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교 목록
주일설교 · 2021.07.04

영의 눈을 멀게 하는 것들

요한복음 9:1-41
눈이 먼 사람을 보면, 안타까워하면서 ‘얼마나 답답할까? 저 사람의 눈을 뜨게 해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를 고민을 해야 정상입니다. 그리고 태어나서 한 번도 눈을 뜨고 본 일이 없는 사람을 주님께서 고쳐주셨다면 축제 분위기가 되어야 마땅할 텐데, 그 뒤에 오가는 대화들을 보면 살벌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여기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영의 눈이 감겨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아예 처음부터 못 보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영의 눈을 멀게 하는 것들’이 무엇인가 알고, 같은 어리석음을 범치 않기를 바랍니다. 잘못된 생각이 영의 눈을 흐리게 한다 첫 번째 요소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잘못된 생각이나 지식, 통념, 시각이 우리의 영안을 흐려놓을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눈이 먼 사람을 보며, “주님, 저 사람이 누구 죄 때문에 저런 불행을 겪습니까? 자기 죄 때문입니까? 아니면 그 부모 죄 때문입니까?” 제자들을 비롯하여 당시 유대 사람들은, 앞 못 보는 사람을 보면 무조건 죄 때문에 그런 형벌을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잘못된 지식이요, 생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일반 사람들이 남의 고통에 대해 가지고 있는 통념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람이나 그의 부모가 죄를 지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그에게서 드러나게 하시려는 것이다.”(3절) 우리도 거짓된 정보나 지식 때문에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리고 영안이 흐려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를 솔직하게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율법주의가 영의 눈을 흐리게 한다 우리의 영안을 흐리게 하는 두 번째 요소는 율법주의입니다. 예수님께서 눈먼 사람을 고쳐주시자 곁에서 그 광경을 보고 있던 바리새인들과 그 추종자들은 예수님을 물고 늘어졌습니다. 안식일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아야 하는데, 예수님이 침을 뱉어 손으로 진흙을 이기고 소경의 눈에 발라주기까지 했으니 그들에게는 이보다 큰일이 어디에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그들은 평생 앞을 못 보던 자가 광명을 찾는 경사로운 일을 보면서도 율법을 내세우며 예수 그리스도를 공격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율법주의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율법주의란 법이나 형식을 앞세워서 남을 판단하는 일체의 태도를 말합니다. 본질보다는 형식을 중요시하고, 내용보다는 외형을, 정신보다는 법을 우선에 두고 사람을 잡으려 드는 것이 바로 율법주의입니다. 이런 율법주의에 사로잡히면 우리의 영이 흐려집니다. 교만이 영의 눈을 흐리게 한다 우리의 영안을 흐리게 하는 세 번째 요소는 교만입니다. 예수님은 고침 받은 소경이 찾아왔을 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는 이 세상을 심판하러 왔다. 못 보는 사람은 보게 하고, 보는 사람은 못 보게 하려는 것이다.”(39절) 바리새인들은 이 말씀을 듣고 발끈하고 나섰습니다. “우리가 눈이 먼 사람이란 말이냐? 어떻게 그런 말을 다 할 수 있는가?” 자신들은 다 안다고 하는 교만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아는 것만큼 살지 못하면 그 사람은 눈을 뜨고 있어도 보지 못하는 사람이요, 빛이 비쳐도 여전히 죄 속에 거할 수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만들기 쉽습니다. 우리 눈이 흐려지지 않도록 합시다. 잘못된 생각 때문에 우리 눈이 흐려지지 않도록 합시다. 율법주의 때문에 우리 눈이 흐려지지 않도록 합시다. 안다고 하는 교만 때문에 우리 눈이 흐려지지 않도록 합시다.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