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S
말씀
-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요한복음 10:10-11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부모가 자녀들에게 기대하는 모습을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기대하시는 모습과 닮은 것들이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을 향해 크게 두 가지 기대를 합니다. 첫째는, 자녀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자녀들과 좋은 관계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이와 똑같은 것을 기대하셨습니다. 사람들의 죄로 말미암아 깨어진 이 두 가지 기대를 이루시기 위하여 예수님은 이 땅에 사람으로 오신 것입니다. 1. 생명을 얻게 하고(좋은 관계)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성경에서는 여러 비유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 목자와 양, 농부와 포도원, 토기장이와 진흙, 주인과 종 등이 그 예가 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포도나무로, 하나님 아버지는 농부로, 그리고 사람을 가지로 비유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이다. 사람이 내 안에 머물러 있고, 내가 그 안에 머물러 있으면, 그는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요 15:5)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잘 붙어있어야, 즉 좋은 관계 가운데 있어야 가지는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가지와 같은 사람들이 죄로 말미암아 포도나무로부터 끊어진 것을 다시 연결시켜 주시고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하여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죄의 값을 치러주셨습니다. 2. 넘치게 얻게 하려고(Well-being) 제가 예수님을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저희 어머니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자연스럽게 “어머니는 저를 기르시면서 무엇을 기대하셨어요?”라는 질문으로 접근을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저희 어머니는 거의 반사적으로 “미친 놈.”이라고 반응을 하셨습니다. 아들에게 그게 무슨 말씀이냐고 되물었더니, “너 잘 되는 것 말고 무얼 바라냐?”고 대답을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부모님이 자녀에게 기대하는 것은 자녀가 잘 되는 것과 자녀와 좋은 관계 가운데 지내는 것입니다. 요즈음 유행처럼 사용하고 있는 “웰빙”이라는 말과, 잘 되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원하시는 것도 바로 사람들이 풍성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지가 풍성한 열매를 맺으려면 나무에 든든하게 붙어있어서 뿌리로부터 올라오는 진액을 제대로 흡수하기만 하면 됩니다. 3. 선한 목자로 오신 예수님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립니다. 삯군은 엄밀하게 말해서 목자가 아닙니다. 양들도 자기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조금만 위험한 일이 생기면 양들을 버리고 달아납니다. 세상의 어떤 종교의 창시자도 사람들을 위하여 죽은 사람은 없습니다. 죽었다가 부활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양과 같은 우리를 위하여 선한 목자가 되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자기들을 지켜주고, 인도해주고, 필요를 공급해주는 부모가 곁에 있을 때 가장 자유롭습니다. 양들은 자기들을 지켜주고 인도해주고 꼴을 먹이는 선한 목자가 곁에 있을 때 가장 자유로운 법입니다. 다윗은 선한 목자이신 주님에 대해 시편 23편을 노래하였습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 없어라.” 주님은 우리의 모든 필요를 공급해주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의 막대기와 지팡이로 나를 보살펴 주시니, 내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주님은 모든 악한 것들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내가 사는 날 동안 나를 따르리니.” 주님은 우리를 가장 유익한 길로 인도해주시는 분이십니다.
- 성령님이 내주하시는 삶로마서 8:9-17로마서를 통해서 우리는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 그리고 성령 하나님께서 일치된 계획과 일치된 마음으로 함께 일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18-3:20은 모든 인류에게 주어지는 성부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정죄)을 말하고 있습니다. 3:21-5:21은 우리의 죄와 죽음을 대신 담당하고 또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서, 우리를 율법과 죄와 죽음으로부터 자유하게 하시고 새로운 삶을 살게 하시는 성자 하나님(칭의)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6:1-8:39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계획하고 예비해 두신 것을 우리 안에서 성취하시는 성령 하나님(성화)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성령님이 내주하시는 삶의 축복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1.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습니다. 성령님을 마음속에 모셨다고 해서 갑자기 성품이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성령님께 붙들린 바가 되면 성령님의 인도를 받게 됩니다. 육신적인 마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거나 순종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내주하시는 사람들은 첫째로 몸의 행실을 죽이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그의 안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의 인도함을 받습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과 깊은 교제 가운데 있으며 성령님께 순종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은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를 통해서 성령님은 능력 있게 역사를 하십니다. 이것을 우리는 ‘성령 충만’이라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두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뿐만 아니라 성령 충만한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2.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릅니다. ‘아바’라는 말은 아람어로 ‘아버지’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바울 시대 유대 어린이들이 집에서 그들의 아버지를 부를 때 사용하던 말입니다. 지금 아이들이 자기 아버지를 ‘아빠’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한 의미입니다. 사람들은 감히 하나님에게 이런 말을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휘장이 찢어졌고, 성령님이 우리 안에 내주하심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친근한 아버지로 부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담대하게 그리고 당당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종이 아니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존경하며 교제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3. 성령님이 우리 영으로 더불어 증거하십니다. 성령님은 이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신하도록 도와주십니다. 첫째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와 주인으로 모셔들일 때에 예수님은 내 마음속에 들어오시겠다고 약속하신 성경을 통해서 확신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내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과 매일 교제를 나누는 삶을 통해서 확신하게 됩니다. 그리고 셋째로, 성령님과 교제하며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되면 우리의 인격과 삶이 변하게 됩니다. 이러한 변화를 통해서 성령님은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더욱 확신하도록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속한 모든 것을 받을 수 있는 상속권이 있습니다. 영생, 평강, 기쁨, 하늘나라 시민권, 기도할 수 있는 특권, 죄와 사망과 율법으로부터 해방되는 것 등. 우리는 주님과 함께 이러한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합니다.
