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 목원의 간증
제가 서울에서 한 목장을 인도하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그때 금요일에는 탐방을 자주 가야 하기 때문에 화요일 저녁에 모였습니다. 그때 한 목원이 나눈 간증을 이곳에 올립니다. 그때가 추석이었습니다. 추석 때 교통체증이 얼마나 심했는지 잘 아시지요? 이 형제가 가족들을 태우고 새벽 3시 반에 출발 오전 10시에 처남 집이 있는 순천에 들렀다가 친가인 고흥으로 갈 예정이었답니다. 순천에 도착해서, 아내가 차에서 꺼낼 것이 있다며 키를 가지고 갔는데, 그만 키를 트렁크에 넣은 채 문을 닫았답니다. 추석 연휴라 정비업소도 연 곳이 없고, 보험회사에서 하는 서비스도 전화를 받는 곳이 없었답니다. 주위 사람들이 큰일 났다고 모두 난리들이었는데, 남편인 이 형제가 “사람이 실수할 수도 있지.” 하고는 어렵게 KTX 입석을 타고 서울로 와서 스페어 키를 찾아서, 역시 어렵게 시외버스를 타고 내려갔답니다. 세상에 이럴 수가? 이 형제의 성질이, 스스로 불같은 사람이랍니다. 여덟 형제 중에 유일하게 믿고 있답니다. “여러분 인간 박태호를 아시잖아요? 제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닙니다.”로 시작된 그의 간증이 우리를 놀라게 했습니다. 당연히 형제를 비롯, 그 친척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 갖추어야할 덕목을, 제가 이렇게 정리를 해주었습니다. 일상생활 속의 신앙(3R) • R1: 하나님과의 관계(Relationship with God) 자신이 죄인임을 시인하고,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와 주인으로 마음에 모심으로써 하나님의 자녀가 될 때에 그 사람은 비로소 그리스도인의 삶을 시작하게 된다. R2: 신앙의 종교적인 표현(Religion)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종교적인 모습으로 표현이 되는데, 대개 다섯 가지로 나누어 본다. (1) 예수님을 구세주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신앙고백을 하게 된다. (2)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정기적인 헌금을 하는 등 종교예식에 참여한다. (3) 기도응답을 경험한다거나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음을 느끼는 종교적 체험을 한다. (4) 성경 지식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납득하기 어려운 내용도 이해하기 시작한다. (5) 예배에 참여하고, 찬양을 하고 기도모임에 참여하는 등 종교 활동을 하게 된다. R3: 신앙의 일상적 표현(Real Life) (1) 개인생활: 기뻐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증대되고 다른 사람을 수용하는 폭이 넓어진다. (골 3:12-14) (2) 교회생활: 교회활동에 대해 자발적인 마음과 의욕이 늘어난다.(골 3:15-17) (3) 가정생활: 가정에서 아내와 자녀를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더욱 인격적으로 대한다.(골 3:18-21) (4) 직장생활: 마음을 다하여 주님께 하듯 하는 자세로 변화된다.(골 3:22-4:1) (5) 사회생활: 빵(육), 교육(혼), 복음(영)이 필요한 사람에 대한 책임을 느낀다.(골 4:5-6)
- 교회생활 십계명
모세의 율법 혹은 여호와의 율법은 보통 세 종류로 나누어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제사법에 해당되는 의식법, 민법에 해당되는 재판법, 그리고 도덕법입니다. 의식법은 희생과 제물을 드리는 이스라엘의 종교적 의식과 의무를 다루고 있습니다. 재판법은 유대인들의 사회적인 질서를 위해 주어졌던 것입니다. 도덕법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인간들 사이의 의를 세우는 데 필요한 도덕적인 행위를 규정하고 있는 것으로서 대표적인 것이 십계명입니다. 오늘은 십계명 내용에 근거한 교회생활 십계명을 나누고자 합니다. 1. 교회생활을 통하여 하나님을 늘 ‘새롭게’ 만나십시오. 예배, 성경공부, 성도간의 교제 등을 통해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며 은혜 안에서 자라가십시오. 2. 욕심과 염려들을 주님께 맡기는 연습을 하십시오. 하나님이 계셔야할 자리에 나의 탐심이나 염려를 앉혀놓지 않아야 합니다. 3. 은혜롭지 못한 말을 삼가십시오.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자유는 아닙니다. 성령의 열매 중의 하나는 ‘절제’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는 일들은 최선을 다하여 탁월하게 하고 흠 없이 해야 합니다. 4. 휴식과 재충전의 기회로 삼으십시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여러분이 계신 곳에서 영적인 전투를 하고, 교회는 위로와 격려와 재충전이 이루어지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5. 서로 존경하여 예의를 지키십시오. 가까울수록 나이가 많은 분들을 공경하고 수고하는 분들에게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6. 불편한 관계에 있는 분들과는 바로바로 화해하십시오. 내가 원망들을 만한 일을 했거나 다른 사람이 범죄를 한 경우에나, 내가 주도권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마태복음 5:23-24, 18:15 참조) 7. 유혹거리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들을 제공하지 마십시오. 교회는 세상과 구별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모임이지만, 여전히 연약하고 유혹을 받기 쉬운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기도 합니다. 8, 다른 사람의 물건이나 교회 물건을 귀중하게 사용하십시오. 자기중심적인 문화가 발달할수록 내 소유가 아닌 것들도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9. 다른 사람에 대한 비판이나 험담을 삼가십시오. 주의하지 않으면 ‘기도제목’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사람의 약점을 이야기하기 쉽습니다. 10. 다른 사람의 재산이나 사회적 지위와 비교하지 마십시오. 열등감이나 자만심은 모두 교만입니다. 고유한 나의 가치를 확인하십시오.
