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 가정교회 일일특강을 위해 기도 부탁합니다.
코로나로 그 동안 평신도를 위한 가정교회 세미나와 목회자를 위한 가정교회 세미나 참석이 자유롭지 못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많은 분들이 가정교회 세미나를 기다리고 계셨던 모양입니다. 3월 중순에 다운교회에서 주최하는 평신도를 위한 가정교회 세미나는 15분 만에 정원이 마감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저도 3월 6일(주일) 저녁에 제주도에 있는 시온교회에서 가정교회 특강을 하고, 다음날인 7일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 15분까지 제주도 목사님들을 대상으로 일일특강을 할 계획입니다. 가정교회는 어떤 목회 방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목회를 성경적으로 해보려는 정신입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을 예로 들면, 성경적인 교회는 첫째로, 예수님을 믿지 않던 사람들이 믿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교인 수가 많아졌더라도, 다른 교인들이 몰려와서 그런 현상이 일어났다면 바람직한 모습은 아닙니다. 둘째로, 교인들의 삶과 인격에 변화가 일어나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그 변화는 개인의 삶, 가정생활, 직장생활, 교회생활 등에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셋째로, 교회생활에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주일성수를 하고 십일조를 하는 정도가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대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는” 보람 있는 사역을 하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속에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정교회를 이루고자 하는 열망으로 일일특강이 진행될 것입니다. 진행을 맡은 목회자들이 아래와 같은 기도제목을 가지고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같은 기도제목을 가지고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 아 래 ————————— 신실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제주 땅에 아직도 복음을 믿지 못하는 90%영혼들의 귀를 열어주시고 깨닫는 마음 주셔서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소서. 제주지역 교회를 사랑하셔서 가정교회 일일특강을 열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일일특강을 위해 기도합니다. 1. 특강에 50명의 목회자 부부가 채워지게 하시고 제주&서귀포 지역 목사님들과 교회들이 신약교회 회복을 위한 가정교회를 세우고 정착해 가게 하소서. 2. 강의 하시는 이경준 목사님의 영육간의 강건함과 4번의 강의를 잘 감당하게 하소서. 3. 사례발표하시는 김재일 목사님과 간증하시는 목자님께 성령 충만하게 하시고 듣는 분들에게 은혜가 있게 하소서. 4. 특강 당일 날씨와 참석하시는 분들의 안전을 지켜 주시옵소서. 5. 코로나 상황에서 어떠한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보호해 주시옵소서. 6. 준비하는 제주지역 목사님 사모님들이 기쁨으로 준비하고 신약교회 회복을 위한 가정교회 열정이 살아나게 하소서. 7. 섬겨주시는 성안교회와 간식을 준비하시는 성도님들께 풍성한 은혜가 있게 하소서. 8. 재정이 필요한 곳에 적절하게 사용되어 낭비되지 않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잠언 31:10-31(이경준 목사 개인 번역)
