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 다시 한 해를 돌아볼 때가 되었습니다
2021년을 며칠 남겨두고 한 해를 돌아보며 나/가정/직장(학교)/교회/사회에 대한 나의 책임을 다했는지 돌아보고, 2022년 한 해를 계획하는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내 삶을 내가 관리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나 환경을 통해 내가 관리를 당하게 됩니다. 아무리 열심히 달려도 목적지를 향하지 않고 달리면 고생만 하고 열매를 얻지 못합니다. 고속도로를 들어서기 전에, 아무리 바빠도 기름을 넣을 시간을 갖지 않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때때로 톱이나 칼을 갈아주지 않으면, 힘을 쓴 것만큼 성과를 거두지 못하게 됩니다. 첫째, 자신에 대해 살펴보십시오.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면,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을 받았다.”(눅 2:52)는 말씀을 통해, 예수님은 우리에게 네 가지 영역에서 성장해야 할 좋은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우선 얼마나 지적인 성장이 있었나를 점검해 보는 것입니다. 직장인이라면 업무능력 개발, 학생이라면 학업 성취, 교양이나 취미 활동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성인이 되기 전이라면 키가 자라는 것과 같이 신체가 건강하게 성장하는 것, 성인이라면 건강관리에 힘쓴 것을 돌아보면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에게 사랑받는 영성, 사람에게 사랑받는 사회성이 얼마나 발전을 했는가 돌아보면 됩니다. 둘째, 가정에 대해서 살펴보십시오. 배우자와 자녀, 그리고 부모님에게 나의 책임을 다했는지, 그리고 그들을 그들의 언어로 사랑하기를 힘쓰며 세워주려고 노력했고, 특히 서로 마음을 열고 의사소통을 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사랑의 언어에는 “사랑의 다섯 가지 언어”라는 책을 보면, 다섯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제 1의 사랑의 언어-인정하는 말, 제 2의 사랑의 언어-함께 하는 시간, 제 3의 사랑의 언어-정성어린 선물, 제 4의 사랑의 언어-봉사, 제 5의 사랑의 언어-육체적인 접촉. 사랑의 언어는 부부간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대인관계에서도 적용을 하면 아주 좋은 아이디어입니다. 셋째, 직장생활 또는 학교생활을 되돌아보십시오. 직장생활의 성공여부는 사직서를 냈을 때를 가정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사직서를 냈을 때 주위에서 강하게 말리면 성공적인 직장생활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직장에서 내 일을 잘 할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잘 되도록 도와주는 삶을 살았다면 금상첨화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람에게 하듯이 하지 말고, 주님께 하듯이 진심으로 하십시오.”(골 3:23)라는 말씀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학생들은 점수가 아니라,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살았는지 점검해 보면 좋습니다. 넷째, 교회생활입니다. 우리 교회는 두 가지 영역이 있습니다. 목장사역과 교회사역입니다. 그 동안 목장에 얼마나 성실하게 참석했는지, 그리고 목장에서 한 역할을 맡아서 목장의 활력소가 되었는지 돌아보면 됩니다. 교회사역은 교회의 모든 행사에 성실하게 참여하며, 교회에서도 역할 한 가지를 맡아 지체로서 몸된 교회를 세우는데 도움이 되었는지 돌아보십시오. 다섯째, 사회생활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리거나 입을 것이 없어 헐벗거나 의약품이 없어서 죽어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육적인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에 관심이 없다면 그것은 우리의 영적인 문제입니다. 또한 윤리의식이 없는 사람이 많습니다. 경제윤리, 정치윤리, 성윤리 등 여러 영역에서 윤리가 무너져 있는 이 사회에 바른 윤리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복음이 없어서 죽어가는 사람에게는 복음을 전하여 그들을 영적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도와주는 것. 이것이 빵, 복음, 윤리에 대한 우리의 책임입니다.
