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제자교회를 이 자리에 세우신 이유
지난 주일 점심시간이었습니다. 늘 주방 앞자리에 앉아 식사를 하시던 조춘자 어머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컨디션이 좋지 않으신가보다.’ 잠시 생각을 하였습니다. 늘 자상하게 챙기는 교회 자매님들이 점심을 넉넉하게 챙겨서 어머님 댁을 방문하였습니다. 어머님은 늘 문을 열어놓고 사시기 때문에 방안으로 들어가는 일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어머님은 곱게 누워계셨답니다. 그런데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어 확인해 보고는 심각한 상태인 것을 감지했나봅니다. 마침 그날 방문을 했던 두 자매님은 모두 간호사 출신이었습니다.
교회로 부리나케 뛰어온 자매님들은 의사 두 분을 모시고 어머님 댁으로 갔습니다. 한 분은 심폐소생술을 하고, 다른 한 분은 맥박을 짚어보았는데 이미 소천하신 상태였습니다. 119로 연락을 하여, 소천하신 것이 확인이 되었습니다. 혼자 계시다 소천하신 상황이어서 국립과학연구소 사람들이 와서 여러 가지를 확인한 후에, 가족들이 장례식장에 연락을 하여 모시고 가서 빈소를 차리게 되었습니다. 동네에서 여러 분들이 저희를 보고 잘 부탁한다며 고맙다고 감사의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저녁에 우리 교회 십여 명의 성도들이 장례식장을 찾아가서 유족들을 위로하는 예배를 드렸습니다. 장례식장에 빈소를 차린 분들의 사진이 현관 광고판에 일곱 분 보였습니다. 그런데 어머님의 이름에만 “성도”라는 호칭이 붙어 있었습니다. 만일에 우리 교회가 이곳에 세워지지 않았더라면 어머님의 이름 옆에 성도라는 호칭이 붙어 있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머님은 교회 옆을 그냥 지나치지 않으셨습니다. 꼭 두 손을 모으고 합장을 하고 지나가셨습니다. 그 모습이 조금 우습기는 했지만, 어머님의 정성을 표시하는 마음이려니 하며 언젠가는 합장은 하지 마시라고 말씀을 한 번 드려야겠다 생각했었습니다. 어머님은 작년에 복음을 들으시고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한 후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이것만 해도 우리 교회가 이곳에 세워진 의미는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례식장에 어머님 사진 곁에 있었던 다른 여섯 분의 사진 옆에는 “성도”라는 호칭이 없었던 것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 교회 옆 공원에 놀러 나오시는 많은 어르신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이 세상을 떠날 때에 그분들의 사진 옆에도 “성도”라는 호칭이 붙을 수 있도록 복음을 전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자주 차도 타다 드리고, 더울 때에는 시원하게 교회 1층에 들어와 쉬시라고 해도, 추울 때에는 따뜻하게 들어와 따뜻한 차라로 한 잔 드시라 해도 아직은 받아들이지 않으십니다. 그래도 그분들은 마음속에 우리 교회에 대한 호감을 가지고 계신 것은 분명합니다. 조춘자 어머님의 변화된 모습을 보며, “저 양반 교회에 나가더니 신수가 훤해졌다.”고 말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거든요. 이번 일을 보면서 우리 교회에 감사한다는 말도 하고요. 조춘자 어머님이 간접적으로 복음의 길을 많이 닦아 놓으셨습니다.
평소에 저희 부부를 만나면 어머님이 곧잘 나누시던 인사말이 있었습니다. “서울 가지 마이소.”였습니다. 저희가 없으면 쓸쓸하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시더니 어머님이 저희 곁을 떠나셨습니다. 그렇다고 어머님에게 “어머니, 천국 가지 마이소.”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곁에 계시지 않아서 서운하기는 하지만, 불편한 몸으로 힘들게 재송동 언덕길을 오르는 일도 없고, 수시로 병원을 방문하여 진찰을 받고 약을 타오는 일도 없을, 하나님 나라에 가셨기 때문입니다. 유족들을 위로하는 예배에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하나님을 꼭 동반자로 삼으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무거운 인생 짐을 내려 놓으라고. 그리고 돌아갈 집이 있어야 우리 인생 나그네길이 행복할 수 있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