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아홉 사람은 어디에 있느냐?
추수감사절을 맞이하면서 생각나는 성경말씀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17:11-17입니다. 나병환자 열 사람이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 길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관습상 성한 사람에게 가까이 갈 수 없었기 때문에 멀찍이 서서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하고 소리를 높여 말했습니다. 그들이 불쌍히 여겨달라는 말을 한 것으로 보아, 예수님의 자비가 절실하게 필요한 자신들의 처지를 인정한 것은 분명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고 말씀하셨고, 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습니다. 예수님은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 사람은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똑같이 깨끗함을 받았는데, 나머지 아홉 사람은 왜 감사할 줄 모르냐는 지적이십니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여러 가지 이유나 핑계가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핑계를 상상할 수 있겠지요.
“나았지만 앞으로 재발하지 않을까?”
“지금 생각해 보니까 내 병은 나병이 아니었던 것 같아.”
“다 나은 것이 아닌 것 같아. 약간 나은 것 아닐까?”
“진짜 나았는지 며칠 더 확인해 봐야지.”
“주님께 천천히 감사드려도 괜찮겠지? 나중에 주님을 만나면 감사드리지, 뭐.”
“일단 제사장에게 가서 보이고…”
“주님께서 날 위해 특별히 애쓰신 것도 없는데, 뭐.”
“랍비들도 이런 일은 할 수 있는 것 아냐?”
“사실 나는 이미 회복되고 있었던 것 같아.”
그렇지만 한 명은 달랐습니다. “예수님께서 내 병을 낫게 하셨으니 감사하러 가야지.”
예수님은 감사를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감사가 있어야 체험이 완성됩니다. 더구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지 못하는 사람은, 생각이 허망해져서 그들의 지각없는 마음이 어두워졌다고 로마서 1:21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은 스스로 지혜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실상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그 마음에 두지 않는 사람은, 그의 마음속에 다른 하나님(우상)을 두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그 아홉 사람은 어디에 있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을 저는 달리 생각해 보았습니다.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감사제목을 내놓은 저에게, “감사제목으로 내놓지 않은 그 아홉 가지 감사제목은 어디에 있느냐?”고 주님은 내게 물으셨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잘 감사를 하지 못합니다. 때로는 내 생각대로 진행이 되지 않아서 감사를 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추수감사절에 내놓은 감사제목이 매우 제한적이었습니다. 내 생각대로 된 것만 감사제목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범사라는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평범한 일’이라는 의미이며, 다른 하나는 ‘모든 일’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제가 내놓은 감사제목을 보니 평범하게 생각되는 일이 빠져있고, 제 생각과 다르게 진행되는 일에 대해서는 감사하기보다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은 제게 물으셨습니다. “감사제목으로 내놓지 않은 그 아홉은 감사한 일이 아니냐?” 자신의 판단기준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판단기준에 의해서 감사하는 훈련을 하는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