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는 선물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어렴풋하게 ‘좋은 공동체’에 대한 그림을 품고 있습니다. 늘 따뜻하고, 갈등이 없고, 모두가 헌신적이며, 나의 필요를 알아서 채워주는 공동체의 그림입니다. 이 그림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이 그림과 실제 공동체가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순간부터 실망과 낙심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그림을 붙들고 있으면 공동체의 부족함이 자꾸 눈에 밟히고, 미지근한 온도를 못마땅해하고, ‘왜 우리는 저들처럼 되지 못할까?, ‘왜 저들은 우리처럼 되지 못할까?’ 하며 서로를 다그치게 됩니다. 현실의 모습을 늘 그 이상과 비교하다 보면 실망하고 낙심하다가, 마침내 공동체를 등지거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 누군가를 향해 판단하고 심판하는 자리에 서게도 됩니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그의 저서 “성도의 공동생활(Life Together)”에서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는 우리가 실현해야 할 이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실재이며 선물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본회퍼는 1930년대 나치 치하 독일에서 목회자 후보생들과 함께 공동생활을 하며, 공동체가 얼마나 쉽게 ‘이상’으로 변질되고 그 이상이 얼마나 쉽게 공동체 자체를 무너뜨리는지를 직접 목격합니다. 그 공동체는 이상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러나 본회퍼는 바로 그 부족함 속에서 공동체의 참된 본질을 발견해 갔습니다. 그가 발견한 것은,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선물로 받는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목회자들의 스트레스도 “어떻게 멋진 공동체를 만들어낼 것인가?” 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나 이미 내가 목회하는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이다” 라는 마음을 가질 때, 부족하고 서투른 모습조차 감당해야 할 스트레스나 짐이 아니라 감사히 누려야 할 은혜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공동체가 선물이라는 것은, 그 공동체를 지탱하는 힘이 우리 자신의 성품이나 인내심에 있지 않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맡겨 주신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인격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이미 그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사람들을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품는 것입니다.
목장을 섬기는 목자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장이 선물이라는 생각을 하면 목장 식구들이 목자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에도, VIP가 몇 번이고 넘어질 때에도 실망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를 붙드시는 분은 결국 우리가 아니라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목자, 목녀의 어깨에 지워진 무게가 가벼워지는 지점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목장 식구들에게도 목장이 선물이라는 생각을 하면 목장을 대하는 자세가 변할 것입니다. 선물로 받아들이는 사람의 반응은 요구가 아니라 감사이기 때문입니다. “이 목장이 내게 무엇을 줄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리 풍성한 목장 안에 있어도 늘 부족함을 느낍니다. 반대로 “나는 이미 얼마나 좋은 목장을 선물로 받았는가”를 아는 사람은, 부족하고 삐걱거리는 목장 안에서도 감사를 발견합니다. 작은 목장이든, 갈등이 많은 목장이든, 형식적인 모임처럼 느껴지는 목장이든, 그 목장이 지금 이 자리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미 은혜입니다.
이제까지 우리는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만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그 구원을 이루어 가시기 위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교회와 목장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 생각의 변화에서부터 보이지 않는 변화가 시작될 것입니다. 그 놀라운 선물을 감사함으로 받는 모두에게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이 충만해질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