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 한 해를 보내면서 감사할 제목
[12월 22일] 2019년 한 해를 몇 주 남겨두고 한 해 동안 감사제목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먼저 개인적으로, 말씀을 읽는 맛을 누렸습니다. 거의 매주 부산을 오가면서 성경을 읽을 시간을 많이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오래 전에 수원에 살면서 서울로 출퇴근을 하던 생각이 납니다. 전철로 출퇴근을 하면서, 출근길에는 성경을 읽고, 퇴근길에는 암송복습을 풍성하게 했었습니다. 금년에는 KTX로 서울과 부산을 오가면서 바로 그와 같은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2019년을 위한 기도제목과 다짐을 보니, 일 년에 성경을 두 번 읽는 것이었는데, 덕분에 네 번을 읽을 수 있는 은혜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가정적으로는, 첫째 며느리가 셋째 아이를 5월초에 낳는 덕분에 다섯 아이의 할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서울에 올라와 있는 동안에, 아이들 유치원을 차로 태워다주는 도움을 줄 수 있었고, 일정 시간을 내어서 아이들과 놀아주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두 아들이 우리와 함께 모두 한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저녁이면 함께 식사를 하고 아이들의 율동을 곁들인 예배를 드리는 맛이 쏠쏠합니다. 목요일이면 헤어졌다가 월요일에 다시 만나기 때문에 그 맛이 더했던 것 같습니다. 교회생활은, 2월부터 행복한제자교회 담임목사로 섬기는 은혜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생각해 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됩니다. 그야말로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자기 비전과 꿈’을 가지고 있으면 그 비전과 꿈에 매이는 삶을 살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다고 장래에 대한 아무 생각 없이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비전과 꿈보다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며 최선을 다하는 삶이 훨씬 값진 삶이라는 것입니다. 행복한제자교회를 섬기는 것이 바로 그 좋은 예입니다. 금년 1월까지도 전혀 저의 계획에 없던 일이었습니다. 교회의 두 분이 저를 찾아와 교회 상황을 얘기하시는 동안에, 하나님께서 저를 부산으로 보내시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내를 설득하기보다는,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면 아내에게도 동일한 마음을 주세요.’ 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아내에게도 동일한 생각을 주셨고, 그 결과 지금까지 부산에서 섬기게 되었습니다. 저는 교회가 공원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었고, 아내는 교회 주위에 아파트가 많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자주 했었습니다. 그런데 두 가지 마음의 소원이 다 이루어진 것도 재미있는 일입니다. 교회 안에서 섬기는 일이든, 교회 밖에서 전도를 하는 일이든, 겁내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형제 자매들의 모습이 저희에게는 큰 힘이 됩니다. 늘 말씀드린 대로 각 나이마다 다섯 명의 성도들을 주시기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다운교회에서는 각 나이마다 열 명의 성도들을 주시도록 기도했는데 지금 그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언젠가는 우리 교회도 그 목표를 두고 기도하게 될 것이 기대가 됩니다. 사회적으로는 국가를 위해 가장 많은 관심을 가지고 기도했던 한 해였습니다. 국민들이 한 마음이 되는 일과, 나라의 안보와 경제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삼국이 통일된 나라이어서인지, 당파싸움을 해왔던 전통 때문인지, 단일민족이어서 다양성을 잘 인정하지 못해서인지, 우리 국민은 하나 되기가 어려운 민족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입니다. 게다가 국제 상황까지 맞물려 안보에 대해 염려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젊은이들은 취업난으로 힘들어하고, 많은 경제인들이 힘들어하는 뉴스를 자주 접하다보니 나라를 위해 기도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현재까지는 우리나라처럼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하며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나라도 흔치 않습니다. 그것도 감사제목입니다.
