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
요한복음 2:12-22우리는 하나님의 속성이 보여주는 양면성을 잘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아버지이신 동시에 거룩하신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항상 용서하시지만 종종 징계하십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품은 항상 열려있지만 때로는 마음을 닫아 버리시는 무서운 하나님이십니다.
본문은 주님의 첫 번째 성전 정화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유월절이 되면 절기를 지키기 원하는 사람들이 원근 각처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왔습니다. 이곳에는 희생제물용 가축들로 붐볐고 그늘 밑에는 돈 바꾸는 상인들이 앉아 있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성전정화
예수님은 성전에 들어가서 현장을 보시자마자(14절)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채찍을 손에 쥐고 휘두르기 시작하셨습니다. 주님은 짐승들을 성전 마당에서 쫓아냈습니다. 그리고 환전하는 사람들의 돈 상을 뒤집어엎으셨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드러내놓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유대 나라에서는 아무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었습니다. 만약에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 그 사람은 성전모독죄를 범한 자로 다스렸습니다. 그러니 성전 안에서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고 말하는 것은 엄청난 문제를 일으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불렀습니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보이는 형상이었기 때문입니다.
탐욕의 누룩을 채찍질하시는 주님
유월절이 다가오면 유대 나라 사람들은 집안에서 누룩을 전부 치웁니다. 또 누룩을 넣어서 찐 빵도 다 없애버립니다. 예루살렘 성전에도 누룩이 절대 보이지 않도록 싹싹 쓸어내 버립니다. 그러나 사람 눈에 보이는 누룩은 치웠지만 진짜 치워야할 보이지 않는 누룩은 그대로 남아있을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5:10에서는 누룩을 탐욕이요 우상숭배이며 음행이라고 해석합니다. 예수님은 성전에서 매매하는 사람들만 보신 것이 아닙니다. 그 성전 지도자들의 마음속에 쌓여있는 묵은 누룩, 즉 탐욕을 보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탐욕을 회개하지 않은 채, 겉으로 거룩하게 유월절을 지킨다고 하는 사람들에 대해 주님은 참지 못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비슷한 문제가 남아있지 않은지 두려운 마음으로 살펴보아야 합니다.
예배를 사모하는 열심
우리가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높이고 그분만을 경배하는 예배를 드린다면 주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 때문에 성전을 더럽히는 그 어떤 것도 생명을 걸고 막았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그 열심을 가져야 합니다. 예배를 더럽히고 예배를 예배답지 못하게 타락시키고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이면 어떤 값을 지불하고서라도 막겠다는 뜨거운 열심을 마음속에 간직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부활하셔서 영으로 이 자리에도 계시고 전 세계 어디에서나 그에게 예배하는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십니다. 두세 사람이 모였든지, 수천 명이 모였든지 예배를 받으시기 위하여 주님이 영으로 우리 중에 임하시는 영광스러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제 이 영광스러운 예배가 부패하거나 변질되지 않도록 주님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을 갖도록 해야 합니다. 탐욕을 멀리해야 합니다. 뜨거운 열정을 가져야 합니다. 변질되지 않는 예배자가 되어 영원토록 그분만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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