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교 목록
주일설교 · 2021.08.08

나사로야 나오너라

요한복음 11:17-44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유족들과 그들을 찾아온 사람들이 통곡하는 모습을 보고 예수님께서도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죽음이 인간에게 안겨주는 슬픔과 절망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예수님 자신마저도 눈물 없이는 그것을 지켜볼 수가 없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우리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기에 사랑하는 자를 죽음에 빼앗기고 슬퍼하며 고통하는 그 사람들의 마음을 고스란히 받으셨고, 그들과 똑같은 심정을 느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간이 겪는 이 죽음의 공포와 슬픔을 놓고 눈물을 흘리실 뿐 아니라 마음으로 분노하고 우리의 모든 아픈 감정을 함께 나누신 하나님으로 지금 서 계시는 것입니다. 사망의 권세를 이김 그러나 주님이 흘리신 눈물은 패배와 절망의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자신을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선언하셨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사실을 믿는 자는 죽어도 다시 살아날 것이며, 아직 죽지 않고 믿는 자들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고 계십니다. 다시 말해서 믿는 자들에게는 육신의 죽음이 진정한 죽음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죽음의 영역에서 이미 해방되었기 때문에 죽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나사로를 살리심으로써 자신이 부활이요 생명임을 실제적으로 증명하셨으며, 며칠 후에 그 자신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실 것을 미리 예고하셨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세상 끝날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하늘의 별과 같이 무수한 성도들이 천사의 나팔소리를 듣고 무덤에서 일어날 것을 가르쳐주셨습니다. 멀리 있는 진리는 믿지만 예수님께서 울고 있는 마르다에게 “네 오라버니가 살아날 것이다.”라고 말씀하시자 그는 이 말을 대뜸 이렇게 받았습니다.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리실 줄을 내가 아나이다.”(24절) 그는 마지막 부활을 믿고 있었습니다. 마르다는 멀리 있는 진리는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네 오라버니가 살아날 것이다.”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지만 그 가까이 있는 말씀은 믿지 못했습니다. 당장 적용되어 그 결과가 눈앞에 드러나야 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믿기가 쉽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도 현실 문제에 부딪치면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들어도 쉽게 은혜를 받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죽음에 대해서도 세상 사람들처럼 죽음에 대한 본능적인 반응만을 보입니다. 믿음의 반응이 본능의 반응에 삼킨 바가 되는 것입니다. 날마다 죽지만 날마다 부활하는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습니다.”(고전 15:31)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내가 날마다 죽는다.” 하는 말은 “내가 날마다 산다. 날마다 부활하고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매일 죽음의 위기를 당하지만 그때마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이 주시는 능력을 체험하면서 산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먼 훗날 부활할 것이라는 믿음만을 가지고는 날마다 죽어야 되는 이 세상 현실에서 다시 살 수 없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죽어야 되는 이 세상에서 날마다 부활하는 능력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부활이요, 생명이신 주님이 내 안에 살아계시며 역사하셔야 합니다. 예수님은 나사로를 살리기에 앞서 돌을 옮겨놓도록 명령하셨습니다. 당신의 심령을 무덤처럼 만드는 돌은 무엇입니까? 그 돌을 빨리 옮기고 부활의 예수님과 함께 하는 인생을 사십시오. 그러면, 날마다 죽지만 동시에 날마다 사는 부활의 능력이 당신의 삶에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