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 어떻게 하면 믿음이 생기고 자랄까? (히브리서 11:1, 6)
(다운교회에서 최영기 목사님을 강사로 모시고 부흥회를 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 요약해 두었던 내용을 세 주에 걸쳐서 행복한제자교회 가족들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결정한다. 교회 다니면 슬며시 믿어지는 게 아니다. 덮어 놓고 믿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나 그렇다고 모두 증명 되어서 믿는 것도 아니다. 60~70%정도 믿을 만한 증거가 있을 때 믿기로 결정하면 30~40%는 하나님께서 채워주신다. 하나님의 존재, 능력, 사랑에 대한 회의가 들 때가 있다. 이럴 때에도 역시 말씀으로 돌아가고 은혜의 기억을 돌이켜보며 다시 한 번 믿기로 결정한다. 의심하는 것에 대하여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실상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 의심이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2. 모험한다. 믿음은 성경공부를 통한 지식으로 자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경험이 필요하다. 왜 체험하지 못할까? 모험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기드온의 병력을 300명으로 축소시키시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수십만의 미디안을 물리치게 하셨다.(사사기 7장) 너무 안전하고 상식적인 신앙생활만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붙잡고 모험을 해봐야 한다. 십일조도 하나님의 채우심에 대한 약속을 붙잡는 일종의 모험이다. 3. 기대한다. “받은 줄로 믿으면 이뤄질 것으로 믿어라.” 이것은 원하는 그대로 이뤄진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이 최선의 때에 최선의 것으로 주실 것을 기대함으로 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믿고, 그 분이 상 주시는 분이심을 믿으라.(6절) 병 고치는 은사도 개발해 나가는 것이다. 아픈 사람을 위해 기도를 못하는 것은 체면 때문에 그런 경우가 많다. 그런데 고쳐진다면 누가 고친 것인가? 안 고쳐진다면 누가 안 고친 것인가? 병을 고치는 일은 하나님이 하실 일이다. 기대가 커짐에 따라 더 많은 기적을 경험할 것이다. 4. 감사한다. “하나님, 제 기도는 왜 안 들어주십니까?” 하나님은 들어주셨는데 우리가 인식을 못하는 것이다. 사고에서 절묘하게 지켜주신 것에 감사한다면, 안전하게 다녀온 것에 대해서는 더 감사해야 하지 않겠는가? 일주일을 건강하게 산 것 만으로도 감사한다면 더 감사한 일들이 많아지고 더 많은 능력을 체험케 된다. 감사한 일에 대한 마침표로 감사헌금을 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도 중요하다. 하나님은 자연스런 방법으로 많은 경우 우리의 기도를 이뤄주신다. 5. 하나님의 약속을 안다. 하나님이 그렇다고 하시면 그런 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약속하셨고 아브라함은 이를 믿었으며 하나님은 이를 의로 여기셨다. 그러나 종종 하나님이 주지도 않으신 약속을 “믿습니다.” 하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믿는다고 말하기 이전에 성경을 잘 알고자 하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즉 쓰신 분이 무슨 얘기를 하고자 하셨는지를 본 뒤 하나님이 분명히 주신 약속이라면 믿어야 한다. 그리고 기도는 사역의 도구로써 ‘예수님의 사역을 이루기 위해’ 기도할 경우 무엇을 구하든 다 들어주시겠다고 말씀하셨음을 알아야 한다.
