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S
말씀
- 신앙, 성품, 실력잠언 1:1-6잠언은 서두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어수룩한 사람’을 슬기롭게 하여주며, 젊은이들에게 지식과 분별력을 갖게 해주는 글입니다. ‘어수룩한 사람’이란 도덕적 방향감각이 없어서 악으로 기울어질 수 있는 단순한 사람을 일컫는다고 덧붙여 설명해 놓았습니다. 처음에는 이 말에 거부반응이 생길지 모르지만, 사실 우리 모두는 상황이 되고 기회가 주어지면 악으로 기울어지기 쉬운 사람들입니다. “돈에는 장사가 없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들은 그런 이유에서 나온 말들일 것입니다. 잠언은 어수룩한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신앙과 성품과 실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학식을 더해주고 지혜를 얻게 해주는 글들입니다. 1. 신앙 세상에는 위험한 것도 많고 우리를 유혹하는 것도 많습니다. 분명한 기준이 없으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도 정의와 공평과 정직을 지혜롭게 실행하기 어려운 세상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더구나 우리 안에는 죄의 성품이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삶의 기준으로 삼지 않으면, 그야말로 “자기 소견에 좋은 대로” 살게 됩니다.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입니다. 우리는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의뢰하고 우리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서 주님을 인정하면, 주님께서는 우리가 가는 길을 곧게 하실 것을 약속해주셨습니다. 2. 성품 잠언에서 가장 많이 말하고 있는 성품은 정직, 근면, 긍휼입니다. 오래 전에 “정직하면 살 수 없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정직해야 살 수 있다.”는 세상을 우리가 앞장서서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또한 게으르지 말고 근면해야 합니다. 문짝이 돌쩌귀에 붙어서 돌아가듯이 게으른 사람은 침대에만 붙어서 뒹군다고 합니다. 아주 게으른 사람은 밥그릇에 손을 대고서도, 입에 떠 넣기조차 귀찮아한다고 합니다. 게으른 사람의 특징은 일을 하지 않을 핑계가 많은 것입니다. 우리는 오히려 근면하여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을 드러낼 수 있는 가장 좋은 성품은 긍휼을 베푸는 것입니다. 궁핍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힘이 없는 사람들을 붙들어주고 다른 사람을 성공시켜 주는 성품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3. 실력 사람은 많은데 쓸 만한 사람은 드물다는 말들을 많이 합니다. 회사에서는 업무능력이 있는 사람, 아내를 맞이할 때는 가사능력이 있는 사람, 선교사를 내보내고자 할 때는 선교능력, 목회자를 찾을 때는 목회능력, 그리고 가장에게는 생활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실력이 있는 사람과 함께 일하고 싶어 할 것입니다. 실력을 갖추려면 성실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혜롭게 일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자기 일에 능숙한 사람이 되어야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특히 악한 사람이나 유혹을 하는 사람에게 이용을 당하지 않도록 주의하며, 분별력을 가지고 사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잠언 31장은 신앙, 성품, 실력, 이 세 가지를 모두 갖춘 현숙한 여인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경외하는 아내를, 남편은 진심으로 믿으며 가난을 모르고 삽니다. 한 손은 펴서 가난한 사람을 돕고, 다른 손은 펴서 궁핍한 사람을 도울 정도로 성품도 좋습니다. 자신감과 위엄이 몸에 배어있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없습니다. 집안일을 두루 살펴보고, 일하지 않고 얻은 양식은 먹는 법이 없습니다. 자식들도 모두 일어나서 어머니 업적을 찬양하고 남편도 아내를 칭찬합니다. 특히 주님을 경외하는 아내를 칭찬하고 있습니다.
- 찬양, 자백, 감사, 기도시편 150:1-6시편은 보통 ‘다윗의 시’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시편 150편이 모두 다윗이 노래한 시는 아닙니다. 다윗이 노래한 시는 모두 73편입니다. 작가가 미상인 시도 50편에 달하는데, 그 중에는 다윗이 썼을 것으로 짐작되는 것도 있습니다. 시편은 대부분 하나님께 드리는 것으로서, 대개 찬양, 자백, 감사, 기도의 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기억하기 좋게 찬양(Adoration), 자백(Confession), 감사(Thanksgiving), 기도(Supplication)의 영어 첫 자를 합하면 ACTS 즉 사도행전이 됩니다. 1. 찬양(Adoration)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말은 쉽게 말해서 “하나님을 칭찬한다”는 말입니다. 칭찬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해주는 것으로 선입관을 가지는 경우가 많은데, 아랫사람도 얼마든지 윗사람을 칭찬할 수 있습니다. 하늘 웅장한 창공을 지으신 하나님, 더없이 위대한 일을 행하신 하나님은 우리가 가진 모든 악기를 가지고 찬양을 하여도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영원하시므로 하나님은 영원히 찬양을 받으실 분이십니다. 