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 하나님의 가정 부부 십계명
오늘은 십계명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가정, 부부 십계명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을 첫 자리에 모시는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부부는 둘이 한 몸이 되는 것이며, 이것은 단순한 만남이 아니라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입니다. 서로를 세워주고 붙들어주어 주님을 첫 자리에 모시는 삶에 더욱 진보가 있기를 바랍니다. 2. 결혼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보다 상대방의 행복과 기쁨을 채워주십시오. 배우자에게, 각자 자기의 필요를 채워줄 것을 요구하기보다는 배우자의 필요를 잘 채워주는 사람이 되도록 하십시오. ‘어떻게 하면 내가 좋은 배우자가 될 수 있을까?’를 연구하십시오. 3. 가정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되게 하십시오. 서로 사랑하여 다정하고 친밀할 뿐 아니라, 서로 성실하게 남편과 아내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가정, 더 나아가 두 분의 집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말씀 위에 굳게 서는 터전이 되도록 하십시오. 4. 가정을 편안한 쉼터, 안전을 느끼며 재충전하는 곳으로 삼으십시오. 정다운 인사와 미소로 귀가하는 남편을 맞이하십시오. 남편은 아내의 칭찬과 존경이 진정으로 필요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남편은 아내에게 기분 좋고 편안하고 보살핌을 받고 있어 안전하다는 느낌과 보호받고 있음을 느끼게 해 주십시오. 5. 양가의 부모님을 공경하고 높여드리십시오. 부부 각 사람이 장성하기까지 은혜를 베풀어주신 부모님의 은혜를 늘 기억하십시오. 자녀들에게 부모효도를 가르치는 제일 좋은 방법도 그들의 할아버지, 할머니를 공경하는 것입니다. 특히 배우자의 부모님에게 잘 하셔야 합니다. 6.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말이나 행동을 삼가십시오. 자존심을 상하게 하거나 모욕감이나 분개를 느끼게 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왕비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남편을 왕으로 대우하십시오. 왕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아내를 왕비로 대우하십시오. 7. 마음뿐만 아니라 말과 행동으로 배우자에게 사랑을 끊임없이 나타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서로를 누릴 수 있도록 성생활을 허락하셨습니다. 부부간의 성생활은 육체적인 관계가 아니라 전인적인 인격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8. 재물에 깨끗한 삶을 영위하십시오. 가정은 사회의 기본 요소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물질주의로 흘러가고 경제주의로 치달아간다 할지라도, 여러분의 가정은 이 사회에 정직의 모델을 제시할 수 있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9. 완전히 감정을 나누며 인격적으로 신뢰하는 대화를 개발하십시오. 사람은 가까운 사이일수록 갈등이 자주 생기게 마련입니다. 부부관계, 가족들과의 관계, 일상생활에 있어서 솔직한 대화를 인격적으로 나누십시오. 진실을 말하되 사랑 가운데 말하는 법을 연습하십시오. 10. 자신의 것에 만족할 줄 아는 성품을 기르십시오. 이는 이웃의 것을 탐내지 않을 수 있는 비결입니다. 천하보다 귀한 것이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은 천하를 가져도 만족할 수가 없습니다. 자신들이 원하는 것보다,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가계를 운영해나가는 것이 지혜입니다.