- VIP의 마음을 여는 방법 한 가지
분당 차병원의 한 교수가 상담을 하기 위해 저를 찾아온 적이 있었습니다. 병원에서 드리는 직원예배가 있는데,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의 자세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 교수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제가 과외지도를 했던 학생이었습니다. 지금은 그 학생이 60세가 넘었습니다. 대개 미션스쿨에서 예배를 드려야 패스를 할 수 있거나, 경영자가 그리스도인일 경우에 공식적인 예배시간이 있어서, 학생이나 직원들이 마지못해 참석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도무지 마음이 불편한 나머지 저를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얘기를 나누면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마 병원을 설립한 분의 성이 차씨여서 차병원이라 했겠지만, 다른 의미가 더 있었습니다. 차병원의 CHA 안에, C는 Christianity, H는 Humanity, A는 Academy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말로 하자면 기독정신을 가지고, 인류를 사랑하며, 학문적 깊이를 추구한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상담할 수 있는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 이름의 의미 속에 바로 답이 있었습니다. CHA 순으로 말씀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순서를 반대로 해서 AHC 순으로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직장예배에서 목사님들은 중요한 것부터 전하는 우선순위를 염두에 두고, 기독정신 즉 성경부터 가르치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많은 일반인들은 설교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마음을 닫고는 듣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CHA를 거꾸로 하여 ACH 순서로 하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도 열 수가 있습니다. 즉 그들에게 유익이 되고 들을 만한 내용(Academy)을 먼저 전하는 것입니다. 모두 성경에 나타난 진리인데 성경을 읽지만 않을 뿐입니다. 예를 들면 리더십, 건강한 자아상, 자녀교육, 의사소통, 대인관계, 행복한 가정과 같은 내용이 될 수 있습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변화의 리더”와 같은 일반 서적을 정리해서 나누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다음에 사람의 마음에 위로와 힘이 되는, 즉 마음을 만져주어서 감동이 되고 힐링이 될 수 있는 이야기(Humanity)를 하는 것입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고부관계에서 오는 갈등을 극복하고 살아간 이야기, 경제적으로 바닥을 쳤던 사람이 다시 일어선 이야기 등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잔잔한 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든가, “지친 완벽주의자를 위하여” “일상 상담” 등의 책에서 배우고 자신의 삶에 적용한 것을 나눌 수도 있습니다. 그 다음에 자연스럽게 기독교의 기본진리나 기독교정신(Christianity)을 전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설교를 할 때, 목사님은 보통 성경강해를 먼저 하고 그에 관한 예화나 구체적인 예를 듭니다. 교회에 다니던 사람은 들을 마음의 준비를 하고 교회에 오기 때문에 그러한 설교를 듣는 가운데 감동을 받습니다. 그러나 학교나 직장에서 억지로 예배에 참석한 사람은, 성경강해를 먼저 하면 아예 마음을 닫고 지루해 하거나 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CHA순으로 말을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 AHC순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면 모든 사람의 마음을 설교에 집중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이 과정은 비단 학교나 직장에서 예배를 인도할 때뿐만 아니라, 목장모임에서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교회 배경이 거의 없는 VIP가 목장모임에 참석했을 때에는 AHC를 염두에 두고, 그의 삶에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Academy), 마음에 감동이 되는 이야기(Humanity)를 먼저 나누는 것이 좋습니다. 필요에 따라서는 VIP가 참석하기 시작한 이후 몇 주간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마음이 기독교에 대해 열렸을 때에 예수 영접모임으로 인도하여 예수님과 복음(Christianity)을 전하는 것입니다.