- 인생은 출장이다사도행전 28: 23~31개념이 분명해지면 마음이 정리될 때가 있습니다. 저도 예수님을 믿은 지가 어느새 50년이 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부터 선교단체를 통해서 믿기 시작해서 처음부터 헌신된 삶을 추구해 왔기 때문에 특별히 바뀐 것은 없지만, “인생은 출장이다.”라는 개념을 가지게 되면서 많은 것들이 정리가 되었습니다. 출장을 가면 출장 목적을 이루는 것이 항상 우선순위에 있어야 합니다. 약간의 불편함은 감수해야 합니다. 언젠가는 귀가할 날을 소망을 삼고 삽니다. 그리고 간단하게 삽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출장비는 본사에서 대기 때문에 굳이 내가 생활비를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도행전을 묵상하면서, 사도 바울의 인생이 바로 출장인의 삶이었음을 보게 됩니다. 1. 인생은 출장입니다. 23절의 “바울의 숙소”라는 말이나 30절의 “자기가 얻은 셋집”이라는 말을 볼 때에 바울은 임시 머물 곳을 구해서 생활을 했던 것 같습니다. 바울은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가진 자로서 이 세상에 출장을 나온 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불편을 감수하면서 출장을 나온 목표를 이루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고 살았습니다. 바울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 세상에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전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하나님의 놀라운 빛에 들어가게 하신 아름다운 덕을 전하는 임무를 가지고 이 땅에 출장을 나온 사람들입니다. 출장비는 모두 본사에서 대게 마련입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세상에서 필요한 출장비는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겠다고 성경에 약속해 주셨습니다. 2. 출장 목적은 복음 증거입니다. 바울은 어디에서나 “그리스도는 고난을 당하셔야 한다는 것과, 그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가장 먼저 부활하신 분이 되셔서,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 사람들에게 빛을 선포하시리라는 것”(행 26:23)을 전했습니다. 이 소식을 전하는 것이 바울이 세상에 출장을 나온 목적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 말을 믿었고, 어떤 사람은 그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시인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보고 들은 사실에 대하여 증인의 역할을 할 뿐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을 의지하며 기도로 밭을 일구고, 씨를 뿌리는 일을 합니다. 씨를 뿌리지 않는 한 추수는 있을 수 없습니다. 기쁨이 넘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보여주고, 계속 대화를 나눌 기회를 가지며 이삭을 잘 가꿉니다. 그리고 익은 곡식을 거두어들이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들입니다. 3. 출장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애의 막바지에 이르면 열정을 잃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자기가 얻은 셋집에서 두 해 동안 지내면서, 자기를 찾아오는 모든 사람을 맞아들였습니다. 그리고 담대하게 하나님 나라를 전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일들을 가르쳤습니다. 그의 “옥중서신”이라고 일컬어지는 에베소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와 빌립보서도 이때에 기록된 서신들입니다. 하늘나라의 메시지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간섭 아래 유대인에게서 이방인에게로,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전해졌습니다. 바울의 세상 출장은 끝났지만, 복음을 전해야할 출장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제 우리에 의해 사도행전 29장이 계속 기록되어야 합니다. 하늘나라의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어서, 모든 민족에게 증언이 되면 그 때에야 출장이 끝날 것입니다.
