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S
말씀
- 닮고 싶은 신약교회사도행전 11:19-26한국교회는 19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매우 빠르게 성장합니다. 2015년에 정점에 도달한 후부터는 다시 빠르게 감소하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외적인 성장에 치우친 나머지 내적 성숙에 대해서 소홀히 하였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교회를 성장시키는 힘이 무엇인지 신약교회를 통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예루살렘 교회 1) 예루살렘 교회의 시작과 성장(행2:41-47) 2) 예루살렘 교회의 벽 이방인에 대한 벽(행11:19), 헬라 유대인에 대한 벽(행 6:1), 율법의 벽(갈2:4,5:2-3) 2. 안디옥 교회 1) 도시 안디옥의 특징 시리아의 수도/전세계 3번째 큰 도시/동서양 상업과 교통의 중심지/다민족, 다국적 도시 2) 안디옥 교회의 설립과 성장 키프로스와 구레네 사람들(행11:20-21), 바나바의 파송(행11:22), 바울의 영입(행11:25-26) 3) 안디옥 교회의 특징 다국적 출신의 다양한 신앙 배경(행13:1), 성숙한 공동체(행11:27-30), 선교하는 교회 3. 한국의 안디옥 교회
- 성막에 담겨있는 하나님의 메시지레위기 1:1-9레위기는 이해하기 어렵고 제사를 드리지 않는 우리에게 굳이 알아야 할 필요가 없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레위기를 대충 읽거나 읽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레위기에는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하나님의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이 메시지는 구약과 신약을 연결하는 중요한 고리가 됩니다. 1. 제사의 종류 5가지 2. 제사의 6단계 3. 제물이 타는 냄새를 기뻐하시는 하나님? (레1:9, 레 22:28, 신 22:6) 4. 안수의 의미 (요 1:12) 5. 불완전한 구약의 제사 1) 반복해서 드리는 제사 (히10:2-4) 2) 가로막힌 지성소 (히 10:7) 6. 완전하고 영원한 제세를 드린 대제사장 예수 1) 대제사장 예수 (히 4:4) 2) 단 한번에 지성소로 들어가신 예수 (히 9:12) 3) 열린 지성소 (히 4:16) Options
- 광야에서 인도하시는 하나님민수기 9: 15~23광야에서 2백만 명이나 되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일 년이 넘도록 살아 있습니다. 이것이 가능하였던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살아남은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진영의 중심에 계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진영의 배치(민 2:2) 성막에 임하신 하나님의 영광(출 40:34-35) 1) 우리도 광야를 지나가려면 하나님을 삶의 중심에 모셔야 합니다.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면 *아버지가 되어 주십니다.(요 1:12) *길이 되어 주십니다. (요 14:6) *빛이 되어 주십니다. (요 12:46) *우리를 안고 가십니다. (신 1:31, 신 2:7, 신 29:5-6) 2) 하나님이 삶의 중심에 오시면, 삶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3) 삶의 변화는 너울이 벗겨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볼 때 일어납니다. (고후 3:18, 3:16) 2.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살아남은 것은 하나님께 순종하였기 때문입니다. 1) 모두 다 이해가 안 되는 상황에서도 순종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2) 순종은 하나님을 향한 신뢰의 표시입니다. (신 1:33)
- 다니엘과 같은 다음 세대다니엘 12:3느부갓네살의 첫 번째 침략에서 볼모가 되어 바벨론으로 잡혀간 다니엘은 약 90세까지 살면서 바벨론 왕국의 멸망도 보았고 또한 메대와 페르시아 제국이 설립되는 것도 보았습니다. 다니엘은 69년이란 긴 세월을 악이 가득한 궁전에서 지내면서도 흠이 없고 선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포로의 몸이었던 다니엘은 총리 자리에까지 올라가는 동안에도 항상 여호와 하나님 앞에 진실하였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비밀을 보여주십니다.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하신 몇 명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은 그를 “크게 사랑을 받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다음 세대들 가운데 다니엘과 같은 인물들이 많이 나올 것을 기대합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그들을 지도해야 할지 지혜를 얻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 지혜 있는 사람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자기를 더럽히지 않기로 작정하고 환관장에게 요청하였습니다. 열흘 동안 시험하여 채식을 주어 먹게 하고, 물을 주어 마시게 한 후에 왕의 진미를 먹는 다른 소년들의 얼굴과 비교해 보아서, 보이는 대로 처분해 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대단한 믿음과 용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니엘로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셨고, 왕의 진미를 먹는 다른 소년들보다 나아보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 최선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입니다. 