- 확신 있게, 그러나 온유하게
목회자들끼리 모인 자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 사람이 너무 어이가 없었다는 듯이 자기 집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하루는 자기 아들에게 지나가는 얘기처럼 질문을 했답니다. “너 학교에서 점심 먹을 때 기도하니?” 그런데 그 아들이 정색을 하며, “예? 학교에서 왜 기도를 해요?” 하며 반문을 하더랍니다. 아들의 반응에 너무 놀란 아버지, 자기의 얼굴 표정을 관리하며 다시 물었답니다. “교회 다니는 애들이 너희 반에 있을 것 아니니? 그 애들이 밥 먹을 때 기도하지 않니?” 아들이 대답하더랍니다. “기도하는 애들 못 봤어요.” 물론 집에 와서 저도 저희 애들에게 물어보았지요. 다행히도 우리 애들은 식사 감사기도를 꼭 하고 밥을 먹는다고 하더군요. 저희 애들뿐 아니라, 우리 행복한제자교회 자녀들은 대부분 식사 감사기도를 꼭 하고 밥을 먹을 줄로 믿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가정에서 태어나고 성장했습니다. 스무 살에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데, 저희 집에서는 처음으로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이지요. 예수님을 믿은 후에 가장 먼저 부딪히게 된 문제는 식사 감사기도였습니다. 물론 더 큰 문제는 제사문제였지만, 그것은 그 후의 문제였고 일 년에 몇 차례 있는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식사 감사기도는 매일 세 번씩 있는 문제였습니다. 처음에는 가족들 앞에서 기도를 드리기가 쑥스럽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해서 옆방에서 기도를 하고 와서 밥을 먹었습니다. 한 주일 정도 그렇게 하다가 마음에 걸려서 밥상 앞에서 기도를 했습니다만, 처음에는 시계를 들여다보는 척하며 기도를 했습니다. 얼마 후에는 얼굴을 손으로 쓰다듬으면서 기도를 하기도 했습니다. 워낙 소심한 성격이었기 때문에 그 과정을 거친 후에야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자녀들 중에 사람들 앞에서 멋쩍어서 아직 식사 감사기도를 하지 못하는 애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 애들에게 “너는 하나님 믿는 것을 왜 부끄러워하느냐?”고 윽박지르지 마십시오. 제게 있었던 일을 우스개소리처럼 소개를 해주어도 좋습니다. 어쨌든 시작을 하면 발전을 하게 될 테니까요. 세상에 70억의 인구가 있으면, 70억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같은 사람이 없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처음부터 담대하게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마 처음부터 다른 사람들까지 고개를 숙이라고 하면서 대표로 기도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를 하라고 자리를 만들어 주어도 얼굴이 발개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 번 여러분에게 말씀드린 대로 제 어릴 때의 별명은 집에서는 샌님, 학교에서는 복덕방 영감이었습니다. 하도 말을 하지 않아서 붙여진 별명입니다. 사람들 앞에 서려면 얼마나 마음이 두근거렸는지 모릅니다. 그래도 하나님께 내어놓으면 하나님께서 사용하십니다. 그리고 제가 우리 애들을 키울 때에는 자신감을 심어주고 발표하고 표현할 기회를 많이 주었습니다. 애들 앞에서 제가 먼저 발표를 하고 분위기를 만들어서 애들도 하고 싶도록 유도를 했지요. 애들 기질이 모두 다릅니다. 변화하는 데 걸리는 기간도 다릅니다. 그렇지만 반드시 해야 할 것은 확신을 가지고, 그러나 온유하게, 하나님의 사람이 되도록 자녀들을 키워보십시오.