10. 마음씨 곱고 현명한 아내를 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여성 내면에 감춰진 아름다움은 어떤 보물과도 바꿀 수 없다. 대가를 치르고 사거나 팔 수 있는 물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11. 그런 아내에게는 집안 살림을 모두 맡긴다 해도 걱정할 게 전혀 없다. 그녀는 예산을 세워서 살림살이를 규모 있게 꾸려가며, 필요치 않은 일에 헛되이 지갑을 열지 않으므로 가계에 적자가 없다. 12. 부부로서 평생을 같이 살면서 남편이 올바른 일만 골라서 하도록 돕고, 그에게 걸림이 되거나 그 얼굴을 깎는 일을 하지 않는다. 13. 부지런히 집안을 가꾸고 정리하며, 궂은일이나 힘이 드는 일이라 할지라도 기쁜 마음으로 맡아 한다. 일하는 그녀의 입술에는 찬송과 노래가 떠나지 않는다. 14. 집근처 편의점에서 인스턴트식품을 사기보다는, 조금 힘들더라도 시장에 나가서 신선한 생선과 야채를 구해다 마음이 담긴 밥상을 마련한다. 15. 남편과 아이들이 아침식사를 거르지 않도록 아침에 일찍 일어나 식사 준비를 한다. 16. 자신의 재능이 무엇인지를 잘 분별해서 그것을 키워간다. 꼭 그렇게 하고 싶거나 그래야 한다면 직업을 가지고 일하며 집안 살림도 돕는다. 17. 열심히 일하되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는 센스가 있어서 적당한 운동으로 건강함과 아름다움을 유지한다. 18. 자신이 하는 일에 보람과 의미를 느끼기 때문에 밤 늦는 줄도 모르고 일할 때가 있다. 19. 집안일 하는 솜씨가 워낙 여물어서 보는 사람의 마음이 저절로 즐거워진다. 20. 교회와 동네의 어려운 사람들을 돌아보며 불우이웃을 돕는 일에 앞장선다. 21. 그 집 사람들은 검소하지만 품위를 잃지 않는 옷을 입는다. 날이 춥든 덥든, 때 맞춰 입을 옷이 준비되어 있으므로 아무 불편함이 없다. 22. 남편과 단둘이 있을 때 깔끔하고 분위기에 맞는 옷매무새와 치장을 갖춤으로써 그 자리에 어울리는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23. 그녀의 남편은 지도력을 잘 발휘해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나 주위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칭찬을 받는다. 24. 그녀에게는 장사꾼들마저 탐낼 만한 솜씨가 있어서 그 재주를 살려 부업을 하거나 그것으로 직업을 삼을 수도 있을 정도다. 25. 자신감과 품위가 있으며, 먼 앞날을 내다보는 안목과 현재의 불편을 참을 줄 아는 인내심이 있다. 26. 말 한마디에도 지혜가 실려 있고, 다른 사람을 위로하고 세우는 마음이 가득 담겨있다. 27. 늘 부지런히 일해서 집안을 잘 단속하기도 하지만, 자기 자신도 잘 다스린다. 혼자 있다고 적당히 끼니를 때우거나 텔레비전이나 휴대폰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28. 자녀들은 그런 어머니를 존경하고 따르며, 남편은 남들에게 아내 자랑을 하거나 함께 다니는 것을 무척 기쁘게 생각한다. 29. 현숙한 여인의 남편은 늘 이렇게 말한다. “당신처럼 마음씨 곱고 현명한 사람을 아내로 맞다니 난 참 복이 많은 사람이야.” 30. 아무리 고운 꽃이라도 한때가 지나면 시들고 만다. 뭇 남성의 시선을 사로잡던 여인도 나이 들면 매력을 잃어버린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두려워할 줄 아는 여인의 성숙한 아름다움은 영원히 칭송을 받게 된다. 31. 그녀는 자기가 한 일에 대해서 흡족한 보상을 받고, 가족은 물론, 그녀를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존경과 칭찬을 받을 것이다.
- 가정교회를 잘해보려는 분들을 위하여 (완벽주의는 죄인가?)
