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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 2026.08.23 · 조흥래 목사

내가 원하는 하나님, 성경의 하나님

스바냐 1:1-6
성경에서 ‘심판’이라는 단어는 ‘새번역’의 경우 구약 152회, 신약 148회, 모두 300번이 나옵니다. 이것은 심판이 성경의 중요한 주제라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많은 신학들이 이성과 논리에 따라 내가 원하는 하나님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심판과 지옥을 말하지 않고, 십자가의 죄사함도 부인합니다. 복음은 내가 원하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말씀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오늘은 복음을 왜곡하는 신학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1. 심판을 지우는 신학, 자유주의 신학 스바냐는 요시야 왕 때 사역하였고 고조부가 히스기야(왕)라고 소개합니다. 요시야 왕과는 인척 관계인 것을 말하며, 이 관계는 요시야에가 종교 개혁을 일으키는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요시야의 종교개혁에도 불구하고 유다의 심판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스바냐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땅 위의 모든 생명을 쓸어 없애는 심판을 말합니다(1:2-3).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인간의 분노와 동일하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화가 나서 다른 사람을 심판할 때에는 미움과 복수심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죄를 심판하시는 것은 미움과 복수심 때문이 아니라 죄를 죄로 판단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빛이시고 어둠이 없으시므로 분노와 미움, 복수로 심판하실 수 없습니다(요일 1:5). 빛이 어둠을 사라지게 하듯이 빛이신 하나님은 어둠인 죄를 심판하십니다. 자유주의 신학은 하나님의 심판과 지옥을 지웠습니다. 심판을 지우면 십자가도 지워집니다. 한 신학자가 자유주의 신학을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심판하지 않는 하나님이 십자가 없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 죄 없는 인간을 심판 없는 왕국으로 인도하셨다." 심판과 지옥을 부정하면, 천국 문이 닫힙니다. 2. 고난을 지우는 신학, 번영 신학 예루살렘 성전 안에 바알 신상을 세웠고 ‘그마림’이라 부르는 제사장도 있었습니다. 유다가 이렇게 바알에 목을 맨 것은 농사 지으면 비를 풍족히 내려 풍년들게 해준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번영 신학이 현대판 바알입니다. 조엘 오스틴이 쓴 ‘긍정의 힘’에서 그는 긍정적인 사고가 복받는 비결이라고 말합니다. 그에게 고난은 실패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심판, 예수님의 십자가, 지옥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복음을 위해 고난과 핍박받는 것을 말하고, 믿음의 시련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번영 신학에서 벗어나려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삶(마 6:33)’을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의식주를 염려하는 것에서 벗어나고 하나님의 공급을 경험하며 번영 신학으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3. 예수님의 유일성을 지우는 신학, 종교 다원주의 유다에는 하나님도 섬기고 밀곰(말감, 몰렉)도 섬기는 종교 혼합주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 450명과 벌린 대결을 통해서 살아 역사하시는 분은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 뿐이신 것을 보여주셨고 혼합주의 신앙을 금하셨습니다(왕상 18장). 종교 혼합주의는 다원주의로 연결됩니다. 모든 종교는 가는 길만 다를 뿐이고 마지막 구원은 같다는 주장이 ‘종교 다원주의’입니다. 세계교회협의회(WCC)도 종교 다원주의를 주장합니다. WCC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과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한 구원의 길인 것을 부인합니다. 종교 다원주의로부터 승리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이 유일하신 구원의 길이고, 진리이고 생명이시라는 것을 붙드는 것입니다(요 14:6). 결론적으로 복음은 내가 원하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여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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