- 부모효도 십계명(복습)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인간들 사이의 의를 세우는데 필요한 도덕적인 행위를 규정하고 있는 십계명에 근거하여 부모 효도 십계명을 생각해보겠습니다. 1계명. 부활하신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도록 기도하며 도와드린다. 부모님을 공경하고 사랑하며 최선을 다하여 섬기는 것이 자녀의 본분입니다. 부모님이 복음을 깨닫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실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것이 최선의 효도입니다. 2계명.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의지하지 않도록 도와드린다. 하나님을 모셔야 할 마음의 자리에 우상이나 탐심 등, 다른 것을 앉혀놓지 않도록 도와드려야 합니다. 3계명. 하나님과 연관된 일들을 소홀히 하지 않으시도록 도와드린다. 교회에 출석하시는 일이나 봉사하는 일을 중요시 여기고, 정성껏 하실 수 있도록 격려해드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4계명. 쉼의 원리와 기쁨을 알려드린다. 하나님이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일에 만나를 줍기 위해 나가지 않도록 여섯째 날 만나를 두 배로 허락하셨던 것처럼, 부모님들의 노후를 위하여 정신적 물질적으로 준비하실 수 있도록 도와드려야 합니다. 5계명. 부모님을 높여드린다. 갈수록 교육과 문화 수준이 높아지고 문명이 급속도로 발달함에 따라 세대 차이가 심하게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부모님께 순종은 “주 안에서” 해야 하지만,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은 예외의 경우가 없습니다. 6계명. 마음에 서운함이나 섭섭함, 또는 상처를 안겨드리지 않도록 말과 행동을 주의한다. 부모보다 자기의 자녀를 먼저 챙기는 우리의 처사에 쉽게 상처를 입거나 서운함을 느끼십니다. 정기적인 건강 검진, 건강을 보완하실 수 있도록 조치하는 일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됩니다. 7계명. 건전한 취미 생활을 하실 수 있도록 정보나 재정적인 지원을 하고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한다. 부모님들만의 시간을 내어드려 취미와 오락을 하실 수 있도록 도우며, 용돈도 정기적으로 드려서 자신의 소비 생활을 계획하실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필요한 배려입니다. 8계명. 물질적 좌절감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드린다. 많은 부모님들이 자식을 키우는 일에 모든 것을 투자하고, 자신의 노후를 위해 준비를 하지 못한 분들이 많습니다. 9계명. 관계나 체면 때문에 왜곡되는 일이 없도록 도와드린다. 어른들은 연세가 드실수록 공정성보다 관계와 체면을 먼저 의식하기 쉽습니다. 이때 자녀들이 용기를 북돋워드리거나 부모님의 짐을 대신 져드리는 일이 필요합니다. 10계명. 소유욕을 절제하실 수 있도록 도와드린다. 역시 연세가 드시면서 어른들은 소유에 대한 욕망이 강해집니다. 어른들이 연세가 드시면서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을 돌아보고 나누는 일을 통해 오히려 더 큰 부요함을 누리시도록 조심스럽게 돕는 일이 필요합니다. 부모님의 말씀에 때로는 “주 안에서” 순종해야 하지만,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을 순종하는 일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 염치없이 한 가지 부탁드리겠습니다
염치없이 한 가지 부탁드리겠습니다. 제가 부업으로 화장품 장사를 시작했어요. 형편이 어려워져서… 그러니 “꼭” 한 세트씩 주문해 주세요. 제품 설명서 주름이 생긴 이마에는 “상냥함”이라는 크림을 사용해 보세요. 이 크림은 주름을 없애주고 기분까지 좋아지게 하니까요. 입술에는 “침묵”이라는 고운 빛의 립스틱을 발라보세요. 이 립스틱은 험담하고 원망하는 입술을 예쁘게 바로 잡아주는 효과도 있답니다. 맑고 예쁜 눈을 가지려면, “정직과 진실”이라는 아이크림을 사용해보세요. 최선의 효과를 얻으려면 어디를 가든지 그 안약을 소지해야 한답니다. 피부를 곱게 하고 싶으면, “미소”라는 로션을 바르면 피부가 촉촉하고 부드러워지며 거울을 보고 미소 지으며 하루를 시작하면 날마다 행복할 수 있습니다. 가장 이상적인 피부 영양제 화장품은 “성실”입니다. 아주 효능 좋은 피부 청결용 세안 비누는 “미안”이 최고라고 합니다. 아, 참! 가장 향기로운 향수로는 “용서”가 제일이랍니다. 마음에 드시면 한 세트… 꼭 구매해 주실 거죠? 품질은 보장합니다. 꼭 날마다 사용하셔서 예쁘고 멋지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문주소: “당신도 예쁘군 사랑하면 좋으리”입니다. (어느 날 국제가정교회사역원 지역목자 밴드에 올라온 글입니다. 제가 평소 좋아하는 목사님께서 형편이 어려워서 부업을 시작했다고 해서, 얼른 한 세트 사드리려고 했지요. 몇 줄을 읽다가 재미있는 글인 줄 알았습니다. 그냥 어떻게 살라고 훈수를 두는 것보다, 재미있는 글로 만들어 얘기하니까 저절로 입가에 미소를 짓게 됩니다. 여러분도 날마다 사용하셔서 예쁘고 멋지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 간증이 넘치는 교회