- 휴가=쉼과 재충전의 기회
쉬는 시간을 앞두고 자주 듣는 질문입니다. “쉬는 시간에 뭐 할 거예요?” 그런 질문을 받으면, 저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쉬는 시간에 뭘 해요? 쉬어야지.” 하고 대답을 하곤 합니다. 쉬는 시간에는 쉬어야지요.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워낙 부지런하여(?) 쉴 줄을 모르는 민족 같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쉬는 시간에도 무엇인가 하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듯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계곡에서도 물장구를 치든지, 주차장에서 족구라도 해야 직성이 풀리는 모양입니다. 아니면 섰다라도 한 판 치든지, 요즈음은 통제를 해서 못하고 있지만, 음주 후 고성방가를 하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었습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계곡에서 흐르는 시원한 물에 발을 담그고 책을 읽는다든가, 해변에 그냥 누워서 일광욕을 하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아마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면 이렇게 얘기하지 않을까요? “책을 읽으려면 집에서 읽지, 왜 계곡까지 와서 책을 읽어?” “햇볕을 쪼이려면 옥상에 올라가 누워있지, 왜 비싼 돈 들여 바닷가까지 와서 누워 있어?” 이제 곧 본격적인 휴가철이 시작됩니다. 이 기간을 여러분의 영과 혼과 몸이 건강해지는 쉼과 재충전의 기회로 삼으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영과 혼과 몸이 흠이 없이 완전하게 지켜지기를(데살로니가전서 5:23) 원하십니다. 또한 우리의 영혼이 평안함같이, 우리에게 모든 일이 잘 되고 우리가 강건하기를(요한삼서 2절) 원하십니다.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것이 일입니다. 그러므로 쉬는 시간을 스케줄 속에 따로 떼어놓지 않으면 쉬는 시간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선 몸의 건강을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십시오. 그러자면 수면을 충분히 취해야겠지요. 잠은 오래 잔다고 꼭 좋은 것은 아닙니다. 특히 정신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정신이 피곤한 것만큼 몸이 같이 피곤한 것이 좋습니다. 정신은 피곤한데 몸이 피곤하지 않으면 잠이 깊게 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정신노동을 하는 사람일수록 운동을 통해 몸을 피곤하게 해주어 몸과 정신이 같이 쉬도록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나이가 많아질수록 근육이 늘어지기 때문에 근육운동도 규칙적으로 하는 습관을 들이십시오. 돈을 따로 들일 필요 없이 윗몸일으키기, 팔굽혀펴기, 그리고 심폐기능을 좋게 하기 위해 걷기, 달리기, 자전거타기 등을 하면 좋겠지요. 정신적으로 감정적으로 정서적으로 쉼과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십시오. 혹시 그 동안 일에 치어 밀려있었던 독서나 취미활동이 있다면 휴가 기간에 집중적으로 할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꼭 쉬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즐거워하고 재미있어 하는 일은 아무리 해도 잘 지치지 않습니다. 힘이 드는 일이라도 일이 끝나고 났을 때의 성취감은 모든 피로들을 한방에 날려버릴 수도 있습니다. 휴가기간에는 가족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계획하십시오. 휴가의 휴(休)자를 보면, 나무(木) 옆에 사람(人)이 서있습니다. 우리의 죄 값을 대신 치르시기 위하여 나무에 달리신 예수님 곁에 서있으며 영적으로 쉴 때에 진정한 쉼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죄 값을 단번에 영원히 치르신 예수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모두 내게로 오너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마 11:28) 하셨습니다. “여러분의 걱정을 모두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돌보고 계십니다.”(벧전 5:7) 하신 하나님께 여러분의 걱정을 모두 맡기고 하나님과 친밀하게 대화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십시오.
