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 착한 목사? 나쁜 목사?
오래 전의 일입니다. 다운교회에서 승합차를 마련하기 위해 중고차를 하나 구입하였습니다. 보통 새 차를 구입하면 구입한 날로부터 몇 년 이내, 또는 주행거리 몇 km까지는 무상으로 수리를 해주는 항목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차를 구입한 후에 무상으로 수리(A/S)를 받기 위해 자동차 정비소에서 점검을 하였는데, A/S를 해줄 수 있는 주행거리를 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계기판에 나온 주행거리와 실제 주행거리가 다른 것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차를 판 사람이 계기판 주행거리를 작게 나오도록 조작을 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선 ‘내용증명’을 차를 판 사람에게 보내도록 지시를 하였습니다. 내용증명이란 법률서식으로 법적인 절차를 밟기 전에 미리 알아야할 내용을 통보해 주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이런 내용으로 편지를 보내는 것이지요. “귀하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로 시작을 합니다. 그리고 일전에 판 자동차의 주행거리를 계기판에서 조작을 한 것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그 때문에 자동차 판매대금을 실제 받을 수 있는 금액보다 많이 받았기 때문에 그 차액을 돌려주든지, 아니면 환불해주고 자동차를 되돌려 받으라는 통보를 합니다. 최악의 경우 마지막에는,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을 경우에는 형사고발을 하거나 법적인 단계를 밟을 것이므로, 신속한 조치 및 연락을 기다립니다.”라는 문구를 넣어 공신력 있는 문서를 만들어 상대방에게 발송합니다. 이런 일을 경험해 보지 않은 분들은, 왜 목사인 제가 너그럽게 일을 처리하지 아니하고 법적으로 일을 처리하려 하는지 궁금하실 것입니다. 물론 저도 사람을 고발하고 법원에 가서 판사 앞에서 일을 처리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주먹을 불끈 쥐고 싸울 생각은 더욱 없습니다. 더구나 저는 싸울 줄도 모르고 싸움을 해본 적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제가 법적으로 해결하겠다고 덤벼드는 것은 아닙니다. 정말 불쌍한 사람에게는 당연히 긍휼을 베풀어야지요. 그러나 위의 경우와 같이 질이 좋지 않은 사람을 대할 때는 우선 ‘내용증명’과 같은 법적인 첫 단계를 밟아놓고 일을 진행해야 정당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제 생각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했더니 어느 분이 저에게 “목사님은 착한 목사님은 아니시네요.” 하시더군요. 그래서 제가 “그래요? 그런 식의 착한 목사는 되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만일 그분이 이야기한 것처럼, 제가 ‘착한 목사(?)’가 되어 내용증명을 보내지 아니하고 당사자를 만났다고 가정을 해보지요. 계기판의 주행거리까지 조작을 한 사람이 부당하게 취한 수백만 원을 순순히 바로 저에게 돌려줄까요? 그럴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봅니다. 만일 그럴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처음부터 그렇게 악한 일을 하지 않았겠지요. 만일 그 결과 제가 돈을 제대로 받아내지 못하면, 미터기를 조작하는 악한 행동을 한 사람에게는 제가 착한 목사가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결국 교회에 손해를 입히는 나쁜 목사가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교회 재정에 손해를 입히면서 악한 사람에게 돈을 더 주고, 저는 착한 목사가 된다면, 그것은 착한 목사가 아니라 제 직무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지요. 그런 식의 착한 목사가 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과연 ‘착하다’는 말의 정의를 여러분들은 어떻게 내리고 계십니까? 미가서 6:8은 “무엇이 착한 일인지를 주님께서 이미 말씀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공의를 실천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라고.
