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 함즐함울
[10월 13일] ‘함즐함울이 무슨 말인가?’ 궁금하실 것입니다. 혹시나 하여 인터넷에서 “함즐함울”을 검색하였더니 의외로 많이 나와 있어서, 목회서신에서도 소개합니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로마서 12:15 개정성경)를 요약하여 “함즐함울”이라고 말을 만들어본 것입니다. 새번역성경에서는 “기뻐하는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우십시오.”라고 기록되어 있으니까 “함기함울”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본질상 기뻐하는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울기가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어느 날 여덟 명이 스타렉스를 타고 경부고속도로를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일반 길은 꽉 막혀 있는데, 시원하게 뚫려 있는 버스전용도로를 달리는데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모릅니다. 어느 정도 지나가서 버스전용도로를 달리는 우리 차나 일반도로를 달리는 차나 같은 속도로 달리게 되었을 때, 좋았던 기분이 조금 사라지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일반도로를 달리는 사람들이 함께 빨리 달리게 되었다고 해서, 나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일반도로를 달리는 사람들이 빨리 달리지 못한다고 해서 나에게 이익을 줄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왜 일반도로가 막혀 있고, 버스전용도로가 시원하게 뚫려 있으면 기분이 좋을까요? 0촌지간인 부부 사이에는 상대방이 잘 되었다고 해서 배가 아픈(?) 일은 없습니다. 남편이 잘 되었다고 기분이 나쁜 아내가 있다면 매우 이상한 부부입니다. 아내가 잘 되었다고 기분이 나쁜 남편이 있다면 그것 역시 매우 이상한 부부입니다. 1촌지간인 부모와 자녀 사이에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부모가 잘 되면 자녀가 함께 기뻐하고, 자녀가 잘 되면 부모가 함께 기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2촌지간만 되어도 다른 사람이 잘 되면 사람들은 은근히 배가 아픈 현상이 일어납니다. 형이나 누나, 오빠나 언니가 잘 되면 함께 기뻐하기보다는 은근히 시기심이 생길 때가 많습니다. 동생이 잘 되어도 순수하게 함께 기뻐하기보다는 시기하거나 ‘왜 동생에게만 좋은 일이 일어나나?’ 하는 마음이 생길 때가 많습니다. 태어난 지 1년도 되지 않은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평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장난감도, 놀러온 옆집아이가 그 장난감을 만지면 공연히 심술이 나서 그 장난감을 빼앗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됩니다. 며칠 전에는 둘째 아이를 출산한 자매가 있어서 병원으로 심방을 갔었습니다. 얘기 중에 “첫째 애가 샘을 내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제 동생을 예뻐하다가도 동생에게 젖을 물리면 그렇게도 샘을 낸다는 것이었습니다. 첫째 아이는 이미 젖을 뗀 지가 오래 되었는데도 말이지요. 그것이 바로 인간의 못된 심사입니다. 남 잘 되는 꼴을 보지 못하는 마음을 놀부 심사라고도 합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도 우리의 심성을 잘 나타내는 말입니다. 사촌이 땅을 산 것 자체가 배가 아프다기보다는, 왜 나는 사촌처럼 땅을 사지 못할까에 대한 아쉬움도 있을 것입니다.
- 세상과 하나님의 가치관
[10월 6일] 성경본문: 누가복음 15: 11-32 사도 바울은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삶을 살도록 권면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권면과 아울러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라.”는 것입니다. 이 시대의 풍조라는 말을 들으면, 대개 부정, 음란, 탐욕 등을 생각하기 쉬운데,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가치관의 변화입니다. 오늘은 누가복음 15장, 탕진하고 집에 돌아온 아들을 대하는 아버지와 큰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가져야할 가치관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큰 아들의 모습 탕진하고 집에 돌아온 아들을 위해서 아버지가 잔치를 벌여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큰아들은 화가 나서 집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재산을 다 삼켜버린 녀석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 녀석은 아버지의 아들도 아니오, 자기의 동생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울화가 치밀어서 도무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의 풍조는 큰아들이 밟은 순서를 그대로 밟고 있습니다. 큰아들은 동생이 무엇인가 성과를 내거나 달성(Achievement)을 하지 못했으니 중요한 사람(Significance)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아들이나 동생(Identity)으로 여길 수도 없고 받아들일 수(Accept)도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큰아들 자신은 여러 해를 두고 아버지를 섬기고 있었는데, 자기를 위해서는 잔치를 벌여준 적이 없는 것에 대해 불만이 가득했습니다. 2. 아버지의 모습 아버지는 큰아들과는 전혀 반대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일찍이 제 것을 다 챙겨서 먼 지방으로 가서 방탕하게 살면서 그 재산을 낭비한 둘째 아들이었지만, 그가 아직 먼 거리에 있는데 달려가 껴안고 아들로 받아들였습니다.(Accept) 그는 죽었다가 살아난 아들이요, 잃었다가 찾은 아들(Identity)이었습니다. 가장 좋은 옷을 꺼내서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벌일 정도로 중요한(Significance) 아들이었습니다. 그 이후에 작은 아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모든 것을 탕진하고 남의 집 돼지를 치면서, 돼지 먹이라도 먹고 싶을 때 제정신이 든 그는,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 앞에서 죄를 지었습니다. 나는 더 이상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으니, 나를 품꾼의 하나로 삼아주십시오.’ 하며 가졌던 그 마음으로 성실(Achievement)하게 살았을 것입니다.