- 그런데 아홉 사람은 어디에 있느냐?
추수감사절을 맞이하면서 생각나는 성경말씀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17:11-17입니다. 나병환자 열 사람이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 길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관습상 성한 사람에게 가까이 갈 수 없었기 때문에 멀찍이 서서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하고 소리를 높여 말했습니다. 그들이 불쌍히 여겨달라는 말을 한 것으로 보아, 예수님의 자비가 절실하게 필요한 자신들의 처지를 인정한 것은 분명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고 말씀하셨고, 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습니다. 예수님은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 사람은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똑같이 깨끗함을 받았는데, 나머지 아홉 사람은 왜 감사할 줄 모르냐는 지적이십니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여러 가지 이유나 핑계가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핑계를 상상할 수 있겠지요. “나았지만 앞으로 재발하지 않을까?” “지금 생각해 보니까 내 병은 나병이 아니었던 것 같아.” “다 나은 것이 아닌 것 같아. 약간 나은 것 아닐까?” “진짜 나았는지 며칠 더 확인해 봐야지.” “주님께 천천히 감사드려도 괜찮겠지? 나중에 주님을 만나면 감사드리지, 뭐.” “일단 제사장에게 가서 보이고…” “주님께서 날 위해 특별히 애쓰신 것도 없는데, 뭐.” “랍비들도 이런 일은 할 수 있는 것 아냐?” “사실 나는 이미 회복되고 있었던 것 같아.” 그렇지만 한 명은 달랐습니다. “예수님께서 내 병을 낫게 하셨으니 감사하러 가야지.” 예수님은 감사를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감사가 있어야 체험이 완성됩니다. 더구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지 못하는 사람은, 생각이 허망해져서 그들의 지각없는 마음이 어두워졌다고 로마서 1:21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은 스스로 지혜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실상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그 마음에 두지 않는 사람은, 그의 마음속에 다른 하나님(우상)을 두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그 아홉 사람은 어디에 있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을 저는 달리 생각해 보았습니다.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감사제목을 내놓은 저에게, “감사제목으로 내놓지 않은 그 아홉 가지 감사제목은 어디에 있느냐?”고 주님은 내게 물으셨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잘 감사를 하지 못합니다. 때로는 내 생각대로 진행이 되지 않아서 감사를 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추수감사절에 내놓은 감사제목이 매우 제한적이었습니다. 내 생각대로 된 것만 감사제목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범사라는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평범한 일’이라는 의미이며, 다른 하나는 ‘모든 일’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제가 내놓은 감사제목을 보니 평범하게 생각되는 일이 빠져있고, 제 생각과 다르게 진행되는 일에 대해서는 감사하기보다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은 제게 물으셨습니다. “감사제목으로 내놓지 않은 그 아홉은 감사한 일이 아니냐?” 자신의 판단기준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판단기준에 의해서 감사하는 훈련을 하는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다음 주일은 추수감사절입니다.