- 야곱이 이집트로 이민 간 까닭창세기 46:1-6야곱은 70명이 넘는 대가족을 이끌고 이집트로 이민 가야 하는지를 결정합니다. 이때 야곱은 130세의 나이로 고향을 떠나서 다른 나라에서 새롭게 정착하기에는 쉽지 않은 나이입니다. 무엇보다도 야곱은 가나안 땅을 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과 가나안에서 그의 후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크게 번성할 것이라는 약속을 평생 붙들고 살았는데, 이집트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가 왜 이집트로 가기로 하였는지, 어떻게 그런 결정을 하였는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브엘세바에서 야곱을 만나시고 이집트로 인도하십니다. 야곱 가족의 이민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계획하셨던 일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야곱 가족 이민을 계획하시고 이루시는 하나님을 보면서, 지혜와 능력에 감탄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나의 삶도 인도하신다는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다. 1. 야곱 가족의 이집트 이민 1) 이집트로 가게 된 배경 2) 이집트로 가는 2개의 길: 지중해 해안길과 브엘세바 길(창46:1) 3) 브엘세바 길로 간 이유(창46:3, 창26:2-4, 창28:13-14) 2. 하나님의 인도하심 1) 야곱에게 응답하신 하나님(창46:2-4) 2) 이집트로 가게 하신 이유 ▶야곱 당시의 가나안 족속들(창14장) ▶하나님의 시간표(창15:16) ▶고센에 정착시키신 이유 3. 개인 적용
- 영혼 구원에 대한 예수님의 열정요한복음 4:1-10요한복음을 가장 잘 요약하고 있는 구절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3:16)일 것입니다. 이 말씀에는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열정이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과 같은 마음을 가지신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 한 사람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열정이 본문에 나타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주님을 찾기 전에, 주님께서는 먼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에게 다가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요한은 “사랑은 이 사실에 있으니, 곧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기 아들을 보내어 우리의 죄를 위하여 화목제물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요일 4:10)라고 표현했습니다. 1. 구원에 대한 관심 예수님께서 사마리아로 통행하실 뿐만 아니라, 사마리아 여자에게 “마실 물을 좀 달라.” 하신 데에는, 사마리아 여인과 그 동네 사람들을 구원하시려는 예수님의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수가 성의 여인과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아야 할 사마리아 사람들의 구원에 대해 가지셨던 관심을 우리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구원코자 하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유대인은 통과하지 않던 사마리아 땅을 일부러 가기로 작정하신 것이 확실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하심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을 최우선순위에 두고 계셨습니다. 2. 가까이 다가오심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증오하고 멸시하며 그들과의 접촉을 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이 여인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그 뜨거운 사막 길을 걸어오셨습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께서 지적하신 것처럼 결혼을 다섯 번이나 한 부끄러운 경력을 가진 여인이었습니다. 자연히 동네 사람들을 피해 다녔을 것이고, 사람 만나는 것이 두려워 뜨거운 대낮을 이용하여 먼 길을 걸어 도둑질하듯 물을 길러 왔을 것입니다. 우물가에 앉으셨던 예수님은 물을 길러오는 사마리아 여자에게 “물을 좀 달라.”고 하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자가 “선생님은 유대 사람인데 어떻게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하십니까?” 질문을 할 정도로 이것은 어색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수가 성 여인과 사마리아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기꺼이 그런 장벽들을 허물어 버리신 것입니다. 3. 분명한 전달 주님께서는 수가 성 여인에게 자신이 누구이신지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여인은 마셔도 또 목이 마를 우물물을 길러 왔지만,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다시 목마르지 않을 ‘생수’를 주실 분이십니다. 예수님 자신이 그 여인에게는 생수였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말씀하신 생수는 천국에 들어가는 구원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생수는 목마른 사람의 목을 축여주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그때까지 안고 씨름하던 문제에서 자유할 수 있습니다. 마음속에 갈증이 있다면, 생수되신 주님을 꼭 만나시기 바랍니다. 수가 성의 여인처럼 온전히 치유 받는 은혜가 여러분 가운데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한 누구에겐가 관심을 가지고, 가까이 다가가, 분명하게 전달을 해주면 그곳에서 하나님의 역사는 일어납니다. 주님을 모르고 복음을 몰라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들을 찾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지금은 목말라 있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가까이 다가가 복음을 분명하게 전할 때입니다.