-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한때 저와 성경공부를 하는 직장인 그룹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성경공부 교재 1권을 마쳐가며, 각 사람이 구원의 확신을 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에서 한 사람이 아직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책에 있는 내용대로 주님을 마음속에 영접할 것을 권했습니다. “주 예수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으며, 저의 죄를 위해 돌아가신 것과 부활하신 것을 믿습니다. 지금 저는 예수님께서 저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고, 구주와 주님으로서 제 마음속에 들어오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님을 마음속에 영접하기를 머뭇거릴 아무 이유가 없는 것 같은데,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며 그 사람은 영접을 하지 않았습니다. 강요할 일이 아니어서 다음 주로 보류할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린도후서 6:2) 하신 말씀이 생각이 나서 다시 권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영접하기 전에 해결하기 원하는 문제가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보통 사람들이 문제로 느끼는 것들을 예로 들었습니다. 그 예는 첫째로, “기독교는 왜 독선적이냐?”는 질문입니다. 둘째는, “교회 다니는 사람들 중에는 위선자가 많은 것 같다.”입니다. 셋째는, 집안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거의 없이 유교나 미신이나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는 가정에서 자라난 사람들이 주로 하는 질문입니다. “내가 교회를 나가게 되면 집안에 풍파가 일어날 터인데, 그렇게까지 하면서 예수님을 믿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 가지를 얘기했더니, 이 세 가지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문제가 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술 담배 문제를 얘기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친구를 만나면 술을 마시던 사람이 술을 끊기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더구나 담배를 습관적으로 피우던 사람이 끊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는 끊어본 사람만이 안다고들 이야기할 정도입니다. 인간적인 힘으로 술 담배를 끊기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래서 제가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술 담배를 인간의 힘으로 끊기가 쉽지는 않지요.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해보십시오. 연못에 돌멩이를 던지면 대부분 가라앉습니다. 그런데 그 돌멩이를 커다란 나무토막에 묶어서 연못에 던지면, 돌멩이의 질량이나 만유인력이 변한 것은 없지만 나무가 물에 뜨는 부력 때문에 나무에 묶인 부력 때문에 물에 뜨게 되어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마음속에 모셔 들이면, 내 성품은 별로 변함이 없지만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내가 변화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설명을 들은 그는 그 자리에서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를 위해 축복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함께 공부하던 다른 사람들이 모두 기뻐하며 축하해 주었습니다. 주님을 영접할 준비가 다 된 사람이었는데, 하마터면 공연히 다음으로 미룰 뻔하였습니다. 저는 너무 기뻐서 그의 그리스도인 직장상사에게도 문자를 보냈습니다. 바로 답신이 왔습니다. “감격스럽습니다. 정말 기쁩니다!” 그 날은 은혜의 날이요, 구원의 날이었습니다.
- 기적이 상식이 되는 삶
저는 합리적이거나 상식적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추구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전에 최영기 목사님의 “기적이 상식이 되는 삶”이라는 설교가 매우 마음에 감동이 되었습니다. 설교를 들으면서 제가 정리한 내용을 목회서신에 소개합니다. 기적이 상식이 되는 삶(마태복음 14장 22-33절) 마가복음 16:17-18에는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표징들이 따를 터인데…” 하시며,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손으로 뱀을 집어 들며…의 기적이 일어나게 하신다는 약속의 말씀이 나온다. 그런데 이러한 기적들은 “온 세상에 나가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여라.”(15절)는 명령 뒤에 나온 약속으로서, 복음을 전할 때 일어날 기적을 말씀하신 것이다. 마태복음 14:22-33을 통하여, 기적이 상식이 되는 삶을 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을 알아본다. 1. 기적의 삶을 살기 원해야 한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바다 위로 걸어오시는 모습을 보며, “주님, 주님이시면, 나더러 물 위로 걸어서, 주님께 오라고 명령하십시오.”라고 말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유령인가?’ 했을 터인데, ‘예수님이 하시면, 나도 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다. 하나님은 알고(지) 느끼며(정) 원하시는(의) 분이시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도록 지어졌기 때문에, 사람에게도 그러한 지정의가 있다. 실제로 목자와 목녀들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사역을 시작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주님의 일을 하고 싶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역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성공=능력x의지>라는 공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 2. 하나님의 뜻과 일치되어야 한다. 다음과 같은 공식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기적=하나님의 뜻x인간의 의지>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하여 가지는 담대함은 이것이니, 곧 무엇이든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구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청을 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요일 5:14)라는 말씀이 바로 이것을 말해주고 있다. 3. 