물론 하나님을 경외하는 최선의 길을 택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장은 인간적으로 더 어려운 길을 걷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실제로 다니엘은 사자굴 속에 던져지기도 하였고, 그 친구들은 풀무불 속에 던져 넣음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능히 우리를 건져내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또한 ‘비록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임을 알아야 합니다. 2. 하늘의 밝은 빛처럼 빛날 사람 다니엘은 악이 가득 찬 궁전에서 수십 년을 지내면서도 아무 그릇함이나 허물이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포로의 몸이었지만 다니엘은 총리 자리에게까지 올라간 동안에도 항상 하나님 앞에 진실하였습니다. 왕이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에게 모든 일을 묻는 중에 그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 박수와 술객보다 십 배나 나은 줄을 알았습니다. 지혜 있는 그들은 하늘의 밝은 빛처럼 빛났습니다. 그들은 제대로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인을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우리는 어두운 빛이 될 수도 있고, 밝은 빛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맛이 있는 소금이 될 수도 있고, 맛을 잃은 소금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로운 사람은 세상에서 맛을 내고 부패를 방지하는 소금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세상 어둠을 밝히는 빛이 될 수 있습니다. 3. 많은 사람을 옳은 길로 인도하는 사람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는 은혜뿐만 아니라, 이 기쁜 소식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을 옳은 길로 인도한 사람은 별처럼 영원히 빛날 것이다.”라는 상급을 허락하셨습니다. 더 나아가 주님께로 돌아온 사람들을 하나님의 뜻을 좇아 신앙 가운데 잘 지도한 사람에게는 ‘변하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벧전 5:4)을 주실 것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변하지 않는 영원한 면류관을 추구하는 사람은 진정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가장 중요한 일은 사람들이 말씀 안에서 거듭나도록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사람이 온 천하를 소유했다 하여도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말씀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는 데에 이르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소원과 의지가 바로 우리 모두의 소원과 의지가 되기를 바랍니다.
- 찾고 먹이고 누이시는 하나님에스겔 34:11-16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의 두 번째 유다 침공으로 잡혀간 유대인 중에 에스겔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바벨론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선지자 사역을 시작할 때 그의 나이 30세였습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22년 동안을 낙심 속에 빠진 포로민들 가운데 가서 살며 예언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에게로 돌아오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간절한 소원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책에서 하나님의 중요한 메시지를 70번이나 읽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는 메시지입니다. 그만큼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이 하나님을 알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사람들이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는 데에 이르기를’ 바라십니다. 또한 그들을 위하여 하나님은 우리를 이 시대의 에스겔로 사용하기를 원하십니다. 1. 양떼를 찾으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양을 찾고 찾되, 즉 찾을 때까지 찾으시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의 목자들인 종교지도자들이 백성들에게 충실하지 못했기 때문에 양들은 여기저기로 흩어져 버리게 되었습니다. “양 떼가 흩어졌을 때에 목자가 자기의 양들을 찾는 것처럼, 나도 내 양 떼를 찾겠다. 캄캄하게 구름 낀 날에, 흩어진 그 모든 곳에서, 내 양 떼를 구하여 내겠다.”