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 모래 위의 발자국
때로는 어이없는 일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나는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일인데, 나 때문에 상처를 받았다고 할 때가 있습니다. 마음을 모두 나누며 사랑했던 사람이 불의의 사고를 당해 내 곁을 떠날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믿으며 함께 했던 사람이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어 나를 대할 때가 있습니다. 최선을 다하여 주의를 한다고 했는데, 생각지도 않은 일로 손해를 입을 때가 있습니다. 사람은 많건만,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외로움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마음을 다하여 정성껏 돌보아 주었건만, 사람들이 내 곁을 떠나버릴 때가 있습니다. 웬일인지 우주 속에 나만 혼자 남아있는 것처럼 외로움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해준다고 해주어도 받은 사람이 오히려 서운해 하며 고마워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남편이 남의 편을 들고, 아내가 아! 내 편을 들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 때에 이 시를 다시 읽어 보십시오. ‘모래 위의 발자국’이라는 시를 여러 번 보아서 익숙한 분들도 있겠지만, 다시 볼수록 은혜로운 시이기 때문에 다시 한 번 소개합니다. 어느 날 밤 꿈을 꾸었네. 주와 함께 바닷가 거니는 꿈을 꾸었네. 하늘을 가로질러 임한 그 바닷가 모래 위에 두 쌍의 발자국을 보았네. 한 쌍은 내 것 또 한 쌍은 주님의 것. 거기서 내 인생의 장면들을 보았네. 마지막 내 발자국이 멈춘 그곳에서 내 인생의 길을 돌이켜 보았을 때 자주 내 인생 길에는 오직 한 쌍의 발자국만 보였네. 그때는 내 인생이 가장 비참하고 슬펐던 계절이었네. 나는 의아해서 주님께 물었네. ‘주님 제가 당신을 따르기로 했을 때 당신은 저와 항상 함께하신다고 약속하셨잖아요? 그러나 보세요. 제가 주님을 가장 필요로 했던 그때 거기에는 한 쌍의 발자국밖에 없었습니다. 주님은 저를 떠나 계셨나요?’ 주님께서 대답하셨다네. ‘나의 귀하고 소중한 사람아, 나는 너를 사랑하였고 너를 조금도 떠나지 않았단다. 너의 시련의 때 고통의 때에도 네가 본 오직 한 쌍의 발자국 그것은 나의 발자국이었느니라. 그때 내가 너를 등에 업고 걸었노라.’ 외로움을 느낄 때, 실패하여 낙담하고 있을 때, 고통과 아픔으로 혼자 흐느끼고 있을 때, 부활의 주님께서 바로 내 곁에 계십니다.
- 나는 이것 때문에 산다
대학생이었을 때에 제자훈련을 해주었던 한 청년이 오래 전에 저를 찾아왔습니다. 당시에는 학교를 졸업하고 결혼을 하여 돌이 지난 아이를 가진 성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졸업을 한 이후에는 돈 벌기에 바빠 저에게서 배운 것들을 기억해볼 틈도 내지 못했던 것 같았습니다. 아니 그런 틈을 내지 않았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옳을 것입니다.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그는 일반 직장을 가지는 것보다는 증권회사와 연관된 일을 하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을 가지고 얼마 전까지 일을 잘 해왔습니다. 그러나 당시에 상황이 좋지 않아져서 모든 것들을 정리한 상태였습니다. 다행히도 무리하게 일을 벌이지는 않았고, 남에게 꾼 돈은 다 갚은 상태로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그는 무슨 일을 할까 고민을 하고 있었고, 아내는 미국 간호사 자격을 얻기 위하여 준비 중이었습니다. 코로나 사태 전이었는데, 아내는 미국을 가기 원했고, 따라서 ‘미국을 가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도 주된 질문 중의 하나였습니다. 청년이 나를 찾아온 이유는 그 동안의 일들을 이야기하고 싶었고, 앞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묻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위하여 어떻게 살아야할지를 묻는 질문은 빠져 있었습니다. 마치 예수님의 부활까지도 목격한 베드로가 물고기를 잡는 일에 빠져있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물론 그가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인가는 중요한 일입니다. 아내가 원하는 것이 잘못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내가 어떠한 삶을 살기 원하시는가?’에 대한 질문이 빠져 있었습니다. 저는 그가 대학생이었을 때 가르쳤던 내용을 다시 반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이것 때문에 살아야한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그에게 물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엇을 해서 돈을 벌까, 어디에서 살까에 대해서는 많은 궁리를 합니다. 그러나 ‘나는 이것 때문에 산다.’