과감하게 뛰어든다.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정탐꾼들이 약속의 땅을 정탐하고 온 후에 주저앉았다. 그들은 소원이 있었고, 하나님의 약속도 있었지만, 자기들의 상식을 벗어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두려움이 따랐다.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는 데는 오랜 시간을 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그 후에는 과감하게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것이 따라야 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와는 반대로 행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떻게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100% 알 수 있겠는가?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풀무불에서 하나님이 자기들을 건져주시는 것이 100%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들은 “비록 그렇게 하지 않으실지라도…”의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70-80%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신하면 뛰어들어야 할 때가 많다. 4. 시선을 예수님께 고정시킨다. 상황을 보면 나의 의지가 흔들리기 쉽다. 베드로의 실수가 바로 그것이었다. 상황을 보지 말고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시켜야 한다. 아침 QT나 기도시간을 매일 최소 20분 이상 가지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다. TV 시청, 친구들의 얘기를 들으면 세상의 가치관을 자꾸 듣게 된다. 최소 20분을 매일 하나님께 집중해야 한다. 하나님을 찬양하며 집중할 수도 있고, 사도신경이나 주기도문을 고백할 수도 있다. 성경본문을 고백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 유머에서 배운 진리
아줌마들이 들으면 조금 씁쓸할 수 있는 유머가 있습니다. 아줌마와 조폭의 공통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입니다. “첫째는 몰려다닌다. 둘째는 대담하다(보이는 것이 없다). 셋째는 칼을 잘 쓴다. 넷째는 문신이 있다. 다섯째는 윗사람을 형님이라고 부른다.”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아줌마와 조폭의 공통점일 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특징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은 모이기를 힘써야 하는(히 10:24-25)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의 문화가 말세를 향하여 갈수록 우리는 자주 모여서 진리를 나누고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들을 나눔으로써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가치관과 경건성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몰려다니지 아니하고 뿔뿔이 흩어지면 사탄의 공격을 받기가 쉽습니다. 우리가 목장모임을 가지고 함께 삶공부를 하고 연합예배를 드리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대담해야 합니다. 세상은 진리를 추구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미워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더라면 세상이 너희를 자기 사람이라고 하여 사랑했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세상에 속하지 않고,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가려 뽑았으므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한다.”(요한복음 15:19)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에 굳게 서서 대담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칼(곧 하나님의 말씀)을 잘 사용해야 합니다.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한 하나님의 말씀을 잘 활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한 날로는 내 속에 더러운 것들을 제하여 버리고, 다른 한 날로는 외부의 공격들을 막아내어 날마다 승리하는 삶을 사십시오. 진리로 허리를 동이고, 정의의 가슴막이를 하고, 평안의 복음을 전할 채비를 하고,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성령의 칼로 무장하십시오. 그리고 기도와 간구로 늘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엡 6:14-18)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흔적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은 고문과 숱한 어려움이 있었던 선교여행에서 얻게 된 상처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사람입니다. 또한 그분의 부활하심과 합하여 부활한 사람들입니다. 주와 및 복음을 인하여 어려움을 겪은 흔적들이 있습니까? 우리의 얼굴로 부활의 소망과 기쁨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한 형제요 자매입니다. 즉 모두가 형님과 아우지간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머리가 되시고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입니다. “한 몸에 많은 지체가 있으나, 그 지체들이 다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닙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여럿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고 있으며, 한 사람 한 사람은 서로 지체입니다.”(로마서 12:4-5) 몸에 있는 지체는 각각 그 역할이 다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지체들도 모두가 다릅니다. 기질, 습관, 자라온 배경이 다르고 사회적으로, 심리적으로, 경제적으로 모두 다릅니다. 이 정도면 농담에서도 은혜를 받으실 수 있을 것으로 기대가 됩니다. 우리는 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있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요 자매입니다.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그러나 서로 연관성을 가지고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할 때에 우리는 멋있는 일을 해낼 수 있습니다.
- 기독교의 능력은 어디에서 나와야 하는가?
