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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 2025.10.13

말씀으로 견고해지는 신앙

갈라디아서 3:6-14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은 성령을 받을 때 놀라운 체험을 하였고, 기적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 때문이냐, 아니면 복음을 듣고 믿었기 때문이냐?” 이 질문은 갈라디아 교회가 복음의 본질로 돌아오게 하는 결정적인 물음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이 체험에 머무르지 않고, 말씀 위에 굳게 선 견고한 신앙으로 세워지기를 원했습니다. 바울은 어떻게 그들을 세우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말씀에 근거한 이신칭의 (6-9절) 바울은 6절부터 13절까지 무려 여섯 번이나 구약 말씀을 인용합니다. 이는 갈라디아 교회를 말씀 위에 다시 세우려는 바울의 의도를 보여줍니다. 6절의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은 창세기 15장 6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네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많아질 것이다”는 약속을 믿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의롭다 하셨습니다. 이때는 아브라함이 아직 할례를 받기 전이었기에(롬 4:10),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이신칭의의 진리가 이미 창세기에서부터 드러납니다. 또한 아브라함은 할례받지 않고도 믿는 모든 사람의 조상이 되었고(롬 4:11), 바울은 이를 통해 갈라디아 성도들이 참된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말씀으로 확증해 줍니다. 8절의 “모든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다”(창 12:3, 22:18)는 말씀은 복이 유대인만이 아니라 모든 이방인에게까지 전해지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체험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말씀 위에 확신을 세우는 것입니다. ‘삶공부’는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적용하고, 암송하는 종합선물세트와 같습니다. 2. 말씀에 근거한 율법의 저주 (10절) 10절은 “믿음이 아니라 율법에 의지해 사는 사람은 어떻게 되는가?”라는 문제를 다룹니다. 바울은 신명기 27장 26절,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를 인용하여, 율법의 행위에 의지하는 사람은 결국 저주 아래에 있음을 지적합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율법을 소유한 하나님의 백성이라 자부했고, 율법이 없는 이방인들은 저주받은 자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율법 아래에 있는 모든 사람이 저주 아래 있음을 선언합니다. 왜냐하면 율법을 완벽하게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롬 3:10, 23). 오늘날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도, 만약 그 동기가 하나님께 드림이 아니라 내 만족과 인정을 위한 것이라면 그것 역시 율법적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자유를 누리는 길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갈 5: 16, 18). 3. 말씀에 근거한 그리스도의 속량 (13-14절) 유대인들은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받은 자라”(신 21:23)는 말씀 때문에,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고난받고 멸시받는 메시아의 모습을 인정할 수 없었기에, 회당에서 이사야 53장을 건너뛰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과 내가 받아야 할 죄의 대가와 율법의 저주를 메시아가 대신 받으신 것이라는 것을 깨달으면 메시아의 고난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바울은 14절에서 결론을 내립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에게까지 전해졌고, 우리는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성령을 받는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4. 개인 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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