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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 2025.06.30

이것이 영생입니다.

요한계시록 22:1-5
1. 육신과 영의 생명 병원 응급실에 교통사고를 심하게 당하여 다리뼈가 개방골절이 된 환자가 오면 의료진이 제일 먼저 하는 것은 골절 수술이 아니라 생명과 관련된 혈압, 맥박, 호흡과 같은 생명징후(vital sign)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혈압이 떨어지면 즉시 원인을 찾고 조치를 해야 합니다. 찾지 못하면 사망하게 됩니다. 성경은 우리 영(spirit)도 생명이 있고, 죽어 있는 사람, 살아있는 사람이 있다고 말씀합니다(엡 2:1). 그러므로 교회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응급실처럼 죽은 영혼을 살리는 일입니다. 영과 육의 죽음은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의 죄로 시작되었지만(창 3:19), 누구든지 예수님을 영접하면 다시 살아나 생명을 얻게 됩니다(롬 8:10). 성경이 말하는 생명은 영생을 말합니다. 많은 사람은 영생을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것’ 정도로만 생각하지만 오늘 본문은 더 본질적인 2가지 의미를 말해 줍니다. 바로 저주가 없는 삶, 그리고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삶입니다. 2. 영생은 저주가 없는 삶입니다. 저주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하는 곳은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직후입니다. 죄의 결과로 땅이 저주받고, 인간은 평생 수고해야만 먹고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창 3:17). 그러나 이사야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집을 지은 사람들이 자신이 지은 집에 살며, 포도나무를 심은 사람들이 자신이 기른 나무의 열매를 먹을 것이라고 말합니다(사 65:21-22). 즉 노력한 대로 누릴 수 있는 세상이 저주가 없는 세상입니다. 이 말씀은 계시록에서 성취됩니다. 영생은 새 예루살렘에서 저주가 없이 영원히 사는 삶을 말합니다. 3. 영생은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삶입니다. 죄가 들어오기 전,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얼굴을 마주 보며 대화하였습니다. 그러나 죄를 범한 이후 사람은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영 없게 되었습니다. 모세처럼 하나님께 가장 가까이 나간 사람조차, 하나님의 뒷모습만 볼 수 있었습니다(출 33:23). 하지만 요한계시록은 새 예루살렘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눈으로 보는 것을 넘어,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가 회복된다는 뜻입니다. 지금도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지만, “거울을 통해 희미하게 보는 것”에 불과합니다(고전 13:12). 그러나 그날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는 온전한 교제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복중의 복, 영생의 핵심입니다. 새 예루살렘에서 영원히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 막힘없이 교제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4. 영생의 공급원, 생명수의 강 이러한 삶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생명수의 강입니다(계 22:1-2절). 이 강은 하나님의 보좌와 어린 양의 보좌에서 흘러나와 새 예루살렘 한가운데를 흐릅니다. 이것은 이 도성에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생명을 공급받으며 산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새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이 영생의 근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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