- 목장 사역의 성공 비결
[9월 29일] 저는 행복한제자교회의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으면서, 동시에 가정교회 목회자들의 서울북부 초원지기로 섬기고 있습니다. 지난 주 9월 27-28일에는 저의 초원에 속한 목회자들이 시무하는 교회 목자 목녀 100여 명이 다운교회에 모여 목자연합수련회를 가졌습니다. 여러 교회에서 모인 목자 목녀들과 이틀 동안 수련회를 하면서 다시금 기초를 다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기초를 다지는 가운데 우리 행복한제자교회의 목자와 목녀들도 다시 한 번 정리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목장 사역의 성공 비결을 소개합니다. 세상에서는 결과로 열매가 남아야 성공이라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일은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런 성공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충성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1. 기도한다. 목장 사역은 기도 사역이다. “이런 부류는 기도로 쫓아내지 않고는, 어떤 수로도 쫓아낼 수 없다.”(막 9:23) 2. 섬긴다. 섬기는 것이 권위를 심어준다. “너희 가운데서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마 20:27) 3. 영혼 구원에 목표를 둔다. 관리 목표는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얻고 진리를 알게 되기를 원하십니다.”(딤전 2:4) 4. 기다려준다. 사람이 변하는 것은 시간이 걸리는 것을 인정한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딥니다.”(고전 13:7) 5. 희생을 각오한다. 희생을 아끼면 더 힘들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서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열매를 많이 맺는다.”(요 12:24) 6. 사역의 어려움을 나눌 수 있는 조 모임에 반드시 참석하고 필요할 때 모여서 기도한다. “혼자보다는 둘이 더 낫다. 두 사람이 함께 일할 때에,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넘어지면, 다른 한 사람이 자기의 동무를 일으켜 줄 수 있다. 그러나 혼자 가다가 넘어지면, 딱하게도, 일으켜 줄 사람이 없다.”(전 4:9-10) 7. 천국의 상급에 목표를 둔다. 이것이 궁극적인 동기 부여를 준다. “나의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주님의 일을 더욱 많이 하십시오. 여러분이 아는 대로, 여러분의 수고가 주님 안에서 헛되지 않습니다.”(고전 15:58) 여러분의 목장에도 위의 원리를 적용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시편 127:1은 “주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집을 세우는 사람의 수고가 헛되며, 주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된 일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목장을 위하여 더욱 기도하며 주님께서 주시는 열매로 즐거워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울타리 안에서의 선택
[9월 22일] (교회나 가정이나 직장에 대해서 휴스턴서울교회의 최영기 목사님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자주 있습니다.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할 때에, 최목사님께서 “어떻게 나하고 생각이 그렇게 똑같으냐?”고 말씀하실 때도 자주 있었습니다. 최목사님께서 교회 목회 서신에 올리신 글을 볼 때에도, ‘어, 나와 생각이 똑같으시네.’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자주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하고 싶은 얘기를 그대로 하셨다는 생각이 들 때에는, 우리 교회 주보 목회 서신에 그대로 옮겨놓을 생각입니다. 오늘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선택권을 준 다음에 그 권한을 빼앗으면 아이들을 노엽게 한다는 말을, 제가 자주 했던 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최목사님은 그것을 ‘울타리 안에서의 선택’이라는 말로 표현하셨습니다. 글로 정리된 것을 다시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옛날에는 3-4대가 모여 살았기 때문에 자녀 교육을 따로 시키기 않아도 되었습니다. 어른들이 하는 것을 보고 배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핵가족 시대가 열리면서 자녀들을 의도적으로 교육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예전의 자녀 교육은 강압적이었습니다. “어른이 하라고 하면 하는 거야!” “너, 엄마 말 안 들을래?” 그러나 지금 이런 방법은 유치원에 다니는 자녀들에게도 통하지 않습니다. 요즈음 자녀 교육 원칙이 있다면, ‘하자는 대로 다 해주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것은 자녀들의 인생을 망쳐주는 것입니다. 