- 교회 재정관리의 예 2-2 (올랜도비전교회 김인기 목사의 글)
(4) 헌금을 은행에 많이 저축해 놓는, 소위 이월금을 많이 남기는 것이 꼭 좋은 일은 아니라는 사실, 세상과 다른 원리라는 사실을 알려드렸습니다. 우리는 가난한 나라에서 저축을 강조한 문화 속에 살았기 때문에, 그리고 장래를 예측할 수 없는 불안한 미래라는 강박관념 속에 살았기 때문에 많이 저축하는 것이 좋은 것이라는 문화 속에 살았습니다.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교회 재정을 많이 쌓아두는 것으로 안심하는 생각도 꼭 바람직 방향이 아님을 알려드렸습니다. 성도들의 믿음이 자라서 재정이 넉넉해지고 이월금이 많아 질 것 같으면, 사역을 더 많이 하고 필요가 있는 곳에 더 많이 나누라는 하나님의 뜻이지, 불안한 미래를 준비하듯 은행에 쌓아 놓으라는 뜻은 아닙니다. 쌓아 놓고 절약하고 움켜쥐어서 돈 많은 것을 자랑하는 교회는 하나님의 긍휼과 능력을 체험하는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장래 3개월 운영비 이상의 예산이나, 건축이나 사역자 청빙 같은 장래 프로그램을 위한 예산을 제외한 교회 재정은 교회의 섬기는 사역, 장래 일꾼을 기르는 목회, 선교지를 다양하게 섬기는 모습으로 사용하여 주신 은혜를 많이 나누도록 하는 원칙을 가르쳐 드리고 실제로 그렇게 해 왔습니다. 그러자 영적으로 넉넉해지고 결산 보고를 할 때마다 놀라운 하나님의 손길을 간증하며 박수로 모임을 마치는 즐거움이 있게 되었습니다. (5) 교회의 예산과 결산, 즉 교회 살림살이를 보고하는 모임(우리 교회에서는 3개월마다 제직기도회라는 이름으로 모임)에서 즉석 질문을 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모임 두주 전에 재정보고서를 게시판에 붙여 놓고 그 옆에 “재정질문서”라는 양식을 놓아둡니다. 그리고 내용을 자세히 알고 싶은 항목에 대한 질문을 적어서 재정부에 제출하면 그 항목에 대한 내용만 자세히 설명을 합니다. 나머지는 재정부에서 준비한 내용들을 설명하고 “잘해 주신 하나님 앞에 감사의 박수를 올려드립니다.” 박수 치고 끝이 납니다. (중략) (6) 교회에서 예산을 세우는 이유는,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한계,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나마 예산을 세우지 않으면 규모 있게 사용할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산에 매여서도 안 되지만 예산을 무시해서도 안 됩니다. 지혜로워야 합니다. 중요한 사역이 생기면 예산이 없어도 하는 것이고 예산을 세웠어도 그 일이 진행되지 않으면 사용하지 않습니다. 결론적으로 교회의 예산과 집행은 기본적으로 영적 신뢰에 근거한 믿음을 전제로 해야 합니다. 목회자 뿐 아니라 사역자, 성도들의 영적 신뢰가 서로 깊어야 이런 설득과 훈련과 실천이 가능한 것입니다. 방법 보다 신뢰라는 스피릿이 있어야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또한 성도들의 모든 헌금생활은 하나님 앞에서 하는 헌신의 표시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드려진 것이기 때문에 평가나 비교의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교회 재정 뿐 아니라 개인의 물질에 관한 태도도 청지기, 관리자라는 영성으로 소유해야 합니다. 특히 교회 재정은 목회자에 대한 신뢰를 근거로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 나라를 세상에 선포하는 목회를 돕는 방향에서 예산이 집행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위에 열거한 여러 가지 영성이 구비된 신앙인들이 지도자가 되어야 하고 그런 분들이 관리 집행해야 합니다. 이런 원리들이 바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가 있고 계속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맘껏 표현할 줄 아는 신앙생활, 그리고 신뢰와 사랑을 근거로 교회의 존재목적(성화와 영혼구원)을 완성해가고 그 도구로 헌금을 관리 집행하는 지혜를 배워나가고 있습니다. 이런 영성이 가능하게 된 것, 모두 하나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 교회 재정관리의 예 2-1(올랜도비전교회 김인기 목사의 글 요약)