요즈음 종교인구 조사 결과 기독교인의 수가 줄었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이 일을 위하여 많은 분들이 여러 가지 해결책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그 동안 교회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일에 치중했다며 스스로 반성하는 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교계에서 존경받는 어느 목사님은 “예배인가 쇼인가?”라는 책을 통해서 교회가 회개하고 반성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과연 기독교의 능력은 어디에서 나와야 하는가?’ 이 글은 옥한흠 목사님의 “요한이 전한 복음”이라는 책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20세기 초 미국에 아이언사이드라고 하는 유명한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는 당시에 능력 있는 전도자이자 설교가로서 시카고의 무디교회 담임목사로 사역하고 있었습니다. 한번은 샌프란시스코 베이라고 하는 지역의 시장 입구에서 열리는 전도 집회에서 전도 간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어떻게 예수를 믿게 되었고, 예수를 믿고 나서 자기의 삶이 어떻게 변화했는가를 이야기한 다음, 오직 예수님만 인류의 구원자요 세상의 소망이라고 소리를 높여서 외쳤습니다. 그의 말을 듣던 사람들 중에 정장 차림의 신사 한 사람이 그에게 다가와 정중하게 모자를 벗고 인사를 하면서 명함을 내밀었습니다. 그 당시 자유주의 신학계에 널리 알려진 교수였습니다. 저명한 사회학자요 불가지론자인 그가 아이언사이드에게 명함을 내밀면서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선생님, 주일 오후 4시에 아카데미 과학관에서 선생님과 토론할 것을 제의합니다. 제목은 “불가지론과 기독교”입니다. 어떻게 생각합니까?’ 아이언사이드는 대답했습니다. ‘좋습니다. 그 도전에 응하죠. 그러나 저도 한 가지 요청을 하겠습니다. 선생님은 그 토론장에 나오시면서 두 사람을 데리고 나오셔야 합니다. 과거에 구제불능이라고 할 정도로 부끄러운 생활을 하던 사람들 중에서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변화를 받아 죄를 멀리하고 새사람이 되어서 지금은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받고 있는 사람 둘을 데리고 나오십시오. 저는 예수님을 만나고 변화된 사람, 과거의 처참한 생활을 벗어버리고 지금은 소망을 갖고 새 생활을 시작한 사람을 100명 정도 데리고 오겠습니다.’ 그랬더니 옆에 있던 자매 한 사람이 ‘목사님, 저도 그 100명 중에 포함시켜 주세요.’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형제가 ‘목사님, 저는 그런 사람 60명을 데리고 올게요.’라고 끼어들었습니다. 이렇게 되자 도전장을 던졌던 그 신사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선생님, 없었던 일로 합시다.’라고 한마디하고는 도망치듯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기독교의 능력은 변화된 삶에 있습니다.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우선은 사람을 많이 모을 수 있지만, 거듭난 사람들의 변화가 주위 사람들에게 진정한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물론 재미까지 있으면 좋겠지요. 그러나 ‘재미’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기 원하시는 ‘기쁨’의 짝퉁 역할을 하지 못하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그리 크지는 않지만, 제가 우리 교회에 대하여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는, 우리 교회에 거듭난 이후에 변화된 분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예배 후에 하는 성경공부 가운데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역사하신 열매라고 믿습니다. 여러분의 변화된 삶을 통해 기독교의 능력은 다시 살아날 줄로 믿습니다.
- “돈, 섹스, 권력”의 유혹에는 장사가 없다
“두려운 영광”이라는 책의 저자가 출판하자마자 저에게 그 책을 보내준 적이 있습니다. 책 제목의 앞에는 “두렵고 떨림으로 말씀을 대언하는 우리 시대 대표 설교자 10인을 만나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습니다. 그 책의 표지를 볼 때마다 제 마음이 무거워지고 다시금 마음을 가다듬게 됩니다. 책 표지에 사진이 나온 열 명의 목사 중에 세 사람에게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털어서 먼지가 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고 비난을 받는 사람인 경우에도 양쪽의 이야기를 다 들어보기 전에는 무어라 단정을 내리는 것처럼 위험한 일도 없습니다. 더구나 옳은 뉴스이든, 그릇된 뉴스이든 저도 단지 뉴스를 통해 알게 된 것임을 밝힙니디. 