(12절)는 본문 말씀에는 양을 찾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간절한 소원과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은 죄인 하나를 찾는 기쁨을 이렇게 표현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죄인 하나가 회개하는 것을 하나님이 이렇게 원하고 좋아하시는데, 우리 주위의 죄인들을 회개하도록 돕는 일이 우리의 삶이 되어야할 일은 당연한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을 옳은 데로 인도해서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양떼를 먹이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남방 왕국인 유다에게 심판을 내리셨습니다. 느부갓네살은 예루살렘으로 침입하여 남방왕국의 중요한 인물과 다니엘, 에스겔을 포함한 귀족들 약 만 명을 포로로 붙들어갔습니다. 예루살렘 멸망의 날, 성벽은 무너져 내리고 집들은 불타버렸으며 백성들은 인질로 끌려갔습니다. 그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는 본토로 데리고 가서 그 땅 모든 거주지에서 먹이되 좋은 꼴로 먹이실 귀중한 약속을 해주셨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세 번째 비유가 하나님의 이러한 마음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되찾은 아들의 비유’로 구원받은 사람들의 복된 삶을 설명해 주신 이야기입니다. 죄인 하나가 회개하고 돌아왔을 때 하나님께서 이처럼 기뻐하시고 좋은 꼴로 먹이시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간절한 소원입니다. 3. 양떼를 누이시는 하나님 “내가 직접 내 양 떼를 먹이고, 내가 직접 내 양 떼를 눕게 하겠다.” 15절 말씀입니다. 선한 목자는 양들에게 부족함이 없도록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가 가진 막대기로 악한 짐승들을 쫓아버리며 물맷돌로 강한 짐승들을 쫓아버리기 때문에, 선한 목자 곁에 있는 양떼는 푸른 초장에 누워있을 수가 있습니다. 때가 되면 쉴만한 물가를 찾아 양떼를 인도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선한 목자이십니다. 잃어버린 자를 찾으시는 것이 선한 목자 되신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상한 자를 싸매어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병든 자를 강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선한 목자 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의 운전석을 원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그 옆자리에서, 예수님께서 주시는 좋은 꼴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우리를 찾고 먹이고 누이시는 하나님의 간절한 소원입니다.
- 고난 중 희망할 수 있는 은혜예레미야 애가 3: 19~26바벨론의 군대가 예루살렘 성벽을 포위하고 있을 때의 일이었습니다. 바벨론 군대에 의해 계속되는 팽팽한 포위공격으로 말미암아 예루살렘도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예레미야는 성전이 파괴되고 도시가 불타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에 의해 쓰인 애가는 예레미야서에 예언된 것과 같이 예루살렘의 멸망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예레미야의 영혼은 잡혀가는 그의 백성과 파괴된 거룩한 성을 보며 슬픔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그가 쓴 시 전부가 슬픔의 시만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괴롭히거나 근심하게 하는 것은, 그분(주님)의 본심이 아니다.” (3:33)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항상 하나님의 은혜가 빛날 수 있습니다. 1. 고난과 고통의 은혜 예레미야는 겉으로 보기에 이전의 태도나 행동과 반대로 보이는 하나님을 경험하면서 매우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빛 가운데 걷기보다는 어둠 속에서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마음속으로 곰곰이 생각하며” 오히려 희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죄 때문에 유다를 벌주셨지만 하나님께서 언약한 백성인 유다를 버리지 않으셨기 때문에 고난을 허락하셨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고통 가운데 있다면, 그 고통이 반드시 여러분의 죄 때문이라고 오해하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그럴 경우도 있겠지만, 굳이 죄 때문이라고 죄책감에 사로잡히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내게 여전히 관심을 가지고 계시니, 나를 여전히 사랑하시나보다.”는 믿음을 가지고 고통 가운데서 주님의 은혜를 누리십시오. 2. 사랑과 긍휼의 은혜 예레미야를 내리누르며 위협했던 절망을 밀어낸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이 다함이 없고 그 긍휼이 끝이 없기 때문이다. 주님의 사랑과 긍휼이 아침마다 새롭고, 주님의 신실이 큽니다.”(3:22-23)라는 주님의 사랑에 대한 고백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가 약속한 저주를 실행하시면서 동시에 남은 자를 지키시는 그분의 신실함 속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심판 그 자체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버리거나 포기하지 아니하셨다는 증거가 됩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는 멸망의 와중에서도 희망을 제시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언약의 백성에게 날마다 새로운 사랑을 공급해 주십니다. 