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 좋은 부모? 나쁜 부모! 4
4. 자녀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주려고 한다. 한 임상자료에 따르면 소아정신과를 찾는 청소년들이 해마다 30-40%씩 늘고 있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도 참을성이 부족하다고 진단받은 아이들의 비율이 점점 높아진다고 합니다. ‘참을성 결핍증’이라고 명명되는 이 문제는 부모가 자녀의 요구를 다 들어주는 양육 방법과 관련이 있습니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종종 이런 소리를 합니다. “그렇게 잘해 주었는데 뭐가 부족해서…” 이 말에는 부모의 애정과 기대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차라리 그런 애정과 기대가 없었다면 어땠을까요? 핵가족화로 줄어든 자녀수로 인해 과잉보호에 익숙해진 아이, 친구와 공원에서 놀기보다 전자오락에 나오는 괴물과 싸우면서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 끊임없이 바뀌는 입시제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유치원 때부터 준비하는 아이들, 이런 아이들에게 인생의 지표를 만들어주는 가정교육을 확립하는 일은 전적으로 부모에게 달려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 부모들이 열심히 하는 가정교육은 기본적인 중요한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자녀와 친구가 되라.’ 이것은 소위 자녀교육 전문가나 가족문제 전문가들이 상투적으로 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상투적인 표현이 담고 있는 숨은 뜻을 파악해야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바로 부모가 자녀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며, 그 관계를 어떻게 유지해야 하는가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부모와 자녀는 친구가 될 수 없기 때문에 가능한 한 서로 의사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라.”는 뜻입니다. ‘자녀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라.’ 이 말은 부모와 자녀 간의 경계를 허물고 서로 통하는 사이가 되라는 뜻일 것입니다. 물론 부모와 자녀 간의 원활한 의사소통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부모와 자녀 사이의 경계가 사라져가는 것은 매우 위험스러운 일입니다. 부모와 자녀가 건강하고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려면 부모와 자녀 사이에 융통성 있는 경계가 있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이 경계가 무너지기 시작하면 정서적 혼란이라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어떤 집단체계에서든 일관되고 신뢰할 만한 구조가 존재하지 않으면 그 집단 내의 인간관계는 진정한 관계로 발전하지 못합니다. 진정한 관계란 힘들고 어려울 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신뢰가 형성된 관계를 말합니다. 이것은 상대방에 대한 믿음과 책임감을 수반하며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는 관계입니다. 이는 부모·자녀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좋은 부모’로서의 행동만 하려고 한다면 정서적 혼란을 야기합니다. 부모와 자녀간의 경계에 대한 또 다른 극단적인 예는 부모와 자녀 사이의 따뜻한 정이나 가족 구성원이라는 연대감이 거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분리된 경우입니다. 너무 엄격하고 완고하고 융통성 없고 권위적인 부모 밑에서 자라는 경우가 이에 해당됩니다. 이런 가정에서 자란 자녀들은 매우 거리감 있고 형식적이며 정서적 친밀감은 거의 없기가 쉽습니다. 부모가 자기의 신세타령을 친구에게 하듯 자녀에게 털어놓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게 깊은 사랑을 받거나 준 경험이 없어서 생긴 상실의 고통을 아이에게서 보상을 받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는 명료하되 융통성이 있는 경계가 필요합니다. 부모는 자녀의 친구가 아닙니다. 자녀에게 어른과 아이 사이에는 지켜야할 적절한 예의와 행동방식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어야 합니다.
