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S
말씀
- 후회 없는 인생, 후회뿐인 인생딤후 4:6-8사탄은 사람들에게 육체의 욕망(주로 즐거움과 쾌락)과 눈의 욕망(주로 소유욕)과 세상 살림에 대한 욕망(주로 인기와 명예와 권력)에 인생을 허비하도록 만듭니다. 사람들이 추구하는 그 모든 것을 해본 솔로몬은 마지막에 “헛되고 헛되다. 모든 것이 헛되다.”라고 고백했습니다. 후회뿐인 인생을 산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와 대조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죽음이 가까웠다고 생각하며, “나는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마련되어 있습니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진정 행복한 사람입니다. 후회 없는 인생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삶을 보면서, 우리의 인생이 어떠해야 할 것인가 묵상하는 귀중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 육체의 욕망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귀하기 때문에 자신에게 이로웠던 모든 것을 그리스도 때문에 해로운 것으로 여기고 살았습니다. 그는 즐겁게 낙을 누리는 삶이 아니라,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해야 하는 사명을 다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가 이러한 삶을 살 수 있었던 비결은, 주님을 만난 이후에 새로운 가치관이 생겼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 이전의 바울의 가치관도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주님을 만난 후에 그가 가치 있게 생각했던 것들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잠시 즐기는 메달이 아니라, 주님께서 나타나시기를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 주실 영원한 의의 면류관을 소망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2. 눈의 욕망 바울은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오물로 여겼습니다. 그는 세상에서 일시적으로 얻는 메달이나 트로피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영원한 면류관을 사모하였습니다. 전도를 하여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드려진 사람에게는 자랑할 면류관(살전 2:19-20)이, 시련과 유혹을 이기는 자에게는 생명의 면류관(약 1:12)이 주어집니다. 모든 일에 절제하며 경건한 제자의 삶을 산 사람에게는 썩지 않을 면류관(고전 9:25)이 주어집니다. 하나님의 양을 먹인 자에게는 영광의 면류관(벧전 5:4)이, 예수님의 재림을 사모하는 자에게는 의의 면류관(딤후 4:8)이 주어집니다. 목자와 목녀를 하면, 적어도 자랑할 면류관, 영광의 면류관은 받을 수 있습니다. 바울과 함께 하나님 나라에서 받을 영원한 면류관을 사모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세상 살림에 대한 자랑 이것은 명예욕과 권력욕을 뜻합니다. 요즈음은 인기에 대한 욕망도 큰 것 같습니다. 육체의 욕망, 눈의 욕망, 세상 살림에 대한 자랑, 이 모든 것을 추구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누렸던 솔로몬은 “헛되고 헛되며, 모든 것이 헛되다.”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바울은 난 지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았고,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서도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 사람 가운데서도 히브리 사람, 율법으로는 바리새파 사람, 열성으로는 교회를 박해한 사람, 율법의 의로는 흠 잡힐 데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세상의 삶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있을 영원한 삶을 어디에서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대한 비전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있는 것조차도 내려놓고, 영원한 상급과 면류관을 바라보며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킨 바울의 고백은,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마련되어 있다.”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삶을 사시겠습니까? 후회 없는 인생입니까? 후회뿐인 인생입니까?