는 평생의 목적을 세우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많은 기업체들이 직원들의 잠재력을 최대로 발휘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업에서는 성공하고, 인생에서는 실패했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무수히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가능하면 편하게, 유명하게, 또는 즐겁게, 그리고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 대부분 사람들의 목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만드실 때에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생애에서 ‘선한 일’이 빠져있으면 공허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그 청년의 질문에 친절하게 답을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질문 ‘나는 무엇 때문에 사는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도록 권면하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그가 사회에 나가기 전에 꼭 정리하도록 부탁한 내용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가장 멋있는 생애를 사신 한 분을 다시 소개해 주었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그는 책을 저술하지도 않았고, 군대를 지휘하지도 않았으며, 아버지로서 한 가족을 돌보지도 않았고, 회사를 창설하지도 않은 채 그냥 살다가 죽었다. 그는 심지어 자그마한 자기 나라 밖으로 여행한 일도 없다. 그의 이름은 나사렛 예수이다. 예수 그리스도보다 더 힘차게 자신의 생의 목적에 대한 헌신을 나타낸 사람은 없다. 그분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목적지향적인 삶에 따르는 평정과 평안을 보여주었다. 그분은 아주 완벽하게 하나님께서 주신 목적과 소명에 충실하였다.”
- 총목자연합수련회 후기(부산 미래로교회 구정오 목사님의 리포트 요약)
작년 12월 5일 예정이었던 제 15차 총목자 연합수련회를 코로나 3차 유행으로 연기했습니다.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면 연기할 수 있다는 논의 후에, 평신도 사역팀과 자문위원회에서 긴급히 결정하고 2월 20일 날짜를 새로 정했습니다. 새해가 되고 설 전후에도 코로나 상황이 진전이 되지 않아 랜선 수련회로 준비기도에 들어갔습니다. 평신도 사역팀이 82개 집합교회 스탭들과 519개 육겹줄 조장과 똘똘 뭉쳐서 각 초원별 합심 릴레이 기도로 준비했습니다. 평신도 사역팀이 온라인의 장단점을 알고, 미리 육겹줄로 조를 짜고, 미리 3차에 줌 미팅을 통한 준비가 주효했습니다. 초원별 초원지기와 각 목회자의 환영사와 인사, 그리고 전 가사원장인 조근호 목사님과 현 가사원장이신 이경준 목사님의 특강을 미리 듣고 준비한 것이 좋았습니다. 저는 미리 마음준비를 하고 목자들의 여러 실제적인 다양한 질문에 답변을 한 초원지기목사님들의 답변도 좋았습니다. 그리고 당일 얼마나 철저하게 준비를 했든지 한 차례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송출이 되었습니다. 최 목사님의 주제 강의 세 번은 또 새롭게 들렸습니다. 기초가 약할 때 언제든지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말씀은 코로나로 인해 희미해진 우리의 영적 기초체력을 새롭게 하고자는 소원과 결단을 일으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성경적인 교회는 열매로 알 수 있다.” “비신자가 예수 믿고 구원받고, 기신자가 변화되고 기쁨이 넘친다.” 그리고 세 축 네 기둥에 근거한 가정교회의 성경적 그림과 실제적인 목장모임운영에 대한 강의는 쏙쏙 귀에 다시 들어왔습니다. 코로나 상황에서도 다시금 VIP를 작정하고 영혼 구원하여 제자 만드는 사역에 헌신하고자 하는 소원과 결단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우리가 하는 것은 한국교회를 살리는 거다. 종교개혁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다. 징기스칸보다 라이언 일병구하기가 더 감동적인 영화일 수 있지 않는가!”라는 말씀이 제 가슴을 때렸습니다. 최목사님의 마지막 권면 위기는 당했을 때 해결하는 길은 기본으로 돌아갑시다! 성경대로! “성경이 그렇다면 그런 줄 알고, 아니라면 아닌 줄 알고! 하라면 하고, 하지 말라고 하면 하지 말고” 단순하게 성경을 이해하고 순종합시다! 주님의 원하셨던 그 교회로 돌아가는 것이다. 유럽 어느 성당을 건축하는 현장에 세 석공이 있었습니다.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석공들은 “돌을 깨고 있다.” “식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돈을 벌고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한 석공은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전을 건축하고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여러분은 세 번째 고백한 사람처럼 큰 그림을 그리시기 바랍니다! 무너져가는 한국교회를 살린다는 큰 그림입니다! 우리는 종교개혁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기도와 눈물 때문에 하나님께서 한국교회를 긍휼히 여기지 않으실까 기대를 갖게 됩니다. 주를 위한 가슴앓이, 아픔, 희생은 주를 위해 받는 고난입니다. 헌신했을 때 맛보는 보람, 행복을 누리시고, 하늘나라에서 많은 상급을 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예수님의 제자가 하지 말아야 할 일