(1) 목회자는 성도 개인의 헌금 액수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사실 물질이 가지고 있는 영향력 때문에 개인이 헌금을 많이 한다는 사실을 알면 그 분의 눈치를 보는 목회자를 많이 보았습니다. 더 중요한 이유는 개인의 믿음을 표현하는 방법 중에 시간과 섬김과 사역으로도 하지만, 저는 물질로 자신의 믿음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한 방법이라고 가르쳐 드렸습니다. 제가 개인의 헌금 액수는 모르지만 그러기 때문에 더 정확하게 물질로 표현되는 신앙의 모습을 자유롭게 강조할 수 있었습니다. “소득가운데 기쁨으로, 힘에 겹도록, 나도 필요한 것이지만 그 필요한 것 중에 구별하여 드리는 헌신의 표현이 헌금이요 믿음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적어도 목자 목녀님들은 하나님 앞에 드린다는 믿음의 표현들을 잘 하게 되었습니다. (2) 교회 재정을 관리하는 분들은 “단순히” 헌금을 계산하고 기록하고 집행하는 청지기라는 사실을 많이 강조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관리”하는 것이지 재정을 맡았다고 “결정”하는 사역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한 관리하는 분들을 세울 때 회계사, 회사 재무 담당, 투자 회사 등 뭔가 물질을 관리하는 직업을 가지신 분들은 교회 재정 관리 팀에서 제외시켰습니다. 물론 회사를 경영하거나 정부에서 나라 살림을 하는 원리 중에 정직성, 투명성 같은 것은 교회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하지만, 세상에서 돈을 관리하는 방법과 교회에서 헌금을 관리하는 방법이 다른 점을 강조했습니다. 예를 들면 직장에서는 예산을 사용하되 그 해에 다 사용하지 않으면 그 다음 해 예산에서 삭감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예산을 소진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그 해 필요한 사역이면 예산이 없어도 새로 예산을 만들어서 사역을 하는 것이고, 예산이 남아도 그 해에는 안 해도 되는 사역이 되면 억지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관리하는 분들은 헌금을 계산하는 역할을 할 뿐이고, 예산을 어떻게, 얼마를, 어디에 집행 할 것인지는 일단 목회자의 목회 방향을 따르며, 그 목회 방향에 따라 당회, 집사회, 운영위원회 등 그 교단, 또는 공동체가 결정권을 위임한 기관에서 결정하는 대로 집행만 하는 사역임을 강조했습니다. (3) 교회의 재정은 넉넉하게 나누는 것이 원칙임을 강조했습니다. 소위 회계를 맡은 직분자 중에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사역자의 사례비를 가지고 사역자들을 어렵게 만드는 미성숙한 태도를 여러 번 보았습니다. 이런 사람이 교회 회계부에 있으면 자신의 감정 문제를 가지고 세상에서 배운 재정 관리 방법을 빙자하여 교회를 힘들게 하는 것을 보아 왔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늘 목회자를 의심의 눈으로 바라봅니다. 헌금이 자기 돈인 양 세도를 부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목사는 가난해야 한다는 편견으로 늘 목회자 사례비 먼저 깎으려고 하고 다른 예산도 줄이려고만 하는 이상한 분들도 많이 보았습니다. 다 자기 증명의 도구로 교회를 이용하려는 죄성이 만든 열매입니다. 말은 하나님 찾고 바른 교회의 모습이라고 흥분하지만, 부정적인 분위기, 위기감을 만들어 자기를 내세우려는 인간 죄성의 문제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목사나 교역자들의 사례비를 가지고 목회자를 고용인 다루듯 괴롭히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이런 변질된 종교인의 병폐가 교회를 아프게 합니다. 교회 사역 중에 자기 맘에 안 드는 일이라고 헌금한 돈을 찾아가겠다고 소리 지르는 사람이 있어서 제가 돌려 드린 적도 있습니다. 이런 일들은 모두 잘못 배운 열매이고 마음에 쓴뿌리를 가진 사람들의 죄악된 표현임을 누누이 강조했습니다.