- 지도자의 네 가지 덕목딤전 3:1-7학교, 직장, 교회, 국가의 지도자들로 인해 고통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지도자가 갖추어야할 덕목을 갖추지 못한 것에서 비롯된 결과입니다. 지도자는 그가 속한 공동체 멤버들을 잘 되게 해야 하는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참지도자의 직분을 맡고 싶어 하는 것은 훌륭한 일을 바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을 잘 되게 하려는 책임을 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영적 지도자는 다음의 네 영역에서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있어야 합니다. 1. 개인생활 지도자는 책망할 것이 없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남녀관계가 깨끗해야 하고,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의 감정을 다스릴 뿐만 아니라, 시간과 돈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지도력이 있는 사람은 도덕성에 문제가 있고, 도덕성에 문제가 없는 사람은 지도력이 없는 경우가 많아 참 안타깝습니다. 영적 지도자는 더욱 도덕성과 지도력을 고루 갖추어야 합니다. 술을 찾는 것 자체가 술을 즐기는 것입니다. 술이 들어가면 분별력이 떨어져서 도덕성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술은 성적인 문제와 돈 문제 등 윤리적인 문제가 생기도록 만드는 사탄의 도구입니다. 또한 돈을 사랑하는 것은 모든 악의 뿌리임을 꼭 기억하십시오. 2. 가정생활 자기 가정을 잘 이끌어가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자기 가정을 잘 다스리고 언제나 위엄을 가지고 자녀들을 순종하게 하려면, 우선 좋은 본을 보여 신뢰를 받을 수 있는 가장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 성실하게 갖추어온 실력, 그리고 다른 사람의 의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성품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중요한 두 가지를 맡겨주셨습니다. 시간과 돈입니다. 시간과 돈을 투명하고 지혜롭게 사용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존경과 신뢰를 받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아내가 먼저 남편을 사랑하고 존중할 때에 자녀들도 부모를 사랑하고 존중하게 됩니다. 3. 교회생활 교회를 이끌어나가는 목사나 장로들처럼 영적 지도자가 될 사람은 공동체 안에서 충분한 검증을 거쳐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개인생활과 가정생활이 내적인 생활이라면 교회생활과 사회생활은 외적인 생활입니다. 교회는 주님께서 가장이 되시는 더욱 확장된 가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정을 돌보는 가장의 역할을 온전히 할 수 있는 사람이 교회를 돌볼 영적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자기 가정을 다스릴 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더 큰 가정인 하나님의 교회를 돌볼 수 있겠습니까? 따라서 새로 입교한 사람이 아니라, 교회에서 충분한 기간 동안 그의 삶과 신앙이 확인된 사람이 영적 지도자의 역할을 맡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4. 사회생활 주님을 믿는 성도들은 세상에서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평판을 받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 모두가 부활하게 될 것을 염두에 두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항상 거리낄 것 없는 양심을 간직하려고 애쓰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더구나 주님을 믿는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주님을 드러내는 사람들입니다. 옳든 그르든 우리의 말과 행실을 듣고 보는 사람들에게 주님을 알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지도자들은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도 좋은 평판을 받는 사람이라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지도 않고 마귀의 꼬임에도 빠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 재림을 소망하는 사람살후 3:1-15“오랜 지병에 효자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 있느냐고 말할 수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사람은 그처럼 사랑이 깊지 못합니다. 오래 참지도 못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주님의 재림을 소망하는 사람들에게도 이런 성품이 그대로 적용되는 것입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첫 편지를 보낼 때, 주님께서 재림하실 것에 대해 가르쳤습니다. 주님의 날이 밤에 도둑처럼 온다고 가르치며, 그 날에 부끄럼이 없도록 깨어 있으며 정신을 차리라고 권하였습니다. 이 말을 오해하여 무절제하게 살면서, 일은 하지 아니하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사람들이 생긴 것입니다. 재림을 소망하는 사람이 가져야 바른 태도는 무엇일까요? 1. 인내하며 기다립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인간으로 태어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already) 임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아직은(but not yet)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에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는 데에 이르기를 바라십니다.”(벧후 3:9)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오기를 인내하며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 동안에 부당하고 악한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을 괴롭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미쁘시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을 굳건하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사랑으로 하나 되기를 힘쓰며, 진리의 말씀을 거룩하게 되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통하여 세상 사람들이 주님을 알게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직전에 이를 위해서 기도하셨고,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지상사명을 주셨습니다. 