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
요한복음 10:10-11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부모가 자녀들에게 기대하는 모습을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기대하시는 모습과 닮은 것들이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을 향해 크게 두 가지 기대를 합니다. 첫째는, 자녀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자녀들과 좋은 관계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이와 똑같은 것을 기대하셨습니다. 사람들의 죄로 말미암아 깨어진 이 두 가지 기대를 이루시기 위하여 예수님은 이 땅에 사람으로 오신 것입니다.
1. 생명을 얻게 하고(좋은 관계)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성경에서는 여러 비유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 목자와 양, 농부와 포도원, 토기장이와 진흙, 주인과 종 등이 그 예가 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포도나무로, 하나님 아버지는 농부로, 그리고 사람을 가지로 비유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이다. 사람이 내 안에 머물러 있고, 내가 그 안에 머물러 있으면, 그는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요 15:5)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잘 붙어있어야, 즉 좋은 관계 가운데 있어야 가지는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가지와 같은 사람들이 죄로 말미암아 포도나무로부터 끊어진 것을 다시 연결시켜 주시고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하여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죄의 값을 치러주셨습니다.
2. 넘치게 얻게 하려고(Well-being)
제가 예수님을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저희 어머니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자연스럽게 “어머니는 저를 기르시면서 무엇을 기대하셨어요?”라는 질문으로 접근을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저희 어머니는 거의 반사적으로 “미친 놈.”이라고 반응을 하셨습니다. 아들에게 그게 무슨 말씀이냐고 되물었더니, “너 잘 되는 것 말고 무얼 바라냐?”고 대답을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부모님이 자녀에게 기대하는 것은 자녀가 잘 되는 것과 자녀와 좋은 관계 가운데 지내는 것입니다. 요즈음 유행처럼 사용하고 있는 “웰빙”이라는 말과, 잘 되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원하시는 것도 바로 사람들이 풍성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지가 풍성한 열매를 맺으려면 나무에 든든하게 붙어있어서 뿌리로부터 올라오는 진액을 제대로 흡수하기만 하면 됩니다.
3. 선한 목자로 오신 예수님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립니다. 삯군은 엄밀하게 말해서 목자가 아닙니다. 양들도 자기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조금만 위험한 일이 생기면 양들을 버리고 달아납니다. 세상의 어떤 종교의 창시자도 사람들을 위하여 죽은 사람은 없습니다. 죽었다가 부활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양과 같은 우리를 위하여 선한 목자가 되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자기들을 지켜주고, 인도해주고, 필요를 공급해주는 부모가 곁에 있을 때 가장 자유롭습니다. 양들은 자기들을 지켜주고 인도해주고 꼴을 먹이는 선한 목자가 곁에 있을 때 가장 자유로운 법입니다. 다윗은 선한 목자이신 주님에 대해 시편 23편을 노래하였습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 없어라.” 주님은 우리의 모든 필요를 공급해주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의 막대기와 지팡이로 나를 보살펴 주시니, 내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주님은 모든 악한 것들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내가 사는 날 동안 나를 따르리니.” 주님은 우리를 가장 유익한 길로 인도해주시는 분이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