간증이란 “자신의 종교적 체험을 고백함으로써 하나님의 존재를 증언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해주신 놀라운 일들, 나를 위하여 세우신 계획이 이루어진 일들은 헤아릴 수도 없이 많습니다. 다만 우리의 마음이 어둡거나 깨닫지 못하여 그것을 모를 뿐입니다. 아마 그것들을 다 깨달아 알 수 있다면, 우리도 시편 기자와 같은 고백을 할 것입니다. “주, 나의 하나님, 주님께서는 놀라운 일을 많이 하시며, 우리 위한 계획을 많이도 세우셨으니, 아무도 주님 앞에 이것들을 열거할 수 없습니다. 내가 널리 알리고 전파하려 해도 이루 헤아릴 수도 없이 많습니다.”(시 40:5) 이러한 신앙적 경험을 고백하면 고백할수록 우리의 믿음도 자라고,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존재를 알리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자주 간증을 해야 하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간증을 하라는 권면을 받을 때에, “나는 별로 간증할 것이 없는데…” 하는 말은 잘못된 말입니다. 간증이 할 것이 없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내게 해주신 일이 별로 없는데…”라는 말과 같은 말이기 때문입니다. 간증할 것이 많은데, 내가 깨닫지 못하고 있거나 아직 정리가 안 되어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책을 읽을 때에 그냥 읽는 것보다는 간단하게 요약을 하고 배운 점들을 기록한 후에, 삶에 적용할 것을 정리해 두면 책을 읽은 효과를 훨씬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강의를 들을 때에도 그렇습니다. 그냥 듣기보다는 들어가면서 메모를 하고 듣고 나서 다시 요약을 한 후에, 역시 배운 점들을 기록하고 삶에 적용할 것까지 정리하면 그냥 들은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선명한 기억력보다 흐릿한 잉크가 더 낫다.’는 말이 있습니다. “생각의 실타래는 입술로 말하거나 종이에 기록을 할 때에 스스로 정리가 된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여 해주신 일들을 경험할 때마다 기록해두고 간증을 하면, 자신의 신앙적 체험이 정리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살아계셔서 지금도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증명할 수 있습니다. 잠언 24:30-32에는 간증 샘플이 되는 좋은 예가 있습니다. “게으른 사람의 밭과 지각이 없는 사람의 포도원을 내가 지나가면서 보았더니, 거기에는 가시덤불이 널려 있고, 엉겅퀴가 지면을 덮었으며, 돌담이 무너져 있었다. 나는 이것을 보고 마음 깊이 생각하고, 교훈을 얻었다. ‘조금만 더 자야지, 조금만 더 눈을 붙여야지, 조금만 더 팔을 베고 누워 있어야지’ 하면, 가난이 강도(거지)처럼 들이닥치고, 빈곤이 방패로 무장한 용사처럼 달려들 것이다.” 게으른 사람이나 지혜롭지 못한 사람의 포도원에 가시덤불이 널려 있고, 잡풀이 밭을 뒤덮고 돌담이 무너지는 일은 흔히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1. 우선 그 모습을 보았습니다.(본 것) 2. 마음 깊이 생각하고 교훈을 얻었습니다.(깨달은 것) 3. 게으르면 가난해지고 빈곤해지니까,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 적용을 한 것입니다. 간단하게 요약을 하면, 본 것-깨달은 것-적용입니다. 더 요약을 하면 ‘본>깨>적’이 됩니다. 우리 행복한제자교회의 성도들은 거의 매주 제가 최근에 ‘본>깨>적’ 한 것들을 설교할 때, 서론이나 삶에 적용한 예로 듣고 있습니다. 설교 중에 거의 매 번 제 간증을 듣고 있는 셈이지요. 이제 여러분도 제게서 듣고 보고 배운 것처럼,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하여 해주신 놀라운 일들을 증거하시기 바랍니다. 꼭 놀라운 일이 아니어도 일상생활 가운데 해주신 일들을 나누면 됩니다. 밥상에 앉은 아이들이 그냥 식사를 할 수도 있고, 엄마에게 감사를 하고 먹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많이 다릅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간증으로 늘 감사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Options
- 지난 주간은 고난주간이었습니다.