예수님께서 듣지 못하는 사람도 듣게 하시고 말 못하는 사람도 말하게 하시니, 사람들이 몹시 놀라서 말했습니다. “그가 하시는 일은 모두 훌륭하다.”(마가복음 7:37) 예수님을 닮아가는 우리들도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 사람들에게 훌륭하다는 칭찬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완전하여라.”(마태복음 5:48)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리고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본을 따라 완전을 추구하고 탁월성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완전을 추구하는 것과 완전주의와는 구별을 해야 합니다. 완벽을 추구하는 것과 완벽주의와는 구별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완벽주의’에 대해 국어사전은 “모든 일을 다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런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아주 작은 부분까지 꼼꼼히 챙기는 습성으로 인해 기술적 완성도를 과시하거나 어떤 영역에서 최고의 자리에 앉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한편 완벽주의는 간혹 소심성으로까지 비춰지기도 합니다. 이런 성향이 심한 경우에는, 완벽주의를 정신과 질환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 학자들도 있습니다. 권위와 권위주의의 차이를 이해하면, 완벽을 추구하는 것과 완벽주의의 차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권위주의는 “어떤 일에 있어 권위를 내세우거나 권위에 순종을 요구하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맹목적으로 복종을 요구하거나 권위를 휘둘러 남을 억누르려고 해서는 결코 진정한 권위를 가졌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완벽을 추구하는 것과 완벽주의에는 그와 비슷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완벽주의는 사람의 가치보다는 그 사람이 일을 얼마나 잘 하는가에 가치를 두기 쉽습니다. 완벽주의는 대체적으로 체계적이고, 정확하게 생각하며 일합니다. 따라서 개인적으로나 업무에서나 정해진 순서를 따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고지식하며 세밀함과 정확성을 요하는 일을 끝까지 처리하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일을 하기 전에 예상되는 결과가 무엇이며, 시간이 얼마나 소요되는지, 그리고 어떻게 작업을 평가할 것인지 구체적인 사항들을 알기 원합니다. 그런데 완벽주의자들이 가질 수 있는 문제는, 자기와 같지 않은 사람에 대해 이해를 하지 못하며 때로는 비판하고, 그가 일하는 수준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데 있습니다. “나는 어떤 성향일까?”를 진단할 때마다 제게 대한 진단결과는 완벽주의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완벽주의로 나온 결과에 대해, 저는 은근히 자부심을 가지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완벽주의 성향 때문에,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데살로니가 전서 5:16, 18)는 말씀을 순종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을 되돌아보아도 완벽하게 하루를 마치는 날은 없습니다. 따라서 항상 기뻐하지 못하고, 범사에 감사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본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 것은 한 마디로 “죄”입니다. 잘 해보려고 노력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입니다. 완벽을 추구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했음에도 원하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에는 겸손하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신 일에 대해 자족하고 감사하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것에 대해 우리는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는 자세(누가복음 10:20)를 가지도록 힘써야 합니다.
- 직장생활 10계명(성경적 직업관)
1. 직장생활을 통하여 하나님을 늘 ‘새롭게’ 만나십시오.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 성경공부, 성도간의 교제 등을 통해서뿐만 아니라 우리는 직장생활이나 일상생활 속에서도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며 은혜 안에서 자라가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2. 욕심과 염려들을 주님께 맡기는 연습을 하십시오. 하나님이 계셔야할 자리에 나의 탐심이나 염려를 앉혀놓지 않아야 합니다. 직장에서는 진급이나 성과 또는 연봉과 연관된 일이 많기 때문에 믿음과 거룩함을 지키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할 수 있는 대로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되 거룩함을 양보해서는 안 됩니다. 3. 은혜롭지 못한 말을 삼가십시오. 우리가 직접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지는 않더라도 우리가 함부로 내뱉는 말 때문에 우리 주위의 사람들이 그리스도인과 하나님의 이름을 욕할 수 있습니다. 4. 휴식과 재충전의 계획을 세우십시오. 평일에는 영적인 전투가, 주일에는 주님께 예배를 드리며 성도간의 교제를 통해서 위로와 격려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주님과의 교제를 생명으로 여기십시오. 그리고 인생은 마라톤입니다. 장기전을 위하여 재충전의 기회를 중간 중간 꼭 계획하십시오. 5. 직원들과 서로 존경하며 예의를 지키십시오. 나이가 많은 분들을 공경하고 나이가 어린 사람들도 인격적으로 대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정보통신 사회 속에서 말 그대로 정이 오가고 믿음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6. 불편한 관계에 있는 분들과는 바로바로 화해하십시오. 내가 원망들을 만한 일을 했을 때나, 다른 사람이 범죄를 한 경우에도 내가 주도권을 가지고 화해를 하도록 힘쓰고,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7. 유혹거리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들을 제공하지 마십시오. 우리 그리스도인은 세상과 분리되는 삶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적으로 유혹을 받기 쉬운 의복이나 행동과 언어를 삼가고 주의해야 합니다. 8. 다른 사람의 물건이나 직장 물건을 귀중하게 사용하십시오. 자기중심적인 문화가 발달할수록 내 소유가 아닌 것들도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을 구별하여 재정과 시간을 사용하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9. 다른 사람에 대한 비판이나 험담을 삼가십시오. 특히 강압적인 상사 앞에서는 꼼짝을 못하고 있다가 뒤에 가서 험담이나 비판을 하기 쉽습니다. 직장사회도 경쟁사회이기 때문에 내가 성공하기 위하여 주의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기 쉽습니다. 10. 다른 사람의 재산이나 사회적 지위와 비교하지 마십시오. 원래 직업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우리가 가장 잘 하는 일, 가장 좋아하는 일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을 끼치도록 힘써야 하는 것이 직업입니다. 연봉이나 직급을 비교하며 열등감에 빠지거나 우월감을 갖지 말고, 고유한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십시오.
