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죽음과 장례
요한복음 19:31-42영국의 유명한 신학자인 마이클 그린이 예수님의 죽음을 소크라테스의 죽음과 비교하여 쓴 글이 있습니다. 예수님과 소크라테스는 몇 가지 점에서 유사합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어디까지나 한 개인의 죽음으로서 선한 죽음이요, 감동을 주는 죽음에 지나지 않은 것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인간의 어떠한 이론으로도 설명할 수 없고, 증명할 수 없는 깊은 진리를 담은 유일한 죽음, 오직 하나밖에 없는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임을 우리는 분명히 믿습니다.
신비한 구약예언의 성취
빌라도는 군인들을 보내어 죄수들의 다리를 꺾도록 하였습니다. 다리를 꺾으라는 명령을 받은 그들로서는 예수님의 다리를 꺾었어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창으로 예수님의 옆구리를 찔렀습니다. 구약 선지자들의 예언이 성취되는 기가 막힌 결과를 가져온 것입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메시아를 찌른 자들이 그를 볼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다음에 예수님을 찌른 죄인들이 예수님을 볼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 예언대로 군인들은 예수님의 허리를 찔렀습니다. 구약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관한 모든 예언들이 이렇게 성경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군인들의 생각 없이 하는 행동을 통해서 하나하나 성취되는 것을 보면 신비하기까지 합니다.
확실히 돌아가셨다
군인들이 예수님의 허리를 창으로 찌르자 거기에서 피와 물이 쏟아져 내렸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흘리신 물과 피는 우리를 용서하시는 피와 우리를 씻는 물을 상징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죽음의 의미입니다. 예수님이 피와 물을 쏟으셨다는 것을 요한이 특별히 증언하는 그 배후에는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확실히 죽으셨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서입니다.
나 같은 죄인을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가장 비참하게 죽으시면서도 원망 한마디 하지 않으셨고, 금방이라도 십자가에서 뛰어내릴 수 있는 능력과 권세를 가지고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죄 짐을 다 담당하기 위해서 끝까지 참으셨으며, 결국에는 자기 생명까지 송두리째 제물로 드리신 주님의 그 놀라우신 사랑과 은혜를 성령께서 우리 마음속에 가득 담아주시기를 바랍니다.
요셉과 니고데모를 통한 하나님의 섭리
요셉 때문에 예수님은 부자가 들어갈 무덤에 장사되었습니다. 이것은 이사야 53:9의 예언대로 부자 요셉이 새 무덤을 파두었다가 예수님을 거기에 묻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던 그날, 니고데모는 향료를 백 근이나 가지고 왔습니다. 니고데모가 이렇게 많은 양의 향료를 단시간 내에 준비할 수 있었던 것도 기적이고, 한 번도 사람을 묻지 아니한 새 무덤을 십자가가 있던 골고다 주변에 갖고 있었다는 것도 기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들도 바리새인들 때문에 드러나게 믿는다고 말하지 못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함으로 우리의 삶의 지표를 바로 정하고, 십자가의 은혜를 아는 사람답게, 그 은혜에 감격한 사람답게, 십자가를 통해 쏟아지는 그 하나님의 사랑에 흠뻑 젖은 사람답게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에게 이와 같은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