어떤 직책을 맡거나 직분을 맡든지 해야 할 일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습니다. 맡은 일이나 책임 등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면 직무유기이거나 직무태만입니다. 또한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면 부정이나 비리가 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도 마찬가지로 해야 할 일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습니다. 해야 할 일에 대해서는 지난 주일에 요한복음을 중심으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누가복음 14장을 중심으로 하지 말아야 할, 즉 주의해야 할 일에 대해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1. 예수님을 첫 자리에 모시지 않는 사람(26절) 첫째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나, 아내나 자식이나, 형제나 자매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기 목숨보다 예수님을 첫 자리에 모셔야 합니다. 본문에서 ‘미워한다’는 말은 ‘덜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보다 다른 것을 앞자리에 두는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만일 다른 것을 예수님보다 앞에 둔다면, 그것이 바로 주님이 되는 것입니다. 친척들이나 친구들의 모임에 빠질 수가 없어서 예배를 빠진다면, 예배를 받으셔야 할 하나님이 주님이 아니라, 그들이 주님입니다. 가족들이 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지 못한다면, 이 역시 가족들이 주님이 됩니다. 나의 게으름이나 정욕 때문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실 일을 한다면, 내가 주님이 됩니다. 우리가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생각이 정해지고, 생각에 따라 행동이, 행동에 따라 습관이, 습관에 따라 인격이, 인격에 따라 일생이 정해집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첫 자리에 모시는 삶을 살려면 몸의 등불인 눈 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2.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지 않는 사람(27절) 둘째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지 않으면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말은 자아 즉 에고(Ego)를 내려놓는(죽이는) 것을 뜻합니다. 주님을 믿는 자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자존감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자존심(남에게 굽히지 않고 스스로의 가치나 품위를 지키거나 높이려는 마음)은 십자가에 못박아야 합니다. 자아를 십자가에 못박지 못하면, 교만이 고개를 들게 됩니다. 잠언 6:17-18에서, 주님께서 미워하시는 것, 주님께서 싫어하시는 것 중의 첫 번째로 교만을 지적하였습니다. 교만은 심지어 하나님과 자신을 비교하며,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으려는 시도까지 하게 만듭니다. 교만은 흘기는 눈이나, 거짓말하는 혀로 드러나며, 악한 일을 저지르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3. 소유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않는 사람(33절) 셋째로, 소유에 대한 욕망을 버려야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돈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라고 디모데전서 6:10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돈을 좇다가, 믿음에서 떠나 헤매기도 하고, 많은 고통을 겪기도 합니다. 부자가 되는 것이 죄는 아닙니다. 어떻게 부자가 되려고 하느냐, 어떻게 부자가 되었느냐가 중요합니다. 부자가 되려고 하다가 스스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 합니다. 골로새서 3:5은 탐욕을 우상숭배라고 지적하였습니다. 우상숭배란, 하나님이 계셔야 할 자리에 다른 것을 앉혀놓는 것입니다.“돈에는 장사가 없다.”는 속담도 있습니다. 