다윗은 “내가 평생토록 주님을 찬양하며, 내가 살아있는 한, 내 하나님을 찬양하겠다.”고 하였습니다. 2. 자백(Confession) 자백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죄라고 말씀하시는 것에 대해서 동일한 마음으로 시인하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자백은 자신의 죄를 머리로 인정할 뿐만 아니라, 마음으로 죄를 지은 사실을 슬퍼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는 같은 죄를 짓지 않을 것을 의지적으로 결단하여야 합니다. 또한 다른 사람에게 용서를 구할 것은 용서를 구하고, 다른 사람에게 변상해야 할 것을 변상하는 일이 따라야 합니다. 다윗은 “내 죄악을 말끔히 씻어주시고, 내 죄를 깨끗이 없애 주십시오.” 하며 자백을 하였습니다. 3. 감사(Thanksgiving) 하나님께서 내게 베풀어주신 은혜에 대해 우리는 감사를 드립니다. 다윗은 부족함이 없도록 공급해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죽음의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주님께서 함께 하시며 보호해주시는 하나님께서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선하심과 인자하심으로 인도해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시편 50편을 노래한 아삽도 감사로 제물을 바치는 사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이라고 노래했습니다. 특별히 시편 136편을 이루고 있는 26절은 하나같이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영원한 것에 대하여 감사하고 있습니다. 4. 기도(Supplication) 찬양, 자백, 감사가 모두 기도이지만, 여기에서 말하는 기도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하는 기도와 나 자신을 위해서 하는 기도를 말합니다. 다윗이 한 기도 중에 시편 86편은 “주님, 나에게 귀를 기울이시고 응답하여 주십시오.”로 시작합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다니며 목숨이 위태로울 때 이 기도를 가장 많이 했을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선지자 사무엘은 백성들이 잘 되도록 기도했습니다. 자신이 기도하는 일을 그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이라고까지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구원의 감격 가운데 감사하며 기뻐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 자체가 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 대하여 “이 백성은, 나를 위하라고 내가 지은 백성이다. 그들이 나를 찬양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재산, 가족, 자아욥기 42:1-6예수님께서, ‘이렇게 하면 내 제자가 된다.’고 말씀하신 곳이 세 군데 있습니다. 또한 ‘이렇게 하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고 말씀하신 곳이 세 군데 있습니다.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나… 미워하지 않으면(=덜 사랑하지 않으면)”(눅 14:26),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지 않으면”(눅 14:27),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으면”(눅 14:33)입니다. 가족과 자아(자기 자신)와 재산! 하나님께서 욥에게 내려놓도록 하신 것이 바로 세 가지입니다. 가족과 재산과 자아, 이 세 가지를 내려놓은 후, 욥이 고백한 것이 있습니다. “주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지금까지는 제가 귀로만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제가 제 눈으로 주님을 뵙습니다.”였습니다. 움켜진 것을 내려놓으면 주님을 뵐 수 있고,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1. 재산(돈)을 내려놓음 “그가 하는 일이면 무엇이나 복을 주셔서, 그의 소유를 온 땅에 넘치게” 하셨기 때문에 욥이 하나님을 경외한 것이라고, 사탄은 욥을 비난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가진 모든 것을 치시면, 그는 주님 앞에서 주님을 저주할 것이라고 욥을 헐뜯었습니다. 그러나 욥은 이 모든 어려움을 당하고서도 죄를 짓지 않았고, 어리석게 하나님을 원망하지도 않았습니다. 믿음을 가지면 무조건 가난해야 한다는 생각은 ‘금욕주의’입니다. 그저 성공하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은 ‘세속주의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복을 세속적인 성공과 일치시키면 ‘번영신학’에 빠지게 됩니다. 그런데 사탄이 욥을 비난한 것처럼, 세상에는 실제로 재산(돈)을 움켜쥐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돈이 우상이 되면, 결코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없으며, 사람보다 돈을 더 소중하게 여기고 반드시 범죄의 길에 들어서며 인생의 중심에 돈이 있게 됩니다. 2. 가족을 내려놓음 동방에서 으뜸가는 부자였던 욥은 재산을 다 내려놓을 뿐만 아니라, 자녀들을 모두 잃는 고통을 겪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슬픈 나머지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민 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리를 땅에 대고 엎드려 경배하며, “주신 분도 주님이시요, 가져가신 분도 주님이시니, 주님의 이름을 찬양할 뿐입니다.”