- 올바른 영적 준비
저는 말씀을 준비하는 동안에 주의하는 것 중의 하나는, 말씀을 나누려고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에서 제가 은혜를 받으려고 주의를 합니다. 말씀 속에서 제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무엇인가를 먼저 알고 싶은 것입니다. 대개의 경우, 나누려고 준비한 말씀보다는 제가 은혜 받은 것을 나눌 때에 성도님들께도 더 은혜가 되는 것을 자주 경험합니다. 솔로몬이 “자기를 위하여 수도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원수의 생명 멸하기를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왕상 3:11)를 하나님께 구하여 하나님의 칭찬을 받았던 사실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혜를 구한 솔로몬을 칭찬하시며,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솔로몬이 구하지 아니한 부와 영광도 주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솔로몬이 지혜를 구한 것보다 다윗이 “하나님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이 훨씬 더 멋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성경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궤(언약궤)를 메어 올 때에 너무나도 좋아하는 다윗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기쁨으로 하나님의 궤를 메어오도록 하였으며 소와 살진 것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다윗과 온 이스라엘 족속은 즐거이 부르며 나팔을 불었습니다. 여호와 앞에서 다윗이 얼마나 뛰놀며 춤을 추는지 그 아내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마음속으로 다윗을 업신여길 정도였습니다. 다윗의 이 모습은 그의 인격과 신앙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그의 마음을 잘 나타내주는 시편 세 구절을 소개합니다.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시 27:4) 저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무엇을 주셔야 기뻐합니다. 건강을 주시든, 재물을 주시든, 합격을 주시든, 무언가를 얻어가져야 기쁨이 생기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래서 30배, 60배, 100배의 축복을 그렇게도 좋아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기 마음에 하나님께서 두신 기쁨은, 남들이 곡식과 새 포도주 소출이 많을 때보다도 더하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시 27:4)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인가 하나를 기도하라고 하시면 무엇을 구하시겠습니까? 다윗은 하나님을 사모하고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는 것을 구한다고 말했습니다. 오랫동안 출장을 다녀온 아버지를 반기면서, 자기에게 돌아올 선물을 확인하기 위하여 아버지의 손을 쳐다보는 아이의 모습이 우리의 신앙모습은 아닌지요? 아버지 자체만 좋아하는 아이, 아버지는 그 아이에게 무엇이든지 주고 싶을 것입니다.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첫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시 84:10) 얼마나 하나님을 좋아했으면 이런 고백을 했을까요? 하나님께서 더 넓어진 장막, 우리만의 건물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 선물보다 하나님을 더 사모하고 좋아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우리가 선물을 받아들일 수 있는 가장 올바른 영적 준비일 것입니다.
- 오월이 오면 생각나는 이름 어머니(퍼온 글)
일제 강점기에 이흥렬(李興烈) 이라는 음악의 남다른 재능이 많은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재능이 있는 음악공부를 위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작곡을 위해 피아노가 없으면 음악공부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께 편지를 썼습니다. “어머니, 피아노가 없으니 음악공부를 더 이상은 할 수 없어요. 음악에는 피아노가 필수라는 것을 뒤늦게야 알았습니다. 소자는 음악공부를 이만 접고 귀국하려고 합니다.” 한편 어머니는 혼자 몸으로 유학간 아들 뒷바라지를 하느라 가진 것도 없었지만, 조금씩 늘어난 빚만 고스란히 남았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다음날 새벽부터 땅거미가 질 때까지 동네 근처부터 원거리 산이란 산을 모조리 뒤져 쉼 없이 솔방울을 긁어 모았습니다. 불쏘시개로 화력이 좋은 솔방울을 팔아 거금 400원(1930년대 쌀 한가마는 13원)을 만들어 아들에게 보냈습니다. 아들은 생각을 바꾸어 그 돈으로 피아노를 샀습니다. 그래서 ‘이흥렬’ 그가 제일 처음으로 작곡한 노래가 시인이며 문학박사인 양주동님의 시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낳으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요,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 없어라.”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윈스턴 처칠’이 세계적인 인물로 부상했을 때 영국의 한 신문사가,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처칠을 가르친 교사들을 전수 조사해서 ‘위대한 스승들’이란 제목으로 특집기사를 실었습니다. 그 기사를 읽은 처칠은 신문사에 자신의 마음을 담은 짤막한 편지 한 통을 보냈습니다. “귀 신문사에서는 나의 가장 위대한 스승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분은 바로 나의 어머님이십니다. 어머니는 제 인생의 나침반이었습니다.” 미국의 전 대통령 레이건도 어머니날 특집프로에 출연해서 어머니의 사랑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은 바로 나의 어머니 ‘넬리 레이건’ 여사입니다. 어머니는 가장 훌륭한 스승입니다. 오늘날 우리사회를 지탱하는 힘은 바로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역사적인 인물 뒤에는 끊임없이 사랑을 베풀어 주시는 훌륭한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신을 대신하는 이름의 어머니는 끝없는 사랑으로 인간을 만드는 위대한 스승입니다. 생명이 태어나서 제일 먼저 배우는 단어는 맘마고 엄마입니다. 태어나서 제일 먼저 보는 것도 엄마의 눈동자입니다. 어머니보다 위대한 스승은 없습니다. 언제 생각해도 눈물 나는 이름, 어머니!