이 사실이 예레미야로 하여금 “아침마다 새롭습니다. 주의 신실이 큽니다.” 하며 하나님을 찬양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끝없는 자비로 돌아가서 회복과 축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리십시오. 3. 기대와 희망의 은혜 우리가 고통과 고난 가운데 있을 때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를 괴롭히거나 근심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다.”(3:33)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재의 절망적인 상황에서 하나님을 향한 미래의 희망으로 옮겨갈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 믿음은 우리의 신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격에 대한 신뢰에서 나오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사람에게 고난주기를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고난 가운데 있다면, 하나님의 구원 즉 마침내 이루실 회복에 대한 소망으로 견디어내야 합니다. 고난이 유다로 하여금 되돌아오게 하려는 일시적 수단으로 주어진 것처럼,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더 친밀하고 하나님을 더 닮아가도록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에서 나온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 선지자의 소명예레미야 1: 1~10이스라엘 나라의 운명이 위기에 처해 있을 때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름 없는 지역에서 자라난 수줍고 감상적인 소년 예레미야에게 선지자로서의 무거운 책임을 주셨습니다. 예레미야는 제사장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가 제단에서 일하는 제사장으로 그의 생애를 보내는 것보다 더 큰 일을 하도록 준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택 받은 백성이 역사상 가장 큰 시련기에 있을 때 이 젊은이를 주님의 선지자로 임명하신 것입니다. 1. 구약의 선지자는 이스라엘 사람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인으로서 언약과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은혜의 신약시대에는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사람들은 영적 이스라엘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적 이스라엘인이 된 우리들을 이 시대의 선지자로 삼기를 원하십니다. 2. 선지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뚜렷한 소명을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구별하여 열방의 선지자로 세우시고, 뚜렷한 소명을 그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분명한 소명을 주셨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 시대의 선지자입니다. 3. 선지자는 성령의 권능을 부여받은 사람입니다. 예레미야는 말을 잘 할 줄 모르고, 너무나 어리고, 경험이 없다고 스스로 고백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권능을 주실 것을 약속하시며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권능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4. 선지자는 하나님의 대언자로 말씀을 선포하는 사람입니다. 예레미야는 자기가 원하는 사람들에게 가서 자기의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내는 사람에게 가서 하나님께서 명하시는 것을 전하는 대언자였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영생을 얻는다는 소식을 전해야 할 이 시대의 선지자들입니다. 5. 선지자는 하나님으로부터 권위를 받은 사람입니다. 예레미야는 자신에게 여러 가지 이유로 권위가 없음을 하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선지자의 권위는 자신의 개인적인 신분에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하는 특권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상을 향해 나아갑니다. 6. 선지자는 하나님의 양떼를 위한 선한 목자입니다. 예레미야가 전하는 말은 결코 백성들의 인기를 모으는 말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선지자들은 백성들을 사랑하였고, 백성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의 선지자가 되어야할 우리들에게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양 떼를 먹이십시오.”(벧전 5: 2) 7. 선지자는 그 열매로 하나님의 말씀과 사명을 증명합니다. 참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그를 보내셨음을 증명하는 표징을 보였습니다. 우리가 이 시대의 선지자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면, 우리에게 주신 성령의 은사를 따라 사역에 열매가 나타나야 합니다. 아울러 우리의 삶과 인격 속에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야 합니다.