2. 절제하며 근면합니다. 바울과 그 일행은 무절제한 생활을 한 일이 없고, 아무에게서도 양식을 거저 얻어먹은 일이 없었으며, 도리어 어느 누구에게도 짐이 되지 않으려고 수고하고 고생하면서 밤낮으로 일을 하였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로서 섬김을 받을 수 있는 권리도 있었지만, 성도들이 본받을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일하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먹지도 말라.”고 거듭 명령하기도 하였습니다. 주님의 날이 임하면 끝이라는 생각으로, 어떤 사람들은 게으르게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무절제한 사람이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주님의 재림을 올바로 기다리는 사람은 절제하며 더욱 자기 삶에 근면하여 사람들에게 본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소원대로, 많은 사람이 회개하고 주님께로 나아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될 것입니다. 3. 선을 행하며 낙심하지 않습니다. 선을 행하는데도 다른 사람의 반응이 없으면 우리는 낙심을 합니다. 선을 행하는 기간이 길어지면 낙심하기 쉽습니다. 선을 행하는데도 도리어 악한 대접을 받으면 더욱 낙심하게 됩니다. 그러한 때에도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합니다. “선한 일을 하다가, 낙심하지 맙시다.”(갈 6:9)입니다. 우리의 착각 때문에 하나님의 때와 우리가 생각하는 때가 다를 때가 많습니다. 지쳐서 넘어지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때가 이르렀을 때에 반드시 거두게 됩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면 조급해집니다. 하나님의 방법을 지키지 못하면 부정을 저지르게 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면 욕심에 지배를 받게 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기회가 있는 동안에 모든 사람에게 선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특히 믿음의 식구들에게 더욱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이요, 우리의 형제자매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날이 가까워 올수록 우리는 더욱 깨어 있다가 주님을 반갑게 맞이해야 합니다.
- 성숙한 신앙살전 5:12-24데살로니가에 보내는 편지에는 더욱 사도 바울의 감사가 넘치고 있습니다. 1장에서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믿음과 행함을 칭찬하고 격려했습니다. 그들은 우상숭배를 하던 사람들이었는데 복음의 소망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면 반드시 환난이 따르게 되어 있는데, 그러한 중에도 그들은 반듯하게 서있었습니다. 그들은 동족에게 고난을 받았지만, 믿음으로 잘 이겨내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고난과 능욕 속에서도 하나님을 힘입어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담대히 전했습니다. 이를 본 데살로니가 성도들 역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동족에게 고난을 받았지만 믿음으로 잘 이겨내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모습들이 바로 영적으로 성숙한 신앙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성숙한 신앙을 가질 수 있을까요? 1. 항상 기뻐하는 신앙 사람의 마음속에 감정잔고(感情殘高)가 풍성하면 마음의 여유가 생깁니다. 주님의 은혜 안에서 항상 기뻐하는 삶을 살 때에 우리의 감정잔고가 풍성해집니다. 기뻐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할 때도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는 권면의 말을 한 사도 바울의 삶을 보면, 기뻐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이 빌립보서를 기록할 때에 그는 세 번의 선교여행을 마친 후, 로마 감옥에 갇혀있을 때였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때에도 기도드릴 수 있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좋은 일뿐 아니라 어두운 일에도 우리가 모두 감사할 수 있는 비결은, 우리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성실하신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숙한 신앙입니다. 2. 쉬지 않고 기도하는 신앙 우리에 대하여 가장 잘 아시는 분은 바로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유익한 것이 무엇인지를 가장 잘 아십니다. 우리를 위하여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자신을 내어주기까지 하셨습니다.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은 우리를 변화시키시며 우리를 통해 역사해 주십니다. 이러한 삼위일체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입니다. 세상에서 힘이 있는 사람에게서 “언제든지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해.” 라는 말과 함께 명함 한 장을 받아도 큰 힘을 얻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그리고 우리를 만드셔서 우리를 가장 잘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도움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명령을 하시기 전에, “쉬지 않고 기도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3. 