- 바로가 이스라엘을 내보내지 않는 단계
[12월 15일] 출애굽기 말씀을 보면서, 바로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내보내지 않는 단계를 보면, 제가 예수님을 믿는 과정에서 저희 가족들이 저를 대했던 단계와 매우 비슷함을 느끼게 됩니다. 1. 나는 주를 알지도 못한다.(5:2)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나가려는 모세와 아론에게 바로가 한 질문은 “그 주가 누구인데, 나더러 그의 말을 듣고서, 이스라엘을 보내라는 것이냐?”였습니다. 한 마디로 뿌리를 부인한 것입니다. 아마 집안에서 처음 하나님을 믿는 분들은 가족들로부터 “하나님? 하나님이 어디 있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을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면 잘 믿지 못합니다. 사실 눈에 보이는 것은 믿을 필요도 없는데 말입니다. 2. 게을러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러 가게 해 달라고 하면서 떠든다.(5:8) 이스라엘 사람들이 쓸데없는 생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는 벽돌을 만드는 데 쓰는 짚을 더 이상 이전처럼 대주지 말고 직접 가서 짚은 모으되 벽돌 생산량은 이전과 같게 하도록 했습니다. 제가 처음 믿을 때, 많이 들었던 얘기가 생각납니다. “이제 살 만 한가보다.” 하나님은 결코 시간이 많은 사람이 찾는 하나님이 아닌데 말입니다. 3. 이 땅 안에서 너희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라.(8:25) 바로는 자기들이 중요한 노동력으로 사용하고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을 잃고 싶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이 정도 허락을 받은 것에 대해 타협하지 않고, 단호하게 대꾸를 하였습니다. “이 땅 안에서는 제사를 드릴 수 없습니다.” 제가 예수님을 믿은 후 선교단체의 학생들과 훈련관에서 살려고 할 때, 부모님께서 하셨던 말씀이 기억납니다. “너는 집 놔두고 어디 가서 살려고 하니? 그냥 집에서 해, 아무 소리 안 할 테니까.” 4. 그러나 너무 멀리는 나가지 말라.(8:28) 네 번의 재앙이 있은 후에 바로의 마음이 조금 움직였습니다. 그래서 바로는 이스라엘을 내보낼 마음은 먹었지만, 아주 떠나보내기는 싫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자기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는 부탁까지 했습니다. 이럴 때 타협할까 하는 유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이 단계에서 저는, “너무 광적으로 믿지는 말라.”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5. 가려면 너희 장정들이나 가서(10:11) 여덟째 재앙인 메뚜기 소동이 있을 것을 들은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이 예배를 드리러 가는 것은 허용했지만 어린 아이를 비롯하여 모두 갈 뿐만 아니라 양과 소도 몰고 가는 것은 허용을 하지 않았습니다. 바로의 말대로 하면, 다시 돌아올 것은 뻔한 일입니다. “신학교도 나오지 않은 사람이 왜 난리냐? 아주 신학교를 가든지.” 제가 많이 들었던 말입니다. 6. 양과 소는 두고 가라.(10:24) 아홉째 재앙인 짙은 어두움이 사흘 동안 이집트 온 땅을 덮었습니다. 사람들은 서로 볼 수도 없었고, 제자리를 뜰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자 바로가 모세를 불러들여서, “너희는 가서 주께 예배하여라.”고 허락을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양과 소는 남겨두어야 한다고 명령하였습니다. 우리의 시간과 모든 노력을 들여서 얻는 열매가 경제권입니다. 그러므로 경제권을 넘겨주면 결국은 모든 것을 넘겨주게 됩니다. 우리의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 나(이경준 목사)의 구원 간증
[12월 8일] 1. 이전의 생활 전통적으로 유교적인 집안에서, 절에 열심히 다니시는 할머니와 함께 때마다 절에 다니며 무속신앙 분위기에서 자랐습니다. 당시에는 성당에 다니면서 제사를 지내지 않는 큰 형님, 어머니 돈을 세 차례나 떼어먹은 교회 여집사 때문에 성당에 다니는 천작쟁이나 교회에 다니는 예수쟁이를 심히 좋아하지 않는 집 분위기였습니다. 고등학생일 때 입시준비를 하면서 인생의 의미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별 의미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공군사관학교에 전투비행기 조종사가 되어 멋있게 날다가 장렬하게 인생을 끝내는 것을 꿈으로 가지기도 했었습니다. 2. 예수님을 믿게 된 과정 대학교에 들어간 후 선교단체에서 나온 사람들로부터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에 대해 매우 심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던 저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로마서 3:23을 읽게 하고는 내게 죄인이라고 하는 전도 자세에 대해 더욱 반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1학년 겨울방학, 과외공부를 시키며 학비를 벌어야 했던 저는, 성도교회 마당에 있는 벤치에 앉아 내가 가르칠 학생들을, 교회에 다니는 친구로부터 소개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답례로 교회에 다녀주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교회에 다니며 느낀 것은 무엇보다 절 문화보다 좋았습니다. 친구를 따라 선교회에 나가 성경공부, 성경암송을 하기 시작했고, 수련회에 참석했다가, “경준이, 구원 받았나?” 하는 질문을 받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 질문이 계기가 되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이 나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요한복음 1:12 말씀에 근거하여 예수님을 내 마음에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3. 