지난 주간은 고난주간이기 때문에 특별한 새벽기도로 한 주간을 보냈습니다. 목자님들이 대표기도도 하고, 예수님께서 피값으로 사신 교회가 어떤 모습을 갖추어야 하는지, “가장 오래된 새 교회”(최영기 목사 저) 책을 가지고 정리를 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의 죄 값을 자신의 몸값으로 치르기 위하여 유월절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전 일곱 마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가상칠언(架上七言)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일곱 말씀을 다시 한 번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1.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하여 세상에 오셔서, 죄 많은 여인의 죄, 중풍병자의 죄 등을 용서해 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원수들의 죄까지도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우리도 서로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2.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려 있는 죄수 가운데 하나는, “예수님, 주님이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에, 나를 기억해 주십시오.”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가 예수님과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을 약속해주셨고, 이것은 오직 은혜로 구원을 얻은 대표적인 예입니다. “인자는 잃은 것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고 하신 예수님은 마지막 순간까지 잃은 자를 구원하셨습니다. 3.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성령으로 잉태한 여인이었습니다. 이제 아들을 먼저 떠나보내는 어머니의 마음에는 한없는 슬픔이 밀려왔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어머니를 요한에게, “자,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시며 부탁을 하셨습니다. 4.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인간의 죄 값을 모두 치르시기 위하여, 예수님은 육체적인 죽음, 사람들로부터 버림받고,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는 고통을 모두 당하셨습니다. 인간의 죄를 모두 짊어지시려고, 하나님의 아들이 아버지로부터 버림을 받는 고통까지 당하신 것입니다. 5. “목마르다.”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 예수님이 맞으신 채찍에는 쇠붙이가 달려있어서 가죽 채찍이 살을 칠 때마다 살갗이 찢어지고 피가 터져 엉켜 붙었다고 합니다. 가시관을 쓰신 머리와 대못에 박힌 양손과 양발에서도 피가 흘러, 주님의 갈증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6. “다 이루었다.” 예수님은 죄도 없으시면서 가장 죄 많은 자처럼 십자가에 높이 달리셔서, 인간들이 받아야할 고통과 수치를 모두 받으셨습니다. 그때에 지성소와 성소를 가로막은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서,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리도록, 다 이루어주셨습니다. 7.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시고 숨을 거두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셨습니다. 천하보다 귀한 것은 우리의 영혼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영혼을 아버지께로 인도하시기 위하여 세상에 오셨고, 십자가 고통을 우리를 대신하여 받으셨습니다.
- 교회의 존재 목적이 분명하면 교회가 평안해진다. (최영기 목사님의 글)
가정교회로 전환하면 좋은 점 중의 하나가 교회가 평안해진다는 것입니다. 평신도들이 목자 목녀가 되어 목양을 하니까 목회자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고, 목양에 바쁘다 보니 이전에는 문젯거리가 될 수 있는 것들도 그냥 넘어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갈등이 사라지고 교회가 평안해지는 가장 큰 이유는 교회의 존재 목적이 분명해지기 때문입니다. 일반 교회에서는 교회 존재 목적이 분명치 않기 때문에 문제가 생깁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프로그램이나 행사를 계획할 때에 교회 존재 목적이 분명치 않으니까 분명한 기준이 없고, 분명한 기준이 없으니까 토론이 논쟁이 되어 버리고, 결국은 목소리 큰 사람 의견대로 되니까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들에게 불만이 쌓이게 됩니다. 그러나 가정교회에서는 영혼 구원하여 제자 만든다는 교회 존재 목적이 뚜렷하니까, 분명한 기준이 생깁니다. 영혼 구원하여 제자 만드는 데 도움이 될지 안 될지에 비추어 결정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소모적인 논쟁도 줄어들고, 자신의 의견이 채택되지 않아도 불만을 하지 않게 됩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병들어 있다는 데에는 이견이 별로 없습니다. 병든 교회를 살리려는 의도로 교회 개혁운동을 벌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 재정의 투명화, 교회 운영의 민주화, 교회 내의 세습 폐지 등등의 슬로건을 걸고 운동을 벌입니다. 고마운 분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은 증상이지 원인이 아닙니다. 근본 원인을 치료하지 않고 증세만 다루는 것은 마치 호열자에 걸린 사람에게 해열제를 처방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해열제가 잠시 열을 내리게 하지만, 약 기운이 떨어지면 다시 열이 오릅니다. 