- 좋은 부모? 나쁜 부모! 3
3. 자녀에게 행동의 틀을 주지 않고 방임하기 자녀에게 생활과 행동에는 분명한 구조가 있음을 알려주고 이것을 만들어 주도록 해야 합니다. 아이가 체계적인 생활습관과 규칙에 따른 행동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부모의 책임입니다. 아이들은 제일 먼저 부모의 양육을 통해 행동에 틀, 즉 외적 구조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 후 행동의 틀은 내적 구조로 전환됩니다. 외적 구조가 형성된 후에 점차 외적 구조를 내면화한다고 말합니다. 이 내적 구조에 의하여 아이들 개인의 행동과 생각이 통제가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부모는 아이에게 “장난감은 상자 안에 넣어라”, “찻길을 건너기 전에 자동차가 오는지 잘 살피고 건너야 한다.”와 같은 지시를 합니다. 그러면 아이는 부모가 지시하는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말하는 과정을 거친 후 받아들입니다.부모의 지시(외적 구조)를 자기 말(내적 언어)로 바꾸어 자기에게 말함으로써 행동을 통제하는 것입니다. 어느 부모가 공원에서 경험한 이야기입니다. 주말에 가족이 공원으로 피크닉을 갔습니다. 4살 정도 되는 아이가 갑자기 울기 시작했습니다. 저만치 있던 아빠가 아이 곁으로 달려가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더니, 바람에 날려간 과자봉투를 주워와 아이 손에 쥐어주었습니다. 그러자 아이는 울음을 그치고 쓰레기통으로 걸어가 아빠가 가져다준 과자봉투를 버리고 밝은 얼굴로 돌아왔습니다. 때마침 불어온 바람에 포장지가 날아가 버려 뜻대로 줍지 못하게 되자 아이는 그만 울음을 터뜨렸고, 이를 알아차린 아빠가 포장지를 주워 아이가 쓰레기통에 집어넣도록 도와준 것입니다. 이 사례는 부모가 자녀의 행동의 틀을 어떻게 만들어 주는가에 대한 두 가지 사실을 보여줍니다. 하나는 4살짜리 아이에게도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넣어야 한다는 내적 구조가 벌써 자리 잡기 시작했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아이가 휴지를 버려야할 곳에 버리도록 도와준 아빠의 모습을 행동으로 보여줌으로써 딸의 내적 구조 형성을 더욱 확실히 도와주었다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든 말보다 행동이 더 효과적입니다. 내적 언어가 자리 잡고 힘 있는 규칙이 되기 위해서는 부모가 일관되게 행동해야 합니다. 많은 규칙들을 일관성 없이 사용하기보다는 적은 규칙을 일관성 있게 사용하는 편이 더 효과적입니다. 부모가 일관성 없는 규칙을 강요하면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하게 됩니다. ‘자녀를 노엽게’ 만드는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일관성이 없으면 진정한 성인이 되는데 필요한 내적 구조가 형성되지 못합니다. 가장 사소한 규칙부터 정해보십시오. 예를 들어, 입었던 옷을 옷장에 잘 걸게 만드는 규칙을 정할 수도 있습니다. 우선 아이가 스스로 옷을 챙겨놓도록 하는 규칙과 장소를 정해놓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에 5일정도 잘 챙겨놓았다면 보상을 해줍니다. 그러나 그 이하로 실천을 하지 않았다면 용돈 줄이기, TV시청금지와 같은 부정적인 결과를 경험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런 규칙은 자녀와 함께 정하고 시행하는 것이 좋습니다. 중요한 점은 많은 것보다는 몇 가지 규칙만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잘하는 행동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보상을 속히 해주십시오. 행동의 틀 없이 자녀를 방임했던 부모는 자녀가 성장함에 따라 점점 더 불안해하고, 자녀의 행동에 대해 화를 내거나 괴로워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을 겪지 않도록, 가정 내에 적절한 제한과 구조, 그리고 규칙이 있어야 합니다.