범사에 감사하는 신앙 ‘범사’라는 말은 ‘모든 일’이라는 뜻이며 ‘평범한 일’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하찮은 일로부터 큰일까지 모든 일에 감사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 되시고 우리는 그분의 자녀가 된 것은 가장 감사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기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막지 말고,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하찮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일을 잘 살펴서 선한 것을 붙잡고 악한 것을 멀리해야 합니다. 우리가 특별히 감사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그날에 흠 없게 보존되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온 영과 혼과 몸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그날까지 아무 흠 없이 지켜주실 것입니다.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은 신실하시기 때문에 이 일을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 영적 성장의 프로세스골로새서 1:28-291. 그리스도를 전함 우리는 오직 우리의 죄 값을 대신 치르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그리스도를 전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사실을 전합니다. 우리의 죄 값을 대신 치르기 위하여 돌아가신 분은 오직 한 분,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나신 분도 오직 한 분, 그리스도이십니다. 2. 각 사람의 중요성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자로 세우기 위하여, 우리는 각 사람을 권하고 각 사람을 가르칩니다. 왜냐하면 각 사람의 중요성을 알기 때문입니다. 각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각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의 죄 값을 대신 치러주셨습니다. 성령님께서 각 사람 안에 내주하기를 원하십니다. 3. 말씀과 지혜로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말씀으로서 사람들이 어떻게 행해야 할지 교훈해 주십니다. 바른 길에서 벗어났을 때에는 책망해 주시며, 어떻게 되돌아가야 할지 바르게 해주십니다. 그리고 바른 길을 지속적으로 걸어갈 수 있도록 훈련해 주십니다. 우리는 그 말씀과 아울러 그 말씀을 어떻게 삶에 적용해야 하는지 지혜로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4. 권하고 가르침 바울은 성도들에게 “여러분은 나에게서 배운 것과 받은 것과 듣고 본 것들을 실천하십시오.”(빌 4:8)라고 권면하였습니다. 우리는 성도들을 말로 가르침과 동시에 삶으로 보여줌으로써 가르치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처럼, 권하고 가르침으로써 나의 성품을 닮도록 가르쳐야 하고, 또한 나의 사역을 닮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5. 성령의 역사를 따라 우리는 성령님의 능력을 힘입지 않고서는 “예수는 주님이시다.”라고 고백을 할 수 없습니다. 또한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활동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것을 염원하게 하시고 실천할 수 있도록 능력도 주십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통하여 성령님의 능력을 힘입지 않고서는 영적 성장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6. 힘을 다하여 수고함 우리는 마치 어머니가 자기 자녀를 돌보듯이 맡겨진 사람들에게 유순하게 처신해야 합니다. 그것이 목자-리더십입니다. 때로는 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이, 권면하고 격려하고 경고해야 합니다. 그것이 청지기-리더십입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람들은, 우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양 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힘을 다하여 수고하는 것입니다. 7. 온전한 사람으로 세움 우리가 사람들을 영적으로 돕는 궁극적인 목표는, 그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사람으로 세우는 것입니다.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고,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을 받았다.”(눅 2:52)고 기록하고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경지에까지 다다르는 것이 영적 성장의 목표입니다.
- 성경적인 자아상1. 세상의 거울 1) 왜곡된 자아상 – 볼록 거울 2) 세상 거울이 진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이유 (1) 어릴 때의 거울 (2) 성장 이후의 거울 (3) 보이지 않는 영향력 에베소서 2:2, 베드로전서 5:8 2. 왜곡된 자아상의 결과 1)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 반 고흐의 자화상 2) 다른 사람도 행복하지 않게 한다. 마태복음 22:39 3) 하나님의 부르심에 올바르게 반응하지 못할 수 있다. 3. 2개의 가치 1) 내가 만들어 낸 가치(created value) 요한일서 2:17 2) 다른 사람이 부여한 가치(derived value) 아프리카 부족 결혼 풍습 4. 하나님의 거울 1) 하나님이 치르신 대가 속량 (贖良, redemption) 로마서 8:23, 로마서 6:17, 고린도전서 7:23, 로마서 5:8 2) 하나님의 걸작품(masterpiece) 에베소서 2:10 성경적인 자아상: 하나님이 나를 보시는 관점으로 내가 나를 보는 것 5. 개인 적용
- 처음부터 마지막까지빌립보서 1:6, 2:13, 3:14, 4:19성경에는 신이 나고 힘이 되는 성경구절이 많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신명기 11:12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차지할 약속의 땅을 앞에 두고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몸소 돌보시는 땅이고, 주 당신들의 하나님의 눈길이 해마다 정초부터 섣달 그믐날까지 늘 보살펴 주시는 땅입니다.”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주신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도 주신 약속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보아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마태복음 28:20)라고 이 약속을 확인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서, 주님의 나라에 이를 때까지, 아니 주님의 나라에서도 영원토록 우리를 몸소 돌보시고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우리를 보살펴 주시는 분이십니다. 