70년대에 군에 있을 때의 일이었습니다. 뙤약볕에서 훈련을 받고 나서, 가뜩이나 맛이 없는 염적무(무를 그냥 소금물에 절인 무반찬을 군에서 일컫는 말) 반찬에 밥을 먹으려면 얼마나 고역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 조그만 책을 하나 읽었는데, 그 안에 청교도들이 음식을 앞에 두고 감사 기도하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사람들 중에는 먹을 것이 있는데 식욕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식욕이 있지만 먹을 것이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에게는 먹을 것과 식욕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4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저는 이 기도를 기억하며 식사 감사 기도를 드릴 때가 있습니다. 지금은 그 시절보다 먹을 것이 풍요롭고 넉넉해졌습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삶이 꼭 넉넉한 것과 비례하지는 않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오히려 나보다 더 가지고 있는 사람들 때문에 상대적인 빈곤감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도 그런 마음을 가질 때가 많습니다. 특별히 없어보지 못한 사람들, 어려운 시절을 지내보지 못한 사람들은 정서적인 면역력을 키울 기회가 없어서 조금만 어려워도 감당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분들에게는 지금이라도 일부러 어려운 형편에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 그 상황에 같이 처해보는 기회를 가질 것을 권합니다. 어릴 때 슈바이처 박사에 대한 글을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동네 아이를 바닥에 깔고 앉았는데, 그 아이가 “나도 너처럼 일주일에 두 번만 고기를 먹어도 너에게 지지 않을 거야.”라고 했다는 말입니다. 그 말이 결국 사람들을 위한 삶을 살도록 슈바이처 박사에게 충격을 주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의 감사하는 삶은 어떻습니까? 저는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것도 없이, 결혼 초기의 형편만 기억을 해도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방 하나 얻을 돈도 없어 융자를 내어 시작을 한 사람이, 지금은 아들을 둘을 둔 삼부자(三父子=三富者?)가 되었으니 세상말로 출세했지요, 뭐. 제가 감사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제 성격이었습니다. 어떤 종류의 심리검사를 해도 거의 똑같이 나오는 ‘완벽주의자’ 기질이 문제였습니다. 기질이 그렇다 보니 저는 여간해서 만족을 잘 하지 못했습니다. 늘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염려가 저를 따라다녔습니다. 자연히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과 “범사에 감사하라.”는 성경의 가장 기본적인 말씀을 순종하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 ‘완벽주의는 죄’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 제목으로 설교도 했습니다. 완벽은 추구해야 하지만, 완벽주의는 죄라는 뜻입니다. 이 문제를 제 마음속에서 내려놓은 이후 제 마음에 여유가 생겼습니다. 여러분이 보는 요즈음의 제 얼굴은 많이 변화된 얼굴입니다. 그 이후로 매년 추수감사주일이 되면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며 계산하여 드리는 감사가 아니라, 이제는 넉넉하게 드리는 감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감사해야 하는 의무감을 가지고, 의지적으로 넉넉히 드리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냥 하나님이 좋아서,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저와 같은 마음으로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실력과 성품 중 어느 것이 중요한가?
최근에 어느 청소년으로부터 들은 질문입니다. 실력과 성품, 그리고 신앙이 중요하다는 저의 강의를 듣고 질문을 한 것 같습니다. 요즈음 공교육에 대해 문제를 심각하게 느낀 사람들이 홈스쿨링이나 대안학교를 통해서 자녀교육을 시키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어느 제도도 문제가 없는 완벽한 제도는 없습니다. 완벽한 제도가 있어도 사람들이 그것을 수행할 만한 능력이 없기 때문에 문제는 다시 따르게 마련입니다. 게다가 대부분의 사람이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실력과 성품 중 어느 것이 중요한가?”를 질문한 청소년은 우선 성품에 대한 정의를 잘못 내리고 있었습니다. 이영숙 박사의 한국형 12성품교육에서는 두 가지 기본 덕목으로 공감인지능력과 분별력을 제시합니다. 공감인지능력이란 다른 사람의 기본적인 정서, 즉 고통과 기쁨, 아픔과 슬픔에 공감하는 능력으로, 동정이 아닌 타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여 정서적으로 공감해주는 능력이라고 말합니다. 공감인지능력에는, 경청, 긍정적인 태도, 기쁨, 배려, 감사, 순종이 포함됩니다. 분별력이란 인간의 기본적인 양심을 기초로 하여 선악을 구별하는 능력으로, 올바른 생활과 건강한 시민정신, 도덕적인 행동을 위한 토대가 되는 덕목이라고 말합니다. 분별력에는 인내, 책임감, 절제, 창의성, 정직, 지혜가 포함이 됩니다. 간단하게 요약을 하자면, 좋은 성품이란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사는 성품입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하려면 실력이 있어야 합니다. 