- 좋은 부모? 나쁜 부모! 2
2. 자녀에게 가능한 한 많은 활동을 하도록 강요하기 수년 년 전 서울지역 초등학생 2,000여명을 대상으로 하루에 친구들과 노는 시간에 대해 조사한 결과 ‘친구들과 노는 시간이 거의 없다’가 무려 30.1%였고, 1시간 미만인 아이들이 25.1%였습니다. 대략 반 이상의 아이들이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놀지 못하는 이유는 당연히 과외공부와 학원이었습니다. 아이들이 바쁜 이유는 아이들에게 공부를 시키고자 하는 부모의 열성 때문입니다. 젊은 학부모들은 자신들이 경험한 대학입시의 경쟁이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기 전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하고, 지금부터 준비해도 늦는다는 심정으로 경쟁 레이스에 뛰어듭니다.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사랑하는 자녀를 위해 진정 부모가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대단히 혼란스럽습니다. “아이들은 과외왕국에서 태어나는 바로 그 순간부터 운명처럼 주어지는 끝 모를 ‘항해명령’을 받는다. 부모는 부모대로 엄청난 규모의 사교육비를 대느라 허리가 굽고, 자녀는 자녀대로 과중한 공부 부담에 짓눌려 날개를 못 펴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지만, 이 암울한 상황에 밝은 햇살이 스며들 기미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뉴스 플러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의 머리말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우리 부모가 예전에 내게 했던 말을 나 역시 내 아들에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은 변했건만 부모들의 말은 변하지 않은 것이다. 좋은 교육을 받고 좋은 성적을 올려서 안정된 직장을 잡는 것이 마치 인생의 모든 과업을 성취하는 것처럼 내 부모님은 내게 말했고, 나 역시 내 아들에게 그런 식으로 말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그러나 좋은 교육을 받고 좋은 성적을 올린다고 성공이 보장되는 때는 지났다. 세상은 변했다. 그런데 그것을 그 누구도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알고 있었다.” 부모는 자녀가 무엇을 원하는지 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뛰어난 능력뿐만 아니라 높은 자아존중감이며 이것은 아이 자신의 투쟁과 노력뿐 아니라 부모의 노력으로도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많은 부모들은 자녀가 여러 가지 활동을 하기 바랍니다. 그러나 이 활동은 자녀에게 도움이 되기보다는 자녀를 망치는 지름길로 인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가치관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많은 물질을 얻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는 것이 가족을 사랑하는 길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물질적 안정이 가족을 행복하게 만드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말 그대로 물질을 위해 살아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만일 누군가가 한 주 동안 나를 쫓아다니면서 나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알아보려고 할 때, 그들은 나에게서 무엇을 발견할 것인가?’ 자신에게 질문해 보십시오. 만일 유능한 부모가 되고 싶다면, 우리가 인생에서 꼭 알아두어야 할 놀라운 지혜가 있습니다. ‘누군가의 삶을 변화시키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바로 당신이 변화하는 것이다.’ 가르치는 대로 부모가 행동하고 있으면, 자녀에게 예의바르게 행동하고, 사회적으로 성공하며, 진실되게 행동하고, 위험을 예측하고 감수하라고 강요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이렇게 행동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마치 거센 물결을 거슬러 헤엄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지나치게 많은 것을 얻으려고 하면 정작 중요한 것은 하나하나 잃어간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부모는 먼저 자신의 일을 줄이고 아이와 함께 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 좋은 부모? 나쁜 부모!
1. 자녀를 아기 취급하기 우리들 가운데는 좋은 부모가 되려고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나쁜 부모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늘은 그 중 첫 번째, “자녀를 아기 취급하기”에 대해 요약합니다. 육십 노인도 팔순 부모 앞에서는 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녀가 아무리 성장하더라도 부모는 자녀를 아이로 취급하려고 합니다. 이런 부모-자녀 관계는 자식에 대한 부모의 강한 애정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자녀를 부모의 심리적 세계에서 독립시키지 못하는 나쁜 부모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것은 젊어서 혼자가 된 어머니가 자신의 모든 인생을 바쳐 외동아들을 키우는 경우에 생기기 쉬운 현상입니다. 