그러나 세 경우를 살펴보면서, 우리가 늘 깨어 있어야 할 세 영역에서 타산지석으로 삼아 우리 자신도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을 하는 지혜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 경우, 기사에 의하면 “일방적으로 당회를 해산하고 담임목사 중심으로 모든 것이 지시되고 각 부서의 기능이 담임목사 부속기관으로 격하되었다”는 것이 문제가 된 이야기입니다. 교회라는 공동체적 의식이 약하고 개인적인 관점에서 판단하고 행동했다는 것이지요. 끝내는 교회를 사임하고 사임 일주일 만에 새로운 교회를 개척했다는 뉴스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 경우는, 어느 정도의 사건인지, 누구의 말이 옳은지는 분명하게 알 수 없지만, 성추행 사건이라는 불미스러운 죄목으로 교회를 사임하게 된 이야기입니다. 그 사건 이후 “자기반성보다는 목사를 보호하고 문제 덮기에만 급급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의 이야기, 모함이라는 이야기가 서로 논쟁을 하며 우리들의 마음을 어둡게 했던 일이었습니다. 세 번째 경우는, “교회재정과 몇몇 성도의 돈으로 마무리 된 사건, 목회자가 교회의 허가 없이 해외에서 시작한 사업으로 ooo목사는 당시 징계를 받고 사임을 해야 했으나 성도들의 사랑으로 감추어준 사건” 운운하는 내용으로, 제가 그 책을 읽던 당시에도 여전히 법원에 고소 고발되어 있는 사건입니다. 지금은 결론이 나서 교회를 떠나게 된 목회자의 일입니다. 세 경우 모두 누구의 말이 옳은지, 담임목사 본인의 말과 고소 고발하고 있는 사람들의 말이 다르니 더욱 혼란스럽습니다. 지저분한 이야기라고 덮어두자니, 한편으로는 불의한 일에 대하여 무관심하고 무책임한 것 아닌가 하는 양심의 가책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희한한 일은, 위의 세 경우가 성경에서 가장 주의를 주고 있고, 사람들이 가장 유혹을 받고 있는 세 가지라는 점입니다. 그 세 가지는 “돈, 섹스, 권력”이라는 책의 제목과 똑같습니다. 이 세 가지는 하와가 사단에게 유혹을 받았던 세 영역입니다.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하신 열매를 볼 때에,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을 슬기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였습니다. 요한일서 2:15-16에서 주의를 주고 있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과 꼭 같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왕을 세워달라고 고집을 부리면 왕을 세우되, 군마를 많이 가지려고 하는 것, 많은 아내를 두는 것, 자기 것으로 은금을 너무 많이 모으는 것을 금하라고 하셨습니다. 순서만 다를 뿐이지, “돈, 섹스, 권력”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같은 본성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 세 가지 영역에서 유혹을 받지 않을 사람은 없습니다. 단지 약한 영역이 서로 다를 뿐입니다.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능력 이상으로 시련을 겪는 것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믿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유혹에 장사가 없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 패러다임을 점검해 보십시오
습관이란 우리가 반복적으로 하는 행동입니다. 보통은 우리에게 그런 습관이 있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완전히 ‘자동’으로 이루어질 때가 많습니다. 습관에는 좋은 습관이 있습니다. 규칙적으로 운동하기, 미리 계획을 세우기, 다른 사람을 공손히 대하는 것 등입니다. 물론 나쁜 것들도 있습니다. 부정적으로 생각하기, 열등감 가지고 살기,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것 등입니다. 어떤 습관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우리는 제대로 만들어질 수도 있고, 망가질 수도 있습니다. 사무엘 스마일즈는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습니다. 생각의 씨를 뿌리면 행동을 거둬들일 것이요, 행동의 씨를 뿌리면 습관을 거둬들일 것이요, 습관의 씨를 뿌리면 인격을 거둬들일 것이요, 인격의 씨를 뿌리면 운명을 거둬들일 것이다. 올바른 생각을 가지기 위해서는 바른 패러다임을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패러다임은 안경과 같습니다. 패러다임은 사물을 보는 방식, 관점, 인식의 틀, 신념을 말합니다. 패러다임 역시 정확하지 못할 때가 있어서 오히려 문제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그런데 옳지 않은 패러다임을 가지고 있으면 많은 것을 놓치며 살게 됩니다. 자신에 대해, “안 돼. 할 수 없어.” “아니야, 나는 그런 타입이 아니야.” 이러한 패러다임은 우리에게 많은 기회들을 잃어버리게 만듭니다. 삶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키고자 한다면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합니다. 즉 세상을 보는 안경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때로 우리는 소유하고 있는 것, 즉 ‘물질’이라는 렌즈로 세상을 바라볼 때가 있습니다. 