지출에 수입을 맞추려고 하면, 돈에 대한 욕심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탐욕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열심히 일하며, 지금 가지고 있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입에 지출을 맞추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 예수님의 제자가 해야 할 일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하면 내 제자가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신 곳이 세 곳,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하고 말씀하신 곳에 세 곳 있습니다.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는 방법이 나와 있습니다. 요한복음 8:31, 13:34-35, 15:8이 바로 그 말씀들입니다. 이러한 제자들은 예수님의 생애 전체를 배우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배우고 닮아가는 사람입니다. 요한복음의 세 군데에 그 자격기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 나의 말에 머물러 있으면: 첫째는, 주님의 말씀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 주님의 참 제자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머물러 있다는 의미를, 주님께서는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것으로 비유하여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8장의 본문 말씀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유대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들은 두루마리 성경을 통해서 구약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지식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과 함께 있게 하시며 예수님의 생애 전체를 배우게 하셨습니다. 때로는 그들을 내보내어서 말씀을 전파하게 하셨습니다. 지식전달보다는 능력을 배양시켜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교실 강의보다는 현장 실습을 통해서, 가르쳐서 제자를 만드시기보다 보여서 제자를 만드셨습니다. 예수님의 참 제자는 예수님의 말씀에 머물러 있으면서, 예수님의 성품을 닮고 예수님의 사역을 닮아 그대로 전수(재생산)하는 사람입니다. 2. 서로 사랑하면: 둘째는,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 주님의 참 제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는 일에도 먼저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기 직전에 주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며, 제자들이 본 그대로 남의 발을 씻겨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진정한 섬김은 다른 사람을 성공시켜주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섬기실 뿐만 아니라, 또한 제자들을 섬기는 사람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러 오시지 아니하고 섬기러 이 땅에 오셨고,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치를 몸값으로 자신의 목숨을 내주러 오셨습니다. 이것이 가장 큰 사랑의 본입니다. 사랑은 감정적으로 느끼는 것만이 아닙니다. 머리로 아는 지성적인 사랑도 있거니와, 더욱 숭고한 사랑은 사랑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의지적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사랑받을 만한 일을 하지 못했을 때, 더욱 사랑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3. 열매를 많이 맺으면: 셋째는, 열매를 많이 맺는 사람이 참 제자입니다. 열매는 성령의 열매로 말미암은 성품의 열매가 있고, 성령의 은사로 말미암은 사역의 열매가 있습니다. 이를 통하여 예수님의 성품과 예수님의 사역을 닮는 것입니다. 참 제자는 말씀을 듣고 잊어버리는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실행하는 사람입니다. 그저 듣기만 하고 말씀을 행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을 속이는 사람입니다. 주님의 참 제자가 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첫째는, 주님의 말씀에 머무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아는 대로 그 말씀을 순종하고, 그만큼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입증이 되어 또 다른 말씀을 알려주시는 대로 그 말씀을 순종하는 일을 끊임없이 하는 제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는,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셋째는,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고, 예수님의 사역을 닮아가서 재생산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되는 길입니다.
- 하나복 수양회(최영기 목사님의 글을 옮겨 적었습니다.)