(욥 1:21) 하였습니다. 이 모든 어려움을 당하고서도 죄를 짓지 않았으며, 어리석게 하나님을 원망하지도 않았습니다. 요즈음 가족, 그 중에도 자식이 우상이 되어있는 가정들이 많습니다. 자녀에게 잘 해주려고 맞벌이를 하느라 자녀를 돌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녀에게 가장 좋은 교육을 시키려고 가짜여권을 만들어 외국인학교에 보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바르게 교육시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자녀교육 때문에 진정한 자유를 잃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3. 자아를 내려놓음 재산과 자녀를 모두 내려놓고도 아직 내려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자아(자기 자신: Ego)였습니다. 욥은 발바닥에서부터 정수리에까지 악성종기가 나서 고생을 하는 어려움을 당하고서도, 말로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욥을 찾아와서 측은하게 대하고 죄인 취급을 하는 친구들과 엘리후 앞에서 자존심이 몹시 상했습니다. 때로는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기도 했고, 때로는 의로운 자신을 치시는 것 같은 하나님의 지혜를 의심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욥은 재산, 가족, 그리고 자아까지 모두 내려놓았습니다. 그러자 욥의 눈이 열렸습니다. 주님의 계획이 어김없이 이루어지는 것도 깨닫고, 자기주장을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잿더미 위에 앉아서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제가 제 눈으로 주님을 뵙습니다.” 고백하였습니다. 내려놓으면 보입니다. 내려놓으면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 모르드개, 하만, 에스더에스더 4:1-16스룹바벨, 에스라, 느헤미야는 포로 되었던 땅에서 유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남은 자들”이었습니다. 모르드개와 에스더는 포로 된 땅에 남아있던 자였습니다.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가 하나님께서 “남은 자들”을 어떻게 보호하시고 그들 가운데 역사하셨는가를 기록한 책이라면, 에스더서는 포로 된 땅에 남아있던 자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비록 고국에 돌아가서 성전과 성벽을 재건하는 일에 드려지지 않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저버리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계속 돌보셨습니다. 구약의 역사는 에스라서의 기록으로 끝이 납니다. 그러나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으시고,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역사는 계속될 것입니다. 1. 모르드개 모르드개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유다 왕과 그의 백성을 포로로 끌고 왔 을 때에 함께 잡혀온 사람으로서 궁중 일을 맡고 있었습니다. 유다인들을 지배하고 있는 페르시아의 하만은 지위가 높아질 대로 높아져서 매우 교만해 있었습니다. 모르드개는 그에게 꿇어 절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에 분노한 하만은 모르드개와 모든 유다인들을 멸할 수 있도록 왕으로부터 허락을 얻었습니다. 이 사실을 안 모르드개는 그 옷을 찢고 대성통곡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왕비가 된 에스더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왕에게 나아가 민족을 위하여 간절히 구하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으로 행했던 모르드개에게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는 왕 다음으로 실권을 가지게 되었고, 유다 사람들 사이에게 존경을 받았습니다. 2. 하만 하만은 왕에게 등용이 되어, 큰 벼슬을 얻고 다른 대신들보다 높은 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왕은 대궐 문에서 근무하는 신하들에게 하만이 드나들 때마다 모두 꿇어 엎드려 절을 하는 대우를 하도록 명령을 하였습니다. 절을 하는 것이, 인사 정도가 아니라, 거의 신을 모시듯 했던 모양입니다. 하만은 자기에게 절을 하지 않는 모르드개와 모든 유다인들을 멸할 계획을 추진하였습니다. 그는 높은 장대를 세우고 모르드개를 거기에 달 계획을 세웠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멸망할 위기에 처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에스더를 사용하셔서 하만의 계획이 물거품으로 돌아가게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모르드개를 달려고 했던 장대에 하만이 달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유다인들을 죽이려고 했던 민족들이 오히려 진멸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3. 에스더 에스더서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지 않고, 모르드개나 에스더가 기도했다는 말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에스더서는 하나님의 섭리를 가르쳐 줍니다. 모르드개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지만 에스더는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왕의 부름이 없이는 왕의 내실까지 들어갈 수 없으며, 만약 그것을 어기는 경우에는 죽임을 면치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모르드개는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으로든지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이 끔찍한 재앙을 바꾸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에스더와 그 집안은 멸망을 벗어나지 못할 것을 명심하게 하였습니다. 에스더는 자신과 유다인이 처한 상황을 올바로 이해하고 결심을 하였습니다. “죽으면 죽으렵니다.” 이것은 무모한 죽음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바른 믿음입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헌신을 할 수 있는 믿음이 필요한 때입니다.
