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흥하여야 하고, 나는 쇠하여야 한다.
요한복음 3:22-36세례 요한은 선지자로서 대중 앞에 두각을 나타낼 때까지 광야생활을 하였습니다. 삼십 대 초반에 벌써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주목하는 위대한 선지자의 위치에 올랐지만 그 인기도 잠깐이었습니다. 일 년 남짓한 아주 짧은 기간 동안 혜성처럼 나타났다가 초라하게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는 헤롯의 부도덕함을 직설적으로 나무랐다가 투옥되었고, 얼마 후 간교한 헤로디아에 의해 목이 베여 그 머리가 쟁반에 담겨, 많은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비극적인 생을 놓고 왜 예수님께서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라고 하셨을까요?
분수를 아는 사람
세례 요한을 존경하고 따랐던 제자들은, 아무리 세례 요한이 증언했던 예수님이지만,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몰려가는 것을 기분이 좋았을 리가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지도자의 입장에서는 중대한 위기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지도자의 입장에서 견디기 어려운 일 가운데 하나는 제자들이 경쟁자를 질투하는 것을 보는 일일 것입니다. 이럴 때 지도자가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진정 큰 인물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입니다. 외모가 똑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듯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능력이나 역할도 사람마다 다릅니다. 누구든지 받은 것만큼 일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분수가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야말로 지혜 중에 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크게 기뻐하는 사람
예수님께서 요한을 세상에서 가장 큰 자라고 극찬하신 이유가 바로 29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신부를 차지하는 사람은 신랑이다. 신랑의 친구는 신랑이 오는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다가, 신랑의 음성을 들으면 크게 기뻐한다.”(29절)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보면서 기쁨이 넘쳤습니다. 예수님은 곧 세례 요한 자신의 기쁨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처럼 예수님을 진정으로 기뻐하는 사람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큰 자입니다. 세상에서 누리는 명예보다도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세상에 오신 예수님 때문에 기뻐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큰 자로 보십니다. 예수님보다 크신 분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이는 예수님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 크신 예수님을 기뻐하는 자도 예수님처럼 큰 자가 되는 것입니다.
낮아지는 사람
예수님께서 요한을 큰 자라고 하신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30절입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고, 나는 쇠하여야 한다.”(30절) 이 말은 “그는 더 커져야 하겠고 나는 더 작아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이 한 마디에서 세례 요한의 간절한 소망이 무엇인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으로서, 영원히 경배 받으실 하나님으로서 높임을 받는 것이 요한의 소망이었습니다. 이것을 위해 자기가 작아져야 한다면 얼마든지 작아지기를 원했습니다.
인생은 들의 풀과 같고 그 영화는 들의 꽃과 같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이렇게 허무한 인생이 역전되어 엄청난 영광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세례 요한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기 위해 자기는 철저하게 쇠하기를 소원하는 것입니다.