- 하나님의 심판, 위로, 구원이사야 53:1-6이사야서는 1:1절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유다 왕 웃시야, 요담, 아하스, 그리고 히스기야 시대에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하여 본 이상을 이사야가 기록한 책입니다. 이사야서는 전체 장수가 66장으로 성경 66권과 그 수가 일치되는, 성경의 요약본과도 같습니다. 39장까지는 구약과 같이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강조하고, 마지막 장까지의 27장은 신약과 같이 하나님의 위로와 구원의 은혜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의 예언대로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오셨고, 이스라엘에게 영광스러운 미래를 소망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며, 우리의 영원한 소망이 되십니다. 1. 하나님의 심판 이사야서는 하나님의 꾸지람으로 시작됩니다. “하늘아, 들어라! 땅아, 귀를 기울여라!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자식이라고 기르고 키웠는데,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이스라엘이 얼마나 하나님을 거역하였는지, 짐승과 비교를 하셨습니다. “소도 제 임자를 알고, 나귀도 주인이 저를 어떻게 먹여 키우는지 알건마는…” 이 말씀은 짐승만도 못하다는 꾸지람입니다. 그들은 우선 도덕적으로 타락하였고 정치적으로 부패하였습니다. 특히 우상숭배와 함께 죄로 가득 찬 성읍의 모습에 대해 하나님은 분노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내가 너를 때려서라도 잿물로 찌꺼기를 깨끗이 씻어내듯 너를 씻고, 너에게서 모든 불순물을 없애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판하시겠다고 꾸지람을 하시는데, 우리의 머리가 저절로 숙여집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도 별반 다를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의 위로 36-39장은 앗시리아의 유다 침공을 회고하며, 히스기야 왕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심판의 예언들은 35장에서 마치는데, 그 뒤를 이어 40장은 “너희는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위로하여라!”는 말씀으로 시작하며 위로와 희망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목자와 같이 그의 양떼를 먹이시고 품에 안으시며 조심스럽게 이끄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소망으로 삼는 사람은 새 힘을 얻으며, 독수리가 날개를 치며 솟아오르듯 올라가고, 뛰어도 지치지 않으며, 걸어도 피곤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무엇보다 위대하신 하나님은 이방의 왕들을 사용하시거나 이방 나라들을 멸망시키시며, 이스라엘을 회복해 주실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에게도 동일한 위로를 해주십니다. 우리는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예수는 주님이시다.” 하고 고백함으로써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의 구원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표는 구원입니다. 이 백성은 하나님을 위하라고 하나님께서 지으신 백성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백성을 보살피시는 하나님의 계획은 그들에게 유익하도록 가르치며, 그들이 마땅히 걸어야할 길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비록 백성들이 “주님께서 나를 버리셨고, 주님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어머니가 어찌 제 젖먹이를 잊겠으면, 제 태에서 낳은 아들을 어찌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하셨습니다. 백성들이 모두 양처럼 길을 잃고 흩어졌으나, 주님께서는 그들 모두의 죄악을 메시야를 통해 모두 사해주실 것을 계획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민족이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이방 사람이라도 주님께로 온 사람은 이스라엘 백성과 차별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주님의 영광스러운 승리를 소망하며,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입니다. Options
- 주님이 원하시는 부부아가서 2: 1~4결혼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 중의 하나입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고 가장 먼저 하신 일은 아담과 하와의 결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제일 먼저 베푸신 기적도 결혼잔치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앞으로 하나님의 때에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어린양의 혼인잔치로 하나님 나라가 완성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셔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내주심같이 남편이 아내를 사랑한다면, 그 이상의 사랑이 없습니다. 또한 교회가 그리스도께 순종해야 하듯이 아내도 모든 일에 남편에게 순종한다면, 그 이상의 사랑이 없습니다. 1. 주님을 사랑하는 가정 남편과 아내는 먼저 주님을 신랑으로 모셔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자신을 희생하시면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결혼할 나이가 될 때까지 아름답게 성장하게 하셔서 서로를 만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남편과 아내는 평생을 함께 살면서 신랑 되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돈이라는 나무, 재미와 편안의 나무, 행운의 나무들이 우리를 유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숲 속 잡목 사이에 한 그루 사과나무 같으신 주님만을 사랑하고 그분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하면 그 그늘 아래서 진정한 안식을 누릴 것이며 그가 주시는 각종 열매들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와 같이, 세상에서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2. 서로를 사랑하는 가정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부부관계는, 계약관계가 아니라 언약관계입니다. 언약관계란 어떤 조건이나 상황에서도 변경시켜서는 안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언약이란 전심으로 맺어진 관계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속하기로 인격적으로 서약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언약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끊어지지 않습니다. 남편은 함께 사는 아내가 가시덤불 가운데 백합화인 줄 알아야 합니다. 물론 아내도 남편에게 백합화가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아내는 함께 사는 남편이 잡목 사이에 한 그루 사과나무인 줄 알아야 합니다. 물론 남편도 사과나무답게 아내의 필요를 채워주며,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그늘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3. 사랑을 나누는 가정 남편과 아내는 서로 의지할 수 있는 동반자가 되고, 서로의 짐을 가볍게 해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가정에서 펄럭이는 사랑의 깃발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 사랑은 부부 두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또한 많은 사람들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우선 가정에 선물로 주신 자녀에게 사랑이 흘러넘치고, 그 동안 사랑의 수고를 아끼지 않으신 부모님에게 사랑이 흘러넘쳐야 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복을 전달하는 가정이 되도록,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정을 복의 근원으로 사용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나는 여러분을 순결한 처녀로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여러분을 한 분 남편 되실 그리스도와 약혼시켰습니다.”(고후 11:2)라고 말했습니다. 아가서는 남편과 아내가 이루어야 할 사랑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의 사랑을 노래한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과 주님의 자녀된 우리들의 사랑을 노래한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로서 서로의 사랑과 순종을 통해서 주님과의 관계를 더욱 아름답게 느끼시기 바랍니다.