- 벌써 금년의 마지막 달인 12월입니다
한 해가 매우 빨리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시간은 늘 같은 속도로 지나갈 터인데, 코로나 상황이었던 2년은 유난히도 빨리 지나간 듯합니다. 한 해를 다 지내놓고 후회를 하기보다는, 그 동안에 미진했던 부분들이 있다면 보완을 하는 12월 한 달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의 성장을 간단하게 요약한 누가복음 2:52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을 받았다.”는 말씀을 참고로 자신의 삶을 점검해 보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1. 지혜가 자라며(지적, 정신적 성숙) 우리는 지금까지 정신개발과 학습에 관계되는 대부분의 훈련을 학교에서 하는 정규교육을 통해 받아왔습니다. 그러나 학교교육이 끝나면 우리들 대부분은 지식의 감퇴현상을 경험합니다. 학생이라면 학업에, 직장인이라면 업무능력에 진보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 외에도 종사하고 있는 분야 밖의 새로운 것에 관해 관심을 기울이고, 나아가 분석적인 사고를 하거나 글을 쓰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TV나 휴대폰(유튜브, SNS) 을 보거나 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러 가지 정보를 얻고 마음을 확장시키기 위해 규칙적으로 좋은 책을 읽는 좋은 습관을 기르시기 바랍니다. 2. 키가 자라며(건강 증진 및 유지) 신체적인 차원은 우리 몸을 효과적으로 돌보는 활동-영양가 있는 음식의 섭취, 충분한 휴식, 긴장이완, 그리고 규칙적인 운동을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운동할 시간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루에 30분 또는 이틀에 30분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이 운동이 일주일에 주는 이익을 생각하면 결코 많은 시간이 아닙니다. 걷기, 달리기, 자전거 타기, 수영, 조깅 등을 통해 심장혈관에 도움을 주어 지구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스트레칭을 통해 신축성을 키우고 체조, 팔굽혀펴기, 윗몸일으키기, 역기나 아령 들기 등 근육운동을 통해 힘을 키우십시오.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의자에 앉아 일을 하는 사람일수록 근육운동이 필요합니다. 3. 하나님에게 사랑을 받았다(영적인 성숙) 영적으로 성숙하면 자기 자신의 인생에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영성은 우리가 가진 가치체계의 핵심이고 중심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영감을 주고, 우리 자신을 향상시키는 원천입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면서 매일 신앙생활을 통해서 쇄신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읽고 묵상을 함으로써 우리는 재충전되며 강하게 되고, 중심이 잡히며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영적 재충전과 쇄신은 시간투자를 요구합니다. 스스로 시간이 없다고 생각하며 무시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영역이 영적인 삶입니다. 4. 사람에게 사랑을 받았다(사회성 개발) 사회적/감정적 성장-삶의 사회적 차원과 감정적 차원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감정적 삶은 주로 사회에서의 대인관계를 통해서 개발되고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일상적인 대인관계를 통해서 이것을 개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연습을 필요로 합니다. 노력이 없으면 자신의 목표를 이루지도 못하고, 대인관계에서 자연스럽게 실천할 수 있는 기술도 갖추지 못합니다. 이것은 지적인 수준이 아니라 감정 문제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의 개인적 안정감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지요. 내면적 안정은 우리의 삶이 올바른 원칙 및 가치관과 일치할 때, 즉 언행일치의 삶을 살 때에 비로소 이루어집니다.(‘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좋은 습관’의 제 4부를 참고하였습니다.)
- 가정교회를 잘 하시는 목회자들의 공통점
(이번 주 원장코너에 올린 제 글을 함께 나눕니다.) 작년 9월 1일부터 제가 한국가정교회 사역원장으로 섬기게 되면서 시도한 일 중의 하나는 한국 가정교회 목사님들의 초원을 방문하는 것이었습니다. 80여 개의 지역을 방문하려면 기간이 너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우선 15개 초원을 탐방하는 것을 계획하였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좀 늦어졌는데, 이번 주일까지 모두 11개의 초원을 탐방하면서 느낀 점을 나누겠습니다. 첫째는, 초원모임에 꾸준히 참여하시는 목사님, 지역모임에 꾸준히 참여하시는 목사님들이 일반적으로 가정교회 목회를 잘 하고 계셨습니다. 이것은 무슨 일이든지 꾸준히 집중해서 하는 사람이 잘 할 수밖에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목회를 잘 한다.”는 말을 들으면, 우선 교회의 규모가 커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선입견을 우리는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 목회를 잘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 예수님께서 기도하셨던 교회(요한복음 17장), 성령님께서 함께 하시는 교회를 이루고 있다는 말입니다. 실제적으로 영혼 구원이 일어나고 있고, 성도들의 삶이 변하고 있으며, 교회 안에 기쁨이 넘치고 있는 것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가정교회 목회를 잘 하고 계신 분들은 질문이 많았습니다. 잘 해보려고 하는 열정이 있는 분들은 질문이 많습니다. 가르침을 받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저는 성격상 낯선 사람들에게 잘 다가가지 못하고, 마음속에 질문이 있어도 선생님 앞에서 손을 들지 못하던 학생이었습니다. 선생님께 질문하는 것 자체가 쑥스럽고,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우려가 가장 큰 걸림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회를 제대로 해보고 싶은 열정을 가지고 있으니까, 지금은 질문을 잘 하고 있는 저를 자주 보고 있습니다. 