예수님을 믿은 후의 변화 예수님을 영접하고 나니, 내가 돌을 얹으며 소원을 빌었던 돌무더기가 그렇게 보기 싫을 수가 없었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것이 좋았습니다. 시간만 나면 교회에 가서 살았던 기억이 납니다. 토요일이면 교회에 가서 잤던 기억도 납니다. 복음을 전하는 친구들이 부러워서, 복음 전하는 법을 얼른 배워서 1년 후배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선교단체를 만나 기본적인 삶들을 훈련 받은 것이 나에게는 큰 유익이 되었습니다. 네비게이토출판사를 거치면서 의지적인 신앙생활에 지성적인 신앙생활이 더해졌고,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며 감성적인 신앙생활도 발전되고 있습니다. 목적과 목표 중심의 삶에서 사랑하는 마음이 자라고 있습니다. 4. 앞으로의 생활 하나님께서 성도들 각자에게 주신 은사가 무엇인지 발견하도록 도와주며 그들이 하나님께 쓰임 받도록 해주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제자란, 하나님께서 본래 인간을 만드신 그대로를 회복한 삶을 사는 사람이라고 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것을 아는 건강한 자아상, 남자와 여자를 만드신 대로 건전한 가정관, 그리고 건실한 직업관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심히 좋았더라.” 하시도록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고자 합니다. 그리고 먹을 것이 없는 사람에게는 빵을, 윤리의식이 없는 사람에게는 윤리를, 영이 죽어있는 사람에게는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 것입니다. 어찌하든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 삼는 일”에 드려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2:52처럼, 예수님을 닮은 삶을 살고자 합니다.
- 관계 은행계좌
[12월 1일] 사람들이 죽음을 맞이한 순간, 그동안 일을 적게 했다고 후회하는 사람은 없고, 많은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과 더 긴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한 것을 아쉬워한답니다. 그렇습니다. 중요한 것은 관계이고, 삶은 관계로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인간관계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먼저 스스로를 잘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이 관계에서 중요한 축이 되기 때문입니다. 개인의 승리를 쟁취한 사람, 즉 오늘 설교에서 말씀드린 습관 1-3을 잘 실천한 사람은 의존적이 아니라 독립적인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나는 내 행동에 책임을 질 것이며, 내 운명은 스스로 개척해 나갈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개인 은행계좌가 든든한 사람입니다. 관계 은행계좌도 일반 은행계좌와 비슷합니다. 저축을 통해 관계를 개선할 수도 있고, 인출을 해서 관계를 약화시킬 수도 있는데, 튼튼하고 건강한 관계는 오랜 기간을 두고 꾸준하게 저축한 결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나빠진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까요? 간단합니다. 한 번에 하나씩 차근차근 하는 것입니다. 1. 약속 지키기: 신뢰를 쌓는 데는 작은 약속 하나하나를 모두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기로 한 일은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반드시 해야 합니다. 약속은 여유 있게 하고, 일단 한 약속은 최선을 다해서 지켜야 합니다. 피치 못할 사정이 있으면, 그 이유를 충분히 납득시켜야 합니다. 약속을 지키려고 애쓰고 있는 모습을 진지하게 보여주면 모든 잘 풀립니다. 2. 친절한 행동: 하루 종일 일이 안 풀려서 시무룩해 있는데, 난데없이 누군가가 듣기 좋은 말을 해줘서 다시 기분이 좋아지는 때가 있습니다. 가벼운 인사나 쪽지, 미소, 칭찬, 안아주고 다독거려 주는 것 같은 작은 일들이 그런 차이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황금률을 따르십시오. 다른 사람이 나에게 대해 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대로 다른 사람을 대하십시오. 3. 신뢰감을 주는 행동: 남들에게 충실하게 행동하는 것은 관계 은행계좌에 저축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특히 그 사람이 없는 자리에서 충실하게 행동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충실한 사람은 비밀을 지킬 줄 압니다. 충실한 사람은 없는 사람 흉을 보지 않습니다. 당사자가 없는 자리에서 그 사람에 대해서 흉을 보는 것은 자신에게 손해가 돌아옵니다. 4. 경청하기: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 주는 효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의 말을 경청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밥이 중요한 만큼, 경청해 주는 사람도 중요합니다. 경청해 주는 곳에서 엄청난 우정이 솟아납니다. 5. 미안하다고 말하기: 소리를 질렀거나, 과장된 행동을 했거나, 실수를 했을 때,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가 적자난 은행계좌를 복구시킬 수 있습니다. 살다보면 실수는 하게 마련입니다. 자존심을 죽이고 용기를 내어 때마다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습관을 들이도록 하십시오. 6. 합리적인 기대: 신뢰를 쌓아가기 위해서는, 막연한 암시를 하거나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됩니다. 솔직히 말하면 두 사람 다 편해질 수 있는 일이 많습니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십시오. 사실에 바탕을 두고 합리적인 기대를 하는 것을 통해 신뢰를 쌓아 가십시오.