1. 우리 가운데 선한 일을 시작하신 분(1:6) 빌립보 교회는 드로아에서 하나님이 바울에게 보여주신 환상으로부터 생겨난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케도니아 사람 하나가 바울 앞에 서서 “마케도니아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하는 환상을 본 대로 바울이 건너가서 복음을 전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두아디라 성에서 온 자주 장사인 루디아가 회심을 하였고, 빌립보 감옥의 간수가 회심을 하였습니다. 이 모든 선한 일을 빌립보 사람들 가운데 행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가운데에도 찾아오셔서 주님을 알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2.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는 분(2:13) 하나님께서는 빌립보 성도들 안에서 역사하셔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을 주시고 그것을 또한 실천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시인하고 예수님을 구주와 주인으로 마음속에 모실 때에, 예수님의 십자가 피로 말미암아 우리는 죄사함을 받습니다. 죄의 형벌을 받지 않게 되는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성이 남아있는 연약한 우리에게 여전히 유혹이 다가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시련만 허락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 수 있도록 우리를 붙들어 주십니다. 3. 목표점을 바라보고 달려가게 하시는 분(3:14) 세상 사람들은 더 알고, 더 가지고, 더 잘나고, 더 있기 위하여 아침 일찍 일어나고 저녁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습니다. 그들과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수고했던 바울은, 주님을 만난 후에, 주님이 가장 귀한 분임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닮아가고 하나님께서 위에서 부르신 그 부르심의 상을 받으려고 목표점을 바라보고 달려가는 것으로 삶이 변화되었습니다. 가장 값지고 영원한 것을 위하여 일생을 투자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고 복음을 깨달은 사람은 인생관과 가치관과 성공관이 변화하게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목표가 생기고 삶의 우선순위가 바뀌는 것입니다. 4.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모두 채워주시는 분(4:19) 빌립보 교회 안에는 사도 바울과 복음을 전하는 일에 함께 애썼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 두 여인이 함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다툼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시고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지만, 여전히 연약함과 죄성으로 말미암아 온전치 못한 삶을 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영광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모두 채워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친 백성인 이스라엘에게 그러셨던 것처럼, 정초부터 섣달 그믐날까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돌봐주실 것을 믿습니다.
-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복갈라디아서 4: 1~11우리는 복음을 전할 때에, 아직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죄인임을 드러내어 깨닫게 해서 그들을 구원으로 인도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전해야할 더 중요한 소식은 하나님께서 죄인을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전하는 모든 말과 행동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사랑이 비춰지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자녀가 누릴 수 있는 복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의 얼굴에 기쁜 모습은 보이지 않고, 의무감에 가득 찬 모습이 보이거나 억지로 전하는 모습이 보인다면 어느 누구도 복음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자녀가 누릴 수 있는 복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1. 상속을 받을 수 있는 복 유대주의자들은 복음을 받아들인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율법으로 돌아갈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율법의 행위에 근거하여 살려고 하는 사람은 누구나 저주 아래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의 모든 것을 지켜 행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받으려고 하는 사람은 죄를 범하여 율법에게 종노릇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는 어떤 행위에 근거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대가를 받는 것이 아니라, 단지 아들이기 때문에 상속을 받을 수 있는 복이 있습니다. 나이가 어릴 때에는 어린 자녀들은 감시를 받고 통제를 받기도 합니다. 그래도 자녀는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받을 존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구세주와 주인으로 모심과 동시에 상속받을 수 있는, 영원한 생명, 기쁨, 의롭다 함을 얻음, 죄 사함, 기도응답, 지혜 등을 풍성하게 누리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을 “아빠”라 부를 수 있는 복 구원은 죄로부터의 해방 이상의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은 하나님의 아들의 명분을 얻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이에 대해 어떤 작가는 다음과 같이 아름답게 표현하였습니다. “인간을 하나님의 아들로 만들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이 되셨다.” 