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자랑합니까?
갈라디아서 6:12-18우리는 모두 자랑하며 살아갑니다. 외향적인 사람은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내향적인 사람은 조용히 표현할 뿐,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누구나 자랑합니다. 자랑은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 나를 알아주세요”라는 외침이며, “나는 가치 있는 존재입니다”라는 인정을 받고자 하는 인간의 깊은 욕구입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자랑에 대해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요?
1. 육체를 자랑하는 사람
12절에서 말하는 “육체의 겉모양을 꾸미려 한다”는 표현은 할례를 의미하며, 그것을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종교적 행위를 가리킵니다. 바울은 할례를 강요하던 자들의 숨은 의도를 두 가지로 밝힙니다.
첫째, 그들은 할례를 통해 유대 율법주의자들의 핍박을 피하려 했습니다. 십자가를 택할 때 오는 유대인들의 핍박을 면하기 위해 할례를 택하였습니다.
둘째, 율법의 본질과 정신은 놓친 채, 얼마나 많은 사람을 개종시켰는지를 자랑하기 위함이었습니다(13절).
교회의 역사 속에서도 동일한 실수가 반복되어 왔습니다. 유럽의 웅장한 성당들은 신앙의 열심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형식이 본질을 가릴 수 있음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가정교회도 형식과 방법을 붙드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붙들어야 합니다. 성경은 교회를 가족 공동체로, 교회의 사명을 영혼 구원과 제자 삼는 일로 분명히 말합니다. 이 방향이 분명할 때, 그에 맞는 방법과 형식은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방향은 기관차와 같고, 방법과 형식은 객차와 같아서, 기차를 끄는 힘은 언제나 기관차인 방향에서 나옵니다.
2. 십자가를 자랑하는 사람
당시 ‘십자가’라는 단어는 입에 담기조차 꺼려지는 가장 수치스럽고 혐오스러운 표현이었습니다. 그런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상 “나는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선언과도 같습니다. 바울은 혈통, 가문, 학문, 그리고 사도로서의 업적과 열매를 생각해 보면 누구보다 자랑할 것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은 겸손해서가 아니라 그에게 세상은 죽은 것이고 자신도 죽었기 때문에 세상은 더 이상 자신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14절). 나와 세상이 함께 죽을 때, 비로서 진짜 중요한 것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종교적 형식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새롭게 창조되는 삶입니다(15절).
바울이 세상이 혐오하던 십자가를 자랑한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하여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고, 그 부활의 능력에 이르기를 간절히 소망했습니다(빌 3:10–11). 그렇기에 자신의 몸에 남은 수많은 매질과 돌에 맞은 상처를 부끄러운 흔적이 아니라 “예수의 흔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3. 개인 적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