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서 보시오
요한복음 1:35-46가나안 곧 팔레스타인 땅에 살던 유대인들의 삶을 가장 고달프게 했던 것은 무거운 세금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당시에는 두 부류의 저항세력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에세네파였습니다. 또 하나는 열심당이었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답답해하던 사람들은 세례 요한에게서 새로운 희망을 보았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그의 메시지에 매료되어 그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무엇을 찾고 있느냐?
세례 요한의 제자들 중에 예수님을 좇아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보시며 “무엇을 찾고 있느냐?”고 질문하셨습니다. 이 질문은 오늘도 주님을 찾는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질문입니다. 왜 예수님을 믿습니까? 잘못된 목적을 가지고 주님을 좇는 사람은 결국은 떠나게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주 확인해야 합니다. “나는 왜 예수님을 좇고 있는가?”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드디어 눈이 열렸습니다. 자기들과 마주하신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바로 그들이 그토록 대망하던 메시아요, 하나님의 아들임을 확신하게 된 것입니다. 요한과 안드레를 보십시오. 얼마나 흥분했으면 날이 새자마자 자기 형제 베드로에게 달려가서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소.”(41절)라고 소리를 질렀겠습니까? 그날 두 제자가 엄청난 감동을 받았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일입니다.
십자가만이 진정한 해결이다.
우리가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될 진리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 나라를 위해 오신 메시아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는 세상을 비참하게 만든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를 그 비참함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메시아입니다. 요한과 안드레는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시는 것을 보고, 또 성령을 받아 영의 눈을 뜨고 나서, 십자가만이 그들의 가슴에 남아있는 모든 문제의 진정한 해결책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서 제도나 사회의 구조를 다시 재건한다는 말은 아무 효과가 없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십자가를 통해 사람을 바꾸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영광스러운 주님이 다스리시는 새 하늘 새 땅이 이 땅 위에 그 모습을 드러낼 때, 우리는 지금까지 씨름하던 모든 문제들로부터 해방됩니다.
귀한 전도자 안드레와 빌립
안드레는 베드로를 예수님께로 인도한 사람입니다. 떡 다섯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는 소년을 발견하고는 그를 예수님 앞으로 인도했습니다. 또 헬라 사람들이 예수님을 면회하고 싶어 찾아왔을 때, 안드레는 그들을 주님 앞으로 조용히 인도하는 안내자가 되었습니다. 안드레가 했던 일은 이처럼 사람들에게 드러나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빌립은 성격이 그다지 적극적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난 후 그토록 기다렸던 메시아를 찾았다는 감격에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그는 가장 가까운 나다나엘을 찾아갔습니다. 빌립은 예수님에게서 배운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와서 보시오.”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발견한 예수님 때문에, 우리는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그 무엇을 가지고 있습니다. “와서 보시오.”라고 자신 있게 초청할 수 있는 이유를 우리는 가지고 있습니다. 주님의 영광을 보고 변화된 사람이라면 우리도 안드레가 될 수 있고 빌립이 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