- 성전, 율법, 성벽에스라 1:1-4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백성들이 오랜 유랑생활 끝에 고국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중 에스라서의 앞부분(1-6장)에서는 스룹바벨의 인도 하에 본국으로 돌아가는 이야기와 성전이 재건되는 장면을, 뒷부분(7-10장)에서는 에스라의 인도 하에 본국으로 돌아가는 이야기와 개혁을 하는 역사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는 백성들이 하나님의 율법으로 돌아오도록 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고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7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택함을 받은 백성들에게 회복시켜 주신 것은 성전, 율법, 성벽, 세 가지였습니다. 지금도 우리 공동체가 힘써야 할 일은, 하나님 중심의 예배, 말씀 중심의 제자훈련, 성도들을 섬김입니다. 1. 스룹바벨을 통한 성전 재건 하나님의 선택함을 입은 백성들이 바빌로니아 포로 후에 고국으로 돌아오는 일은 유다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주제입니다. 이것은 고레스 왕이 태어나기 200여 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에 의해 예언된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서 하신 말씀을 성실하게 이루시려고,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셨습니다. “유다에 있는 예루살렘에 그의 성전을 지으라고 명하셨다.”고 하면서, 고레스는 온 나라에 명령을 내렸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사람은 유다에 있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성전을 짓고, 그 이웃에 사는 사람이 도와주고 재물과 성전에 바칠 자원예물도 들려서 보내도록 하여라.” 하나님의 백성들은 성전에서 제단을 쌓고, 주님께 번제를 드리고, 절기를 지켜야 할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도록 지으신 공동체입니다. 2. 에스라를 통한 율법 회복 에스라가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때, 그는 그곳의 모든 상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악화된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이방 사람들과 서로 결혼하며 그들로부터 배운 악습을 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러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떠는 자는 에스라에게로 모여들었고, 에스라는 너무 마음이 아파서 머리를 뜯고 옷을 찢으며 몹시 슬퍼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애절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에스라는 말씀을 연구하고 준행할 뿐만 아니라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가르치기로 결심을 하였습니다.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라야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다고 예수님은 교훈해 주셨습니다. 말씀을 연구하여 알 뿐만 아니라 그 말씀대로 준행하기로 결심한 에스라의 결심이 바로 여러분의 결심이 되기 바랍니다. 3. 느헤미야를 통한 성벽 재건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도착하자마자 황폐된 것을 비밀리에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성을 재건하도록 힘을 북돋았습니다. 외적으로는 비웃음, 압력, 그리고 음모가 있었고, 내적으로는 쌓인 흙무더기, 두려움, 그리고 욕심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벽은 재건되었고 성문까지 달아졌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기 위한 섬김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고국으로 귀환한 공동체는 개혁되었습니다. 성전에 대한 헌신, 율법에의 순종, 절기를 철저히 지킴 등이 그러했습니다. 포로 전에 그렇게 극성이었던 우상숭배도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공동체 안에서 한 번의 개혁이 거룩한 삶을 지속적으로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진정한 개혁은 지속적인 개혁이어야 합니다. 지금도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의 중심의 예배, 말씀 중심의 제자훈련, 성도들을 섬기는 사역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 부활의 주님을 만나면 변화됩니다고전 15:1-11저는 선교단체에 있으면서 복음을 전하는 일에 드려지다가 늦게야 집을 샀습니다. 