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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 2021.07.18

선한 목자 예수님

요한복음 10:11-29
사람을 바로 알기 위해서 ‘그가 누구인가?’라는 질문과 함께 ‘그가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사람의 인품이나 성격 등과 같은 인물의 됨됨이가 어떠한가를 묻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가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물론이거니와 ‘그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우리에게 계시하실 때 자신이 누구이며, 어떤 분인가를 함께 말씀해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첫 구절에서 예수님은 ‘말씀’으로 소개되었고, ‘빛’ ‘생명’으로 소개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본문에서는 예수님은 자신이 어떤 분인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자기 생명보다 양들을 더 사랑하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선한 목자라고 하신 첫 번째 이유는 양들을 자기 생명보다 더 사랑하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선한 목자다.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린다.”(11절) 자기 생명보다 양을 더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이 선한 목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삯꾼 목자는 돈을 보고 일하기 때문에 진정으로 양떼를 위하는 사람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삯꾼 목자는 좋지 못한 목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선한 목자’ 즉 ‘좋은 목자’이십니다. 양들을 위해서 일하는 진실한 목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의무적인 사랑이 아니라,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입니다. 주님은 그 사랑을 십자가에서만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우리를 자기 생명보다 더 사랑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는 우리의 선한 목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양들을 잘 아시기에 예수님이 자신을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시는 두 번째 이유는 양들을 너무나 잘 아시는 목자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선한 목자다. 나는 내 양을 알고, 내 양은 나를 안다.”(14절) 여기에서 ‘안다’는 말은 양이 몇 마리인지 아는 정도의 지식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안다’고 하실 때는 양들의 상황을 속속들이 이해하고 동정해 준다는 말입니다. 제 것을 다 챙겨서 아버지를 떠나 먼 지방으로 가서, 거기에서 방탕하게 살면서 그 재산을 낭비한 아들이라 할지라도, 그가 집에 돌아왔을 때에 그가 아직도 먼 거리에 있는데, 그의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서, 달려가 그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좋은 옷을 꺼내서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내다가 잡아서 기쁨의 잔치를 벌이는 것, 이것이 바로 선한 목자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아시는 것처럼 그렇다면 예수님은 우리의 처지를 얼마나 깊이 알고 계실까요? 14-15절을 보십시오. 말로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매우 놀라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다. 나는 내 양을 알고, 내 양은 나를 안다. 그것은 마치,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예수님이 우리를 아시는 것을, 하나님이 예수님을 아시는 것에 비유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아시는 것은 예수님도 다 아시고, 예수님이 아시는 것은 하나님도 다 아십니다. 완벽하게 상호 지식을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마치 하나님이 예수님을 아는 것처럼 세밀하고 정확하게 우리의 깊은 데까지 다 알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나를 알아주시는 분은 오직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나를 진정으로 이해해 줄 수 있는 분은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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