- 결혼과 가정은 하나님의 걸작품입니다.
창세기 1:27-28에서 우리는 건강한 자아상, 건전한 가정관, 건실한 직업관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 중에 오늘은 가정관에 대한 요약을 하겠습니다.(3년 전에 설교한 적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결혼과 가정에 대한 사용설명서가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직 미혼인 사람들은 결혼 전에 그 사용설명서를 숙지함으로써 하나님의 걸작품인 가정을 더욱 누릴 수 있습니다. 결혼한 사람들은 자주 그 사용설명서를 읽어봄으로써 하나님의 원래 의도를 따라 가정을 하나님의 걸작품으로 만들어 나갈 수 있습니다. 1. 결혼의 뿌리-하나님이 가라사대(언약관계)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혼자 사는 것을 좋지 못하게 보시고 그에게 아내를 만들어주실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행운으로’ 배우자를 만나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이상적인 결혼을 했기 때문에 평생을 같이 사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배우자는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시고,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마 19:6)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부부관계는 어떤 조건이나 상황에서도 나눌 수 없는 언약관계입니다. 2. 결혼의 줄기-돕는 배필(상호보완)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이 혼자 사는 것을 좋지 않게 보신 하나님은, 아담의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셔서 아내로 맞이하게 하셨습니다. 서로 돕기 위해서 결혼을 하는 사람은 비교적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서로 도움을 받기 위해서 결혼을 하는 사람은 결혼생활에서 행복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서로 돕는 관계로 살도록 우리 각 사람을 서로 다른 독특한 인격체로 만드셨습니다. 3. 결혼의 가지-이는 내 뼈 중의 뼈(사랑표현) 하나님께서 여자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실 때에 아담은 그녀를 보고,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사랑은 그 마음을 표현함으로써 서로를 향한 감정을 더욱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가장 자주 보고 가장 자주 듣는 사람의 목소리에 소홀하지 마십시오. 가장 훌륭한 결혼생활은 남편과 아내 사이에 효과적인 말하기와 효과적인 듣기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4. 결혼의 꽃-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성생활) 하나님께서는 성을 성스럽게 만드셨습니다. 인격적으로 사랑하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혼이라는 과정을 통하여 법적으로 한 가정을 이룬 남편과 아내 사이에서 나누어지는 성이야말로 성스러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을 통하여 온전한 연합을 맛보도록 하셨습니다. 남편과 아내는 서로를 즐거워하며 필요가 채워지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하여 자손을 얻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5. 결혼의 열매-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공동체) 진정한 결혼은 배우자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배우자에게 보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부부는 해결되지 않은 상처와 분노가 축적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순수하고 무조건적인 사과는 결혼생활에서 큰 힘을 발휘합니다. 효과적인 사과는 무조건적인 사과입니다. 용서는 필수적입니다. 용서하기 시작하면 묵은 감정의 사슬과 미움의 수갑에서 벗어나, 두 사람은 진정으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 제자훈련의 진정한 의미