열 몇 차례 남의 집을 옮겨 다닐 때마다 저의 어머님은 같은 질문을 하셨습니다. “이건 또 얼마 주고 얻었냐?” 좀 늦었지만 아파트를 사서 집을 옮기고 난 후에 저의 집을 방문하신 어머님께서 똑같은 질문을 하셨습니다. “이번에는 집을 샀습니다.”라고 대답을 하여도 ‘웃기지 말라.’는 듯이 제 말을 믿지 않으셨습니다. 그 집이 내 집이라는 확실한 증거는 무엇이 있을까요? 첫째는, 집문서입니다. 둘째는, 집값을 치렀다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셋째는, 내가 그 집에서 당당하게 살고 있는 변화의 모습입니다. 부활에 대한 증거도 이와 똑같습니다. 1. 예언의 성취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가장 확실하고 변함이 없는 증거는, 부활 1,000년 전에 이미 예언(시편 22:16)되었던 그대로 성취되었다는 것입니다. 부활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탄생하실 장소, 동정녀 탄생, 사람들에게 거절당하시고 죄수들과 함께 십자가에 달리실 것을 이사야 선지자가 주전 700년에 예언하였습니다. 예루살렘에 승리의 입성을 하실 것, 친구에게 배반당하실 것, 손과 발에 못 박힐 것, 승천하실 것도 주전 1,000년에 예언된 대로 모든 것이 성취되었습니다. 세상에서 유명한 사람들은 그들이 유명해진 후에 그들을 신격화하기 위해 많은 말들을 만들어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탄생도 하시기 전에 모든 것들이 예언되었고, 예언된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예언된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을 믿습니다. 2. 역사적 사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인간으로 오셨고,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세상의 역사도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을 기준으로 하여 BC(기원전)와 AD(기원후)를 나눕니다. 이것은 기독교를 극심하게 반대하고 있는 사람들도 사용하고 있는 연대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베드로와 열두 제자에게 나타나셨고, 한 번에 오백 명이 넘는 형제자매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의 부활은 환각이나 착각으로 본 것도 아니요, 제자들이 시신을 훔쳐가서 부활사기극을 벌인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부활을 맹목적으로 믿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제자들은 충분히 의심하고, 충분히 불신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없었던 일을 있었던 일처럼, 부활신앙을 조작하지도 않았습니다. 부활사건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기에 굳이 꾸밀 필요가 없습니다. 3. 목격자들의 변화 교회를 박해했던 사울의 회심은 부활의 사실을 증명합니다. 사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났고, 그로 인해 부활을 선포하고 변증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지독하게 핍박했던 사람이 부활의 선포자로 변한 근본적인 이유를 오는 본문에서 바울이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신성을 의심했던 친동생 야고보의 회심도 부활을 확실하게 증명합니다. 가장 가까운 가족으로서 예수님의 성장과정을 지켜본 야고보는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이 메시아로서 우리 죄를 대속하여 죽는다는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부활의 증인으로 변했고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모습으로 야고보에게 나타나셨다는 증거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 숨어있기에 급급했던 제자들이 부활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면서, 그들은 겁 없는 전도자로 변했습니다.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고, 우리 삶 가운데 존재하시는 예수님을 만난 우리 성도들도 큰 변화를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 전심, 반심, 무심대하 16:7-14역대기는 유다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성전이, 유다 왕국 안에 있는 예루살렘 도시에 지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열왕기는 왕국이 분열된 이후의 이스라엘과 유다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지만, 역대기는 분열 이후의 유다의 역사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역대기는 아담의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예루살렘 멸망까지의 다윗 왕국의 주요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 다윗의 통치(전심)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하려면, 아담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아담,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유다, 다윗, 솔로몬, 그리고 여러 왕으로 이어집니다. 