현대 한국 교회가 병을 않고 있는 이유는 교회 존재 목적을 상실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 존재 목적을 회복할 때에 비로소 건강한 교회가 되고 병적인 요소들이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영혼 구원하여 제자 만드는 것을 교회 존재 목적으로 삼는 가정교회에서는, 일반 교회의 병폐를 별로 볼 수 없다는 것이 증거입니다. 분명한 교회 존재 목적을 붙드는 것은 셔츠의 첫 단추를 끼우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첫 단추를 잘 끼우면 다음 단추는 저절로 끼워집니다. 마찬 가지로 교회 존재 목적을 분명히 하면 모든 문제에 자연스럽게 답이 나옵니다. 큰 교회가 좋으냐, 작은 교회가 좋으냐? 목회자들이 가끔 토론을 벌입니다. 영혼 구원하여 제자 만든다는 교회 존재 목적을 달성하는데 최적의 사이즈가 좋은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시대, 지역, 상황에 따라 큰 교회가 좋을 수도 있고, 작은 교회가 좋을 수도 있습니다. 교회 분립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목회자들은 교회 분립을 사명과 자랑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교회 분립 자체에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분립하는 것이 영혼 구원하여 제자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느냐, 안 되느냐에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교회 건축을 할 것인가 안 할 것인가? 교회 연합이나 통합을 추구할 것인가, 안 할 것인가? 이 질문들도 교회 존재 목적에 비추어 보면 쉽게 답이 나옵니다. 영혼 구원하여 제자 만드는데 도움이 되면 가치 있는 일이고, 도움이 되지 않으면 가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건축하는 일이나 하나 되는 것 자체에 지나친 가치를 부과하여, 영혼 구원하여 제자 만드는데 도움이 안 되는 것을 추구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우크라이나를 위해 기도합시다
전에 제가 재단의 책임자로 있을 때에, 아주 미운 나라를 경제적으로 도와준 적이 있었습니다. 왜 그 나라를 도와주느냐고 스스로 질문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그때마다 제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홍정길 목사님의 말씀이 기억이 났습니다. “죽어가는 사람은 일단 살려놓고 보아야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우크라이나를 미워하는 것은 아닙니다. 뉴스에서 듣는 것 이상으로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불쌍한 것만은 분명합니다. 요한일서 3:18 말씀이 기억납니다. “자녀 여러분, 우리는 말로나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합시다.” 아래의 기도문은 인터넷에서 길어온 기도내용입니다. 아래와 같이 기도할 뿐더러, 우리도 부활절 헌금은 우크라이나의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서 헌금하고자 합니다. 전쟁 준비의 조짐 속에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우리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양국의 평화와 자유를 위해 기도합니다. 우리는 기도가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고 믿습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전쟁은 비극적 인명 손실, 대규모 강제 이주, 종교의 자유와 인권의 추가 축소 등 양국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1. 거대한 소용돌이의 한복판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를 간구합시다. 하나님은 때때로 매우 심각한 상황을 사용하시어 사람들을 자신에게로 이끄시곤 합니다. 주님을 따르는 우크라이나인들을 통해 주님이 영광 받으시도록 기도합시다. 2. 하나님의 위로를 구합시다. 하나님의 평화가 모든 힘의 근원이 되도록 기도합시다. 우크라이나인들이 하나님의 샬롬으로 위로받을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3.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위해 기도합시다. 양쪽 국경 안의 모든 이들이 안전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하나님께 그들의 육체 뿐 아니라 영혼을 보호해주시길 간구합시다. 반목과 분쟁 중에서도 그들이 함께 진리를 추구할 수 있도록 주께서 도와주시길 간구합시다. 4. 하나님의 개입하심을 위해 간구합시다. 세계의 지도자들이 행동하고 전략을 세우고 목소리를 낼 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지혜를 주시길 간구합시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시고 그들의 걸음과 계획을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합시다. 5.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 부정부패가 사라지도록 기도합시다. 양국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진리와 평화를 알고 성령에 의해 변화를 받아, 그들이 평화의 길로 자신들의 나라를 이끌어가도록 간구합시다. 6.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역에서 회개와 은혜 그리고 용서와 화해의 역사가 일어나도록 간구합시다. 두 나라의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백성들이 서로에게 적대감을 품지 않고 화해로 연합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7. 복음을 위한 기회의 문이 열리도록 간구합시다. 하나님께는 어둠 속에서도 자신을 드러내시는 길이 있습니다. 이 분쟁의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역에 당신의 이름을 알리시도록 기도합시다.