어머니는 남편에게 쏟거나 받아야 하는 모든 애정을 아들에게 쏟아 붓습니다. 아들은 인생의 목표이자 희망입니다. 이렇게 하면 아들이 결혼을 하기 전까지는 나름대로 행복할 수 있지만, 아들이 커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서부터 갈등이 표면화되기 쉽습니다. 자신의 아이가 위축되고 소심하다고 생각하는 부모는 자녀가 당혹스러운 경험을 하면 더 소심해질까봐 항상 미리 조심하고 아이를 싸고돌게 됩니다. 하지만 부모가 원하는 것과는 반대로 이런 아이는 성장한 후에도 계속해서 위축되고 소심하고 겁에 질려있게 됩니다. 반면에 어떤 부모는 한 단계 한 단계 점차적으로 아이가 세상과 조금씩 더 접촉하도록 지속적으로 용기를 북돋아줍니다. 연구결과 이 아이들은 나중에 훨씬 적극적인 사람이 된다고 합니다. 선천적으로 겁이 많은 아이조차 부모가 두려움을 정복하도록 용기를 북돋아주고, 다양한 도전을 스스로 해결하도록 할 때 더 잘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종종 듣는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요즘 아이들은 중·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자기 옷을 빨거나 자기 방을 청소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배가 고파도 라면 하나 끓여 먹을 줄 모르고, 자기 옷을 다림질하거나 예금 통장을 관리할 줄도 모르는 상태에서 20대를 맞이한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부모와 함께 살며, 심지어 직업을 갖게 되더라도 부모에게 집세를 지불하거나 집안일을 거드는 경우도 거의 없다. 서른이 가까워져 결혼을 하게 되더라도 부모로부터 경제적인 도움을 받으면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다. 이것이 다 큰 자녀를 아기 취급하는 현상이다.” 부모와 선생이 아이에게 과도하게 친절하고 관심을 보이면, 자녀들의 눈물과 떼쓰는 행동에 쉽게 굴복하게 됩니다. 따라서 자녀들을 지나치게 보호하게 되며 결국 자녀들이 새로운 것에 도전하거나 혼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무의식적으로 빼앗게 됩니다. 자녀를 기죽이지 않고 자존심을 높이려는 부모의 의도는 좋습니다. 의도가 아무리 좋았어도, 아이의 사소한 행동에 일일이 보상하는 것은 자녀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는 자녀로부터 갈등과 성취의 즐거움을 박탈하고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아이로 만드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자녀가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능력을 넘어서는 일을 하도록 격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출생부터 대략 18개월에 이르기까지 유아의 욕구는 일관성 있게 충족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욕구 충족 과정 중에도 대략 12개월이 지나면서부터는 일부분이라도 만족을 지연시키는 학습이 필요합니다. 이를 통해 자신을 키워주는 사람들과 자신이 분리된 존재라는 사실을 알아야 하고, 원하는 것을 항상 손에 넣을 수 없다는 사실도 알아야 합니다. 아이는 관심을 받고 있음을 알아야 하지만, 인생길이 울퉁불퉁하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 153 기도 요원들에게 (2020. 6. 29.) -최영기 목사님의 메일
(사모님의 소천소식을 알려오신 최목사님의 메일을 성도들 모두와 공유합니다.) 내년이면 우리 결혼 50 주년입니다. 그런데 아내가 오늘 6 월 29 일 새벽 3 시 50 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1 년 더 있으면 금혼식인데, 만 73 세로 천국으로 갔습니다. 5월 초부터 암이 온 몸에 퍼진 증세가 나타나자 세상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감지하고, 아내는 가사를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6월 초에 의사로부터 2~3 주 밖에 남지 않았다는 말을 들을 후에는 휴스턴 서울교회 안수 집사님들, 가깝게 지내던 친지들을 집에 불러 작별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임종이 가까워졌다고 느꼈을 때, 아들 딸 가족을 불러서 회고담을 나누고 당부의 말을 하였습니다. 예수님 잘 믿다가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는 할머니의 부탁이 손주들 마음에 깊이 각인되었을 것 같습니다. 우리 내외는 침대에 나란히 누워서 옛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감정 표현이 힘든 아내가, 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다. 제가 일생 동안 듣고 싶어 했던 말을 한꺼번에 다 들려주었습니다. ^^; 자기가 절대 예수 믿을 수 없는 사람인데, 저와 결혼한 덕분에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이 가장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이러는 가운데 아내 몸에서 서서히 힘이 빠져 나가면서 가물가물하던 촛불이 꺼지듯이 조용히 운명했습니다. 복부와 흉부가 종양으로 차 있다시피 했는데도, 신기하게 운명할 때까지 통증이 없었습니다. 153 기도 요원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확실하게 응답하셨습니다. 아내 장례식은 휴스턴 서울교회 교회장으로 드려집니다. 아내는 (저도) 화장할 것이기 때문에, 관 없이 영정 사진만 놓고 장례 예배를 드릴 것입니다. 예배 순서도 아내와 함께 미리 짰습니다. 