다윗이 이스라엘과 유다의 왕이 되어 통일왕국을 이루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모하는 다윗은 언약궤를 다윗성으로 모시고 왔습니다. 다윗은 “나는 백향목 왕궁에 살고 있는데, 주님의 언약궤는 아직도 휘장 밑에 있습니다.” 하며 성전을 짓기를 사모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아들이 성전을 짓도록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은 성막에 들어가 감사기도를 드리고, 아들이 성전을 지을 수 있도록 온갖 준비를 다했습니다. 다윗도 연약한 인간인지라 죄를 범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하나님을 사모하고 전심으로 주님의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키려고 힘썼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는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이다. 그가 내 뜻을 다 행할 것이다.”라고 칭찬해 주셨습니다. 2. 솔로몬의 통치(반심) 솔로몬이 왕이 된 후에, 하루는 언약궤를 모신 장막에서 번제를 바쳤습니다. 그날 밤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내가 너에게 무엇을 주기를 원하느냐?” 질문하셨습니다. 그때만 해도 그는 겸손하게 백성을 재판하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구하였습니다. 그는 성전을 건축하여 봉헌하였고,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많은 복을 주셔서 많은 업적을 남기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금하신 일들을 범했습니다. 많은 외국여자들을 후궁으로 맞아들여 마음을 이방 신들에게 빼앗겼습니다. 자기를 위하여 많은 금과 은을 쌓으면서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나뉘었습니다. 말과 병거를 이집트와 여러 곳에서 수입을 하여 사들였습니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지 못하고 반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긴 것입니다. “누구든지 세상과 친구가 되려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라는 말씀처럼, 그의 마음은 하나님으로부터 떠나게 되었습니다. 3. 왕들의 통치(무심) 솔로몬 이후에 나라는 남유다와 북이스라엘 두 나라로 나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유다의 대부분의 왕들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주님께서 보시기에 올바른 일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몇 왕은 처음에는 주님께서 보시기에 올바른 일을 행했지만, 말년에는 무심하여 주님을 찾지 않고 안타깝게 끝났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아사 왕입니다. 아사는 이방 제단과 산당을 없애고, 자기 할머니가 혐오스러운 아세라 목상을 만들었다고 해서 태후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했습니다. 그런데 아사 왕 36년에 바아사가 유다를 치러 왔을 때, 주님의 성전 창고에 있는 모든 은과 금을 벤하닷 왕에게 보내어 도움을 청했습니다. 이를 지적한 하나니 선지자를 감옥에 가두고, 발에 병이 났을 때에도 주님을 찾지 아니하고 의사만 찾았습니다. 그 후의 왕들도 고집을 부리며, 조금도 뉘우치지 않고,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고, 끝내 성전이 불타버리게 되었습니다.
- 통일왕국과 분열왕국왕상 11:9-13약속하신 약속의 땅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갔을 때, 그들이 어떻게 할 것을 하나님께서 미리 내다보셨습니다. 그 중의 하나는, 그들이 주위의 다른 모든 민족같이 왕을 세우고 싶은 생각을 할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왕에 대한 지침을 미리 주셨습니다. 왕은 군마를 많이 가지려 하지 말 것, 많은 아내를 둠으로써 그의 마음이 다른 데로 쏠리게 하지 말 것, 자기 것으로 은과 금을 너무 많이 모으지 말 것이었습니다. 솔로몬은 이 모든 말씀을 순종하지 않았고, 결국은 그 아들 대에 나라가 남유다와 북이스라엘 둘로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북이스라엘은 앗시리아의 포로가 되고, 남유다는 바빌로니아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1. 솔로몬의 통일 왕국 다윗이 세상을 떠나고 솔로몬이 왕위를 계승하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에게 무엇을 주기를 바라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솔로몬은 오래 사는 것이나 부유한 것이나 원수 갚는 것을 요구하지 아니하고, 다만 재판할 때에 옳은 것을 분별하는 지혜를 구했습니다. 이를 기쁘게 여기신 하나님께서 솔로몬이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화도 모두 솔로몬에게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약속하신 말씀대로,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셔서 히람과 솔로몬 사이에 평화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솔로몬의 건축자들과 히람의 건축자들과 그발 사람들이 돌을 다듬었고, 성전을 건축하는 데 쓸 목재로 석재를 준비하였습니다. 솔로몬은 주님의 언약궤를 성전으로 옮기고, 왕과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이 주님의 성전을 봉헌하였습니다. 2. 왕국의 분열 이러한 솔로몬에게도 약점이 있었습니다. 