- 포기해서는 안 되는 싸움
(최영기 목사님께서 전에 가정교회 사역원 원장코너에 올리셨던 글입니다. 우리 중에 누구도 죄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이 글을 읽고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싸워야할 죄와의 싸움에서 더욱 힘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제가 처음 예수 믿고 나서 첫 관심사가 죄와의 싸움이었습니다. 이 싸움에서 승리를 약속하는 서적을 읽었고 이런 책들을 통해 어느 정도의 승리를 맛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자신과의 싸움, 죄와의 싸움은 지금도 계속 중입니다. 죄와의 싸움에서 패배하면 자괴감이 생기는 동시에 하나님에 대한 원망스러운 생각도 듭니다. 죄를 지을 생각이 아예 안 들게 만들든지, 거뜬히 승리하게 하지 않으시고, 왜 패배를 맛보도록 내버려 두시는가? 여기에 대한 정답은 아직도 못 얻었습니다. 그러나 부분적인 답은 얻었습니다. 교만을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죄와의 싸움에서 승리하여 교만해질 거라면, 차라리 죄와의 싸움에서 패배하여 겸손해지는 쪽을 하나님께서는 선호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남들에게 칭찬받을만한 일을 하고 나면 죄로 인한 패배를 맛보는 수가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겸손해집니다.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지, 얼마나 약한지, 얼마나 부패했는지를 깨닫고 다시 낮아집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한 후 많은 변화를 맛보게 됩니다. 술 담배를 끊게도 되고, 거짓된 삶을 청산하게도 되고, 용서 못할 사람을 용서하게도 되고, 난폭한 성격이 순화되기도 합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거룩한 삶을 살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극복되지 않는 죄가 있습니다. 이것이 어떤 죄인지는 개개인마다 다릅니다. 성품에 의한 것일 수도 있고,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일 수도 있고, 어릴 적에 받은 상처로 인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완전 극복이 안 될지라도 죄와 계속 싸워야 합니다. ‘그렇게 타고 났다’, ‘자신을 바꿀 수 없다,’라는 말과 함께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 죄와의 싸움을 아예 포기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주중에 세상에 나가 죄짓고, 주일에 교회에 와서 회개하고, 주중에 세상에 나가 죄짓고 주일에 교회에 와서 회개하고… 이렇게 반복하는 것을 당연시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안 믿는 사람들이 크리스천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되고, 복음 사역이 지장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런 삶을 살게 되면 진심으로 회개도 안 되고, 죄책감에서 벗어나지도 못합니다. 신앙생활에서 즐거움이 사라집니다. 이기건 지건, 죄와 싸워야합니다. 싸움에서 승리하면, 삶이 거룩해집니다. 싸움에서 패배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죄와 싸울 때에 하나님의 도우시는 능력을 체험하든지, 용서해 주시는 은혜를 체험합니다. 죄와의 싸움을 포기하면 하나님의 능력도, 하나님의 은혜도, 체험하지 못합니다.