우리는 법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의 신분을 얻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 다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우리 마음에 보내주셔서 우리가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를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아빠”라는 말은 어린아이가 집에서 그의 아버지에게 편하게 사용하는 말입니다. 어린아이가 아버지에게 달려가는 것과 똑같은 믿음과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곧장 달려갈 수 있는 복을 담대하고 당당하게 누리시기 바랍니다. 3.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복 유대주의자들의 심각한 잘못은 사람들을 형식종교에 매여 있게 하고, 진정한 영적 체험으로 인도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형식종교는 인간의 노력을 강조하고, 예배 시에 어떤 물건을 사용하며, 신성하게 보이는 의식을 많이 행합니다. 그러나 제물과 제단, 그리고 의식들은 모두 사람들에게 영적인 실체를 가르쳐주는 상징물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오심으로써 이런 상징들을 완성시키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경험에 의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알게 됩니다. 인간의 노력에 의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아시고 우리에게 자신을 스스로 나타내 보여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더 잘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형식종교에 매여 종노릇하지 말고, 성령 안에서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자유를 누릴 줄 알아야 합니다.
- 거듭남의 증거들고린도후서 5:16-21얼마 전 기독교 뉴스를 통해서 미국 사람들이 신앙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듣게 되었습니다. 제일 먼저 지적하고 있는 것은 혼합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증가되어 70%에 이른다는 것이었습니다. 교회는 다니지만 환생을 믿는 사람도 많고, 모든 신들이 평등하다고 믿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종교 쇼핑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 교회를 정하지 않고 이 교회 저 교회를 다닌다는 것을 여러 사람들이 지적하고 있습니다. 오늘 “거듭남의 증거들”이라는 말씀을 통하여 거듭남을 바로 알고 거듭남의 기적을 모두 체험하는 우리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1. 새로운 피조물 거듭나기 전에는, 구원받지 못한 자신의 상태가 실제로 어떤지 깨닫기가 어렵습니다. 입체 안경을 써보지 않은 사람은, 자기가 본 영화가 입체 영화인 것으로 착각을 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입체 안경을 쓰고 영화를 본 사람은, 안경을 쓰지 않은 채 평면으로 보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거듭난 사람은, 거듭나지 않은 상태가 어떤지를 알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는 것은 단순히 새로운 종교를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새 생명을 얻는 것을 의미합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단순히 예수님 안에 있는 초자연적인 것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를 직접 체험하는 것입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전에 가지고 있던 옛 성품을 일부 고쳐 가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성품이 창조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2. 하나님과의 화해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은 자기 죄와 허물로 죽은 상태에 머물러 있습니다. 본질상 진노의 자녀입니다. 어둠을 사랑하며 빛을 미워합니다. 영적인 빛이 비치면 저항하는 반면에 영적 어둠이 에워쌀 때는 순순히 받아들입니다. 거듭나지 않은 마음은 사랑해야 할 대상을 미워하고 미워해야 할 대상을 사랑합니다. 마음이 돌처럼 단단합니다.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무지가 아니라, 돌처럼 굳고 거역하는 마음입니다. 그러한 마음은 하나님께 복종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복음을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그리스도께 나오지도 못하며 그리스도를 영접하지도 못합니다. 끝내 죄의 종이요 사단의 종으로 살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안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화해의 손을 내밀어 주셨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씻음과 새롭게 하심으로 거듭나게 하셨습니다. 3. 그리스도의 사신 교회 안에는 거듭나지 못한 채 교회 문지방을 넘나드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 거듭난 영혼은 세상을 이기며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다. 그리고 습관적인 죄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한 사람이 거듭나는 사건에서 하나님의 역할은 결정적이며, 한 사람이 거듭나는 사건에서 우리의 역할은 필수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겸손과 종의 마음을 가지고 온유함과 두려운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혀 전하지 않고 침묵하는 것은 사랑과 모순됩니다. 거듭난 사람은 사랑의 마음과 섬김의 삶을 통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사신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고, 복음을 전하여 이웃을 주님 앞으로 인도하는 일이 가장 큰 사랑인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거듭난 사람은 거듭남의 축복을 누리며, 나아가 다른 사람들이 거듭날 수 있도록 하나님의 통로로 세움 받는 삶을 사모하게 됩니다.