아내는 장례 예배가 천국 간 것을 축하하는 축제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장례 예배에서 드릴 찬송도 밝은 것으로 아내가 손수 선정했습니다. 복장도 밝은 색깔의 복장을 입어 달라고 조객들에게 부탁했습니다. 아내는 장례식에 배열된 조화가 분위기를 해친다고 한탄을 했습니다. 그래서 꽃을 좋아하는 한 친구분에게 꽃 장식을 이미 부탁했습니다. 따라서 모든 화환은 사절이고, 배달되어도 장례 식장에 배치하지 않습니다. ^^; 장례비용도 교회에서 부담하기 때문에 조의금도 사절합니다. 장례 예배는 휴스턴 시간으로(CST) 7 월 1 일(수) 저녁 7 시 30 분에 있습니다. 온라인으로 중계 되는데 참석하실 분들은 다음 주소에 들어오시면 시청 안내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한국 시간으로는 7 월 2 일(목) 오전 9 시 30 분입니다. 최영기 목사 “최 사모가 통증 없이 천국 가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 양보하는 삶에 대한 다른 생각
“양보”라는 말이, 국어사전에 의하면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여 자기의 주장이나 생각을 굽히고 그의 의견을 좇음”이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나도 이만큼 손해 볼 테니까 너도 이만큼 손해 봐라.’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상대방이 손해를 본 것보다 내가 손해 본 것이 더 커 보이는 것이 문제입니다. 떡은, 내 떡보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데, 손해는 내 손해가 커 보인다는 말이지요. 그러므로 서로 양보를 하고 살면, 일반적으로 ‘손해감정’을 가지고 살아가게 됩니다. 결혼식에서 많은 주례자들이 “지금까지는 자기 마음대로 살아왔지만, 앞으로는 남편과 아내가 서로 양보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는 말을 합니다. 그런데 결혼생활을 하면서 남편과 아내가 서로 양보를 하면서 살면, 서로 ‘손해감정’을 가지고 살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억울하기도 하고 분하기도 한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양보를 하고 살기보다는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 것을 권합니다. 두 사람이 예수님을 닮아가다 보면, 서로 가까워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삼각형에서 밑에 있는 두 꼭짓점이, 위에 있는 꼭짓점을 향해 갈수록, 서로 가까워지는 원리와 같습니다. 참고 인내하며 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부간에 갈등을 하고 있는 경우나, 두 사람이 싸움을 할 때에도 “네가 참아라.” 하는 말을 자주 하게 됩니다. 그런데 참으면, 참는 만큼 억울하고 속에서 분노가 올라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상대방이 잘못을 했는데, 왜 내가 참아야 하느냐는 억울한 마음이 솟아오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인내하고 참는 대신에,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이 훨씬 지혜로운 삶입니다. 참고 인내해서 화를 내지 않는 것과,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때문에 화를 내지 않는 것과는 커다란 차이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결혼식 주례에서 들은 말 중에 어이없는 말이 있었습니다. 신혼 때 많이 싸우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래야 모난 것이 깨어져서 둥글둥글 살게 된다나요. 아마 그 주례자는 신혼 때 부부 간에 갈등이 생기면 말을 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말을 하지 않고 사는 것보다는 싸움을 하는 편이 낫습니다. 왜냐하면 싸움은 ‘과격한 의사소통’이기 때문입니다. 의사소통을 하지 않는 것보다는 과격하게라도 의사소통을 하는 편이 나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혼 때 싸움을 하면, 모난 것이 깨어져서 둥글둥글하게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깨지지 말아야 할 부분들이 더 깨어져서 더 날카롭게 됩니다. 뿐만 아닙니다. 결혼 초기에 갈등이 생길 때마다 싸움을 하면, 그것이 그 가정의 문화가 되어 이야기할 때마다 으레 대화가 아니라 싸움을 하게 됩니다. 자녀들을 대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들에게 소리를 지르다보면 점점 소리가 커지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자녀가 멀리 있으면, 잘 들리지 않으니까 소리를 질러야겠지요. 그러나 가까이 있는 자녀에게 소리를 지르는 것은 인격을 무시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목소리를 키우지 말고, 자녀를 키우십시오.” 다시 정리합니다. 양보를 하며 살면, 서로 ‘손해감정’ 또는 ‘피해감정’을 가지고 살게 됩니다. 양보를 하기보다 주님을 서로 닮아 가십시오. 그러면 두 사람 사이가 서로 가까워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참고 인내하며 살면, 억울하거나 분한 감정을 가지게 됩니다. 그보다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신혼 때 많이 싸우면, 싸우는 것이 그 집의 문화가 되어버립니다. 말을 하지 않는 것도 싸움의 일종입니다. 부부 사이에 의사소통은 필수입니다. 목소리를 높이지 말고 인격적으로 대화하는 법을 많이 연습하시기 바랍니다.