남자 친구나 여자 친구를 삶의 중심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자 친구나 남자 친구는 자연스럽게 지낼 뿐, 너무 빠져들거나 내 삶의 중심으로 삼지는 말아야 합니다. 학교 중심이나 부모 중심의 삶의 사는 것도 곤란합니다. 그 외에도 스포츠나 취미 중심일 수도 있습니다. 영웅 중심적인 삶도 요즈음은 많습니다. 때로는 적 중심으로 살기도 합니다. 자기 집안이나 선배의 원수를 갚기 위해 일생 칼을 갈며 지내는 사람이 그 예입니다. 영웅 중심적인 삶이나 일 중심적인 삶, 또한 자기중심적인 생각에서는 삶의 안정성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원칙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공을 위로 던지면 아래로 떨어집니다. 그것은 자연의 법칙이자 원칙입니다. 물리적 세계를 지배하는 원칙이 있는 것처럼, 인간세계를 지배하는 원칙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정직은 원칙입니다. 봉사와 사랑도 원칙입니다. 열심히 노력하는 것은 원칙입니다. 존경, 감사, 겸손, 공정함, 성실, 충실, 책임, 이런 것들이 원칙입니다. 원칙은 실패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원칙을 가지고 사는 데는 신념이 필요합니다. 원칙을 깨고 거짓말하고 속이고 남을 이용하는 삶은, 결국 자신에게 되돌아오게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살 때에 원칙 중심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내가 하려고 하는 일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며 기뻐하실 일인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오늘 당장 삶의 중심이나 패러다임을 결정하십시오. 지금 처해있는 상황이 어떻든지, ‘내 원칙이 뭐였더라?’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문제가 생길 때마다,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원칙에는 무엇이 있을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 검소한 삶(십계명에 비추어 본)
검소한 삶이라고 하면 단순한 삶, 또는 절약하는 삶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영어로는simple life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같은 모습으로 단순하게 살 수는 없습니다. 가족의 수, 가족들의 나이, 그들이 처한 문화 등 다양한 사람들의 생활수준을 획일적으로 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검소한 삶을 영어로 simpler lifestyle이라고 표현합니다. 이것은 자신이 살 수 있는 경제수준이나 문화수준보다 낮게 살면서, 다른 사람을 돌아볼 줄 아는 삶의 자세를 의미합니다. 1. 검소한 삶은 하나님을 첫 자리에 모시는 삶의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하신 명령과 함께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검소한 생활은 이 말씀에 순종하는 삶의 태도입니다. 2. 욕심과 염려들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남들이 누리고 있는 문화수준을 동일하게 누리고 싶은 욕심을 내려놓고, 문화수준을 낮출 때 오는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어야 합니다. 3. 궁상을 떠는 모습은 오히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합니다. 검소한 삶은 존경을 받을 수 있지만, 궁색한 삶은 안 되어 보이게 마련입니다. 절약하고 검소하게 살면서 나누는 일에 넉넉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노력하십시오. 4. 먹을 양식과 심을 씨앗을 잘 구분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이웃을 위하여 심을 씨앗까지, 나의 먹을 양식으로 삼는 일을 삼가십시오. 5. 나의 검소한 삶의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평가하지 마십시오. 나의 씀씀이를 절약하다 보면 주위에 나만큼 절약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 판단하는 마음을 가지기 쉽습니다. 6. 나의 검소한 삶으로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보지 않아야 합니다. 나의 검소한 삶으로 인하여 가족을 비롯하여 마땅히 섬김을 받아야할 사람이 섬김을 받지 못하거나 피해를 보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7. 주위 사람들의 생활수준을 보고 흔들리지 마십시오. 자신의 문화생활에 대한 상한선과 하한선을 정해 놓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위 사람들의 생활수준과 비교하며 마음이 흔들리거나 유혹을 받기 쉽습니다. 8. 남의 물건을 사용하면서 내 것을 아끼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내 것을 절약하기 위한 수단으로 남의 것을 사용하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만듭니다. 