장성해서 세상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절망에 빠지거나 반사회적인 인간이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에게는 울타리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서 모여서 술 마신다는 소문이 난 파티에 청소년 자녀가 가겠다고 하면, 안 된다고 단호하게 거절해야 합니다. 불평을 쏟아 놓겠지만 내심으로는 고마워합니다. 청소년들에게 울타리가 없는 것은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청소년기는 자아를 발견해가는 시기이기 때문에 부모의 가치관에 도전을 하게 됩니다. 많은 부모에게는 이것이 반항으로 느껴집니다. 그래서 권위로 억누르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자녀들과 충돌이 계속되면, 그만 지쳐버려서 “에라, 모르겠다.” 방치해 버립니다. 그러나 방치하는 것은 권위로 누르려는 것보다 더 나쁩니다. 자녀를 잘 양육하려면 울타리를 쳐주고, 그 안에서 선택하는 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예를 들어 어디 나갈 때, 어린 자녀에게 “너, 뭐 입을래?” 하면, 추운 날 얇은 옷을 선택하든지, 공식적인 자리에 가는데 어울리지 않는 옷을 골라 부모와 충돌을 일으키게 됩니다. 선택을 완전히 맡기지 말고 옷 두 개를 골라주면서 “너, 빨간 옷 입을래, 파란 옷 입을래?”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울타리 안에서 선택입니다. 목회가 자녀 키우는 것과 유사해서 그런지, 목회에도 울타리 안에서의 선택이라는 원리가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원칙이라는 큰 울타리를 쳐주고 성도들이 그 안에서는 재량껏 사역하도록 합니다. 그러면 창의력을 발휘해서 사역을 잘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계명이라는 울타리를 쳐주시고, 그 안에서 마음껏 자유를 누리며 살게 하셨습니다. 울타리 안에서의 선택은 하나님께서 주신 원리이고, 우리가 이 원리를 좇아 자녀들을 양육하면 이들이 건강하고 바르게 자라게 될 것입니다.
- 친구 목사 장모님 발인예배
[9월 15일] 몇 해 전에 친구 목사의 장모님 발인 예배를 인도하며 설교를 했습니다. 그 전날 조문을 갔는데, 조의금은 정중히 사양한다는 안내문이 있었습니다.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장인께서 “내 아내를 남의 돈으로 보내기보다는 내 돈으로 보내고 싶다.”는 의도로 조의금을 받지 않으시는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르신(지금부터 친구의 장인을 어르신으로 지칭하겠습니다)은 이북에서 내려오셔서 자수성가하신 분이라 의지가 강한 분이셨던 모양입니다. 물론 재정적으로 감당하실 수 있으니까 그런 말씀을 하셨겠지요. 어르신의 사위인 친구가 몇 차례 복음을 전했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죄인인데, 아버님의 죄 값을 대신 치르시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라고 얘기를 했겠지요. 그런데 어르신은 “내 죄 값을 내가 치르지, 왜 다른 사람이 내 죄 값을 치르느냐?”고 하셨답니다. 그냥 듣기에는 어르신의 말씀이 합리적이고 양심적인 것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발인 예배 설교를 위해 원고를 준비해 갔지만, 하나님께서 다른 지혜를 주셨습니다. 발인 예배를 드리는 자리에 젊은 사람들보다는 어르신이나 자제분들의 지인들이 많이 오셨나 봅니다. 복음을 명확하게 모르는 분들이 제법 계실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분들에게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생각도 주셨습니다. 우선 어르신이 가지고 계신 생각에서 말을 시작하였습니다. ‘내 아내를 내 돈으로 보내지 남의 돈으로 보내기 싫다.’는 말씀이 멋있게 들립니다. 그러나 한 가지 놓치고 있는 것이 있어서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는 지금 고인을 떠나 보내는 발인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발인이라는 말 자체가 집에서 떠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미 고인의 영혼은 이틀 전에 떠나셨습니다. 그러면 어디로 보내드리는 것일까요?” 실제로 보내 드린다고 하지만 어디로 가시는지 생각을 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아마 발인 예배에 참석하신 분들은 한 번쯤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내 죄 값을 내가 치르지, 왜 다른 사람이 내 죄 값을 치르느냐?”는 말씀도 멋있고 사나이다운 말씀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빚이 잔뜩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빚을 갚아줄 수 있을까요? 물론 세상 빚은 그럴 수 있겠지요. 그러나 그 자체가 우스운 일입니다. 건방지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진정 다른 사람의 빚을 갚아주려면 내 빚이 없는 사람이 갚아 주어야 옳습니다. 그런데 우리 모두는 죄인입니다. 우리의 죄 때문에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져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실 분은 죄가 하나도 없는 분이어야 합니다. 