제가 제자훈련을 하면서 늘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죄가 들어오기 전에,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모습을 회복하도록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이 제자훈련의 진정한 의미가 되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것은 창세기 1:27-28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는 대로, 사람들이 건강한 자아상, 건전한 가정관, 건실한 직업관을 가지도록 돕는 것입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도 이 말씀에서 나온 것처럼, 맥을 같이 합니다.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시며 사람을 만드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서 하나님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건강한 자아상) 그리고 “남자가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를 돕는 사람, 곧 그에게 알맞은 짝을 만들어 주겠다.” 하시며 여자를 만들어 주셨습니다.(건전한 가정관) 하나님은 그들에게 복을 베푸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도록 하셨고, 땅을 정복하고 살아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도록 하셨습니다.(건실한 직업관) 1. 건강한 자아상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상대적인 자아상을 가집니다. 나이, 외모, 성격, 학벌, 경제력, 문벌 등이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들입니다. 그 결과 자신이 조금 좋다고 생각하면 우월감을 가지고, 조금 못하다고 생각하면 열등감을 가지기 쉽습니다. 작품은, 누구의 작품이며 누구의 낙관이 찍혀 있느냐에 따라 그 가치를 평가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작품이며 하나님의 낙관이 찍혀 있고, 더구나 하나님의 형상을 닮게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그러므로 그 가치는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런 관점에서 절대적인 자아상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이러한 건강한 자아상은 다른 모든 사람들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바 된 하나님의 작품인 것을 인정하는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2. 건전한 가정관 결혼과 가정 역시 하나님의 걸작입니다. 가정의 원리를 나무에 비유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뿌리는 언약관계입니다. 부부관계는 계약관계가 아니라, 어떤 상황이나 조건에서도 결코 깨뜨릴 수 없는 언약관계입니다. 줄기는 상호보완 관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자가 혼자 있는 것을 좋지 않게 보시고 그를 돕는 알맞은 짝으로 아내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가지는 의사소통입니다. 남편과 아내는 서로 다른 기질, 재능, 습관, 가치관, 문화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서로의 생각을 긴밀하게 나눌 때에 서로 도움을 받으며 친밀해질 수 있습니다. 꽃은 성생활입니다. 부부간의 성생활은 그저 육체적인 관계가 아니라 전인격적인 관계이어야 합니다. 열매는 자녀가 아니라, 부부 두 사람이 하나가 되어 공동체를 이루는 것입니다. 자녀에 대해서는 부모를 떠나 그들의 가정을 이룰 때까지 양육할 책임을 가지고 있는 청지기일 뿐입니다. 3. 건실한 직업관 하나님께서 엿새간 창조하시는 동안에 공통적으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만족하실 수 있도록 만드신 피조물들을,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다스리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건실한 직업관의 기초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업이라는 말을 들으면 돈을 버는 수단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들은 직업을 소명으로 여기고, 직장을 사역지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교회에서만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세상을 섬기기에 가장 좋은 곳이 바로 직장과 사회입니다. 자신에게 주신 은사와 재능을 따라,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 내가 좋아하는 일,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유익이 되는 일을 자신의 직업으로 삼아야 합니다.
- 신앙생활은 습관과의 싸움입니다.