- 제 인생의 모델로 삼고 있는 한 분
오늘은 제 인생의 모델로 삼고 있는 한 분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것이 네 가지 있습니다. 첫째 건강, 둘째 실력(학업. 직업 등 모든 사회생활에서), 셋째 좋은 대인관계입니다. 이 세 가지를 완벽하게 갖춘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모세입니다. 그는 120살이 되도록 눈은 빛을 잃지 않았고, 기력은 정정하였습니다. 그때까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었고, 여호수아를 차세대 지도자로 세울 정도로 실력이 있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이 그를 사랑하고 존경하여 30일 동안 애곡할 정도로 대인관계가 좋았습니다. 세 가지 덕목과 아울러 모세는 주께서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고 그와 말씀하셨습니다. 그만큼 영적으로 탁월한 삶을 살았습니다. 이 네 가지 외에 무엇이 더 있을까요? 1. 건강한 몸 모세와 같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기운을 잃지 않고 맡겨진 소명을 다할 수 있는 것은 복된 삶입니다. 하나님께 헌신된 삶을 살았던 로버트 맥체인은 20대 초반에 주님께 헌신하여 살다가 이른 나이인 30대 초반에 세상을 떠나며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전달할 메시지와 타고 다닐 말을 주셨다. 나는 말을 쳐서 죽을 지경으로 만들었으므로, 이젠 더 이상 그 메시지를 전할 수 없게 되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제게 은사로 주신 몸을 건강하게 잘 관리하여 많은 사람들을 유익하게 하고 주님의 일에 쓰임을 받기 원합니다. 2. 차세대 지도자를 세울 수 있는 실력 모세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보기는 하였지만 그리로 들어가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들어갈 차세대 지도자, 지혜의 영이 넘치는 여호수아를 남기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여호수아의 말을 잘 듣고 그를 따랐습니다. succeed라는 영어 단어를 보면, ‘성공하다’라는 뜻도 있지만, ‘계승하다’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 뜻에 따라 명사도 다릅니다. ‘성공’은 success이며 ‘계승’은 succession입니다. 저에게 주어진 사명을 잘할 뿐만 아니라, 그 사명을 이어서 계승할 사람을 남기는 진정으로 성공한 삶을 살기 원합니다. 3. 사람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는 대인관계(사회성)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면 우리나라에서는 대개 3일장으로 치릅니다. 유명한 사람이라 하여도 5일이나 7일장을 치릅니다. 모세 시대에는 보통 부모상을 당했을 때 30일을 애곡하였는데,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모세를 생각하며 30일을 애도하는 기간으로 잡아 애곡하였습니다. 얼마나 백성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으면 그렇게 하였겠습니까? ‘내가 세상을 떠나면 몇 사람이나 나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울 것인가?’ 생각해 보십시오. 아무리 일을 잘했어도 사람(진정한 친구)을 얻지 못하면 진정한 성공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4. 하나님께 칭찬 받는 인생(영성)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도, 인생의 의미를 찾는 사람들은 위의 세 가지 덕목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이 세 가지 덕목은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이 무엇이며, 왜 살아야 하는가?’의 문제는 다루지 않고 있습니다.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인생이 무엇이며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하나님께서 얼굴과 얼굴을 마주대고 말씀해 주시고, 놀라운 기적과 기이한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그만큼 뛰어난 영성을 가지고 산 것입니다.(이상은 신명기 34:7-10에서 받은 교훈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가장 의미 있는 인생의 본보기로 위의 네 가지 덕목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고,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을 받았다.”(눅 2:52) 저는 매년 이 네 가지를 돌아보고, 새로운 해의 계획을 세우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 오랜 시간을 전해오면서 입증된 기적의 말
(가정교회의 어느 목사님께서 의미 있는 글을 전해 왔습니다.) 상대의 걷잡을 수 없는 화를 가라앉히는 말: “미안해.” 겸손한 인격의 탑을 쌓는 말: “고마워.” 상대의 어깨를 으쓱하게 하는 말: “잘 했어.” 화해와 평화를 부르는 말: “내가 잘못했어.” 존재감을 쑥쑥 키워주는 말: “당신 최고야.” 상대의 기분을 ‘업’시켜주는 말: “오늘 아주 멋져 보여.” 더 나은 결과를 이끌어내는 말: “네 생각은 어때?” 든든한 위로의 말: “내가 뭐 도울 일 없어?” 상대의 자신감을 하늘로 치솟게 하는 말: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했어?” 열정을 샘솟게 하는 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해.” 상대의 능력을 200% 이끌어내는 말: “당신을 믿어.” 용기를 크게 키우는 말: “넌 할 수 있어.” 충고보다 효과적인 공감의 말: “잘 되지 않을 때도 있어.” 호감을 사는 말: “당신과 함께 있으면 기분이 좋아.” 자녀의 앞날을 빛나게 하는 말: “네가 참 자랑스러워.” 반복되는 일상에 새로운 희망을 선사하는 말: “첫 마음으로 살아가자.”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주는 말: “괜찮아, 잘 될 거야.” 상대를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말: “역시 넌 달라.” 상대의 지친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말: “그동안 고생 많았어.” 백 번, 천 번, 만 번을 들어도 기분 좋게 하는 말: “사랑해.” 배우자에게 사는 보람을 주는 말: “난 당신밖에 없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