그는 외국여자들을 좋아하여, 많은 외국여자를 후궁으로 맞아들였습니다. 그의 재산은 이 세상의 그 어느 왕보다 훨씬 뛰어났습니다. 말과 병거는 이집트와 여러 곳에서 수입을 하여 사들였습니다. 끝내 주님으로부터 “내가 반드시 네게서 왕국을 떼어서, 네 신하에게 주겠다.” 말씀하셨고, 그대로 되었습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은 부왕을 섬긴 원로들의 충고를 무시하고, 자기와 함께 자라고 자기를 받드는 젊은 신하들의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유다와 베냐민 지파를 제외한 열 지파는 여로보암을 따라 북이스라엘을 형성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로보암은 금송아지 상 두 개를 만들어 하나는 베델에 두고, 다른 하나는 단에 두어 섬기게 만들었습니다. 북이스라엘에 는 19명의 왕이 있었는데, 그 중 아합은 악하기로 유명한 왕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중에도 다윗의 혈통을 보존해 주시고, 다윗과 맺으신 언약을 신실하게 지켜주셨습니다. 3. 왕국의 멸망 북이스라엘의 처음 왕이었던 여로보암의 악행에 대해서는 “이스라엘로 죄를 짓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라는 말이 20회 이상이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북이스라엘에는 19명의 왕이 있었고, 250년을 유지한 후, 앗시리아의 지배하에 들어갔습니다. 요나, 아모스, 호세아가 그 당시에 이스라엘에게 예언을 하였습니다. 남유다에는 20명의 왕이 있었고, 그 중에는 아사, 여호사밧, 요아스, 히스기야, 요시야와 같이 큰 부흥을 일으킨 왕이 있었습니다. 남유다는 바빌로니아의 포로가 되는 것으로 끝이 나는데, 오바댜, 요엘, 이사야,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예레미야가 예언을 하였습니다.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다윗의 혈통을 보존하시고, 다윗과 맺으신 언약에 대하여 신실하게 이루어주셨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후손 중의 한 분이신 예수님께서 그의 왕좌에 앉으셨습니다.
- 성취의 봉우리에서 조심해야 합니다삼하 5:9-12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사울이 죽은 후, 다윗이 헤브론으로 올라가 유다 사람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의 나이 서른 살이었습니다. 그는 헤브론에서 일곱 해 여섯 달 동안 유다를 다스리고, 예루살렘에서 서른세 해 동안 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해 왕으로 기름부음을 하신 후 드디어 성취의 봉우리를 맞이한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자신의 왕권을 사용하여 부하를 죽이고 그의 아내를 자기의 아내로 삼는 죄를 범했습니다. 간음죄와 살인죄를 저지른 것입니다. 그 이후로 그의 삶은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어느 사람이나 성취의 봉우리에 있을 때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1. 성취의 봉우리를 맞이한 다윗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죽은 사울과 요나단을 인하여 다윗은 진심으로 슬퍼하였습니다. 다윗은 주님께 여쭙고, 유다에 있는 헤브론으로 올라갔습니다. 유다 사람들이 찾아와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서 유다 사람의 왕으로 삼았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가 헤브론으로 찾아와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습니다. 다윗이 시온 산성을 점령하고 그곳의 이름을 ‘다윗 성’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계시므로, 다윗이 점점 강대해졌습니다. 다윗과 온 이스라엘 가문은 환호성을 올리고, 나팔소리가 우렁찬 가운데, 주님의 궤를 옮겨왔습니다. 그때에 다윗은 주님 앞에서 기뻐하며, 아내에게 업신여김을 당할 정도로 춤을 추었습니다. 다윗은 주님의 집을 짓기 원하였으나, 그것은 다윗의 후계자가 해야 할 일로 주셨습니다. 다윗은 또한 요나단을 보아서 그의 아들 므비보셋을 잘 보살펴주었습니다. 2. 죄를 짓는 다윗 다윗은 자기의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의 군인들을 출전시켰습니다. 어느 날 저녁, 다윗은 잠깐 눈을 붙였다가 일어나, 왕궁의 옥상에 올라가서 거닐다가 한 여인이 목욕하는 모습을 옥상에서 내려다보았습니다. 다윗은 여기에서 멈춰야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왕권을 남용하여 이 여인을 아내로 취하기 위하여, 그녀의 남편이었던 충성된 부하를 전쟁에서 죽게 만들었습니다. 성취의 봉우리를 맞이하고 선 줄로 생각될 때가 가장 조심해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자백을 받아들이시고 죄를 용서해 주시고 죽지는 않게 하셨지만, 다윗은 죄의 값을 치러야 했습니다. 밧세바와 다윗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죽는 일로 시작하여, 그의 집안에 재앙이 일어나고 그의 아내들도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자식들 간에 서로 죽이는 일이 일어나고 아들에게 반역을 당하는 일까지 당하게 되었습니다. 3. 고통의 길을 걷는 다윗 나를 따르는 사람들이나 내 자식들은 내 말을 듣고 배울 뿐만 아니라, 나의 행동과 나의 믿음을 보는 대로 배우게 됩니다. 다윗이 간음하는 죄와 살인하는 죄를 저지른 것을 아는 자식들과 사람들이 같은 죄를 저지르는 일들로 다윗은 고통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암논은 누이를 욕보이고, 압살롬은 형제인 암논을 죽이고 급기야는 아버지를 반역했습니다. 