- 성경 속의 인생역전(2)
(지난 주일에 이어서 요셉의 인생역전 두 번째를 소개합니다.) 5. 섬기는 정신 감옥에 있을 때에도 다른 죄수들의 걱정 어린 얼굴을 염려해줄 정도로 그에게는 섬기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꿈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진지하게 꿈을 해석해주기도 하였습니다. 보디발은 그에게 가정총무를, 전옥은 감옥의 모든 사무를 맡길 정도였습니다. 6. 은사를 발휘함 요셉에게는 꿈을 해석하는 은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꿈을 해석할 때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임을 알리는 중요한 역할을 잊지 않았습니다. 남의 은사를 부러워하거나 사모하기보다는 자신의 은사를 감사함으로 적극 활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7. 하나님을 신뢰함 요셉은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주면서, 그 꿈이 이루어질 때 요셉에게 은혜를 베풀어 억울함을 풀어줄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만 2년이 되도록 그 사실을 잊고 있었습니다. 그 중요한 일을 잊을 정도로 사람은 신실하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늘 자기를 도우시는 분이심을 요셉은 믿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는 요셉으로 하여금 불평 없이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인생역전을 기다릴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만일 요셉이 아버지 야곱의 곁에서 일생을 보냈으면 무엇을 했을까요? 아마 목축업으로 일생을 마쳤을 것입니다. 물론 목축업도 귀한 직업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요셉에 대하여 다른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것은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는 일이었습니다. 홈스쿨링으로 고등학교 과정까지 끝낸 요셉을 하나님께서는 애굽으로 대학교 과정을 밟도록 유학을 보내셨습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서 사사를 받았습니다. 전공은 경영학이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재무관리와 위기관리 등 경영학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배우지 못할 것이 있었다. 인사관리와 조직관리였습니다. 그 후에 애굽에는 7년간의 풍년 뒤에 7년의 흉년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풍요 속에 있던 사람이 갑자기 궁핍 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포악해지기 마련입니다. IMF 전후의 우리 모습이 그러했었던 것처럼. 그러한 사람들을 다스릴 애굽 총리가 되려면 특수한 조직관리와 인사관리를 배울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요셉을 감옥으로 보내셨습니다. MBA과정을 그곳에서 밟게 하신 것입니다. 창세기 41장은 “만 2년 후에”로 시작됩니다. MBA기간과 똑같은 기간이었습니다. 요셉은 이러한 과정을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아버지 야곱이 세상을 떠나자 다시 두려움이 생긴 형들에게 한 요셉의 말이 이것을 입증해 줍니다. “형님들은 나를 해치려고 하였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그것을 선하게 바꾸셔서, 오늘과 같이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니 형님들은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내가 형님들을 모시고, 형님들의 자식들을 돌보겠습니다. 이렇게 요셉은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다.”(창 50:20-21)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인생역전이야말로 진정한 인생역전입니다!