- 끝까지 존경받는 평신도 지도자
(저와 여러분이 사랑하고 존경하는 가정교회사역원의 최영기 목사님께서 휴스턴서울교회 목회서신에 “끝까지 존경받는 평신도 지도자”라는 제목으로 올리신 글입니다. 존경받는 지도자가 될 수 있는 항목에 대해 간결하게 정리가 잘 되어 있어서 우리 교회 성도들에게도 소개합니다.) 많은 교회에서 당회나 안수 집사회가 교회 발전의 주체가 되기보다는 장애물이 되고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장로님이나 안수 집사들이 교인들에게 존경의 대상보다는 빈축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평신도 지도자로서 교회 부흥의 원동력이 되고, 교인들에게 존경받는 지도자로 머물러 있을 수가 있을까요? 제가 평신도와 목회자로서 오랫동안 사역하면서 얻은 결론을, 교회 창립 기념일과 집사 안수식을 맞아 여러분들과 나눕니다. 첫째로, 존경받는 평신도 지도자가 되려면 사역 현장에서 뛰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 안수 집사님들이 성도들에게 존경받고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이유는 현장에서 뛰기 때문입니다. 솔선수범하여 사역의 현장에서 궂은일을 마다않기 때문에 교인들의 존경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역 최전방에서 물러나서 남을 지도하는 역할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위기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성도들에게 말만 하고 몸을 아끼는 사람으로 인식되어 존경을 잃습니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사역에서 완전히 물러나는 것이 낫습니다. 둘째로, 동역자들의 기를 살려주어야 합니다. 지도자의 가장 큰 역할 중의 하나는 동기부여를 해주는 것입니다. 동기부여는 인간의 기를 살려줄 때에 이루어집니다. 사람은 경험해 보지 못했거나 익숙하지 못한 일을 접하게 되면 거부 반응을 보이게 됩니다. 이런 성향은 나이가 들수록 더 커집니다. 나이 들은 후에도 존경 받는 리더로 남아 있고 싶으면, 젊은이들이 열정을 갖고 무엇을 해보려고 할 때에 사소한 것을 문제 삼지 말고 적극적으로 밀어주어야 합니다. 셋째로, 담임 목회자의 적극적인 협조자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어려움을 겪는 가장 큰 이유는 담임 목회자와 평신도 지도자 간의 갈등 때문입니다. 갈등의 궁극적인 책임은 담임 목사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담임 목사가 부족하더라도 성경에 명기되어 있는 죄를 짓지 않는 한 존중해주고, 100% 동의할 수 없는 의견이라 할지라도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면 목사는 점점 괜찮은 사람으로 변해가고 사역의 열매는 점점 커갑니다. 제 사역에 열매가 있었던 것은 우리 교회 집사님들이 이런 자세로 저를 대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담임 목사의 실수나 잘못을 지적해 주는 것을 사명으로 아는 장로나 안수집사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목회자를 비판하고 제동을 걸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목사의 측근이 되어 동역하는 평신도 지도자들은 담임 목회자를 보호해 주고 지원해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평안 가운데 사역이 이루어지고 자신들은 존경 받는 지도자가 됩니다.
