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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서신 · 2019.10.06

세상과 하나님의 가치관

[10월 6일] 성경본문: 누가복음 15: 11-32 사도 바울은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삶을 살도록 권면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권면과 아울러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라.”는 것입니다. 이 시대의 풍조라는 말을 들으면, 대개 부정, 음란, 탐욕 등을 생각하기 쉬운데,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가치관의 변화입니다. 오늘은 누가복음 15장, 탕진하고 집에 돌아온 아들을 대하는 아버지와 큰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가져야할 가치관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큰 아들의 모습 탕진하고 집에 돌아온 아들을 위해서 아버지가 잔치를 벌여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큰아들은 화가 나서 집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재산을 다 삼켜버린 녀석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 녀석은 아버지의 아들도 아니오, 자기의 동생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울화가 치밀어서 도무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의 풍조는 큰아들이 밟은 순서를 그대로 밟고 있습니다. 큰아들은 동생이 무엇인가 성과를 내거나 달성(Achievement)을 하지 못했으니 중요한 사람(Significance)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아들이나 동생(Identity)으로 여길 수도 없고 받아들일 수(Accept)도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큰아들 자신은 여러 해를 두고 아버지를 섬기고 있었는데, 자기를 위해서는 잔치를 벌여준 적이 없는 것에 대해 불만이 가득했습니다. 2. 아버지의 모습 아버지는 큰아들과는 전혀 반대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일찍이 제 것을 다 챙겨서 먼 지방으로 가서 방탕하게 살면서 그 재산을 낭비한 둘째 아들이었지만, 그가 아직 먼 거리에 있는데 달려가 껴안고 아들로 받아들였습니다.(Accept) 그는 죽었다가 살아난 아들이요, 잃었다가 찾은 아들(Identity)이었습니다. 가장 좋은 옷을 꺼내서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벌일 정도로 중요한(Significance) 아들이었습니다. 그 이후에 작은 아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모든 것을 탕진하고 남의 집 돼지를 치면서, 돼지 먹이라도 먹고 싶을 때 제정신이 든 그는,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 앞에서 죄를 지었습니다. 나는 더 이상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으니, 나를 품꾼의 하나로 삼아주십시오.’ 하며 가졌던 그 마음으로 성실(Achievement)하게 살았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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