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 때가 임박했습니다.
계 14:14-20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수많은 악이 존재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악을 보면서 묻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계시고, 그분이 전능하시고 선하신 분이라면, 왜 악을 보고만 계시는가? 하나님이 아예 안 계시거나, 계신다 해도 악을 해결할 능력이 없거나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런 하나님을 믿을 수 없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은 정말로 악을 보고만 계시는가? 해결할 능력이 없고 관심이 없으신가에 대해서 분명한 답을 주고 있습니다.
1. 곡식 추수의 의미 (14:14-16)
14절에서 예수님이 손에 날이 선 낫을 들고 계신 모습이 등장합니다. 이는 추수가 임박했음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곡식을 추수하는 장면은 세 가지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1)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모으는 것
2) 악에 대한 심판
3) 악에 대한 심판과 택한 자의 구원, 두 가지 모두
어느 해석이든 본문의 큰 흐름에는 무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본문의 문맥과 요한계시록 14장의 전후 내용을 살펴보면 ‘심판’에 초점이 맞춰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사도 요한이 이 장면의 배경으로 사용한 요엘 3장 13절 역시 심판의 장면을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 곡식 추수는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2. 포도 추수의 의미 (14:17-20)
이스라엘에서는 포도를 주로 포도주를 만들기 위해 재배했습니다. 수확한 포도는 술틀에 넣고 발로 밟아 즙을 짜내고, 이를 발효시켜 포도주를 만듭니다. 본문에서 언급된 술틀은 성 밖에 위치합니다(20절). 여기서 ‘성’은 하나님의 백성이 거하는 예루살렘 성을 의미하며, 성 밖은 하나님의 보호에서 벗어난 장소, 즉 심판의 장소입니다. 포도를 밟는 행위는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상징합니다. 그 심판의 엄중함은, 술틀에서 수억 명의 피가 흘러나오는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그 피의 양은 포도 추수는 곧, 교회를 핍박하고 죽였던 짐승,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 우상 숭배자들이 받게 될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합니다.
3. 하나님은 세상의 악을 보고만 계시지 않습니다.
도미티안 황제의 박해로 순교한 성도들이 하나님께 하소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심판을 왜 그렇게 더디 하십니까? 언제 복수해 주시겠습니까?” 이는 오늘날 우리가 던지는 질문, “왜 하나님은 악을 보고만 계시는가?”와 같은 질문입니다. 하나님은 추수 비유로 답하십니다. “나는 침묵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심판이 더딘 것이 아니다. 추수할 때가 되면, 신속하고 두렵게 심판이 이루어질 것이다.” 예수님의 손에는 이미 날 선 낫이 들려 있습니다. 심판은 준비되어 있고, 곡식이 익으면 추수할 것이며, 포도가 익으면 술틀에 던져질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육체의 죽음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지는 일입니다(히 10:31). 하지만 하나님의 심판만을 강조하다 보면, 우리는 분노에 찬 무서운 하나님, 무자비한 재판자만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가 회개하고(벧후 3:9).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딤전 2:4). 하나님은 지금도 멸망을 향해 달려가는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 우리를 사용하기를 원하십니다.
4. 개인 적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