- 소중한 것부터 먼저 하십시오 (성공하는 사람들의 좋은 습관 3)
[11월 24일] “할 일은 많은데 시간은 없다!” 이런 말을 들었을 때, ‘어쩌면 내 심정을 이렇게 잘 표현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으십니까? 학생들도 그렇습니다. 수업이 끝나면 보충수업을 해야 하고, 그 뒤에는 또 학원에 가야합니다. 내일 있을 시험 준비도 해야 합니다. 친구에게 전화도 해야 하고, 운동도 해야 합니다. 방 정리도 해야 하는데,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릅니다. 이러할 때, ‘소중한 것부터 먼저 하라’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 습관은 우선순위를 정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고, 소중한 일을 가장 먼저 할 수 있도록 시간표를 짜는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표를 짜는 것 이상의 무엇이 있습니다. 목표나 좋은 생각들의 목록을 잘 만드는 것은 그래도 쉽게 할 수 있지만,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것, 즉 소중한 것을 먼저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긴급함에 중독된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긴급함이 꼭 나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급한 일에 쫓긴 나머지, 중요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급하지 않다는 이유로 그것을 미루는 데 있습니다. 보고서를 미리미리 준비한다든지, 친구에게 편지를 쓴다든가 하는 일들입니다. 급한 일이란, 전화, 참견, 여기저기 들르는 것, 마감일, 다른 사람이 부탁해온 일 등입니다. 중요한 일을 미루다가 급하게 하다보면, 항상 일이 산더미처럼 쌓이게 됩니다. 중요한 일을 먼저 함으로써, 미루는 것을 반만 줄여보십시오. 일을 여유 있게 할 수 있고 스트레스도 적게 받게 됩니다. 중요하지 않은데 급하게 보이는 일에 대해서는 ‘안 돼.’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소한 일에 너무 많이 신경 쓰지 않도록 하십시오. 중요하지도 않고 급하지도 않은 일들을 줄여 나가십시오. 적당한 휴식을 취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지나친 휴식은 게으름입니다. 중요한 일을 긴급하지 않게 처리할 수 있도록 시간을 배분하십시오. 계획표를 만들어 주간 계획을 세우는 것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계획표는 날짜 옆에 약속, 해야 할 일, 목표 등을 적을 수 있는 빈칸이 있는 것이 좋습니다. 일주일에 15분만 시간을 내서 계획표를 짜십시오. 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먼저 큰일들이 무엇인지 정하십시오. 다음 단계로 큰일들을 위한 시간을 배분하십시오. 큰일들에 대한 계획이 끝난 후에, 그 밖의 잡다한 일이나 약속에 대한 계획을 세우십시오. 계획이 세워졌으면, 정해진 대로 매일 실행하십시오. 소중한 것을 먼저 하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시간관리 훈련, 두려움 극복 훈련, 힘든 때 용기를 가질 수 있게 도와주는 훈련,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극복하는 훈련 등입니다. 앨버트 그레이라는 사람이 성공을 위한 특별한 요소가 있는지 알아보려고, 성공한 사람들을 연구한 적이 있습니다. 연구결과 그가 찾아낸 성공 요소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 실패한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하기 싫은 마음보다 목표를 달성하려는 마음이 크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무슨 뜻일까요? 성공한 사람들은 가끔 하기 싫은 일도 기꺼이 할 자세가 되어있는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목표를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 감사를 생활화합시다
[11월 17일] (나눔터에서 퍼온 글입니다.) 목회자 모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목사님들께서 어쩌다 장미꽃에 대하여 논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목사님들이 하시는 말씀이 “나는 장미꽃은 좋은데, 장미에는 가시가 있어서 싫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목사님들 중 한 분이 말씀하시기를 “장미에도 가시가 있었던가요?”라고 말씀을 던지자 좌중은 잠시 숙연해졌습니다. 그렇습니다. 없는 것, 잃은 것을 생각하면 불평과 원망이 한이 없습니다. 그러나 남은 것, 있는 것을 계수하면 감사가 넘칠 수 있습니다. 은혜란, 잃은 것 없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남은 것을 생각나게 하는 동력입니다. 그것이 믿음으로 바라보고 생각하는 관점이며 시각입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원망하는 이유는 굳이 장미꽃에서 가시를 찾아내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 생명이 흘러 예수님의 시선을 소유하게 되면 가시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좋은 것, 남은 것, 장점들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오히려 장미꽃의 가시는 향기를 발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장미꽃이 바람에 휘날리다 가시에 찔리면 향기가 진하게 발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사람은 가시도 감사의 이유입니다. 