좋은 성품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해주고 싶어도, 실력이 없으면 무능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실력이 있더라도 좋은 성품을 가지고 있지 못하면,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하기는커녕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실력을 갖추고 있지 않은 것이 도리어 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공교육이냐 홈스쿨링이냐 대안학교냐를 고민하기 이전에, 자녀를 어떤 삶을 사는 사람으로 키울 것인가 먼저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인성교육을 강조한다고 실력 없는 자녀로 키워서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끼치지 못한다면, 무능한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반대로 실력 있는 자녀로 키우는 것에 역점을 두어 자기중심적인 생각밖에 하지 못한다면, 그 역시 자녀를 올바로 키웠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기질과 성격은 타고난 것일까요? 저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타고난 기질과 성격 위에 어떤 가치관을 가르치고 어떤 경험을 하게 하며 어떤 모델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사람의 성품에 많은 변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그러나 좋은 가르침과 경험이 반드시 그 사람을 올바르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반대로 나쁜 가르침과 경험이 반드시 그 사람을 그릇되게 만들지 않는 경우도 제법 많습니다. 그것을 반면교사로 삼아 훌륭한 삶을 사는 사람도 이 세상에는 많이 있습니다. 마약에 중독되어 창녀생활을 하며 두 자매를 키우는 엄마가 있었습니다. 큰 딸은 엄마와 똑같은 삶을 사는 모습을 보고 한 기자가 물었답니다. “내가 엄마에게서 보고 배운 것이 이것밖에 없는데, 어떻게 다른 삶을 살겠느냐?”고 항변을 하더랍니다. 둘째 딸은 엄마와 전혀 다르게 경건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삶을 살 수 있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엄마의 삶을 본 것만으로 충분하다. 어떻게 그런 삶을 다시 살 수 있겠느냐?”고 대답했답니다. “주님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집을 세우는 사람의 수고가 헛되며.”(시 127:1)라는 말씀처럼, 자녀가 진리 가운데 바르게 자라는 것은 전적으로 주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다만 바른 진리를 가르치고 좋은 본을 보이려고 노력할 뿐입니다.
- 청소년들에게 자주 해주는 이야기 요약
청소년들은 중고등학생이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성적 때문에, 집에서는 부모님의 눈치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기간입니다. 그러나 무슨 일이든지 스트레스나 눈치 때문에 하는 것처럼 고역이 없습니다. 제가 청소년들에게 주로 해주는 이야기, 그 요약을 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인생은 대개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0-30세: 준비기간(청소년은 이 기간에 해당되므로 여기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이 기간에 갖추어야할 것은 무엇보다도 실력이다. 한국의 남자들은 군대를 가기 때문에, 군 복무를 마치고 직장에 들어갈 때의 나이가 어림잡아 27세이다. 직장에 들어가면 처음에는 직장의 업무와 문화를 익혀야 하기 때문에 30세 정도 되어야 회사에서도 제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0세부터 30세까지의 기간을 준비 기간으로 잡는다. 이 기간에 준비해야 할 것은 먼저 실력을 갖추는 일이다. 그 동안에 학교 수업을 비롯한 여러 기회를 통해서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찾아야 한다. 물론 그 일을 통해서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끼칠 수 있는 일이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내게 은사와 재능을 주신 것은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하도록 하셨기 때문이다. 그 다음은 성품을 갖추어야 한다. 잠언 31장을 보면, 르무엘 왕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주는 충고가 나온다. 그 중에 특히 현숙한 여인을 아내로 맞이할 것을 말하고 있다. 믿을 수 있는 여자, 선행으로 남편을 도우며 해를 입히는 일이 없는 여자를 우선적으로 말하고 있다. 이러한 아내는 부지런히 살림을 할 뿐만 아니라, 한 손은 펴서 가난한 사람을 돕고, 다른 손은 펴서 궁핍한 사람을 돕는다. 입만 열면 지혜가 나오고, 혀만 움직이면 상냥한 교훈이 쏟아져 나오는 여인, 한 마디로 실력과 성품을 겸비한 여인이다. 그런데 어디 여인뿐이겠는가? 사람은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실력과 성품을 갖추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성경적 가치관)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지만, 주님을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는다.”고 잠언 31:30은 말하고 있다. 실력과 성품, 그리고 성경적 가치관, 이 세 가지를 염두에 두고 자기 동기로 인생을 멋있게 준비하는 청소년기를 보내기 바란다. 그리하려면 중요한 일을 긴급하지 않게 하는 연습을 청소년기부터 연습해야 한다. 