- 부활의 주님을 만나면 변화됩니다고린도전서 15:1-11저는 선교단체에 있으면서 복음을 전하는 일에 드려지다가 늦게야 집을 샀습니다. 열 몇 차례 남의 집을 옮겨 다닐 때마다 저의 어머님은 같은 질문을 하셨습니다. “이건 또 얼마 주고 얻었냐?” 좀 늦었지만 아파트를 사서 집을 옮기고 난 후에 저의 집을 방문하신 어머님께서 똑같은 질문을 하셨습니다. “이번에는 집을 샀습니다.”라고 대답을 하여도 ‘웃기지 말라.’는 듯이 제 말을 믿지 않으셨습니다. 그 집이 내 집이라는 확실한 증거는 무엇이 있을까요? 첫째는, 집문서입니다. 둘째는, 집값을 치렀다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셋째는, 내가 그 집에서 당당하게 살고 있는 변화의 모습입니다. 부활에 대한 증거도 이와 똑같습니다. 1. 예언의 성취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가장 확실하고 변함이 없는 증거는, 부활 1,000년 전에 이미 예언(시편 16:10)되었던 그대로 성취되었다는 것입니다. 부활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탄생하실 장소, 동정녀 탄생, 사람들에게 거절당하시고 죄수들과 함께 십자가에 달리실 것을 이사야 선지자가 주전 700년에 예언하였습니다. 예루살렘에 승리의 입성을 하실 것, 친구에게 배반당하실 것, 손과 발에 못 박힐 것, 승천하실 것도 주전 1,000년에 예언된 대로 모든 것이 성취되었습니다. 세상에서 유명한 사람들은 그들이 유명해진 후에 그들을 신격화하기 위해 많은 말들을 만들어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탄생도 하시기 전에 모든 것들이 예언되었고, 예언된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예언된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을 믿습니다. 2. 역사적 사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인간으로 오셨고,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세상의 역사도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을 기준으로 하여 BC(기원전)와 AD(기원후)를 나눕니다. 이것은 기독교를 극심하게 반대하고 있는 사람들도 사용하고 있는 연대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베드로와 열두 제자에게 나타나셨고, 한 번에 오백 명이 넘는 형제자매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의 부활은 환각이나 착각으로 본 것도 아니요, 제자들이 시신을 훔쳐가서 부활사기극을 벌인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부활을 맹목적으로 믿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제자들은 충분히 의심하고, 충분히 불신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없었던 일을 있었던 일처럼, 부활신앙을 조작하지도 않았습니다. 부활사건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기에 굳이 꾸밀 필요가 없습니다. 3. 목격자들의 변화 교회를 박해했던 사울의 회심은 부활의 사실을 증명합니다. 사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났고, 그로 인해 부활을 선포하고 변증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지독하게 핍박했던 사람이 부활의 선포자로 변한 근본적인 이유를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신성을 의심했던 친동생 야고보의 회심도 부활을 확실하게 증명합니다. 가장 가까운 가족으로서 예수님의 성장과정을 지켜본 야고보는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이 메시아로서 우리 죄를 대속하여 죽는다는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부활의 증인으로 변했고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모습으로 야고보에게 나타나셨다는 증거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 숨어있기에 급급했던 제자들이 부활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면서, 그들은 겁 없는 전도자로 변했습니다.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고, 우리 삶 가운데 존재하시는 예수님을 만난 우리 성도들도 큰 변화를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