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의 완성
스바냐 3:14-20지난번 말씀에서는 하나님께서 유다 공동체를 어떻게 회복시키시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공동체가 회복되었다고 해서 하나님의 회복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에도 회복이 일어나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어디까지 회복시키시는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개인을 회복시키시는 세 가지가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1. 기쁨의 회복 (3:14-15)
70년대 ‘바빌론 강가에서(by the rivers of Babylon)’ 팝송은 시편 137편을 배경으로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간 유대인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슬퍼하는 모습을 노래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빌론 강가에서 우는 자기 백성에게 말씀하십니다. “노래하여라, 즐거이 외쳐라, 마음껏 기뻐하며 즐거워하여라(14절).” 왜 이렇게 말씀하십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징벌이 끝났고, 압제하던 바빌론이 망할 것이며,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계시기 때문입니다(15절). 우리도 바빌론 강가에 앉아 울던 사람입니다. 인생의 의미를 찾지 못해서,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 때문에, 실패와 고난 때문에 울던 사람입니다. 그런 우리에게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셨고, 영원한 죽음인 지옥에서 천국으로 옮기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결코 너를 떠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히 13:5). 이것이 우리도 기뻐하고 환호해야 할 이유입니다.
2. 정체성의 회복 (3:16-18)
하나님은 이스라엘 남은 자들에게 낙심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16절), 구원을 베푸실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이고, 그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고 반기시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17절). 현대어 성경에서는 명절 잔치 때와 같이 환호성을 올리며 기뻐 뛰신다고 표현합니다(3:17-18).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실 뿐 아니라 우리를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가치를 세상이 평가하는 기준으로 판단할 때가 많습니다. 학력, 직업, 재산, 경력, 외목, 다른 사람의 인정으로 가치를 결정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진짜 가치가 아닙니다. 우리의 진짜 가치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결정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나를 하나님 자녀 삼기 위해 예수님을 내어주셨다는 것은 내가 하나님께 예수님만큼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만 사랑받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사랑받는 자녀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입니다. 세상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시느냐입니다. 이것이 정체성의 회복입니다.
3. 소망의 회복 (3:19-20)
세 번째 회복은 흩어졌던 사람들이 다시 고향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돌아가고 싶은 곳이 있습니다. 최희준 가수가 부른 ‘하숙생’이라는 노래는 인생을 나그네에 비유합니다.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잠시 머물다 떠나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우리가 하늘에 고향을 둔 이 땅의 나그네라고 말씀하면서, 천국이 우리 본향인 것을 분명하게 말씀합니다(벧전 2:11, 현대어). 많은 사람들이 천국은 착한 사람이 가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천국은 내가 얼마나 착하게 살았느냐로 가는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가는 곳입니다. 결론적으로 기쁨, 정체성, 소망, 세 가지 회복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기뻐하고, 하나님이 나를 기뻐하시니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되며, 하나님과 함께할 영원한 본향이 있으니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