‘하나복(하나님 나라 복음)’이라는 목회자들 네트워크 주관으로 2월 4-6일에 열리는 연례 수양회에서 가사원 임원들이 강사로 섬깁니다. 저와 이경준 원장님이 가정교회에 관해 강의를 하고, 박종국 목사님(울산 다운공동체교회)이 간증을 합니다. 200명 가까이 등록을 했다는데, 참석자들과 질의응답 시간도 있고, 참석자들은 가사원 가정교회 초원 모임도 참관합니다. 하나복은 김형국 목사님(나들목 교회 대표)이 대표로 섬기고 있습니다. 김 목사님은 나들목 교회를 개척하여 잘 성장시키셨고, 최근에는 교회를 다섯 개로 나누어 분가시켰습니다. 김 목사님은 가정교회를 하고 계십니다. 교회 개척 전에 휴스턴 서울교회도 방문하시고, 서울에서 저와 만나 개척에 관한 계획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가정교회와 똑같지는 않습니다. 김 목사님에게 가사원 가정교회를 넘어 차세대에 맞는 가정교회를 하고 싶은 욕구가 있기 때문입니다. 나들목 교회의 목회 철학에 동의하는 목사님들로 모여진 단체가 하나복입니다. 소속된 교회들이 좋은 열매를 맺고 있지만, 영혼 구원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가정교회로 뿌리를 내리는데 어려움이 있어서, 우리 가정교회로부터 배우고 싶어 해서, 저희가 수양회를 섬기기로 했습니다. 이 기회를 통하여 성경적인 교회를 추구하는 다른 단체와 가사원과의 협력 관계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가정교회가 영향을 미치는 영역을 동심원으로 그려서 설명한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핵이 되는 중심원이 국제가사원 정회원 교회입니다. 2번째 동심원은 국제가사원 일반회원입니다. 3번째 원은 지역모임에 참석하는 교회들입니다. 4번째 원은 가정교회 원리를 배워서 변형시켜 적용하는 교회들입니다(나들목 교회 등). 5번째 원은 가정교회 세미나에 참석하여 생명의 삶을 배워서, 가르치는 교회입니다. 6번째 원은 구역이름을 목장으로 바꾸고, 구역장을 목자로 부르며, 공과공부 대신에 나눔의 시간을 갖는 교회들입니다. 이렇게 보면 가정교회가 꽤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가정교회는 주님이 꿈꾸셨던 교회이기 때문에 한국의 모든 교회가 가정교회로 전환하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 또 그렇게 되는 것이 바람직한가 싶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세워지기 위하여서는 다양한 은사를 가진 성도들이 필요하듯이, 우주적인 교회가 세워지기 위해서는 다양한 특징을 가진 교단, 다양한 목표를 가진 단체가 필요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적인 교회를 추구하는 단체라면, 이런 공동체를 가사원 안에 끌어들이기보다, 영향력 동심원 4의 영역에 속하도록 놔두고, 소속 목회자들과 평신도들에게 목세, 평세 참석을 허락한다든가 해서, 이 공동체 소속 교회가 성경적인 교회에 근접하도록 돕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정교회 원칙과 기준을 낮추어서라도 가사원이 더 많은 교회를 품는 것이 한국 교회에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주는 분들이 있지만, 이렇게 하면 영향력을 상실합니다. 영향력은 남과 차별화가 될 때에 생깁니다. 가사원이 다른 단체를 돕고 한국교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서는 가정교회 원칙과 기준을 고수해야 합니다.
- 102세 김형석 교수와의 인터뷰(퍼온 글을 요약)
“지금껏 살아보니 알겠더군요. 아무리 행복해지고 싶어도 행복해지기 힘든 사람들이 있습니다.” “크게 보면 두 부류입니다. 우선 정신적 가치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물질적 가치가 행복을 가져다주진 않으니까요. 가령 복권에 당첨된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이 과연 행복하게 살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정신적 가치를 모르는 사람이 많은 물건을 가지게 되면 오히려 불행해지고 말더군요.” “솔직히 돈이나 권력, 혹은 명예에서 행복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왜 그럴까요. 거기에는 ‘만족’이 없습니다. 돈과 권력, 명예욕은 기본적으로 소유욕입니다. 그건 가지면 가질수록 더 목이 마릅니다. 가지면 가질수록 더 배가 고픕니다. 그래서 항상 허기진 채로 살아가야 합니다. 행복하려면 꼭 필요한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그건 ‘만족’입니다.” “정신적 가치가 있는 사람은 만족을 압니다. 그런 사람들이 행복한 삶을 살더군요. 정신적 가치를 모르는 사람이 명예나 권력이나 재산을 거머쥘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결국 불행해지더군요. 명예와 권력, 재산으로 인해 오히려 불행해지고 말더군요. 지금 우리 주위에도 그러한 사람들은 많이 있습니다.”(영적 가치가 있는 사람이 참 만족을 압니다.: 이경준 목사 주) “두 번째는 이기주의자입니다. 그들은 절대로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이기주의자는 자신만을 위해 삽니다. 그래서 인격을 못 가집니다. 인격이 뭔가요. 그건 인간관계에서 나오는 선한 가치입니다. 이기주의자는 그걸 갖추기가 어렵습니다. 인격의 크기가 결국 자기 그릇의 크기입니다. 그 그릇에 행복을 담는 겁니다. 이기주의자는 그릇이 작기에 담을 수 있는 행복도 작을 수밖에 없습니다.” “가장 일을 많이 하고, 행복한 건 60세부터였어요. 내가 살아보니까 그랬습니다. 