빨간 안경을 쓰고 세상을 보면 온통 빨간색의 세상이 펼쳐집니다. 그러나 안경을 벗으면 아름다운 세상이 제 색깔로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에 예수가 없는 사람은, 빨간 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는 사람과 같습니다. 이것도 불평, 저것도 원망입니다. 그러나 예수가 마음에 거하는 사람은, 이래도 감사 저래도 감사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감사의 영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궁궐에 살아도 원망하는 사람은 원망하지만 쪽방촌에 살아도 감사하는 사람은 감사로 충만합니다. 감사의 뿌리는 환경이나 조건과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다만 마음이 하늘에 닿아 있는가? 아니면 땅에 닿아 있는가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마귀는 어떡하든지 성도들에게서 감사를 빼앗아 가고 그 자리에 불평을 집어넣으려 합니다. 왜냐하면 불평하기 시작하면 영이 죽고 하나님과의 관계와 소통이 끊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혼이 살기 위해서라도 의지적으로 감사훈련을 해야 합니다. 감사할 이유가 생겼을 때 감사하는 것은 이방인들도, 어린 아이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감사할 이유가 없고 오히려 일이 안될 때 문제와 고난이 겹겹이 겹칠 때 좋은 일을 주실 줄로 믿고 미리 감사하는 것 이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이와 같이 의지적 감사만 할 수 있다면, 하나님의 손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감사는 표현되어야, 진짜 감사입니다. 우리는 표현하는 데 익숙하지 못합니다. 사랑의 고백도 어색해 하고 힘들어 하지만, 감사의 마음도 잘 표현하지 못합니다. 그저 마음속에 담아 두고 삽니다. 그러나 열 명의 문둥이 중에 한 사람만 주님 앞에 와서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듯이 많은 성도들도 그와 같습니다. 도무지 감사를 표현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도 그렇고, 사람에게도 그렇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마음에 담고 있으면 되지, 꼭 표현해야 하나? 아닙니다. 표현되지 않는 사랑은 가짜이듯이, 표현하지 못하는 감사 또한 진짜가 아닙니다. 진정으로 감사하다면, 표현이 안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의 남은 생은, 장미의 가시를 보지 말고 장미의 꽃을 보는 눈이 열리기 바랍니다. 아직도 남은 것 아직도 있는 것을 계수하며 주의 은택을 잊지 않고 전심과 영으로 그리고 물질로 감사를 표현하는 성숙하고 차원 높은 성도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장미꽃이 너무 아름다워 가시를 볼 수 없었던 목사님 같은 삶이기를 소원합니다. 그리고 응답에도 감사했듯이 거절에도 감사하고, 형통에도 감사했듯이 막힘에도 감사하는 진짜 예수쟁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추수감사주일
[11월 10일] 다음 주일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추수감사주일에 VIP초청의 날 행사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각 목장에서 평소에 “구원을 받으셔야 할 중요한 분들(VIP)”로 마음에 품고 기도하던 분들을 교회로 초대하는 날입니다. 다음 주일에는 2부 예배를 마친 후 교회 옥상에서 고기도 굽고 떡도 먹으며, 하나님께 한 해 동안 베풀어주신 감사제목도 나누고 덕담도 서로 나누는 시간을 가집니다. 각 목장별로 정성껏 준비한 감사판도 교회 안에 전시하게 될 것입니다. 언젠가 ‘하나님께서 제사를 드릴 때 왜 제물을 가지고 오도록 하셨을까?’를 묵상한 적이 있습니다. 레위기는 사람들과의 친밀한 교제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가르쳐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친밀한 교제에는 ‘오고가는 정’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베풀어주는 사랑이 아니라, ‘오고가는 정’을 통해 사람들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기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모든 것들을 사람들을 위하여 베풀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베푸셨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라.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려라’ 하셨다.”(창 1:28)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물들을 누리고 다스리도록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도 하나님께 드릴 것을 원하셨습니다.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 등 다섯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과의 막힌 담들을 허물 수 있는 의식을 행하도록 하실 뿐만 아니라, 일곱 절기를 통해서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 오순절, 나팔절, 속죄일, 초막절 등 일곱 절기가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절기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일곱 절기는 모두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절기이기도 합니다. 