오직 흠 없고 죄 없는 예수님만이 우리의 죄 값을 치르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어르신들은 자신의 후손들이 칭찬받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그래서 어르신의 사위인 친구를 진심으로 칭찬하는 말을 하였습니다. “어르신의 사위인 방선기 목사는 저에게 영원한 생명의 은인입니다. 이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해준 은인이며, 생명을 얻게 해준 영원한 은인입니다. 제가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과외공부를 할 학생들을 교회 벤치에서 소개해 주어서, 저로 하여금 교회에 첫발을 내딛도록 해준 사람입니다.” 어르신은 부인의 장례식을 완벽했다고 하시며, 아내와 자신의 성함이 기록된 비석에 십자가를 넣고 성경구절도 넣으라고 하셔서 “하나님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라고 넣었답니다. 후에 식사 대접도 해주셨는데, 그 자리에서 “언젠가는 귀의하여 아내와 함께 있겠다.”고 말씀을 하시며 제가 드린 전도지를 주머니에 곱게 넣으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일 년 후 어르신께서도 소천을 하셨고, 그 장례식에서도 제가 예배 인도를 했습니다.
- 추석 가정예배(창세기 50:15-26)
[9월 8일] 이번 주간 금요일은 우리나라의 큰 명절 중의 하나인 추석입니다. 가족들이 오래간만에 모여서 사랑의 교제를 나누며 모든 사람이 원하는 “성공적인 삶”이란 무엇인가 한 번 살펴보는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성공관은 ‘부와 명예’에 그 기준을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부와 명예를 얻은 사람들 가운데 만족하지 못하고 행복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이 성공에 대해 4F로 설명을 했습니다. Fulfillment(성취), Faithfulness(성실), Friendship(우정), Forgiveness(용서)입니다. 이에 비추어보면, 요셉은 성공적인 인생을 산 사람입니다. 1. 성취(Fulfillment) 하나님께서는 요셉으로 하여금, 형들의 곡식단이 요셉의 곡식단에 절을 하거나, 해와 달과 별 열한 개가 요셉에게 절을 하는 꿈을 꾸게 하셨습니다. 요셉에게 절을 받게 하는 위치에 앉게 하신 것은, 요셉으로 하여금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는 맡기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사를 주시는 목적은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요셉은 흙구덩이 던져지고, 종으로 팔려가기도 하며, 모함을 받아 감옥에 갇히기도 하는 험난한 과정을 잘 통과하였고,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는 일에 쓰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꿈을 성취한 것입니다. 2. 성실(Faithfulness) 꿈을 성취했다 하더라도 그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성실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진정한 성공이라고 부르기 어렵습니다. 또한 성실함이 없이는 성취를 이루기도 어렵습니다. 요셉은 꿈을 이루기까지 모든 과정에서 한결같이 성실했습니다. 아버지의 심부름을 할 때 성실했습니다. 경호대장의 집에 종으로 있을 때에도, 모든 것을 맡길 정도로 성실했습니다. 모함을 받아 감옥에 있을 때에도 죄수들을 모두 그에게 맡길 정도로 성실했습니다. 후에 이집트의 총리가 되어 한 나라의 살림살이를 할 때에나, 자신의 가족들을 돌보는 일에도 성실했습니다. 3. 우정(Friendship) 높은 자리에 앉을수록 적이 많아지기 쉽습니다. 성공했다고 하지만 사람들과 맺는 관계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아버지의 극심한 편애, 요셉 자신의 정직성 때문에 형들에게 미움을 받는 일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어디에 가나 사람들의 마음을 얻었습니다. 종으로 있을 때에는 주인에게, 감옥에 있을 때에는 간수장에게, 더구나 이집트 왕의 인정을 받아 총리에 이르기까지 하였습니다. 이집트에 일곱 해 있을 흉년을 대비한 정책을 말할 때에는 바로와 모든 신하들이 이 제안을 좋게 여기기도 했습니다. 바로는 “너처럼 명철하고 슬기로운 사람이 어디에 또 있겠느냐?”는 칭찬을 하기도 했습니다. 4. 용서(Forgiveness) 요셉의 가장 멋있는 모습은 형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나타납니다. 자기를 죽이려고 했고, 장사들에게 팔아넘겨 종살이를 하게 만든 형들에 대한 억울함으로 앙갚음을 할 생각이 있었다면, 그의 삶이 그리 아름답지 않았을 것입니다. 만일 그랬다면 그는 원망과 복수심의 노예가 되어 살았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실제로 지혜롭지 못하게 원망, 복수심, 한 맺힘, 욕망의 노예가 되어 살아갑니다. 형들은 요셉이 앙갚음을 할까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모든 일에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가 있음을 인정하고, 형들을 용서할 뿐 아니라 그들의 자녀들까지 돌볼 생각을 하였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와 같이 성공적인 삶을 누릴 수 있기를 원합니다.