글도 더 잘 쓰게 되고, 사상도 올라가게 되고, 존경도 받게 되더군요. 사과나무를 키우면 제일 소중한 시기가 언제일까요. 열매 맺을 때입니다. 그게 60세부터입니다. 나는 늘 말합니다. ‘인생의 사회적 가치는 60부터 온다.’” “60을 넘어 90까지는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사회적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럼 90 이후에는 어떻게 되느냐. 되는 사람도 있고, 안 되는 사람도 있더군요. 주로 건강 때문입니다. 의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혈압, 당뇨, 치매는 주로 60세 이후에 찾아옵니다. 그걸 60, 70, 80세가 돼서 관리하려고 하니까 힘이 듭니다. 그러니까 50세부터 잘 관리하면 됩니다. 그럼 90까지는 다 간다고 합니다. 90세까지는 행복하고 보람 있게 살 수 있습니다. 의술이 발전하니까 40-50년 후에는 100세까지도 다들 행복하게 살 수 있겠지요.” “사람은 항상 공부를 해야 합니다. 뭐든지 배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정신이 늙어버립니다. 사람들은 몸이 늙으면 정신이 따라서 늙는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아닙니다. 자기 노력에 따라 정신은 늙지 않습니다. 그때는 몸이 정신을 따라옵니다.” “일을 한다는 것이 꼭 직업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공부가 따로 있나요. 독서하는 거죠. 취미 활동하는 거고요. 취미도 일 가운데 하나입니다. 100년을 살아보니 알겠더군요. 일하는 사람이 건강하고, 노는 사람은 건강하지 못합니다. 운동은 건강을 위해서 있고, 건강은 일을 위해서 있습니다. 내 친구 중에 누가 가장 건강하냐. 같은 나이에 일이나 독서를 제일 많이 하는 사람이 가장 건강합니다.”
- 위임은 언제 하는 것이 좋은가?
가정교회의 장점 중의 하나는 위임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위임을 하는 것은 방임이 되기 쉽습니다. 상황에 따라 지시 > 코치 > 후원 > 위임을 해야 하는데, 이것을 상황대응적 리더십(Situational Leadership) 또는 발전단계에 따른 리더십이라고 말합니다. 가장 보편적인 예를 들기 위해 자녀의 성장과정을 예로 들었습니다. 발전단계 1: 능력은 별로 없는데 의욕이 앞설 때.(지시: Direct) 이때에는 지원은 거의 하지 않고 지시를 많이 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돌을 갓 지난 아이가 이제 막 걸음마를 할 때입니다. 이때에 아이들은 걸을 능력은 별로 없지만, 혼자 걷겠다는 의욕이 앞서서 어른들의 손을 잡지 않습니다. 자연히 어른들은 지시를 하거나 통제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신입사원도 마찬가지이고, 어떤 일을 새롭게 할 때가 이 단계입니다. 기계를 구입한 사람들도 처음에는 매뉴얼의 지시를 따르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입니다. 이제 막 부임해 온 목회자나 갓 임명된 목자와 목녀도 마찬가지입니다. 발전단계 2: 능력은 약간 생겼는데 의욕이 떨어졌을 때.(코치: Coach) 이때에는 약간의 지원을 하면서 지시는 많이 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아이들이 두세 살이 되어 잘 걷게 되었을 때입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곧잘 걸을 수 있으면서도 잘 걸으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엄마에게 업어달라고 조르거나 아빠 어깨에 태워달라고 보채는 경우가 많습니다. 목자와 목녀가 된 지 서너 해가 지나면서 힘들어 하는 과정입니다. 이때에는 동기를 많이 부여해주거나 흥미를 일으킬 수 있도록 적당히 코치를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발전단계 3: 능력은 많이 생겼는데 의욕이 가변적일 때.(후원: Support) 이때에는 지원을 많이 해주면서 지시는 별로 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사춘기를 지나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입니다. 이 정도 되면 스스로 공부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날은 자신의 일을 스스로 해결을 잘 하지만, 어떤 날은 옛날로 돌아가 버린 것처럼 한심해 보일 때가 있습니다. 내일이 시험인데 빈둥거리는 것이지요. 곧잘 사역을 하던 목자와 목녀가 가끔 의욕이 떨어져서 안식년을 노래할 때가 바로 그때입니다. 그렇더라도 명령이나 훈시보다는 “힘들지 않을 만큼만 하라.”고 밝은 말투로 격려해 주고 후원해 주는 것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발전단계 4: 능력도 많아지고 의욕도 높아졌을 때.(위임: Delegate)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자신의 일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자신이 책임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한국의 어머니들이 잘 하지 못하는 부분입니다. 대학교 입학 설명회에도 어머니가 가서 앉아있고, 대학교 입학원서와 심지어 유학과 취직문제까지 어머니가 해결해 주려고 하는 모습은 변화되어야 합니다. 이때가 되면 목자와 목녀가 든든한 동역자가 된 상태입니다. 지원을 많이 해주면서 지시는 거의 하지 않고 맡은 일에 대해 위임을 해주는 단계입니다. 이것을 잘 하는 것이 가정교회의 큰 장점입니다. 네 단계를 요약하면 지시(Direct) > 코치(Coach) > 후원(Support) > 위임(Delegate)의 단계로 변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믿음의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지시하고 제한을 하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성장하면 점점 위임의 단계로 나아갑니다. 목장을 인도하는 것도 예외는 아닙니다. 처음 목자가 되어 목장을 인도할 때에는 지시를 많이 받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러나 목자로서 성숙하게 되면 위임을 많이 하게 되는 것입니다.