유월절은 하나님의 어린 양의 대속적인 죽음에 대하여 말하고 있고, 무교절은 믿는 자의 거룩한 삶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초실절은 모든 신자들의 부활에 대한 첫 번째 열매로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고 있고, 오순절은 그리스도의 승천에 뒤이은 성령의 강림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팔절, 속죄일, 초막절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련된 사건들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절기에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제물을 드리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사람들은 오해를 하게 됩니다. 마음속으로 “이 재물은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모은 것이라.”(신 8:17)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세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생각할 것 같아서 걱정이 된다고 말하면서, “그러나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신 그 언약을 이루시려고 오늘 이렇게 재산을 모으도록 당신들에게 힘을 주셨음을, 당신들은 기억해야 합니다.”(신 8:18)라고 권면을 하였습니다. 우리가 추수감사절에 특별한 마음을 가지고 감사헌금을 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신 하나님,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주님, 우리의 마음에 들어오셔서 거하시는 성령님에게 감사하며, 또한 금년 한 해 동안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 헌금을 드리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재정적인 필요를 채워주신 일, 몸을 건강하게 지켜주신 일, 직장과 학교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인도하신 일, 그리고 우리 교회 이름처럼 행복한 교회가 되게 하신 일 등을 감사하면서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고,” “각자 마음에 정한 대로,”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리시기 바랍니다.
- 목표 중심의 삶을 사십시오.(습관 2)
[11월 3일] 관광지를 다녀오는 길에 1000피스짜리 퍼즐을 사온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 가족 네 식구가 하루에 한 시간씩 시간을 들였는데 한 달이 걸려서야 완성을 하였습니다. 물론 밑그림을 옆에 놓고 참고해 가면서 그림을 맞추었습니다. 그런데 만일 밑그림을 보지 않고 했다면 어떠했을까요? 아마 우리는 어디에서 출발할지 조차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어떻게 생긴 그림인지 1초만 보아도 상황은 많이 달라질 것입니다. 그 1초 차이가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나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목표 중심의 삶을 산다.’는 것은 내가 어떠한 삶을 살 것인지 마음속에 명확한 그림을 가지고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나의 가치체계를 결정하고 목표를 확립하는 것을 뜻합니다. 습관 1에서 배운 것처럼, ‘주도적이 된다.’는 것은 운전석에 앉아있는 것은 나라는 것입니다. 습관 2는 내가 운전석에 앉아 있으므로, 내가 어디로 갈지를 결정하고 그곳으로 가기 위한 지도를 그리는 것을 말합니다. 목표를 가져야 하는 중요한 이유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내 목표를 세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 인생을 내가 관리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내 인생을 관리하게 됩니다. 지금은 GE회사의 회장인 잭 웰치는 “우리가 갈 길은 우리가 조종해야 한다. 안 그러면 다른 사람이 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친구일 수도 있고, 부모님일 수도 있고, 대중매체일 수도 있습니다. 목표를 확립하는 것이 중요한 것처럼, 목표를 어떻게 확립하는 것을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가장 좋은 방법 중의 하나는 ‘개인사명서’를 쓰는 것입니다. 개인사명서는 ‘나의 삶이 어떤 것인지 말해주는 개인적인 신조’와 같습니다. 삶의 설계도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국가에는 헌법이 있어서 그 헌법이 사명서의 역할을 합니다. 좋은 회사들도 사명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개인 사명서는 ‘뿌리 깊은 나무’와 같습니다. 그것은 안정적으로 한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항상 살아있고 계속해서 자라납니다. 우리에겐 우리를 흔드는 삶의 모든 폭풍우를 이기고 살아남도록 해주는 뿌리 깊은 나무가 필요합니다. 사명선언서를 만들 때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일을 잘하는지 알아내는 것입니다. 누구나 재능을 갖고 있으며 누구나 잘하는 것이 하나쯤은 있습니다. 