내 것이 귀한 줄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소유도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9. 자신의 검소한 삶을 과시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검소한 삶은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신앙과 생활철학에서 나온 것이어야 합니다. 10. 검소한 삶에는 자족하는 삶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영혼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일, 옳고 그른 것을 구별하여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면 검소한 삶과 자족하는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 너무 바빠서 기도합니다
“너무 바빠서 기도합니다.” 이 말을 처음 듣는 순간에는 갸우뚱하게 됩니다. 우리가 보통 하는 말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보통 “너무 바빠서 기도하지 못합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일이 많으면, 그것도 어려운 일이 많으면 더 기도해야 할까요? 덜 기도해야 할까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어려운 일이 많을수록 더 기도해야 한다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어려운 일이 많으면 그것들을 해결하고 다니느라고 바빠서 기도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앞으로 상황이 되면, 적어도 일 년에 한 번씩은 교회에서 세 겹줄 기도회로 새벽기도를 계획하려고 합니다. 저는 세 겹줄 기도회를 통해서 많은 경험을 했습니다. 수년 동안 예수님을 믿지 않고 교회를 다니던 형제가 예수님을 믿고 세례 받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고, 몇 년 동안 저의 마음을 무겁게 했던 일이 기적같이 시원하게 해결이 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더욱 넘치게 주실 수 있는”(에베소서 3:20) 주님을 경험하였습니다. 세 겹줄 기도회를 할 수 있는 상황이 기다려집니다. 그리고 기대가 됩니다. 관광지에 가면 복을 빌면서 동전을 던지는 풍경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던져진 동전을 자세히 보면 큰 돈은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소원을 기록해서 매달아놓는 것도 비싼 것보다는 싼 것을 매달아놓은 것이 훨씬 많습니다. 만일에 투자한 것의 열 배로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으면 사람들은 할 수만 있는 대로 큰돈을 투자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시간까지 드리지 못하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네가 나를 부르면, 내가 너에게 응답하겠고, 네가 모르는 크고 놀라운 비밀을 너에게 알려주겠다.”(예레미야 33:3)는 말씀을 그대로 믿는다면, 하나님을 부르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있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또 한 가지 기도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의 생활환경이 편안하기 때문입니다. 편안하다는 말은 그만큼 긴박감이 없다는 말도 됩니다. 제가 군 훈련소에 있을 때에, 한 시간에 10분 쉴 때마다 편지를 몇 줄씩 썼던 기억이 납니다. 하루를 마칠 때가 되면 편지 한 통이 완성되곤 했습니다. ‘자대에 배치되어 시간 여유가 있으면 편지를 실컷 써야지.’ 하고 마음을 먹었는데, 정작 자대에 간 이후에는 한 달에 한 통의 편지를 쓰는 일이 그렇게 힘들 수가 없었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너무 바쁘게 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께 헌신하여 시간을 드려야 할 사람들을 겨냥하여 공격하는 사탄의 작전을 3S라고 부른 적이 있었습니다. Screen(TV모니터 포함), Sports, 그리고 Speed입니다. 영화와 스포츠에 시간과 마음을 빼앗기게 만들던 사탄이, 요즈음은 사람들의 마음을 너무 바쁘게 만들어서 하나님을 만날 마음을 빼앗아간다는 말입니다.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어린 아이들까지도 학원을 다니느라고 바쁘고, 초등학생들은 선행학습을 하느라고 바쁘고, 중고등학생들은 입시준비로 바쁘고, 대학생들은 취업준비로 바쁘고, 직장인들은 회사업무로 바쁜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해결방법은 간단합니다. 바쁜 일이 시작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시간을 드리는 것입니다. 쓰고 남는 시간이나 자투리 시간이 아니라, “아주 이른 새벽에, 외딴 곳으로 나가셔서” 기도하셨던 예수님의 본을 받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가장 귀한 주님께, 가장 귀한 시간을 드리십시오. “우리가 일을 하면 우리가 일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