52) 신체가 건강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좋은 음식 먹기, 목욕, 운동(걷기, 자전거 타기, 역기 들기, 스트레칭, 에어로빅 등), 충분한 수면이 있습니다. 그리고 몸에 해로운 것들에 대해서는 유혹을 이기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지적능력과 감성을 계발하는 데 좋은 방법은: 신문 구독, 여행, 전공 공부, 장기나 바둑, 토론, 교육방송 시청, 도서관 다니기, 친구와의 깊은 대화, 퍼즐 풀기, 관심 있는 강좌 듣기 등이 있습니다. 가능한 자신의 적성을 찾아서 그와 연관된 핵심역량을 키우는 것이 좋습니다. 세상에는 할 일들이 많지만, 자신이 잘 할 수 있고 좋아하며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끼칠 수 있는 일에 집중할 수 있으면 제일 좋습니다. 사회성을 계발하는 좋은 방법은: 약속 지키기, 친절한 행동, 충실하기, 경청하기, 미안하다고 말하기, 정직, 합리적인 기대 등이 있습니다. 특별히 웃음이 보약입니다. 웃음은 신체적인 건강이나 감성을 계발하는 데도 좋지만 대인관계에는 특별히 보약입니다. 웃음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좋게 해주며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격려해주는 좋은 방법입니다. 영성을 계발하는 좋은 방법은: 날마다 주님과의 교제(Q. T.), 정기적인 기도생활, 필요할 때마다 기도, 경건서적 독서, 깊이 생각하기, 산책, 봉사활동, 일기 쓰기, 종교 활동, 자신의 목표를 생각해보기, 명상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네 가지 영역에서 목표(Objectives)를 세우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필요한 활동들(Activities)을 생각하여 시간표(Timetable)를 작성해서 실천하면 자신을 계발하고 끊임없이 쇄신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 시너지를 활용하십시오. (성공하는 사람들의 좋은 습관 6)
[1월 12일]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작습니다. 함께 할 때, 우리는 큰일을 할 수 있습니다.” 헬렌 켈러가 한 말입니다. 철새들이 겨울이면 V자 모양으로 떼를 지어 남쪽으로 날아가는 것을 본 것이 있을 것입니다. 새들이 그렇게 이동하는 데는 굉장한 이유들이 숨어있습니다. 떼를 지어 다님으로써, 한 마리씩 따로 이동할 때보다 71%정도 빨리 이동할 수 있습니다. 앞에 있는 새가 날개를 움직일 때 발생하는 공기의 움직임이 뒤따르는 새들의 비행을 더 쉽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선두에 선 새가 지치면, 그 새는 V자의 맨 끝으로 이동하고 다른 새가 선두에 섭니다. 뒤에 있는 새들은 소리를 내어 앞의 새들을 독려합니다. 대열에서 낙오한 새는 혼자 나는 것이 싫어서 재빨리 합류합니다. 한 마리가 아프거나 다쳐서 대열에서 낙오하면, 다른 두 마리가 같이 떨어져 나와 다친 새를 보호하고 도와줍니다. 얼마나 영리한 새들입니까! 시너지란, 한 마디로 말해서, ‘더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여러 사람이 함께 일할 때 발생하는 것’입니다. 시너지는 상호이익을 모색하는 습관이나 경청하는 습관을 실천하였을 때 얻을 수 있는 달콤한 열매와 같은 것입니다. 시너지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어떤 것이 시너지가 아닌지를 살펴보면 좋습니다. 시너지가 그냥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의 과정으로, 거기에 이르기 위해서는 차이를 존중하는 방법을 먼저 배워야 합니다. 세상에 온통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만 있고, 모두 같은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어서 다행입니다. 다양성이란 참 좋은 것입니다. 차이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다양성을 환영합니다. 이들은 서로 다른 사람이 모이면, 비슷한 사람이 모였을 때보다 더 많은 것을 이루어낼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보기에 차이는 곧 창의력의 근원이고, 그런 의미에서 기회입니다. 시너지를 내는 데 방해가 되는 것들이 많은데, 그 중에서 가장 나쁜 것은 무관심과 편가르기, 그리고 편견입니다. 차이라는 것이 약점이 아니라 장점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시너지는 단순한 타협이나 협동이 아닙니다. 타협을 하면 1+1=1.5가 됩니다. 협동을 하면 1+1=2가 됩니다. 그리고 시너지를 활용할 때는 3이상이 됩니다. 그것은 창조적인 협동입니다. 시너지를 활용할 때 전체는 부분들의 합 이상이 됩니다. • 훌륭한 팀워크는 좋은 음악과 비슷합니다. 다양한 목소리와 다양한 악기들이 동시에 연주되지만, 그것들은 서로 경쟁하지 않습니다. 하나하나 살펴보면 목소리와 악기들이 모두 다른 소리를 내지만, 그들이 함께 모여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시너지입니다. Options
- 경청한 다음에 이해시키십시오. (성공하는 사람들의 좋은 습관 5)
[1월 5일] 의사소통에 있어서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게 하는 핵심을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경청한 다음에 이해시켜라.” 다른 말로 하면, “먼저 듣고, 나중에 말하라.”입니다. 이것이 습관 5입니다. 야고보서 1:19은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라고 권면합니다. 이 단순한 습관을 익히고 나면, 스스로의 생각을 말하기 전에 문제를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게 되어, 남을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이 다섯 번째 습관이 의사소통의 핵심이 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해를 받고 싶은 마음이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욕구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남들과는 다른, 자기 자신의 모습 그대로 평가받고 존중받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진정한 사랑이나 이해를 받기 전에는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습니다. 하지만 일단 마음이 열리면, 그 다음에는 상대방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하는 말을 경청해야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청하는 방법을 모른다는 데에 있습니다. 남을 말을 듣는 태도 중 전형적인 잘못된 버릇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멍하니 있는 것입니다. 