셋째는, 충성되게 그리고 가르침을 받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계신 목사님들은, 대개 그 교회 성도님들도 그 모습을 보고 배운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또한 교회에서 목자들이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것처럼, 지역목자로 섬기는 목사님들께서 가정교회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성도들이 목자와 목녀로 헌신하기를 원하시는 것처럼, 이제 가정교회를 하고 계신 목사님들이 모두 지역목자가 되기를 사모하고 헌신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많은 목사님들이 자신이 원하는 교회, 당회가 바라는 교회, 성도들이 기대하는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를 이루고자 하는 열망이 넘치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가정교회를 하는 교회들이 늘어나고, 지역목자들이 계속 분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싱글목자들이 앞으로 교회의 장래를 짊어질 미래인 것처럼, 젊은 지역목자와 젊은 초원지기들도 늘어나기를 기도하게 됩니다. 그 동안 가정교회 사역원 나눔터에 올라왔던 말들 중에 마음에 남는 것 몇 개를 소개합니다. “첫째, 지역모임과 컨퍼런스에는 부부가 함께 다녀야 가정교회 정착이 잘 됩니다. 둘째, 가정교회의 핵심원리인 세 축, 네 기둥을 세워가려면 단반지(단순, 반복, 지속)를 끼어야 합니다. 셋째, 목표를 향해 전심전력을 다해야 합니다. 특히 내년에는 많은 교회가 정회원 등록을 목표로 세우시기를 권면합니다.” “하려고 하면 방법이 생각나고, 안 하려고 하면 핑계가 생각난다.” “지혜롭게 조심은 하되, 믿음으로 쫄지는 말자.
- 오늘은 추수감사 주일입니다
성경의 레위기를 보면서, 언젠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왜 제물을 가지고 오도록 하셨을까?’를 묵상한 적이 있습니다. 레위기는 사람들과의 친밀한 교제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가르쳐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친밀한 교제에는 ‘오고가는 정’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베풀어주는 사랑이 아니라, ‘오고가는 정’을 통해 사람들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기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모든 것들을 사람들을 위하여 베풀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베푸셨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라.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려라’ 하셨다.”(창 1:28)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모든 피조물들을 누리고 다스리도록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도 하나님께 드릴 것을 원하셨습니다.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 등 다섯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과의 막힌 담들을 허물 수 있는 의식을 행하도록 하셨습니다. 아울러 일곱 절기를 통해서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 오순절, 나팔절, 속죄일, 초막절 등 일곱 절기가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절기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일곱 절기는 모두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절기이기도 합니다. 유월절은 하나님의 어린 양의 대속적인 죽음에 대하여 말하고 있고, 무교절은 믿는 자의 거룩한 삶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초실절은 모든 신자들의 부활에 대한 첫 번째 열매로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고 있고, 오순절은 그리스도의 승천에 뒤이은 성령의 강림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팔절, 속죄일, 초막절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련된 사건들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절기에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제물을 드리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사람들은 착각을 하게 됩니다. 마음속으로 “이 재물은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모은 것이라.”(신 8:17)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세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생각할 것 같아서 걱정이 된다고 말하면서, “그러나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신 그 언약을 이루시려고 오늘 이렇게 재산을 모으도록 당신들에게 힘을 주셨음을, 당신들은 기억해야 합니다.”(신 68:18)라고 권면을 하였습니다. 추수감사절에 우리가 특별히 감사헌금을 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 우리의 마음에 들어오셔서 거해주시는 성령님에게 감사하며, 또한 일 년 동안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추수감사 헌금을 드릴 수 있기 바랍니다. 추수감사절에는 늘 이 사실을 기억하면서 풍성하게 헌금을 하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십일조를 성실하게 드려서,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풍성하게 드리는 일은 가정에서도 일어나야 합니다. 여러분의 오늘이 있도록 그 동안 애쓰시고 수고하신 어른들에게 감사를 드릴 줄 알아야 합니다. 그 분들에게 글이나 말로 감사의 말씀을 드릴 뿐만 아니라, 실제로 경제적으로 넉넉하게 드리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 예수님의 제자가 되지 못하는 세 가지 경우
(지난 주일에 쓴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는 자격’에 이은 글입니다.) 어떤 직책을 맡거나 직분을 맡든지 해야 할 일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습니다. 맡은 일이나 책임 등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면 직무유기이거나 직무태만입니다. 또한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면 부정이나 비리가 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도 마찬가지로 해야 할 일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습니다. 해야 할 일에 대해서는 지난 주일에 요한복음을 중심으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누가복음 14장을 중심으로 하지 말아야 할, 즉 주의해야 할 일에 대해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1. 예수님을 첫 자리에 모시지 않는 사람(26절) 첫째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나, 아내나 자식이나, 형제나 자매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기 목숨보다 예수님을 첫 자리에 모셔야 합니다. 