-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This, too, shall pass away) – 옮겨 적은 글
어느 날, 다윗 왕이 반지가 하나 갖고 싶었다. 그래서 반지 세공사를 불러 그에게 말했다. “나를 위한 아름다운 반지를 하나 만들되, 내가 승리를 거두고 너무 기쁠 때에는 교만하지 않게 하고, 내가 실망에 빠지고 시련에 처했을 때엔 용기를 줄 수 있는 글귀를 넣어라.” “네 알겠습니다. 폐하.” 세공사는 그 명령을 받들고 멋진 반지를 만들었다. 반지를 만든 후, 어떤 글귀를 넣을지 계속 생각했지만… 좀처럼 다윗 왕이 말한 두 가지 의미를 지닌 좋은 글귀가 떠오르지 않았다. 고민하고 고민해도 마땅히 좋은 글귀가 떠오르지 않아, 다윗 왕의 아들인 지혜의 왕 솔로몬을 찾아갔다. “왕자시여, 다윗 왕께서 기쁠 때 교만하지 않게 하고, 절망에 빠졌을 때 용기를 줄 수 있는 글귀를 반지에 새기라고 하시는데, 어떤 글귀를 새기면 좋겠나이까?” 솔로몬이 한참 생각한 후 말했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This, too, shall pass away.) 지혜서 ‘미드라쉬”에 나오는 유대인들이 항상 즐겨 읽는 구절이다. ————————————————————— 큰 슬픔이 거센 강물처럼 네 삶에 밀려와 마음의 평화를 산산조각 내고, 가장 소중한 것들을 네 눈에서 영원히 앗아갈 때면 네 가슴에 대고 말하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끝없는 힘든 일들이 네 감사의 노래를 멈추게 하고 기도하기에도 너무 지칠 때면, 이 진실의 말로 하여금 네 마음에서 슬픔을 사라지게 하고, 힘겨운 하루의 무거운 짐을 벗어나게 하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행운이 너에게 미소 짓고 하루하루가 환희와 기쁨으로 가득 차 근심 걱정 없는 날들이 스쳐갈 때면 세속의 기쁨에 젖어 안식하지 않도록 이 말을 깊이 생각하고 가슴에 품어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너의 진실한 노력이 명예와 영광, 그리고 지상의 모든 귀한 것들을 네게 가져와 웃음을 선사할 때면, 인생에서 가장 오래 지속된 일도 가장 웅대한 일도 지상에서 잠깐 스쳐가는 한 순간에 불과함을 기억하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 랜터 윌슨 스미스 –
- 감동적인 순교의 현장
(짐 엘리엇에 대한 짧은 영상을 보다가 너무도 감동적이어서 화면을 멈춰가며 자막을 모두 기록해 보았습니다.) 1956년, 짐 엘리엇을 비롯한 다섯 명의 젊은이들은 남미의 에콰도르로 선교를 떠났습니다. 조그만 비행기를 타고 해변에 내린 이들이 와다니 족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준비를 한 지 닷새째… 선교본부에서는 이들에게서 소식이 없자 그들을 찾기 위해 비행기를 보냈습니다. 그때 그곳 해변에서 다섯 명의 청년들이 무참하게 살해된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런데 죽어있는 그들에게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손에는 총이 있었으나, 발사되지 않고 그대로 죽었던 것입니다. 출발 전 엘리엇이 어린 아들과 나눈 이야기입니다. “와다니 족이 공격하면 아빠는 막으실 거죠? 총을 쏠 건가요?” “아들아, 우리는 그들에게 총을 쏠 수 없단다. 그들은 천국에 들어갈 준비가 안 되어 있잖니? 우리는 준비되어 있지만…” “아빠, 한 가지만 약속해 주세요. 딱 하나만.” “딱 하나만이라? 꼭 네 엄마처럼 말하는구나.” “만약 위험한 순간이 닥치면, 그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고 약속해 주세요.” “무슨 말?” “와다니 말로, 그 뜻은 나는 당신의 친구입니다. 당신의 진실한 친구.” 그 사건이 있은 후, 라이프지와 타임지는 이 사실을 보도하며 분노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낭비인가?” 한 기자가 짐 엘리엇의 아내에게 찾아가 인터뷰를 하면서 이런 말을 했을 대, 그녀는 기자를 똑바로 쳐다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낭비라니요? 남편은 어렸을 때부터 이 순간을 위해 준비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이제야 그 꿈을 이룬 것뿐입니다.”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 젊은이들의 아내 다섯 명은 자신의 어린 아이들을 안고, 남편이 순교한 그 나라를 다시 찾아갔습니다. 어느 날 와다니 족 추장이 부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누구이고 이렇게 애써 수고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부인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5년 전 당신들이 죽인 그 남자의 아내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 다시 오게 된 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그 후로 와다니 족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짐 엘리엇을 죽인 청년은 와다니 족의 목사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짐 엘리엇이 다녔던 위튼 대학교 기숙사에서 그의 일기가 발견되었는데, 그 일기장의 한 면에 이런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결코 잃어버릴 수 없는 것을 얻기 위해, 지킬 수 없는 것을 버리는 자는 절대 어리석은 자가 아니다.” 