제가 오랫동안 제자 훈련을 하면서 한 가지 의문을 가진 것이 있었습니다. 제자 훈련은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인데, 제자 훈련을 오래 받은 사람들을 보면 사회성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나 사두개인들은 의도적을 예수님을 깎아내리려고 했지만, 예수님은 일반적으로 “그가 하시는 일은 모두 훌륭하다.”(마가복음 7:37)고 칭찬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고,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을 받았다.”(누가복음 2:52)고 누가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닮아가는 제자 훈련을 했다면, 예수님처럼 사람들에게 더 사랑스러워가야 합니다. 사회성이 좋아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거기에 전통적인 제자 훈련과 가정교회 제자훈련의 차이가 있습니다. 전통적인 제자 훈련은 성경 공부를 통해서 가르쳐 제자를 만들려 하고, 가정교회 제자 훈련은 삶을 나눔으로 제자를 만들려 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전자에 의존합니다. 제자를 만들기 위하여 설교와 성경공부에 전폭적으로 의존합니다. 사람이 알면 변하고, 깨달으면 바뀐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런 믿음은 17 세기에 서구에서 시작된 계몽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계몽주의자들은 인간의 근본 문제를 무지로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계몽과 교육을 통하여 무지가 사라질 때에 이상적인 사회가 이루어진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허망한 꿈이라는 것이 2차 대전으로 인해 처절하게 입증되었습니다. 철학의 꽃을 피웠고 민도가 높다는 독일 사람들이 유태인 학살이라는 엄청난 악행을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지식과 지성이 인간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목회자들이 성도의 삶을 바꾸는 도구로 성경 공부에만 의존합니다. 사실 성경 공부가 예수 믿은 후 2-3년 동안은 삶을 바꾸는데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이 후에는 소위 머리만 커지는 신앙인을 만들어냅니다. 오래 된 크리스천 삶이 변하지 않는 것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몰라서라기보다 옛 습관과의 싸움에서 실패하고 있어서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해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다 할지라도, 잘못된 사고를 하고, 잘못된 감정 반응을 보이고, 잘못된 선택을 하는 습관에서 즉시 벗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삶이 변하기 위하여서는 이러한 악습이 주님이 원하시는 삶에 합당한 습관으로 대치되어야 합니다. 습관은 한 번의 결심과 헌신으로 바뀌지 않습니다. 말씀을 통한 깨달음이나 뜨거운 성령체험은 삶의 변화에 대한 동기부여는 해주지만 삶을 실제로 변화시키지는 못합니다. 삶이 변하기 위해서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연습하되 반복적으로 해야 합니다. 순종을 연습하고, 용서를 연습하고, 경건을 연습해야 합니다. 옛 습관이 새 습관으로 대치되도록 만들어주는 연습의 장이 목장입니다. 목장 식구들과 부대끼는 가운데 자신이 변하는 것밖에 해결책이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갈등 가운데 자신이 깨어지면서 변화를 체험합니다. 목자 목녀가 되면 삶이 극적으로 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싫은 사람 안 만날 권리, 싫은 모임 참석 않을 권리, 이웃에게 섬김 받을 권리는 다 포기하고, 참고, 이해하고, 용납할 수밖에 없는 처지로 스스로를 몰아넣었기 때문에 자신이 변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 빵, 복음, 윤리
오늘까지 요한복음 강해설교를 마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 동안에 사신 모습을 마태복음 4:23은, “예수께서 온 갈릴리를 두루 다니시면서,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며,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며, 백성 가운데 모든 질병과 모든 아픔을 고쳐 주셨다.”라고 요약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혼을 위하여) 윤리를 가르치시고, (영을 위하여) 복음을 선포하시며, (몸을 위하여) 육체의 필요를 채워 주셨다.’라고 정리를 해도 좋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과 혼과 몸이 흠 없이 보존되기를 원하십니다.(데살로니가전서 5:23) 그런데 세계 곳곳에 몸을 지탱하기 위하여 먹어야 할 음식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몸을 감싸야 할 의복이 없어서 고생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한 아픈 몸을 치료할 의약품이 없어서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몸에 필요한 이러한 것들을 통틀어서 ‘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혼이 온전치 못한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바른 교육을 받지 못하거나 윤리 의식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나라가 세계 여러 나라로부터 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이제는 도움을 주는 나라로 발돋움한 배경에는 교육의 힘이 컸다고 봅니다. 