- 성경 속의 인생역전(1)
인생역전이라는 말에 가장 어울리는 사람을 성경에서 찾는다면, 제일 먼저 요셉이 떠오릅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나이 17세에 남의 집에 머슴으로 팔려갔습니다. 그곳에서 10여년을 지내는 동안 주인의 집에 하나님께서 복을 내리셨으나, 부도덕한 여주인의 모함을 받아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감옥에서 만난 술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준 대로 그는 복직이 되어 바로 왕 앞에 서게 되었으나, 그는 요셉을 2년간이나 잊고 있었습니다. 결국은 바로의 꿈을 해석해주는 것을 계기로 애굽의 총리가 되지만, 그것은 요셉 인생의 황금기 중 13년을 머슴과 죄수로 지낸 이후의 일이었습니다. 지도자가 될 것을 꿈으로 보여주신 이후에, 요셉은 하나님의 지도자 훈련학교를 멋있게 수료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인생역전을 허락하실 때까지 갖추어진 요셉의 영적 지도력을 살펴보면서, 우리들은 영적 지도자로서 어떻게 준비되어 가고 있는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1. 성실성(정직성) 요셉은 어릴 때부터 매우 성실했습니다. 눈치가 없다고 형들에게 따돌림을 받을 정도로 순수했습니다. 자기를 미워하는 형들의 안부를 확인하기 위해 집에서 80km나 떨어진 세겜으로 갈 때에도, 아버지의 명을 받아 불평 없이 길을 떠났습니다. 형들이 그곳에 없는 것을 확인하고도 그는 바로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에게 물어 24km나 더 올라가 도단에서 찾아 만날 정도로 그는 성실했습니다. 2.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 우리는 보통 ‘하나님께서 누구에게 함께 하셨다’는 말을 들을 때에, 그가 형통했을 것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형통했으면 돈을 많이 벌거나 지위가 올라가거나 좋은 학교에 합격한 것들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요셉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형통하게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는 때는 의외의 상황이었습니다. 한번은 요셉이 애굽 사람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팔려가 있을 때였습니다. 또 한 번은 보디발 아내의 모함으로 감옥에 잡혀 들어가 있을 때였습니다. 그는 그때마다 하나님의 이름을 높였고 주위 사람들이 복을 받도록 통로 역할을 하였습니다. 3. 유혹을 이김 요셉은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흙구덩이에 던져졌을 때, 형들을 욕하며 저주하고 싶은 유혹을 받았을 것입니다. 또한 보디발의 집에서 가정총무를 맡고 있을 때, 음란한 주인 여자의 성적 유혹을 심하게 받았습니다. 그때마다 요셉이 취한 단호한 태도는 우리에게 귀한 교훈이 된다. 그것이 돈이든, 성적인 것이든, 명예에 관한 것이든, 어떤 유혹 때문에 머뭇거리는 일이 있습니까? 단호하게 거절해야 합니다. 4. 역경을 이김 비록 형들에게 팔려 보디발의 집에 가있을 때에도 그랬거니와, 주인 여자의 모함을 받아 감옥에 들어가 있을 때에도, 그는 절망하지 아니하고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그리하여 형통하고 있음을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보고 느낄 정도였습니다.
- 신자가 소유한 놀라운 권세
오늘은 신나는 내용의 책 하나를 소개합니다. 찰스 크래프트의 “신자가 소유한 놀라운 권세”라는 책입니다. “만약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고 있으면, 그것은 우리가 누구인지 모르고 또한 어떤 권세로 살고 있는 아직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그는 말합니다. 이 책은 우리가 누구인가(신분)와 관련해서 여덟 가지 중요한 점을 요약하고 있습니다. 1. 우리는 “하나님보다 조금 낮게”(시편 8:5)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 창조 시에 우리의 위치는 천사들을 포함한 모든 창조물보다 높아서 우주 안에서 두 번째 자리였다. 2. 아담 안에서 우리는 타락했지만, 하나님이 개입하심으로 우리를 구속하셨다. 우리는 타락 후 우리의 위치가 사단 밑으로 전락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타락한 상태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두 번째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의 믿음을 근거로 하여 하나님 아래로 우리의 바른 위치를 재정립해 주셨다.(고전 15:45-47) 천사나 다른 어떤 피조물 중 인간만이 하나님의 걸작품이다. 그래서 우리만이 구속을 받게 되었다. 3. 사도 요한이 말하는 바와 같이 그리스도께 자신을 헌신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상속을 받게 되었다.(롬 8:17)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해 주심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우리를 구속해 주심으로 우리를 사단 위의 위치로 회복시키셨다. 4. 가족 구성원으로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이 우리 안에 내주하도록 성령을 주셨다. 사단을 포함한 모든 천사들과 우주를 통치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신다. 비록 사단이 현세를 주장하고 있지만, 우리는 이것이 우리 아버지의 세계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요일 5:19) 5.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이 영원히 우리와 연합했다는 사실은 우리의 위치를 한층 고귀하게 한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인간과만 연합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왕의 자녀에게 예비된 상속을 누리게 될 것이다. 6. 우리는 왕의 자녀들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유명한 아버지와 함께 특별한 권리와 특권을 누릴 수 있다는 우리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준다. 우리는 다른 특권과 더불어 왕자와 공주로서 아무 때나 왕좌 앞에 나갈 수 있는 특별한 허락을 받아놓고 있다. 7. 하나님은 그의 은혜로 우리를 진정 신뢰한다. 예수님이 세상을 떠나실 때, 우리에게 성령의 능력으로 일을 맡기시고 우리가 “나(예수님)의 하는 일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할 것”(요 14:12)을 예언하셨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우리들을 이처럼 신뢰하셔서 우리를 친구로 부르셨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들은 모든 것을 우리에게 다 위임하셨기 때문이다.(요 15:15) 8. 따라서 영적 권세는 우리가 누구인가를 아는 것에서부터 나온다. 우리 신자들은 우리가 권세를 소유했는지 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선택권이 없다. 권세는 성령께서 우리에게 부어질 때 하나의 패키지로 따라 오게 되어 있다. 우리가 해야 할 유일한 선택은, 권세를 사용하는 법을 배우고 실제적으로 그 권세를 우리의 실생활에 사용하는 것이다.