다윗의 부하 요압은 압살롬을 죽였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여러분은 스스로 원수를 갚지 말고, 그 일은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십시오.” 또한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마십시오… 육체의 욕망과 눈의 욕망과 세상 살림에 대한 자랑은 모두 하늘 아버지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켜서 면류관을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 성취의 봉우리를 바라보는 믿음삼상 24:1-7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였던 사무엘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 위에 왕을 세우라고 성화를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이 그런 요구를 할 것을 미리 내다보셨습니다.(신17:14) 하나님께서 그들을 인도하고 계시는데, 따로 왕을 구하는 것은 악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요구대로 첫 번째 왕인 사울을 왕으로 세워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 다윗을 왕을 두 번째 왕으로 세워주셨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고 쫓아다녔지만, 그가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사실로 인하여 다윗은 끝까지 사울에게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봉우리 너머에 있는 성취의 봉우리를 볼 수 있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1. 하나님의 사람 사무엘 사무엘은 그의 일생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비록 제사장들이 부패하고 타락했던 때였지만 사무엘은 그런 중에도 바르게 자랐으며, 주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경건한 소년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는 기도하는 사람이었고, 기도로써 그의 백성들이 승리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그는 백성들을 위해 기도하기를 쉬는 것조차도 죄로 여겼고 그러한 죄를 결코 짓지 않겠다(삼상 12:23)고 다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사무엘의 뒤에는 기도하는 어머니 한나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암담한 도탄 가운데 빠져있을 때에도 한나는 열심히 기도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아이로 사무엘을 키웠습니다. 자녀에 대한 우리의 교육열은 어떻습니까? 과연 하나님의 사람으로 키우는 것이 우리의 자녀교육의 우선순위인지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인간의 요구에 맞는 사울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죄를 짓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은 블레셋에게 패배를 당한 후에는 보호를 받기 위해 하나님을 찾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궤를 옮겨왔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셔야할 언약궤가 어느 틈에 우상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들은 또한 자기들을 통치해줄 세상의 왕을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하나님 외에 다른 왕 두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사울을 왕으로 세워주신 후에 그들이 죄를 깨닫고 고백하며 하나님을 섬기면 축복을 내리실 것을 사무엘은 확언해 주었습니다.(12:20-22) 그런데 사울부터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따른다고 하면서도 마음속에 사탄이 들어올 수 있는 자리를 남겨두면 사탄은 쉽게 들어올 수 있음을 주의해야 합니다. 3.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 다윗 이새의 아들 다윗은 룻과 보아스의 증손자로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여덟 형제 중에 막내 아들이었습니다. 그는 양치는 소년이었을 때 아버지의 양떼를 지킬 때부터 야수의 침입을 최선을 다해 막는 삶을 살았습니다. 다윗은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후 여러 차례 사울에게 죽임을 당할 뻔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몇 번의 좋은 기회가 있었음에도 사울에게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사울은 하나님께 기름부음 받은 자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려운 골짜기를 거치는 동안, 그는 사람을 다스리는 법을 배웠고 자신을 다스리는 법을 배웠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고난기를 거쳐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마침내 그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는 칭찬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왕으로 기름을 부으신 하나님은 언젠가 왕의 자리에 앉히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