사람들은 그가 어리석다고 말했지만, 짐 엘리엇은 19살 때 이미 알았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생명을 향한 갈망이 결코 어리석은 것이 아님을. 전도는 결코 잃어버릴 수 없는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 재미있는 결혼식 주례
저는 어제 전주에서 결혼식을 주례하고 왔습니다. 제가 서울 다운교회를 담임하고 있을 때, 순천 강남중앙교회 담임목사님이신 최경학 목사님의 아들 최성필 형제가 서울에서 직장을 가지며 다운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목사님의 자녀들이 교회에 올 경우, 아무래도 제 아들이 목회자 자녀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여 제 큰 아들의 목장으로 연결을 시켜주었습니다. 저의 두 아들은 모두 목장을 섬기면서 조장으로 있습니다. 그 이후에 전주 기쁨넘치는교회 담임목사님이신 김영주 목사님의 딸 김하은 자매가 역시 서울에서 직장을 가지며 다운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하여, 제 큰 아들의 목장으로 인도되었고 이 두 사람이 같은 목장에서 지내는 동안에 마음이 서로 통하여 결혼을 하게 된 것입니다. 자주 들으신 대로, 결혼 배우자 대상 조건으로 말하는 것이 세 가지 있습니다. 3“ㅅ”입니다. 첫째는, 실력입니다. 제가 말하는 실력이란, 요즈음 말하는 스펙을 많이 쌓거나 학력을 쌓으라는 말이 아니라, 생활능력을 주로 말합니다. 가사능력도 여기에 해당됩니다. 생활능력이나 가사능력은 한 가정을 이끌어나가는 데 필수사항입니다. 둘째는, 성품입니다. 전자제품을 선전할 때에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고 말하는 것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배우자는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합니다.” 그러면 어떤 성품을 주로 보아야 할까요? 갈라디아서 5:22-23 말씀대로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보아도 좋습니다.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함, 신실, 온유, 절제.” 마태복음 11:28-29에서 예수님께서 자신에 대해 말씀하신 것처럼, “온유와 겸손”한 성품을 보아도 좋습니다. 배우자를 존귀하게 여기며 배우자가 성공할 수 있도록 섬길 줄 아는 성품이라고 정해도 좋습니다. 셋째는, 신앙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신앙이란, 교회를 다니는 정도를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마음속에 모시지 않고 교회를 다니면, 그 사람은 크리스천이 아니라 교인일 뿐입니다. 심하게 말하자면 나중에 천국에서 만나지 못할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마음속에 모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신앙을 말합니다. 더 나아가 나와 동일한 성경적 가치관을 가지고 사는 신앙이면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사실 부부가 같은 가치관을 가지고 살지 않으면 힘이 들게 됩니다. 나는 다른 사람을 돕는 삶을 살고 싶은데, 배우자는 자기 가정 중심적인 삶을 살려고 하면 마찰이 생기게 됩니다. 나는 꾸준히 자기발전을 하면서 살고 싶은데, 배우자는 안주하며 편하게 살려고 해도 문제가 생깁니다. 나는 하나님께 헌신하여 살고 싶은데, 배우자가 그런 삶을 살고 싶지 않아도 갈등이 생기게 됩니다. 아직은 우리 교회가 규모가 작아서 그리 쉽지는 않겠지만, 같은 교회에서 같은 설교를 들으면서 같은 성경적 가치관을 가지게 된 사람들 가운데서 배우자를 만나게 되는 것을 추천합니다. 저희 부부도 같은 선교단체에서 위의 3“ㅅ”을 확인하고 결혼을 하였습니다. 제 두 아들도 같은 다운교회 안에서 같은 3“ㅅ”을 확인하고 배우자를 만났습니다. 어제 제가 결혼식 주례를 하여 부부가 된 형제 자매도 역시 위의 3“ㅅ”을 한 교회 안에서 확인하고 결혼을 하였습니다. 우리 성도들 중에 이미 결혼을 하신 부부들은 이 세 가지를 잘 갖춰나가기 바랍니다. 그리고 앞으로 결혼을 하실 분들은 이 세 가지를 갖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도록 기도할 뿐만 아니라, 자신도 이 세 가지를 잘 갖추어나갈 것을 권면해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