마음이 전혀 다른 세계를 떠돌고 있어 다른 사람의 말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듣는 척만 하는 것입니다. 말하는 사람에게는 관심이 없고 건성으로 “그래서” “그렇지” 하며 맞장구를 쳐줌으로써 듣고 있는 척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골라서 듣는 것입니다. 대화 중에 관심 있는 부분만 집중해서 듣는 것을 말합니다. 넷째는, 단어만 듣는 것입니다. 집중해서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는 하지만 표정이나 몸짓, 감정을 놓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경우에 상대방의 말에 들어있는 숨은 뜻을 알 수 없고, 결과적으로 정말 말하려는 바가 무엇이었는지 모르게 됩니다. 다섯째는, 자기중심적으로 듣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관점에서만 모든 것을 바라볼 때 일어납니다.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볼 생각은 하지 않는 것입니다. 진정한 의사소통으로 이끌어주는 더 높은 수준의 듣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눈과 마음, 그리고 귀를 이용해 듣는 것입니다. 귀만 가지고 들어서는 안 됩니다. 의사소통 과정에서 단지 7%만이 단어를 통해 전달된다는 것을 아십시오. 나머지는 몸짓(53%)이나, 어조와 목소리를 통해 느껴지는 감정(40%)을 통해 전달됩니다. 둘째,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바라보십시오. 제대로 들으려면, 자기의 관점을 떠나 상대방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상대방의 관점에 서서 사물을 보고, 그들이 느끼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하십시오. 셋째, 내용을 재정리해 주십시오. 내용을 정리한다는 것은 상대방의 말과 감정을 자기 말로 다시 한 번 정리해보는 것을 말합니다. 단, 진정으로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마음도 없으면서 상대방의 말을 재정리하는 시늉만 하면, 상대방은 그것을 알아차리고는 자신이 조종 받고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제 이해시키도록 하십시오. 일단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였다면, 스스로를 이해시키는 것도 훨씬 쉬워집니다. 귀는 두 개지만, 입은 하나뿐인 것을 꼭 기억하십시오.
- 상호이익을 모색하십시오.(성공하는 사람들의 좋은 습관 4)
[12월 29일] 상호이익을 모색하는 태도는 승/승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즉 나도 이기고 남도 이길 수 있다는 자세를 가지고 삶을 대하는 것을 말합니다. ‘나 아니면 너’가 아니라 ‘둘 다 함께’인 것입니다. 승/승을 추구하는 것은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기초 돌입니다. 그런데 요즈음의 경쟁사회는, 모두 다 승자가 될 수는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 같습니다. 인생은 원래가 평등한 것이지, 경쟁이 아닙니다. 항상 남보다 앞서야 하고, 시험에서 항상 95점 이상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상호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승/패가 아니며, 패/승도 아닙니다. 물론 패/패도 아닙니다. 승/패적 생활태도는, 파이 크기는 똑같은데 남이 먹어버리면 내가 먹을 양이 줄어드니까, 남이 먹기 전에 내가 먹을 것을 더 많이 챙기겠다는 태도이고, 이것은 곧 경쟁적인 태도입니다. 자연히 남보다 좀더 높은 위치에 오르기 위해서라면, 좋지 못한 방법도 불사하겠다는 마음 상태가 되기 쉽습니다.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관계도, 우정도, 신뢰도 다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승/패의 태도는 자존심으로 가득 찬 생활태도입니다. 패/승을 바라는 태도는 약한 모습입니다. 남들에게 밟히는 것을 통해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듣기는 쉽습니다. 쉽게 굴복하고, 좀처럼 싸우지 않고, 자기의 생각을 잘 말하지 않고 그저 시키는 대로만 하는 일은 모두 쉬운 일입니다. 이런 생활태도를 가지고 있으면, 다른 사람에 대한 낮은 기대만을 하게 되고, 스스로의 기준은 자꾸 낮추어가게 됩니다. 패/패를 바라는 사람은 끝없는 추락을 하게 됩니다. 혼자 비참해지지 않겠다는 심보입니다. 전쟁이 아주 좋은 예입니다. 전쟁에서는 다른 사람을 많이 죽여야 승리할 수 있는데, 그것을 진정한 승리라고 할 수 있을까요? 복수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수를 통하여 이겼다는 기분이 들 수도 있지만, 결국 당하는 것은 자기 자신뿐입니다. 승/승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같이 승리할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멋진 모습이긴 하지만 힘든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은 배려해 주고 그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동시에, 스스로에 대해서도 신경을 쓰고 성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성공에 이르는 길은 아주 다양하다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승/승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개인의 승리를 거두어야 합니다. 모든 것은 자신에게서 나옵니다. 극도로 불안정한 상황에 처해 있어서 개인의 승리를 추구하기에 급급한 상황이라면, 승/승을 생각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둘째로, ‘경쟁’과 ‘비교’가 있는 곳에서는 상호이익을 생각하기 어렵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바울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주의를 주었습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빌립보서 2:3) 승/승을 추구하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닙니다. 정말 승/승을 추구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알아보는 척도는 바로 자신이 느끼는 기분입니다. 승/패나 패/승의 태도를 가지고 관계에 임하면, 기분이 별로 좋지 않기 마련입니다. 반면에 승/승을 추구하는 태도는 마음을 한없는 기쁨으로 가득 채워주게 됩니다. 그것은 확신을 주는, 더 나아가 어떤 빛을 던져주는 생활태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