우리나라의 개화기는 여자들이 종으로 취급을 받고 어린아이들은 물건취급을 받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러 나라의 도움으로 여성들을 위한 교육기관이 세워지고 어린아이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면서 우리나라는 급속한 속도로 발전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성경적 가치관에 바탕을 둔 학교교육의 영향을 받은 것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바른 ‘윤리’교육이 이루어진 결과입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복음’을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영적으로 죽어있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모른 채 영원한 형벌 가운데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대해 우리는 안타까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들의 구원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기도하며, 그들에게 친밀하게 접근하여, 복음을 명확하게 전하여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죄로 말미암아 죽어있는 사람들의 영을 살리는 일입니다. 빵, 복음, 그리고 윤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사람들에 대해 책임을 느껴야 할 세 가지 영역입니다. 이 일들을 한 사람이 모두 관심을 가지고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교회 공동체에 속한 각 사람이 각각 은사를 주신 대로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일을 할 때에 빵, 복음, 그리고 윤리에 균형을 맞출 수 있습니다. 담임목사인 제가 교회에서 해야 할 역할은 각 사람이 자신의 은사가 무엇인지 발견하고 개발하여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을 받도록 돕는 일입니다. 성도를 온전케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사역에 드려지도록 돕는다는 말입니다. 그 동안 우리 교회는 복음을 전하는 일과, 부부의 삶, 학생들을 위한 세미나 등을 비롯해서 바른 윤리를 가르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금년부터 우리 교회에서 시작하려는 것이 있습니다. 복음과 윤리뿐만 아니라, 빵을 제공하는 일에도 관심을 가지고 실천하려고 합니다. 교회 부근에 환경적으로 어려운 분들이 있으실 터인데, 그분들 중 우선 편모를 둔 자녀들 다섯 명에게 매월 적은 돈이지만 일 년 동안 재정적인 도움을 주기로 하였습니다. 무슨 일이든 시작을 하면 점차 발전해 나갈 것입니다. 지금은 비록 작은 일로 시작하지만 갈수록 확대되어서, “너희 빛을 사람에게 비추어서,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여라.”(마 5:16) 하신 말씀을 실천하는 우리 교회가 될 것을 기대합니다.
- 억울한 일이 있을 때
우리는 누구나 오해나 부당한 대우 때문에 상처를 입은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예상하지 않았던 결과들, 직장에서의 참을 수 없는 대우, 가정 내의 갈등, 우리를 속이는 사람들이나 소외시키는 사람들, 좋지 않은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들, 그리고 이밖에 수많은 고통스러운 환경들에 의해 우리는 상처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의 본성은 보복하고, 악을 악으로 갚고, 원한을 풀든지 품어서 자기의 영혼을 오히려 괴롭게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떻게 하기를 원하실까요? 1. 참으라 “주께서 오실 때까지 참고 견디십시오. 보십시오, 농부는 이른 비와 늦은 비가 땅에 내리기까지 오래 참으면서…” ‘주께서 오실 때까지’라는 말은 주의 재림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고난 받을 때 실제로 현장에 주님께서 나타나신다는 것도 의미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래 참지 못하고 너무 성급하게 하나님께서 간섭해주시기를 재촉할 때가 많습니다. 농부가 씨를 뿌릴 때는 언제나 농사규칙, 즉 인내심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고난 받는 자는 농부처럼 기다려야한다는 것이 야보보서 5장의 첫 번째 교훈입니다. 2. 마음을 굳게 하라 우리가 계속 참기만 하고 행동을 자제할 때, 우리는 좌절하고 자기연민의 감정에 휩싸이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야고보는 “참고 견디십시오.”라는 말 다음에 “마음을 굳게 하십시오.”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무거운 것을 지탱하고 받쳐 드는 것’을 뜻합니다. 야고보는 다시 한 번 “주께서 오실 때가 가깝습니다.”를,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할 수 있는 근거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궁극적으로 주님께서 재림하실 것을 말하고 있으나, 우리가 고난 받는 현장에 주님께서 오셔서 위로하실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의미합니다. 3. 원망하지 말라 야고보는 매우 구체적으로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싸우지 않고 참으며, 좌절하거나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할 때, 우리는 그 다음으로 원망하거나 원한을 품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심판을 받지 않으려거든 서로 원망하지 마십시오.”라고 권면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원망하다’라는 단어는 ‘한숨쉬다 또는 신음하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원한을 품고 있음을 포함하는 말입니다. 고난 가운데서 인내의 본을 보였던 대표적인 인물들 중에 많은 선지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을 핍박하는 자를 비난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하는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선포하는 데 충성을 다했습니다.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 그것에 대해 함부로 단언하는 것은 금물입니다. 고난에 대한 해석을 단정적으로 하지 말고, 단지 그렇다 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 하는 것은 아니라 하면 됩니다. 고난이나 어떤 다른 환경에 처하게 되었을 때에 그에 대한 해석을 함부로 내리는 것은 위험합니다. 그런 시기가 지나갈 무렵이 되어야 우리는 되돌아보며 “이런 일이 이런 이유로 일어났었구나.” 또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하셨구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깊은 뜻을 다 알 수 있겠습니까? 오직 하나님은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믿는 우리 성도들이 되실 것을 축원합니다.