- 언더우드의 기도문
목장에 새로운 VIP가 생기지 않거나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것에 대해 답답함을 느낄 때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처음 복음을 들고 들어온 선교사들의 기도문을 보면서 다시 힘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그 기도 덕분에 지금 우리가 이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주여!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 메마르고 가난한 땅, 나무 한 그루 시원하게 자라 오르지 못하고 있는 땅에 저희들을 옮겨와 심으셨습니다. 그 넓은 태평양을 어떻게 건너왔는지 그 사실이 기적만 같습니다. 주께서 붙잡아 뚝 떨어뜨려 놓으신 듯한 이곳,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고집스럽게 얼룩진 어둠뿐입니다. 어둠과 가난과 인습에 묶여있는 조선 사람뿐입니다. 그들은 왜 묶여있는지도, 고통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고통을 고통인 줄 모르는 자에게 고통을 벗겨 주겠다고 하면 의심하고 화부터 냅니다. 조선 남자들의 속셈이 보이질 않습니다. 이 나라 조정의 내심도 보이질 않습니다. 가마를 타고 다니는 여자들을 영영 볼 기회가 없으면 어쩌나 합니다. 조선의 마음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해야 할 일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 순종하겠습니다. 겸손하게 순종할 때 주께서 일을 시작하시고, 그 하시는 일을 우리들의 영적인 눈이 볼 수 있는 날이 있을 줄 믿나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그 말씀을 따라 조선의 믿음의 앞날을 볼 수 있게 될 것을 믿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서양 귀신, 양코배기라고 손가락질 받고 있사오나 저들이 우리 영혼과 하나인 것을 깨닫고, 하늘나라의 한 백성, 한 자녀임을 알고 눈물로 기뻐할 날이 있음을 믿나이다. 지금은 예배드릴 예배당도 없고 학교도 없고 그저 경계와 의심과 멸시와 천대함이 가득한 곳이지만 이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여! 오직 제 믿음을 붙잡아 주소서!
- VIP를 위해 열심히 기도합시다.
요즈음 한국교회가 위기라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습니다. 위기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새롭게 믿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기존 교인들의 변화된 간증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정교회가 강조하는 것 중의 하나는 수평이동을 받지 아니하고 새롭게 믿는 사람들이 있어야 하는 것에 강조점을 두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이곳에 입당을 한 후에 감사한 것은, 매년 우리 교회 장년수의 1/10이상이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위해 계속 기도하고 있습니다. 한편 감사한 일은, 기존 교인들이 “행복한 제자교회”라는 이름에 걸맞게 많이 행복해지고 부부관계가 좋아지는 변화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영혼 구원하여 제자 삼는 교회”가 되는 것은 우리 교회의 구호이기 전에, 교회의 본질이며 교회의 존재 목적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얻고 진리를 알게 되기를”(딤전 2:4)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도 베드로도 “어떤 이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이, 주님께서는 약속을 더디 지키시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여러분을 위하여 오래 참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는 데에 이르기를 바라십니다.”(벧후 3:9)라고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우리 마음에도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영혼 구원하는 일에 힘쓰기 위하여, 목장마다 적어도 일 년에 한 명 이상 예수님을 영접하고 세례를 받게 할 것을 목표로 세울 것을 제안합니다. 이 목표대로 하면 현재 우리 교회의 목장수가 9개이므로, 매년 9명 이상 예수님을 영접하고 세례를 받는 열매가 맺혀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는 것은 이상적인 목표이므로, 교회에서는 우리 교인수의 1/10 이상, 현재 주일에 출석하는 장년 성도가 50명 정도 되므로 5명 이상이 매년 예수님을 영접하고 세례를 받을 것을 목표로 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금 우리 교회에서는 매월 셋째 토요일 4시부터 예수 영접모임을 가지고,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과 저녁식사를 함께 하고자 합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을 축하하기 위해 목장식구들이 따로 저녁식사를 하러 함께 가도 좋습니다. 그리고 본인이 원하면, 다음 달 첫째 주일에 세례를 받게 됩니다. 사도행전에서 에티오피아 내시가 복음을 받아들이자마자 빌립 집사가 세례를 준 것과 같이 하는 것입니다. 검증되지 않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섣불리 세례를 주는 위험성이 있지만, 대부분 목장에서 신앙의 기초가 닦인 분들이라 큰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세례를 베풀 때는 VIP가 구원받는데 주역을 맡았던 목자가 세례기를 들고 있게 하여 예식에 참여시킵니다. 