본문에서 ‘미워한다’는 말은 ‘덜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보다 다른 것을 앞자리에 두는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만일 다른 것을 예수님보다 앞에 둔다면, 그것이 바로 주님이 되는 것입니다. 친척들이나 친구들의 모임에 빠질 수가 없어서 예배를 빠진다면, 예배를 받으셔야 할 하나님이 주님이 아니라, 그들이 주님입니다. 가족들이 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지 못한다면, 이 역시 가족들이 주님이 됩니다. 나의 게으름이나 정욕 때문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실 일을 한다면, 내가 주님이 됩니다. 우리가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생각이 정해지고, 생각에 따라 행동이, 행동에 따라 습관이, 습관에 따라 인격이, 인격에 따라 일생이 정해집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첫 자리에 모시는 삶을 살려면 몸의 등불인 눈 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2.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지 않는 사람(27절) 둘째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지 않으면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말은 자아 즉 에고(Ego)를 내려놓는(죽이는) 것을 뜻합니다. 주님을 믿는 자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자존감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자존심(남에게 굽히지 않고 스스로의 가치나 품위를 지키거나 높이려는 마음)은 십자가에 못박아야 합니다. 자아를 십자가에 못박지 못하면, 교만이 고개를 들게 됩니다. 잠언 6:17-18에서, 주님께서 미워하시는 것, 주님께서 싫어하시는 것 중의 첫 번째로 교만을 지적하였습니다. 교만은 심지어 하나님과 자신을 비교하며,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으려는 시도까지 하게 만듭니다. 교만은 흘기는 눈이나, 거짓말하는 혀로 드러나며, 악한 일을 저지르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3. 소유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않는 사람(33절) 셋째로, 소유에 대한 욕망을 버려야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돈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라고 디모데전서 6:10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돈을 좇다가, 믿음에서 떠나 헤매기도 하고, 많은 고통을 겪기도 합니다. 부자가 되는 것이 죄는 아닙니다. 어떻게 부자가 되려고 하느냐, 어떻게 부자가 되었느냐가 중요합니다. 부자가 되려고 하다가 스스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 합니다. 골로새서 3:5은 탐욕을 우상숭배라고 지적하였습니다. 우상숭배란, 하나님이 계셔야 할 자리에 다른 것을 앉혀놓는 것입니다.“돈에는 장사가 없다.”는 속담도 있습니다. 지출에 수입을 맞추려고 하면, 돈에 대한 욕심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탐욕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열심히 일하며, 지금 가지고 있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입에 지출을 맞추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는 자격
오늘 요한복음 15장 설교를 하면서, 금년 2월 14일 목회서신에 기록했던 글을 다시 한 번 올립니다.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는 방법이 나와 있습니다. 이러한 제자들은 예수님의 생애 전체를 배우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배우고 닮아가는 사람입니다. 오늘까지 설교한 요한복음의 세 군데에 그 자격기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 8:31, 13:34-35, 15:8이 바로 그 말씀들입니다. 1.“나의 말에 머물러 있으면”(주님과 올바른 관계) 첫째는, 주님의 말씀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 주님의 참 제자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머물러 있다는 의미를, 주님께서는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것으로 비유하여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8장의 말씀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유대 사람들에게 주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들은 두루마리 성경을 통해서 구약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제자들에게 지식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과 함께 있게 하시며 예수님의 생애 전체를 배우게 하셨습니다. 때로는 그들을 내보내어서 말씀을 전파하게 하셨습니다. 지식전달보다는 능력을 배양시켜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교실 강의보다는 현장 실습을 통해서, 가르쳐서 제자를 만드시기보다 보여서 제자를 만드셨습니다. 예수님의 참 제자는 예수님의 말씀에 머물러 있으면서, 예수님의 성품을 닮고 예수님의 사역을 닮아 그대로 전수(재생산)하는 사람입니다. 2.“서로 사랑하면”(사람들과 올바른 관계) 둘째는,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 주님의 참 제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는 일에도 먼저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기 직전에 주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며, 제자들이 본 그대로 남의 발을 씻겨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진정한 섬김은 다른 사람을 성공시켜주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섬기실 뿐만 아니라, 또한 제자들을 섬기는 사람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러 오시지 아니하고 섬기러 이 땅에 오셨고,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치를 몸값으로 자신의 목숨을 내주러 오셨습니다. 이것이 가장 큰 사랑의 본입니다. 사랑은 감정적으로 느끼는 것만이 아닙니다. 