- 우리가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려면
가정교회의 장점 중의 하나는 삶을 나눔으로써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배워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삶을 나누다보면, 서로 다른 생각이나 성장배경 등에서 오는 문화의 차이 때문에 갈등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우리는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순종을 통해서 일치해야 합니다. 그러나 비본질적이 문제에 대해서 유동성, 신축성, 다양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유동성, 신축성, 다양성을 인정할 때에 가져야할 원칙이 있습니다. 1. 배려(Consideration) 한 사람에게는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로마서 14장을 보면, 이방 우상에게 드려졌던 고기가 시장에서 싼값에 판매되고 있는 것을 사먹는 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위생상 아무 문제가 없다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방 우상에게 드려졌던 고기를 먹는 것은 그 제사 향연에 참여하는 것이라 생각하여 먹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 고기를 사먹는 모습이 마음에 걸릴 수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 먹는 사람이 먹지 않는 사람을 믿음이 연약한 사람이라고 판단해서는 안 되고, 먹지 않는 사람이 먹는 사람을 속되거나 부정하다고 판단을 해서도 안 됩니다. 아울러 내가 하는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장애물이나 걸림돌이 된다면 그것을 하지 말라고 성경은 명령하고 있습니다. 2. 관심(Concern) 15절 말씀을 보면, 우리가 어떤 문제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면, 그것은 이미 사랑을 따라 살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다른 사람을 세워주고자 하는 관심이 없다는 말입니다. 다른 사람을 세워주려는 의지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지체가 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을 지으실 때에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께서 그를 지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나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그 사람을 위해서도 죽으신 것입니다. 성령님은 내 안에만 거하시는 것이 아니라, 믿는 그 사람 안에도 거하십니다. 그러니 어찌 그 사람을 믿음에서 떠나게 하거나 실족하여 망하게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내가 아무리 좋다고 여기는 일이라도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비방거리가 된다면 금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화와 기쁨입니다. 3. 확신(Conviction) 이러한 배려와 관심을 가진 삶을 살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개인적인 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22절에서는 “그대가 지니고 있는 신념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간직하십시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진리 안에서 확신이 없으면 기준이 흔들리기 쉽습니다. 이 원리는 가정교회에도 그대로 적용이 될 수 있습니다. 교회가 해야 할 본질적인 역할에 대해서는 확신을 가지고 흔들림이 없어야 합니다. 비본질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자신의 확신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것을 보고 이것저것 따라 하다가 잎사귀는 무성한데 열매가 없는 삶을 살기 쉽습니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열매와 보람이 없는 결과를 얻게 됩니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말이 여기에 적용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이 분명한 기준을 가지고, 순종과 일치를 힘써야 합니다. 비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비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내가 하는 말이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장애물이나 걸림돌이 된다면, 그들을 배려하고 그 사람을 세워주고자 하는 관심이 있어야 합니다.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일치를! 비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다양성을! 모든 일에 사랑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