세례를 베풀기 전에 저는 네 가지 질문을 할 것입니다. 세 질문은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관계에 관한 질문이고, 마지막 한 개는 구원의 확신에 관한 질문입니다. 질문 1: “아무개 성도는 예수님을 삶의 구주로 영접하였습니까?”(롬 10:9) 질문 2: “아무개 성도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가 된 것을 믿습니까?”(엡 5:1) 질문 3: “성령님께서 안에 계셔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은 욕구도 주시고 능력도 주시는 것을 믿습니까?”(빌 2:13) 질문 4: “예수님을 영접했기 때문에 오늘 세상을 떠난다 할지라도 천국에 갈 것을 확신합니까?”(요 1:12) 이때 각 질문에 “아멘”이라고 대답을 하면 세례를 베풀고 우리 교회의 세례교인이 된 것을 여러 성도들 앞에 선포를 합니다. 또한 “아무개의 주인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아무개 성도를 지배했던 악한 영들은 떠나갈지어다!” 선포합니다. 그러면 많은 교인들이 앞으로 나와서 포옹을 하며 축하를 해 줍니다. 이 기쁨이 매월 넘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 꾀, 꿈, 깡, 끼, 끈
제가 행복한제자교회에 온 지 석 달쯤 접어들었을 때 나눈 설교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 중에 ‘ㄲ’으로 시작되는 한 글자로 된 단어들이 있습니다. 꾀, 꿈, 깡, 끼, 끈입니다. 그런데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 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 것이 되었습니다.”(고후 5:17) 하신 말씀대로 그리스도인들은 새로운 꾀, 꿈, 깡, 끼, 끈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26-2:5에서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1. 꾀(Wisdom)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육신의 기준으로 보아서 지혜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심지어 육신의 기준으로 보아서 지혜가 있는 사람도 그의 지혜를 내려놓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어리석은 것들을 택하셨습니다. 바울은 온 백성에게서 존경을 받는 가말리엘 선생의 문하에서 조상의 율법의 엄격한 방식을 따라 교육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가장 고상한 꾀로 여기고, 그 밖의 모든 것을 해로 여겼습니다. 2. 꿈(Vision) 일반적으로 사람들의 꿈은 아는 것이 많고, 가진 것이 많고, 잘난 것이 많고, 있는 것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잘났다고 하는 것들을 없애시려고, 세상에서 비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택하셨습니다. 가정교회는 교회의 본질인 영혼 구원하여 제자 삼는 교회가 되는 것에 꿈을 두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큰 교회를 만드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느냐에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3. 깡(Spirit) 세상에서 어리석은 사람들이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고, 세상에서 약한 사람들이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며, 세상에서 비천하고 멸시받는 사람들이 잘났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려면 주님 안에서 새로운 ‘깡’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와 의와 거룩함과 구원을 의지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그 비밀을 알기 때문에 “나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빌 4:13)라고 말했습니다. 4. 끼(Specialty) 우리는 이제 주님 안에서 새로운 목표를 향하여 나갈 수 있는 ‘끼’가 있어야 합니다. 바울에게는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여,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는 부활에 이르고 싶습니다.”라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얻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으려는 전문적인 ‘끼’가 있는 사람이 되고자 했습니다. 5. 끈(Relationship) 바울은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서도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 사람 가운데서도 히브리 사람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파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이로웠던 것은 무엇이든지 그리스도 때문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새롭게 하나님과 ‘끈’이 연결된 것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누구든지 자랑하려거든 주님을 자랑하라.” 하신 대로, 주님을 아는 것” 즉 하나님과 ‘끈’이 있다는 것을 자랑하는 것이 가장 큰 자랑입니다.