머리로 아는 지성적인 사랑도 있거니와, 더욱 숭고한 사랑은 사랑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의지적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사랑받을 만한 일을 하지 못했을 때, 더욱 사랑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3.“열매를 많이 맺으면”(재생산을 하는 사람) 셋째는, 열매를 많이 맺는 사람이 참 제자입니다. 즉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사람들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사람들을 재생산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포도나무는 포도를 열매로 맺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나무’에 붙어있는 우리는 예수를 열매로 맺어야 합니다. 우리가 맺어야 할 ‘예수 열매’는 성령의 열매로 말미암은 성품의 열매가 있고, 성령의 은사로 말미암은 사역의 열매가 있습니다. 이를 통하여 예수님의 성품과 예수님의 사역을 닮는 것입니다. 참 제자는 말씀을 듣고 잊어버리는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실행하는 사람입니다. 그저 듣기만 하고 말씀을 행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을 속이는 사람입니다. 주님의 참 제자가 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첫째는, 주님의 말씀에 머무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아는 대로 그 말씀을 순종하고, 그만큼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입증이 되어 또 다른 말씀을 알려주시는 대로 그 말씀을 순종하는 일을 끊임없이 하는 제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는,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셋째는,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고, 예수님의 사역을 닮아가서 재생산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되는 길입니다.
-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
(이번 목회자컨퍼런스 마지막 결단의 시간에 제가 나눈 말씀을 공유합니다. FTA: 자유무역협정을 외우시면 좋습니다.) 사람은 많은데 쓸 만한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어떤 사람은 능력이 많은데 도무지 시간을 내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시간은 많은데 능력이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능력과 시간이 있는데 가치관이 달라서 스피릿을 같이 하기가 힘든 경우도 있습니다. 능력과 가치관, 그리고 시간까지 있는데 성품상 같이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온 땅을 두루 살피시며 하나님의 능력을 베풀어주고 싶은 사람을 찾으셨습니다. 그 자격은 오직 한 가지, 전심전력으로 주님께 매달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왕들이 본문에 나오는 아사 왕과 비슷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전심전력으로 주님께 매달리는 자들을 찾아 그에게 능력을 베풀기를 원하십니다. 과연 어떠한 사람일까요? 1. 하나님께 신실한 사람(Faithful) 하나님께서 쓰실 만한 자들을 찾으셨으나 북쪽 이스라엘 왕들은 하나같이 하나님으로부터 떠난 삶을 살았습니다. 유다 왕 중에 선한 왕이었다고 하는 아사가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는 모습이 오늘 본문에 나오고 있습니다. 그는 일찍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음으로 경험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서 신실함을 저버리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왕년에 잘 한 것이 지금의 신앙생활을 보장해주지 않습니다. 믿음의 삶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칠 때까지 깨어 믿음에 굳게 서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뢰하는 일은 값을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투자입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받고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 지혜로운 선택을 하여 복된 삶을 사는 여러분이 되실 것을 축원합니다. 2.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사람(Teachable) 그는 선지자의 말을 듣고 종교개혁을 일으키기도 한 사람이었고, 하나님과 함께 하여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도 경험하였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이번에는, 아사는 하나님으로 자기의 도움을 삼지 아니하고 아람 왕에게 도움을 구하러 간 것입니다. 선견자 하나니는 이 사실을 지적하기 위하여 아사에게 갔습니다. 아사는 회개하고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히려 노하여 선견자를 옥에 가두었습니다. 가르침을 받을 줄 아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책망을 들을 때 그 반응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잠언 9:8-9 말씀이 그 지침을 분명하게 주고 있습니다. “거만한 사람을 책망하지 말아라. 그가 너를 미워할까 두렵다. 지혜로운 사람은 꾸짖어라. 그가 너를 사랑할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훈계를 할수록 더욱 지혜로워지고 의로운 사람은 가르칠수록 학식이 더할 것이다.” 3. 하나님께 쓰임받기를 사모하는 사람(Available) 하나님께서는 아사에게 다시 하나님을 찾을 기회를 주셨습니다. 아사의 발에 병이 들어 심히 중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아사는 여전히 하나님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들에게 구하였습니다. 아사는 전체적으로 보아 의로운 왕이었지만, 하나님을 믿지 않는 벤하닷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또한 그가 질병 가운데 있을 때에도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 쓰임받기를 사모하는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우리로 소원을 두고, 즉 의욕을 가지고 행하도록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내가 누구를 보낼까? 누가 우리를 대신하여 갈 것인가?” 하시며 사람을 찾으십니다. 그때에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저를 보내십시오.” 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쓰임받기를 사모하는 자를 하나님은 찾으십니다.