- 기쁨, 평안, 행복전도서 12:9-14사람을 만드신 하나님의 의도를 모르는 사람들은 진정한 인생의 맛을 모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인생을 살면서 “헛되고 헛되다, 헛되고 헛되다, 모든 것이 헛되다”라며 한숨을 쉬게 됩니다. 그리고 인생을 사는 동안에 재미있고 편안하게 살 수 있는 행운을 잡으려다가 끝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의도대로 하나님과 교제하며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거기에는 기쁨이 있고 평안이 있으며 행복이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재미보다는 기쁨을, 편안보다는 평안을, 그리고 행운보다는 행복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1. 재미보다는 기쁨 전도자는 어떻게 하면 인생을 즐길 수 있을까 궁리를 많이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술로 육신을 즐겁게 하고 낙을 누려보려고 마음먹었습니다. 여러 가지 큰일을 성취해서 궁전도 지어보고, 여러 곳에 포도원도 만들었습니다. 남녀종들을 사들이고, 어느 누구도 일찍이 가져본 적이 없을 만큼 많은 소와 양과 같은 가축 떼를 가져보았습니다. 은과 금, 여러 나라의 보물도 가져보고, 심지어 처첩도 많이 거느려 보았습니다. 한 마디로 원하던 것을 다 얻었습니다. 누리고 싶은 낙은 무엇이든 삼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결론은 세상 모든 것이 헛되고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재미있는 것을 추구했지만, 결국은 기쁨을 추구하는 것이 진정 보람 있는 일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2. 편안보다는 평안 전도자는 “기쁘게 사는 것, 살면서 좋은 일을 하는 것, 사람에게 이보다 더 좋은 것이 무엇이랴!”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기쁨을 추구하는 것과 더불어, 살면서 좋은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좋은 일을 하는 것은 편안하지만은 않습니다. 좋은 일에는 반드시 수고가 따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한평생을 허락하시고, 세상에서 애쓰고 수고하여 얻은 것으로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수고하지 않고 즐거워할 수 있는 방법을 계속 찾습니다. 가능하면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입니다. 로또, 뇌물, 많은 범죄 사건들이 그로 인하여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선물은, 애쓰고 수고하여 얻은 것으로 즐거워하면서 평안을 누리는 것입니다. 3. 행운보다는 행복 하나님께서 진리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신 이유에 대해서도, “당신들이 행복하게 살도록 내가 오늘 당신들에게 명하는 주 당신들의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는 일이 아니겠습니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십니다. 사람들이 행복을 찾을 수 있는 비결은 첫째로, 생수의 근원이신 창조주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둘째는, 우리를 행복하게 살도록 주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지켜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행복보다, 행운을 잡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마치 네 잎 클로버를 찾는 것과 같습니다. 네 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운’입니다. 그러나 네 잎 클로버는 기형입니다. 세 잎 클로버가 정상입니다. 세 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복’입니다. 사람들은 기형인 네 잎 클로버를 찾기 위하여, 정상인 세 잎 클로버를 얼마나 밟아버리는지 모릅니다.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이 행운을 얻기 위하여 행복을 밟아버리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대로, 기쁨, 평안, 행복을 추구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