- 내 성격으로도 낯선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는 이유
교회의 존재목적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 구원받도록 도와주며, 믿는 사람들을 예수님의 제자로 성장하도록 돕는 것에 있습니다. 한 마디로 교회의 존재목적의 출발점은 사람들이 구원받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VIP를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Very Important Person. 예수님을 아직 믿지 않는 사람들은 지옥에 갈 사람들이 아니라, 구원을 받아야할 중요한 분들입니다. 목표를 숫자로 정하고 사람들을 밀어붙이는 것을 저는 좋아하지 않는 편입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일들은 목표를 숫자로 정하고 열심히 하는 것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본성은 조금이라도 편하게 지내고 싶은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중의 하나가 우리 교회를 통해서 주님을 믿게 되는 사람들의 수입니다. 적어도 우리 교인수의 1/10 정도는 매년 주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으면 하는 소원이 있습니다. 2019년에도 그 소원을 주님께서 이루어 주셨고, 코로나로 어려웠던 2020년에도 그 소원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저는 낯선 사람에게는 말을 잘 붙이지 못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좀 부담스러운 사람에게도 잘 다가서지 못합니다. 복음을 활기 있게 전하는 데에는 결함이 많은 성격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를 삼으라.”(마태복음 28:19)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도 얼마나 중요한지,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유언처럼 남기신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19절의 명령 말씀 앞뒤에는 큰 약속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18절과 20절의 말씀입니다. 먼저 18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다가와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았다.”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도록 나를 보내신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한 권세를 가지신 분이 내게 위임장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을 일컬어 주님의 ‘대위임령’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제자 삼는 일을 위하여 나를 그냥 보내신 것이 아니라,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신 예수님께서 내게 위임장을 주어서 보내셨다는 사실입니다. 두 번째 약속은 20절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는 일을 위하여 위임장을 주시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것도 세상 끝 날까지! 더구나 항상!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도록 나를 보내신 예수님께서 위임장도 주시고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나와 함께 하신다는 약속이 있는데, 더 이상의 무슨 변명을 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도 낯선 사람을 보면 머뭇거리는 제 성격은 여전합니다. 그러나 지금도 VIP에게 관심을 가지고 어찌 하든 복음을 전할 기회를 찾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주님께서 한 영혼이 주님께로 돌아오는 것을 가장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저의 주인이신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주님의 종인 제가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그 일을 위하여 주님께서 위임장을 주시고 세상 끝 날까지 나와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VIP는 우리의 존재 목적입니다. VIP는 우리 교회의 존재 목적입니다.