- 우리 교회의 이름이 “행복한제자교회”입니다
(우리 교회 이름과 연관하여 최영기 목사님의 설교가 생각이 나서 이곳에 옮겼습니다.) 가정교회는 성경적인 교회를 이루자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복잡하게 하면 파워가 나오지 않습니다. 몇 가지 원칙을 붙들고 끝까지 하는 사람들이 성공을 합니다. 교회의 존재목적은 영혼을 구원하여 제자 삼는 일입니다. 불신자에게 전도하여 목자로 세우는 것입니다. 가정교회를 하며 3-4년이 지나면 밥하는 것이 힘든 것이 아니라, VIP가 없는 것이 힘이 듭니다. 사람들을 교회에 나오게 하려면, 그리스도인들이 행복한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행복해야 하는 더 큰 이유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들이 행복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첫째로, 사랑할 때 행복합니다. 어떤 것도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롬 8:38-39)을 받고 사는데, 우리가 행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둘째로, 소망이 있을 때 행복합니다. 경제적으로 부유하다고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디모데후서 4:7-8에서, 사도 바울이 의의 월계관을 소망하는 것처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사람을 위해 월계관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날 때 받을 상급을 기대해야 합니다. 멸망으로 가는 사람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셋째로, 보람 있는 일을 할 때 행복합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특권을 우리는 누리고 있습니다. 영원히 가치 있는 일, 천국에 상급을 쌓아 놓는 일은 우리의 특권입니다. 행복은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쟁취하는 것입니다. 행복지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1. 행복한 생각을 해야 합니다. 집에 모르는 학생들이 들어와 제멋대로 하면 우리는 그들을 내쫓을 것입니다. 그와 같이 부정적인 생각이 들어오면 내쫓아야 합니다. 거룩하고 아름답고 밝은 생각으로 채우십시오. 혹 부정적인 것이 있더라도, 증명이 될 때까지는 긍정적으로 생각하십시오. 2. 행복한 말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말은 온도측정기도 되고 온도조절기도 됩니다. 우리의 혀가 바로 그 역할을 합니다. 요즈음 내가 무슨 말을 하는가? 그것은 성령 충만과 비례합니다. 우리가 행복하다고 고백을 하면 행복해집니다. 던져진 말은 파워를 가집니다. 그러므로 많이 웃어야 합니다. 3. 비교를 멈추십시오. 행복의 적은 비교의식입니다. 행복하던 사람이 자기보다 조금 더 받는 사람의 봉급명세서를 보면서부터 행복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식물인간은 전신마비인 사람을 보며 부러워합니다. 전신마비인 사람은 휠체어를 탄 사람을 보고, 휠체어를 탄 사람은 의족을 한 사람을 보고 부러워합니다. 왜 나보다 나은 사람과 꼭 비교해야 하나요? 비교의식은 도전도 되지 않습니다. 비교의식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을 축복하십시오. 4. 자기 분수를 알아야 합니다. 행복은 권리가 아니라, 은혜입니다. 수술한 사람은 방귀 한 번 뀐 것으로 감사해 합니다. 정직하게 생각해 봅시다. 이만큼 살고 있는 것도 행복입니다. 5.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사십시오. 순종했을 때 상급으로 주시는 것이 행복입니다. 무엇이든지 만든 분이 가장 잘 압니다. 하나님께서 정비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회개하고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이 뜻을 위해서 살 때 우리는 행복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