- 우리가 본받고 싶은 교회 (휴스턴서울교회 이수관 목사님의 원장코너 글 요약)
이제는 가정교회 사역으로 활발한 교회들이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생각하기에 아직도 휴스턴 서울교회가 가진 가정교회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다른 가정교회들이 아직 충분히 닮지 못하고 있는 분야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평신도 사역의 활성화입니다. 휴스턴 서울교회는 교회 사역의 대부분을 평신도들이 맡아 꾸려 나가고 있습니다. 기존 교회 같으면 대부분 부목사님들이나 전문사역자들이 할 일을 평신도들이 맡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회자는 청소년부, 초등부, 유아유치부 등 100% 본인의 사역을 맡고 있고, 교회의 모든 사역부서들은 안수집사들이 맡고 있습니다. 성례 사역부, 새교우 사역부, 친교 사역부 같은 단순한 섬김 사역뿐 아니라, 전문성을 요하는 선교 사역원, 가정교회 사역부, 시청각 사역부, 정보관리 사역부 같은 것도 모두 안수집사(일반교회에서는 장로)들이 맡고 있습니다. 휴스턴 서울교회는 이런 식으로 모든 부서를 안수집사님들이 맡다보니 좋은 점이 하나둘이 아닙니다. 일단 부서장이 평신도이기 때문에 그를 돕기 위한 같은 평신도들의 사역참여가 열정적입니다. 예를 들면 매해 사역박람회가 끝나고 연합 교회 사역에 사역 신청을 한 교인들의 수가 700명이 조금 넘습니다. 만약 부서를 부목사님들이 맡고 있다면 그렇게 많은 평신도들이 싸인업을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사역의 폭이 넓어지고, 질이 개선되고 발전되는 장점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안수 집사님들은 4년을 사역하고 1년 안식년을 가지기 위해서 내려놓습니다. 따라서 그 4년 동안에 여러 가지 시도를 통해서 어떤 식으로든지 부서를 발전시켜 놓고 떠납니다. 이런 식으로 20년을 지나다 보니 휴스턴 서울교회의 각 부서 사역은 정말 전문성 있는 회사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만약 사역을 부목사님들이 맡았다면 이런 발전을 이루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한 가지는 이런 체제가 섬김의 깊이를 깊게 만듭니다. 만약 부서장을 맡은 집사님이 인기가 없어서 아무도 그 사역부서에 신청을 안 한다면 (물론 교인들이 스스로 뽑은 안수집사이니 그런 일을 벌어지지 않습니다만) 그런 낭패가 없습니다. 따라서 휴스턴 서울교회는 높이 올라 갈수록 저자세가 될 수밖에는 없습니다. 내 사역부서에게 일해 주는 사람들이 고맙고, 일을 시키는 것이 미안하고, 그래서 더 챙겨주고 섬겨주게 되고, 그래서 목장과는 다른 차원으로 섬김의 고리가 만들어 집니다. 그런데 이런 교회를 만들려면, 일단 담임목사님이 부목사님과 일하는 것을 즐겨하지 않아야 합니다. 휴스턴 서울교회는 담임 목사가 무슨 아이디어가 있거나 하고 싶은 사역이 있을 때, 그것을 안수 집사님들에게 얘기하고 누가 해 보겠냐고 묻고 그에게 맡깁니다. 그리고 오래 기다려 줍니다. 그리고 방향을 잘 잡아 가도록 안내합니다. 이렇게 하므로 진정한 코칭이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사역으로의 전환은 이미 교회 사이즈가 어느 정도 되고 체계가 잡힌 교회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이미 굳어져 있는 교회안의 문화를 바꾸는 것은 어렵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 100명 미만의 교회는 지금부터 그런 모습을 그려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서울교회가 100명 사이즈의 교회였을 때 그렇게 시작해서 지금처럼 평신도 사역에 꽃을 피운 것처럼 지금부터 그런 계획을 세워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