- 자녀를 이끌어(TOW)주는 원리
자녀교육과 연관하여 “TOW”(이끌어주는) 원리를 적용해 보십시오. T는 ‘신뢰하자’(Trust)입니다. 우리는 자녀들이 시집 장가를 가도 잘 신뢰를 하지 못합니다. 어른들 표현에 의하면, ‘밥이나 제대로 얻어먹고 다니는지? 내 딸 고생이나 시키지 않는지?’ 신뢰가 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침에도 스스로 일어나지 않고, 제 앞가림도 못했던 자녀들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하겠지요. 둘째로, O는 ‘기회를 주자’(Opportunity)입니다. 기회를 많이 주기 위해서 피아노학원, 미술학원, 태권도도장, 발레학원, 여기에 영어, 중국어학원을 보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주자는 말입니다. 실제로 어른들은 자녀들이 하는 것에 대해 마땅치 않게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어찌 아이들 수준이 어른들 수준을 따라올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자녀들이 자기 수준에서 할 수 있도록 스스로 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주어야 합니다. 셋째로, W는 ‘기다리자’(Wait)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분들이 처음에는 결심을 합니다. ‘그래, 믿어주자. 한번 기회를 줘보자.’ 큰맘을 먹고 여기까지는 잘 합니다.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가 될 때가 많습니다. 금방 ‘너를 믿은 내가 잘못이지. 네가 스스로 하는 걸 이제까지 본 적이 없다.’와 같은 생각으로 후회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자녀들이 해놓은 결과를 보며 만족하지 못하고 ‘그래, 이게 네 수준이다.’ 하며 무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수성가하신 사람들처럼 의지가 강한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네 나이 때는…’이라는 말입니다. 자녀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 중의 하나입니다. 신뢰하고 기회를 주었으면, 당장은 마음에 들지 않아도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와 다른 TOW를 적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첫째, T는 Teach(가르치다)를 주로 합니다. 둘째, O는 Order(명령하다)를 많이 합니다. 셋째, W는 Want(요구하다)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을 신뢰하기보다는, 내 수준을 아이들에게 기대하며 가르친 적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이 시대 우리나라의 큰 문제인 주입식 교육의 근본원인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해가 안 되면 그냥 외워. 일단 시험은 잘 봐야 될 것 아냐?” 많이 들었던 말입니다. 그 결과 창의성이 없어지고 표현능력이 없어져서 생긴 것이 바로 논술고사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논술고사까지도 주입식으로 외우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한편 우리는 조급합니다. 뜻하는 바가 바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바로 튀어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빨리! 빨리!”입니다. 결국은 기회를 주기보다는 명령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아이들에게 기대하는 바는 많습니다. 창의성이 없도록 만들어놓고는 창의성을 요구합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연습이 되지 않은 아이들에게 아이디어도 없고 결단력이 없다고 꾸지람을 합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꼭 내 얘기를 하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그래도 겸손한 사람입니다. 혹시 자신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얘기라고 생각된다면 배우자나 자녀에게 질문해 보십시오. 자신은 어느 쪽인가? 나는 앞의 TOW인가, 뒤의 TOW인가? 그리고 진정 신뢰하며 기회를 많이 주고 기다릴 줄 아는 부모가 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