- (고)이병철 회장의 24가지 종교 관련 질문
[9월 1일] (삼성그룹의 창업주이신 고 이병철(1910~87) 회장님이 세상을 떠나시기 한 달 전 질문지를 남기셨답니다. 돈에 관한 얘기도, 기업에 관한 얘기도, 경영에 관한 얘기도 아니었습니다. 2년째 폐암과 투병 중이던 이 회장님은 인간과 신, 그리고 종교에 대한 물음을 남겼습니다. 그걸 천주교 신부에게 전했습니다. 이 회장님의 질문은 모두 24개입니다. 어찌 보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질문할 수 있는 것을 모두 모은 듯합니다. 우리 성도들이 목장모임에서 한 번 함께 답을 해보면 좋을 것 같아 옮겨 놓았습니다.) 1. 신(하느님)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 신은 왜 자신의 존재를 똑똑히 드러내 보이지 않나? 2. 신은 우주만물의 창조주라는데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 3. 생물학자들은 인간도 오랜 진화과정의 산물이라고 하는데, 신의 인간창조와 어떻게 다른가? 인간이나 생물도 진화의 산물 아닌가? 4. 언젠가 생명의 합성, 무병장수의 시대도 가능한 것 같다. 이처럼 과학이 끝없이 발달하면 신의 존재도 부인되는 것이 아닌가? 5. 신은 인간을 사랑했다면, 왜 고통과 불행과 죽음을 주었는가? 6. 신은 왜 악인을 만들었는가? 예: 히틀러나 스탈린, 또는 갖가지 흉악범들. 7. 예수는 우리의 죄를 대신 속죄하기 위해 죽었다는데, 우리의 죄란 무엇인가? 왜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게 내버려 두었는가? 8. 성경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그것이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 9. 종교란 무엇인가? 왜 인간에게 필요한가? 10. 영혼이란 무엇인가? 11. 종교의 종류와 특징은 무엇인가? 12. 천주교를 믿지 않고는 천국에 갈 수 없는가? 무종교인, 무신론자, 타종교인들 중에도 착한 사람이 많은데, 이들은 어디로 가는가? 13. 종교의 목적은 모두 착하게 사는 것인데, 왜 천주교만 제일이고, 다른 종교는 이단시하는가? 14. 인간이 죽은 후에 영혼은 죽지 않고, 천국과 지옥으로 간다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15. 신앙이 없어도 부귀를 누리고, 악인 중에도 부귀와 안락을 누리는 사람이 많은데, 교훈은 무엇인가? 16. 성경에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을 약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에 비유했는데, 부자는 악인이란 말인가? 17. 이태리 같은 나라는 국민의 99%가 천주교인데 사회혼란과 범죄가 왜 그리 많으며, 세계의 모범국이 되지 못하는가? 18. 신앙인은 때때로 광인처럼 되는데, 공산당원들이 공산주의에 미치는 것과 어떻게 다른가? 19. 천주교와 공산주의는 상극이라고 하는데, 천주교도가 많은 나라들이 왜 공산국이 되었나? 예: 폴란드 등 동구제국, 니카라과 등. 20. 우리나라는 두 집 건너 교회가 있고, 신자도 많은데, 사회범죄와 시련이 왜 그리 많은가? 21. 로마 교황의 결정엔 잘못이 없다는데, 그도 사람인데 어떻게 그런 독선이 가능한가? 22. 신부는 어떤 사람인가? 왜 독신인가? 수녀는 어떤 사람인가? 왜 독신인가? 23. 천주교의 어떤 단체는 기업주를 착취자로, 근로자를 착취당하는 자로 단정, 기업의 분열과 파괴를 조장하는데, 자본주의 체제의 미덕을 부인하는 것인가? 24. 지구의 종말은 오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