- 세 사람의 심정누가복음 15: 11~32누가복음의 핵심구절은 “인자는 잃은 것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19:10)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의 마음을, 누가복음 15장에서 세 가지 비유를 들어 말씀해 주셨습니다. “양 백 마리를 가진 사람이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 아홉 마리를 놓아두고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찾는다.” “열 드라크마를 가진 사람이 그 중 하나를 잃으면, 온 집안을 쓸어 그것을 찾을 때까지 샅샅이 찾는다.” 그리고 오늘 본문과 같이, 두 아들 중에 하나가 집을 나갔다가 돌아오면, 죽었다가 살아난 자식을 대하고, 잃은 자식을 되찾은 것같이 여기는 것이 아버지의 마음인데, 그것이 바로 한 영혼이 주님 앞으로 돌아올 때에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이라는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1. 둘째 아들의 심정 어떤 집에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재산 중에서 자기에게 돌아올 몫을 미리 달라고 아버지에게 요구를 하였습니다. 그는 제 몫을 다 챙겨서, 아버지의 간섭을 받지 않고 제 멋대로 살기 위해 먼 지방으로 떠났습니다. 그는 허랑방탕하게 살며 모든 재산을 탕진하였습니다. 아버지에게 미리 유산을 받아 멀리 떠나서 살 정도로 못된 아들이었지만, 아주 궁핍한 가운데서 제 정신이 든 그는 회개를 하고 아버지에게로 돌아왔습니다. 지금도 생수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을 찾지 아니하고, 스스로 만족을 얻기 위해 돈이나 인기, 또는 쾌락 등의 웅덩이를 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웅덩이는 물을 보관하지 못하는 터진 웅덩이일 뿐입니다. 주님께서는 지금도 주님을 모르고 방황하는 그 사람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원하십니다. 2. 첫째 아들의 심정 첫째 아들은 아우가 돌아온 것을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첫째 아들에게, 동생은 아버지의 재산을 다 삼켜버린 녀석이었습니다. 그런 녀석을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고 잔치를 벌여주는 아버지가 못마땅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아버지의 심정과 첫째 아들의 심정의 차이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주님을 모르는 한 사람이 주님 앞으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의 심정을 가지게 됩니까, 첫째 아들의 심정을 가지게 됩니까? 주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멸망으로 향하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모두 ‘구원을 받아야할 VIP들’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재산을 탕진하고 집으로 돌아온 둘째 아들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아들, 잃었다가 찾은 아들로 맞아들이는 아버지의 심정을 우리는 가져야 합니다. 3. 아버지의 심정 드디어 어느 날 배고픈 고통을 견디다 못한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로 돌아왔을 때, 그가 아직도 먼 거리에 있는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서 달려가 그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아버지는 가장 좋은 옷을 꺼내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벌였습니다. 이 아들은 죽었다가 살아난 아들이요, 잃었다가 되찾은 아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양처럼 길을 잃고, 각기 제 갈 길로 흩어졌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한 우리 모두의 죄악을,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아들 예수님에게 지우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화해의 손을 내밀어 주셨고,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님을 주님으로 시인하도록 해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나올 때에, 반기시며 받아주시는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 종이 되신 예수님마가복음 10:42-45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채찍질을 당하고 십자가에 달리실 것을 제자들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 하나는 예수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예수님의 왼쪽에 앉게 해달라고 청하였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이 소리를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게 분개하였습니다. 이 모습을 보신 예수님께서 종의 도를 가르치시며 자신을 예로 들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를 위하여 예수님은 종으로 오셨고,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치를 몸값으로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1. 종으로 오신 예수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세상에서 다스린다고 하는 사람들은, 백성들을 마구 내리누르고 고관들은 백성들에게 세도를 부립니다. 이와는 반대로, 위대하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할 것을,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그러한 종의 도를 실천하시기 위하여 종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마가복음은 종으로 오신 예수님을 그리고 있어서, 특징적으로 많이 나오는 단어는 “곧, 막, 곧바로” 등입니다. 바울은 예수님께서 종으로 오신 모습을, 빌립보에 보낸 편지에서 “그는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라고 표현하였습니다. 2. 종으로 섬기신 예수님 마태복음은 예수님께서 예언되었던 왕이 메시아로 오신 것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족보가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이 되고 다윗의 후손으로 설명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은 완전한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아담의 후손으로 설명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예수님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가복음은 예수님께서 종으로 오신 것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족보조차도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진정한 섬김이란 다른 사람을 잘되게 하고 성공시켜주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회당에 있던 악한 귀신 들린 사람에게서 귀신이 떠나가게 해주셨습니다.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있는 것을 보시고서 손을 잡아 일으켜 열병이 떠나가게 해주셨습니다. 그 외에도 각색 병든 자를 고치시고, 주린 자들을 먹이셨습니다. 그리고 섬기는 종의 도를 가르치셨습니다. 3. 종으로 희생하신 예수님 사람들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어떤 상사 밑에서 일하고 싶은가?” “어떤 교수 밑에서 배우고 싶은가?” 여러 대답들이 나왔지만, 세 가지로 요약이 되었습니다. 실력 좋은 상사, 성품 좋은 상사, 나를 잘 되게 해줄 수 있는 상사였습니다. 교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바로 그런 지도자이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한 실력을 가지신 분입니다. 그러나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의 모양으로 오실 정도로 성품이 좋으신 분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는 희생하는 일까지도 순종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그에서 끝나지 않으셨습니다. 만일 그랬다면 우리는 예수님보다 더 큰 죽음을 두려워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고, 제자들에게 온 세상에 나가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늘로 들려 올라가셨습니다.