중요한 일을 긴급하지 않게 하면,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가운데 무슨 일이든 할 수 있고, 부모님이 굳이 잔소리를 할 필요가 없어지게 된다. 30-60세: 인생의 전반전=성공적인 인생 모세의 일생을 보면, 건강을 잘 유지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120세가 되도록 눈은 빛을 잃지 않았고, 기력은 정정하였다. 모세가 세상을 떠났을 때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의 죽음을 애도하는 기간이 끝날 때까지 모세를 생각하며 삼십 일 동안 애곡하였다. 그만큼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이 말을 잘 듣고 따를 수 있는 여호수아를 후계자로 세웠다. 더구나 주님께서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고 말씀하실 정도로, 모세는 영성이 훌륭했다. 60-90세: 인생의 후반전=의미 있는 인생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람들을 섬기는 것보다 의미 있는 인생은 없을 것이다. 사람은 기능적으로 영, 혼, 육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을 섬긴다는 것은, 사람들의 영, 혼, 육의 필요를 채워주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는 사람에게 먹을 것을, 옷이 없어 헐벗은 사람에게 의복을, 거처할 곳이 없는 사람에게 주택을, 교육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에게 교육의 기회를, 복음이 없어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야말로 의미 있는 인생이다.
- 포기해서는 안 되는 싸움
(최영기 목사님께서 여러 해 전에 대장의 약 20%를 잘라내는 수술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수술을 하신 후에 병상에서 회복 중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리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확신의 삶” 두 번째 손가락에서 “두 가지 속성”에 대해 공부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따르고자 하는 속성”과 “죄로 향하는 속성” 두 가지가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 중에 누구도 죄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다음의 글을 읽고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싸워야할 죄와의 싸움에서 더욱 힘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제가 처음 예수 믿고 나서 첫 관심사가 죄와의 싸움이었습니다. 이 싸움에서 승리를 약속하는 서적을 읽었고 이런 책들을 통해 어느 정도의 승리를 맛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자신과의 싸움, 죄와의 싸움은 지금도 계속 중입니다. 죄와의 싸움에서 패배하면 자괴감이 생기는 동시에 하나님에 대한 원망스러운 생각도 듭니다. 죄를 지을 생각이 아예 안 들게 만들든지, 거뜬히 승리하게 하지 않으시고, 왜 패배를 맛보도록 내버려 두시는가? 여기에 대한 정답은 아직도 못 얻었습니다. 그러나 부분적인 답은 얻었습니다. 교만을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죄와의 싸움에서 승리하여 교만해질 거라면, 차라리 죄와의 싸움에서 패배하여 겸손해지는 쪽을 하나님께서는 선호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남들에게 칭찬받을만한 일을 하고 나면 죄로 인한 패배를 맛보는 수가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겸손해집니다.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지, 얼마나 약한지, 얼마나 부패했는지를 깨닫고 다시 낮아집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한 후 많은 변화를 맛보게 됩니다. 술 담배를 끊게도 되고, 거짓된 삶을 청산하게도 되고, 용서 못할 사람을 용서하게도 되고, 난폭한 성격이 순화되기도 합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거룩한 삶을 살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극복되지 않는 죄가 있습니다. 이것이 어떤 죄인지는 개개인마다 다릅니다. 성품에 의한 것일 수도 있고,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일 수도 있고, 어릴 적에 받은 상처로 인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완전 극복이 안 될지라도 죄와 계속 싸워야 합니다. 그렇게 타고 났다, 자신을 바꿀 수 없다,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 죄와의 싸움을 아예 포기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주중에 세상에 나가 죄짓고, 주일에 교회에 와서 회개하고, 주중에 세상에 나가 죄짓고 주일에 교회에 와서 회개하고… 이렇게 반복하는 것을 당연시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안 믿는 사람들이 크리스천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되고, 복음 사역이 지장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런 삶을 살게 되면 진심으로 회개도 안 되고, 죄책감에서 벗어나지도 못합니다. 신앙생활에서 즐거움이 사라집니다. 이기건 지건, 죄와 싸워야합니다. 싸움에서 승리하면, 삶이 거룩해집니다. 싸움에서 패배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죄와 싸울 때에 하나님의 도우시는 능력을 체험하든지, 용서해 주시는 은혜를 체험합니다. 죄와의 싸움을 포기하면 하나님의 능력도, 하나님의 은혜도, 체험하지 못합니다.