사명서를 쓰려고 준비하면서 내 마음 깊은 곳의 나 자신을 만나보십시오. 어떤 일을 하기를 좋아하는지, 누구를 존경하는지, 삶의 목적지가 어딘지 좀 더 분명한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일단 사명서를 작성했으면 목표를 수립하십시오. 목표는 사명서보다 훨씬 더 구체적일 것이고, 사명을 먹기 좋게 조각조각 나누어줄 것입니다. 개인적 사명이 피자 한 판을 먹는 것이라면, 목표는 그것을 어떻게 자를까 하는 것과 같습니다. 목표를 세울 때는 필요한 시간과 노력을 계산해야 합니다. “적어두지 않으면 목표는 소원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글로 쓴 목표는 열 배는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그리고는 실행에 옮기십시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는 법입니다. 일단 어떤 일을 하고 나면, 일을 처리하는 능력이 커지게 됩니다. 성취한 자는 길을 찾는 법입니다. 어떤 계기를 잘 이용하십시오. 새 해, 인생 전환의 경험, 새로운 직업, 좌절, 새로운 계절, 또 한번의 기회 등은 새로운 목표를 세울 때 동력을 얻을 수 있는 순간들입니다. 인생은 그렇게 길지 않습니다. 인생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사명입니다. Options
- 주도적인 사람이 되십시오
[10월 27일] 2019년 한 해도 두 달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 교회 이름처럼 “행복한 제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좋은 습관 일곱 가지(성공하는 사람들의 좋은 습관 참고)를 소개합니다. 어린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면, 그가 장성하기까지는 의존적인 삶을 삽니다. 배가 고프거나 기저귀가 축축해도 할 줄 아는 것은 우는 일뿐입니다. 이 아기가 자라감에 따라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면 독립적인 사람으로 성장합니다. 이렇게 독립적인 사람으로 되어가는 것을 ‘개인의 승리’라는 말로 표현을 합니다. 이것은 어린 아기 뿐만 아니라, 어른이 새로운 환경이나 공동체에 들어가면 일반적으로 겪게 되는 과정입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말합니다. ‘주도적인 사람’과 ‘대응적인 사람’, 다른 말로 표현하면 ‘자기 삶에 책임을 지는 사람’과 ‘다른 사람을 탓하는 사람’, 또 다른 말로 하자면 ‘삶을 만들어가는 사람’과 ‘삶이 만들어지기를 기다리는 사람’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습관은 주도적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이 바로 그러한 삶을 살았습니다.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2-13) 주도적일 것이냐, 대응적일 것이냐, 선택은 우리의 몫입니다. 날씨가 궂은 날, 친구와 말다툼을 한 날, 누군가가 내 험담을 하는 것을 들은 날, 그런 일이 생기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선택은 우리에게 달려있습니다. 기분 좋게 운전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다른 차가 앞으로 끼어들어 사고를 낼 뻔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험한 말을 내뱉겠습니까, 아니면 한번 웃어주고 그냥 넘어가겠습니까? 대응적인 사람은 충동에 따라 선택합니다. 마치 조금만 흔들어도 압력이 높아져서 폭발해버리는 콜라병 같습니다. 그러나 주도적인 사람은 가치에 따라 선택합니다. 그런 사람은 행동하기 전에 반드시 생각합니다. 자신에게 닥치는 모든 일들에 대해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스스로 결정합니다. ‘그런 일 때문에 흥분해서 나의 하루를 망치고 싶지는 않아.’라는 태도를 유지합니다. 주도적인 삶을 살았던 대표적인 인물 중의 하나는 요셉입니다. 그는 아버지의 총애를 받고 자라면서 형들에게는 질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하루는 요셉이 아버지의 말씀을 순종하여 형들의 안부를 물으러 갔었습니다. 그러나 그를 시기하던 형들이 요셉을 상인에게 팔아버렸고 다시 애굽에 있는 보디발의 집으로 팔려갔습니다. 요셉이 만일 대응적으로 살았다면, 자기를 팔아버린 형들을 미워하며 복수의 날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주도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는 형통한 사람이 되어 주인의 신임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중에 요셉은 주인 보디발의 아내에게 모함을 받아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그곳에서도 주도적인 태도를 가지고 충성을 다하였습니다. 감옥의 간수가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겨서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게 할 정도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에 사로잡혀서 힘을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과거의 실수, 부모님, 출생지, 날씨 등은 우리가 어찌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의 태도, 선택, 반응 등은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들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에 초점을 맞춘 삶이 주도적인 삶입니다. 그리하면 심적인 평안을 느끼고 결국 자신의 삶을 제대로 이끌어갈 수 있습니다.