- 예수님은 우리 왕이십니다마태복음 28:18-20마태복음은 유대인의 한 사람인 마태가 유대인들을 위해 기록한 복음서입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을 다스릴 예언된 메시야를 기다려 왔습니다. “예언자를 시켜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는 기록이 마태복음에 가장 많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기대했던 대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지만,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맞이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메시야로서 십자가에서 죄를 대신 담당하셨고,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모습을 보고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만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신 분이 아니라, 우리 모든 사람을 죄악 가운데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신 분이십니다. 1. 주님의 신분 마태복음은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다윗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로 시작이 됩니다. 족장이었던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다윗 왕의 자손이라는 말은, 예수님의 신분이 바로 왕이시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또한 예수님의 사역을 보아도 왕이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병을 고치시고 귀신을 내쫓으셨으며 자연을 다스리시고 죽음도 이기시는 왕의 권세를 가지셨습니다. 왕이신 예수님 앞에서 우리가 가져야할 태도는, 베드로와 같이 “선생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십니다.”라고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고백을 하는 자들로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예수님 자신도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았다.”고 스스로 입증하셨습니다. 왕이신 주님을 경배하는 것은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도리입니다. 2. 주님의 명령 다른 복음서와 마찬가지로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성품과 사역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히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 하신 말씀이 5-7장에 기록되어 있는데, 보통 산상수훈이라고 부릅니다. 이 말씀이 전 세계 인류에게 끼친 영향만 보아도 예수님의 왕 되심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빛과 진리를 배척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배척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시기 위하여 제자들을 준비시키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는 지상사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성품과 사역을 닮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성품을 닮을 수 있도록 성령의 열매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닮아갈 수 있도록 성령의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을 수 있도록 우리에게 지상사명을 주셨습니다. 3. 주님의 약속 예수님은 사람들을 용서하고 구원하시고자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위하여 인간의 역사 속으로 들어오셨습니다. 그러나 헤롯은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죽이려고 유아 살해를 자행하였습니다. 악마는 예수님을 시험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왕이심을 증거하는 많은 교훈들, 행하신 여러 기적들이 있었지만, 사람들은 예수님을 점점 더 배척하였습니다. 결국에는 자기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돌아가시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왕이시라는 사실을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증거하고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려는 우리에게도 반대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왕께서 세상 끝 날까지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주님의 약속을 믿고, 날마다 승리하며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는 일에 온전히 드려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 구약성경 예언의 마감말라기 4:1-6말라기서는 구약성경의 맨 마지막 책입니다. 이 책에는 구약의 역사가 하나로 요약되어 있는 듯합니다. 보통 요한복음 3:16을 가리켜 ‘축소판 복음서’라고 하는데, 말라기서는 ‘축소판 구약성경’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말라기서는 구약과 신약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말라기서는 “돌이키지 아니하면, 내가 가서 이 땅에 저주를 내리겠다.”는 ‘저주’의 말씀으로 끝맺어져 있고, 반면 신약성경은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있기를 빕니다. 아멘.”이라는 축복의 말씀으로 끝맺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구약성경의 마지막도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할 것을 약속하시며, 우리가 기다리는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하여 엄숙하게 선포하고 있는 축복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1. 하나님의 날에 대한 소망을 가지라. 포로에서 돌아온 남은 자들의 열성은 서서히 시들어 버렸고 느헤미야 아래 일어났던 부흥의 열정도 함께 식어갔으며 도덕심도 해이해졌습니다. 제사장은 경건성을 잃고 무관심하게 되어, 하나님으로부터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고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총독에게도 바칠 수 없을 부정한 짐승들을 가지고 와서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는 것에 대해 질책을 받았습니다. 그러한 중에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로 삼으시고 그들을 아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언젠가 하나님의 날은 임합니다. 그 나라에서 의는 태양처럼 떠오를 것이며 치료하는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2. 말씀에 대한 믿음으로 살라. 하나님께서는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호렙 즉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종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호렙 산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셨던 율법은 그들을 위하여 주셨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예나 지금이나 “너희가 행복하게 살도록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주 너희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신 10:13)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십시오. 그렇지 아니하면 초조하고 조급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방법을 추구하십시오. 그렇지 아니하면 부정을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사모하십시오. 그렇지 아니하면 욕심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은 헛되이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하나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게 하실 것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갑시다. 3. 사람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라. 구약성경의 마지막 구절, “돌이키지 아니하면, 내가 가서 이 땅에 저주를 내리겠다.”(4:6)는 말씀은 저주의 말씀이 아니라 사랑의 경고의 말씀입니다. 더구나 그렇게 하지 않으시려고 “주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겠다.” 하시며 엘리야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화목하게 직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신으로 삼아주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이 시대에 우리에게 성령을 주신 이유는 “성령이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능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마침내 땅 끝에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입니다.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는 삶은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는 가장 복된 삶입니다.