- 우리 교회야말로 역할분담을 잘 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4:11-12을 보면, 목회자의 역할은 “성도들을 준비시켜 봉사의 일을 하게 하고”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봉사”라고 하면, 우리는 주차봉사, 식당봉사, 성가대, 주일학교 반사, 교회청소 등을 먼저 생각합니다. 그런데 킹 제임스 성경을 보면 “봉사”를 “ministry” 즉 목양사역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목양사역은 목회자들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도 함께 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실제로 우리 교회는 목자와 목녀들이 가정교회 사역자가 되어서 열심히 저와 함께 동역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목양 사역을 잘 하도록, 오히려 저희 부부는 여러분을 돕고 있습니다. 제가 한국 가정교회 사역원장으로 섬기고 있기 때문에 평일에 교회를 떠나있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요즈음은 전국에서 초원별로 금-토요일에 목자연합수련회가 있어서 더욱 그렇습니다. 세미나를 처음 주최하는 교회에서 강의를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평일에 교회를 떠나있으면,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교회를 떠나 있으면 새벽기도회와 수요예배는 누가 인도하나요?”라는 질문입니다. 저는 “우리 성도들이 인도합니다.”라고 은근히 자랑스럽게 대답을 합니다. 가정교회를 하고 있는 목사님들도 수요예배와 새벽기도회를 성도들에게 맡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는 에베소서 4:11-12 말씀대로 성도들, 특히 목자와 목녀들이 목양 사역을 잘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와서 설교만 들으면 몸은 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함께 사역을 할 때에, 우리는 보람도 느끼게 되고 훗날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칭찬을 받을 수 있고 상급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영어에도 재미있는 표현이 있습니다. “No pain, no gain.”(고통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 사실 값을 치르지 않으면 얻는 것도 없습니다. 학생들은 공부하는 수고를 하여야 점수를 얻을 수 있습니다.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고통스러운 연습을 하여야 실력을 올릴 수 있습니다. 오래 전에 클래식 기타를 배울 때, 교본 머리말에서 읽은 글이 생각납니다. 하루 세 시간 연습은 실력을 유지하는데 필요하고, 그 이상 연습할 때에 실력이 늘어난다는 말이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귀한 사역을 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칭찬을 받을 수도 있고, 우리의 삶과 인격도 변화하게 됩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인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함, 신실, 온유, 절제 등도 모두 대인관계에서 맺을 수 있는 성품의 열매들입니다. 혼자 있으면 갈등할 일이 없지만, 함께 있으면 크고 작은 갈등을 많이 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갈등을 건설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성숙하게 됩니다. 목양 사역을 하면 열매는 더욱 많이 맺히게 됩니다. 물론 그만큼 치르는 값도 많은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행복한제자교회 공동체에 속한 여러분들은 언젠가 “목자와 목녀가 되어 목양사역을 하는 꿈”을 가지기 바랍니다. 목자와 목녀가 되는 것은 “기도와 섬김”만 있으면 가능한 일입니다. 단적인 예를 들자면, 저희 어머니는 초등학교도 온전히 졸업하시지 못했지만, 섬김과 돌봄으로 자녀들을 잘 키워내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심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셨습니다.”(고린도전서 3:6) “기회가 있는 대로”가 아니라, “기회를 만들어서” 2박3일에 하는 평신도를 위한 가정교회 세미나에도 다녀오기 바랍니다. 오래 전에 다녀온 분들도 다시 한 번 다녀오면 좋겠습니다. 저희 부부는 가정교회 연수를 다섯 번이나 다녀왔습니다. 가정교회는 어떤 방법이 아니라, 성경대로 사역을 하려는 정신입니다. 좋은 정신은 좋은 모델을 자꾸 접하면서 배우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