- 가장 아름다운 기도
[10월 20일] (‘하이패밀리’의 글 중에서 옮겨놓았습니다.) 나와 아내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나는 오른손잡인데 아내는 왼손잡이다. 그래서 습관을 따라 국그릇을 왼쪽에다 잘 갖다 놓는다. 별거 아닐 것 같은 그 차이가 신경을 건드린다. 거기다 나는 종달새 형이다. 새벽시간에 일어나 설친다. 늦잠을 자면 무조건 게으르다고 여긴다. 그런데 내 아내는 올빼미 형이다. 밤새 부엉부엉 하다가 새벽녘에야 잠이 든다. 도대체 맞는 구석이 없다. 나는 물 한 컵을 마셔도 마신 컵은 즉시 씻어 둔다. 그런데 내 아내는 그게 안 된다. 찬장에서 꺼내 쓸 그릇이 없을 때까지 꺼내 쓰다가 한꺼번에 닦고 몸살이 난다. 나는 약속 시간에 늦은 적이 거의 없다. 미리 준비하는 스타일이다. 그런 나와 달리 아내는 떠나야 할 시간에 화장한다고 정신이 없다. 다가가서 보면 참으로 가관이다. 화장품 뚜껑이라는 뚜껑은 다 열어 놓고 있다. 나는 그게 안 참아진다. 나도 모르게 버럭 화를 낸다. “아니, 이렇게 두고 외출했다 집에 돌아오면 향 다 날아가고. 뭐 땜에 비싼 돈 주고 화장품을 사. 차라리 맹물을 찍어 바르지.” 나중에는 견디다 못해 성경책까지 들이밀었다. “여보, 예수님이 부활만 하시면 됐지, 뭐 때문에 그 바쁜 와중에 세마포와 수건을 개켜 놓고 나오셨겠어? 당신같이 정리정돈 못하는 사람에게 정리정돈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하고 싶으셨던 거야. 그게 부활의 첫 메시지야. 당신 부활 믿어. 부활 믿느냐고?” 그렇게 아내를 다그치고 몰아세울 때 하늘의 음성을 들었다. “야, 이 XX야, 잘하는 네가 해라. 이X아, 안 되니까 붙여 놓은 것 아니냐.” 너무 큰 충격이었다. 생각의 전환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게 있다. 나의 은사는 무얼까? 하지만 뜻밖에도 너무 간단하게 은사(gift)를 알 수 있다. 내 속에서 생겨나는 불평과 불만이 있는 바로 그것이 자신의 은사인 것이다. 일테면 내 아내는 물건이 제 자리에 놓여 있지 않고 종이 나부랭이가 나뒹구는데도 그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니까 불편한 게 없다. 오히려 밟고 돌아다닌다. 하지만 나는 금방 불편해 진다. 화가 치민다. 이 말은 내가 아내보다 정리정돈에 탁월한 은사가 있다는 증거다. 하나님은 이 은사를 주신 목적이 상대방의 마음을 박박 긁어 놓고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무기로 사용하라는 데 있지 않다. 은사는 사랑하는 사람을 섬기라고 주신 선물이다. 바로 그 때 내가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내 아내한테는 뚜껑 여는 은사 있고 나에게는 뚜껑 닫는 은사가 있다는 사실을. 그때부터 아내를 대하는 내 태도가 바뀌었다. 아내가 화장한다고 앉아 있으면 내가 다가가 물었다. “여보, 이거 다 썼어? 그러면 뚜껑 닫아도 되지. 이거는? 그래, 그럼 이것도 닫는다.” 이제는 제가 뚜껑을 다 닫아 준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그렇게 야단을 칠 때는 전혀 꿈쩍도 않던 아내가 서서히 변해 가는 것이다. 잘 닫는 정도가 아니라 얼마나 세게 잠갔던지 이제는 날더러 뚜껑 좀 열어달라고 한다. 아내의 변화가 아닌 나의 변화, 그렇게 철들어진 내가 좋아하는 기도가 있다. “제가 젊었을 때는 하나님에게 세상을 변화시킬 만한 힘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중년이 되었을 때 인생이 얼마나 덧없이 흘러가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와 함께 평안히 살도록 인도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늙어 여생을 돌아보게 되었을 때 저는 저의 우둔함을 깨달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지금 드리는 기도는 저를 변화시켜 달라는 것입니다. 만약 제가 처음부터 이런 기도를 드렸더라면 제 인생은 달라졌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