- 우리에게 임하시는 왕스가랴 9:9-10스가랴는 무엇보다도 이사야 선지자 다음으로 구주의 오심을 여러 번 예언한 선지자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 상식을 벗어난 것처럼 보이는 한 사건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푸실 왕께서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고 오시는데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를 타실 것에 대한 예언입니다. 왕이 되실 왕자는 궁궐에 태어나셔서 비단에 싸여 많은 사람들의 칭송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왕이 되신 그리스도는 겸손하여서 나귀, 그것도 작은 나귀 새끼를 타고 오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공의로우시며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왕이십니다. 우리를 위하여 우리의 죄 값을 치러주시기 위하여 사람으로 오신 주님은, 모든 민족들에게 평화를 선포하시고 그의 다스림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이르도록 왕이신 하나님으로 다시 재림하실 것입니다. 1. 우리의 왕을 즐거워합시다. 우리는 십자가를 지시는 그리스도와 면류관을 쓰실 그리스도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의 몸으로 오셔서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는 비천함과 고난에 처하셨던 메시아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고통을 받으신 그리스도를 볼 뿐 아니라, 만왕의 왕으로서 면류관을 쓰신 그리스도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를 위하여 이 땅에 오셔서 노예의 매매 가격인 은 30냥에 팔리고, 끝내는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님께 우리의 사랑을 고백합시다. 그렇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가장 비천하게 동정녀 마리아에게 잉태되어 세상에 태어나시고 가장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 그분에게 우리도 존경심과 사랑을 고백합시다. 그리고 마침내 온 세상의 왕이 되시며 모든 백성을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하실 우리의 왕을 즐거워합시다. 그리스도는 또한 존엄하고 영광스러운 메시아입니다. 2. 우리의 구원을 즐거워합시다. 오늘 본문은 “도성 시온아, 크게 기뻐하여라. 도성 예루살렘아, 환성을 올려라.” 하는 함성으로 시작이 됩니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것이니, 너는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마 1:21)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분이십니다. ‘예수’라는 이름에 가장 합당한 태도는 그분의 구원을 받아들이고 구원을 즐거워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구원을 얻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구원을 받는 데는 완전히 무력하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우리를 여러 가지 환경으로 이끌어주시고 마음을 움직이셔서 우리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고 구원을 받게 하셨습니다.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서 영원히 고통 받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들이 구원 얻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신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3. 하나님의 자녀들을 즐거워합시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 하나님의 자녀들로 이루어진 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서로가 연합되어 있습니다. 모든 거듭난 사람들은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요 자매입니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할 때에 교회다운 교회가 이루어집니다. 교회는 하늘나라의 그림자입니다. 교회는 안식하는 곳입니다. 하늘나라는 영원히 쉬는 곳입니다. 그곳에 가기 전까지는 땅에 있는 하나님의 집인 교회에서 쉬어야 합니다. 또한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인 성도들이 깨끗한 몸과 마음으로 거룩한 단장을 하도록 준비하는 곳입니다. 교회는 영원한 생명을 주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과 만나서 사귀는 곳입니다. 형제자매들을 대할 때마다 “당신은 정말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하며 칭찬하고 사랑하는 교회다운 교회를 이루어갑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